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우리금융지주 이사회가 연말까지 손태승 회장 거취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현재 금융권 물밑에서 부는 ‘외풍’이 잠잠해질지 주목된다. 우리금융 이사회의 이러한 입장은 정부 출신 인사들이 금융권 CEO로 속속 선임되는 외풍을 조기에 막고, 이사회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현 정부 출범 이후 NH농협금융을 비롯한 다수의 금융사 CEO가 교체되는 가운데 우리금융은 CEO 거취와 관련해 이사회의 독립성, 주주가치 제고보다 중요한 원칙은 없다는 점을 대내외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금융 이사회 "내년 1월께 중징계 수용여부 논의"18일 금융권에 따르면 박상용 우리금융지주 사외이사는 이달 16일 정기이사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손 회장의 라임 사태 관련 중징계 수용 여부와 관련해 "연말까지는 논의할 계획이 전혀 없고, 내년 1월께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사외이사는 "은행 법인이 소송을 할 것인지, 제재를 받아들일 것인지를 우선 생각해야 한다"며 "손 회장의 소송 여부는 이사진들이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라임 제재와 관련해 우리금융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손 회장은 지난달 9일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부당권유 등)로 금융위로부터 3년간 금융권 신규 취업이 제한되는 문책 경고를 받았다. 손 회장이 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문책경고 취소 청구 소송 제기 등을 거쳐야만 한다. 다만 손 회장 중징계 이후 신한금융, NH농협금융지주, BNK금융지주 등 굴지의 금융사 CEO가 대거 교체됐고, 금감원장 역시 손 회장을 향해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을 향한 현 정부의 입김이 노골화됐다는 지적이 나왔다.그러나 우리금융 이사회는 금융위 중징계 이후 한 달 넘게 침묵을 이어갔다. 이날(16일) 정기이사회 직후 내놓은 답변에서도 손 회장 개인과 우리금융 법인 차원의 대응은 구분해서 봐야함을 강조했다. 당국의 중징계 이후 금융권의 모든 시선이 손 회장 개인 거취,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쏠리는 것을 경계한 발언이다. 즉, 이사회는 회장 개인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독립성을 지키면서 회사 차원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장고를 이어가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DLF 대법원 승소...‘라임펀드’ 제재 수용시 배임 이슈 제기 가능성특히나 전 정부 시절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관련 문책 경고의 중징계를 받은 손 회장이 대법원 판결에서 ‘문책 경고 취소’ 판결을 받으며 완승을 거둔 점도 우리금융에 힘을 더하는 요인이었다. 비슷한 사안으로 중징계를 받은 DLF 사태는 정면 대응을, 라임 사태는 ‘제재 수용’이라는 결정을 내릴 경우 우리금융 이사회는 공정성,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업계 관계자는 "DLF 사태 당시 손 회장에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을 적용한 것은 당시 불완전판매로 CEO에 제재를 가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손 회장에 중징계를 내린 이번 제재 역시 (우리금융과 손 회장이)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할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자본시장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제448조 양벌규정을 적용하면 행위자 외에 법인, 개인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며 "다만 라임펀드 불완전판매를 이유로 손 회장에 중징계를 내린 금융위의 처분이 적절한지는 법적으로 충분히 다툴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이 라임 펀드 판매 당시 ‘부당권유’를 했다는 금융위 제재를 그대로 인용할 경우 이사회가 ‘배임’ 이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우리금융이 장고를 이어가는 배경이다. 현재 우리은행은 라임펀드 판매로 손해를 봤다며 신한투자증권을 상대로 647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금융이 부당권유라는 금융위 제재를 받아들이면 신한투자증권과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하고, 라임 사태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에게 펀드 손실분의 10%에 해당하는 약 150억원 상당의 배상금을 추가적으로 물어줘야 한다. 즉 손 회장의 연임 여부와 별개로 우리금융이 라임 사태 중징계 관련해 금융당국을 상대로 불복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사회 입장에서는 이로 인해 재무적으로 발생할 수백억원의 손실과 주주가치 훼손 등을 감수해야 한다. 이는 곧 이사회를 향한 ‘배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박 사외이사는 소송 제기 시 당국과의 마찰 등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에 대해 "여러 가지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로, (당국과의 마찰만) 갖고 결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 이는 그만큼 이사회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다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이러한 변수들을 모두 종합할 때 이사회는 재임 기간 양호한 실적을 올린 손 회장을 다시 한 번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는데 무게가 실린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금융 이사회는 과점주주가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 만큼 정무적 판단보다는 모든 가능성과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가급적 회사 차원에서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ys106@ekn.kr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우리금융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