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디지털’ 선도하는 에스토니아 vs. 한국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4.02 09:28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김봉철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1990년대 들어 우루과이라운드(UR)와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으로 국제사회의 경제와 산업 분야는 밀접하게 연결됐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만들고 분업식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한국도 이러한 도전의 중심에서 더 이상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생산방식은 적합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돋보이던 생산시설은 저렴한 노동력과 적은 규제를 찾아 다른 국가로 이전했고 결국 금융위기로 최악의 상황을 맞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비슷한 시기에 구소련의 붕괴로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곧바로 EU와 NATO에 가입하며 탈러시아화와 친유럽화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노력이 이 작은 국가의 독립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아시아의 한국과 유럽의 에스토니아가 선택한 방법은 과감하게 경제와 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양국은 이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디지털 경제'다. 양국은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를 빠르게 준비했고, 그것이 소프트웨어와 컨텐츠 중심의 산업성장의 바탕이 됐다. 이웃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를 가진 아시아와 유럽의 이 두 국가는, 국내시장의 한계를 파악하고 국제시장을 향한 디지털 산업 지원 정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은 1999년 IMF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융자금을 빠르게 상환하고 국민소득을 2만 달러 이상으로 성장시켰다. 에스토니아도 비슷한 시기에 6000달러에서 10년 만에 2만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에스토니아는 EU 회원국으로서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 스스로 혁신적이며 적극적인 디지털화 노력을 수행했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국가화 프로젝트는 전자주민증과 전자영주권 제도, 전자투표 시스템, 빅데이터의 공유화 등으로 구현됐다. 에스토니아가 유럽 내 최고 수준의 1인당 창업 수를 자랑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디지털화를 실행하고 관련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창업기업의 성장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금지원과 교육, 컨설팅 지원 등 연계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강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으로 해외자금으로 에스토니아에서 창업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에스토니아 출신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2003년 인터넷 통한 무료 음성통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Skype라는 기업을 설립했는 데 이 서비스의 2010년 가입자 수가 6억6300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기업 모델은 에스토니아 경제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의 '디지털화'는 2007년에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가 전체의 마비를 경험한 에스토니아 정부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를 양성하고 교육을 강화하며, 기관 사이의 사이버 보안에 관한 협력을 추진했다. 한편으로 에스토니아는 NATO의 사이버 방어 훈련과 안보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NATO의 사이버안보센터(CCDCOE)를 유치하기도 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디지털 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문화산업의 '디지털 경제의 성공'을 거두는 동안, 에스토니아도 '디지털 유럽'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며, 정부와 사회의 관련 노력이 경제 활성화와 사회적 발전으로 이어지며 유럽 내에서도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EU가 회원국의 디지털 정책을 강화하며 유럽의 디지털화를 꿈꾸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스토니아는 여러 면에서 EU 디지털 정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에스토니아의 이러한 노력이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 침략에 대한 불안감을 스스로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이 한국과는 닮은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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