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사라진 ‘개천용’ 신화와 교육개혁](http://www.ekn.kr/mnt/thum/202209/2022090601000229400009611.jpg)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이제 과거속으로 사라진 듯하다.기울어진 운동장은 더욱 가팔라지고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그나마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했던 교육은 오늘날 부모의 경제력과 결합하며 계층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비싼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서민 학부모들은 왠지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계층 대물림’이 고착화되면서 "출발선이 다르면 노력해도 성공 못한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필자가 1987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학생 대부분이 지방 출신이었다. 전라도 깊은 산골에 살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상경한 친구도 있었다. 집이 가난해 ‘보릿고개’의 배고픈 경험을 직접 겪었던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어디에 살았던지, 부모가 누구든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학원 안 다니고 사교육 없이도 학교수업만 성실하게 잘 따라가며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은 소위 명문대도 갈 수 있었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필자가 다닌 고려대는 예전엔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다수였지만 요즘은 서울수도권 출신이 훨씬 많다. 특히 서초강남 8학군 출신의 비중이 높다. 얼마전까지 모교에서 연구교수를 하면서 첫 수업 시간에 필자가 늘 학생들에게 한 말이 있다. "대입 성공을 위해 여러분 본인도 열심히 공부했겠지만, 과연 사교육과 부모의 뒷받침이 없었어도 가능했을까. 주변을 보면 공부하고 싶어도 여러 제약으로 꿈을 접는 친구들도 많을 것이다. 학벌을 내세워 으스대지 마라. 인생은 성적이나 학벌 등으로 결정되는게 아니다." 학생들이 이 말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지는 모를 일이다. 이처럼 심각한 수준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낸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특히 일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는 더욱 실망스럽다. 이들의 삐뚤어진 자녀교육열은 사회적 위화감과 갈등지수를 높이고 있다. 소위 ‘엄빠 찬스’로 돈과 권력을 가진 부모의 ‘입김’을 이용한 자녀 입시특혜는 힘없는 서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를 자아낸다. 사실상 부모가 만들어준 허위 스펙으로 좋은 대학을 가는가 하면 어떤 전 장관의 자녀는 고교 3학년 때 출간한 책에 당시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의 추천사가 포함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자녀의 채용을 청탁해 유죄판결을 받거나 자리에서 물러난 국회의원과 공직자들도 수두룩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온라인 시험을 부모가 같이 치르기도 한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행위들에 대해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입시비리는 공정하게 경쟁하는 많은 사람에게 허탈감과 실망감을 야기하고 우리 사회 입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했다." 자녀 입시를 위해 표창장을 위조한 모 대학교수의 1심 재판부 판결문 일부이다. 태어날 때 물고 나온 수저 색깔에 따라 자녀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린다면 돈도 사회적 배경도 권력도 없는 ‘흙수저’들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다. 심리학에서 ‘좌절- 공격’이론이 있다.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증오가 독버섯처럼 피어나기 마련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회구성원들의 연대의식이 높아질 수 있다. 입시와 취업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젊은이들이 깊은 좌절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일은 기성세대인 어른들의 책임이고 숙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부의 대물림과 교육격차, 이대로 방치해서는 결코 안된다.송문희 정치평론가/한양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