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18일(화)



[이상호 칼럼] 한국 무기 사지 말라는 프랑스의 한국 방산 견제 이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5.27 11:00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지난 4월 25일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유럽연합(EU) 의회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연설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리는 미국산 무기와 한국산 무기를 구매하는 것으로 대응해 왔다"며 “유럽의 자주국방을 위해 유럽산 군 장비를 더 많이 구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많지만 한 국가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무기의 '애국소비'를 촉구하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애국소비'는 중국과 같은 국수주의적인 개발도상국에서 외국 기업을 길들이고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해 국민을 선동하는 불공정 행위다. 그런데 프랑스가 한국 방위산업체의 빠른 유럽 진출에 우려를 나타내며 노골적으로 한국을 꼭 집어 거명하며 유럽산 무기 구매를 주장한 이유는 유럽의 안보 요구보다는 우수한 한국 제품과 힘겹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친 프랑스 방위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프랑스는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며 이웃인 독일과 거의 전방위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국 제품들을 견제하기 위한 연대를 구축하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더 거시적으로 보면 유럽은 유럽산 무기로 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일종에 유럽 “방위산업 카르텔"을 형성하는 시도라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방위산업 수출은 최근들이 눈부신 실적을 달성했다. 유럽은 특히 2022년에 폴란드와 체결한 10조 5천억 원 무기 수출 계약에 놀라워했다. 이미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유럽 선진 국가가 한국의 K-9 자주포를 도입했고 체코나 루마니아 같은 국가들도 한국의 대공·대전차 미사일을 수입하는 등 유럽에서 한국의 무기 수출은 증가 추세였다. 유럽 국가들이 독일과 같은 지상 무기 강국 대신에 한국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뒤지지 않는 성능에 저렴한 가격, 빠른 납기와 확실한 후속지원 등 독일이나 유럽 방위산업체가 제공하지 못하는 우수한 조건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한국산 무기를 대량 채택한 이유도 우크라이나 다음 러시아의 침공 대상은 폴란드라는 위기감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한국을 제외한 기타 유럽 국가가 폴란드의 조기 납품 요구를 충족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은 폴란드에 기술 이전, 현지 생산과 공동 마케팅 등 독일 같은 국가가 고려하지 않는 조건을 제시했기 때문에 더 확실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프랑스가 노골적으로 한국을 견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프랑스의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위협이 되기 전에 싹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미 프랑스는 한국 방산 수출의 확실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인도네시아 수출 경우가 그렇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방산 협력은 전통적으로 매우 밀접했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의 T-50 고등연습기, 1,400톤급 잠수함 등 각종 무기를 수입해 왔으며 한국이 국운을 걸고 개발 중인 KF-21 전투기의 공동 개발 파트너로 총 20%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한국 KF-21 전투기 사업을 최초에 추진하게 된 동력을 인도네시아가 제공해 주었다고 할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친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양국의 관계 균열 조짐이 보인다. 최초의 협력 분위기와 달리 인도네시아는 한국과 공동으로 개발한 KF-21 전투기의 개발 분담금을 1조 원 이상 연체하고 있다. 이미 약 1조 3천억 원에 달하는 한국산 잠수함 3대 수입 계약도 파기한 바 있다.


공교롭게 한국산 무기 대신 인도네시아가 선택한 장비는 프랑스제이다. KF-21 대신 같은 4.5세대 전투기인 라팔 42대와 아랍에미리트에 역시 프랑스제 중고 미라주 전투기 12대를 주문했고 한국산 잠수함 대신 프랑스의 스코르펜 잠수함 2척을 수입하기로 했다. 이들 장비 수입 대금은 프랑스가 융통해 준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한국이 1990년대 추진한 중형전투기 도입 사업인 FX 프로그램에 프랑스가 라팔을 미국은 F-15K 전투기를 가지고 참여했다. 프랑스의 적극적인 판촉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2년에 한국은 논란 끝에 F-15K를 선택한다. 과거에 해외 제품에 의존하던 한국은 이제는 4.5세대 전투기인 KF-21을 가지고 프랑스의 라팔과 직접 경쟁하는 상황이다. 격세지감이며 프랑스로서는 금전적 이유 이외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짐작이지만 프랑스는 이런 한국을 지금 주저앉히지 않는다면 앞으로 사사건건 경쟁 무대에서 충돌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했을 수도 있다.


이미 유럽 국가가 실리보다는 명분을 선택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다년간 한국과 독일이 경쟁했던 노르웨이의 전차 도입 사업에서 한국의 K-2 전차가 더 우수한 평가를 받았지만, 노르웨이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독일의 레오파드 2-A7 전차를 선택했다. 현재 유럽의 방산시장은 프랑스와 독일 등의 입김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한국 방산이 성장하기 위해 유럽 등 여러 지역에서 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하거나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의 방산 수출이 좌절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방산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잘 유지하는 것은 물론 현재 충분히 해결되지 않은 방산 수출 금융지원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자주포, 전차 등 지상무기와 탄약 등 확실한 경쟁력을 확보한 제품만 아니라 KF-21 전투기와 같은 고가 장비 등 첨단 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성공하여 경쟁력 향상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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