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지구촌 곳곳에 집중호우와 이상고온, 잦은 대형산불이 빈발하면서 인류를 포함한 자연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에 따르면, 올해 6월 세계 평균 기온은 16.55℃로 역대 관측상 가장 더운 6월로 기록됐고, 7월 들어 지난 3~5일 지구 평균 온도가 사흘연속 17℃를 웃돌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이같은 이상기온과 재해는 자연생태계를 교란해 곡물 및 에너지 수급에 악영향을 끼쳐 관련 식품과 제품 가격의 폭등을 야기시키고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의 상승은 사회 빈곤층에 직접 피해를 입힌다. 전기·가스 등 구매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생존권마저 위협받는 ‘에너지 소외’로 국민행복권과 사회안전망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에너지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 위한 에너지 복지의 중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국내외 관련 정책과 전문가 제언을 집중 소개한다. <편집자 주> 기획 연재 순서 ① 에너지빈곤층 현주소와 에너지복지정책 ② 에너지 바우처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③ 에너지복지법 신법 제정 필요성 및 효과 ④ 에너지복지 선진국에 배운다-프랑스 ⑤ 에너지복지 선진국에 배운다-영국 ⑥ [좌담회] 사회적 약자 포용을 위한 에너지복지과제 및 방향프랑스 에너지복지정책 의사결정 구조의 변화구 분1990년대~2009년 이전2010년 이후 2017년 이후분야별 기관▷ADEME·CLER·BCE (환경·에너지)▷BCE·ANAH(주거)▷그르넬 환경법Ⅱ 제정(2010) ▷ONPE(국립 에너지 빈곤 관측소) 설립▷MEEM·ADEME(환경, 에너지)▷ONPE(에너지빈곤 관측기구)▷ONPES(사회복지)▷ANAH·USH(주거)▷GRDF·ENEDIS·ENGIE·EDF(에너지공기업)자료=이유현 논문 ‘에너지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한 에너지 복지의 정책설계에 관한 연구:프랑스와 한국의 사례’( 2018, 한국연구재단)[에너지경제신문=프랑스 파리 조하니 기자] "프랑스는 선순환 난방 구조 구축과 함께 생태적 특성 및 가계 전력 소비량 등을 고려한 대규모 주택 개조 정책을 시행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오는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목표 외에도 변동성이 높은 에너지비용 등에 따라 특정가구의 에너지 취약성이 증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 산하 국립에너지빈곤관측소(ONPE· Observatoire National de la Precarite Energetique) 에너지빈곤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이졸데 드발리에르 매니저는 프랑스 정부가 에너지빈곤층 지원을 위한 에너지복지 추진으로 주거 문제 해결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지난 6월 에너지경제신문과 가진 현지 인터뷰에서 드발리우스 매니저는 프랑스의 에너지복지정책이 지난 2010년 ‘그르넬 환경법 Ⅱ(loi Grenelle 2)’이 제정되면서 본격화됐다고 소개했다.그르넬 환경법 Ⅱ는 1990년대 프랑스 에너지·거주·사회 분야 행위자들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에너지빈곤’ 개념을 법적 정의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에너지 빈곤층을 ‘자원’과 ‘주거환경’ 두 요소가 결핍됨에 따라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ONPE도 추상적인 두 지표인 자원·주거환경을 실제 에너지빈곤 퇴치를 위한 공공정책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2011년 그르넬 환경법 Ⅱ을 근거로 탄생한 에너지복지 공공기관이다. 이 기관의 주요 임무는 에너지빈곤과 관련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현상을 파악해 취약계층에게 제공되는 지원 현황을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ONPE는 ‘프랑스 국립 통계 경제 연구소(Insee)’ 또는 ‘에너지전환부’가 실시하는 ENL(전국 주택 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빈곤 상태를 분석한다. 연간 데이터가 없다면 프랑스 생태전환부가 매년 추정하는 ‘에너지 노력률(TEE_3D)’, 국가 에너지 옴부즈맨이 국민 대상으로 에너지 정보 기압계를 활용해 추출한 경제 지표 등을 반영한다. 2021년부터는 지리적으로 에너지 빈곤 지역을 파악할 수 있는 분석 도구 ‘GEODIP’도 개발,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사업 행위자 대상으로 해당 도구를 사용하면, 선택 영역에 대한 데이터와 함께 빈곤 지표, 가구의 사회경제적 특성, 거주지와 주거 환경 등의 지표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그럼에도 드발리에르 매니저는 "많은 프랑스 가정들이 에너지복지 수혜를 받기 위해 공공기관 등에서 거쳐야 하는 복잡한 절차와 신청에 지쳐 있다"면서 에너지복지 정책 초기의 시행착오 부분을 지적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ONPE 주도로 에너지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주요 방법의 하나로 빈곤상태를 분석한 뒤 이를 현지 환경에 맞게 적용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프랑스, 에너지 위기에 전력난, "부담 여전" 프랑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과 기후변화, 코로나팬데믹 등 복합문제로 전력난이 임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KOTRA)에 따르면, 프랑스는 전체 전력 생산의 약 67%를 차지할 만큼 원전 의존도가 높다. 그러나 시설 노후화 등의 문제로 가동이 중단돼 에너지요금이 치솟은 실정이다. 올해 프랑스 전기 도매가만 1000유로를 돌파했으며 이는 전년 동기(85유로)보다 10배 이상 높은 수치다.파리 현지에서 만난 한 주부는 "2인 가정집인데 2020년 기준 한 달 평균 전기료로 30유로를 지불했는데 지금은 45유로를 내고 있다. 주변과 비교하면 그나마도 적은 편"이라고 전력난 상황을 전했다.이 주부는 "일찌감치 집안 전구와 가전제품도 에너지 절약형으로 교체했지만 시기에 따라 50~60유로를 낼 때도 있는데 2020년과 비교하면 체감 인상률만 40~50% 수준에 이른다"고 가중되는 에너지 부담을 털어놓았다.프랑스 생태전환부(Ministere de la Transition ecologique)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일반위원회(CGD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2022년 프랑스 전체 인구의 22%가 적어도 겨울 동안 추위로 고생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이졸데 드발리우스 ONPE 에너지 프로젝트 매니저는 "지난 10년 동안 점진적으로 복지 제도를 개선해왔음에도 높은 에너지요금 탓에 난방을 제한하는 가구가 2020년 50%에서 이듬해 60%까지 상승했다"며 "현재 프랑스가 직면한 에너지 위기와 맞물려 이 같은 추세를 뒤집지 못할 것 같다"고 전망했다.◇에너지 빈곤층 대상 현물 지원…관련 캠페인도에너지요금 인상 등으로 특히 에너지 빈곤층이 체감하는 물가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 공공 당국도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프랑스 에너지복지 사업은 크게 현물 지급 등의 사후적 수단,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한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예방적 수단으로 나뉘는 게 특징이다. 사후적 수단의 경우 우리나라의 ‘에너지 이용권(바우처)’과 유사한 ‘에너지 수표제도(CHEQUE ENERGIE)’가 대표사례다. 2015년 제정된 ‘에너지 전환법(LTECV법)’을 토대로 2018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소득 세금과 가족 구성원 등을 기준으로 48유로부터 최대 277유로 사이에서 금액을 산정해 수표를 제공한다. 전체 인구의 약 20% 하위 빈곤층 대상으로 매년 4월경 별다른 신청 없이도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신청자에게 에너지 수표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과거에는 에너지원 종류에 따라 요금이 차등 적용됐지만, 지금은 가스·전기 등 구분 없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1년 간의 유효기간 내 어느 때 사용해도 무방하다. 전기·가스 등을 공급하는 에너지 공급회사에 직접 수표를 보낼 수 있으며, 온라인으로 등록해서 지불할 수도 있다. 특히, 프랑스 공공 당국은 지난해 말 저소득 가구의 에너지 구매력에 영향을 미치는 물가 상승에 대처하고자 예외적으로 모든 수령자에게 100유로 바우처를 추가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발행된 바우처 금액은 총 5억8200만 유로 이상으로 알려졌다.프랑스 주거부문 에너지빈곤 행위자연대(RAPPEL)의 에너지 불안정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아우렐리앙 브루일 책임자는 "현재 프랑스에서 약 560만 가구가 에너지 수표를 받고 있지만 세금 신고를 하지 못하거나, 자존심이 강해 복지 수혜를 거부하거나, 광고로 오인해 혜택을 놓치는 사람들도 많다"며 "이를 고려해 4월 지급 시기에 맞춰 관련 캠페인을 벌여 적격자들에게 수급 소식과 수표 발행, 사용 방법 등도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2007년 ADEME와 BCE(기후에너지 건물)·CLER(재생에너지협회)가 협력해 설립한 RAPPEL은 ONPE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빈곤층을 돕는 지원책이 잘 실천되는지 살피는 일종의 네트워크 플랫폼이다. 1000여명의 에너지빈곤·사회복지 전문가는 물론 일반 회원으로 구성된 단체로 온라인을 통해 에너지빈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또, 직접 현장에 방문해 집의 경제적 상황 등에 맞춰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기술 솔루션을 마련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주거 개선 사업 ‘속도’…에너지 효율 높여야기록적인 혹서·혹한 등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프랑스에게 에너지빈곤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고자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무게를 싣고 있다. 내년까지 에너지 소비량 10% 감축, 2050년까지 40% 감축을 목표로 한 절약 대책을 발표하고 대대적인 에너지 효율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에너지 효율화를 위해 주거 환경 개선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는 게 방점이다. 파리 남부 외곽에서 15년째 거주하는 한인 김 씨는 "파리 곳곳에는 낙후된 주거용 건물이 많은 만큼 규제가 까다롭다. 호텔 등을 제외하면 에어컨이 설치된 주택도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월 평균 전기료만 100유로 이상으로 통상 하절기보다 동절기에 에너지요금이 2배 높게 나오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프랑스에서 주거 환경 개선 사업 차원에서 운영하는 정책은 20여개다. 에너지 빈곤층에 한해 주거 개조를 무이자로 자금을 조달해주는 ‘에코 대출’, 주택 개조를 통해 에너지 효율 등급을 올린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주는 제도 등이다. 대표 개조 지원금 정책 ‘마프라임레노브(MaPrimeRenov)’의 경우 지난해 석유·가스 보일러를 재생 에너지로 작동하는 난방 시스템을 변경할 수 있도록 기존보다 예산을 1000유로 증액하기도 했다.아우렐리앙 브루일 RAPPEL 에너지 불안정 프로젝트 책임자는 "에너지가격 상승분 만큼 빈곤층에게 청구된 비용을 돈으로 일시적으로 도울 수 있다. 다만, 에너지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른다면 빈곤층은 갈수록 더 빈곤해질 것"이라며 "에너지 수표 제도 등이 급하게 불을 끄는 해결책이라면 노후된 냉·난방 시설과 건물을 개조해 에너지비용 자체가 삭감될 수 있도록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inahohc@ekn.kr프랑스 파리시에 위치한 프랑스 에너지환경청(ADEME) 건물. 사진=조하니 기자이졸데 드발리에르 프랑스 환경에너지관리청(ADEME) 산하 국립 에너지 빈곤 관측소(ONPE) 에너지 빈곤 프로젝트 매니저. 사진=ONP파리 외곽에 위치한 프랑스 주거부문 에너지빈곤 행위자연대(RAPPEL)소속단체 CLER(재생에너지협회) 건물 외부전경. 사진=조하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