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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5주년] [기업도 뛴다①] 재계 직원 복지 강화···혜택 늘리고 新제도 도입 활발

'인구감소 시대'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기업들도 열심히 뛰고 있다. 출산 직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가 하면 다양한 복지 혜택을 늘리며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올해 초 부영그룹의 '통큰 결단' 이후 출산 장려 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부영그룹은 올해 초 출산한 직원들에게 각각 1억원씩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2021년 이후 자녀를 낳은 직원 70명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부영은 학자금 지급, 의료비 지원 등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사내 복지도 강화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경기도 수원 디지털시티에 '제4어린이집'을 신축하고 지난달 9일 개원식을 가졌다. 삼성전자는 이번 개원을 통해 보육 정원 총 1200명, 건물 연면적 총 6080평의 단일 사업장 기준 전국 최대 규모 어린이집을 보유하게 됐다. 전국적으로 보면 삼성전자는 8개 사업장에 정원 총 3100명 규모로 12개의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유급 15일(다태아 20일)의 배우자 출산 휴가와 유급 5일의 난임 휴가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배우자 유·사산 휴가(유급 3일) 등 법정 기준이 없는 제도를 마련해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통해 9세 이하 자녀 1명당 최대 1년간 하루 4시간만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SK텔레콤의 경우 임신·출산 관련 모든 휴가는 '셀프 승인'을 하고 있다. 입학 자녀를 위한 돌봄 휴직(90일·무급)도 가능하다. 현대차·기아는 남녀 모두 자녀 1명당 최대 2년의 육아 휴직 사용이 가능하다. 난임 휴가도 3일 전체 유급이다. LG전자 역시 난임치료 휴가 3일 모두 유급 휴가로 확대했다. 실제 난임 휴가를 사용하는 직원 수는 2020년 30여명에서 2021년 40여명, 지난해 60여명으로 늘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2017년부터 남성 직원에게 한 달 동안 의무 육아 휴직 기간을 부여하고 있다. 셋째를 출산한 임직원에게는 2년 동안 승합차를 무료로 탈 수 있게 지원하기로 했다. 쌍방울그룹도 올해부터 직원이 자녀 3명을 낳으면 최대 1억원을 주기로 했다. 5년 이상 근속자가 첫째와 둘째를 낳으면 3000만원씩 주고, 셋째까지 낳을 경우 4000만원을 더 지급하는 식이다. 콜마홀딩스는 셋째가 태어나면 2000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주고 유급 육아휴직을 남녀 구분 없이 할 수 있도록 최근 의무화했다. 출산장려금은 첫째와 둘째 1000만원, 셋째 2000만원으로 각각 상향 조정된 것이다. HD현대는 초등학교 취학 전 3년 동안 자녀 1인당 유치원 교육비를 최대 1800만원까지 지원하고 있다. 농기계 전문기업 TYM 역시 첫째 출산 시 1000만원, 둘째 3000만원, 셋째 이상은 1억원을 준다고 약속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총선 공약 월드컵' 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제22대 국회가 '민생'(33.6%)과 '저출생 해결'(22.7%)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가 지난 2월 집계한 '제22대 총선에 바라는 국민과 기업의 제안'에서는 한국 경제 리빌딩(Rebuilding)을 위해 국회가 '저출산 극복 및 초고령 사회 대비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49.8%)이 가장 많이 모였다. 국민들이 정치권에 저출생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가운데 재계도 이에 적절히 발을 맞춰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최저 임금 차등 적용을 통한 외국인 가사 도우미 도입, 인프라 확충에 대한 세금 지원 등 (출산 장려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가 추가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바꿔야 산다” 재계 ‘리더십 교체’ 승부수 띄운다

재계 주요 기업들이 리더십을 교체하며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고 있다. 정기 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과감하게 수장을 바꾸거나 새 인물을 발탁하는 등 의사결정을 발 빠르게 내리고 있다. '복합위기' 국면 위기를 극복하고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날 반도체 사업부 수장을 전영현 미래사업기획단장(부회장)으로 교체하는 '원 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구체적으로 전 부회장을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에, 전 부회장이 맡고 있던 미래사업기획단장에는 기존 DS부문장이었던 경계현 사장을 각각 임명했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황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 삼성전자가 미래 경쟁 패권에서도 일부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DS부문에서 14조880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인공지능(AI) 열풍이 불며 급성장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에서는 경쟁사에 밀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사적 역량을 동원해 기술력을 개발해온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등판한 전 부회장은 과거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 중 한 사람이다. LG반도체 출신으로 2000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로 입사해 D램·낸드플래시 개발, 전략 마케팅 업무를 거쳐 2014년 메모리사업부장을 역임했다. 2017년에는 삼성SDI 대표를 맡아 회사 체질을 개선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이와 함께 신임 의료기기사업부장 겸 삼성메디슨 대표로 유규태 의료기기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부사장)을 임명했다. 삼성전자의 의료기기 자회사 삼성메디슨은 지난 2011년 초음파 의료기기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벤처업체인 메디슨을 인수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동안 회사를 이끌었던 김용관 부사장은 사업지원TF 소속으로 전환 배치했다. CJ그룹 역시 위기 극복 차원에서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을 수시로 바꾸고 있다. 지난 3일 이건일 CJ프레시웨이 대표를 신규 선임하고 3월에는 윤상현 CJ ENM 커머스 부문 대표를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로 낙점했다. CJ그룹은 작년 정기 임원인사를 올해 2월 단행했다. 당시 강신호 CJ제일제당 대표, 신영수 CJ대한통운 대표 등에게 지휘봉을 맡겨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재계에서는 CJ가 정기인사 이후 3개월여만에 주력사 리더십을 또 교체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5년만에 계열사 현장 점검에 나서는 등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신세계그룹도 지난 4월 신세계건설 대표를 바꾸는 쇄신 인사를 단행했다. 기존 정두영 대표를 경질하고 신임대표로 허병훈 경영전략실 경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한 것이다. 허 부사장은 '재무통'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룹의 재무 관리를 맡아온 이력이 있는 만큼 향후 신세계건설의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KG모빌리티(KGM)는 지난 13일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해외사업본부장 황기영 전무와 생산본부장 박장호 전무를 대표이사로 각각 선임했다. 이에 따라 KGM은 곽재선 회장을 포함해 3인 각자 대표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경영 효율성 제고와 국내외·서비스사업, 생산 부문에서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게 업체 측 구상이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OCI홀딩스, ‘ESG경영협의회’ 출범

OCI홀딩스가 'OCI ESG 경영협의회'를 출범했다고 22일 밝혔다. OCI ESG 경영협의회는 OCI홀딩스 이우현 회장 및 서진석 사장을 비롯해 OCI 김유신 사장, OCI Enterprises 김청호 부사장, OCIM 최성길 전무 등 OCI그룹 주요 계열사의 경영진 총 16명으로 구성된다.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은 “이번 OCI ESG 경영협의회 신설은 국내외 전 계열사에 지주사 중심의 ESG경영 체계를 내재화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면서 “앞으로 경영 전반에 ESG를 적용하라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보다 고도화된 ESG경영 체계를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미래성장을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요동치는 국제 정세···재계 ‘맞춤 전략’ 찾기 분주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각종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재계 주요 기업들은 '맞춤 전략'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중동, 미국, 중국 등 주요국에서 연이어 사건·사고가 벌어지고 있어 유가·환율 등 변동 추세를 전망하기 힘든 상황이다. 21일 재계와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있는 중동에서는 최근 '대형 변수'가 또 생겼다. 이란 내 권력서열 2위인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숨지면서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스라엘 본토 미사일 공격 등을 주도한 '초강경파'다. 임기 2년차인 2022년에는 이른바 '히잡 시위'를 유혈 진압하기도 했다. 당장은 모크베르 수석부통령이 행정부 수반을 대행하고 이르면 7월 중 대선이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 사회는 라이시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이란 정국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반서방 보수파가 리더십을 유지했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히잡 시위를 유혈진압한데다 서방과 거리를 두며 경제난이 계속 심각해진 영향이다. 재계는 일단 유가가 움직이는 방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20일(현지시간)까지는 6월물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와 두바이유 등 가격이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다만 향후 중동 정세 변화에 따라 가격이 급등락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변수도 있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최근 일본 방문을 취소한 것도 고령인 압둘아지즈 국왕의 건강 악화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가 크게 오를 경우 중국발 저가 공세에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원료 부담 상승으로 고사 위기에 놓일 수 있다. 정유사들 역시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가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연료비 부담이 직접적으로 커지는 여행·항공 업계나 해운사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향후 중동 분쟁 격화로 유가 급등 시 한국의 올해 4분기 물가상승률이 최대 4.98%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 '정치 리스크'가 커지고 있는 것도 재계 입장에서는 고민거리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그간 미국 정부의 지원책을 믿고 현지에 조 단위 투자를 이어왔다. 미국은 최근 중국을 대상으로 '관세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그에 따른 피해에 대응한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상 대선을 앞둔 '표심 경쟁'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물리던 25%의 관세를 올해 100%로 인상하기로 했다.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와 배터리 부품은 기존 7.5%에서 25%로 상향된다. 중국산 레거시(범용) 반도체 관세도 25%에서 내년 50%로 올린다. 천연 흑연, 영구 자석의 관세율은 0%에서 2026년 25%로, 그 외 핵심광물은 0%에서 올해 25%로 각각 뛴다. 완성차·이차전지 기업들은 해당 결정의 후폭풍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경쟁하는 중국 업체들과 미국 내 경쟁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철강 업계는 중국발 출혈경쟁이 예고되면서 표정이 좋지 않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현금 살포'를 한다는 점도 우리 경제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정부의 돈 풀기가 잠잠해지는 듯 했던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해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양안 관계도 복잡해졌다. 친미 독립 성향의 라이칭더 대만 총통이 정식 취임하면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울 확률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한중국대사관 대변인은 지난 20일 총통 취임식에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 등이 참석한 것과 관련 “중국 측은 이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고 규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같은 시기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로 더욱 돈독해지는 모습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시진핑 중국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진 이후 별도로 전문을 보내 “우리의 상세한 협상들이 러시아와 중국의 포괄적 파트너십과 전략적 상호작용을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우리 기업들은 서방 제재로 러시아 등에서 사업 규모를 축소하며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거대한 소비 시장인 중국에서는 애국소비 열풍이 불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소비재들이 외면받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는 '프리미엄 전략' 등을 구사하며 중국을 공략할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현장 경영’ 박차···복합위기 돌파 의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현장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두 달여간 방산·금융 등 주요 계열사를 네 차례 방문하며 '복합위기' 돌파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치고 있다. 김동관 부회장, 김동원 사장, 김동선 부사장 등의 '형제 경영' 안정화에도 일정 수준 힘을 실어주고 있는 모양새다. 21일 재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전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방산부문 창원사업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하고 사업현황을 점검했다. 그는 지난해 4월 통합 출범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영 현황과 글로벌 시장개척 전략 등을 보고받았다. 현장에는 김 회장의 장남이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김동관 부회장도 자리했다. 김 회장은 생산 현장을 둘러본 뒤 사업장 내 식당에서 호주 레드백 수출에 기여한 직원 및 사내 부부, 신입사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김 회장은 “신규시장으로 현재 추진중인 루마니아의 K9 사업 수주에 총력을 다해 유럽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유럽을 넘어 북미 등 전 세계 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자주국방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글로벌 시장 개척과 첨단기술 기반 미래 사업을 선제적으로 준비해 달라"고 주문했다. 앞서 김 회장은 지난달 25일 한화생명 본사인 서울 여의도 63빌딩을 방문했다. 한화금융계열사의 임직원을 격려하고 종합금융그룹으로서의 혁신과 도전을 당부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는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CGO, 사장)가 함께했다. 김 회장은 임직원과 함께한 자리에서 “금융업에서 혁신의 길은 더욱 어렵다. 해외에서도 베트남 생보사를 시작으로 이제는 인도네시아 손보·증권업까지 사업영역 확장을 추진 중"이라며 “그 결과 우리 한화는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 투자를 통해 새로운 사업영역인 은행업에도 진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러한 성과는 한계와 경계를 뛰어넘는 '그레이트 챌린저'로서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이날 63빌딩에서 직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내카페와 도서관을 방문해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한화생명 e스포츠 게임단인 'HLE' 선수단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달 7일에는 판교 한화로보틱스 본사를 찾았다. 로봇 기술 현황을 점검하고 임직원을 격려한 김 회장은 “로봇은 그룹의 중요한 최첨단 산업"이라며 “차별화된 혁신 기술을 개발해 달라"고 했다. 이날은 한화로보틱스 전략 기획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김동선 부사장이 김 회장을 보필했다. 김 회장은 또 지난 3월29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 연구개발(R&D) 캠퍼스를 방문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차세대 발사체 사업 단독협상자 선정을 축하하고 연구원들을 격려하는 차원이다. 김 회장은 김동관 부회장과 사업 현황을 점검하고 간담회를 가졌다. 재계에서는 김 회장의 적극적인 '현장 경영'을 복합위기 극복을 위한 행보로 본다.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방산·조선 등 신사업 육성이 필요한 시점에 직원들과 소통하며 리더십을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김 회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레이트 챌린저'가 되자"고 했다. 이후 사업장에 방문할 때마다 해당 메시지를 연이어 강조하며 임직원들의 사기를 올리고 있다. 5년여만에 재개된 김 회장의 현장 행보에 세 아들들이 동행했다는 점도 관전 포인트다. 세 아들이 물려받을 사업의 균형을 맞춰 승계 구도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화그룹 승계 구도는 지주사인 ㈜한화 지분 정리가 마무리되지 않아 바뀔 여지가 남아있는 상태다. 한화그룹은 최근 한화오션에 ㈜한화의 해상 풍력·플랜트 사업을, 한화솔루션에 ㈜한화의 태양광 장비 사업을 각각 넘기는 '스몰 딜'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또 이차전지 장비 사업을 전문으로 하는 '한화모멘텀'을 ㈜한화의 100% 자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그동안 책임지는 사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김동선 부사장의 경영 보폭이 더 넓어지게 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수혜? 불똥? 美-中 ‘관세 전쟁’ 격화에 韓 기업들도 ‘예의주시’

미국이 중국과 '관세 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우리 기업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과 직접 경쟁하는 배터리 등 일부 품목에서 반사이익이 기대되지만 중국의 보복 방식 등 불확실성이 높아 장기적으로는 악재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16일 재계와 주요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과 그에 따른 피해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중국산 일부 품목의 관세를 대폭 인상하기로 했다. 주요 표적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태양전지 등 첨단 제품과 주요 광물이다.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물리던 25%의 관세를 올해 100%로 올리기로 했다.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와 배터리 부품은 기존 7.5%에서 25%로 상향된다. 중국산 레거시(범용) 반도체 관세도 25%에서 내년 50%로 인상한다. 천연 흑연, 영구 자석의 관세율은 0%에서 2026년 25%로, 그 외 핵심광물은 0%에서 올해 25%로 각각 올라간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속내가 복잡하다. 전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중국산 전기차의 미국 진출이 사실상 막혔다는 점은 일단 호재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현대자동차·기아는 미국에 전기차 전용공장을 지으며 친환경차 시장 공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유럽 등에서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한 저가형 중국 제품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BYD는 테슬라를 제치고 지난해 글로벌 전기차 판매 1위 브랜드 자리를 꿰찼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산 부품을 대거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변수다. 미국의 포괄적 관세 조치 대상에 자동차 부품까지 포함될 경우 오히려 '관세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셈이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한국산 제품 가격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이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진입장벽을 세웠지만 CATL, BYD 등은 틈새를 공략하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이 LFP 등 저가형 제품을 주력으로 내세우는 만큼 배터리 관세 인상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도체 업계는 이번 조치를 다소 관망하고 있다. 한국은 첨단 반도체, 중국은 저가 구세대 범용 반도체 위주로 주력 분야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를 봐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첨단 제품 기술을 확보하는 경쟁을 벌이는 반면 중국은 아직 범용 제품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철강 업계 표정은 좋지 않다. 중국 철강 기업들이 국내를 비롯한 전세계 시장으로 물량을 밀어내면서 출혈경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미국 정부가 정한 쿼터 범위에서 철강 제품을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어 중국산 제품이 미국으로 들어가지 않는 데 대한 반사이익도 누리기 힘들다. 무역 업계는 일단 상황을 낙관적으로 해석하는 모습이다.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1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무역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된 한국 특파원과 간담회에서 “상황이 어떻게 진전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면서도 “(미국의 대중 관세폭탄이) 한국 기업에 불리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의 보복 등 글로벌 통상 관련 불확실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우리 기업들에게 장기적으로는 악재로 꼽힌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은 일관되게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위반한 일방적 부가 관세에 반대해왔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며 “모든 필요한 조처를 해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에서는 이번 관세 인상 조치가 미국 대선 캠페인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며 “전일 CSI300지수는 0.8% 하락 마감하고 전기차·반도체·철강 등 섹터가 약세를 보였으나 낙폰은 크지 않았다. 경제적 손실이 크지 않고 미국의 대중국 규제에도 어느 정도 면역력이 형성된 까닭"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11월 대선을 앞두고 초당적 '중국 때리기'는 지속될 공산이 커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우리 기업 입장에서는) 불확실성에 대비해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세계로 뻗어가는 CJ그룹···내실 다지고 혁신 도모한다

CJ그룹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식품, 뷰티, 문화 등 핵심 역량을 앞세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경영에 복귀한지 7년이 지난 가운데 내실을 다지고 혁신을 도모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2017년 5월17일 경영 일선에 복귀한 뒤 굵직한 인수합병(M&A)과 체질개선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다.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재무구조 등에서 압박을 받기도 했지만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며 순항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의 최근 경영 트렌드 중 눈에 띄는 부분은 '현장'이다. 그는 올해 초 CJ올리브영 본사를 방문해 임직원들과 의견을 나눴다. 이 회장이 계열사를 방문한 것은 2019년 이후 5년여만이다. 이튿날 서울 종로구 CJ대한통운 본사도 찾았다. 그는 주요 부서를 돌면서 직원들을 격려한 뒤 “온리원(ONLYONE) 정신에 입각해 초격차 역량 확보를 가속화하고 대한민국 물류를 책임진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산업 전반의 상생을 이끌어 나가자"는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전했다. 또 다른 특징은 기존 상식을 뒤엎은 인사 결정이다. CJ는 지난해 말 정기 임원이사 시즌을 조용히 넘어갔다. 대신 지난 2월 '선택과 집중' 형태의 결단을 내린 뒤 대표인사 인사를 수시로 단행하고 있다. 이달 초 이건일 CJ 사업관리1실장이 CJ프레시웨이 대표로 선임됐다. 지난 3월에는 윤상현 CJ ENM 커머스 부문 대표가 엔터테인먼트 부문 대표로 발탁됐다. 주요 계열사들도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매출 17조8904억원, 영업이익 8195억원의 실적을 기록했다. 바이오 등 부진으로 전년 대비 하락한 수치지만 식품사업 부문이 해외에서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슈완스 인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데다 미국 등에서 '비비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진 영향이다. CJ대한통운 역시 지난해 매출 11조7669억원, 영업이익 4802억원을 기록하며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성공 신화'를 쓴 올리브영도 해외로 간다. CJ올리브영은 올 상반기 중 일본법인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소비 성향이 한국과 유사한 데다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북미와 더불어 글로벌 진출 우선 전략국가로 선정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올리브영은 2014년과 2018년 각각 미국과 중국에 법인을 세우고 현지 시장에 진출했다. 아직까지는 온라인 사업만 하고 있다. 수익성 회복에 시동을 건 CJ ENM은 흑자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프리미엄 콘텐츠 라인업의 확대를 통해 플랫폼 경쟁력을 극대화하고 채널 및 디지털 커머스를 강화해 수익 확대를 지속하겠다는 목표다. 재계에서는 매끄러운 세대교체를 CJ그룹 최대 숙제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이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함께 식품·뷰티·콘텐츠 분야에서 결실을 맺은 가운데 3세 승계 작업을 잡음 없이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과 장녀 이경후 CJ ENM 브랜드 전략실장이 임원급으로 활동 중이다. 그룹 지주사인 CJ(주) 지분은 이 회장이 42.07%를 들고 있는 반면 이선호 실장(3.2%)과 이경후 실장(1.47%)은 거의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AI 반도체’ 미래 경제패권 가른다···“정부 지원책 더 촘촘해져야”

'인공지능(AI) 반도체'가 미래 경제패권을 가를 수 있는 핵심 기술로 급부상하면서 우리 정부가 기업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관련 시장 성장세가 워낙 가파르다보니 미국, 중국 등이 자국 기업 연구개발(R&D)에 막대한 보조금을 쏟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3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AI 반도체 시장 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규모는 지난 2022년 411억달러(약 56조원)에서 2028년 1330억달러(약 182조원)로 연평균 21.6% 성장할 전망이다. AI 반도체는 AI 알고리즘을 실행할 능력을 갖춘 제품을 뜻한다. PC·스마트폰 뿐 아니라 데이터센터, 가전, 자동차 등 수요처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온디바이스 열풍과 사물인터넷(IoT) 기술 발달에도 AI 반도체의 역할이 상당하다. 전세계 기업들은 기술 개발과 고객사 확보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엔비디아, AMD, 인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 뿐 아니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등 빅테크들도 참전한 상태다. AWS(Amazon Web Service)는 세계 1위 클라우드로 2018년부터 AI 반도체를 개발해왔다. 다른 클라우드 사업자 대비 자사 칩 개발 및 사용에 적극적인 편이다. MS는 세계 2위의 클라우드 기업이다. 지난 2019년부터 AI 반도체를 개발했다. 작년 11월 처음으로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를 공개하기도 했다. 구글은 보다 앞선 2016년 관련 제품을 발표하고 5세대 제품까지 개발을 완료했다. 이밖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태동하며 시장 변화를 이끌고 있다. 국내 AI 반도체 기업은 삼성·SK·LG를 포함해 10여개 수준이다. 모바일, 가전 등 온디바이스 부문에서 일부 제품을 상용화했으며 데이터센터 부문은 사업을 본격화하는 단계다. 특히 SK하이닉스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 성장을 견인하는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해당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기술 수준이 아직 미국 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미국의 기술력을 100으로 놨을 때 한국은 80으로 기술 격차가 2.5년 정도 난다고 진단했다. 이는 중국(90), 유럽(85)에도 밀리는 수치다. 주요국들은 육성 정책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민간기업이 AI 반도체 개발을 주도하며 국방부는 차세대 반도체 리더십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기술과제 해결을 지원하고 있다. 상무부는 국내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 등을 지원 중이다. 산·학·연 중심 중장기 프로젝트를 다양하게 진행하며 기업의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시행된 '칩스법' 역시 산업 생태계 조성 등 관련 기업들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현금을 살포하고 있다. 정부가 AI 반도체 설계와 제조 역량 확보를 위해 화웨이, SMIC 등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의 제재 등으로 AI 연산을 위한 컴퓨팅 자원 확보가 어려워지자 자국 AI 반도체 육성 지원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만·일본도 핵심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지난 2020년 '인공지능 반도체 산업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2030년 글로벌 시장 점유율 20%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경기 화성시 소재 반도체 기업 에이치피에스피 본사에서 진행된 소부장 기업 간담회에서 “반도체 지원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규모는 10조원 이상 대규모로 하려 한다"고 언급했다. 업계는 정부가 직접적 재정 지원을 포함해 다양한 정책을 펼치길 기대하는 모습이다. 올해 일몰 예정인 국가전략기술투자세액공제 일몰 연장 등도 국회에서 논의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이나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황이며 AI 반도체는 성장 초기 단계로 한국이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제고할 기회"라며 “AI 반도체 경쟁력 제고는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인 휴대폰, 자동차, 조선, 가전 등을 똑똑하게 만들어 산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개발자금 지원, 레퍼런스 구축, 수요산업과 협력 강화, 팹리스-파운드리의 유기적 협력관계 도모 등이 요구된다"며 “중동·유럽 등이 국가안보, 지정학적 이슈로 AI 반도체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기업의 해외진출에 대한 정부의 외교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재계 ‘새 먹거리’ 의약품, 中 위주 공급망 구조 탈피 숙제

반도체, 이차전지와 마찬가지로 의약품 분야에서도 원재료 중국 수입 비중이 높아 공급망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약 업계 뿐 아니라 재계 주요 기업들이 바이오·의료기기 등 분야를 '새 먹거리'로 낙점하고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상황이라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9일 산업연구원 '한·중 첨단산업의 공급망 구조 변화와 대응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총수입액은 29억1000만달러(약 4조원)로 집계됐다. 이 중 대중국 수입액은 10억달러(약 1조 3680억원)로 34.3%에 달했다. 의약품 완제품이 미국, 벨기에 등 선진국에서 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과 대조된다. 이 같은 대중국 공급망 의존 비율은 반도체 같은 첨단산업과 비슷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반도체 소재·부품·장비의 중국 의존도는 34%로 나타났다. 이차전지 원자재의 경우 중국 수입 비중이 64.6%에 달했다. 의약품 주요 수입 품목을 살펴보면 아황산나트륨, 황화합물, 모르포린, 기타 항생물질 등 1차 가공원료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격이 저렴해 중국산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기업들은 현지에 진출해 활로를 개척하는 방향으로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있다. 한미약품, 대웅제약 등은 중국에서 만든 의약품을 모두 현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SK바이오팜, JW중외제약 등은 중국에 신약 파이프라인 기술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의약품 산업은 중국 시장 진출, 제3국 진출 등 판로 개척의 미래 중요도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정부 역시 외자 유치와 인허가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간 무역갈등이 점점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공급망을 의존하다가 미국의 제재 범위에 해당 원재료가 포함될 경우 피해가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해 '요소수 대란' 등을 통해 경험한 중국 정부의 수출 통제 정책도 변수로 꼽힌다. 재계는 제약·바이오 등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보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고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소득수준이 올라가는 중진국에서도 수요가 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10년대 이후 바이오 분야에 매년 조 단위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SK그룹, LG그룹, 롯데그룹 등도 바이오·헬스케어 등 사업을 신성장동력이라고 공식화한 상태다. 삼성전자의 의료기기 자회사 삼성메디슨은 전날 프랑스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업체 소니오를 약 1265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오리온그룹은 올해 초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옛 레고켐바이오)를 사들였다. 경영권 분쟁으로 무산되긴 했지만 OCI그룹은 최근 한미약품그룹과 통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의약품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찾는 동시에 협력 모델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기적으로 중국 소재에 대한 의존성을 낮출 수 없다면 현지 기업을 한국에 유치하는 식으로 공급망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심우중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신산업실 전문연구원은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은 우리에게 큰 도전이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활용해 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며 “대중국 공급망에 대한 전략 수립 시 의존도 탈피라는 획일적인 전략보다는 미-중 갈등 아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굳어지는 전세계 ‘신냉전’ 구도···韓 기업도 살길 찾는다

러시아·중국이 정치·경제적 이유로 서구권과 각을 세우며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자 우리 기업들도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지구촌'에 제품을 수출하며 먹고살았던 과거 성공 방정식으로는 앞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적극적으로 신시장을 개척하고 기술 우위를 확보하며 위기대응 능력을 키우고 있다. 8일 정재계에 따르면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정립됐던 국제 질서는 최근 붕괴 위험에 놓였다.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굵직한 사건을 겪으며 각국의 경제 환경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중동 등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세계의 경찰' 역할을 수행하던 미국은 '자국우선주의'로 노선을 수정했다. 곳곳에서 기상이변 현상이 벌어지고 있지만 '탄소 중립' 달성에 대한 속내도 모두 다르다. 주요국에서는 극우·극좌 정치인들이 득세하며 '정치리스크'까지 불거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크렘린궁에서 진행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5번째 취임식 역시 이 같은 '신냉전' 구도를 잘 보여준 예로 꼽힌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 상당수는 이번 행사에 불참하며 푸틴이 합법적으로 러시아 대통령으로 선출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국, 독일, 캐나다, 스페인,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러시아 주재 대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서방과 러시아·중국이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아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유럽 순방길에 나서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친중 성향이 강한 동유럽은 물론 프랑스 등에서도 협력관계를 다지며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 역시 필요한 시점에만 손을 잡는 전략적 동반자 성격이 강하다. 글로벌 정세가 복잡하게 흘러가면서 우리 기업들도 해법을 찾고 있다. '신냉전'이 단순한 이념 대립을 넘어 경제적으로 '자국우선주의'를 표방한 국가들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이를 파고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신시장 개척이다. 재계는 △인구·자원이 풍부하고 △경제가 고성장할 가능성이 높으며 △제조업 기반이 마련된 국가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1년 사이 인도를 두 차례 방문했다. 세계 최대 규모 인구를 보유한 인도는 지난해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섰다. 내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4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인도에 생산 거점을 빠르게 확장해 나가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2월 브라질도 찾았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면담하고 현지 투자를 약속했다. 작년 9월에는 한국-인도네시아 경제협력 거점인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셀 합작공장도 점검했다. 삼성전자 역시 인도·브라질 등에서 갤럭시 신제품을 먼저 선보이고 팝업스토어를 운영하는 등 신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전자는 필리핀, 인도, 캐나다, 브라질, 중국 등 전세계 40여개 국가에서 50여개 언어를 지원하는 전화·챗봇 등 온라인 상담센터를 운영 중이다. 중국·러시아 권역에서는 눈치싸움을 벌인다.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을 현지 업체에 팔면서도 상황이 개선될 경우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조건을 걸었다. 삼성전자 역시 현지 연구소 등을 아직 폐쇄하지 않고 있다. '애국주의' 소비 열풍이 부는 중국에서는 전반적으로 몸집을 줄이며 변동성에 대비하고 있다. 기술 '초격차'를 시도하는 것도 신냉전 시대 우리 기업들의 생존법 중 하나다. 국경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생산해 위기를 벗어난다는 생각이다. 조선 3사 등이 만드는 친환경 선박, 반도체 업계가 사활을 걸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이차전지 업계 게임체인저로 부상한 전고체 배터리 등이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공급 예정이던 HBM3E 12단 제품의 양산을 올해 3분기로 앞당기고, 6세대인 HBM4도 2026년에서 내년으로 1년 앞당겨 양산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업계 최초로 '1테라비트(Tb) TLC(Triple Level Cell) 9세대 V낸드' 양산을 시작하며 낸드플래시 시장 리더십을 공고히 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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