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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정부가 지난달 첨단전략기술 보호 강화 방안을 내놨다.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국가첨단전략산업법)에 따라 올해 말까지 기업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반도체, 2차전지 등 국가첨단산업 분야 핵심 전문가들을 ‘전문 인력’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게 골자다. 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 제도가 법의 취지에 맞춰 제대로 시행되면 기업들은 이를 근거로 해당 전문인력과 해외 동종 업종으로의 이직 제한, 전략기술 관련 비밀유출 방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전략기술의 해외 유출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기업이 정부에 해당 전문 인력의 출입국 정보 제공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잘 운용한다면 ‘산업스파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상 ‘전문 인력 지정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전방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미 김성원 의원이 산업기술 유출에 대해 간첩죄 적용 등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산업스파이 철퇴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어 양향자 의원은 기존의 특허법원을 ‘기술특허법원’으로 확대 개편해 지재권 분쟁 소송 전문성 확보를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기술보호법ㆍ첨단산업법 개정안 등 ‘기술탈취방지 3법’ 발의를 예고했다. 이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잘 조율하고 세밀하게 연구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거나 추가해 법률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산업스파이가 준동하는 데는 솜방망이 처벌이 한 몫 했다. 산업기술보호법 제36조는 산업기술을 유출한 자는 최대 15년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실제 판결에서는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에서 3년 반, 그마저도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산업스파이에 대한 무죄 선고율이 20%에 달한다. 최저 형량을 지금보다 크게 높이고 ‘집행유예 없는 실형’이 선고되도록 법률을 뜯어 고쳐야 한다.산업스파이에 대해서는 ‘산업기술보호법’과 함께 형법 제98조의 ‘간첩죄’ 범위에 산업기밀 유출행위도 포함시켜 간첩죄로 다스려야 한다. 전 산업 분야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고,산업 기술이 국가안보와 연결된 초연결 시대에 군사기밀 유출행위만을 간첩행위로 규정하는 것은 시대에 동떨어진 제도다. 외국으로의 산업기밀 유출행위도 간첩죄로 처벌해야 한다. 미국은 산업스파이를 ‘간첩죄’로 가중처벌하고 있고 일본은 공급망 강화, 기간산업 물자 확보, 첨단기술 보호를 위한 ‘경제안전보장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해야 할 부분이다. 산업스파이가 노리는 것은 결국 돈이다. 첨단기술 전문 인력 지정제 역시 전문 인력으로 지정만하고,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면서 회사에 대한 충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만을 강요해서는 아무런 효과를 거둘 수 없다. 국가와 기업이 협력해 전문인력을 최고의 기술 전문가에 걸맞은 합당한 명예와 처우를 약속하고 실행할 때 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려면 먼저 기업은 성과보수체계를 바꿔 그들의 노력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 국가는 전문 인력의 퇴직 후 생활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퇴직 엔지니어들에게 재취업 기회를 주는 등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대한민국 학술원’이라는 곳이 있다.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면 종신임기를 누린다. 정회원은 매달 180만 원의 회원수당을 지원받고, 회당 10만 원의 회의 참석수당도 받는다. 연구 논문을 쓰면 연 1000만원 정도의 학술 연구비를 지급받는다. 정회원은 대부분 교수들이어서 기본적으로 은퇴 후 수당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받으며, 위에서 말한 회원 수당은 별도다. 첨단기술 인력을 학술원 회원에 준해 대우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문 인력은 학술원 회원 못지않은 중요한 인재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E칼럼]분산에너지법, 에너지시스템 혁신 마중물 삼아야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지난 6월 공포됐다. 분산에너지가 에너지 정책목표로 등장한 지 10년만이다. 그동안 정부계획과 정책연구를 통해 분산에너지 보급목표, 분산에너지의 다양한 편익산정, 지역간 수급불균형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보급과 함께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전력계통 확충과 신뢰도 문제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특히 전력수요가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 편중됨에 따라 전력시스템 운영의 비효율화는 물론 입지, 환경, 요금, 산업 전반에 걸쳐 지역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변화하는 환경에서 에너지산업과 생태계를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분산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정책개발과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발전시설이 해안지역에 편중돼 지역간 전력수급 불균형이 크다.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의 광역시와 일부 도는 전력자립률 10%에도 못미친다. 이들 지역은 소비전력 대부분을 타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에너지를 ‘무임승차’하고 있는 셈이다. 발전소나 송전설비는 안전, 건강, 환경문제 등으로 인해 기피시설로 간주되고 있다. 앞으로 대규모 발전소 건설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근들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농어촌과 산림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아울러 열병합발전소나 연료전지도 신도시나 공단을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자원기술 확산과 공급방식의 다원화로 대규모 발전중심에서 수요지에 근접한 분산형 전원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분산에너지 특별법 시행은 앞으로 우리 에너지산업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에너지시스템의 분산화와 다원화라는 시대적 흐름과 더불어 우리도 미국, 유럽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분권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분산법 시행으로 예상되는 변화를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 전력공급 및 거래방식의 변화다. 지금과 같은 대규모 발전소와 전력공급망을 통한 판매독점자와 별개로 특화지역내 직거래 및 발전 겸업 사업자가 출현할 수 있다. 아울러 지역별로 분산형 전원설치 뿐만 아니라 수요창출을 위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이를 위해 지역간에 제조업체, 데이터센터, 수소에너지, 충전인프라 등 수요처 유치 경쟁이 촉발될 것이며, 이에 필요한 분산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도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둘째, 분산에너지의 다양한 편익이 반영된 지역 차등요금제 도입의 계기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전력시장은 대규모·원격지 발전단지로 인해 발생하는 송전설비 건설 및 운영과 손실로 인한 추가적인 비용이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분산전원으로 유발되는 편익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분산전원의 가치를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분산전원이 확대되면 발전설비의 집중과 원거리 전력융통으로 인해 발생하는 송전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연료전지, 집단에너지, 자가발전 등 수요지 근접 분산전원이 늘어나게될 것이며, 이로 인한 송배전설비 회피편익만 kWh당 15~25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분산편익이 반영된다면 지역별로 공급비용의 격차가 확연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또 분산전원은 전력시스템 운영과 품질유지에 필요한 새로운 전력품질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분산전원의 입지에 따른 송배전, 환경, 전력품질에 기반을 둔 지역차등요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직판허용과 설치의무화에 따른 분산에너지 시장 확대다. 전력 직거래 허용으로 발전-판매간 다양한 유형의 거래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RE100 이행을 위한 PPA(전력거래계약) 거래가 활성화될 전망이다. 분산에너지 설치의무화가 시행되면, 전기 다소비자의 자가용 분산전원도 크게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에너지산업이 지역개발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 분산에너지 기반의 지역내 전력공급사업자도 출현할 수 있다. 이렇게되면 현재의 중앙집중형 공급방식인 전력산업에서 지역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다. 앞으로 에너지산업은 신기술 확산과 함께 에너지간 융합이 활성화될 것이다. 이런 신기술 도입과 확산은 분산에너지의 투자, 설치, 운영, 거래와 수반되는 다양한 비지니즈로 이어지게 된다. 특히 전력중개사업(VPP), 수소연료전지, 효율향상, 섹터커플링 등 신사업의 사업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분산에너지 특별법의 하위규정에서 사업추진에 따른 장애요인의 과감한 제거가 선행돼야 한다. 아울러 분산에너지 가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정당하게 보상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방안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기자의 눈] 이복현의 이중잣대… "도이치는 정치, 라임은 원칙"

[에너지경제신문 강현창 기자] 증권가가 술렁이고 있다. 종결된 줄 알았던 라임펀드 사태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와 수사가 다시 이뤄지면서부터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미래에셋증권을 타깃으로 라임자산운용이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에 빠지자 다선 국회의원 등 특정인에게 특혜성 환매를 진행한 의혹을 제기하며 검사에 착수했다.곧바로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는 금감원이 정조준한 미래에셋증권뿐만 아니라 NH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등까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증권가로서는 피로감이 심하다는 반응이다. 라임 사태는 개별 사건으로는 모두 일단락된 사건이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전방위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이에 따라 전액배상까지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금융당국 징계에 이어 검찰에 형사고발도 당했다. 그 여파로 일부 증권사 CEO는 연임이나 새로운 구직도 어려워진 상황이다. 재조사의 배경은 라임펀드의 부실 가능성을 알고 난 뒤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인 환매를 특정인에게만 권유한 정황이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특정인에게만 환매기회를 제공한 것은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액배상까지 이뤄진 상황에서 특혜성 환매에 따른 ‘피해자’는 없다.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라임사태 재조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검찰 출신 이복현 금감원장에 대한 증권가의 불만이 높다. 특히 이 원장은 과거 검찰조직에 사표를 낸 배경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 너무 정치적으로 흘러간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답한 바 있다. 이에 최근 진행하는 라임사태에 대한 재조사를 두고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이 원장은 지난 2월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대해 "(수사가) 정말 공정하지 않다"며 "당시 검찰이 간단한 주가조작 사건을 너무 정치적으로 취급했다"고 말했다. 이어 "(도이치모터스에 대한) 주가 조작 건,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조사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결과는 어떤가. 최근 도이치모터스에 대한 1심 재판부는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을 비롯한 주가조작 일당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 김건희 여사 계좌가 주가 조작에 활용됐다고 인정했다. 이어 지난 4일 다시 정무위에 출석한 이 원장은 "(라임사태 재조사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원칙에 따라 조사한 것"이라고 말했다.명백한 이중잣대다. 라임 사태에 대한 재조사로 증권가를 뒤집어 놓을 각오라면 도이치모터스에 대한 재조사, 아니 첫 조사는 왜 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다.

[EE칼럼] 에너지 중심 시대,국회엔 에너지 전문가가 없다

인류문명 발전의 고비마다 에너지전환이 있었다. 최초의 인류는 불의 이용과 함께 문명의 첫발을 내디뎠다. 나무를 태운 불로 추운 밤을 견딜 수 있었고,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소화에 필요한 체내 에너지를 줄여 두뇌로 돌릴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문명 발전의 계기가 됐다는 가설도 있다. 인간의 도구 사용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철기시대는 금속을 녹일 정도의 고온을 낼 수 있는 목탄을 사용하면서 시작됐고, 18세기 산업혁명의 불쏘시개는 석탄이었다. 그 뒤로 2차, 3차 산업혁명은 석유의 발견, 전기의 발명과 함께 가능했다.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에너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에너지전환은 과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동기가 다르다. 과거 에너지전환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발견이나 전기의 발명과 같은 공급 측면의 혁신이 동기가 됐다. 이에 비해 지금의 에너지전환은 인류 최대 위협요인인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무탄소 에너지 중심의 에너지믹스를 구성해야 하는 수요 측면의 제약이 동기다. 둘째, 과정이 다르다. 과거의 전환은 신에너지가 기존의 에너지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초기부터 시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었다. 석유는 석탄에 비해 저장, 운반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전기는 깨끗하고 사용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조명, 모터 등 응용범위가 넓다. 석유는 석탄을, 전기는 석유와 석탄을 빠르게 대체하며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에 비해 이번 에너지전환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시급성으로 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저장,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과 같이 아직 기술적·경제적으로 미성숙한 신기술을 동원해야 하는 것으로, 시장이 아닌 정부가 인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셋째, 경로가 다르다. 과거 에너지전환은 기존의 에너지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화석에너지의 구성을 점진적으로 바꾸는 경로의존적 전환이어서 석탄 중심에서 석유, 가스 중심으로 변경돼도 공통분모는 여전히 화석에너지였다. 하지만 이번 에너지전환은 기존 화석에너지 시스템을 단기간에 재생에너지, 원전과 같은 무탄소 에너지 중심으로 바꾸는 경로파괴적 전환이다. 정리하면, 이번 에너지전환은 정부 주도로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믹스를 단시간에 만들어내야 하는 특성을 갖는다.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기후변화 방지 목표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정당화돼야 하고, 정부 주도 에너지전환은 법률과 제도로 구체화된다. 정치와 입법의 중심인 국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이유다. 에너지전환 관련 입법 활동에는 폭 넓은 전문성이 요구된다. 에너지는 경제의 혈액에 비유될 정도로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광범위하다. 게다가 에너지의 93%를 수입에 의존하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정치, 무역질서도 중요 고려 사항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제정세를 감안하고 경제효율이 높은 정책이라도 환경과 기술적 제약을 넘지 못하면 공염불이다. 따라서 경제와 국제정치 뿐만 아니라 환경을 비롯한 에너지기술에 대한 전문성도 함께 요구된다. 그런데 국회의원 가운데 환경운동가는 있어도 에너지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 현실과 기술 수준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이 여과 없이 수립된 배경이다.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은 인류 공동의 과제로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의욕만 앞세워 무작정 밀어붙이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데이터와 과학에 근거한 주도면밀한 입법과 제도 설계를 통해 체계적으로 성취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법의 최전선에 있는 국회부터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회복세 탄 주택시장,낙관하긴 이르다

올해 초 정부가 부동산 관련 여러 규제를 풀면서 주택거래가 꾸준히 늘어나고, 미분양도 증가세가 꺾이는 주택시장이 반등세로 돌아선 모습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주간집값 동향을 보면 서울에 이어 최근 들어서는 지방도 하락세에서 벗어났다. 서울·수도권 청약시장은 고분양가 논란 속에서도 수십대 1의 높은 경쟁률로 마감되고, 경매시장도 낙찰률과 낙찰가율이 동반 상승세다. 이처럼 주택시장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시장에서는 반등에 성공한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인지, 아니면 다시 꺾일 것인 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미국이 한 차례 더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금융권의 의견을 반영해 금리인상으로 인한 불확실성은 상당부분 해소된 데다 상반기 부동산시장을 뒤흔들었던 역전세와 깡통전세 문제도 최근 전셋값 회복으로 큰 고비는 넘겼다는 분위기인 만큼 집값이 다시 꺾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오히려 입주물량 감소와 매수 심리회복에 따라 상승흐름이 더 이어질 것이라는 견해다. 다른 한 켠에서는 미국의 금리인상 불확실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전반적인 경기 상황이 부진한 데다 전세시장도 여전히 약세인 상황에서,무엇보다 2020∼2021년 집값 급등기의 버블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기술적 반등은 지속되기 어렵다고 내다본다. 필자는 장기적으로 집값이 우상향 한다는 견해에는 공감한다. 다만 과거 사례에서 주택시장 위기 이후 3∼4년의 조정기를 거친 점에 비춰볼 때 현재의 집값 상승세가 바로 전고점을 넘어 대세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는 견해는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주택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는 금리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집값은 떨어지고, 반대로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집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매수세가 몰리면서 집값은 오르게 된다. 이 같은 ‘금리 장세’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이어졌다. 지난해 사상 초유의 고금리 행진으로 집값이 급락한 뒤 올해는 금리가 잇따라 동결되면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준금리 동결은 내년 4월 총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급격한 변화는 표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을 원한다. 가뜩이나 경기마저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더라고 국제정세를 감안할 때 금리의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상황에 따라 우리 의지와는 무관하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과 중국의 경제 변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중국의 2위 부동산 개발업체인 헝다는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1위인 비구이위안은 달러 채권 이자를 갚지 못해 디폴트 위기에 직면했다. 부동산발 위기는 중국 경제 전반으로 옮겨 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내수 경기침체,수출감소,청년 실업률 증가로 이어지며 총체적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 미국 역시 긴축 통화정책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모기지 금리가 21년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미국의 주택시장 둔화는 모기지 금융기관들에게 타격을 주면서 고용감소, 경제성장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의 금리동결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빅2’를 중심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상존하며 환율과 금리의 변동성은 여전히 커질 수 있다. 정부도 최근 집값 안정을 시사했다. 따라서 단순히 현재의 국내 상황만을 고려한 섣부른 부동산 투자는 금물이다. 금리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의 부동산 투자는 자금여력이 충분한 실수요 위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현재의 집값 상승이 계속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영혼까지 끌어들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

[기자의 눈] 견본주택 내부 촬영 허용해야

"견본주택에서 내부 사진촬영은 불가능합니다. 성숙한 관람문화를 위해 협조 부탁드립니다." 기자가 견본주택을 취재할 때 휴대 전화를 만지작거리면 자주 듣는 말이다. 가끔은 프레스 카드를 걸고 있어도 사진 촬영에 제재를 받기도 한다. 견본주택 내부를 방문객들이 왜 눈으로만 담아야 하는지 이유를 종종 물어보면 견본주택 설치·전시·운영은 기업 고유의 경영 및 영업상 비밀(노하우)에 해당하거나 관람객이 악의적으로 편집한 사진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될 경우에는 왜곡된 이미지가 전달될 수 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울러 사이버 견본주택을 운영하고 있고 방문객들이 사진을 찍어 가면 견본주택 집객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대답도 들어봤다. 모두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들이다. 소비자들은 건설사들이 견본주택 내부 촬영을 금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기자가 만난 많은 관람객이 "집을 사는데 수억원을 들이는데 견본주택 사진을 못 찍게 하면 어떻게 구조와 자재 등을 확인하고 따져보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 아파트·오피스텔 관련 주요 분쟁은 견본주택과 실제 시공이 달라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품질이 낮고 가격이 싼 마감재를 사용했거나, 색상이 다르게 시공, 콘센트 설치 유무, 문턱·식탁 위치가 상이한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무엇보다도 민원이나 소송 등을 하려면 그에 대한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사진 촬영을 금지하면 결국 소비자가 그에 대한 입증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 고스란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유경준 의원 등 여당 의원 14명은 지난 5월 ‘주택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률안의 핵심은 견본주택 내부 촬영을 허용하는 조항(제60조제4항)을 신설하는 것이다. 우리 주택시장은 견본주택만 보고 계약을 해야 하는 선분양 관행이 정착돼 있다는 점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강하다. 이 때문에 소비자 보호를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한데 견본주택 내 사진촬영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기능할 것으로 보인다.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당연히 평생 내가 거주 할 수 있는 집은 더욱 그렇다. 유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이 속도를 내 견본주택 안에서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zoo1004@ekn.kr62496_57969_2819

[이슈&인사이트]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는 시대

최근 유럽연합(EU)과 그 회원국을 중심으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지구에 나타나는 급격한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위기에 대응하는 환경규제의 강화로 기존 산업 구조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담을 사회에서 분담하고 정책으로 구체화하자는 의미다. ‘공정전환’이라고 부르기도 했던 이 개념은, 원래 1970년대 노동운동 과정에서 사용됐다. 그런데 사회 변화에 따라서 이 용어는 점차 기후와 환경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활용되기 시작했고 유엔환경계획과 기후변화협약 등 기후와 환경에 관한 국제사회의 공식 문서에서도 반영됐다. 지금은 공정, 평등, 민주, 다양성 등 이전보다 더 넓은 사회적 가치들을 포함하고 있고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포용과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한다는 의미로 확장됐다. EU가 추진하는 정의로운 전환 정책은 여러 실천 방향이 있다. 그중에서 ‘유럽 그린딜 투자 계획’(European Green Deal Investment Plan)은 10년 동안 1조 유로(약 1425조원) 이상의 자금을 투입해 ‘친환경의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경제’로 전환하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구현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EU는 ‘정의로운 전환 기금’(Just Transition Fund)을 조성해 유럽 경제의 전환에 큰 영향을 받는 지역에 우선 175억유로를 투자할 예정이며, 전환 과정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의 근로자와 주민을 지원하기 위해 2027년까지 1000억유로 이상을 투자할 예정이라고 한다. EU 회원국인 스웨덴은 금속, 광물, 시멘트, 화학물질을 생산하고 가공하는 탄소 집약적인 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경제의 정의로운 전환을 달성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은 이 같은 산업활동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제거하고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청정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스웨덴은 순환 경제 그리고 수소 등 원자재에 관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스웨덴의 정의로운 전환 기금에서 약 94%가 경제 전략에 투입되고 있다. 이 자금의 일부를 금속 산업 인력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거나, 청소년들을 해당 지역으로 유치하면서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스마트 에너지 시스템(Smart Energy System) 개발 등에 투자하고자 한다. 한국 정부도 2020년 수립한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에서 ‘탄소중립 사회로의 공정전환’을 정책 방향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정책에 반영했다. 이어 2021년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생성장기본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피해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이라고 정의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47조부터 제53조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안전망 마련,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 정의로운 전환 지원센터의 설립, 지역 현황조사 등 정의로운 전환을 구현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과 국제사회는 정의로운 전환 개념에 따라 경제와 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환경과 인권, 지속가능성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 이러한 경제개념의 전환은, 무역이나 국제투자 등 국제경제 무대에서도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2010년에 체결된 한-EU FTA 제13장은 무역과 지속가능성에 관한 조항들을 묶었고, 이 내용들은 결국 경제의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이후 EU가 아시아 국가들과 체결한 FTA에서도 유사한 내용들이 꾸준히 등장한다. 한-EU FTA가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교본이 된 셈이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은 개도국에게 가혹하고 선진국이 자국 시장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친화적이지 못한 산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개도국에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반드시 정의롭다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무역과 국제경제의 현실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도 국제경제 무대에서 정의로운 전환이 가지는 복잡한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개념이 현재 무엇이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하든, 한국 경제는 올바르게 적응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EU연구소장

[EE칼럼] 유류세, 전액 에너지 분야에 투자해야

정부가 휘발유, 경유 등 국내에서 유통되는 수송용 석유제품에 붙는 유류세, 즉 교통에너지환경세 인하가 오는 10월로 종료되는 것을 감안해 내년도 세입에 그 상승분을 반영했다. 그동안 고유가로 물가에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해 휘발유, 경유, LPG 등에 적용되는 유류세율을 인하해 왔는데, 세율이 원래 수준으로 회복되면 내년도 교통에너지환경세 징수액이 올해보다 4조원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정부의 예측이다. 정부는 내년 국세 수입 예산안에서 대표적인 세금인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수입을 올해보다 37.5% 증가한 15조3258억원으로 편성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는 특히 휘발유와 경유 등 두 가지 석유제품 사용때 부과되는데 이와 연동되는 교육세, 지방주행세, 부가가치세 상승분까지 감안하면 소비자 부담액은 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1월 국제원유가격이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서며 강세 기조를 유지하자 정부는 11월 12일 유류세에 탄력세율을 적용해 20%를 한시적으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오히려 2022년 초에 100달러는 넘어서자 정부는 유류세율 인하 폭을 법정 최대치인 37%로 확대할 수 밖에 없었다. 올해 들어 경유, LPG 부탄 세율은 기존대로 유지하되 휘발유 세율 인하 폭을 25%로 낮춰 4월까지 적용했고, 8월과 10월로 두 차례 추가 연장을 적용하는 중이다. 이 한시적인 인하가 2년 만에 종료되는 것이다. 관련 법에 따르면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교통에너지환경세는 리터당 각각 475원, 340원의 기본세율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여기에 연동된 교육세 15%, 지방주행세 26%, 부가가치세 10% 등이 더해지는 구조다. 한편 LPG는 개별소비세를 적용받으며 kg당 252원의 기본세율 그리고 개별소비세의 15%인 교육세, 그리고 부가가치세 10%가 추가된다. 이에 따라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개별소비세율을 낮추면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등도 동반 하락하고, 반대로 올리면 동반해 올라가는 구조로 설계돼 있는 데 이 세율은 탄력적으로 운용이 가능하다. 휘발유와 경유에 적용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는 COVID-19 기간에 차량 사용이 감소하며 소비가 크게 줄었던 2020년에도 13조2000억원이 걷혔는데 2022년에는 11조1164억원으로 더 줄었다. 세율 인하가 가지고 오는 효과가 상당함을 보여준다. 올해 역시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가 2024년에는 15조 3258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한다. 지난 2년 동안 매년 거의 4조원이나 세금을 깎아준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더 걷힌다고 해도 에너지 분야에는 그리 득이 될 것이 없어보인다. 교통에너지환경세의 대부분이 다른 부처와 다른 분야로 돌아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 원상 회복으로 이득을 보는 분야는 교육, 환경, 교통, 재정 부문이며 에너지 분야는 극히 일부분만 활용이 가능하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관련 공기업들은 수십조, 수백조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도 국내 소비자가격을 낮추는데 일조해왔다. 에너지 분야 공기업의 부채 증가 속도는 가계부채 증가 속도의 10여에 달하며, 이제 적자상태가 아닌 에너지공기업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럼에도 해당 추가 세원을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 해소 등 에너지분야에 사용할 것이라는 발표는 찾아보기 힘들다. 에너지 담당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예산 규모를 올해 대비 1.3% 늘어난 11조2214억원으로 편성했다. 이 중 에너지 분야는 올해 보다 10.3% 늘어난 4조7969억원이다. 에너지 분야의 정부지출 규모가 딱 교통에너지환경세 추가분 만큼이다. 산적해 있는 부채 문제에 에너지의 안정적인 확보와 새로운 전력인프라 건설, 거기에 기후변화대책까지 시행하려면 이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교통에너지환경세 추가분 4조원을 모두 에너지 분야에 쏟아부어도 모자랄 것이다. 에너지환경세 인상분을 모두 에너지 분야에 배정하는 특단의 조처를 기대하는 건 과연 억지일까? 하긴 아직 세율 인하 종료를 확정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제유가가 여전히 80달러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려올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게 전문기관의 전망이다.허은녕 서울대학교 교수/공학전문대학원 부원장/에너지위원회 위원

[EE칼럼]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관전 포인트는 신규원전

정부는 지난 7월 전력정책심의회를 열어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추진방향’을 논의하며 제11차 전기본 수립에 착수했다. 전기본이 2년 주기로 수립되는 점을 고려하면 6개월 정도 앞당긴 셈이다. 조기착수 배경으로 정부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첨단산업 신규투자 확대, 데이터센터 증설, 산업과 생활의 전기화 확산, 4월 발표된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의 발전부문 온실가스 배출량 목표 강화 등 급격한 전력 수급여건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기본에 신규원전 반영 등 윤석열정부의 에너지정책 의지를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필자는 지난해 초 에너지경제신문에 기고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관전 체크 리스트’ 칼럼에서 전기본의 관심 포인트로 실무소위 위원들의 성향, 수요예측 결과,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송전망 건설계획, 탈원전 폐기 후 원자력의 반영 정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계통안정성 확보 방안과 비용 등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10차 전기본 수립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위원들은 친재생에너지 인사들로 채워졌고, 전력수요는 거의 늘어나지 않는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당초 반영키로 했던 산업·수송·건물 등 각 분야의 전기화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데이터센터 수요 등은 추정치의 일부만 반영돼 ‘2030년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국가온실가스감축(NDC) 목표 이행에 대한 의지를 의심하게 했다.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원자력 비중이 확대됐고 재생에너지 목표 비중 달성 시기는 미뤄졌다. 원자력은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와 11기 원전의 계속운전이 반영됐다. 이를 통해 2036년 원전 발전비중이 34.6%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재생에너지는 NDC 상향 안에 비해 축소돼 2036년에야 비중을 30%까지 늘리는 것으로 조정됐다. 정부로서는 정책변화에 부응하기 위한 고심의 결과라고 후한 평가를 기대했겠지만 친 원전계의 ‘신규원전 언급 없음’ 과 친 재생에너지계의 ‘재생에너지 축소’라는 양측 모두의 비판에 직면했다. 그렇다면 11차 전기본은 10차와 어떻게 달라질까. 우선 소위 위원이 대폭 바뀐 것 부터가 가장 큰 변화다. 젊고 참신한 전문가들로 대거 교체됐다. 새 위원들의 성향 파악은 어렵지만 대폭 교체 그 자체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전기본이 수립될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정부가 내세운 11차 전기본 수립의 조기착수 이유로 전력수요 급증을 꼽은 만큼 전력수요 예측치가 얼마나 늘어날 지도 관심사다. 전력수요 예측은 10차 전기본 때와 마찬가지로 기존 예측모형을 적용하고 ‘전력화’ 수요는 다른 기관에서 다른 방법으로 추정한 후 합산하는 방식이다. 주목할 점은 전력화 수요를 어느 정도로 보는 가다. 무엇보다 11차 전기본의 최대 관심사는 신규원전의 규모다. 신한울 4호기가 2033년에 준공되기 때문에 반영 대상기간은 5년(2034∼2038년)에 불과하다. 물론 신규원전 수를 비롯한 전체 원전용량과 재생에너지 용량, 그리고 각 전원의 발전구성비 등은 당연히 수요예측 결과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 10차의 전력수요 증가율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신규원전이 건설되지 않아도 2038년의 원전 발전비중은 34% 수준이 된다. 하지만 전력수요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신규원전이 반영되지 않는다면 원전 발전비중은 20% 대로 추락하게 된다. 11차 전기본에 신규 원전이 반영되더라고 과제는 여전히 남는다. 최근 일부 지자체에서 신규원전 유치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반대여론이 여전하고, 공사기간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이다. 원전건설 기간은 예전의 2배로 늘어 실제 공사 기간만 10여년이 소요된다. 부지 등 사전준비 기간을 포함하면 적어도 15년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신규 원전의 기간 내 준공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원전 준공 후에도 송전망과 양수, BESS 등 에너지저장장치의 대량 확보가 없다면 원활한 가동은 불가능하다. 최근 양수발전 유치 희망지역이 늘어나고 있지만 전력 유통의 전제인 송전망 확충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11차 전기본의 관전 포인트는 10차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10차 전기본이 전 정부의 영향이 상당히 남아 있다는 평가이고 현 정부 에너지정책이 반영되는 전기본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시각도 있다. 어떤 그림이 그려질 지 자못 궁금하다.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이슈&인사이트] 글로벌 인재의 조건

오래전 글로벌 기업에 있는 지인에게 인재 선발기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예상한 답은 학벌, 경력, 자격증 등의 스펙이었지만 뜻밖에도 인테그리티(integrity)를 제일로 삼는다고 했다. 인테그리티를 우리말로 설명해달라고 했더니 우리말로는 딱히 설명하기 어렵다며 장황하게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성실성, 진실성 또는 청렴결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청렴은 옛 선비들의 타협하지 않고 대쪽 같은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현대와 맞지 않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인테그리티가 ‘흠이 없는 온전한 도덕성을 지향한다’는 의미인 만큼 그나마 가장 가까운 뜻은 청렴성이 아닐까 싶다. 청렴성은 정직하고 윤리적이며 도덕적 원칙이 확고한 품성을 의미한다. 청렴성을 갖춘 사람이 합류하면 그 조직은 높은 수준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갖추게 되며, 이는 글로벌 회사의 평판과 성공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청렴성이 중요한 이유와 청렴성이 글로벌 기업의 채용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자. 먼저, 글로벌 기업은 다양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개인들과 협업하며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직원의 청렴성은 팀원, 고객, 파트너, 이해관계자 간의 신뢰를 증진하며, 이러한 신뢰는 특히 국경을 넘어 강력한 관계를 구축하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기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된다. 둘째, 청렴성은 윤리적 행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윤리적 의사결정을 우선시하는 인재를 채용하면 글로벌 기업이 여러 국가의 법률 및 규제 요건을 준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법적 문제, 평판 손상, 잠재적인 재정적 처벌의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셋째, 청렴한 인재를 채용하면 글로벌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향상된다. 청렴성을 중시하는 직원은 회사, 이해관계자 및 회사가 사업을 영위하는 지역사회에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 지속 가능한 관행에 대한 이러한 헌신은 회사의 성공과 장수에 기여한다. 글로벌 기업은 국제법, 문화적 규범, 비즈니스 관행과 관련된 고유한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청렴한 직원은 사기 행위, 뇌물 수수 또는 부패에 연루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에 대한 회사의 노출을 줄일 수 있다. 청렴성은 조직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윤리적 가치관이 확고한 인재를 채용하면 정직, 개방성, 존중의 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다시 같은 생각을 가진 인재를 끌어들여 긍정적인 피드백 루프를 만들어 기업의 청렴성에 대한 헌신을 강화한다. 글로벌 기업의 평판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청렴한 직원을 채용하면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에 기여한다. 고객과 고객은 윤리적 관행으로 잘 알려진 회사를 신뢰하고 참여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고객 충성도와 시장 점유율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위기 상황에서 청렴한 직원을 보유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정직하고 책임감 있는 직원의 행동은 회사가 투명성, 책임감, 진정성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기업에서 임직원의 청렴성이 문제가 된 경우를 종종 접하게된다. 대표적으로 베어링스 은행 파산사건을 들 수 있다. 베어링스 은행은 233년의 역사를 지닌 영국은행이었다. 그러나 닉 리슨(Nick Leeson)이라는 28살의 젊은 트레이더가 싱가포르에서의 대형 선물 투자 실패로 파산하게 된다. 닉 리슨은 초반에는 투자거래를 통해 엄청난 수익을 냈다. 하지만 이후 손실이 난 거래는 다른 비밀계좌에 집어넣어 항상 높은 수익률을 얻는 것처럼 조작했다. 결국 1993년 말 2300만달러, 1994년 말에는 2억800만달러의 손실이 발생하자 닉 리슨은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대규모 자금을 일본 증시에 투자했고, 다음 날 새벽, 일본 고베 대지진으로 8억2700만 달러의 손실을 보며 베어링스 은행은 파산했다.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에서 청렴성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한 직원의 잘못으로 인해 유서 깊은 회사가 파산에 이를 수 있기에 그만큼 청렴성은 채용과정과 그 후의 과정에서도 우선시돼야 할 필수 덕목이다. 청렴성을 채용과정에서 중시한다면 정직하고 책임감 있고 존중하는 태도로 행동하는 조직을 구축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장기적인 성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청렴성은 글로벌 기업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에도 절실히 요구되는 덕목이다. 청렴성은 기업, 사회, 나아가 국가의 국격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만큼 우리나라 사회 전 분야에서 청렴성이 우선시 되는 문화가 확산되기를 기대한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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