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김연숙 기후에너지부 부장, 정리=이원희 기자, 사진=송기우 기자"에너지요금에 원가를 반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에너지 소비자의 합리적 소비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도시가스 원료비와 전력 연료비에 대한 인상분 또는 인하분을 판매요금에 반영하는 것이 기본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김현제(60)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지난달 21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지난달 29일 에경연 원장으로 취임한지 100일을 맞았다. 김 원장은 에너지정책분야 최대 규모의 연구기관 수장으로서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전기·가스요금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는 에너지원가 인상이 에너지요금 인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에너지 소비를 줄이거나 에너지 효율을 높이지 못해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이같은 이유로 김 원장은 정치에 얽매이지 않은 에너지요금 체계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주요 연구정책 과제로 제시했다.그는 지난 1996년 에경연에 입사해 해외정보분석실장, 전력정책연구실장, 연구기획본부장, 부원장 등을 거치며 27년간 에경연에서 근무한 내부 인사 출신이다.에경연 내부에서 소통을 중시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구성원으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다고 알려졌다.실제로 만난 김 원장은 오랜 기간 에경연에서 얻고 배운 경험을 공유하며 에경연에 아낌없는 애정을 보였다.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한 질문에는 학자로서 과학에 기반한 객관적인 사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그는 최근 직면한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를 하겠다고 알렸다.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 발전을 둘러싼 정치 갈등에 휘말리기보다는 에너지요금 인상 부담을 최대한 낮추는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조합)의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겠다고 밝혔다.다음은 김 원장과의 일문일답◇ "원장 취임 후 전력정책연구실 선임부서 조직개편…탄소중립 주도적 역할해야"- 원장으로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다. 소감을 듣고 싶다.▲ 취임 후 지금까지 내부에 산적한 현안들을 파악하고 해결점을 모색하느라 바빴다. 대표적으로 정부의 에너지 분야 국정과제를 지원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전력정책연구본부를 만들고 그 안에 전력정책연구실을 선임부서로 내세우고 그 밑에 원전과 재생에너지실을 뒀다. 이전에는 재생에너지실이 가장 선임부서였다.에경연은 지방 이전과 인력 유인책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력 유출이 늘어나고 우수인력 확보도 힘든 실정이다.하지만 탄소중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에경연이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에경연에는 1996년부터 입사해 오랜 기간 근무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동안 에경연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체감하는 연구원의 변화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지방이전으로 인한 소재지 변화, 외형적 성장, 연구영역의 확장이라고 말하고 싶다.에경연은 1986년 9월 서울 장안동 청사에 터전을 삼고 개원한 이래 의왕청사 시절(1991년 1월~2014년 12월)을 거쳐 지난 2014년 12월 29일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에 따라 울산 혁신도시에 새 터전을 잡았다. 올해 울산으로 이전한지 만 9년이다. 아무래도 정부 과천청사나 유관 기관들이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의왕청사 시절에 비해서는 대정부 정책지원 활동이나 기관 간 협동연구를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니 과거에 비해 연구진들의 출장이 잦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에경연은 청사 규모뿐 아니라 박사급 연구진을 포함한 연구 인력이나 예산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연구영역도 크게 확장됐다. 에경연 설립 초기에는 에너지 수급 안정과 중장기 에너지정책 수립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주요 연구영역이었다. 지금은 본연의 업무에 더해서 다자 간 에너지국제협력, 기후변화 대응뿐 아니라 에너지 신시장과 관련한 새로운 연구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 "에너지 이슈 국민적 관심 뜨거워져…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연구로 국민과 적극 소통"-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에너지 이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체감하는가.▲ 재생에너지 보급이 확산되고 에너지시스템이 중앙집중형에서 분산형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각종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변화했다. 국민들이 에너지요금 변화에 대해 피부로 체감하는 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또한 원전이나 재생에너지에 대한 개인이나 단체들의 가치판단이 더해지면서 에너지 이슈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과거 어느 시절보다 뜨겁게 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에너지 이슈가 국민적인 관심사항이 된 이유를 하나만 선택한다면 ‘수용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에너지믹스 정책에 대한 수용성, 에너지인프라(예를 들면 송전망 건설)에 대한 수용성, 에너지요금정책에 대한 수용성 등 다양한 현안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이나 과학적인 결과를 왜곡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이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는 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에경원은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연구와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에너지 정책의 정치화 해결에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에너지정책 수립 기반을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책임감이 클 것 같다. 에경연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에경연은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과학적 근거 및 방향을 만들어가는 IPCC 활동을 지원 및 참여하는데 사명감을 갖고 있다. IPCC 제6차 종합보고서에서 청정에너지 발전 확대와 더불어 탄소배출 저감 기술(CCS, CDR 등)의 역할이 강조된 만큼 관련분야 연구개발(R&D) 및 민간부문 투자 활성화 전략 마련 시 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다.- 에너지가격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보다 비싼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 에경연은 유가가 하락하던 상반기에도 OPEC+의 감산, 러시아 석유 금수조치, 계절적 수요 증가 등의 요인으로 유가는 하반기부터 상승할 것으로 전망해 왔다. 실제 최근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서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천연가스 가격은 지난해 동기 대비 하향 안정화 추세로 전환하나 예년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앞으로 세계 에너지 시장은 경제와 안보를 중심으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국가들의 합종연횡과 함께 차세대 블루오션인 청정에너지 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각축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전기, 가스요금 인상에 원료비연동제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서 최근 한전 부채가 200조원을 넘어섰고 가스공사 미수금도 14조원에 이르렀다.▲ 에너지 가격체계는 오래된 연구주제이지만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원가주의에 기반한 에너지 요금체계 구축은 에경연을 비롯한 학계의 공통된 견해다. 원가주의에 기반해 가격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너지 소비주체의 합리적인 소비와 에너지 효율향상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도시가스의 원료비, 전력의 연료비에 대한 인상분 또는 인하분을 판매요금에 시의적절하게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다.하지만 에너지 요금 정상화 역시 수용성을 확보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에너지 요금 인상이 가계 및 기업의 지출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가주의에 입각한 요금정책의 필요성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원가를 비롯해 환경 및 안보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는 가격 체계를 실현해야만 탄소중립의 실현가능성이 제고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전기, 가스 요금을 독립적으로 결정하는 에너지규제위원회 설립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졌는지.▲ 규제기관을 만들더라도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규제기관이 되지 못하면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치이게 된다.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전문적, 독립적이고 정치적 외압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드는 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재생에너지 보급 여건 불리해…CF100 우리 현실에 더 맞는 수단"- 윤석열 정부는 원자력 발전 확대로 에너지 안보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하지만 원전은 주민 수용성 확보나 방사선 폐기물을 처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어렵다고 평가받는다.▲ 원자력 발전은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격리해 관리해야 하는 제한사항이 있다. 원전 내에 임시 저장한 사용후핵연료의 포화시점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원전가동 중단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현재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확보를 위한 법률안들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타협이 쉽지 않다.하지만 원자력은 직접적인 탄소배출 없이 많은 양의 전력을 안정적이고 경제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다. 현재 기술수준에서는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유일한 무탄소 전력 전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원자력을 탄소중립 실현가능성과 에너지 안보의 제고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한다. 전력공급을 비용 효율적이면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고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과 가격 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어 합리적인 정책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을 적극 지원했다. 정권에 따라 에너지정책이 계속 뒤바뀌는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확대는 필수적인 요소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면적, 높은 인구밀도로 재생에너지 보급 여건이 다소 불리하다. 게다가 전력계통 확충 및 안정성 확보, 주민 수용성 등 다양한 과제에 직면했다.따라서 발전부문의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서는 태양광, 풍력 등 변동성 재생에너지가 가지는 한계를 보완할 원전, 수소·암모니아 등 ‘무변동성 청정발전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2021년 미국 클린에너지테스크포스는 캘리포니아주가 2045년 탄소중립을 달성한 상황을 전제로 전력믹스 변화가 발전비용에 미치는 영향을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조합을 활용하는 경우에 비해 원전, 수소, CCS(탄소포집·저장) 등의 자원을 추가적으로 활용하는 경우 발전비용이 32~53%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2045년 탄소중립을 달성하면서도 전력가격은 현재와 유사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가운데 두고 정치화하는 소모적인 논쟁에서 탈피해 모든 수단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우리가 가진 역량을 활용해야 한다. - 재생에너지 전력을 100% 채우는 RE100에 무탄소 전원인 원자력 발전을 추가로 넣은 CF100을 정부에서 밀고 있다. 하지만 야당에서는 CF100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잠재량 및 경제성 부족, 독립계통의 현실 등으로 인해 기업이 RE100을 이행하기에 상당히 불리하다. CF100은 원전 비중이 높고 청정수소 등에 기술개발 및 투자를 늘리고 있는 우리 현실에 맞는 유리한 이행 수단이라 평가할 수 있다. 다만, CFE100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과제가 있다. 우선 CF100과 RE100은 대립 구도가 아닌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기업의 자율적 이행 수단의 확대라는 인식이 필요하다.이와 동시에 국내 현실을 고려한 무탄소 에너지 인증 및 정책이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고 나아가 국제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국가 간 협력 및 제도 확산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에경연의 3년 후 모습을 어떻게 기대하는가▲ 경영목표를 세울 때 중장기 목표로 에경연을 ‘대체 불가능한 연구기관’으로 만들기로 정했다.에경연 내부는 결속하고 외부로부터 중립적이며 에너지정책에서 방향성을 제공하는 최고의 연구기관이 되겠다.□ 김현제 원장 프로필 ◇약력 △1962년 출생 △동인고, 부산대 경제학 학사·석사, 미국 버지니아대 경제학 박사 △ 1996년 에경연 입사 △에경연 해외정보분석실 실장, 전력정책연구실장, 연구기획본부장, 부원장 △ 2023년 에경연 원장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지난달 21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기자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지난달 21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기자김현제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이 지난달 21일 에너지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송기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