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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혈세 낭비’ 체코원전 사태, 책임은 누가?

지난 7일 한수원 등 팀코리아와 체코 측 간의 체코원전 수주 본계약 체결을 위해 정부 장관급과 국회 상임위원장 등 정부·국회 100여명의 대표단이 체코를 방문했지만, 대표단은 현지에 도착해서야 본계약 체결이 보류됐다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체코로 이동하는 중간에 체코 지방법원이 프랑스 EDF가 제기한 본안 소송 전 본계약 체결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한국과 체코 간의 원전 수주 본계약 체결은 무기한 보류됐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규정하고,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책임은 체코 측에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정부의 해명을 납득하지 못할 뿐더러 매우 크게 실망하고 있다. 국민들이 매우 크게 실망한 부분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사전에 전혀 예상할 수 없었는가 이다. 수십조원 규모의 대형 원전 건설을 수주하는 본계약 체결을 위해 장관급을 포함한 정부 고위급과 국회 상임위원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포함된 대규모 특사단이 출국하는 상황에서, 이번 법적 변수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도 사전에 확보하지 못했다면 그것 자체로 정보력과 외교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이번 체코 출장에는 국회의원, 정부 관계자, 한수원, 한전KPS 등 팀 코리아 관계기관의 사장과 담당자들이 인당 천만 원이 넘는 출장비를 집행했으며, 일부 인사들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국민 혈세를 투입해 다녀온 출장에서 사실상 빈손으로 돌아왔는데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산업부는 7일 본지의 '산업부, 팀코리아 사장단에 사직 권고' 기사에 대한 해명 자료에서 계약 주체인 기관장들에게 사직 권고를 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계약 불발 사태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팀코리아와 산업부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모든 책임은 체코 정부와 소를 제기한 프랑스 EDF에 있다는 말인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자면, 이번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세금으로 치른 출장, 정보력과 외교력 부재, 결과 없는 계약, 그리고 무책임한 책임 공방 등 이 네 가지가 겹쳐지면서 국민은 이번 체코 원전 외교를 신뢰할 수 없게 됐다. 산업부는 지난 3월에도 우리나라가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면서 크게 질책을 받은 바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지난 4월 15일부로 민감국가로 지정되면서 미국과 과학 및 기술 협력에서 불필요하고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됐다. 산업부는 이번 체코원전 사태에 대해 분명하고 책임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팀 코리아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준비와 검토 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 이번 사건이 해프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계약으로 이어져 성과를 이루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바란다. 다만 그에 앞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책임과 설명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기자의 눈] 이름만 바꾼다고 될 일인가

“이름이 바뀐다고 날만한 사고가 안 날까." 최근 한 건설사 고위 임원과 현대엔지니어링의 사명 변경에 대해 얘기하다 들은 말이다. 올해 2월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을 맡은 세종포천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교량이 무너지면서 4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하자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달 30일 주우정 사장 주재로 전직원 타운홀 미팅을 가지고, 사명 변경 및 주택 사업 신규 수주 중단을 선언했다. 주우정 사장 입장에서 2월 사고는 날벼락이라면 날벼락이다. 작년 11월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에 내정된 후 올해 1월 정식으로 현대엔지니어링 수장직을 맡은 지 한 달여 만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으니 기운이 빠질만도 하다. 그리고 주 사장은 그 해결책으로 아예 회사 이름을 바꿔버리고, 신규 주택 사업 수주를 중단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과거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해경을 해체했던 해프닝이 데자뷰로 떠오른다. 공사 현장 사고는 시공을 맡은 건설사의 이름에 따라 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철저하게 현장 관리 작업이 이뤄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사고가 터지니 사업을 중단한다'는 말은 '사고가 터졌으니 해경을 해체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게 들린다. 물론 현대엔지니어링의 사명 변경 선언은 그만큼 책임을 통감하고 다시 태어나겠다는 강한 의지로 해석된다. 주택 사업 신규 수주 중단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바꾸겠다'는 언뜻 파격적으로 보여지는 선언은 결국 내부 단속 차원과 대외 홍보를 위한 보여주기식 조치로 비춰질 수 있는 리스크도 안고 있다. 과연 현대엔지니어링이 2월 사고의 피해자 보상 문제와 같은 후속 조치,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현장 안전 강화 등 근본적인 개선 대책을 제대로 내놨는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해경을 해체한다'는 극단책을 사용한 박 전 대통령은 결국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3년 후 탄핵돼 대통령 자리에서 끌려 내려왔다.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이 해체한 해양경찰은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함께 2017년 다시 부활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이 아무리 극한 상황에 몰렸다고 해도 어느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대한민국 해경이 겪었던 혼란을 되풀이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K뷰티, 美관세에 이유 있는 ‘아이 돈 케어~’

“미국에서 K뷰티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를 잡았어요", “관세 영향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아요". 국내 한 뷰티기업의 관계자가 미국발 관세 파동 이후 꺼낸 반응이었다. 지난 4월 트럼트 미국 대통령이 사상 초유의 상호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하자 고공행진 중이던 K뷰티의 수출에 적신호가 켜질까 노심초사하면서도 동시에 '판도라 상자의 희망'을 피력하는 발언이었다. 이같은 희망의 배경에는 'K뷰티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기업의 화장품은 미국에서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난 가성비 전략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공식적으로 관세가 발효된다면 일부 제품의 가격 상승이 불가피할 전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 제품에 크게 만족하며 사용해 온 미국 소비자가 하루아침에 '손절'을 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K뷰티는 미국에서 단순히 제품이 아닌 K컬처(한류)의 한 카테고리로 소비되고 있다. K컬처를 향유하는 방식의 하나로 한국 뷰티제품을 사용한다. 즐겨보는 K드라마 속 여배우의 피부 표현이 마음에 들어 그가 사용한 제품을 따라 구매하는 행동이다. 외국인들의 K뷰티 인기는 국내 유명·중소 화장품 기업의 제품의 대표 판매처인 CJ올리브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상반기 관광을 목적으로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 600만 명 중 400만 명이 여행기간에 올리브영을 찾았다. K뷰티의 태생지에서 직접 K뷰티를 경험하려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결과 지난해 외국인이 올리브영에서 쓴 돈은 전년 대비 무려 140%나 급증했다. 관세청 자료에서 지난해 해외 소비자가 오픈마켓 등을 통해 K뷰티 제품을 직접 구매한 금액도 9억7300만 달러(1조 3500억 원)로, 전년(5억2300만 달러)보다 약 2배 늘었다. 특히, 미국에서 'K뷰티 역직구' 열풍이 심상치 않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플랫폼 아마존 온라인 쇼핑몰에는 'K뷰티 인기제품(K-Beauty favorites)'이 따로 분류돼 있다. 유명 패션잡지 얼루어(Allure)는 “관세도 아마존의 'K-뷰티 딜'을 막을 수 없다. 쇼핑카트에 담는 한국 뷰티 베스트 딜 21개"라는 제목으로 현지에서 인기 있는 한국 화장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심지어 “관세 영향으로 가격이 오르기 전 미리 구매하는 것이 좋다"는 팁까지 소개했다. K뷰티의 경쟁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급성장해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콘텐츠'다. 미국 관세 영향으로 일정 정도 타격은 받겠지만 K뷰티만이 보유하고 있는 뛰어난 품질을 이미 경험한 소비자의 지갑을 '보호주의'로 닫게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강하고 희망찬 경쟁력을 갖춘 K뷰티는 트럼프 관세시대에 한국 산업이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백솔미 기자 bsm@ekn.kr

[기자의 눈] 은행권 과점 깨기…꾸준한 정책이 필요하다

DGB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과 제4인터넷전문은행 추진은 윤석열 정부가 은행권 과점 구조를 깨기 위해 내놓은 금융정책이다. 5개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구축된 독점 체제가 은행권에 유리한 이자 장사를 가능하게 한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추진됐다. 정부의 '은행 때리기'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지금의 과점 구조 해체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금리 인하기에도 불구하고 높은 금리로 고통받은 차주들이 많았던 데다, 경기 침체기에도 은행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며 이익을 챙겨왔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중은행으로 재탄생한 iM뱅크와 제4인터넷은행 출범 예고를 반기는 시각도 존재한다. 물론 기존 시중은행들과 비교하면 경쟁이 어려울 정도로 덩치가 작고, 시장 안착에 대한 의구심도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어'의 등장이란 시도 자체가 주는 긍정적인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iM뱅크는 시중은행 전환 이후 은행 서비스가 부족했던 원주 지역에 곧바로 지점을 열었고, 충청권 등 추가 출점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아직 눈에 띄는 성과는 없으나, 은행 점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영업망을 구축하는 것은 금융소비자들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제4인터넷은행 설립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국소호은행 컨소시엄은 소상공인 특화 은행을 표방하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은행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아직 현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국소호은행이 계획대로 출범하게 되면 대형 시중은행 중심의 금융 체제에서 소외됐던 자영업자·소상공인들에게 보다 특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터넷은행들은 은행권의 '메기'로 부상했다. 2017년 인터넷은행이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으나, 지금은 기존 은행을 위협할 정도로 시장 파급력이 커졌다. 새로운 시중은행 등장과 제4인터넷은행 출범은 이제 막 시작 단계인 만큼 앞으로 어떻게 은행 지형을 흔들지 모를 일이다. 다만 현재 추진되고 있는 금융정책은 6월 3일 조기 대선 이후 바뀔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 수장들도 교체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정책의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꾸준히 추진돼야 하는 정책들은 연속성을 가지고 이어져야 한다. 금융소비자들을 위해, 은행권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필요한 은행권 과점 구조를 해소할 수 있는 정책들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더 깊이 있는 정책으로 확장돼 추진돼야 할 것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상품 팔기에 혈안된 금융사...건전한 질서는 어디에

언제부터인지 모르겠다. 과거에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업계 1위로 도약하자고 외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은 듣기에 그리 편치 않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재화와 용역을 생산하는 경제단위이고, 업계 1위 기업은 시장에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렇기에 CEO들이 1위 도약을 목표로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대로 1등이 되지 못한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 고객 확보, 매출 증가 등에 난항을 겪는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면 기업은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사실들을 다 알면서도, CEO들의 1위 구호가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는 상품 가입 전화, 대출 권유 문자 등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고 상담원의 통화 내용을 아무 생각 없이 듣다가 어느 순간 유료서비스에 가입돼 있어 놀란 적이 한두 번인가. 혹시나 싶어, 혹시 대출 상환에 이상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은행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았을 때도 어김없이 실망하곤 한다. 금융상품을 광고하거나, 대출을 권유하거나, 연회비가 더 높은 상품으로 갈아타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금융사 CEO들의 1등 구호는 그래서 불편하다. 기업들이 1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상품을 가급적 많이 판매하고, 수익성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는 것이 최선이다. 지금 이 금융상품이 금융소비자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미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실적 압박을 받는 직원들은 진실은 감춘 채 고객들에게 상품을 권유한다. 당장의 상품 판매가 아닌, 고객 신뢰 확보와 고객 편의를 위해 정진하는 CEO는 어떨까. 이 질문에 최근 만난 한 금융권 관계자는 “CEO도 결국 오너일가가 고용한 사람이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이 아닌 단기적인 안목으로 성과를 내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오너일가 입장에서는 주주가치 제고, 경영권 안정성 확보, 후계 구도 등 후일을 위해서라도 단기간에 빠르게 수익을 내는 CEO를 선호한다는 논리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들어 7차례에 걸쳐 소비자경보를 발령했다. 소비자경보가 발령된 분야는 브리핑 영업 방식의 보험 상품 판매, 달러채권 투자, 공모주 청약 대행 등으로 다양하다. 몽골 G은행 발행채권에 투자하면 안정적으로 연 11%의 고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현혹하며 투자금을 편취하거나, 정부 산하 노인복지사업을 수행하는 공공단체로 가장해 어르신들의 자금을 편취하는 수법이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상품을 많이 판매하는 기업이 곧 최고기업이라는 인식은 이래서 위험하다. 지금의 상품 판매가, 당장 기업의 수익에 도움이 될지라도 소비자의 신뢰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들이 100년 뒤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젊은 세대일수록 은행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금융상품에 가입하면서 금융사 직원들이나 보험설계사들을 불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 금융사 CEO와 오너일가가 외쳐야 하는 구호는 업계 1위가 아닌 고객 신뢰 1위, 고객 만족이 곧 회사의 이익과 직결된다는 진실한 마음가짐이다. 그것이 불확실한 시장 환경에서 가장 확실한 진리이자 이치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경영권 침해’ 프레임 뒤에 숨은 상법 개정의 본질

“상법 개정안 부결은 부적합하고 옳지 않아서 부결된 것이 아니라 편 가르기의 결과다. 상법 개정안은 주주들이 기업에 힘을 더 실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는 자본시장 업계 한 전문가의 말이다. 지난 17일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정당의 이탈표를 끌어내기 위해 일부 조항이 삭제됐지만, 결국 재의결 정족수인 200석을 넘지 못했다. 상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기업 이사가 충실해야 하는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범위를 넓히고, 상장 기업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당초 개정안에 담겼던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는 제외됐다. 상법 개정을 찬성하는 전문가들이 하나 같이 입을 모으는 대목이 있다. 또한 이는 소액주주들이 하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바로 '소액주주는 회사가 잘되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그간 거둔 이익을 배당이 아닌 연구개발(R&D)이나 새로운 투자에 쓴다고 한다면,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여기서 회사가 취해야 할 자세는 소액주주와의 대립이 아니라 설득이다. 설득은 R&D와 새 투자가 회사 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그래서 얻는 주주 공동체의 이익은 무엇인지를 이해시켜야 얻을 수 있다. 설득이 더 어려운 것은 오히려 회사에 설득된 주주라도 회사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남발할 수 있다고 보는 기업의 시각이다. 상법 개정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은 주주들의 고소·고발 남발이 회사 운영에 지장을 주고, 또 어떤 기업에는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액주주의 눈에서 자유로운 사주 일가 혹은 대주주의 기습적인 블록딜, 계열사끼리의 부당 내부거래, 외부에서는 알아볼 수 없는 기술이 들어간 특수관계자 금전 지원 등으로 입는 회사 피해가 더 막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상법 개정에 대한 경영권 침해 프레임이 계속된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기업과 자본시장 전체다. 대주주의 전횡, 불투명한 내부거래, 정보 비대칭은 기업 신뢰를 무너뜨린다. 주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적 장치가 없다면, 투자자들은 지금보다 더 한국 시장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상법 개정의 본질은 경영권을 위협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시장 모두의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에 있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한화에어로 유상증자, 소통은 해결이 아니라 설득이다

국내 자본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과정에서 '소통'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급기야 금융감독원은 주주들과 소통하는 과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20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내놓은 3조6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소식에 주주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유상증자로 마련한 자금이 한화그룹 승계에 활용될 것이라는 추측마저 불거지면서 한화그룹과 주주·투자자들 사이의 소통의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이 명확해졌다. 이를 확인한 금감원은 1차로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청했다. 금감원이 정정을 요구한지 나흘 만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전격적으로 보유한 ㈜한화 지분 절반을 세 아들에게 증여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회장의 발표 이후 일주일여 만에 유상증자 구조도 갑작스레 변경됐다. 기존 주주를 대상으로 3조60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 2조3000억원 주주배정과 1조3000억원 제3자 배정의 혼합 구조로 바뀐 것이다. 제3자 배정 대상은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에너지다. 돌연 진행된 지분 증여와 유상증자 축소·변경은 경영권 승계 논란과 소액주주의 반발을 의식한 대응으로 분석된다. 한화그룹은 속전속결로 시장의 우려를 털어내려 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주주들이 원한 것은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의 사용처와 그에 대한 판단 근거였지만 한화그룹은 승계 관련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집중한 탓이다. 주주들이 원한 핵심 정보가 빠진 상황에서 유상증자 계획이 크게 변경되자 오히려 혼란이 가중됐다. 이를 확인한 금감원이 재차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이에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다면 횟수에 관계없이 정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과 금감원은 속전속결보다는 다소 느리더라도 확실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신호를 보낸 셈이다. 위기 상황에서 소통은 단순히 속전속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시장과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문제 해결법을 내놓는 것 뿐 아니라 그 같은 결정을 내린 타당성을 설득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특히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해법을 내놓는 경우 더욱 설득에 집중해야 한다. 속전속결로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는 태도로 비춰질 경우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지고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쳐야 진정한 실력이 드러난다. 한화그룹이 지금의 위기 상황에서 진정한 소통의 실력을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윤동 기자 dong01@ekn.kr

[기자의 눈] 나으리,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막내기자 시절 작성했던 칼럼을 뒤적이다 '우문현답'이란 단어가 훅 들어왔다.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愚問賢答)'이란 뜻을 지닌 성어를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사행시로 재해석한 것이다. 이는 국민 여론을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겠단 의지를 함축한다. 그날따라 유독 네 글자가 눈에 밟힌 건 최근 두 차례에 걸친 국회의 기업 방문 행보에서 느꼈을 산업계의 실망감과 무관치 않다. 현장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의례적으로 쓰이는 역두문자어조차 공염불이 될 수 있단 우려가 적잖아서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인공지능(AI) 기술 현주소를 살펴보겠다며 올 상반기 네이버·LG유플러스를 잇따라 찾았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파동 이후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 요구가 커진 데 따른 것이다. 그동안 밑그림에 그쳤던 AI가 국가 의제로 부상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선 '골든타임'만은 놓치지 않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러나 인원 구성을 본 후 반응은 다시 냉담해졌다. 현장을 찾은 과방위원의 절반 이상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던 탓이다. 물론 조국혁신당·국민의힘 위원들도 각 1명씩 참석했지만 '보여주기식'이란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이를 인지했는지 한 위원은 최근 “기업을 직접 찾는 것도 좋겠지만, 줌(ZOOM)으로 진행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기업 입장에선 현장 세팅을 위해 전사 인력이 동원돼 번거롭고, 과방위 역시 모든 구성원의 일정이 빈 시간대를 맞추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업무효율과 실용성을 높이는 측면에선 일견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진정성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진 의문이다. 기술 개발 여건이나 발전 속도는 서비스를 직접 써 봐야, 업계 애로사항은 현장 종사자들과 눈을 마주보고 소통해야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향후 제정될 법·제도에 대한 신뢰·정당성 확보로 귀결된다. 그래서일까. 과방위는 기업 방문 때마다 전방위 지원사격에 나서겠다고 강조했지만 산업 진흥 전략 방향성은 안갯속이다.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약 경쟁이 한창인 정치권의 상황과도 다르지 않다. 여야 예비후보들이 표심잡기를 위해 저마다 AI를 1호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로드맵·투자 방식 등은 구체화되지 않아 내실이 부족하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많은 기업이 정치·행정가의 갑작스러운 발걸음을 반기는 건 업계 목소리를 한 마디라도 더 경청하고, 시의적절한 정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미 두세 걸음 늦은 AI 산업의 발전을 앞당길 근본 해법을 도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4년 전 비슷한 주제로 쓴 막내기자의 칼럼은 이렇게 끝맺음한다. “공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설계도를 촘촘히 짜기 위해 필요한 걸 찾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답은 현장에 있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고래싸움에 새우가 등 터지지 않으려면

고래 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기는 법, 새우 몸집을 키우는 거죠.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지 않을 만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시간은 새우 편 아닐까요?" 미국, 일본보다 뒤늦게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순양그룹 진양철 회장의 “고래싸움에서 새우가 어부지리로 이길 방도는 없겠나?"라는 질문에 대한 손자 진도준의 대답이다. 2022년 12월 종영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오랜만에 돌려보다 정신이 번뜩인 순간이었다. 미국과 중국이란 거대한 고래 싸움에 낀 한국 경제와 사회에 시기적절한 대사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포했고 한국은 그 사이 어딘가에 끼어있다.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뽐내는 두 나라 모두 한국에 중요한 시장이자 국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 간 군사적, 경제적으로 미국에 많이 의지해왔다. 8.15 광복과 6.25 전쟁 이후 돈독한 사이를 이어왔고 2000년대엔 한미 FTA를 통해 자유로운 무관세 무역도 이끌어 왔다. 세계 패권을 쥔 초강대국과의 친밀한 외교는 한국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이 됐다. 이에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은 미국 시장을 최대 고객으로 두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으로 한국에도 전례 없던 25%란 관세가 부과됐지만 이는 세계 모든 국가에 매겨진 세금인데다 아직 협상의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희망이 없는 상황은 아니다. 특히 중국에 부과한 145%의 관세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중국 역시 마냥 등 돌릴 수 없는 국가다. 미운 점도 많지만 결국 한국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모든 곳에 중국의 부품과 원자재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최근엔 중국의 기술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AI 모든 시장에서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전기차와 배터리 쪽에선 중국을 따라올 곳이 없을 정도다. 이젠 단순히 덩치만 큰 고래가 아니라 사냥도 잘하는 똑똑한 고래로 변모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재벌집 막내아들 진도준의 말처럼 '몸집을 키우는 것'이다. 특히 우리 기업의 체력과 체급을 키워 고래 싸움에도 흔들리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와 민생도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에 절실한 것이 정부 차원의 기업 지원이다. 예를 들어 국내 배터리 기업에 직접적인 보조금을 지급하는 '한국판 IRA'가 대표적이다. 일각에선 지금처럼 국내 배터리 산업을 방치하다간 중국에 완전히 밀려 묻혀버린 디스플레이 업계의 실패를 반복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 점유율이 10% 초반대로 떨어졌고 캐즘이 끝나지 않은 지금,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인 것이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실수도 말 못하게 만드는 조직이 항공 안전을 위협한다

“아직도 현장에서는 보고하면 조직에서 문제아로 낙인 찍히거나 관리자들로부터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만연해 묻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공정 문화(Just Culture)'라는 단어가 있다. 고위험 산업군에서 직원이 실수나 오류를 보고하더라도 처벌하기보다 학습의 기회로 삼고, 조직 전체의 안전성을 제고하려는 문화와 그에 목적을 둔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부속서 13을 통해 공정 문화 도입을 권장하고, 유럽항공안전청(EASA)도 고의·중과실이 아닌 이상 면책 원칙을 보장하고 있다. 과거보다 개선됐다고는 하나 국내 항공업계에서는 실수를 보고하면 인사 불이익이나 징계 우려가 여전하고, 실수와 위반의 경계가 모호해 관리자 재량에 의존하는 경향이 아직도 있다는 게 현업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잘못된 게 있어도 입도 뻥긋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전언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작년 12월 29일에는 제주항공 2216편 활주로 이탈 사고를 들 수 있다. 당시 여객기는 새떼와 충돌했고, 양쪽 엔진이 먹통인 상태로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끝의 콘크리트 둔덕을 들이받고 완파돼 179명 사망·2명 중상이라는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계기 착륙 장치(ILS)는 잘 부서지는 속성을 지녀야 한다는 ICAO와 국토부 지침에도 어긋나게 콘크리트를 타설한 사람이 누구였느냐는 질타가 끊이질 않았고, 전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와 공항공사, 무안공항 측을 변호하려는 건 아니지만 관계자들 중 그 누구라도 문제 의식을 갖고 제대로 보고했다면 책임을 면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희생 제물만을 찾는 데에 혈안이 된 처벌 일변도의 분위기에서는 그 어느 것도 바뀔 수가 없다. 베넷 앨런 월시 대한항공 항공안전전략실장은 “한국엔 더욱 강력한 면책 기반 자발적 보고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국내에는 아직 공정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음을 점잖은 방식으로 지적한 것인데, 이 마저도 외국인이기에 가능했던 발언이다. 분명 대한민국 항공 산업은 양적 규모 측면에서 과거에 비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지만 안전에 대한 시각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듯 하다. '누가 했느냐?'는 추궁보다 '무엇이 부족했나?'와 같은 자성에 가까운 질문이 먼저 나와야 ICAO 파트 1 또는 2와 같은 항공 선진국 그룹 일원으로의 도약이 가능해지는 법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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