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16일(일)



[이슈&인사이트] 퇴보하는 한국의 민주주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5.28 10:02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올해에는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에 대하여 걱정하게 만드는 조사결과가 나오고 있다. 2024년 2월 미국에서 권위있는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가 심각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센터는 2017년부터 매년 세계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얼마나 만족스럽게 생각하는지,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선호하는 정부 체제는 무엇인지 등을 조사해왔다. 2023년 2월부터 5월까지 24개 국가의 성인 3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체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 불만족스럽다'라는 것이 드러났다. 한국을 포함하여 불만족스럽다고 응답한 비율이 과반수(59%)를 차지했다.


2023년 조사 결과는 '현행 대의 민주주의 체제가 매우 좋다'라고 답한 유권자가 2017년에 비해 24개 국가 가운데 12국에서 감소한 것으로 알려준다. 그 가운데 한국은 2017년 19%의 응답자가 긍정적으로 답했으나 6년 만에 그 비율이 17%로 감소했다. 한국과 같이 영국(43%→31%), 독일(46%→37%), 인도(44%→36%), 일본(22%→14%), 이탈리아(29%→23%) 등 12개 국가에서 감소세가 확인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현행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영국, 독일, 인도, 이탈리아 등에 비하여 상당히 적다는 사실은 두드러진다.


또한 이번 조사에서는 '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생각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라는 설문에 대하여 대체로 부정적인 응답이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스페인(85%), 아르헨티나와 미국(83%), 헝가리(78%) 등에서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 정서가 상당히 퍼져 있었다.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는 한국(73%)과 일본(72%)에서도 광범위하게 확인되는데 스웨덴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부정적 응답이 더 일반적이었다.


퓨리서치센터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작동에 불만족이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하여 부정적이라면 그 대안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추적한다. 그 결과는 놀랍게도 강력한 독재 체제에 대한 선호로 이어지는 것이다. '강력한 지도자가 의회·법원 등의 견제를 거치지 않고 결정하는 정부 체제를 선호한다'라고 답하면 곧 권위주의의 복귀를 의미하는데 이 비율이 한국에서 2017년에 23%로부터 2023년에는 35%로 증가했다. 전 세계적으로 24개 조사 국가 중 8개 국가에서 비슷한 추세가 확인되었다. 즉, 독일(6%→16%), 폴란드(15%→25%), 아르헨티나(17%→27%), 인도(55%→67%) 등이다. 미국은 2017년에 이 설문이 조사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26%로 확인되었다.


다른 한편 국경없는 기자회가 2024년 5월 초에 발표한 2024년 세계 언론 자유 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언론 자유 순위가 1년 사이에 무려 15등이 떨어져서 세계 62위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이 차지한 62위 주변에는 가봉(56위), 감비아(58위), 우크라이나(61위), 말라위(63위), 시에라리온(64위) 등이 차지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의 언론 자유 수준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서 미국도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상황에 언론 자유 순위마저 55위라는 점이 주목을 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세계 언론 자유 지수를 발표한 2002년부터 한국의 순위는 등락을 거듭해왔다. 2002년에 39위로 시작하여 2003년에 49위로 떨어졌다가 2006년에 31위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다. 한국에서 최저 기록은 2009년의 69위와 2016년의 70위로 확인된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다. 2023년에 발표된 한국의 언론 자유 순위는 전 세계에서 47위이었는데 1년 만에 62위로 내려앉았다. 내년 5월에 발표될 순위가 혹시 한국의 최저 기록이 될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앞의 두 조사에서 확인된 미국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말을 한다. “트럼프는 능력주의의 결과인 대중의 분노를 잘 포착하고 이를 이용하는데 탁월했다. 지난 수십년 간 깊어진 빈부 격차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엄청난 분노 감정을 잘 이용했다. 트럼프가 그들에게 귀를 기울인 것은 잘했지만,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고 민주주의를 악화시켰을 뿐이다."


샌델 교수의 말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의 정치인들은 최근 수년간 선거에서 자신의 승리를 위하여 자기 추종자들의 분노를 잘 활용해왔고 극도의 양극화된 정쟁을 이끌어왔다. 대의 민주주의는 더 크게 불신을 받고 선출된 대표에 대한 희망도 사라졌으며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것만 추종자들의 지지를 얻는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서로 듣고 싶은 말만 주고받고 반대 목소리는 뿌리까지 제거하는 세상이다. 내년에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호전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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