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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고성 속에 문 연 22대 국회, 견제구는 적당히 던져라

야구 경기 중 투수가 마운드에서 견제구를 던지는 건 상대 주자의 도루 시도를 막음과 동시에 타자의 리듬을 깨기 위함이다. 견제구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KIA 타이거즈의 견제 응원이 서남 방언을 활용한 “아야! 날 새것다(얘야! 날 새겠다)"일까. 21대 국회는 문을 닫는 마지막 날까지 지난한 정쟁으로 밤을 지새웠다. 협치를 통해 민생을 챙기겠다던 첫 다짐과는 달리 서로를 향한 비방과 욕설로 얼룩졌다. 명분은 '여야 견제를 통한 정권 감시'였지만, 실상은 '국K-1'을 방불케 하는 난투극이나 다름 없다는 게 중론이다. 여야의 극한 대치로 산업계 주요 현안과 진흥 법안은 본회의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이에 따라 K칩스법, 망 무임승차 방지법,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산업기술보호법, 해외 게임사의 국내 대리인 지정제도 등이 줄줄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했다. 특히 여야 간 입장차가 거의 없었던 인공지능(AI) 기본법까지 자동 폐기되면서 산업계는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해당 법안이 미래 먹거리인 AI 산업 육성 근거로 작용, 국가 경쟁력 확보로 이어지는 '핵심 키'라는 점에서다. 업계에서는 향후 해외 국가들과 기술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지적이 적잖다. 국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법안마저 내팽개쳐졌다. 양육 의무를 다하지 못한 친부모가 자녀의 유산을 상속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체액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성폭력특례법 일부 개정안도 여야 모두 처리에 합의했지만 폐기됐다. 신용카드 사용 금액 증가분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 확대 등도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21대 국회는 '낙제점'에 가까운 입법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국회의안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4년간 발의된 법안 2만5800여건 중 법률로 반영돼 처리된 법안은 9479건에 그치면서 통과율 35.3%을 기록했다. '식물 국회'라 평가받았던 20대 국회의 37.3%에도 못 미치면서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게 됐다. 22대 국회에 입성한 이들은 폐기된 법안들을 소생시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지만, 양당의 갈등은 한층 더 첨예해질 전망이다. 당장 원구성 협상부터 여야는 법제사법위원회·운영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놓고 강하게 맞붙었다. 개원 첫날 국회 표정도 밝지 않았다. 여야는 폐기된 '채 상병 특검법'과 윤석열 대통령의 14번째 거부권 행사를 두고 날선 신경전을 벌이면서 극한 대립을 예고했다.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 간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가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타협과 상생은 실종된 채 견제만 지속된다면 정책 추진 동력은 상실될 수밖에 없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답답함이 길어지고 있다. 의미 없는 견제구로 입법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마!(이 놈아!·롯데 자이언츠의 견제 응원)"라는 엄포가 날아들 수 있음을 명심할 때다. 새 국회는 서로 합력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선을 이루는 '민의의 전당'이 돼야 한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이슈&인사이트]“잘못된 정보의 시대에 사립 탐정이 떠오르다”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정보가 전례 없이 대규모로 생산되고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사실 확인(fact-checking)의 필요성이다. ChatGPT와 같은 AI 기반 도구 등 첨단 기술의 등장으로 뉴스, SNS, 유투브를 포함한 콘텐츠의 제작과 확산이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그러나 콘텐츠 제작이 쉬워진 만큼 잘못된 정보도 확산되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오늘날 사회에서 사실 확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잘못된 정보는 개인적 피해에서 사회적 불안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잘못된 정보는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정치적 담론을 형성하며 심지어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포되는 정보의 진위를 확인할 수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출처를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졌다. 전통적으로 사실 확인의 책임은 뉴스 미디어 기관의 몫이었다. 한때 제4의 권력으로 비추어 질만큼 이들의 역할은 중요하였고 영향력도 그 만큼 컸다. 그러나 정보 흐름이 빨라지고 다양한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많은 미디어 매체가 정확성과 공정성을 유지하기는 커녕, 그 속도를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로 인해 기존 미디어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하락하면서 공백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다행히도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민간조사 업계의 활약이 눈에 뛴다. 사립 탐정이라고 불리우는 이 기관은 그 동안 셜록홈즈와 같은 개인 또는 소규모 조직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증거수집 활동 및 특이한 사실 검증 기술로 잘 알려져 왔다. 이들의 핵심 활동은 정보 조사(Information Investigation)이다. 이 과정에서 사실 확인이라는 중요한 활동을 수행하면서 왜곡된 정보로 일어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들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최근 몇 년 동안 민간조사 업체는 상당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연간 매출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대형 업체가 등장하고 국경을 뛰어넘어 보안 컨설팅, 리스크 관리, 컴플라이언스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코그니티브 마켓 리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민간조사 서비스 시장 규모는 2022년에 179억 달러에 달했으며 2023년부터 2030년까지 4.8%의 연평균 성장률(CAGR)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정보 환경의 복잡성 증가와 신뢰할 수 있는 사실 확인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 증가에 기인한다. 사립 탐정은 개인, 기업, 법인의 요구를 충족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립탐정은 과거에 사람을 쫒아 불륜 확인 및 감시와 같은 개인 서비스(시장의 25%)에서 벗어나 정보를 찾아 나서면서 기업 조직을 대상으로 직원 검증, 내부 감사, 기업스파이 방지, 시장진입 전략 등 다양한 서비스(35%)를 제공하고 있다.최근에는 법률 분야에서도 증거 수집 및 증인 인터뷰 등 법률 서비스(20%)를 제공하면서 법률시스템의 공정성을 높이고 진실을 밝혀 내는데 기여하고 있다. 또한 사립탐정은 정교한 조사기법을 통해 복잡한 금융거래를 분석하여 금융 사기와 사이버 범죄 조사와 같은 금융전문 서비스(20%)로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사립 탐정은 전문 지식과 첨단 기술, 그리고 진실 규명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복잡하고 미궁에 빠진 사건의 실체를 밝혀낸다. 그들은 의뢰인에게 사실에 근거한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잘못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데 기여한다. 요즘처럼 가짜 뉴스와 왜곡된 주장이 난무하는 환경에서 진실에 다가서려는 사립탐정의 노력은 더욱 빛을 발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객관적이고 검증된 사실은 우리가 접하는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고, 나아가 데이터에 기반한 투명하고 정의로운 정보사회(Information Soicity)를 건설하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김한성

[기자의 눈]‘중국산은 싸구려’ 인식부터 버려야 산다

한국인들의 머릿속엔 '중국산은 싸구려'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은 짝퉁과 불량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한국 제품을 그대로 베낀 상품을 판매하는 행태를 반복해왔다. 그러나 중국은 이제 싸구려를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여전히 테무, 알리 등으로 싸구려 제품들이 말도 안되는 가격에 유통되고 있지만 전기차와 배터리 등은 세계적인 반열에 오르고 있다. 세계 산업계가 중국산 '저가 공세'에 벌벌 떠는 것은 후진 제품을 싸게 팔아서가 아니라 좋은 제품을 싸게 팔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국의 기술력과 상품성이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중국산 제품을 싸구려로 생각하고 방심한다면 순식간에 시장을 중국에게 뺏길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위세가 특히 돋보이는 곳은 전기차와 배터리 시장이다. 미국 정부가 중국산 전기차 수입 관세를 100%로 올렸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산 전기차가 경쟁력이 있다는 의미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에서 전기차를 가장 많이 판매한 국가다. 물론 80% 이상이 내수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중국의 전기차·배터리 기업인 BYD는 지난해 300만대 이상의 전기차를 판매하며 미국의 테슬라보다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배터리 시장을 살펴봐도 글로벌 점유율 1위는 중국의 CATL이다. 한국의 LG에너지솔루션, 삼성 SDI 등이 분전하고 있지만 CATL의 아성을 넘기엔 아직 부족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에 대한 인지도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은 여전히 중국산을 깔보는 분위기가 남아있지만 유럽 국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자사 전기차 출시 행사에서 “왜 중국산 배터리를 채택했냐"고 물어보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제조사나 다른 국가의 기자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업계 순위도 높은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중국의 기술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산을 싸구려라고 생각하는 분위기는 중국산 저가 공세를 막을 수 있는 좋은 인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관점에만 해당된다. 기업은 중국산을 깔보고 무시하면 안된다. 그들의 공세를 위기로 인식하고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야 한다. 한국 소비자들의 무조건적인 중국산 배제도 한계가 있다. 좋은 품질에 저렴한 가격이 동반된다면 아무리 중국을 싫어하는 한국 소비자들이라도 움직이게 된다. 중국은 더 이상 싸구려, 짝퉁을 판매하는 국가가 아니다. 그들의 기술 발전을 항상 경계하고 그들을 뛰어넘을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야 한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이슈&인사이트] 물가가 오르면 공사비를 올려줘야 하는 걸까?

최근 KT와 쌍용건설 사이의 판교사옥에 관한 공사비 갈등이 발생했다. 쌍용건설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원자재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하였으므로 공사비 상승분 171억원을 지급하라는 입장이고, KT는 '물가변동 배제특약'을 근거로 공사비 상승분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간에서 진행되는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의 공사도급계약서나, 국가와 계약을 체결하여 진행하는 관급공사의 공사도급계약서를 유심히 보면, 소위 물가변동 배제특약이 있는 경우가 있다.물가변동 배제특약이란, 일정시기를 기준으로 그 이후에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조정을 요구할 수 없다는 규정을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다. 정비사업조합의 경우 공사비가 증액하게 되면, 그만큼 조합원들이 부담하여야 되는 분담금이 증가하게 되므로, 조합원들은 공사비 증액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분담금이 지나치게 증액되는 경우 조합원들은 정비사업을 진행하더라도분담금을 감당할 수 없어 현금청산자가 되거나, 정비사업 완료 후 분담금을 납부하지 못하여 강제경매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면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현행법상 유효할까? 서울고등법원은 2014년에 현대로템과 한국철도공사 사이의 전기기관차 공급계약에서 물가변동으로 인한 계약금액을 배제하는 조항을 둔 것에 대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법률 제19조는 강행규정이고, 물가변동 배제특약은 강행규정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의 동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물가상승분이 3년간 약 6.8%에 불과하고, 현대로템으로서는 물가상승분을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을 것인 점,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제도는 물가가 하락한 경우 감액될 수 있는 위험도 있고,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의해 감액될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유효하다고 판단하였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공공계약에서 “특별한 이유없이 계약금액 조정을 금지하는 특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유권해석을 내렸고, 국토교통부 역시 “상당한 이유가 없는 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하면서, 대법원의 판단과는 조금 다른 입장을 내세웠다. 앞서 제시한 대법원의 판단은 관급공사에 관한 것이어서 정비사업 등 민간공사에 그대로 적용할 수만은 없다. 민간공사에는 건설산업기본법이 적용되고,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 제1호에 의하면 계약체결 이후 경제상황의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의 변경을 상당한 이유없이 인정하지 아니하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에,그 조항은 무효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대금의 조정 자체를 금지하는 특약은 시공사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보인다. 반면, 시공사가 스스로 물가변동 배제특약에 동의한 후 그에 반하여 공사비 증액을 주장하는 것을 인정한다면, 조합원들은 예측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되는 부당한 결론에 이르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공사도급계약을 체결하는 경우일정한 기준일 이후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이 없다는 규정을 원칙으로 정하되, 일반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물가 상승(가령 계약 전 5년간 물가 상승 평균 수치를 초과)이 있는 경우는 증액을 허용하고, 증액의 한도는 예측이 가능한 범위를 초과한 금액(가령 현재 물가 상승분에서 5년간 물가 상승 평균 수치를 공제한 나머지 금액)으로 하는 규정을 두는 것이 적절하여 보인다. 그리고 기존의 물가변동 배제특약의 무효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도특약 자체를 전면적으로 무효로 하기보다는 통상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정도로 물가가 상승한 경우에까지 공사비의 증액을 배제하는 조항은 무효로 판단하되, 무효의 범위를 한정하여 공사비 증액의 한도를 예측이 가능한 물가 상승 범위를 초과한 금액으로 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사료된다 박지훈

[EE칼럼] 철강 산업의 저탄소화

철은 태양과 같은 항성의 핵융합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규소 원자 2개가 융합하여 니켈이 만들어지고, 이 니켈은 불안정하여 대부분 몇 달 안에 붕괴하여 철이 된다. 원소 중에서 철의 원자핵의 에너지가 가장 안정적이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초신성 폭발로 인해 만들어진다. 철은 지구의 핵을 구성하는 주요 원소이고, 알루미늄 다음으로 지각에 두 번째로 많은 원소이다. 해마다 지표면을 파고 폭파해서 퍼올리는 물질들의 순위를 살펴보면, 모래와 자갈이 430억 톤, 석유와 가스가 81억 톤, 석탄이 77억 톤, 철광석이 31억 톤이다. 채굴한 철(iron)은 대부분 강철(steel)로 가공한다. 철의 종류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탄소 함량이다. 철이라는 스펙트럼의 한 극단에는 선철(pig iron)이 있다. 쇳물을 거푸집에 붓는 모양이 어미의 젖을 먹고 있는 새끼 돼지들을 닮아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선철은 탄소 함량이 약 3~4퍼센트로, 부서지기 쉽다. 반대쪽 극단에는 연철이 있다. 연철은 극소량의 탄소를 함유한 매우 순수한 금속인데, 망치로 두드려서 펼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다. 인류 역사를 보면 독재자이든 민주적 지도자이든 모두가 강철에 집착한다. 강철이 물질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고, 거의 모든 제조 공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타국의 강철로 자국의 무기를 만드는 걸 선호하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트위터에 “강철이 없다면, 국가가 없다!"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마오쩌둥은 강철 생산을 언급하며 중국의 산업적 역량을 자랑했다. 2000년대 초반, 한 중국 기업이 독일 도르트문트에 있는 티센크루프의 제강소를 매입한 뒤 공장 시설을 분해하여 양쯔강 하류의 부지로 실어 날랐다. 이렇게 해서 사강그룹의 본거지인 상하이 북부에 다시 세운 공장은 세계 최대의 제철소가 되었다. 철강 산업은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2021년 생산액이 183.1조원으로 제조업 중 1위이다. 3,045개 사업체에 13만 9천명이 종사한다. 2022년에 중국(18%), 미국(14%), 일본(8.7%), 인도(6.8%), 베트남(6.3%) 등에 545억 달러를 수출했다. 철강 산업은 다른 주요 산업과는 달리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골고루 생산하고 있다. 수도권이 전국 생산액의 15.2%, 충청권 16.9%, 호남권 19.1%, 대경권 24.6%, 동남권 23.8%라는 숫자가 이를 보여준다.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산업이다. 선철 1톤을 얻으려면 철광석 1.4톤과 석탄 0.8톤이 필요하다. 석탄은 용광로를 가열하는 것과 동시에, 용광로 내부에서 매우 중요한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철광석은 산화철을 풍부하게 함유한 암석이다. 철광석을 금속으로 바꾸려면 산소와 철을 분리해야 한다. 용광로 속에서 철광석에서 분리된 산소와 석탄에서 나온 탄소가 결합하여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7~8퍼센트에 해당한다.우리나라 철강 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20년에 9,327만 톤으로, 국가 총배출량의 14.2%를 차지했다. 산업부문 배출량 2억 4,670만톤의 37.8%에 해당한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 1위와 7위 업체이다. 이들은 전기로와 수소환원제철 등의 기술을 사용하는 공정으로 전환하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강철은 비교적 재활용이 쉽다. 전통적 용광로가 아닌 전기로에 고철을 녹여 강철을 만드는 방식이다. 선진국에서는 강철에 대한 수요가 줄고 있는데, 한 사회가 사회기반시설을 충분히 보유하면 강철 수요가 포화점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고층 건물과 자동차가 새로운 철근이나 강철 플레이트로 재생되면서, 현재 미국 내 강철의 3분의 2 이상이 고철에서 탄생하고 있다. 21세기 후반에는 철광석보다 고철에서 더 많은 강철을 얻을 것이다. 재활용 강철을 생산하는 전기로가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에서 전력을 얻는다면 이것이 그린스틸이라고 할 수 있다. 수소환원제철은 석탄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이용해 직접환원철(DRI)을 만들고, 이를 전기로에서 녹여 쇳물을 생산한다. 철광석에 있는 산소와 수소가 만나면 이산화탄소 대신 물이 생긴다. 궁극적으로 탄소중립을 선도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그린스틸을 만들려면 엄청난 양의 수소가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그린수소를 만들 때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부터 시행되는데, 철강과 알루미늄, 비료 등 6개 제품을 유럽에 수출하려면 탄소 배출량을 보고해야 한다. 2050년까지 자사가 구매하는 철강제품 전부를 넷제로 철강으로 조달할 것을 선언하는 '스틸제로'와 같은 자발적 이니셔티브도 확산되고 있다. 볼보, 머스크, 오스테드, 지멘스 가메사 등 전 세계 36개 기업이 가입했다. 강철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세계를 유지하고, 한 국가의 안보와 경제를 위해서는 철강 산업의 저탄소화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철강 산업의 저탄소화를 위해 기업들의 기술개발 노력과 정부의 적절한 지원,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김정인

[기자의 눈] 관세청,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 고쳐매지 말라

지난 16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개최된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는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이 발표됐다. 정부는 △소비자 안전 확보 △소비자 피해 예방 및 구제 강화 △개인적 사용을 위한 해외 직구 금지 △해외 직구 통관 차단 강화 △유통소상공인과 제조업체의 가격 경쟁력 상실 문제 해결 △해외 직구 급증에 따른 관련 산업의 충격 완화 △중소 유통・소상공인의 새로운 사업 기회 창출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해외 직구를 막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전국 각지에서는 “무식한 정책에 화딱질이 난다", “공산 국가냐, 이민 가고싶다", “반중 정책 지지하니까 알리·테무·쉬인까지 금지하라는 것인 줄 아느냐" 등 비난 여론이 비등했다. IT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 성인들의 취미 생활에 종말을 고하게 됐다"는 반응이 나왔다. 이후 지난 19일,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발표 사흘만에 “국민들께 혼선을 끼쳐 죄송하다"며 “80개 품목에 대한 해외 직구를 일시에 차단하겠다는 뜻은 아니며, 그럴 수도 없고 KC 인증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 수렴을 거쳐 신중히 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인지한 윤석열 대통령은 “관계 부처들로부터 보고받지 못해 몰랐던 내용"이라면서도 해외 직구 대국민 '도게자'를 박았다. 이후 해외 직구를 막지 않겠다던 정부는 한편으로는 가이드 라인을 마련해 6월 중 시행하겠다는 '화전양면'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국무조정실은 해외 직구 태스크 포스(TF)의 회의록을 비공개한다는 방침이어서 밀실에서 졸속 행정을 벌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무 담당자들은 정부 관계 부처 합동 보도자료를 보고서야 직구 금지 정책이 추진된다는 소식을 접했고, 일부 부처에서는 해외 직구 전면 금지에 반대 의견을 제시해 얼마나 충분한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발표한 것인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와중에 지난 16일 13시, 눈치 없는 관세청은 조달청 전자 조달 시스템 '나라장터'에 '해외 직접구매 증가가 국내 산업 등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 방안' 입찰 공고를 개시해 27일 11시에 마감했다. 이는 유찰됐지만 28일 10시 재입찰이 시작됐고, 마감은 6월 3일 11시로 잡혀있다. 사업 금액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9000만원이다. 원래 입장을 고수하며 사실상 9000만원에 해외 직구 반대 논리를 개발해올 작업자들을 구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도 “(해당 용역은) 올해 1월 과제로 선정돼 입찰 공고된 것으로, 범정부 해외 직구 대책과는 전혀 무관하고 해당 발표에 따른 후속 조치라고 할 수 없다"며 “현 단계에서는 정책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향후 국민 여론과 전문가, 관련 업계와 심도있는 의견 수렴, 논의를 거쳐 최종 정책 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이는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며 '들어는 보겠다'고 농락하는 것과 다름 없다. 이미 대 정부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오해 살 일을 하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관세청은 무얼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正冠)', '오이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말라'는 오랜 격언이다. 관세청 당국자들은 잘 새겨듣기 바란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E칼럼] 조기 탈석탄, 함부로 할 일 아니다

총선 승리 후 기세가 오른 야당은 고준위 방폐장 특별법 통과의 전제조건으로 신규원전 포기를 내세우며 탈원전 군불을 지피고 있지만 정작 총선 공약에는 원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2035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 40% 확대와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중단만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반대 여론이 높은 탈원전에는 잠시 눈감고, 득표에 도움이 되는 친환경 이미지를 얻으려는 선거전략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탈원전을 포기한 적이 없는 야당은 선거 공약에 명시적으로 포함된 석탄발전 조기 퇴출, 재생에너지 확대 가속화와 더불어 탈원전을 에너지정책 패키지로 묶어 행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탈원전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원전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이 우세하고, 재생에너지 확대는 간헐성에 따른 출력제한과 경제성 등의 이유로 마냥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억울하게도 기후변화 주범으로 이미 악마화된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은 큰 저항 없이 함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은 탄소중립과 ESG 경영 조류에 올라타 조금은 급진적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탄소중립과 ESG 경영은 특정 기업이나 개인에 의해 자발적으로 추진되는 목표가 아니라, 지구적 차원에서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그것도 아주 최근에 설정된 목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 논의는 1992년 기후변화협약 체결 이후 지지부진하게 이어져 오던 중, 주요국들이 구체적인 행동 강령으로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6년 전인 2018년 IPCC 보고서 이후로 볼 수 있다. 사실, 탄소중립은 2018년 이전까지는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을 뿐,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용어였다. ESG 개념은 2006년 유엔이 제정한 '사회책임투자 원칙'에 반영되면서 조금씩 학계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본격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2020년 초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 CEO 래리 핑크의 연례 서신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ESG와 탄소중립의 명시적 결합은 래리 핑크가 2021년 연례 서한에서 전 세계 투자 기업에게 탄소중립 계획 발표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조기퇴출 대상으로 지목받고 있는 민간 석탄발전은, 2011년 순환정전을 겪은 직후 예비율이 3.8%에 불과할 정도로 빠듯해진 전기부족의 타개책으로, 2013년 수립된 제6차 전력수급계획을 통해 도입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민간 석탄발전사들이 사업 참여를 결정했던 당시에는 탄소중립과 ESG를 적극 고려하지 않았고 또 그럴 필요도 적었음은 당연하다. 정부조차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갖고 있었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구체화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탄소중립과 ESG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기업과 정부의 이해가 딱 맞아떨어진 결과가 민간 석탄발전사의 출현이다. 민간 석탄발전의 탄생 배경과 시점의 특성을 무시한 채, 갑자기 정책 기조를 바꿔 사업을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기업에 대한 퇴출 운운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실제로 헌법은 단지 공익적 필요만으로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으며, 법률에 의한 정당한 보상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을 적절한 보상 없이 무작정 밀어붙인다면 이는 헌법상 사유재산 침해로도 해석될 여지가 있다. 사유재산권의 보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버리지 않는 이상, 국가가 마지막까지 철저히 지켜야 가치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물론, 공익적 이유로 석탄발전의 조기 퇴출이 추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기 퇴출에 따른 손실에 대한 보상 대책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탈석탄을 먼저 추진한 독일과 네덜란드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은 법률에 근거하여 경매에 의한 재정지원 방식으로 직접 보상에 나선 반면, 네덜란드는 재정지원 없이 비석탄 연료로의 전환을 통해 사업자가 스스로 손실을 만회하는 간접 보상 방식을 택하였다. 대체적으로 독일은 순조로웠지만, 네덜란드는 신규 발전소를 중심으로 소송이 이어지는 등 혼란이 많았다는 평가다. 현재 우리나라가 취하는 방식은 연료전환을 유도하는 네덜란드 방식에 오히려 가까워 줄소송이 이어지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벌써 국내 민간석탄발전사의 소송이 시작되었다. 순조로운 탈석탄을 원하면, 정교한 재정지원 보상책 마련에 속히 나서야 한다. 박주헌

[이슈&인사이트] 퇴보하는 한국의 민주주의

올해에는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하여 걱정하게 만드는 조사결과가 나오고 있다. 2024년 2월 미국에서 권위있는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심각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센터는 2017년부터 매년 세계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생각하는지,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선호하는 정부 체제는 무엇인지 등을 조사해왔다. 2023년 2월부터 5월까지 24개 국가의 성인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체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불만족스럽다'라는 것이 드러났다. 한국을 포함하여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이 과반수(59%)를 차지했다. 2023년 조사 결과는 '현행 대의 민주주의 체제가 매우 좋다'라고 답한 유권자가 2017년에 비해 24개 국가 가운데 12국에서 감소한 것으로 알려준다. 그 가운데 한국은 2017년 19%의 응답자가 긍정적으로 답했으나 6년 만에 그 비율이 17%로 감소했다. 한국과 같이 영국(43%→31%), 독일(46%→37%), 인도(44%→36%), 일본(22%→14%), 이탈리아(29%→23%) 등 12개 국가에서 감소세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현행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영국, 독일, 인도, 이탈리아 등에 비하여 상당히 적다는 사실은 두드러진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는 '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생각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설문에 대하여 대체로 부정적인 응답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스페인(85%), 아르헨티나와 미국(83%), 헝가리(78%) 등에서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상당히 퍼져 있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한국(73%)과 일본(72%)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인되는데 스웨덴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부정적 응답이 더 일반적이었다. 퓨리서치센터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작동에 불만족이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하여 부정적이라면 그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추적한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강력한 독재 체제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는 것이다. '강력한 지도자가 의회·법원 등의 견제를 거치지 않고 결정하는 정부 체제를 선호한다'라고 답하면 곧 권위주의의 복귀를 의미하는데 이 비율이 한국에서 2017년에 23%로부터 2023년에는 35%로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24개 조사 국가 중 8개 국가에서 비슷한 추세가 확인되었다. 즉, 독일(6%→16%), 폴란드(15%→25%), 아르헨티나(17%→27%), 인도(55%→67%) 등이다. 미국은 2017년에 이 설문이 조사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26%로 확인되었다. 다른 한편 국경없는 기자회가 2024년 5월 초에 발표한 2024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자유 순위가 1년 사이에 무려 15등이 떨어져서 세계 62위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이 차지한 62위 주변에는 가봉(56위), 감비아(58위), 우크라이나(61위), 말라위(63위), 시에라리온(64위)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언론 자유 수준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서 미국도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상황에 언론 자유 순위마저 55위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세계 언론 자유 지수를 발표한 2002년부터 한국의 순위는 등락을 거듭해왔다. 2002년에 39위로 시작하여 2003년에 49위로 떨어졌다가 2006년에 31위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다. 한국에서 최저 기록은 2009년의 69위와 2016년의 70위로 확인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다. 2023년에 발표된 한국의 언론 자유 순위는 전 세계에서 47위이었는데 1년 만에 62위로 내려앉았다. 내년 5월에 발표될 순위가 혹시 한국의 최저 기록이 될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앞의 두 조사에서 확인된 미국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말을 한다. “트럼프는 능력주의의 결과인 대중의 분노를 잘 포착하고 이를 이용하는데 탁월했다. 지난 수십년 간 깊어진 빈부 격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엄청난 분노 감정을 잘 이용했다. 트럼프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인 것은 잘했지만,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고 민주주의를 악화시켰을 뿐이다." 샌델 교수의 말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최근 수년간 선거에서 자신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 추종자들의 분노를 잘 활용해왔고 극도의 양극화된 정쟁을 이끌어왔다. 대의 민주주의는 더 크게 불신을 받고 선출된 대표에 대한 희망도 사라졌으며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것만 추종자들의 지지를 얻는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서로 듣고 싶은 말만 주고받고 반대 목소리는 뿌리까지 제거하는 세상이다. 내년에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호전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릴까. 이준한

(기자의눈) ‘지구의 허파’ 산림이 위험하다

지구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로 낮추는 파리기후협정에 따라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순배출량을 제로로 해야 한다. 사실 이것도 벅찬데, 유엔에서는 2030년 평균 감축률을 45%로 높여야 한다고 발표해 우리나라의 압박감은 더욱 커진 상태다.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석유, 석탄, 가스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의 사용을 줄이는 것과 산림 등 자연적인 온실가스 흡수원을 확대하는 것이 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2가지 방법을 동시에 적극적으로 실현해야 탄소중립은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주요 온실가스 흡수원인 산림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온실가스 인벤토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산림을 통한 온실가스 흡수량은 정점인 2008년 6149만톤CO2eq에서 2021년 4038만톤CO2eq로 13년간 34.3%(2111만톤CO2eq)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총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한 흡수율도 10.4%에서 6.2%로 감소했다. 어찌 된 일일까? 그 원인을 보니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다. 우선 산림면적이 늘지는 못할 망정 줄고 있다. 산림면적은 2008년 637만5000헥타르(ha)에서 2021년 629만4000ha로 1.3% 감소했다. 인간의 탐욕으로 도시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산림이 계속 깎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산불피해도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산불피해 면적은 3만6230ha로, 이는 이전 5년(2014~2018년)의 3307ha에 비해 무려 11배나 확대됐다. 기후변화로 건조기간이 길어지면서 산불피해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산림 온실가스 흡수율을 떨어트리는 것은 가장 큰 원인은 산림의 노령화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산림 80%가 임령 31년 이상으로 채워져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탄소흡수량이 가장 큰 상수리나무를 기준으로 1ha당 임령별 연간 탄소 흡수량은 20년생 15.9톤을 정점으로 30년생 14톤, 40년생 12.3톤, 50년생 10.9톤, 60년생 9.8톤, 70년생 8.9톤으로 계속 감소한다. 산림청은 이대로 가면 2030년 국내 산림의 온실가스 흡수량은 2250만톤CO2eq로 떨어져 정점인 2008년대비 63%나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산림은 지구의 허파이다. 허파가 튼튼해야 사람도, 지구도 건강하게 숨쉴 수 있다. 산림의 온실가스 흡수량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신규 산림을 조성하는 것이다. 또한 생장력이 떨어진 노후 나무를 벌채해 목재제품으로 사용해 플라스틱을 대체하고, 그 자리에 어린 목을 심으면 흡수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소나무 30년생으로 조성된 1ha 숲의 매년 온실가스 흡수량은 11톤으로, 이는 승용차 5.7대가 매년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상쇄할 수 있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이상호 칼럼] 한국 무기 사지 말라는 프랑스의 한국 방산 견제 이유

지난 4월 25일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유럽연합(EU) 의회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리는 미국산 무기와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며 “유럽의 자주국방을 위해 유럽산 군 장비를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많지만 한 국가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무기의 '애국소비'를 촉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애국소비'는 중국과 같은 국수주의적인 개발도상국에서 외국 기업을 길들이고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을 선동하는 불공정 행위다. 그런데 프랑스가 한국 방위산업체의 빠른 유럽 진출에 우려를 나타내며 노골적으로 한국을 꼭 집어 거명하며 유럽산 무기 구매를 주장한 이유는 유럽의 안보 요구보다는 우수한 한국 제품과 힘겹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프랑스 방위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프랑스는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며 이웃인 독일과 거의 전방위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국 제품들을 견제하기 위한 연대를 구축하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더 거시적으로 보면 유럽은 유럽산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일종에 유럽 “방위산업 카르텔"을 형성하는 시도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은 최근들이 눈부신 실적을 달성했다. 유럽은 특히 2022년에 폴란드와 체결한 10조 5천억 원 무기 수출 계약에 놀라워했다. 이미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유럽 선진 국가가 한국의 K-9 자주포를 도입했고 체코나 루마니아 같은 국가들도 한국의 대공·대전차 미사일을 수입하는 등 유럽에서 한국의 무기 수출은 증가 추세였다. 유럽 국가들이 독일과 같은 지상 무기 강국 대신에 한국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뒤지지 않는 성능에 저렴한 가격, 빠른 납기와 확실한 후속지원 등 독일이나 유럽 방위산업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우수한 조건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대량 채택한 이유도 우크라이나 다음 러시아의 침공 대상은 폴란드라는 위기감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한국을 제외한 기타 유럽 국가가 폴란드의 조기 납품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은 폴란드에 기술 이전, 현지 생산과 공동 마케팅 등 독일 같은 국가가 고려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더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프랑스가 노골적으로 한국을 견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프랑스의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위협이 되기 전에 싹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미 프랑스는 한국 방산 수출의 확실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인도네시아 수출 경우가 그렇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방산 협력은 전통적으로 매우 밀접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T-50 고등연습기, 1,400톤급 잠수함 등 각종 무기를 수입해 왔으며 한국이 국운을 걸고 개발 중인 KF-21 전투기의 공동 개발 파트너로 총 2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국 KF-21 전투기 사업을 최초에 추진하게 된 동력을 인도네시아가 제공해 주었다고 할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친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국의 관계 균열 조짐이 보인다. 최초의 협력 분위기와 달리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공동으로 개발한 KF-21 전투기의 개발 분담금을 1조 원 이상 연체하고 있다. 이미 약 1조 3천억 원에 달하는 한국산 잠수함 3대 수입 계약도 파기한 바 있다. 공교롭게 한국산 무기 대신 인도네시아가 선택한 장비는 프랑스제이다. KF-21 대신 같은 4.5세대 전투기인 라팔 42대와 아랍에미리트에 역시 프랑스제 중고 미라주 전투기 12대를 주문했고 한국산 잠수함 대신 프랑스의 스코르펜 잠수함 2척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들 장비 수입 대금은 프랑스가 융통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한국이 1990년대 추진한 중형전투기 도입 사업인 FX 프로그램에 프랑스가 라팔을 미국은 F-15K 전투기를 가지고 참여했다. 프랑스의 적극적인 판촉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2년에 한국은 논란 끝에 F-15K를 선택한다. 과거에 해외 제품에 의존하던 한국은 이제는 4.5세대 전투기인 KF-21을 가지고 프랑스의 라팔과 직접 경쟁하는 상황이다. 격세지감이며 프랑스로서는 금전적 이유 이외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짐작이지만 프랑스는 이런 한국을 지금 주저앉히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사건건 경쟁 무대에서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을 수도 있다. 이미 유럽 국가가 실리보다는 명분을 선택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다년간 한국과 독일이 경쟁했던 노르웨이의 전차 도입 사업에서 한국의 K-2 전차가 더 우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노르웨이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독일의 레오파드 2-A7 전차를 선택했다. 현재 유럽의 방산시장은 프랑스와 독일 등의 입김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 방산이 성장하기 위해 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하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의 방산 수출이 좌절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방산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잘 유지하는 것은 물론 현재 충분히 해결되지 않은 방산 수출 금융지원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주포, 전차 등 지상무기와 탄약 등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한 제품만 아니라 KF-21 전투기와 같은 고가 장비 등 첨단 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성공하여 경쟁력 향상을 확보해야 한다.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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