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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가스산업 판도 바꿀 제2의 LNG 직수입

내년이면 국내 천연가스(LNG) 자가소비용 직수입제도가 도입된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정부는 지난 1995년 천연가스 대량 소비자의 연료 선택권 확대를 목적으로 자가소비용에 한해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제도는 승인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하며 가스산업 경쟁도입의 일환으로 지속적인 확대가 이어져 왔다.자유시장경쟁체제 도입 붐을 타고 도입된 LNG 직수입 제도는 당시만 해도 어떤 의미에서는 ‘후퇴한 정책’에 불과하다는 평이 있었다.당시 국내 가스산업은 LNG 도입, 판매를 독점해 오던 한국가스공사를 3개사로 분할해 민간에 매각하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였다.알짜 공기업을 인위적으로 3개로 분할해 민간에 매각하자는 논의는 가스산업 구조개편의 명목 아래 지속됐으나 이는 또 다른 독과점 체제 형성에 불과하다는 비판 속에 철회됐다. 회사의 인위적인 분할 매각에 극렬히 반대한 한국가스공사 노조의 반발도 당시 정책 철회에 크게 한 몫 했다. 인위적인 분할 매각 대신 도입된 LNG 직수입 제도를 두고 당시 가스공사를 비롯한 기존 기득권 업계에서는 ‘선방했다’는 반응도 있었을 터다.하지만 현재 LNG 직수입 사업은 제도 도입 당시에는 상상하지도 하지 못했을 만큼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국내 LNG 직수입량은 지난 2005년 33만톤으로 국내 전체 LNG 수입의 1.4%에 불과했으나 2019년 약 730만톤, 17.8%로 12배 이상 증가했다.2016년 당시만 해도 국내 천연가스 도입의 약 93.7%를 가스공사가 도입·공급하고, 직수입자의 직수입 규모는 약 6.3% 수준에 불과했다.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및 국제 LNG 시장여건을 활용해 2025년 이후 직수입 물량이 연간 1000만 톤 상회(13차 천연가스 수급계획)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2025년에는 더 많은 직수입 의향사업자가 출현해 연간 1500만톤 이상의 LNG 직수입이 실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 중 발전용 직수입이 약 60% 이상을 차지할 것이란 예측이다.1995년 도시가스사업법 상 불과 서너 줄 표기되면서 도입된 LNG 직수입이 현재 대한민국 가스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형국이다.30여 년 전과 같이, 가스산업의 큰 변화를 몰고 또 다른 제도 도입이 지난해 다시 한 번 이뤄졌다. ‘국가자원안보 특별법(대안)(자특법)’이 그것이다.지난해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자특법은 그동안 가스공사가 국가 전체 가스시장의 비축의무를 전담하면서 그 역할을 수행했으나, 앞으로는 천연가스 직수입자에게도 비축의무를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해 논란이 됐던 직수입사업자의 물량 처분(판매)을 국내 제3자에게 허용하는 조항도 포함됐다.민간 직수입사업자가 천연가스 비축의무를 위해 수입한 LNG를 가스공사나 타 직수입사업자는 물론 제3자에게까지 판매가 가능하다는 내용이다.다만, 제3자 물량 처분의 경우 자원안보협의회 심의를 거쳐 대상물량과 기간을 정하도록 규정했다. 직수입 LNG 물량의 전면적인 제3자 처분까지 허용하기 전 일종의 유예단계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또 다시 법안의 원안(직수입 물량의 제3자 전면 처분) 통과 대신 유예단계와도 같은 단서조항을 뒀다는 점에서 또 다시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온다.하지만, 30년 전 이뤄진 민간의 LNG 직수입 허용이 현재 대한민국 천연가스 시장 판도를 바꿨듯, 또 다시 이번 자특법이 향후 천연가스 산업 30년을 좌우하게 될 또 다른 계기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을까.자특법이 제2의 LNG 직수입제도와 같은 파장을 낳을지 지켜볼 일이다.youns@ekn.kr

[데스크 칼럼]

상생이라는 채찍으로 금융사들을 거칠게 몰아붙이는 금융당국의 행태가 참으로 혼란스럽다. 당국의 메시지는 또렷하고 분명하다. 고금리, 고물가 등으로 서민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만큼 금융사들이 나서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이자부담을 낮추기 위한 충분한 수준의 지원방안을 내놓으라는 게 요지다. 상생금융은 금융사들의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충분한 규모여야 한다는데 방점이 찍혔다.과거에도 오늘날에도 금융당국 주문의 첫번째 타깃인 시중은행들은 국민이 아닌 ‘당국’이 납득할 만한 상생금융 규모가 어느 수준인지 의중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다. 올해 말 기준 금리가 5%를 초과하는 기업대출을 보유한 자영업자, 소상공인에게 내년 중 납부할 이자의 일부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이자 캐시백’ 형태로 지원하겠다는 대략적인 윤곽만 나왔을 뿐이다. 다만 2조원에 달하는 캐시백을 은행들이 어떤 기준으로 분담할지에 대해서는 3차례에 걸친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8개 은행 가운데 당기순이익, 개인사업자 대출 비중 등 어느 조건을 적용해도 특정 은행들의 부담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경제 위기 속 심기일전의 각오로 내년도 사업계획 마련에 분주한 은행권이 상생금융 강화 방안에만 힘을 쏟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당국의 압박이 1차 원인이다. 그리고 당국이 은행권을 향해 상생금융을 내놓으라고 채찍질하는 뒷배경에는 총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버티고 있다. 금융당국은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추진하는 횡재세 법안에 대해서는 철저히 선을 그으면서도 횡재세에 버금가는 상생금융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상생금융이나 횡재세나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당국이 상생금융이 아닌 횡재세를 들이댄다고 해도 정부의 방침에 순응하는 은행권의 행보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총선, 대선만 다가오면 마치 은행을 자신의 호주머니 다루듯이 휘어잡는 정부와 정치권의 행동은 분명 불편하다. 은행권을 향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사업 모델을 요구하면서도, 그런 은행을 대하는 이들의 인식은 구태의연하고 고루하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일부에서는 은행들이 사회공헌을 강화해야 한다는 당위성 중 하나로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당시 은행들이 공적자금을 투입받아 위기를 극복했다는 과거 이야기를 꺼낸다. 은행들이 어려울 때 국민의 도움을 받아 되살아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은혜를 갚으라는 취지다.‘천수답식 경영’도 당국이 은행을 휘어잡는 무기 중 하나다. 고객들로부터 받은 예금에 이자를 붙여 다른 고객들에게 대출해주는 은행의 사업구조가 특권이자 특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이 은행, 증권사처럼 입출금 계좌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업’을 허용해달라고 수년째 건의 중인 것을 보면, 은행의 여수신 기능은 다른 업권도 탐낼 만한 특수한 사업구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신사업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금융정책당국이 은행의 사업 구조를 인질 삼아 소상공인 지원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하는 행보는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굵직한 정치 이벤트를 앞두고 은행권을 향해 지원책을 요구하는 당국의 행보와 이에 복종하는 은행권의 모습이 미래에도 고착화되지는 않을지 우려스럽다. 금융당국의 방침이라면 작은 손짓이라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현 은행의 모습이다. 당국의 회초리에 의구심이 들지만, 그럼에도 금융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전제는 변하지 않는다. 당국이 치(治)를 가동해서 하느냐, 금융사가 자발적으로 하느냐 등 방법론의 차이일 뿐이다. 지난달 20일 금융지주사와 만난 후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자영업자, 소상공인이 무너지는 상태에서는 은행 산업에도 미래가 없다. 지속 가능한 영업의 관점에서 봐도 이들의 이자비용을 낮춰주는 게 필요하다"고 발언한 점에 대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다. 관치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면서, 금융사의 사회공헌을 정부의 성과로 포장하려는 노력은 분명 근절돼야 한다. 동시에 은행들은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자발적으로 사회공헌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살고 은행도 살 수 있는 길이다.mediasong@ekn.kr

[데스크칼럼]

지난 1979년 신군부 세력의 12.12 반란사건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를 모으며 흥행몰이하고 있다.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지난 11월 22일 개봉해 20일만인 이달 9일 현재 누적관객 수 600만명(638만 7801명)을 돌파했다. 9일 하루에만 62만여명을 끌어모았다.특히, 여느 블록버스터급 영화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스크린 점유율 31.7%에도 관객수는 물론 매출액 점유율(76%), 예매율(59%), 좌석점유율(58%)에서 월등히 앞서 가고 있다. 평일에 평균 20만명, 주말에 100만명 이상인 관람동원 추세를 이어간다면 크리스마스 연휴쯤이면 ‘천만영화’ 반열에 들 것으로 보인다.기자도 이달 초 주말에 ‘서울의 봄’을 관람했다. 그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이 무겁고 불편하듯 ‘서울의 봄’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실화 소재의 우리 영화들이 대부분 그동안 권력이나 특정세력의 감시와 견제로 봉인돼 있던 사건사고의 불의(不義)한 아픈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탓이다.또한, 과거의 잘못을 돌이켜본다는 현재적 의미는 있을 지 몰라도 이미 피해자의 패배가 역사적으로 귀결돼 버린 상황을 영화적 시점에서 거꾸로 되돌려 보려는 안타까운 감정이입이 오히려 관람객에게 무력감만 안겨주기 때문이다.실제로 ‘서울의 봄’을 본 주변사람들 반응도 비슷했다. 12.12 반란사건을 알고 있는 한 50대 초반 직장인은 점심 자리에서 영화 중반부터 ‘나가고 싶었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감독과 작가가 어떤 창작과 허구의 장치를 동원했더라도 관객의 입장에선 극중에 보여진 ‘감춰진 진실’이나 ‘정의의 예정된 패배’가 실화의 정해진 불의의 결말(역사)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는 설명이었다.서울 시내에서 헤어숍을 하는 한 가게 사장님은 MZ세대인 대학 1학년 딸이 ‘서울의 봄’을 보고 온 소감을 들려줬다. 그 딸은 "왜 당시 사람들은 (12.12 반란사건을) 용납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신군부에서 대통령 2명이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반문했다는 것이었다. 12.12 반란사건 이후 1980년대 태어난 MZ세대들에겐 ‘서울의 봄’이 말그대로 과거의 역사이기에 생소하고 이해불가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기껏해야 해마다 거행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즈음으로 언론을 통해 신군부의 12.12 반란사건을 접하는 수준이었을테니. ‘서울의 봄’을 다른 측면에서 불편하게 여기는 국민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개인의 가치관과 역사관의 차이라고 치부하고 싶다.개인적으로 영화 ‘서울의 봄’을 어떻게 보느냐는 평가와 관계 없이 ‘천만영화’ 기록을 세우기를 바란다. 첫째는,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국내 영화산업의 생태계가 바뀌어 영화제작사와 극장관들이 굉장히 힘들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집이나 모바일로 영화나 드라마를 해결하는 OTT 문화가 확산돼 관람객이 줄어든 탓이다. 물론 극장관들이 적자 보전을 위해 입장권을 인상한 것도 한몫했지만 어쨌든 예전만큼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적은 건 사실이다.둘째는, ‘서울의 봄’이 실화 속 패자의 역사를 무대에 올렸다는 점에서다. 역사를 영국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산물’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주의 사학자인 신채호 선생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의 기록’이라고 갈파했지만, 결국 승자(勝者)의 산물이다. 그러나, 불의한 승자의 역사를 다시 올바른 역사의 심판대로 올리는 것은 ‘아(我)의 정의로운 응전’으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패자의 역사’를 반추시켜 준 ‘서울의 봄’이 천만영화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데스크 칼럼] 리메이크

홍콩H지수발 ELS(주가연계증권) 공포가 다시 한 번 금융권을 뒤흔들고 있다.아직 정확한 손실 추정치가 집계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에서 판매한 홍콩H지수 ELS 중 상반기 만기 도래 금액은 약 8조4100억원에 달한다. 홍콩 H지수가 남은 기간 급반등하지 않는다면 손실 확정액은 3조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해당 상품을 대거 판매한 은행에는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은행들은 AI 등을 통해 상품 가입 과정에서 설명이 충분했고, 사모펀드 사태 이후 강화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준수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하지만 투자자들의 반박도 만만치가 않다. 판매 과정에서 대면 설명의 일부 녹취가 없는 점, AI의 설명 과정이 너무 빠르고 요식행위라서 해당 ELS의 위험성이 충분히 고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다.문제는 양측의 어느 입장이 맞더라도 대한민국 경제에 미치는 손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금융당국이 불완전 판매를 인정한다면 은행 등은 천문학적인 손실을 떠안아야 할 것이고, 이는 주가지수 연계 상품과 같은 파생상품 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5대 시중은행의 ELS 판는 중단된 상태다.반대로 불안전 판매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대규모 피해를 본 개인투자자들을 중심으로 집단소송과 같은 후폭풍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안전한 투자상품으로 여겨 은퇴지금을 ‘올인’한 다수 노년층의 재산이 공중분해 된다면 내년 4월 총선을 뒤흔들 뇌관으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충분하다.이번 ELS 사태가 불거지는 과정에서는 사실 여러 부분의 허점들이 보인다.우선은 해당 손실이 이미 올해 초부터 충분히 예고됐다는 점이다.이번에 문제가 된 홍콩H지수 ELS도 기초자산 가격이 만기(통상 3년)까지 일정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을 지급하는 파생 상품이다. 홍콩H지수가 과도하게 하락하면 눈덩이처럼 손실이 커진다는 의미이다.샤오미, 알리바바, 중국공상은행 등 유수의 기업이 포함된 홍콩H지수는 이미 중국 경제 성장률이 꺾이며 지난 2021년 고점 1만2000포인트에서 2022년 10월 5000포인트 이하로 급락해 녹인(원금손실 하한선)구간이 발생했다.두 번째는 홍콩H지수와 연계한 ELS 사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와 2015년 유동성버블 붕괴 기간에도 지금과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국내에 ELS 판매가 허용된 2003년 이후 세 번째 같은 문제가 터지는 셈이다.세번째로는 안전을 추구하는 보수적인 투자자들이 많은 은행에서 사태가 촉발됐다는 점이다. 중·고위험 상품인 홍콩H지수 ELS 대부분을 은행이 판매했다. 지난 6월 말 기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판매 잔액은 20조5000억원으로 이중 15조8860억원어치가 은행의 몫이다.ELS는 근본적으로 증권상품이다. 하지만 은행은 ELS를 묶어 펀드나 신탁의 형태로 만들어 판매했다. 이는 투자성향이 공격적이고 리스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증권사 고객들에게 적합한 상품을 한번 더 포장해서 안전추구형인 은행 고객에게 판매해 수익을 올렸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는 은행에 고위험 ELS 판매를 허용하며 예고된 사태를 곪아 터지게 손 놓고 있던 금융당국의 책임도 가볍지가 않다. 은행을 상대로 "자기 면피만 한다"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호통이 난처해지는 지점이다.김현우 자본시장부장

[데스크 칼럼] 뻔뻔한 환경부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수난시기를 보내는 부처를 꼽으라면 여성가족부, 통일부, 산업통상자원부가 아닐까. 여가부는 공중분해 위기에서 전임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거대 야당의 도움으로 겨우 죽다 살아남았다. 통일부의 경우 남북교류협력 등 조직이 대폭 축소됐다. 당초 1급 간부자리가 6개에서 4개로 줄었다. 산업부에선 국장 등 공무원 3명이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이어 해임 징계까지 받아 퇴사했다. 문재인 정부 탈원전에 총대를 맸다가 험한 꼴을 본 것이다. 전임 정부 코드를 너무 잘 맞추고 오버한 게 괘씸죄에 걸렸다. 세 부처에 비하면 환경부는 윤석열 정부에서 비교적 무사했다. 사실 정책 후퇴 말고 팔 다리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지 않았다. 특별히 고초를 겪은 직원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정권 교체 이후 환경부가 실질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건 딱히 없어 보인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환경부 소관 예산 및 기금 총지출은 올해보다 7.3% 늘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전체 살림살이 규모 증가율 2.8%의 두 배가 넘는다. 조직도 전임 정부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 때 환경부는 ‘물관리 일원화’를 이유로 국토교통부의 수자원국을 이관받아 오히려 물관리정책실로 확대했다. 한국수자원공사도 산하기관으로 거느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중 호우로 인명피해를 겪은 지난 7월 환경부 장관에 "물 관리를 제대로 못 할 거 같으면 국토부로 다시 넘겨라"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로도 환경부 조직은 끄떡없었다. 환경정책 자체는 보수 정권의 정책방향이나 이념과 다소 거리가 있다. 기후환경은 대체로 규제 등을 통해 산업 활동을 제한한다. 산업 육성 또는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니 보수정권이 들어서거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기후환경 정책과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금이 그런 때다. 환경부가 시민단체에 좌판 깔아주고 전방위 규제 그물망을 치며 한껏 위세를 자랑하던 진보정권 시기완 다르다. 아니나 다를까 환경부는 윤석열 정부 초반부터 실제 군기 잡혔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환경부의 새해 업무보고 때 변화된 환경정책 노선을 분명히 했다. 임기 중 처음 환경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였다. 윤 대통령은 당시 "환경 분야를 산업화, 시장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환경단체 등에선 당연히 환경부의 정체성을 포기하란 말이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환경부로선 말이 당부지 엄포로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윤석열 정부 들어 핵심 환경 정책들이 줄줄이 뒷걸음질하고 있다. 환경부가 그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들이다. 최근만 해도 음식점·카페 등 손님을 맞는 업소의 일회용 종이컵 등 일회용품 규제가 잇달아 후퇴했다.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는 철회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금지 조치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고 편의점 비닐봉지 사용 단속은 중단키로 했다. 일회용품 규제는 지난 정부 때인 2019년 11월 방침이 정해졌고 2021년 말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이 공포돼 시행이 예고됐다. 그 뒤 지난해 11월 24일 시행됐다. 다만 시행일로부터 지난 24일까지 1년간의 계도기간을 둬 단속을 유예했다. 계도기간이 끝나면 규제 위반 시 과태료를 최대 300만원까지 물릴 예정이었다. 오랜 검토와 준비를 거쳤던 것이다. 환경부는 이미 1년 전 시행까지 한 그 규제들을 지난 7일 느닷없이 백지화하거나 사실상 무력화했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의 바람이 빠지는 느낌일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정책이 이처럼 신뢰를 저버려도 되는가. 정책 추진은 대형 마트의 시식코너를 돌면서 이것저것 맛보며 즉흥적으로 물건을 사는 쇼핑이 아니다.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계도기간에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 사용에 대비했던 많은 업소들은 황당해 하고 있다. 컵 씻을 직원을 따로 고용하고 세척시설까지 준비했다고 한다. 자영업을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기도 쉽지 않은 판이다. 규모가 영세한 업소로선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일부 업소는 금리가 오르는데도 빚까지 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일회용품 퇴출에 속속 동참해왔던 소비자들도 어리둥절했다. 일회용품 줄이기는 생활 속 실천운동으로 점차 자리잡아가는 모습이었다. 기후변화가 심각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니까 여러 불편도 감수했다. 정부의 일회용품 규제를 믿고 사업을 벌였던 사람들은 낭패를 봤다. 잘 썩는 생분해 비닐봉지 등 일회용품 대체 상품 개발 및 생산 투자를 늘렸다. 그들은 그 투자비를 어떻게 회수할지 막막한 상황이라고 한숨 짓는다. 일회용품 규제 후퇴 관련 환경부의 배경 설명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서민 자영업자들의 부담이 크고 불만 목소리도 높았다는 이유를 댔다. "조급하게 도입된 정책"이라고도 했다. 일관성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정부가 적어도 4년간 뜸 들이며 추진한 정책 아닌가. 칼을 뽑을 땐 신중하되 일단 칼을 뽑았으면 베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정책을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 하며 염치는 눈곱만큼도 없이 태연하게 할 말은 아니다. 그 설명대로라면 환경부는 그동안 관련 정책 시행을 위해 여론수렴 등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고 허송세월했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정책 후퇴가 아니고 합리적 규제라고 했다. 그야말로 말장난이다. 정책을 규제 대신 권고와 지원으로 바꿨다는 해명은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시행 1년 뒤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니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 규제 완화가 언제 적 얘기이고 정권 바뀐 지가 언제인가. 어설프게 둘러대는 그런 말을 믿을 바보 천치는 이 세상에 없다. 환경부는 뒤늦게 일회용품 정책 후퇴 후 대체품 제조업체에 경영애로자금을 지원하고 ‘다회용품 우수매장’에 정책자금 지원 시 우대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그런 정책 있었으면 진즉에 발표하지 이제야 내놓는가. 반발하는 업소들의 입막음용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환경부가 이리 뻔뻔해도 되나. 환경부가 스스로 물러선 것 같지 않다. 그런 설명을 하는 게 억울했을 것이다.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었겠냐는 항변도 있을 수 있다. 환경부야 규제를 만드는 것이니 굳이 마다할 일도 아니다. 거꾸로 부처 조직과 권한을 늘리고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을 아쉬워했을 수도 있다. 결국 환경부를 넘어 정권 차원의 정무적인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냐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영업자 등의 반발을 두려워 한 선심성 조치라는 것이다. 그러니 환경부는 말도 안 되는 이런 해명과 대책을 내놓고 있다. 차관이 정책 후퇴를 발표하면서 마치 지나가는 말로 ‘반성’· ‘송구’를 언급한 것 말고 별도 공식 사과한 게 없다. 물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솔직히 이 정도 사안이면 우선 주무 장관이 국민 앞에 진솔하게 공식 사과하는 게 마땅하다. 물러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게 순리이고 상식이다. 정상적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다. 환경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마도 부처가 모든 책임을 짊어질 일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럼 국민에 혼란과 피해를 준 이 사달을 만들어놓고도 그냥 넘어가자는 것인가. 국민은 무능하고 영혼 없는 정부엔 성원을 보내지 않는다. 더구나 정부가 개떡같이 일하면서 권한만 내세우고 손쉬운 규제 만들기에 혈안이라면 국민에겐 더 이상 베풀 아량이 없다. 지금 환경부는 벼랑 끝에 서 있다. 한방에 훅 가기 전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다.칼럼 게재용 사진 구동본

[데스크칼럼] 택지개발촉진법 개정과 중견건설사 존폐

국토교통부와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이 중견건설사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되레 시장 내 공정경쟁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업계 내에서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택지 입찰을 두고 중견건설사들이 모기업 계열사들과 함께 입찰에 나서는 것을 두고 ‘불공정경쟁’·‘벌떼입찰’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정작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하는 우리나라 시장주의 원칙에 맞는건지 의구심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대형건설사에 비해 브랜드 파워가 약하고 시공능력평가에서도 격차가 있는 중견건설사는 사실상 필지를 확보하고 개발에 들어가야 하는 상대적인 약점이 있다는 게 중견건설업계 항변이다. 특히,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조합이 중견건설사와 정비사업 도급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고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대형사와 재계약하는 경우도 업계에서 속출하고 있다. 즉, 개발과 시공을 위해서 중견사로서는 필지 확보가 필수불가결하며 공룡같은 대형건설사들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The last resort)인 셈이다. 이러한 필지 확보를 위해 입찰을 하는 데 있어 모회사뿐 아니라 계열사들까지 복수로 지원하는 것은 사실상 지금까지 관례처럼 여겨져왔다. 약육강식의 생태계에서 덩치 큰 육식동물들이 먹지 않는 먹잇감을 그보다 작은 동물들이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정부가 그들만의 생태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려 하는데서 출발한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유령회사나 페이퍼컴퍼니, 위장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을 불법적으로 방해하는 중소건설사들을 걸러내고 적절히 처벌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합법적인 법인을 설립하고, 회사에 필요한 인력을 구축하고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중소건설사들이 모기업의 계열이란 이유만으로 입찰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한다면 올바른 시장주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 중견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자기 회사가 이러한 벌떼입찰이란 오명을 썼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아직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행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공공 택지를 분양한 주택 당국과 지자체 산하 공사는 입찰 자격에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에 위배되는 행위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지도 않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중견건설사가 복수의 계열사와 함께 필지 입찰에 들어가는 것이 탈법이나 위법은 아니며, 정상적인 경영행위를 한 것이라는 게 중견 건설업계가 개진하는 의견이다. 제 삼자가 볼 때 이런 관례 속에서 정부가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벌떼입찰이라는 것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동안 중견 건설사들이 숨쉬고 살아왔던 생태계가 급변할 때 이들이 도태되지 않고 유기적인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진화할 수 있도록 돕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물론 벌떼입찰 문제는 불법적인 부분에 대해 규제할 필요가 있고, 입찰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재를 가해할 분야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최근 "벌떼입찰은 건설사들의 대표 불공정행위로, 국토부는 모든 제재를 통해 공공택지 시장에서 페이퍼컴퍼니를 퇴출하고 벌떼입찰을 차단해 공공택지 시장의 공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같은 정부 수장의 발언은 시장 경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다는 목적에서 법적으로 볼때 불합리한 제한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같은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개정안이 금지하고자 하는 행위의 범위와 형태에 대해 명확히 법률에 규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그 조사의 대상과 처벌의 정도를 수사기관 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에 따라 좌우될 수 있도록 하는 규제 방안은 헌법상 ‘법률유보의 원칙’에 위반돼 기업들의 직업 수행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것이 우려되는 현실이다.

[데스크 칼럼] KB금융의 양종희 승부수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예측 불가능한 금융사를 꼽으라면 그 주인공은 단연 KB금융지주일 것이다. 곧 취임을 앞둔 양종희 KB금융 회장 내정자 역시 KB의 ‘예측 불허한 면모’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냉정하게도 KB금융이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착수하기 몇 달 전부터 시장에서 양종희 부회장을 차기 회장 유력 후보로 점찍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윤종규 회장이 추가로 임기를 부여받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허인 부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보면 두 가지 방안 모두 KB금융 이사회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카드임에 틀림없었다. 리딩금융인 KB금융 이사회가 차기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굳이 모험을 강행할 이유는 많지 않았다.예상을 깨고 KB금융은 이번에도 승부수를 띄웠다. 행원 출신이지만 금융지주 회장이라면 응당 거쳐야할 KB국민은행장을 경험하지 않은, KB손해보험 대표 출신의 비은행 전문가인 양 내정자를 회장으로 발탁했다. 뻔하지 않았기에 흥미로웠고 신선했다. KB금융그룹의 맏형은 더 이상 국민은행이 아니라는 냉철한 분석이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본다. 이사회가 현 정권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허인 부회장을 택하지 않은 것도 의외의 결과다. KB금융은 앞으로도 정권과 정치라는 큰 바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양 내정자와 KB금융은 새 수장 취임 전부터 달갑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조만간 퇴임을 앞둔 윤종규 회장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대 금융지주 수장 가운데 유일하게 증인으로 채택된 것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국감 전후로 KB경영연구소가 금융당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삭제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도 KB금융에는 신경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원장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KB금융을 향해 금융지주 회장 승계프로그램이 잘 짜여져있다고 호평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KB금융이 회장 후보군을 먼저 정하고 평가 기준을 정했다며 표정을 바꿨다. 최근 몇 달 새 KB금융을 향해 날아오는 따가운 시선들은, 앞으로 양 회장이 풀어야할 숙제와도 같다. 최대 실적, 배당 확대 등 겉으로 보여지는 공(功)보다 지배구조 개편, 내부통제 부실이라는 과제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금융업이 처한 숙명이다. KB금융을 이끌게 된 양 내정자가 외부에서 KB금융에 요구하는 정답이 무엇인지, 그 정답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수없이 질문하고 행동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양 내정자에는 윤 회장이라는 위대한 선배가 있다. 윤 회장은 9년 전, 차기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직후 "KB금융그룹의 리딩뱅크 위상을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윤종규 회장은 KB금융을 글로벌 빼고 다 갖춘 금융사로 키웠다. 양 회장은 자신을 신임한 이사회, 주주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윤 회장이 KB금융 내 전무후무한 CEO로 평가받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 그 이상을 해냈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윤 회장을 이을 차기 수장이라면 리딩금융이라는 왕관을 지키면서 부코핀은행 정상화, 글로벌 금융그룹으로의 도약 등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특히나 부코핀은행의 부실이 진정 끝난건지에 대한 질문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이 정답 또한 양 내정자가 더 잘 알 터이다. 국내 최대 금융지주인 KB금융을 바라보는 시장의 기대치, 그리고 경쟁사들의 긴장도는 9년 전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보인다. 양 내정자가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어떤 고유의 색깔을 드러낼지, 기대감과 부담감 모두 안고 출발하는 새 KB금융이다. mediasong@ekn.kr

[데스크 칼럼] 탄소중립과 철없는 파란 단풍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40%로 삼되, 그 이상까지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지의 표명이다" 2년 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공식 행사에서 나온 한정애 당시 환경부 장관의 발언이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앞선 COP26 행사 기조연설에서 ‘우리나라 NDC를 40% 이상’으로 표현한 것에 대한 부연 설명이었다. 한국 대통령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 설정 및 공식 발표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바로 직전 기존 NDC안인 2018년 대비 26.3%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 40%로 17.7%포인트나 확대한 것이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우리나라가 실제 UN에 제출한 NDC는 2030년 대비 37% 감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불과 2년 후, 국제사회에 천명한 한국의 NDC를 실행 가능할 것으로 믿는 전문가는 얼마나 될까? 최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이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내놓았다. 한경협은 자체 분석을 통해 국제사회의 낙관적인 기대 및 선언과는 달리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미국·인도·러시아의 2030 NDC 목표 달성이 불투명할 것으로 전망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와 실현가능성과의 간극을 나타내는 감축격차율에서 한국은 13개국 중 2위를 차지했다.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정책을 선도했었던 영국, 독일조차 당면한 에너지 위기 해결을 위해 석탄 등 화석연료로 회귀하는 등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현실도 드러났다. 영국은 일찌감치 지난 1979년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을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배출량이 감소에 앞장서 온 국가로 평가된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대비 68% 감축하고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실제 행보는 이와 거리가 멀었다. 지난 7월 영국 정부는 에너지 안보 위기 극복과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기 위해 약 100건 이상의 북해 원유 및 가스전에 대한 개발을 허가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영국 기후변화위원회의 최근 보고서에서는 "영국은 기후대응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십을 상실했으며, 스스로 설정한 2030 NDC 목표 및 넷제로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것"이라고 자가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이 같은 모습은 G20 국가 전체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모습이기도 하다. 올해 정기 국정감사에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한무경 의원은 G20국가들의 화석연료 발전량이 4개국을 뺀 총 16개국에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에너지 전환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유럽국가에서도 화석연료 발전량이 2020년 1176TWh에서 2022년 1278TWh로 102TWh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NDC 목표 달성과는 역행하는 모습이다. 올 가을, 유독 단풍놀이객들의 실망이 크다고 전해진다. 단풍은 나무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광합성을 멈추고 나뭇잎에서 초록빛을 띠게 하는 엽록소 농도가 줄어들어야 점차 붉은색을 띄는데, 올해는 늦더위가 이어져 단풍이 제때 옷을 갈아입지 못해 단풍색이 제대로 들지 못했다는 푸념이다.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위기는 생각보다 깊숙이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 드리워져 있다. 2050년 탄소배출 제로(0)를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과제이니 ‘천천히 가자’는 속도 조절에 대한 요구인가, 아니면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가능한 빠른 시기에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정책방향의 전략적 조정에 대한 요구인가.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성이 또 한번 요구되는 시기다.02_35x45_일반증명사진 (1) ▲김연숙 기후에너지부장.

[데스크칼럼]공단·직영병원·나이롱환자

#2005년 목과 허리, 어깨 관절의 염좌로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A씨는 총 180일을 입원한 뒤 지금까지 18년째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A씨에게 지출된 총 보험급여는 11억9410만원 달한다. #B씨는 2015년 목 디스크를 시작으로 사지부전마비, 신경인성 방광, 발기부전, 변비, 변실금 등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뒤 3년을 요양 한 후 2018년 복직, 6개월 지나지 않아 다른 이유로 재입원, 2021년 디스크를 이유로 또 산재 승인 받음. B씨는 8년째 휴직상태이며, 장해급여 6458만원, 휴업급여 연평균 2605만원, 이송비 연평균 1011만원 등 연평균 4604만원이 지급됐고, 진료비와 간병비 등을 포함하면 B씨에게 투입된 보험급여 총액은 6억6886만원. B씨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지급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다가 최근 멀쩡하게 일어나서 담배를 사가지고 나오는 게 적발됐다. 100% 사업주가 부담하는 산재보험금이 줄줄이 새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주환 의원(국민의힘·부산 연제구)이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 받은 산재 환자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6개월 이상 요양한 사람이 총 7만1306명으로 집계됐다. 수령한 보험급여는 1인당 평균 1억5436만원, 총 11조원에 달했다. 10억원 이상 보험급여를 지원 받은 사람은 1136명으로 이들의 평균 입원일수는 13년4개월, 평균 통원일수는 6년5개월로 집계됐다. 또한 2016년 7876명에 불과했던 연간 산재 판정 건수가 2021년 2만435명으로 5년만에 약 3배 가량 증가했다. 산재 판정 건수가 이같이 급증한 이유는 문제인 정부 시절 산재인정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 한 몫 했다. 2018년 만성과로 인정기준을 완화 했고, 사업주 날인을 폐지했다. 특히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려운 다양한 질병에 대해서 ‘추정의 원칙’을 도입하면서 이전 보다 쉽게 산재로 인정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무면허사업자가 시공하는 소규모 건설공사, 상시 1인 미만 사업장도 적용 산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직업성 암 인정기준도 완화했다. 이렇게 늘어난 산재 환자들은 공단이 운영하는 10개 직영병원의 운영수익 흑자전환에 기여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누적 영업손실 546억원을 기록했지만, 이후 5년간 누적 영업이익은 471억원으로 흑자전환했다. 이 기간 ‘집중재활치료’ 같은 일반병원에는 없는 ‘산재 환자 전용 특별 수가’ 등이 적용됐으며, ‘산재보험 의학자문 운영지침’에 "직영병원에서 제출된 ‘진료계획서’는 의학 자문 생략 가능"이란 항목까지 신설됐다. 문 정부 5년 동안 산재 판정을 감독하는 각종 견제 장치가 사라졌으며 일명 ‘산재 나이롱 환자’의 폭증을 가져왔다. 심지어 이주환 의원에 따르면 공단은 일반병원에서 수술한 산재환자를 직영 산재병원에 입원시키기 위해 산재 환자 상담시 특별수가 항목이 많은 직영병원의 재활 특진이나 입원 연장을 미끼로 직영병원으로 옮길 것을 유도했다. 이 같은 행위는 공단 고위층의 지시에 의해 조직적으로 움직였으며, 지사 실적에 따른 포상금까지 지급했다고 한다. 이런 산재 환자 빼오기와 일반병원 대비 산재 환자들의 직영병원 장기 요양에 대해 부당함을 호소한 일선 직원들의 의견은 묵살당했다. 직영병원 부장들이 공단 보상부장으로 근무하는 피감독자가 감독자가 되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물론 산재를 당한 근로자에게 신속한 치료와 보상, 재활치료는 당연하다. 하지만 사업주가 100% 내는 보험금이라고 해서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산재 카르텔’을 근원부터 척결하는 메스를 가하길 기대한다.송영택 송영택 산업부장/부국장

[데스크칼럼] 이태원참사 1년,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곧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다. 핼러윈데이를 즐기기 위해 서울 이태원으로 몰려든 젊은이 등이 길이 100여m 남짓 골목길에서 인파에 떠밀려 쓰러지면서 발생한 대형 압사사고로 159명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300여 명의 일부는 아직도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1주기를 앞두고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이달 16일부터 29일까지 집중추모주간으로 정하고 이태원 일대와 광화문 서울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추모행사에 벌인다. 당시 온 국민과 어른 세대들을 집단적 죄 의식에 빠져들게 만들었던 이태원 참사가 1년 지난 지금,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먼저 달라진 것을 들자면, 참사 발생 뒤 재발 방지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심 인파밀집지역의 안전관리를 확대·강화한 점이다. 당장에 올해 핼러윈데이(10월 31일)가 다가오자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서울시를 포함한 지자체들은 오는 27∼30일 젊은이들이 몰리는 도심 인파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안전관리 장비와 대규모 인력을 배치한다. 행안부는 전국의 인파밀집 위험도 높은 4개 지역으로 서울 이태원을 비롯해 홍대앞, 명동, 대구 동성로를 지정하고 경찰·지자체와 합동관리에 들어간다. 경찰도 상반기에 인파관리 집중훈련은 물론 만일의 사고 발생 시 현장에 신속히 투입하기 위한 기동훈련까지 해 왔다고 한다. 서울시는 아예 단위면적당 인원수를 자동측정하는 ‘인파감지 CCTV’를 설치해 25개 자치구 재난안전상황실과 연결·공유하는 관리대책을 제시했다. 연말까지 71개 지역에 해당 CCTV 900대 가량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다른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참사 직격탄을 맞아 침체에 빠졌던 이태원 지역상권의 회복을 빼놓을 수 없다. 사고 직후 영업활동 중단과 상당기간 이어진 추도 분위기, 이후에 여론을 의식한 방문객의 감소 등이 겹쳐 이태원 상가는 많은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다행히 지역상인 중심의 이태원특구연합회·로컬크리에이터와 중소벤처기업부·기업들이 한마음이 돼 본격추진한 ‘헤이, 이태원(HEY, ITAEWON)’ 사업프로젝트 등 지원정책에 힘입어 상권을 종전 상태로 회복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1주기 추모행사가 있는 기간에 일정 정도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태원 참사로 달라진 점을 추가한다면 유통 및 외식업, 숙박업계가 핼러윈데이 관련행사를 기피한다는 점이다. 기피현상이 단기적 움직임으로 해마다 지속될 가능성이 적다고 보지만, 올해 참사 1주기라는 상징성과 추모 여론을 의식한 반응으로 풀이된다. 많은 인명 피해를 낸 대형 사회참사임에도 1년 뒤 달라지지 않은 점을 지목하라면 미완의 사고 진상규명과 정부의 외면이다. 유가족협의회는 여전히 참사의 정확한 사고진상 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당시 사건 부실대응 책임을 물어 경찰청 간부 중심으로 기소하는 선에서 매듭짓는 분위기다. 실제로 검찰은 전담팀을 일원화해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피해자를 포용하려는 소통 행보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것도 잘못이다. 정부의 눈치를 살피면서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 시각으로 대하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리 정부 외교관이 이태원 참사때 희생된 일본인 여성의 가족을 방문해 애도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정작 자국민 희생자를 위로하는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 이율배반적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해가 거듭할 수록 이태원 참사도 세월호 참사처럼 국민들 뇌리에서 옅어질 것이다. 그러나, 참사 이후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것 중 어느 잔상이 오래 남느냐에 따라 ‘정치적 후과’로 나타날 것이다.이진우 칼럼용 유통중기부 이진우 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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