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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스가격 10배 높은 유럽이 주는 시사점

'난방비 폭탄' 작년 이맘때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과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던 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과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 지역 전역에 걸쳐 발생한 동절기 혹한으로 인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이에 따른 영향으로 국내 가스요금까지 폭등하면서 지난해 '난방비 폭탄'은 말 그대로 소비자 뇌리에 폭탄을 터트렸다. 전기, 가스, 물과 같은 필수 공공재를 더 이상 정부 보증 아래 싼 값에 사용할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도 함께 했다. '폭탄'으로 비유된 전기, 가스가격은 정부 및 정치권의 통제 아래 국제 원료비 인상분만큼 가격에 반영되지 못한 채 왜곡된 '후불(미수금)'로 쌓이게 됐다. 한국가스공사가 현재까지 쌓아 놓은 미수금은 15조원 규모에 이르렀으며, 한전의 적자폭은 더욱 심화됐고, 열요금 인상에 제동이 걸린 한국지역난방공사 또한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러한 때에 가스공사 경제경영연구소에서 흥미로운 자료를 발간했다. 정말 우리가 '난방비 폭탄'을 맞으며 연료를 사용하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자료다. 김낙균 가스공사 연구원은 '세계 주요국 천연가스 공급비 현황 분석' 결과를 내 놓으며 한국과 유럽 각국, 일본 등의 가스요금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난방비 폭탄' 공포에 떨고 있던 2022년 한국의 가정용 가스요금은 12~13원/메가줄(MJ) 정도였다. 그 당시 유럽은 어떠했나? 유럽, 일본 등은 가스산업이 자유화된 대표 지역이다.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과 달리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가스를 공급받는 유럽은 운송부담 또한 적다. 북해 해상 유가스전 등 공급원을 가까이 두고 있어 천연가스 수입구조 자체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우월한 경쟁력을 갖는다. 그런 유럽에서 지난 2022년 한국보다 저렴하게 가스가 공급된 국가는 조사 대상 30여 개국 가운데 그루지아(조지아) 단 한 곳뿐이었다. 우리와 유사하게 10원대/MJ 수준인 곳은 헝가리, 크로아티아 2개국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보스니아 3개국이 20원대/MJ 초반, 나머지 모든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40원/MJ를 초과해 우리나라의 무려 4배에 이른다. 포르투갈, 덴마크, 리히텐슈타인, 북마케도니아는 60원/MJ 전후를 넘나들었으며, 네덜란드는 80.3원/MJ, 스웨덴은 무려 133.77원/MJ을 기록해 가스 공급가격이 우리나라의 10배가 넘는 수준을 기록했다. 정부 통제를 벗어난 독립적인 에너지 요금 규제기관을 두고 있는 영국은 어떠했나? 영국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제 원료가격이 오르면 오른 만큼 가격에 반영하고 하락하면 하락 분만큼 반영한 뒤, 여기에 에너지 기업 운영 시 발생하는 비용(인건비, 관리비 등)과 이익 등을 더해 전기 및 가스요금을 책정한다. 각 에너지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원료비 등락폭을 그대로 반영하고 일정부분 수익까지 보장되는 규제기관의 책정 가격을 그대로 따르게 된다. 주영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작년 하반기까지 1년 6개월간 에너지 요금 상한이 2.5배 상승했다. 작년 1월 가스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129.4%, 전기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66.7%씩 각각 상승했다. 그것도 에너지 가격상한제(Energy Price Cap)를 적용한 가격이다. 혹한을 피해간 올해 동절기 우리는 더 이상 '난방비 폭탄'의 굴레에 싸여 있지 않는 모습이다. 국제시장 환경은 변화하고, 석유 및 천연가스 원료비 가격은 또 다시 등락을 거듭하게 된다. 에너지 절약과 지구온난화, 에너지 공기업의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 에너지 시장의 지나친 왜곡현상을 더 이상 방관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김연숙 기자 youns@ekn.kr

[데스크칼럼]뉴삼성 컨트롤타워 재건 더 늦출수 없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리더십을 짓눌러 왔던 '사법리스크'가 해소됐다. 지난 5일 3년 5개월을 끌어온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 됐다. 이재용 회장과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고 이건희 선대회장 당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던 '미전실'이 무죄를 받은 것이다. '미전실'은 삼성그룹의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고 미래 먹거리 발굴과 투자기획, 각 계열사의 사업 조정과 굵직한 인수합병 조율, 감사, 법무 등 그룹 전반의 현안문제와 미래전략을 조율했다. 여기에 각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에 대한 인사권까지 가지고 실질적인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자 미전실은 2017년 이 회장의 지시로 해체됐다. 하지만 재계와 경영학회 등에서는 대내외 경영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삼성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뒷받침 해줄 새로운 '컨트롤타워'의 재건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꾸준하게 내놓았다. 이러한 여론이 있다는 걸 삼성도 알고 있지만 해체 지시 당사자인 이재용 회장의 결단이 없으면 조직 재건에 나설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다. 스스로 해체를 선언했는데 다시 만들려면 명분이 넘쳐나야 하기때문이다. 그러나 1심 무죄 선고 이후 이재용 회장이 찾은 현장과 메시지에서 '컨트롤타워' 재건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 회장은 지난 9일 말레이시아 삼성SDI 생산법인 현장을 찾은데 이어 지난 16일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천사업장을 찾았다. 두 현장에서 이 회장은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하자"고 주문했다. 또 “현재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과감하게 도전하자.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미래로 나아가자"고 강조했다.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바이오시밀러는 2010년 이건희 선대회장이 '미전실'을 통해서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낙점하고 투자를 단행한 사업이다. 이 회장은 두 곳에서 투자·도전·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또 앞서 지난해 연말 단행한 인사개편과 조직신설에서도 '컨트롤타워' 재건의 의지를 엿볼수 있다. 삼성전자는 10년 후 삼성의 미래 먹거리 아이템 발굴에 집중하는 조직인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다. 이 조직은 부회장급 전담조직으로 첫 단장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를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키우는데 기여한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이 선임됐다. '미래사업기획단' 역시 이건희 선대회장이 2007년 삼성의 컨트롤타워였던 전략기획실에 주문해서 탄생한 '신수종사업발굴 태스크포스팀(2009년 신사업추진단)'과 유사하다. 당시 신사업추진단은 '미전실' 수장 김순택 부회장이 이끌었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2010년 경영에 복귀하면서 태양광·LED·배터리·바이오·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사업에 23조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검찰의 항소로 삼성전자 등기이사와 컨트롤타워 재건 추진에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이재용 회장은 이제 당당하게 삼성그룹을 이끌어갈 총수로서 여러 난관에 정면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16개 상장계열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800만여명의 주주와 관계사, 그리고 국민적 기대와 정부의 기대에 부응하는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삼성그룹이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기업"을 지향한다면 지금이라도 지체없이 미래전략에 대한 수립과 강력한 추진력을 담보할수 있는 '컨트롤타워'를 재건해야 한다. 송영택 기자 ytsong77@ekn.kr

[데스크칼럼] 중처법, 노사 모두 ‘사고의 전환’ 필요하다

지난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수 5인 이상 모든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제정돼 이듬해인 2022년 1월 27일 50인 이상, 공사비 50억원 이상 기업부터 우선 시행됐고, 적용기준 미만 기업은 2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올들어 확대 시행된 것이다. 중처법의 핵심은 중대(산업)재해를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중대재해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한 산업재해 중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재해자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고 책임은 경영책임자의 경우 사망자 발생 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그 외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의 부과를 의미한다. 사업주(법인)에는 양벌규정으로 사망 발생 시 50억원 이하 벌금, 그 외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규정돼 있다. 중처법 확대시행으로 상시근로자 5명이 넘는 개인사업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음식점·숙박업소·주유소·제과점·커피점 등도 적용되며, 상시근로자에는 기간제·시간제(아르바이트)·배달라이더(근로계약 체결자)까지 포함된다. 중처법은 2008∼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 등 사회성 대형재해와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작업중 사망사고 등 산업현장 재해가 끊이질 않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도입 과정에서 노사의 극명한 찬반 대립을 겪었고, 2차례로 나눠 시행되는 과정에서도 노사갈등은 되풀이되고 있다. 기업주들은 중처법의 법적 미비성과 현장수용 애로를 주장하며 추가유예 법 개정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기업주들은 여러 사정을 들어 중처법을 반대하고 있지만 핵심은 '징역형'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인다. 더욱이 사망사고에서 근로자의 과실 부분이 많더라도 사업주의 책임도 자유롭지 못하는 측면에서 신체형 형벌을 우려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간다. 그러나, 이같은 기업주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길은 사실 간단명료하다. 자신의 사업장 안전 문제를 해결해 '범법자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안전관리 준수와 징역형 피하기 중 어느 쪽의 효용성을 선택하느냐는 사업주의 몫이다. 반면에 노동계는 첫 시행 이후 중대재해 발생이 높음에도 실질적 법 적용(검찰의 사건 기소)이 낮은 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강력한 법 적용 의지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산업재해의 원인을 모두 기업쪽으로 몰아부치는 노동계의 접근방식도 대응전술로는 유용할지 몰라도 근본해결책은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안전관리 행동과 시스템이 잘 갖춰지더라도 결국 일하는 근로자가 주의깊게 수행하지 않으면 산업재해는 언제든 '나의 일'로 닥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업주나 근로자 모두 '산업안전 불감증'에 근본적 사고의 전환 없이는 중대재해를 줄일 수 없다. 중처법 확대시행으로 산업현장에서 재해나 사망자 발생이 1~2년 새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본다. 우리의 중처법에 해당하는 '기업과실치사법(CMCHAct)'을 시행한 영국도 중대재해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데 12년이나 걸렸다고 하지 않은가. 지금도 전국 어느 산업현장에선 재해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실제로 최근에 인천 제철공장, 울산 조선소, 안산 고등학교, 포천 금속공장 등에서 안타까운 근로자 사망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기업주는 중처법이 두렵다면 사업장 산업안전을 우선 챙기는 노력을, 근로자도 산업재해가 걱정된다면 '나는 숙련자이니까', '이런 일까지 귀찮게'라는 관행을 버리고 산업안전 규칙을 엄수하는 협조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데스크 칼럼]부동산PF는 국민경제의 볼모인가

김현우 자본시장부장 한 때 '깃발만 꽂으면 성공하던'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정권이 바뀐지 채 3년이 안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라는 짙은 그림자를 남기며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부동산 PF 대출잔액 규모는 130조원을 상회한다. 이 중 부실의 뇌관으로 떠오른 브릿지론이 30조원 규모다. 브릿지론은 사업 인허가 이후 분양 및 착공으로 현실화되는 본PF 전 단계의 금융조달로 상환을 전제로 일으킨 대출이다. 올해 상반기 중 증권사를 포함해 제2금융권의 만기도래 브릿지론은 70%에 달한다. 이들 사업장들은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 되지만 부동산 경기 불황과 고금리의 환경이 찾아오면 오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뱃속의 중금속 신세로 전락한다. 시행사들은 미분양을 각오하고라도 사업을 진행시키고 싶지만 이제 브릿지론을 인수할 본PF 금융이 발생하지 않는 수준까지 왔다. 지방을 위주로 한 아파트 사업장과 지식산업센터, 역세권 개발 등 불과 4~5년 전에 지방 경기를 들썩거리게 만들던 청사진이 이제는 빛바랜 짐덩어리가 된 셈이다. 최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사태에서 보여지듯 부동산PF 위기는 '탐욕의 후폭풍'이다. 태영건설은 한때 수도권을 포함해 상하수도 사업에서 국내 부동의 1위 업체였고 방송사 대주주 지위와 함께 군부대 이전 사업, 데시앙이란 브랜드까지 갖춘 탄탄한 중견 건설사였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과 함께 부동산 PF의 불똥은 금융권으로 옮겨 붙은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연일 부동산PF 연착륙을 강조하고 있다. 이 원장은 4일 한 방송에 출연해 ELS 분쟁배상안 이슈와 함께 부동산 PF 부실 사업장은 늦어도 올 3분기에 구조조정의 틀을 마련해 PF에 묶인 금융사 자금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돈맥경화'를 푸는 방안에 방점을 찍고 있지만 ELS 사태와 PF위기는 근본적으로 그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ELS는 중국 경기침체와 홍콩증시 폭락의 배경아래 은행 등 금융권의 무리한 상품 설계로 손실을 감당 못한 경우이다. 이 과정에서 은퇴자금을 포함한 안정적인 수익을 노리던 가입자들에 불똥이 튀어 피해자 구성에서 분쟁조정의 명분이 있다. 반면 부동산 PF는 경기 침체라는 외부환경의 리스크는 유사하지만 사업의 참여자와 피해자의 질이 다르다. 지난 참여정부 당시 대구, 부산, 천안 등 관광버스까지 동원해 지방으로 쇼핑하듯 아파트를 사들이고 호가를 높였던 광풍의 시절이 불러온 퇴적물이 PF 위기로 쌓인 것이다. 그 당시 사업성이 떨어지는 시행사업에서도 대박이 나오는 경험이 이어지자 '부지매입-시행-브릿지론-분양-본PF-회수'로 이어지는 '탐욕의 사이클'이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이원장은 부동산 PF 사업장 정리에 대해 금융사 자금이 특정 산업에 묶여있는 '돈맥경화'를 풀고 구조조정을 통해 국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부실 금융사에 금융 지원을 단행하고, 미분양엔 세제혜택을 주며 PF 사업 부실을 불러온 당사자들에 안도감을 주는 것이 국민경제의 활력을 위해서라고만 해명이 될까는 미지수다. 공정과 상식을 대원칙으로 출범한 현 정부가 적어도 국민경제를 볼모로 삼은 건설 금융의 탐욕적 카르텔에 확실한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태영이 무너지면 국민경제에 위기가 온다'던 한 오너의 발언을 다시 한 번 떠올렸으면 좋겠다. 김현우 기자 kimhw@ekn.kr

[데스크 칼럼]

윤석열 대통령의 ‘어깨 톡톡’,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폴더 인사’.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지난 23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 현장에서 각각 상대에 대한 친근감과 예의를 나타낸 장면이다.두 사람이 갈등 봉합을 위해 재난 현장까지 이용, 형제애를 보인 ‘브로맨스’란 비판도 뒤따랐다. 다른 한편으로 지금의 수직적 당정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 단면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을 아랫사람 대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에 상사를 깍듯이 모시는 것처럼 보였다. 여권 권력의 양대 수레바퀴인 두 사람이 아직도 검찰 선·후배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였다.한 위원장이 지금 자리에 간 것은 윤 대통령의 의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갑자기 김기현 당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고 비대위를 만들어 그 위원장에 ‘정치 초보자’를 앉힌 건 윤 대통령의 뜻이었다고 보는 게 상식이다. 윤 대통령으로선 총선을 앞두고 당 공천에 입김을 불어넣어 권력을 강화하고 싶었을 것이다.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명품백 의혹 등 각종 ‘리스크’에 대해 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해결사 또는 소방수도 필요했다.하지만 현 직책으로 보면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한 위원장이 내각에 있을 때와 달리 상하 또는 주종 관계일 수 없다. 윤 대통령은 국가 통수권자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을 그런 자리에 오르게 만든 집권당의 대표 격이다. 대통령은 집권당 대표든 비대위원장이든 공식 지명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놓고 당에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 게 윤 대통령이 늘상 말하는 법과 상식이다.가뜩이나 국민의힘 안팎에서 수직적 당정관계의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 여사 리스크’도 다가오는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을 우려하는 집권당으로선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벌써부터 대통령을 간판으로 총선 치르는 것을 꺼려하거나 대통령과 차별화를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당 일각에서 나온다.그런 예민한 정국 상황에서 두 사람의 처신은 신중했어야 했다. 한 위원장은 당이 영입할 때부터 ‘대통령 아바타’란 조롱까지 받지 않았나.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는 공적 관계에 있다. 공적 관계가 정상 작동되고 있다면 한 위원장이 "거절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윤 대통령의 한 위원장 사퇴요구는 없었을 것이다.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과 갈등과정에서 언급한 것으로 알려진 말을 봐도 두 사람의 공적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처럼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후배였는데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선을 그었겠는가" 등등. 이 표현들이 사실이라면 한 위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또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대하는 게 아직도 20년 맺어온 선후배 사이의 사적 관계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갈등 봉합의 자리로 평가된 서천회동에서조차 그 갈등을 촉발한 두 사람 간 사적 관계 설정의 장면이 연출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윤 대통령의 이런 인식과 자세로는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 대통령이 집권당 대표를 후배나 부하로 보고 당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국민으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윤 대통령은 ‘미래권력’으로까지 불리는 한 위원장과 충돌로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총선에 가서 심판받기도 전에 레임 덕을 염려해야 하는 입장이다. 집권당이 총선에서 지면 온전히 대통령 책임이고 이기면 모두 한 위원장 덕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 늦기 전에 당정관계의 리셋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은 자칫 하다간 권력 사유화 논란에 휩싸여 스스로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구동본

[데스크 칼럼] AI 혁명시대와 반도체, 그리고 원전

인공지능(AI) 혁명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AI는 산업경쟁력 강화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진보하는 AI는 인류의 삶의 질을 한 차원 더 높여 줄 것이 분명하다. 미래 첨단산업의 핵심이 AI라면 AI의 기술력을 좌우하는 것은 반도체라 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 라인이 안정적으로 가동되기 위한 전력 공급 역시 중요하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살펴 볼 때 AI시대는 대한민국에 기회임에 틀림이 없다.윤석열 정부는 최근 AI 시대를 주도할 반도체 초격차 기술력 확보를 위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비전을 발표했다. 평택 화성 용인 이천 수원 판교 등을 잇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민간 기업들은 2047년까지 62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곳에 앞으로 반도체 생산공장 13곳, 연구시설 3곳이 새롭게 들어선다. 2012만㎡ 규모의 클러스터에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HBM)와 2nm 이하 공정기반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가 조성될 예정이다. 또한 월 기준(2030년) 웨이퍼 770만장이 생산된다.현재 AI 반도체 부문에서는 미국의 엔비디아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앞세워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GPU는 전력 소모량이 많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이 약점이 대한민국이 도전해 볼 만한 근거다. 한국은 고성능 GPU 대비 전력 소모는 10분의 1로 줄이고, AI 학습능력은 2배로 확장할 수 있는 극저전력 지능형 반도체(PIM) 개발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잘하고 있는 메모리부문을 적극 활용하면 AI 반도체에서도 세계 1위를 노려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윤 정부는 국산 AI 반도체 특화에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핵심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K-클라우드 기술 개발에 1조원 가량을 투자하고, 기업의 반도체 인력 수요 해소를 위해 특성화 대학을 18개교로, 반도체 대학원도 6개교로 늘릴 계획이다. 또 눈여겨 볼 것이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를 조성하는데 중요한 인프라가 안정적이 전력 공급망 구축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생산라인 1개 가동하는 데 약 1.3GW의 전기가 필요하다. 한국형 원전 APR1400 1기가 필요한 셈이다. 그렇다면 10GW가 필요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에 APR1400 원전이 7∼8기 필요하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는 한계가 분명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발전단가가 비싼 LNG 발전소를 짓는 것도 경제성 측면에서 보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윤 대통령도 "기흥 삼성전자 생산라인 7개에 전략망 체계를 만드는데 1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고 지적하면서 "고품질의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서는 원전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지난 5년간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을 내세운 에너지정책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7000억원을 투입해 개보수를 끝내고 가동을 더 할 수 있었던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에 폐쇄하고, 건설중이던 신고리 5·6호기는 공사가 중단됐다가 재개되면서 완공시기가 늦어졌고, 착공 전이던 신한울 3·4호기는 공사를 중단시켰다. 또 앞으로 지어질 원전부지 경북 영덕의 천지 1·2호기와 강원 삼척 대진 원전 사업추진을 백지화 시켰다. 탈원전 중시 에너지정책은 미래 첨단산업 발전에 부담으로 작용되고 있다. 그나마 윤석열 정부 들어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어 다행이다. 국제적으로도 AI 시대 도래에 따른 안정적인 전력 공급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연 대안 에너지원으로 원전이 재부상하고 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기가 더욱 중요해졌다"면서 원전 8기 추가 건설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영국도 원전 비중을 15%에서 25%로 다시 확대할 방침이다. AI시대·반도체·원전은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 대한민국은 잘 할 수 있고, 모범 국가가 될 수 있다.송영택 산업부장/부국장

[데스크칼럼]갑진년 아이 낳고 기르고 싶은 세상 됐으면…

2024년 갑진년 한해가 시작되었다. 필자의 유년시기였던 1980년대를 돌이켜보면 연말 연시에는 길거리 어디에서나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럴송이 흘러나오고, TV 등 각종 미디어에서는 희망찬 새해에 대한 기대의 메시지가 가득찼던 것 같다. 세계 속에서 국가적인 위상이나 국민들의 생활 수준 측면에서 보자면 1980년대의 경제 지표들은 현재 대비 훨씬 열악했지만 고도 성장기에 있었던 우리나라는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너무나 당연한 명제로 여기며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하지만 IMF 시기 이후 우리는 불확실성이란 세기말 적 현상에 맞닥뜨렸다. 전 세계는 1999년, 새로운 ‘밀레니엄’(millennium)을 맞이하면서 세기 말 적 아노미를 겪은 현상도 마찬가지였다. 2001년 뉴욕 9·11테러 사태, 이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그 여진이 지속되면서 요즘 우리 주변에는 희망보다는 암울한 메시지로 가득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지난한 글로벌 경기침체,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애그플레이션(agflation), 원자잿값 급등, 지정학적 리스크 고조 등 지속적인 불안을 겪어왔다. 인간이란 존재적 불안이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1960년대 인구억제정책 실시로 가파르게 감소한 출산율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며 더욱 감소했고 2016년 이후 또다시 하락하면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됐다. 결국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성장보다는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를 반증하듯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으로 처음 0.70명대에 진입했고 2023년 0.72명으로 낮아진 데 이어 이제 2024년 0.70명대 밑으로 떨어질 전망이다. 이같은 인구감소를 두고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유럽의 14세기 흑사병을 능가하는 인구절벽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한편 필자의 6학년 딸의 현실 인식도 가관이다. "아빠, 결혼도 안하고 애기도 안 낳는 게 좋을 것 같아. 말 안 듣는 아이들을 키우는 건 정말 힘들 것 같아. 학원도 보내줘야 하고, 돈도 많이 들어가잖아." 현 초등학생을 키우는 부모와 자식 세대의 인식이 이러할 진데 우리나라의 10년, 20년 후 인구 상황이 더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약관화하다. 젊은이들, 특히 가임기 여성들이 임신·출산과 관련 사실상 개점휴업을 한 것과 다름이 없다. 실질 소득은 오르지않는 데 그 외 것들이 모든 게 다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 특성상 출산율 하락은 출산율 하락 이외에도 주택매매가격, 전세가격 등 주거비와 사교육비가 주 원인으로 판단되고 있다.특히 국토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주택매매가격 1% 상승은 다음해 출산율을 0.00203명 감소시키는 것으로 분석되었고 전세가격 1% 상승은 다음 해 출산율을 0.00247명 감소시키는 것으로 집계됐다.무엇보다 주택매매가격과 전세가격, 사교육비 영향은 첫째 자녀 출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둘째와 셋째 자녀에 대한 영향은 감소했다. 결론적으로 출산율 회복을 위해서는 주택매매가격, 전세가격, 사교육비를 줄이는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에서는 출산가구를 대상으로 ‘신생아 특별공급’ 제도를 신설하고 생애 최초·신혼부부 특별공급 물량 중 20%를 출산 가구에 우선 공급키로 했는데, 임신·출산 가구에게 혜택을 부여키로 한 점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하지만, 특정 집단에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를 통해 출산율을 높이는 것은 ‘언발에 오줌 누는 수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결혼을 하고 싶은 세상, 아이를 낳고 싶은 세상, 아이를 키우고 싶고, 그 아이에게 희망이 있는 세상을 정부와 정치가 만드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할 것이다.

[데스크 칼럼] 가스산업 판도 바꿀 제2의 LNG 직수입

내년이면 국내 천연가스(LNG) 자가소비용 직수입제도가 도입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정부는 지난 1995년 천연가스 대량 소비자의 연료 선택권 확대를 목적으로 자가소비용에 한해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제도는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며 가스산업 경쟁도입의 일환으로 지속적인 확대가 이어져 왔다.자유시장경쟁체제 도입 붐을 타고 도입된 LNG 직수입 제도는 당시만 해도 어떤 의미에서는 ‘후퇴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평이 있었다.당시 국내 가스산업은 LNG 도입, 판매를 독점해 오던 한국가스공사를 3개사로 분할해 민간에 매각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였다.알짜 공기업을 인위적으로 3개로 분할해 민간에 매각하자는 논의는 가스산업 구조개편의 명목 아래 지속됐으나 이는 또 다른 독과점 체제 형성에 불과하다는 비판 속에 철회됐다. 회사의 인위적인 분할 매각에 극렬히 반대한 한국가스공사 노조의 반발도 당시 정책 철회에 크게 한 몫 했다. 인위적인 분할 매각 대신 도입된 LNG 직수입 제도를 두고 당시 가스공사를 비롯한 기존 기득권 업계에서는 ‘선방했다’는 반응도 있었을 터다.하지만 현재 LNG 직수입 사업은 제도 도입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하지 못했을 만큼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국내 LNG 직수입량은 지난 2005년 33만톤으로 국내 전체 LNG 수입의 1.4%에 불과했으나 2019년 약 730만톤, 17.8%로 12배 이상 증가했다.2016년 당시만 해도 국내 천연가스 도입의 약 93.7%를 가스공사가 도입·공급하고, 직수입자의 직수입 규모는 약 6.3% 수준에 불과했다.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및 국제 LNG 시장여건을 활용해 2025년 이후 직수입 물량이 연간 1000만 톤 상회(13차 천연가스 수급계획)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025년에는 더 많은 직수입 의향사업자가 출현해 연간 1500만톤 이상의 LNG 직수입이 실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중 발전용 직수입이 약 60%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이다.1995년 도시가스사업법 상 불과 서너 줄 표기되면서 도입된 LNG 직수입이 현재 대한민국 가스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형국이다.30여 년 전과 같이, 가스산업의 큰 변화를 몰고 또 다른 제도 도입이 지난해 다시 한 번 이뤄졌다. ‘국가자원안보 특별법(대안)(자특법)’이 그것이다.지난해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자특법은 그동안 가스공사가 국가 전체 가스시장의 비축의무를 전담하면서 그 역할을 수행했으나, 앞으로는 천연가스 직수입자에게도 비축의무를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해 논란이 됐던 직수입사업자의 물량 처분(판매)을 국내 제3자에게 허용하는 조항도 포함됐다.민간 직수입사업자가 천연가스 비축의무를 위해 수입한 LNG를 가스공사나 타 직수입사업자는 물론 제3자에게까지 판매가 가능하다는 내용이다.다만, 제3자 물량 처분의 경우 자원안보협의회 심의를 거쳐 대상물량과 기간을 정하도록 규정했다. 직수입 LNG 물량의 전면적인 제3자 처분까지 허용하기 전 일종의 유예단계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또 다시 법안의 원안(직수입 물량의 제3자 전면 처분) 통과 대신 유예단계와도 같은 단서조항을 뒀다는 점에서 또 다시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하지만, 30년 전 이뤄진 민간의 LNG 직수입 허용이 현재 대한민국 천연가스 시장 판도를 바꿨듯, 또 다시 이번 자특법이 향후 천연가스 산업 30년을 좌우하게 될 또 다른 계기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자특법이 제2의 LNG 직수입제도와 같은 파장을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youns@ekn.kr

[데스크 칼럼]

상생이라는 채찍으로 금융사들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금융당국의 행태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당국의 메시지는 또렷하고 분명하다. 고금리, 고물가 등으로 서민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만큼 금융사들이 나서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이자부담을 낮추기 위한 충분한 수준의 지원방안을 내놓으라는 게 요지다. 상생금융은 금융사들의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여야 한다는데 방점이 찍혔다.과거에도 오늘날에도 금융당국 주문의 첫번째 타깃인 시중은행들은 국민이 아닌 ‘당국’이 납득할 만한 상생금융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 의중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해 말 기준 금리가 5%를 초과하는 기업대출을 보유한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 내년 중 납부할 이자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이자 캐시백’ 형태로 지원하겠다는 대략적인 윤곽만 나왔을 뿐이다. 다만 2조원에 달하는 캐시백을 은행들이 어떤 기준으로 분담할지에 대해서는 3차례에 걸친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8개 은행 가운데 당기순이익, 개인사업자 대출 비중 등 어느 조건을 적용해도 특정 은행들의 부담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경제 위기 속 심기일전의 각오로 내년도 사업계획 마련에 분주한 은행권이 상생금융 강화 방안에만 힘을 쏟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당국의 압박이 1차 원인이다. 그리고 당국이 은행권을 향해 상생금융을 내놓으라고 채찍질하는 뒷배경에는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버티고 있다. 금융당국은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추진하는 횡재세 법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선을 그으면서도 횡재세에 버금가는 상생금융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상생금융이나 횡재세나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당국이 상생금융이 아닌 횡재세를 들이댄다고 해도 정부의 방침에 순응하는 은행권의 행보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총선, 대선만 다가오면 마치 은행을 자신의 호주머니 다루듯이 휘어잡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동은 분명 불편하다. 은행권을 향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업 모델을 요구하면서도, 그런 은행을 대하는 이들의 인식은 구태의연하고 고루하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일부에서는 은행들이 사회공헌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성 중 하나로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당시 은행들이 공적자금을 투입받아 위기를 극복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 은행들이 어려울 때 국민의 도움을 받아 되살아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은혜를 갚으라는 취지다.‘천수답식 경영’도 당국이 은행을 휘어잡는 무기 중 하나다. 고객들로부터 받은 예금에 이자를 붙여 다른 고객들에게 대출해주는 은행의 사업구조가 특권이자 특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이 은행, 증권사처럼 입출금 계좌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업’을 허용해달라고 수년째 건의 중인 것을 보면, 은행의 여수신 기능은 다른 업권도 탐낼 만한 특수한 사업구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신사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금융정책당국이 은행의 사업 구조를 인질 삼아 소상공인 지원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하는 행보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은행권을 향해 지원책을 요구하는 당국의 행보와 이에 복종하는 은행권의 모습이 미래에도 고착화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금융당국의 방침이라면 작은 손짓이라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현 은행의 모습이다. 당국의 회초리에 의구심이 들지만, 그럼에도 금융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당국이 치(治)를 가동해서 하느냐, 금융사가 자발적으로 하느냐 등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다. 지난달 20일 금융지주사와 만난 후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무너지는 상태에서는 은행 산업에도 미래가 없다. 지속 가능한 영업의 관점에서 봐도 이들의 이자비용을 낮춰주는 게 필요하다"고 발언한 점에 대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관치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금융사의 사회공헌을 정부의 성과로 포장하려는 노력은 분명 근절돼야 한다. 동시에 은행들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자발적으로 사회공헌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살고 은행도 살 수 있는 길이다.mediasong@ekn.kr

[데스크칼럼]

지난 1979년 신군부 세력의 12.12 반란사건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를 모으며 흥행몰이하고 있다.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지난 11월 22일 개봉해 20일만인 이달 9일 현재 누적관객 수 600만명(638만 7801명)을 돌파했다. 9일 하루에만 62만여명을 끌어모았다.특히, 여느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스크린 점유율 31.7%에도 관객수는 물론 매출액 점유율(76%), 예매율(59%), 좌석점유율(58%)에서 월등히 앞서 가고 있다. 평일에 평균 20만명, 주말에 100만명 이상인 관람동원 추세를 이어간다면 크리스마스 연휴쯤이면 ‘천만영화’ 반열에 들 것으로 보인다.기자도 이달 초 주말에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그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듯 ‘서울의 봄’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실화 소재의 우리 영화들이 대부분 그동안 권력이나 특정세력의 감시와 견제로 봉인돼 있던 사건사고의 불의(不義)한 아픈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탓이다.또한, 과거의 잘못을 돌이켜본다는 현재적 의미는 있을 지 몰라도 이미 피해자의 패배가 역사적으로 귀결돼 버린 상황을 영화적 시점에서 거꾸로 되돌려 보려는 안타까운 감정이입이 오히려 관람객에게 무력감만 안겨주기 때문이다.실제로 ‘서울의 봄’을 본 주변사람들 반응도 비슷했다. 12.12 반란사건을 알고 있는 한 50대 초반 직장인은 점심 자리에서 영화 중반부터 ‘나가고 싶었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감독과 작가가 어떤 창작과 허구의 장치를 동원했더라도 관객의 입장에선 극중에 보여진 ‘감춰진 진실’이나 ‘정의의 예정된 패배’가 실화의 정해진 불의의 결말(역사)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는 설명이었다.서울 시내에서 헤어숍을 하는 한 가게 사장님은 MZ세대인 대학 1학년 딸이 ‘서울의 봄’을 보고 온 소감을 들려줬다. 그 딸은 "왜 당시 사람들은 (12.12 반란사건을) 용납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신군부에서 대통령 2명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반문했다는 것이었다. 12.12 반란사건 이후 1980년대 태어난 MZ세대들에겐 ‘서울의 봄’이 말그대로 과거의 역사이기에 생소하고 이해불가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해마다 거행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즈음으로 언론을 통해 신군부의 12.12 반란사건을 접하는 수준이었을테니. ‘서울의 봄’을 다른 측면에서 불편하게 여기는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개인의 가치관과 역사관의 차이라고 치부하고 싶다.개인적으로 영화 ‘서울의 봄’을 어떻게 보느냐는 평가와 관계 없이 ‘천만영화’ 기록을 세우기를 바란다. 첫째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국내 영화산업의 생태계가 바뀌어 영화제작사와 극장관들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집이나 모바일로 영화나 드라마를 해결하는 OTT 문화가 확산돼 관람객이 줄어든 탓이다. 물론 극장관들이 적자 보전을 위해 입장권을 인상한 것도 한몫했지만 어쨌든 예전만큼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적은 건 사실이다.둘째는, ‘서울의 봄’이 실화 속 패자의 역사를 무대에 올렸다는 점에서다. 역사를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산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인 신채호 선생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갈파했지만, 결국 승자(勝者)의 산물이다. 그러나, 불의한 승자의 역사를 다시 올바른 역사의 심판대로 올리는 것은 ‘아(我)의 정의로운 응전’으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패자의 역사’를 반추시켜 준 ‘서울의 봄’이 천만영화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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