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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패션도 과학이다

이제는 패션의 경쟁력을 과학이 좌우한다. 단순히 디자인의 변화로 소비자의 눈을 만족하는 시대는 지났다. 디자인부터 소재까지 모든 부분에서 전문성을 강화한 과학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다. 코오롱스포츠는 지난해부터 러닝, 트레킹 등이 취미로 급부상하는 트렌드에 맞춰 R&D 기반의 제품 개발에 힘썼다. 디자인은 물론 운동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트레일러닝 전용 상품 'TL-X'를 내놓았다. 이 상품은 코오롱스포츠가 자체 개발한 에너지 회복에 최적화된 질소 주입 방식의 하이퍼리프 미드솔을 사용했다. 또 최고급 반발력 소재인 PEPA폼을 복합 적용해 뛰어난 탄성과 안정적인 쿠셔닝을 제공한다. 편안한 착화감은 기본으로 기록 달성까지 가능한 기능성을 담아 제작했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패션기업의 소재 개발은 무한경쟁에 돌입했다. 이랜드월드의 SPA 브랜드 스파오는 2010년 자체 개발한 냉감 소재 '쿨테크'로 여름 시즌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쿨' 라인 제품은 135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215% 증가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쿨테크는 나일론에 냉감 원석을 혼합하고 속건 기능을 가진 폴리에스터와 혼방한 소재로, 시원한 촉감, 흡습속건 기능, 관리의 용이성 등을 갖추고 있다. 네파는 냉감 의류 라인인 컴포(컴포 테크·컴포 쿨) 시리즈를 새롭게 공개했다. 컴포 테크는 접촉 냉감성 나일론 소재를 사용해 몸에 닿을 시 바로 시원한 착용감을 선사한다. 컴포 쿨은 용융사 메시 소재인 마이크로 에어 닷을 활용해 몸의 열기는 원활히 내보내 시원한 착용감을 자랑한다. K2는 소비자의 눈높이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케이랩 시그니처'를 선보였다. 아웃도어 업계에서 유일하게 자체 운영하는 K2연구소가 개발한 이 서비스는 3D스캐너로 발을 분석해 소비자의 발 길이와 폭, 아치 높이 측정부터 보행 분석, 신체 균형까지 종합적으로 진단해 맞춤형 제품을 추천한다. 그동안 매장에서 직원이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제품의 설명을 듣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는 선수나 의료기관 중심으로 제한적으로 활용되던 고급 분석 기술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신체에 알맞은 제품을 과학에 기초해 선택 가능하다. 패션기업 관계자는 “고객들의 소비 패턴이 과거에 비해 디자인보다 기능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며 “각 브랜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소재를 개발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기자의 눈] 은행 ‘PBR 1배’의 벽이 말하는 것

지난 4일 새 정부 출범에 따라 국내 은행주는 급등세를 보였다. 주가가 10만원을 넘어선 KB금융지주를 포함해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모두 장중 52주 신고가를 기록했다. 어수선했던 정치적 분위기가 안정되고 새 정부의 코스피5000 공약 등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주가 상승 속에서도 국내 은행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여전히 1배를 밑돌고 있다. PBR은 기업의 순자산 대비 1주당 몇 배에서 거래되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PBR이 1배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회사가 보유한 자산을 모두 매각하고 사업을 청산했을 때보다 주가가 낮게 거래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장기적으로 PBR 1배를 목표로 삼고 있지만, 달성 가능성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다. 금융지주사별 PBR은 KB금융 0.68배, 신한금융지주 0.53배, 하나금융 0.48배, 우리금융 0.44배에 각각 그친다. PBR이 1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은행 산업이 정책 리스크에 휘둘리고, 은행 산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난해 금융지주사들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을 발표하며 은행의 장기적 성장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정부의 정책 변동성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새로운 정부에서 은행의 상생금융 압박은 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벌어들인 돈을 뱉어내도록 강제하는 구조는 은행이 민간 은행이라기 보다는 공공재란 인식을 더욱 부각시킨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간과할 수는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 상황마다 정부가 나서 은행을 지원했고, 이 과정에서 은행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안전망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하지만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 은행산업의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은행 이익이 정부 방침에 따라 언제든 환원될 수 있는 것이라면 해당 은행을 믿고 장기적인 투자에 나서기 어려워진다. 그 결과가 주가로 반영되고 낮은 PBR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은행의 사회적 역할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방법이 강압적이고 통제적인 성격을 지닌다면 우리나라 은행주가 제 가치를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새 정부가 내건 코스피 5000 시대에 은행주는 어떤 모습을 보일까. PBR 1배란 목표가 꿈이 아닌 현실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은행권, ‘종노릇, 공공재’ 낙인...이재명 정부는 달라야 한다

이재명 제21대 대통령의 임기가 4일 오전 6시 21분 공식 개시됐다. 이 대통령 임기 첫날 코스피는 2% 넘게 올랐고, 직전 연고점인 5월 29일(2720.64)를 경신하며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지수를 기록했다. 새 정부 출범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미중 정상간 대화가 임박했다는 소식에 뉴욕 증시도 상승 마감하면서 국내 증시에 훈풍이 분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윤석열 정부 내내 상생금융 압박에 시달렸던 은행권에는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듯하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1월 30일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라고 발언한 데 이어 같은 해 2월에는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10월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며 깊은 한숨을 쉬셨다"고 전하기도 했다. 금융지주사와 시중은행이 수조원 규모의 상생금융을 발표하고, 금융지주 회장들이 상생금융에 열을 올린 것은 앞서 윤 전 대통령 발언에 대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전 정부의 금융 관련 정책들에 모두 흠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2월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를 목표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공개하고, 주주가치 제고와 자본시장 인프라 개선 등에 집중한 덕에 국내 증시를 바라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시각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 대통령은 금융권을 향한 무조건적인 낙인은 멈추고, 자본시장 선진화, 금융시장 발전 등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현재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 대통령 당선 이후 금융권을 향한 상생금융 압박이 더욱 거세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상당 부분 존재한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월 6개 시중은행장과 간담회를 열고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방안을 이행해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을 향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뛰어넘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전 정부가 주도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지속될 수 있도록 힘을 쏟는 동시에, 금융사들이 보다 의미 있는 방향으로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그것이 이 대통령의 최종 득표수 1728만7513표, 최종 득표율 49.42%에 보답하는 길이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가덕도신공항 문제, 새 정부 직접 나서야

“우리라고 왜 (가덕도신공항 공사를)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일부에선 현대건설이 떼돈을 벌려고 일부러 공사를 시작도 안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무조건 기한 내에 공사를 끝내라고만 하는데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지난달 말 만난 현대건설 한 관계자의 한탄이다. 듣는 순간 현대건설은 이미 가덕도신공항 공사에서 발을 빼겠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결정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그가 명확하게 공사 진행 여부 질문에 확답을 하지 않아 기사화 하지는 못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대화를 주고받은 지 열흘 남짓 지난 후 결국 현대건설은 가덕도신공항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물론 현대건설 입장에서도 일방적으로 무리한 공사를 진행하다가 회사가 위기 상황에 빠질 수는 없으니 '차라리 공사를 접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가덕도 신공항 공사는 현대건설 단독 시공 사업장이 아니다. 현대건설이 지분 25.5%를 들고 있는 주관 시공사이긴 하지만 대우건설과 포스코이앤씨도 각각 18%와 13.5%의 지분을 들고 시공에 공동 참여하는 컨소시엄 프로젝트다. 현대건설은 이번에 사업 불참 결정을 내리면서 공사 파트너인 대우건설과 포스코이앤씨 측과 사전에 그 어떤 협의도 하지 않았다. 해당 건설사에 확인한 결과 이들은 현대건설이 불참 선언을 한 지난달 30일 당일에서야 언론을 통해서 사태를 파악했다고 한다. 대우건설과 포스코이앤씨는 주관사인 현대건설이 사업에 빠지면서 허공에 뜬 상태가 됐다. 앞으로 가덕도신공항 공사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묻자 두 회사 관계자들은 “주관사가 못하겠다고 빠진 상황에서 당장 뭐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고 난감해 했다. 이번 사태는 시공사와 현지 이해 관계자들의 감정 싸움이 결국 파국에 이른 결과다. 그 피해는 부산 시민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이처럼 당사자 간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땐 중간에서 조정에 나서는 것이 정부 당국의 일이다. 이번 문제에 있어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과연 얼마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토부가 무조건 현대건설을 상대로 공사기간을 지키라는 윽박만 지른 것 같다는 것이 현대건설과 국토부를 출입하며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그리고 이제 새 정부가 출범한다. 가덕도 신공항 사안은 정권 차원에서 풀어나가야 할 산적된 문제 가운데 하나다. 이번 정부에선 국토부가 부디 '운영의 묘'를 발휘하길 기원한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공약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낮은 가치 산정에 시달려왔다. 낮은 주주환원율, 불투명한 기업지배구조, 정책 불확실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온 결과다. 6·3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상법 개정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세제 혜택 확대를 중심에 놓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일반주주 권익 보호를 목표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는 독립 이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도록 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 집중투표제 활성화, 전자투표 의무화, 권고적 주주제안 도입 등의 정책에 포함된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 주주에 신주를 일정 배정하는 제도와 소액주주 회수 기회 보장을 위한 의무공개매수제도도 추진될 예정이다. 상장사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상법 개정이 추진되면 국민연금 등 대형 기관투자자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바탕으로 투자 기업의 경영에 보다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다. 이런 제도 변화는 기업들이 주주로부터의 감시와 견제를 더욱 강하게 받게 된다는 점에서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실행 과정에서 반발과 충돌은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김 후보 측은 기업지배구조 개선 관련해서는 상법 개정보다는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상장사 주주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사외이사 전문성 제고로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물적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 대한 신주 우선 배정, 경영권 변경 시 소액주주 권익 보호, 주주총회 소집기한 연장,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등도 포함된다. 시장에서는 이런 공약들이 실행 여부에 따라 평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상법 개정이나 자본시장법 개정, 공모주 제도 개선, 금융 범죄 대응 강화 등은 국회 논의, 예산 확보, 민간 참여 등 다수의 절차를 거쳐야만 실현될 수 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 역시 정책적 의지 외에 외국인 투자환경, 외환시장 접근성, 기업 공시 수준 등 여러 조건이 충족돼야 가능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단기간에 이루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장기 과제다. 역대 정부와 정치권이 저마다 해법을 내놨지만, 시장 신뢰는 번번이 공염불에 그쳤다. 이번 대선 역시 공약만으로는 부족하다. 공약에서 실행으로 이어질 때만이 투자자들의 신뢰가 돌아오고, 시장은 비로소 저평가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선 후보들이 던진 약속들이 이번에도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HMM 본사 이전의 경제학

HMM이 대선 정국에서 때 아닌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HMM 본사의 부산 이전에 대한 의지를 연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지난 27일 진행된 마지막 TV 토론회와 지난 14일 부산 유세에서 HMM 본사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강조했다. HMM이 민간기업이지만 현재 정부가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HMM에 대한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 지분 71.69%와 국민연금 지분 6.02% 등 77.71%의 지분을 갖고 있긴 하다. 그러나 국민의힘·개혁신당 등으로부터 현실성이 없는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HMM 관련 논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HMM의 부산 이전이 선거 공약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총선, 지자체장 선거는 물론이고, 제20대 대선 당시 이 후보가 부산 9대 공약 중 하나로 HMM 부산 이전이 포함되기도 했다. 그러나 선거 이후에 기업 이전이 정치적 고려가 아닌 경제 논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현실화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실제 이재명 후보는 윤석열 전 대통령 공약이었던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불가하다고 못 박았다. 산업은행은 공기업 중 자산 규모나 역할이 커 이전 시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HMM도 다르지 않다. 고객사인 화주가 대부분 수도권에 있다. 해외 고객사를 응대하기에도 서울이 훨씬 낫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해운업이 글로벌 영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본사 이전으로 경쟁력이 상당히 흔들릴 수 있다. 또 HMM은 민간기업이라는 점도 문제다. 현재 산은·해진공이 최대 주주이나 이들이 HMM을 지속적으로 소유해 사업을 영위할 것이 아니기에 본사 이전과 같이 중대사를 결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HMM 인수를 원하는 원매자가 본사 이전을 찬성할지도 미지수다. 자칫 HMM의 가격이 낮아져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의 최대 회수를 저해할 요인도 있다. 앞으로 국내에서 산업은행의 손을 거칠 기업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을 모두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서울이 아닌 어딘가로 본사를 이전시킬 수는 없다. HMM의 본사 이전이 진정으로 동력을 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밀어붙이는 것을 넘어 서울보다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해 자진해서 부산으로 본사를 이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진정 HMM과 부산시를 위한 방안이 무엇일지 고민할 때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구멍 뚫린 사이버 방패, 줄줄 새는 개인정보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 먼저 가 있던 개인정보가 마중나온다는 얘기가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한다." SK텔레콤 유심(USIM·가입자식별모듈)정보 해킹 사고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러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화제를 모았다. '반려동물' 대신 '개인정보'를 넣어 부실한 관리 체계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번 사고의 경우, 기업 차원의 초동 대처가 미흡했단 데 이견을 표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도 많은 지적거리가 나와 더 언급하기 입아플 지경이다. 국민들은 “내 개인정보는 나도 못 해본 세계여행을 이미 끝마쳤을 것 같다"는 자조적인 말을 꺼낼 정도로 무감각해졌다. 이제 우리가 짚어야할 건 초기 대응 너머에 산적한 문제들이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땜질과 책임을 면피하려는 태도에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해킹 사고 수습은 해커를 찾아 처벌하는 한편, 원인 점검 후 빈틈을 메꾸는 데 그쳤다. 이 때 예산을 푸는 건 잠시뿐, 일정 수준 수습되면 보안은 다시 후순위로 밀렸다. 문제는 또 있다. 사고 발생 이후 고객들의 트라우마가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배상 책임을 물 수 있는 기관이 없단 것이다. 고객이 기업 등지에 본인이 겪은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구조는 유구하지만, 어디까지나 물질적인 내용에 그친다. 잦은 사고 여파로 보이스피싱·스미싱은 이미 일상화된 지 오래다. 때문에 기존보다 스미싱 빈도가 더 높아지면 '어디서 또 개인정보가 유출됐나' 지레짐작할 뿐이다. 이것만으론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없어 기업으로선 책임을 피하기 유리하다. 기업들은 양자암호통신 등 기술을 앞세워 시스템을 보완하겠다고 공언하지만, 정작 위약금 문제엔 뒷짐져 왔다. 차기 대통령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운 정부는 “보안 실태를 전면 재점검하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조사 종료 이후의 대책은 아무도 꺼내지 않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만 고치듯 보안 시스템 강화에 그치는 건 이제 의미가 없다. 이번 사고 여파를 끝까지 책임지고 수습하겠다는 태도로 고객 피해 보상책까지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행여 너무 많은 비용 손실이 발생해 회사 존립에 문제가 생긴다면, 평소 개인정보 보호를 신사업 뒤로 미뤄온 업보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전기차 캐즘? 이제는 ‘스태그네이션’

전기차 시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캐즘'이다. 시장이 형성 초기 대비 크게 주춤하면서, 이 단어가 꼬리표처럼 따라붙게 됐다. 그러나 최근엔 캐즘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캐즘이란 '일시적' 침체를 뜻한다. 하지만 2023년부터 시작된 이 하락세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업계에선 캐즘을 넘어 장기적이고 구조적 침체 국면인 '스태그네이션'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늘고 있다. 캐즘은 혁신 제품이 초기 수용자에서 대중 시장으로 넘어가기 전 겪는 일시적 수요 정체를 의미한다. 반면 스태그네이션은 장기간 지속되는 성장 둔화나 정체를 뜻하며, 구조적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전기차 시장은 이제 후자의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전기차 판매량이 줄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장폭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더욱이 중국 단일 국가의 판매량이 전체 성장을 견인하고 있어 지역 간 불균형이 두드러진다. 2024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약 1710만대로 전년 대비 25% 증가했으나, 성장률은 2022년 60%, 2023년 33%에서 점차 둔화되고 있다. 특히 유럽 시장은 보조금 축소와 충전 인프라 부족 등으로 2024년 판매량이 3% 감소하는 등 역성장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시장도 성장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졌으며, 중국 시장만이 40%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정체 원인으로는 보조금 축소, 충전 인프라 한계, 소비자 수요 포화, 기술적 한계와 비용 부담 등이 지적된다. 새로 들어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전기차 침체 극복은 단순히 보조금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제는 구매 보조금에서 벗어나, 인프라 투자,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으로 정책을 다변화해야 한다. 우선 충전 인프라 혁신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충전소 확충과 표준화, 지역 맞춤형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또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개발에도 대폭 지원이 필요하다. 전고체, 소듐이온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과 생산 자동화, 재활용 등을 지원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전기차 시장은 이제 단순한 초기 수요 정체를 넘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업계와 정책 당국은 이 현실을 직시하고, 인프라 확충과 기술 혁신, 정책 다변화 등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써니항공 비행 일지 조작 사태, 도덕적 해이 넘어선 범죄 행위다

“모든 비행 규정은 피로 쓰였다.(All aviation regulations are written in blood.)" 1903년 12월 17일, 윌버·오빌 라이트 형제가 동력 비행기를 제작해 사람이 하늘을 날기 시작한 이래로 지난 121년 간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때마다 각종 안전 규제가 만들어졌고, 전세계 항공 안전 기관의 표상과도 같은 미국 연방항공청(FAA)은 희생된 이들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며 이 같은 자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FAA의 규정을 준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안전 불감증의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최근 써니항공에서 일부 군 출신 조종사 훈련생들이 사업용 육상 다발(MEL) 조종 자격 증명을 위한 비행 시간 등 훈련 기록을 담은 비행 기록 일지(로그북, Logbook)를 조작한 사실이 항공 안전 감독(ASI)을 통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항공 전문 교육 기관에서 10시간 넘는 비행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써니항공은 4주 간 비행 교육 12시간·비행 훈련 장치(FTD) 3시간을 명시하고 있다. 해당 훈련생들은 비행 실습 교육을 불과 1~2시간만 듣는 등 정상 범위에서 한참 벗어났음에도 교육 과정을 다 마친 것처럼 서류를 허위로 꾸몄다. 이에 따라 관리·감독 기관인 부산지방항공청이 관련 사건에 대해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로그북은 조종사 자격 취득과 경력 관리의 핵심 자료로, 실제 비행 또는 시뮬레이터 훈련 시간을 기록해 항공사 입사·승급·자격 유지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로그북 조작은 항공 교통 안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 도덕적 해이를 넘어 중대한 범죄 행위다. 아무리 오토 파일럿 시대라지만 항공 안전은 여전히 조종사의 숙련도와 경험에 크게 의존한다. 허위 경력으로 미숙한 조종사가 양성될 경우 사실상 미필적 고의에 의한 대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아 무고한 수백 명의 승객 안전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실제로 비행 사고의 대부분이 인적 오류에서 비롯된다는 연구 결과도 존재한다. 현재 국토부는 항공 전문 교육 기관 운영 승인·지정·관리 감독 역할을 담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급 기관인 한국교통안전공단(TS)은 국토부가 인가한 써니항공이 발급한 경력 증명서를 믿고 면장을 내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또 신규 기재 도입 계획에 따라 일부 저비용 항공사(LCC)들은 거짓 경력을 써낸 이들을 부기장으로 채용해 제트 엔진 한정 자격 증명 교육을 진행 중이다. 이 자체로 업무 방해죄에 해당하는데, 차후 해당 부기장들에 대한 자격 박탈 조치가 뒤따르면 유형의 손실을 떠안는다. 현행 항공안전법 제43조는 '항공 종사자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자격 증명이나 항공 신체 검사 증명 등을 받은 경우 국토부 장관은 취소 또는 1년 이내의 기간을 정해 효력 정지를 명할 수 있다'고 돼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국내에선 대형 항공 사고들이 연달아 터져 전 국민적 불안감이 고조돼있는 상태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관계 당국의 훈련 기관·항공사·관련자 전반에 대한 철저한 전수 조사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보완, 처벌이 시급하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기자의 눈] 또 ‘인명 사고’, 또 ‘SPC’

또 SPC그룹이다. 잊을만 하면 발생한 계열사 사업장의 산업재해로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식품그룹 SPC에서 다시 인명사고가 터졌다. 과거 허영인 회장의 대국민사과와 함께 사업장 안전관리를 강화하겠다던 약속을 무색하게 만들며 다시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19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윤활유를 뿌리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상반신이 끼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당일 SPC삼립은 김범수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공장 가동 중단 등 뒷수습에 나섰지만 재발되는 인명 사고 탓에 SPC를 바라보는 여론은 차갑기 그지없다. 산재 발생과 인명 피해, 기업의 사과와 안전대책 약속이 반복되면서 SPC의 '안전 불감증'이 다시 도진 게 아니냐는 시선이다. 2022년 10월 경기 평택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어 사망한 사고를 시작으로 최근 3년 간 SPC 계열사에서 총 3건의 사망, 5건의 부상 사고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첫 사고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허영인 회장이 1000억 원을 투자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안전경영을 펼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이번 인명사고로 '사실상 공염불'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SPC는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안전경영 레터'를 통해 그동안 안전설비 확충·장비 안전성 강화·고강도·위험작업 자동화·작업환경 개선 등을 수행하며, 2022년 4분기부터 지난해까지 전체 예산(1000억원)의 약 84%인 835억원을 집행했다고 홍보했다. 이같은 SPC 산재예방 노력이 얼마나 실효성을 가진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이번 시화공장 인명사고로 그 진의가 의심받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당장에 일각에선 소비자 불매 움직임이 있어 SPC그룹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사고가 난 시화공장이 최근 흥행 돌풍을 일으킨 '크보(KBO)빵'의 주요 생산공장이어서 판매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안전사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더라도 산재, 그것도 인명 피해가 반복된다면 그 기업은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SPC는 뼈를 깎는 노력에도 유사한 사고가 반복된다면 내부 안전경영 전면 재검토, 작업장 안전시설 개편, 작업현장 종사자 안전의식 개선 등 사운을 건 전사적 캠페인으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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