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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4·10 총선 이후’가 중요한 이유

이틀 뒤인 10일이면 제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다. 오는 5월 30일부터 2028년 5월 29일까지 4년간 국회(입법부)에서 일할 지역구 254명, 비례대표 46명 등 총 300명을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한다. 앞서 5~6일 이틀간 치러진 사전투표율이 31.28%(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잠정집계)로 역대 총선 최고를 기록했다. 이번 총선의 전체 유권자 약 4428만명 가운데 3분의 1에 가까운 1385만명가량이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높은 사전투표율을 놓고 여야 각당은 서로 '거대야당(더불어민주당) 심판', '정권(윤석열 정부) 심판'의 민의(民意) 반영이라며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쨌든 사전투표와 오는 10일 총선 본투표의 결과에 따라 각 정당의 국회 의석수가 정해지고, 여야간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총선이 중요한 이유는 삼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부의 권력 이동뿐 아니라 또다른 축인 행정부의 국정운영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비록 21대 국회 여야정당의 활동과 역할을 심판하는 선거이지만, 윤석열 행정부의 지난 2년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4·10 총선의 결과는 단순히 입법부(국회)의 변화만이 아니라 행정부,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방향에도 전환점 작용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행정부나 국회의 정치공학적 변동 못지 않게 유권자 국민들은 4년 또는 5년마다 찾아오는 직접투표 권리행사를 통해 개인 삶의 향상 또는 변화에 대한 갈망을 '한 표의 주권'으로 표출하는데 더 의미를 부여한다. 선거 결과로 여야 어느 쪽의 승리보다 국민들은 표심이 정부와 정치권에 제대로 전달돼 국민생활의 실질적 변화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총선의 민심을 받든 정치권이 최근 1~2년 새 고물가와 고금리, 의대증원 반발에 따른 의료서비스 불편 등 서민 삶을 짓누르고 괴롭히는 현안들을 하루빨리 해결해 주기를 원한다. 당장 물가 문제만 들여다 봐도 최근 2년(2022~2023년) 소비자물가 등락률(KOSIS 국가통계포털 기준)에서 2022년 5.1%, 2023년 3.6%로 이전 시기 0.4~2.5%와 비교해 최대 10배 이상 상승했다. 특히, 신선식품물가지수는 지난해 6.8%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2020년 9.0%)을 제외하곤 2010년 이후 시기에 가장 높았다. 정부는 물가안정에 나서고 있지만, 일부 제조사만 옥죄기할뿐 비용상승의 주원인인 유통망은 손조차 못대고 있다. 더욱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최근 이스라엘-하마스 간 국지전이 중동전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아진데 따른 국제유가 급등은 또다른 물가상승 대외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대증원을 둘러싼 의료계와 정부간 갈등도 환자들에겐 직접적 피해를, 일반국민에겐 피로감을 안겨주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의 양보없는 '원칙 대 원칙' 강대강 입장이 몇 번의 대화 시도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외관계에서도 국민들은 불안하기 매한가지다. 정부의 편향적 미·일 친서방정책으로 우리나라와 경제 및 대북관계 주요 파트너인 중국·러시아와 척을 지면서 '반쪽짜리 외교'에 머물러 있다. 북한과 관계 악화는 같은 보수정권이었던 박근혜 정부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악' 상태다. 더욱이 오는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휘몰아칠 경제·외교 파장은 우리나라를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설사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되더라도 국방·외교 편중에 따른 '경제적 비용' 어음이 도래할 것은 불보듯 하다. 선거는 연례적인 '편뽑기' 행사가 아니다. 투표로 뽑힌 국정수행 대리인에게 유권자의 삶을 편안하고 윤택하게 만들라는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22대 국회는 산적해 있는 국내외 문제를 행정부와 협력과 견제로 잘 조율해 '민생행복 국회'라는 칭송을 듣기를 바란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기자의 눈] ‘영화인 빠진’ 영화관티켓 부과금 폐지

최근 정부가 영화 입장권 가격의 3%에 해당하는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을 '그림자 조세'로 규정하고 폐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영화입장권 가격이 500원 줄어드는 셈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발전기금을 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에서, 현재의 재정충당 구조가 부당하다는 지적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가금이 폐지된 뒤 영화계를 향한 지원 확대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지는 의문이 드는 부문이다. 현재 정부는 독립·예술영화 지원, 신인 창작자 발굴 등 영화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영화관람객 입장권 금액에서 3%를 징수해 '영화발전기금'으로 조성하고 있다. 해당 부과금이 영화발전기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37%로, 정부는 '그림자 조세'를 줄이기 위해 부가금을 없애고 영화발전기금에 빠진 부분만큼 정부 예산으로 대체한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영화계를 차질없이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음에도 영화계의 우려가 나오는 것은 최근 정부가 문화·예술 관련 예산 삭감 기조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사업 예산은 지난해 114억원에서 올해 67억원으로 절반 가까이 축소됐다. 영화제 지원사업 예산도 24억원으로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었고, 지역영화 지원 관련 사업은 지난 2018년 이후 7년만에 폐지했다. 영화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예산 삭감 이전에도 독립·예술영화 지원은 열악한 수준이었다. 영화감독들이 “한국영화는 지원받은 게 거의 없이 알아서 컸다"고 자조할 정도다. 실제로 독립·예술영화 감독들은 생계를 위해 여러 업무를 병행하는 것은 기본이며, 영화 편집을 돕는 전문장비 구비센터의 숫자도 적어 센터 이용을 위해서는 장기간 대기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업계에서 체감하는 현장 상황은 이미 녹록치 않다. 그럼에도 정부가 재정 충당책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겠다는 원론적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은 영화계의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부가 영화발전기금 부족분을 국고로 충당할 경우, 지원영화 선별 시 정부 입김이 강해질 것이라는 예상은 영화인이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독립·예술영화 특성상 정부나 사회 비판성 작품이 기성영화보다 많다는 점에서 정부 입맛대로 지원 잣대를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또한, 이번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 폐지는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국회에서 통과돼야 추진이 가능하기에 사실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영화업계가 정부의 입장권 부과금 폐지를 '총선 표 얻기'용 포퓰리즘 정책으로 비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K-콘텐츠가 세계에서 위용을 떨치고 있는 시기이다. 그런 만큼 K-콘텐츠의 지원을 강화해 뿌리를 튼튼하게 해야할 때이나, 재정 불안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독립·예술영화 감독들이 이탈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총선을 위한 '던져놓기'식 정책이 한국 독립·예술영화 맥을 끊는 '쇠말뚝'이 되는 게 아닌지 영화인만의 우려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김유승 기자 kys@ekn.kr

[이슈&인사이트] 로스쿨 제도 근본적 재검토할 때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교육에 의한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2009년 미국식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지 15년이 지났다. 일본에선 우리보다 5년 빠른 2004년 도입됐는데, 제도경쟁력 면에서 한국은 일본에 완패했다. 한국 로스쿨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 시점이 왔다고 본다. 현행 한국 로스쿨 제도의 가장 큰 병폐는, 이 제도가 70년 역사의 법과대학 교육 인프라를 일거에 무너뜨려 법학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온 것이다. 국가적 재앙이라 할 만한 손실이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전에는 매년 1만3400명의 법학도가 대학에 입학했다. 현재는 전국 25개 로스쿨에 2000명만이 입학하고 있고, 법학과는 소멸 중이다. 일본에선 기존 약 3만여 명의 법학과 학생을 그대로 두고 로스쿨에 매년 5000명 이상이 입학해 법학의 저변이 확대됐다. 한국에서 매년 2000명 정도의 학생만이 로스쿨에 입학하는 동안, 법학생 수의 급감, 법학연구자의 급격한 축소로 법학 후속세대의 양성이 불가능하게 됐으며,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붕괴됐다. 법학 교과서는 희귀하게 됐고, 수험가의 얄팍한 요약서가 범람한다. 공무원 시험과목에서 법학과목 퇴출이 심화됐고, 법학개론이나 생활법률 과목이 대학 교양과목에서 사라졌다.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법 경시 풍조가 가속화되고, 법치주의가 근본적으로 무너지는 망국적 현상이 진행 중이다. 궤변을 일삼는 법기술자가 여럿 출현했고, 특히 정치인이 된 법기술자들의 죄의식 저하가 극심하다. 로스쿨들은 학교마다 특성화를 실시하고 소크라테스(Socrates)의 문답식 교육방식을 채택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 특성화는 완전 실종이고, 문답식 교육은 온데간데 없다. 학생들은 변호사시험 대비 판례암기 공부로 로스쿨 3년을 보낸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 실력의 양극화도 극심해져, 변호사시험 합격자 실력의 균질성이 사법시험 합격자에 비해 추락했다고 법조계에서는 말이 많다. 일본 학생들은 대학 입학으로부터 빠르면 5년(법과대학 3년 조기졸업 + 로스쿨 2년), 정상적이면 6년(법과대학 4년 졸업 + 로스쿨 2년) 후 사법시험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선 7년(대학 4년 + 로스쿨 3년) 이내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대학 조기 졸업 외에는 없다. 일본에선 로스쿨 재학 중에도 사법시험을 볼 수 있으나, 한국은 반드시 로스쿨 3년 수료자만이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다. 일본에선 로스쿨을 다니지 않더라도 '예비시험제도'에 합격하면 바로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2023년 사법시험에서 명문 도쿄대학 로스쿨 졸업자의 68%, 교토대학 졸업 응시자의 59%, 히토쯔바시대학 졸업 응시자의 67%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예비시험에 합격한 후 응시한 자의 92%가 합격하여, 예비시험 합격자가 로스쿨 졸업생보다 월등하게 높은 합격률을 보였다. 다만, 예비시험 합격률은 겨우 3~5%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양만식 교수 제공 자료). 한국은 장기ㆍ고비용ㆍ저효율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경로인 로스쿨을 졸업해야만 변호사시험을 볼 자격이 생긴다. 이는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길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매우 나쁜 제도라고 할 것이다. 일본처럼 예비시험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로스쿨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고 이는 로스쿨의 기득권을 뺏는 것이므로 전국 로스쿨 교수들과 재학생들이 저항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처음부터 들어왔어야 했는데 실기했다. 장차 이를 도입하려면 5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 다만, 필자는 로스쿨 졸업도, 예비시험도 필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대학 법학과에서 50학점 정도 최소한의 필수과목 학점만 이수하면 바로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사면허시험과는 달리 변호사시험은 독학으로도 충분히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로로 법조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국민이 행복해진다. 누구든 어떤 방법으로든 열심히 하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최준선

[기자의눈] 네거티브 공방으로 얼룩진 총선판

총선이 6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공약·정책보다는 '네거티브' 공방에만 열중하는 분위기다. 선거 초반 '막말 금지령'을 내리며 중도층 공략에 방점을 뒀지만 그 모습은 온데 간데 없다. 여야 모두 상대 당을 악마화하며 서로 심판하자고 몰아가기만 할 뿐 '정책 대결'은 펼치치 않는 모양새다. 여야 대표들은 온갖 종류의 심판론을 주장하며 노골적인 비방전에만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동훈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이·조(이재명, 조국) 심판론'을 내세웠다. 한 위원장은 전국을 도는 유세 현장에서 “이번 선거는 범죄자를 심판하고 이조 심판을 해야 한다"며 “범죄자 세력이 여러분과 같은 선량한 시민을 지배하는 걸 막아야"한다고 거침 없는 언행을 이어갔다. “정치를 개같이 하는게 문제다", “감옥가기 싫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종북 세력과 야합했다"는 등의 발언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총선 날인 4월 10일을 '윤석열 정권 심판의 날'로 규정하며 '정권심판론'을 펼치고 있다. 이 대표는 “대한민국을 이렇게 퇴행시킨 장본인은 윤석열 정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투표한 유권자를 비하하는 '2찍' 발언에 이어 윤 정부를 '의붓아버지, 계모'라고 평하기도 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서는 “별명이 나베"라고 비꼬았고,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는 “국민의힘은 4·3 학살의 후예"라는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갔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3년은 너무 길다', '검찰독재정권 조기 종식'을 슬로건으로 삼고 정권 심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위원장과 조 대표 사이에서도 신경전이 벌어졌다. 조 대표는 한 위원장에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으로부터 버려질 것"이라고 주장했고 한 위원장은 “파렴치 잡범 조국, 감옥서 영치금 뜯어내고 책 팔 것"이라는 등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여야 후보 사이 고소·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중·성동갑 전현희 민주당 후보와 윤희숙 국민의힘 후보는 각각 '허위사실 공표죄'와 '무고죄'로 서로를 고발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유권자를 안중에 두지 않는 무시하는 행태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승리에만 매몰돼 저열한 말싸움만 이어가는 여야의 행태는 국민들에게 실망감과 피로감만 안겨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야가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데 총력을 다하는 사이 국민들의 삶과 직결된 민생이나 지역현안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여야 모두 앞으로 남은 6일간이라도 후보들과 각 당은 상대를 헐뜯지 않고 정책과 공약으로 정정당당하게 총선에 매진 해야할 것이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이슈&인사이트] 경제에도 춘하추동이 있다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경제에도 춘하추동(春夏秋冬)이 있다. 호황엔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엔 호황을 준비하라. 일이 잘되어 나갈 때는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하라. 기쁨 뒤에는 반드시 슬픔이 따르게 마련, 오늘의 행복에 도취되지 말고 지난날 불행을 거울삼으라."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삼성경영에서 지켜온 금과옥조다. 그것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이 고 이건희 선대 회장의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이다. 그 선언에는 1993년 6월7일이라는 시기의 적절성이 있다. 1993년은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높인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의 5년 후이면서 한국의 국격을 한 단계 추락시킨 IMF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의 5년 전이다.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에 의하면 1988년이 호황인 여름이라면 1997년은 불황인 겨울이고 1993년은 호황에서 불황으로 넘어가는 가을에 속하는 환절기이다. 다른 기업들이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의 환상에 취해 있을 때 삼성만이 홀로 다가올 IMF 사태의 위험성에 대비했다. 이건희 선대 회장은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서 삼성의 임원진과 해외 주재원 등 200여 명을 모아놓고 '신경영'을 선언했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이류나 삼류가 될 것"이라며 뼈를 깎는 수준의 혁신을 주문했다. 1993년 당시 현대, 대우에 이어 3위에 머물렀던 삼성은 다른 기업에 비해서 발 빠른 개혁을 계기로 5년 후에 다가올 IMF 외환위기 사태에 선제 대응함으로써 지금은 다른 그룹의 추종을 불허하는 재계 1위를 굳히게 되었다. 선언 이후 30년 만에 삼성전자의 자산규모와 매출은 약 10배의 양적 성장과 더불어 품질경영과 혁신의 DNA는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하여 반도체, 스마트폰, 대형 TV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였다.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은 호암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고 경제에서 경기 순환의 한국형 버전이다. 유사 개념으로 'S자 곡선'이 있다. 제품의 수명 사이클을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등 4기로 구분한다. 경기 순환은 대체로 10년을 주기로,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는 회복기, 가장 좋은 호경기, 경제 활동이 위축되는 후퇴기, 경제 활동이 침체하는 불경기의 4기로 나눈다. 호암은 경제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회복기를 춘(봄), 호경기를 하(여름), 후퇴기를 추(가을), 불경기를 동(겨울)으로 표현했다. 계절 개념을 가지고 선제 대응하라는 것이다. 스노타이어는 여름에 준비하고, 밀짚모자는 겨울에 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는 스노타이어를 눈 오는 날 산다고 북새통을 이룬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석유화학산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울산 석유화학 단지가 완성된 1972년 다음 해에 1차 석유 파동, 여천 단지가 완성된 1980년에 2차 오일 쇼크가 왔다. 결과적으로 1980년대 초반에 과잉투자로 석유화학업계는 고전했고, 석유화학 투자를 전면 중단했다. 그런데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0년 석유화학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자 재벌들이 무차별 석유화학에 올인 했다. 공장들이 완성될 즈음인 1997년 IMF 사태를 맞았다. 석유화학은 설비 산업으로 기획에서 준공까지 5년의 시차가 있다. 호황기에 공장을 기획하면 5년 후 불황기에 준공되고, 불황기에 투자를 중단하면 호황기에 팔 게 없는 엇박자가 난다. 그래서 최소한 5년의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 반도체, 전기차, 이차전지, 인공지능 등 현재 무차별적인 투자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 기업은 호암의 춘하추동 이론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도체는 미국, 일본, 중국뿐 아니라 베트남, 인도도 참여하는 세계대전 상태다. 전기차와 이차전지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갔다. 인공지능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규제 대상이다. 기업의 도산 원인이 운영· 관리의 실패보다는 투자 판단의 오류에 기인함에 유의할 일이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전공의 파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제22대 총선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이슈 중 하나가 의대정원 확대를 둘러싼 전공의 파업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다. 이미 6주를 넘어선 전공의 파업으로 대형병원들은 최소 기능만 운영하고 있고, 수술이 미뤄지고 응급환자들을 받지 못하면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지방에서는 진료 자체를 받기 어렵고 수술을 받으려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사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공공의료기관들은 의사를 구하지 못해 개점휴업 상태가 되기 일쑤고, 환자들은 서울이나 지방 대도시의 거점병원으로 몰려들었다. 덩달아 환자 가족들도 병원 근처에 머물며 환자들 돌보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불합리한 건강보험 수가체계로 인해 필수 의료분야를 전공한 의사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면서도 제대로 보상을 받을 수 없으니 점차 필수분야 전공자의 수도 줄어들어 수술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오랫동안 묶여있던 의대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반겼고, 필자 주변의 의사 친구들도 증원이 필요하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여론조사에서도 70% 정도가 의대정원 확대에 지지한다는 결과가 꾸준히 나왔다. 문제는 증원 규모와 방법, 그리고 의료서비스의 품질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의대 정원을 10년 동안 연 2000명씩 늘리겠다는 정책이 발표되었다. 정책은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을 상정하고 현재를 바꾸어 가는 일이다. 오랫동안 나름대로 이해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진 상태가 정책을 통해 깨지게 되니 이해관계자의 반발은 당연하다. 변화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원하지만 손해를 보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그동안 누려오던 이익을 빼앗기게 되는 사람들의 반대의 강도가 새로 이익을 얻는 사람들보다 훨씬 크다는데 있다. 또 의대 증원의 편익은 국민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는데 반해 손해는 의사 집단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의사들, 그 중에서도 이제 막 의료인으로 출발해 평생을 의사로 살아가야 할 사람들과 예비 의료인들, 즉 의과대학생들의 반발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지난 1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있기 전까지 대다수 국민은 왜 하필 꼭 2000명이어야 하는지에 의문이 있었다. 의대 증원의 핵심은 증원 규모, 즉 숫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에 의사들이 가도록 만들 수 있느냐였다. 의사들이 지방에 가지 않는 이유는 도시에서 일하는 것보다 경제적 보상이 적고 자식을 기르고 문화생활을 하는데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필수분야에서 겪어야 할 고생에 비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한 이유다. 거기에 의료수요가 급증하는데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문제니 결국 의료개혁은 의대 증원보다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개선하고 전공의의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는 일을 앞세웠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다른 요소들은 거의 잊혀지고 의대 증원만 전면에 나타났고, 이해당사자인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반발이 커진 것이다.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이 어설펐다고 그 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1일 대통령 담화를 통해 알려진 것을 보면 정부가 실제로는 부단히 의견을 요청했지만 의료계가 이를 외면해 왔다. 대통령 담화 이후에도 의사협회는 '입장이 없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는 오만함을 보였고, 전공의들도 의대 증원 백지화 전에는 할 얘기가 없다고 한다. 국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밥그릇만 챙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만천하에 선포한 것이다. 이제 국민도 알게 되었다. 정부의 정책추진 과정이 잘못되었다기보다는 대국민 소통과정이 미흡해 정부가 일해 온 과정이 잘 알려지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의료인들의 고집스런 태도가 국민과 상관없이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서 비롯되었고, 오로지 의대정원을 현 상태로 묶어두거나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난 6주간 전공의 파업에도 병상을 지킨 의료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도 지금 오로지 밥그릇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부 의사들과 전공의, 예비 의료인들에게 강력히 경고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의사가 되어도 결코 그 인생이 행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도 숫자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데 가장 좋은 대안인가를 확인하고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국민과 함께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유념해 의사에게 부여된 '신성한 의무인가'를 다시 헤아려보기를 바란다. 국민을 떠나 자신의 돈벌이만 생각하는 의사들에게 내 몸을 맡기고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홍성걸

[EE칼럼] 글로벌 비전 실종된 기후변화 총선 공약

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CSDLAP 소장 4·10 총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에서 주요 정당들과 각 후보들은 다양한 정책 공약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도 예외는 아니다. 기후변화는 유권자 세 명 중 한 명이 투표할 후보를 선정하는데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로 각 당에서 무시할 수 없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는 물론 올해 선거를 치르는 EU를 비롯한 70여개 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후변화 공약은 기후대응기금을 획기적으로 증액하겠다는 기후금융, 재생에너지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에너지전환, 기후변화 전담 부서의 신설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슈가 되었던 재생에너지 100%를 실현하고자 하는 소위 RE100 이슈도 여야 간에 중요한 쟁점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역구 유권자의 관심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할 수 있는 기후변화 대응 이슈의 부각은 중요하고 또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좀 더 체계적으로 국제적 안목과 비전을 담은 기후변화 공약의 제시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 면적에, 많은 인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의 기후변화 대응만으로는 하나의 글로벌 기후체계 속에서 발생하는 기후변화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들이 생산하는 IT 제품,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제품 등 어느 것이든 국내에서 소비되는 양보다 국외에서 소비되는 양이 절대적으로 많다. 따라서 기후변화 공약들은 우리 기업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국내 차원을 넘어서 국제사회의 경쟁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고, 이를 통하여 유권자들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주요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 기업의 선도적인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을 통하여 새로운 탄소중립, 기후위기 대응 신시장을 개척하고 이를 통해 창출되는 다양한 혜택이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에게도 돌아갈 수 있는 정책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 기업들은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등으로 새로운 탄소 통상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이 기업의 해외 시장 진출과 해외 투자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반도체 관련 기업이 많은 지역은 반도체 벨트라고 불리면서 각 당의 후보들이 다양한 기업 관련 정책을 통하여 지역구 표심을 끌어오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어느 당에서도 반도체 기업의 수출 증진을 위한 탄소 통상장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지 않다. RE100에 대해서도 서로 입장을 내 놓고 있지만, 해외에 대규모 공장을 두고 있는 우리 기업이 석탄에 의존하는 현지 국가의 전력 생산 정책으로 인해서 현지 생산 제품의 글로벌 경쟁력 저하 가능성이 심각한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내 석탄발전소 저감 정책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기업의 해외 공장이 위치한 국가의 석탄발전소 문제도 똑같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기업이 많이 진출한 개도국의 경우에는 ODA와 국제 정책 공조 등을 통하여 적극적으로 개도국 탄소중립 전력체계 구축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책공약이 중요한데 찾아볼 수가 없다. 지역구 구민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에 대한 정책 비전도 아쉽다. 해외 온실가스 감축을 통한 국외감축결과를 국가 온실가스 감촉목표 달성에 활용하는 온실가스 국외감축 정책은 새로운 해외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도국의 경우 파리협정에 따른 기후변화 대응 역량이 없거나 필요한 기술과 재원이 부족해서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의 ODA 정책과 연계된 다양한 해외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 이를 통해 창출되는 해외 일자리는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은 물론 경험이 많은 중장년층의 해외 진출을 도와주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총선이지만 여야 각 당은 글로벌 안목과 비전을 담은 기후변화 공약을 제시함으로써 지역구에서의 승리는 물론 총선 후 제22대 국회에서 기후변화 논의가 국내적 차원의 논의를 넘어 국제적 안목과 비전에 바탕을 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서용

[기자의 눈] 주총이 끝나고 난 뒤

열기를 띠었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마무리됐다. 어떤 주총은 큰 문제 없이 원만히 끝나는가 하면, 어떤 주총은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파행으로 마무리됐다.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의 주총장에는 무수한 이들이 남기고 간 희망 혹은 절망이 정적과 함께 남아있었다. 수 개의 주총 취재를 마치고 나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제도적 장치를 통한 소액 주주들의 주주권 보호 필요성이었다. 아주 간단하고도 합당한 제도 개선을 몇 가지만 거치면 일부 주총장에서 나타났던 부정적 감정의 총량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텐데 하는 감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주명부 및 회계장부 열람·등사 신청을 했을 때를 들 수 있다. 해당 자료는 워낙 데이터양이 방대해 전자문서로 제공하는 것이 필수인데, 주주연대 측과 분쟁을 겪고 있는 대유 등 몇몇 상장사들은 이를 굳이 두꺼운 프린트물로 배부해 사실상 주주권 행사를 방해하는 일을 저질렀다. 법령상으로는 허용된 행위여서 법률적으로 문제 삼기 어렵다는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발전된 사회상을 법이 따라오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여전히 감사 선임과 관련한 '꼼수'도 많이 관찰됐고 주총 파행을 위한 의도적 전자위임장 거부, 질서유지라는 명목하에 회사 직원들이 주총장을 채우고 주주 발언마다 질문을 원천 차단하는 등 만행도 다수 발견됐다. 문제는 주주 측에서 이를 방어할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가처분 및 본안 소송이라는 법률적 방어 수단이 있기는 하나, 시간과 자금이 많이 드는 관계로 생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주주들이 사실상 감당하기 어렵다. 이미 옆 나라 일본은 '밸류업 프로그램' 전에도 주총과 관련한 문제점 등을 직간접적 규제로 해결하고 위법에 대한 강력한 처벌로써 회사-주주가 윈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부 상장사에서는 의장뿐 아니라 각 사업부 대표 임원까지 나와 주주들의 질문에 정성스레 답변하는 사례도 나타날 정도로 주총 문화에 많은 개선을 이루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총선에 이 주주권 강화를 위한 공약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큰 실망으로 다가온다. 공약으로는 내지 않더라도 4월 10일 이후 새로 구성될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논의해 가급적 내년 정기 주총 시즌 전에는 보다 환경이 개선됐으면 한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이슈&인사이트] 의학·의료계 ‘인공지능 쓰나미’와 의대 증원

인공지능(AI)은 사람의 학습력, 추론력, 지각력을 인공적으로 구현시키는 컴퓨터과학의 한 분야로 최근 몇 년간 급속한 발달을 보이며 '쓰나미'같이 무서운 속도록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특히 '챗(Chat) GPT'라고 불리는 생성형 인공지능은 우리가 물어보는 질문을 친구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대답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답하는 내용도 상당히 정확하다. 백과사전같이 방대하게 수록하고 있는 지식을 바로바로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고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외과 의사로서 이런 인공지능의 발전을 지켜보고 있으면 향후 10년, 20년 혹은 미래에 펼쳐질 세계가 궁금하기도 하고 어떨 때에는 두렵기까지 하다. 최근 이러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의학에도 미치고 있다. 엑스선, CT나 MRI 등으로 촬영한 영상물을 빠르고 정교하게 판독하여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깜짝 놀랄 정도이고, 이런 정밀한 진단은 판독이 어려운 병리 진단에도 사용되고 있다. 향후 인공지능은 환자의 병력 청취, 환자 맞춤형 진단, 최선의 치료방법 선택 등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상(外傷)으로 인하여 뇌출혈이 생기거나 대량 출혈이 발생하면 빠른 수술로 출혈부위를 지혈시키는 것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될 수 있다. 이때 현재처럼 CT나 MRI 등의 영상 촬영을 하고 판독하여 진단을 하다 보면 자칫 '골든 타임'을 놓칠 수가 있다. 그러나, AI시스템을 이용해 바로 진단하고 신속히 수술하게 된다면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차원에서 나아가 후유증을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까지 가능해진다. 이러한 AI를 이용한 의학분야의 발전으로 점점 더 의학의 수준이 높아지고 '맞춤형 치료'의 범위와 적응증도 넓어지고 많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그에 반해 AI의 발전으로 인한 반작용도 있을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수백만에서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전망이다. 의학과 의료에도 예외가 아니어서 거의 모든 미래예측 자료를 보면 인공지능 시대에 사라지거나 축소될 직업으로 의사가 아주 높은 순위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발표된 네이처(Nature) 저널에서도 전문가들이 'AI가 의사들을 상당히 대체할 것'이라는 의견을 많이 제시했다. 앞으로 AI가 의사들의 수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정말 AI가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 의견들은 소수이지만, 대부분은 의사들의 수요는 많이 줄어들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즉 확실한 것은 'AI가 의사의 일을 많이 덜어줄 것'이라는 점이다. 현재 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가 끝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부는 인구의 고령화 등으로 인해 향후에 의료수요가 많아져서 올해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고 한다. 의료계는 단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으로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유일한 방법이라고 한다. 앞으로 수년 후에 AI시대, 즉 인공지능 시대가 정착한다면 의사가 하던 환자병력 청취, 복잡한 진단 과정, 치료계획의 확립 등의 일들은 분명 줄어들 것이다. 의사는 AI와 함께 정확하고 또 신속한 맞춤형 진단 치료를 할 것이다. 이때 의사 수가 정말로 많이 필요한 지는 정부와 의료계가 합심해 과학적으로 산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쓰나미 초기에는 바닷물이 빠져나가서 오히려 사람들의 경계심을 풀게 할 수도 있다. 다시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는 'AI 쓰나미'를 우리는 지금부터 잘 예측하고 대비해야 한다. 박효순 기자 anytoc@ekn.kr

[EE칼럼] 에너지 거버넌스 혁신 서둘러야

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정부의 권한과 규제를 경계하는 이야기는 무수히 많다. 굳이 동서양의 금언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과도한 정책개입과 촘촘한 규제의 폐해는 많은 사람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나 교역규모가 세계 10위권인데 비해 규제 순위는 100위권 정도라니 '규제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경제 원칙에 개입하거나 제재를 의미하는 '경제적 규제'는 기업의 독과점이나 가격담합과 같은 불공정경쟁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에서 비롯되었다. 즉,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해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시장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목적이다. 미국에서는 1890년 셔먼법으로 불리는 반독점법을 통해 독점기업의 폐해를 방지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정신은 스탠다드 오일, AT&T,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최근에는 애플 등 빅테크기업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 정부의 권한이 큰 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작은 정부를 주장하지만 정부조직과 공공기관은 날로 비대해지는 추세다. 국회 또한 권한과 기능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민의 반영, 갈등 해소, 새로운 서비스와 역할을 빌미로 공적 기능의 확대가 지속되고 있다. 인구는 제자리 걸음인데 공공분야 종사자수나 기관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에너지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2000년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경쟁체제 도입을 시작한 이후 전력산업에 대한 정부개입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과거 주관부처와 해당 공기업이 주도적으로 담당하던 정책기능마저도 이제 찾기보기 어렵다. 어디서 누가 결정하는지도 모를 엉뚱하고 선동적인 정책목표와 시행계획이 예고도 없이 떨어진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온실가스를 줄이고 환경을 개선을 하는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정책목표에서 한발만 들어가면 에너지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진다. 어제는 재생에너지, 오늘은 원전으로 정책목표도 수시로 바뀐다. 이러한 갈등의 근원은 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정책개입과 불합리한 거버넌스에서 비롯된다. 가격, 거래, 경쟁과 같은 시장기능은 제한되고 요금, 규제, 보조금과 같은 시장외적 힘이 크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에너지산업에 대한 거버넌스는 대체로 규제기능과 정책기능이 엄격히 분리돼 있다. 특히, 규제기능은 독립적 규제기관에 의해 이루어지고있다. 미국은 연방 에너지규제위원회(FERC)와 주별 공익규제위원회(PUC)가 병존하지만 통상적인 에너지 규제기능은 대부분 주 PUC에서 수행한다. 영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도 규제의 범위나 권한의 차이는 있되 기능과 운영방식은 비슷하다. 이에 반해 정부의 해당 부처는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에너지부(DOE)의 중요한 기능은 대부분 기술개발을 위해 방대한 국책연구기관을 운영한다. 이와 아울러 독립적이고 공정한 에너지 정보를 수집, 분석해 제공하는 에너지정보청(EIA)을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합리적인 정책, 효율적인 시장, 에너지 경제 환경 간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고자 한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도 에너지 거버넌스 변화에 관한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강고한 관료주의와 정치권의 개입으로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에너지문제가 사회적, 정치적 이슈화되면서부터 이런 흐름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하루빨리 에너지 규제에 따른 부작용과 사회적 갈등, 경제적 비효율을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에너지분야 규제기능 분리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이 진흥과 규제는 양립하기 어렵다. 정책은 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역할이 주기능인데 반해 규제는 산업이나 독점적 기업에 대한 통제를 통해 시장실패를 방지하고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고자 한다. 이 두가지 기능을 같은 부처에서 수행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전력산업의 시장기능 회복도 필요하다. 현재 우리 전력산업은 도매시장이라는 '무늬'는 가지고 있지만되, 실상은 계획과 규제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 특히, 소매요금을 정치적 이유로 과도하게 통제하다 보니 국제유가에 따라 흑자와 적자가 되풀이되고 있다. 천수답 마냥 유가가 내리면 흑자, 오르면 적자에 빠진다. 적자가 지속되면 결국은 요금을 올리겠지만 이미 상황이 끝나 사후약방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후진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거버넌스의 독립성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엉뚱한 외부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에너지시스템, 전기요금, 전력시장의 현안과 해법에 대한 합리적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쟁적 산업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전력산업구조개편은 아직도 진행중인 미완의 정책이다. 이제라도 발전부분 경쟁확대와 판매부분 분할과 경쟁이 필요하다. 견고하게 속박된 발전부문의 경쟁을 확대하고, 지역기반의 공급체제로 전환한다면 전력시장 또한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이러한 정신은 분산에너지특별법에도 담겨있다. 에너지산업의 발전과 기술변화에 맞추어 산업구조를 바꾸면 에너지 거버넌스 또한 이에 맞는 구조로 자연스럽게 전환될 것이다. 에너지산업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거버넌스 재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국가 에너지 거버넌스의 재구축을 통해 시장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높인다면 시장참여자의 갈등 해소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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