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김유승 기자]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의 ‘대금 제값받기’의 기틀이 되는 납품대금 연동제의 원만한 수용과 안착을 위해선 관련 법과 제도의 추가 지원과 함께 ‘가장 큰 원도급자’인 정부의 선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말 그대로 하청 중소기업이 납품하는 제품의 원자재 가격이 국내외 요인으로 변동(상승)할 경우 인상분을 납품대금에 반영함으로써 중소 제조업체의 비용전가 개선과 경영난 해소를 유도하자는 상생제도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가장 민감한 제조 부문 비용인 만큼 대기업(원도급·위탁업체)은 최종 생산재의 가격 경쟁력 저하를 우려해 납품대금 연동제를 반대 또는 소극적 입장을 보여 그동안 중소기업(하도급·수탁업체)의 줄기찬 요구에도 제도 수렴이 이뤄지지 않았다. 다행히 중소기업계의 끈질긴 촉구에 더해 중소벤처기업부의 적극적인 제도 추진, 일부 대기업의 전향적 참여가 성사되면서 지난해 하반기 시범운영을 거쳐 오는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3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납품대금 연동제 시범운영은 이달 종료되고 10월부터 제도 도입 내용을 담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이 시행된다. 이에 따라 10월부터 대기업에 납품대금 연동 내용을 기재한 약정서 발급이 의무화된다. 지난달 27일에는 납품대금 연동제 시행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수·위탁기업간 분쟁조정의 실효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수·위탁분쟁조정협의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상생협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납품대금 연동제는 지난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제시된 이래 14년간 중소벤처기업계의 숙원과제였다. 정부는 지난달 8일 이영 중기부 장관이 ‘납품대금 연동제 태스크포스 발대식’에 참석하고, 이어 같은 달 24일 조주현 중기부 차관이 LS전선에 제품을 납품하는 세종시 유진통신공업을 방문해 납품대금 연동제 우수사례 현장의견을 청취하는 등 납품대금 연동제 홍보에 애쓰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지난달 13일 중기부와 함께 ‘납품대금 연동제 A부터 Z까지 기업설명 로드쇼’를 개최하는 등 제도에 대한 인식 제고에 힘쓰고 있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지난해 여야 협치로 납품대금 연동제 도입을 위한 상생협력법이 통과됐고, 지속적인 안내와 홍보를 통해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중소기업이나 사각지대가 없도록 만전을 기할 예정"이라며 "이와 더불어 세부 시행방안 마련을 위한 상생협력법 시행령 개정 과정 중에서 중소기업 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중기부와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주최한 ‘납품대금 연동제의 이해와 안착’ 심포지엄에서 송창석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부에서 납품대금 연동제는 원가절감을 위한 중소기업의 혁신 노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이는 납품대금 연동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중소기업의 혁신의 효과는 이미 납품가격 인하 스케줄에 반영되는 것인 만큼 원자재가격 급상승에 대해 추가적인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납품대금 연동제로 중소기업은 위험을 줄여 안정적인 혁신기반을 확립할 수 있고, 대기업은 위험부담의 대가로 공급자(중소기업)에게 더 많은 양보를 얻어낼 수 있으므로 서로 윈-윈(Win-Win)하는 게임"이라고 말해 납품대금 연동제의 필요성에 힘을 실었다. 대기업 등 원도급업계의 태도도 당초 부정적인 모습에서 점차 협조적인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회원사 기업들의 부담을 우려해 납품대금 연동제의 시행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현재로서는 법이 통과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만큼 납품대금 연동제가 안착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상생협력법은 이미 국회를 통과됐지만 (지난달 20일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하도급법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은 아직 통과되지 않았는데, 이 두 법 사이에는 적용에 상이한 부분이 있다"고 말해 법안과 시행령 등에서 두 법의 적용 기준을 통일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전작업과 더불어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는 "에너지 비용이나 인건비 등에 비해 원자재 가격은 전쟁 등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로 하도급계약 체결 시 미리 예측하고 이를 계약서에 반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원자재 가격변동을 반영하는 제도를 법제화하는 것만으로도 하청 중소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전쟁 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은 대기업도 예측하기 어려운 만큼, 예상치 못한 추가 지출 발생이나 가격 상승분을 제때 하청업체에게 제공할 수 없는 경우 등에 대비해 각 기업마다 자율적으로 별도의 ‘납품대금 연동제를 위한 충당금’을 조성해 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납품대금 연동제는 원도급업체와 하도급업체의 상생을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민간기업에게 ESG 경영(특히 ‘사회’) 측면에서 접근해 줄 것을 주문하는 동시에, 품목과 수량 측면에서 가장 큰 원도급자라 할 수 있는 정부(조달청)에게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줄 것도 당부했다. 김익성 교수는 "정부의 공공조달은 중소기업의 판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치므로 ‘조달을 통해 중소기업의 예측가능한 수익구조를 보장하고 혁신을 유도하며 유동성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해준다’는 조달철학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며 "중소기업은 매우 다양한 업종으로 이뤄져 있는 만큼 이러한 조달철학에 기초해 각 업종에 따라 담당 공무원들이 업종 특성에 맞는 유연한 조달정책을 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ch0054@ekn.kr연동제 조주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오른쪽)이 지난달 24일 세종시 유진통신공업에서 납품대금 연동제 우수사례 현장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사진=중소벤처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