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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사라진 ‘개천용’ 신화와 교육개혁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이제 과거속으로 사라진 듯하다.기울어진 운동장은 더욱 가팔라지고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그나마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기능했던 교육은 오늘날 부모의 경제력과 결합하며 계층 대물림 수단으로 전락했다.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비싼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서민 학부모들은 왠지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계층 대물림’이 고착화되면서 "출발선이 다르면 노력해도 성공 못한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필자가 1987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학생 대부분이 지방 출신이었다. 전라도 깊은 산골에 살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상경한 친구도 있었다. 집이 가난해 ‘보릿고개’의 배고픈 경험을 직접 겪었던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어디에 살았던지, 부모가 누구든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학원 안 다니고 사교육 없이도 학교수업만 성실하게 잘 따라가며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은 소위 명문대도 갈 수 있었고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필자가 다닌 고려대는 예전엔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다수였지만 요즘은 서울수도권 출신이 훨씬 많다. 특히 서초강남 8학군 출신의 비중이 높다. 얼마전까지 모교에서 연구교수를 하면서 첫 수업 시간에 필자가 늘 학생들에게 한 말이 있다. "대입 성공을 위해 여러분 본인도 열심히 공부했겠지만, 과연 사교육과 부모의 뒷받침이 없었어도 가능했을까. 주변을 보면 공부하고 싶어도 여러 제약으로 꿈을 접는 친구들도 많을 것이다. 학벌을 내세워 으스대지 마라. 인생은 성적이나 학벌 등으로 결정되는게 아니다." 학생들이 이 말을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였을 지는 모를 일이다. 이처럼 심각한 수준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낸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특히 일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행태는 더욱 실망스럽다. 이들의 삐뚤어진 자녀교육열은 사회적 위화감과 갈등지수를 높이고 있다. 소위 ‘엄빠 찬스’로 돈과 권력을 가진 부모의 ‘입김’을 이용한 자녀 입시특혜는 힘없는 서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를 자아낸다. 사실상 부모가 만들어준 허위 스펙으로 좋은 대학을 가는가 하면 어떤 전 장관의 자녀는 고교 3학년 때 출간한 책에 당시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의 추천사가 포함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자녀의 채용을 청탁해 유죄판결을 받거나 자리에서 물러난 국회의원과 공직자들도 수두룩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온라인 시험을 부모가 같이 치르기도 한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행위들에 대해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고인의 입시비리는 공정하게 경쟁하는 많은 사람에게 허탈감과 실망감을 야기하고 우리 사회 입시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했다." 자녀 입시를 위해 표창장을 위조한 모 대학교수의 1심 재판부 판결문 일부이다. 태어날 때 물고 나온 수저 색깔에 따라 자녀의 인생이 결정되어 버린다면 돈도 사회적 배경도 권력도 없는 ‘흙수저’들은 희망의 끈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다. 심리학에서 ‘좌절- 공격’이론이 있다.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상대적 박탈감과 증오가 독버섯처럼 피어나기 마련이다.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고 사회가 공정하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회구성원들의 연대의식이 높아질 수 있다. 입시와 취업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는 젊은이들이 깊은 좌절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일은 기성세대인 어른들의 책임이고 숙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부의 대물림과 교육격차, 이대로 방치해서는 결코 안된다.송문희 정치평론가/한양대 겸임교수

[이슈&인사이트] 미국의 韓전기차 차별에 총력 대응을

지난달 16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인프레이션 감축법(IRA)의 국내 파장이 심각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이 법은 미국 차원에서 자국 논리로 첨단 기술에 대한 주도권과 자국 영토로 연구개발과 생산을 집중시키는 전략이다.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산업적 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자동차 분야의 경우 미래 먹거리인 전기자동차를 중심으로 미국 시장에서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결과가 우려된다. 약 3개월 전 바이든 대통령의 내한 당시 국내 기업의 대규모 투자에 호응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발언이 허언이 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의 내한은 ‘이재용으로 시작하여 정의선으로 끝났다’고 언급될 정도로 국내 대표 기업의 투자를 자국으로 유치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마지막 일정에서 현대차 그룹 정의선회장과 약 14조원에 이르는 미국 투자 발표가 있었고 바이든 대통령은 "투자결정에 실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폭적인 지원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번 법이 시행되면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는 기업이 바로 현대차그룹이 됐다. 즉 미국에서 판매되는 현대차와 기아차의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전 기종에 대해 차량 1대당 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서 타사 경쟁차 대비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다. 벌써부터 판매 감소율이 두자릿수에 이르면서 미국 시장에서 비상이 걸렸다. 바이든 대통령이 약속과 다르게 도움은 커녕 뒷통수를 때린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 내에 판매되는 친환경차 대상 약 221개 기종 중 약 71개 차종이 보조금 대상에 선정되었고 이 중 미국차종이 약 80%를 차지했다. 자국 차 중심으로 노골적으로 보조금을 주면서 앞서 자국 산업에 대해 노골적인 지원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보다 더한 정책을 펴고 있는 셈이다.가장 큰 문제는 이 법안이 자유무역협정(FTA) 기조를 무너뜨리는 편협된 정책이라는 것이고 향후 이 법안 등과 같은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국 중심의 심각한 법안이 각 지역에서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유사한 법안이 지속적으로 등장할 경우 FTA 기조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 우리의 수출기조 기반은 무너질 수 있어서 더욱 우려가 크다. 이번 법안에 대한 대책도 필수적이지만 큰 그림으로 미래를 내다보는 산학연관의 노력이 배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법안에 대해 정부는 방미 활동을 통해 법의 특례조항 등을 통해 최소한 유예기간이라도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이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법안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미국도 알지만 표를 의식한 행보에 대한 후퇴는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대통령 서명 직후 즉시 발효는 비상 시에 이루어지는 예외적 조치지만 이번과 같은 즉시 발효는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국을 상대로 FTA의 위반의 문제점과 즉시 발효의 무효성을 설득하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경제계, 심지어 일반 국민들도 미국의 부당성에 대한 반발로 반미 정서가 커지고 있음을 미국에 잘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지난 정부와 달리 이번 정부는 미국의 정책에 호응하면서 힘을 모아주는 상황에서 이런 조치가 갖는 파장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입지가 가장 중요한 시기인 만큼 국내의 반미 기조 확대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준다는 것을 미국측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이번 미국의 법안통과에 대하여 상호호혜의 일환으로 우리도 같은 법안으로 맞서서 미국의 국내 진입을 제도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수출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과 정면 대결은 피해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다만 미국과 같은 자국 중심의 보조금 정책을 참조하고 해외 수입차에 혜택이 크게 간 보조금 정책을 고민하여 우리 중심으로 바꾸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전제조건에는 FTA 기조가 흔들리지 않고 국제 관례를 어기지 않는 잘 만들어진 제도적 고민이 더욱 중요하다. 미국과 같은 노골적인 편협된 법안은 절대로 안된다는 뜻이다. 이번 사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뼈아프다. 일본 등과 달리 공식적인 로비스트가 없다 보니 미국 정가의 내부적인 정보 입수나 조치가 없어서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로 전기차에서 우리보다 약 2~3년 뒤진 일본이 격차를 좁힐 기회를 얻게 됐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번 법안 이전에 진행되었던 ‘더 나은 재건(BBB)’ 법안은 미국 내의 자동차 제작사의 노조가 없으면 보조금을 주지 않는다는 법안으로 바이든 대통령 취임과 동시에 진행된 법안이었으나 현재 이 법안은 없어지고 축소된 이번 IRA라는 법안이 등장한 것이다. 일본 등의 경우 미국 토요타 공장 등에 노조가 없어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컸었는데 로비를 통하여 BBB 법안의 무효화에 성공한 것이다. 결국 이번 법안의 최대 피해자는 대한민국이고 구체적으로 현대차그룹이 되고 말았다. 정부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를 중심으로 민관이 최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동시에 현대차 그룹도 미국 내에서의 전기차 생산 확대에 적극 나서야 한다, 노조의 발목잡기가 없어야 함은 당연하다. 앞으로 더욱 심각한 규제로 인한 글로벌 시장의 악재가 등장할 가능성이 큰 만큼 더욱 만반의 준비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틀을 바꾸는 노력이 가장 시급하다.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김필수 자동차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 금리상승기 한계기업 대책 시급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의 최근 ‘매파발언’은 금리 상승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켰다. 그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잭슨홀 회의 연설에서 "당분간 제약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조기 정책 완화는 없다"며 지속적인 큰 폭의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지난 6월 41년만에 최대폭인 9.1%를 기록한 후 7월에는 8.5%로 다소 둔화되자 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상승폭이 다소 낮아질 것이 아닌가 예상했었다. 그러나 파월의장의 발언은 이달 미 연준 공개시장조작회의에서 다시 0.75% 포인트 금리를 인상하는 자이언트스텝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파월의장의 발언이 알려진 날 뉴욕증시에서도 3대 지수가 모두 3%대의 낙폭을 보이며 추락했다. 아시아증시와 외환시장도 일제히 약세를 기록했다. 국내 금융시장도 요동쳤다. 원/달러 환율은 1350원대로 치솟았다. 주가도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코스피는 54.14포인트(2.18%) 하락한 2426.89로 마감했다. 이런 가운데 연준이 9월에 0.75%포인트 금리를 인상하고 12월 금년 마지막 공개시장조작회의에서도 큰 폭의 금리인상을 단행하면 현재 2.5%(상단기준)인 연방기금금리는 연말에 3.75~4.0%까지 올라간다는 의미다. 현재 한은의 기준금리가 2.5%인데 10월과 11월 두 번 남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리면 연말에 3.0%가 되고, 0.5%포인트씩 올리면 3.5%가 되어 어떤 경우에도 한국의 기준금리가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보다 낮게 된다. 이에 따라 달러강세가 이어지면서 연말에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코스피도 2000대 초반까지 하락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외국인투자자금 유출 우려도 커질 전망이다.국내 경제여건이 이처럼 사면초가인 가운데 외국인투자자금 유출 우려로 한은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릴 경우 한계기업의 부실이 가파르게 심화될 우려가 크다. 산은 KDB미래전략연구소이 발표한 ‘한계기업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는 우리나라 기업의 재무상황이 이미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한계기업은 4478개사로 2016년 2165개사 대비 5년 만에 무려 106%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한계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11.6%에서 18.3%로 6.7%포인트 급등했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 미만인 기업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5년 이상 한계기업 신세를 면치 못한 사실상의 ‘좀비기업’도 총 1762개사(7.19%)에 이르고 있다는 점이다전임 문재인 정부의 정책 오류에 코로나까지 덮치면서 초래된 결과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급격한 최저임금인상과 경직적인 주 52시간제도 도입 등 무리한 소득주도성장정책에다 전세계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 법인세를 내리는 가운데서도 독단적인 법인세 인상으로 기업들의 어려움은 가중되었다. 옥상옥으로 각종 반기업악법과 규제는 끊임없이 도입되고, 강성노조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불법 집단행위를 일삼아 오고 있는 가운데서도 해고자 실업자의 사업장점거파업 허용 등 갈수록 강화되는 친노조정책 등으로 기업들의 경쟁력은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의 부채도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금년 1분기 말 기업신용이 2685조원으로 GDP의 130%에 이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랫동안 0.5%를 유지해 오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3% 넘게 급등하면 기업의 무더기 도산이 잇따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자도 감당 못하는 기업의 부도가 확산될 수 밖에 없다.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고정금리 정책대출상품’ ‘자영업자·소상공인 대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정도로 문제가 해소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잘못하면 좀비기업까지 살리려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우려도 있다. 선제적 사업 재편, 채무재조정 등 출구전략을 신속하게 적기에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신속한 적기 기업구조조정이 되지 않을 경우에는 기업부실 증가가 은행부실을 가져오고 심할 경우 공적자금투입 등 국민세금이 소요된다. 신속한 적기 기업구조조정으로 국민경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위기극복을 위한 비상한 각오와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다.오정근 자유시장연구원장/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이슈&인사이트] 안전규제는 규제혁신 성역인가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이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하나의 일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다." 칭기스칸의 책사인 야율초재의 명언이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즉흥적으로 안전법이 하나씩 생겨나는 우리나라 현실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지난 6월 윤석열 정부는 정부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규제를 혁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강한 규제혁파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안전규제의 특징을 잘 몰라서 그런지 규제혁신 대상에서 안전규제는 제외하고 있다. 과연 올바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을까.모름지기 규제는 실효성과 품질을 확보하여야 한다. 규제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안전규제도 규제혁신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안전규제라고 하더라도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규제는 당연히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안전규제는 ‘고비용 저효과’ 규제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안전을 확보하기는커녕 안전확보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가 적지 않다. 특히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 안전규제는 실효성을 따지지 않고 졸속으로 확대 재생산되었다. 어느새 안전규제는 공무원의 조직과 권한 확대를 위한 도구로 고착화되고 말았다. 대통령 위에 공무원이 있다는 말이 공무원의 ‘묻지마’ 규제에 대한 집착을 웅변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공무원들에게는 규제는 곧 권력이자 무기이다. 이러한 점은 안전규제도 결코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안전규제는 산업현장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지나치게 많다. 행정기관의 입장에서 손쉬운 답을 찾기 위해 ‘공무원의, 공무원에 의한, 공무원을 위한’ 규제에 과도하게 의존해 온 결과이다. 다른 규제와 달리 ‘안전규제는 선(善)’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맹목적인 안전규제는 어느 사이에 관료주의 위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만큼 안전관계 법과 집행기관이 난립되어 있는 국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다 보니 규제가 서로 중복되고 충돌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규제의 준수 여건을 조성하거나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일보다는 규제를 추가하고 강화하는 일에 혈안이었다. 안전규제가 수범자로부터 많은 비난과 냉소의 대상이 되고 있는 주된 이유이다. 예측 가능성도 없고 누구도 지킬 수 없는 법을 악법이라고 한다. 악법이야말로 가장 나쁜 규제에 해당한다. 안전분야에도 이론적으로 악법적인 요소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도 나쁜 규제가 곳곳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도급작업에 대한 규제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지난 정부에서 안전규제와 공공기관 안전인력을 대폭 확대했음에도, 사망재해자 수가 별다른 감소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안전규제의 품질이 불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안전인력은 근로자 1만명 기준으로 미국의 약 8배, 일본의 약 4배에 이를 정도로 비대한 상태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전규제를 유지하려 한다. 안전규제는 다른 규제와 마찬가지로 그 속성상 생명력과 번식력이 매우 강해 또 다른 규제를 낳는다. 불합리한 안전규제일수록 법집행을 자의적으로 할 수 있어 집행기관의 규제에 대한 집착과 저항이 집요하다. 법령보다 더 고질적인 병폐가 법적 근거 없는 행정지침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규제이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그림자 규제’이지만 그 폐해는 법령 자체 못지않게 심각하다. 행정기관이 행정편의적으로 만들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행정지침 왕국이라고 할 정도로 법적 근거 없는 행정지침이 안전규제에서 남발되었다. 정부가 바뀌었지만 이 문제는 아직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안전규제도 합리성과 실행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기준이다. 이를 무시한 안전규제는 규제 전체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안전규제를 규제혁신의 성역으로 남겨두면 실효성 없는 불량 안전규제가 더 기승을 부릴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난마처럼 꼬여 있는 안전규제의 혁신 없이는 재해예방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윤석열 정부는 명심하고 명심할 일이다.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또다시 하향 수정된 경제성장 전망

지난 8월 25일 한국은행은 대내외 여건변화를 감안하여 금년 성장률을 2.6%로, 내년 성장률을 2.1%로 전망하였다. 5월에 이어 금년과 내년의 성장률을 다시 하향 조정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연 8회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개최하며, 2, 5, 8, 11월에는 금리 결정과 더불어 경제전망 결과를 발표한다. 세간에는 한국은행의 경제전망이 맞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족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국내기관의 전망치가 자주 수정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높은 대외의존도에 있다. 세계교역신장률, 주요국 경제성장률, 환율, 국제유가는 우리나라 수출입, 설비투자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대외변수에 대한 예상이 당초 전망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난다면 이에 기초한 국내 예측도 상당폭 수정될 수밖에 없다. 실제 IMF는 7월중 수정전망을 통해 4월 전망 대비 세계교역신장률을 0.9%p, 미국 성장률을 1.4%p, 중국 성장률을 1.1%p 각각 하향 조정하였다. 이번에 내놓은 수정 전망치는 높은 대내외 불확실성을 전제하고 있어 하반기중 다음의 요인들이 경기 흐름에 미칠 영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 중국의 성장세 둔화 정도이다. 중국의 성장률이 1%p 하락할 경우 우리 수출증가율은 0.34%포인트 하락하고, 미국의 경우 0.21%p, 유럽연합(EU)은 0.19%포인트 하락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 및 강력한 방역조치가 2년 이상 지속되면서 서비스업 고용 악화, 민간소득 부진 등으로 소비여력이 축소되었다. 헝다사태 이후 심화된 건설투자 부진도 주요 리스크 요인이다. 다만 하반기에는 중국정부의 통화·재정정책의 적극적인 운용, 자체기술에 의한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보급으로 중국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을 소지도 있다.둘째, 글로벌 고인플레이션의 진정 여부이다. 최근 국제유가와 일부 원자재가격의 하락에 힘입어 물가 오름세가 제한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IMF에 따르면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2024년말까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안정될 전망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요인에 의해 곡물 및 에너지가격이 다시 급등하는 비관적 시나라오가 현실화할 수 있다. 또한 미국 등 주요국 노동시장이 타이트한 가운데 근로자의 임금인상 요구가 커지면서 임금-물가간 상승작용(wage-price spiral)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외부 요인이 없더라도 주거비 등에 의한 고인플레이션 지속은 각국 중앙은행의 긴축 노력을 강화시키고, 성장을 상당폭 희생시킬 것이다.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최근 잭슨홀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한 정책이 가계와 기업에게 고통을 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셋째, 대내요인으로 국내 소비심리의 악화 추세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민간소비는 양호한 고용상황,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비교적 견조한 회복세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 저소득층 및 청년층의 다중채무가 크게 늘어난 데다 금리 인상으로 주택·주식거래가 급감하고, 원/달러환율 급등으로 금융·외환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하반기중 소비심리가 이전과 달리 크게 악화할 수 있다. 금년중 가계 설문조사 결과, 소비자심리지수는 1~5월중 103 내외에서 7~8월중 87 내외로 큰 폭 하락하였다.한국은행은 최근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 수준으로 추정하였다. 잠재 GDP(국내총생산)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을 말한다. 이번 전망은 다양한 대내외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금년과 내년중 우리 경제가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정도의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경제가 잠재성장률을 상회하는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에 비해 크게 높다면 정책당국은 당분간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정책을 운용하고자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준금리의 큰 폭 인상으로 취약계층의 피해가 커질 수 있으므로, 정책당국은 생필품 등에 대한 물가안정 노력과 함께 코로나19 피해기업 지원, 가계대출의 고정금리 전환 등 지원 방안을 병행하여 강구해야 하겠다.김종욱 한국은행 경제교육실 교수

[이슈&인사이트] 통큰 치킨과 행로 다른 당당치킨

홈플러스의 ‘당당치킨’이 소비자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한 마리 7000원의 당당치킨은 기존 프랜차이즈 치킨의 3분의 1 수준의 가격으로, 매장마다 품절이 일어나고 소비자들의 뜨거운 구애가 잇따르고 있다. 홈플러스의 마케팅 담당자는 ‘당당하게’ 프랜차이즈 치킨을 저격했으나, 프랜차이즈 업계의 반발은 예상과 다르게 금방 잠잠해졌다. 12년 전 롯데마트의 통큰치킨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당시 통큰치킨은 1만 5000원 이상의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에 비하여 3분의 1 수준인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과 양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인했다. 통큰치킨 대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비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으나, 이내 소상공인 여론과 정치인들의 압박에 못이겨 결국 철수했다. 당당치킨과 통큰치킨의 진행 양상이 이렇게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당당치킨과 12년전 통큰치킨이 처한 상황을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온다. 첫째, 12년 전과 현재의 가장 큰 차이점은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점이다. 통큰치킨 당시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의 평균 가격은 1만 5000원 정도였으나, 지금은 배달비를 포함하면 거의 3만 원에 육박하여 집에서 시켜 먹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다. ‘소매업 수레바퀴 이론’에 따르면 당당치킨의 급부상이 쉽게 설명된다.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들은 시장진입 초기에는 저가격, 저마진의 점포운영으로 기존의 경쟁자들을 대체했다. 그러나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이후 무수한 치킨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함에 따라 경쟁이 격화되고, 이에 경쟁우위의 확보를 위해 운영비가 높아지고 고급스러운 메뉴와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느라 고가격, 고비용, 고서비스의 치킨 브랜드로 전환된다. 이에 따라 저가격, 저마진, 저서비스의 당당치킨이 고가격, 고마진, 고서비스의 치킨 브랜드를 대체하는 것은 시장원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둘째, 일반적으로 가격이 20% 싸다면 사람들은 다소 불편하더라도 물건 사는 곳을 바꾼다. 초창기의 백화점은 당시 지역상점의 평균 마진보다 20% 저렴하게 가격을 책정함으로써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엄청난 수의 손님들을 방문하게 할 수 있었다. 하물며 3분의 1 가격이라면 시장을 흔들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 특히 식품물가의 가파른 상승은 소비자들의 장바구니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활황기에는 앞으로의 현금흐름을 기대하고 부담이 조금 되더라도 고급브랜드를 찾는 경향이 있으나, 불황기에서는 본인의 현금흐름을 예측하기가 불확실해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비자들이 이제껏 사오던 제품의 취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다소 저렴하면서도 이전에 쓰던 물건과 비슷한 것을 찾기 마련이다. 대체로 가격과 품질 사이에는 어느 정도 정적인 관계가 있으며, 인플레이션으로 압박을 느끼는 소비자들은 품질이 만족할 수 있는 선까지 낮은 가격을 선호하여 품질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적절한 선까지 내려 오게 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시기에는 낮은 가격에 만족스러운 품질을 제공하는 당당치킨에 대한 소비자들의 열정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MZ세대가 주요 정치세력으로 급부상하면서 정치권의 목소리가 잠잠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MZ세대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복합쇼핑몰을 뜨거운 이슈로 만든 것만 보아도 이들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MZ세대는 대기업과 소상공인 간 대결구도라는 진부한 정치 아젠다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의 애타는 호소에 대한 정치인들의 반응이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다. 결론적으로, 통큰치킨은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았기에 시장에서 철수하는 결과를 맞았고, MZ세대라는 든든한 지지층을 얻은 당당치킨은 거침없이 성장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개인의 행복과 삶에 대한 만족을 추구하는 MZ세대가 소비재에 대해 더욱 가치소비를 하도록 할 것이다. 치킨 소비의 주고객인 이들 MZ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치킨 브랜드뿐만 아닌 모든 영역에서 치열한 가격경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장

[이슈&인사아트] 용산 개발사업, 공공성 강화해야

고지도를 보면 서해 바닷물이 용산 앞까지 들어온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용산은 ‘용의 산’을 뜻하여, 옛 사람들은 용산지역의 산을 최고의 동물로 상징되는 ‘용’으로 보았다. 용산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모악 정상에 도달하게 되고 이어 인왕산과 연결된다. 용산 지역은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의 길지이다. 용산 지역은 신 서울청사 부지로 논의된 적이 있고,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실이 이전했다. 용산정비창은 배산임수의 명소로서 그 잠재력이 서울에서 독보적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용산정비창을 용산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용산정비창은 경부선이 개통된 1905년부터 2012년까지 운영되었으며, 아치 형태의 정비 창고들을 철거하고 현재 대규모 나대지인 49만3000㎡의 터가 남아 있다. 용산역은 KTX, GTX B노선과 D노선이 만나는 전국토 및 수도권 미래 교통의 중추로서의 가능성이 크며, 미래 유라시아 협력시대 그 역할이 더욱 부각될 것이다. 용산정비창의 개발 성공여부는 지역 주민들과 서울시뿐만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토지 소유주와 관련 행정청뿐만 아니라 국민적 관심사가 높기 때문에 국가적 프로젝트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2006년 처음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부터 용산국제업무지구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세계적 금융 위기 등 내적·외적 요인으로 이 사업은 2013년에 무산되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삼성동 한전부지와 잠실운동장을 중심으로 한 ‘서울국제교류복합지구’ 개발을 중점적으로 추진하면서, 용산정비창 개발사업은 정지되었다. 10년간 방치되어 온 이 터를 개발한다니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꼭 성공하기를 바란다. 2022년 현시점에서 서울시의 발표 내용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보자. 첫째, 공공성에 관한 문제이다. 공공주도 개발 사업인데, 서울시의 발표를 보면 오히려 공공성에 대하여 염려가 된다. 부지 중앙부에 국제업무기능을 배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고, 문화복합기능을 경부선 철로 남동측의 작은 부지에 떨어져 배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중앙부에 외국 기업들의 본사가 들어설 수도 있다. 국가 백년대계를 생각하면, 한류 테마 공간 등과 같은 공적인 기능이 더 낫지 않을까. 민간에 의하여 2003년에 건설된 일본 도쿄 록본기힐스를 보자. 부지 중앙부에 전통 일본식 정원을 아름답게 조성하고, 전시관, 영화관, 호텔, 아파트, 사무실 등의 컴팩트시티를 창조했다. 21세기 신도시의 전례로 평가받으면서 세계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용산정비창을 대기업 사옥의 집단 집적지로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할까. 컴팩트시티의 고층화는 공원이나 공공장소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개발 구상을 컴팩트시티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서울시가 미리 전체 부지를 구획하고 국제공모전은 구획된 부지별 추진한다고 한다. 부지 구획부터가 중요하다. 부지 전체를 대상으로 국제공모전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전 세계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의 상상력을 모아 전체 부지의 개발 컨셉과 비전, 도입 기능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 둘째, 과연 공공에서 100층이상을 발표해야 하나. 서울시가 제시한 조감도에는 100층이상 건물과 마천루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할 더 나은 미래 도시인지 묻고 싶다. 현대차 그룹의 삼성동 신사옥인 글로벌비지니스센터는 원래 105층 1개 동으로 계획했으나, 경제성 등을 이유로 50∼70층의 2-3개 동으로 변경하여 추진하고 있다. 민간 기업도 이러한데 초고층 마천루가 과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디자인인지 의문이다.셋째, 한강과의 접합 여부가 매력도를 결정한다. 현재 한강과 정비창 사이에는 있는 아파트단지와 주택 구역에서는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 사업들이 추진 중에 있다. 이들 사업들이 완료되면 거대한 장벽이 될 것이다. 이들 사업을 중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난제이다. 남북 관계로 폐쇄된 한강 수로가 개방될 때, 이 한강변에 상하이, 도쿄로 가는 항구인 ‘용산항’을 건립할 수 있다.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이영한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지속가능과학회장

[이슈&인사이트] 4차 산업혁명과 개인정보 보호

영국에서 스마트 계량기 설치 반대 시위가 벌어진 일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전력 생산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전력망 안정과 환경에 도움이 되는 스마트 그리드 구축을 위한 계량기 설치에 왜 반대할까 의아했다. 알고 보니 가정에 설치된 계량기에서 전력 사용정보가 기업이나 정부로 전달되면 언제 출퇴근하고, 몇 명이 사는지 등 개인정보가 노출될 수 있어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가 팬데믹의 공포에 사로잡혀있던 코로나사태 초기 우리나라는 위치 추적을 통해 선제적으로 확진자와 접촉자를 파악했다. 해외에서는 이에 대해 개인의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된다는 비판적 보도가 나오기도 하고, 동일한 추적 시스템 도입이 좌절되기도 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민감도는 이처럼 사회마다 다르지만,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 불과 20년 전에는 학교 졸업앨범에 학생들과 교사들의 성명, 사진은 물론이고, 주소와 연락처까지 기재되어 있었지만 이젠 주소나 연락처가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교사들의 동의 없이는 사진도 실을 수 없게 되었다.이처럼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지만,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인공지능 개발이나 데이터 기반 서비스 산업의 확산은 개인정보에서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 요구되는 개인정보의 활용 필요성이 커지는 만큼 정보주체인 개인들의 정보 보호에 대한 목소리도 이에 대응해 커지고 있다.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최근 추가 정보 없이는 개인을 식별할 수 없는 가명정보를 결합전문기관이 자체 결합하는 범위를 조정하거나 영상·음성 등 비정형 데이터의 가명처리 절차를 마련하는 등 규제 혁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개인들의 영상 데이터 학습을 통해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업체에 개인정보보호 관련 자문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법제가 원칙적으로 요구하는 정보주체의 개별적인 동의를 넘어 해당 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해서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봤지만,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서도 비정형 데이터는 명확한 처리 방안이 없으므로 정보주체의 동의를 받으라는 일반론만 기재되어 있었다.주로 정보주체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개인정보보호 법제에서는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영상에 대해서 개인에게 정보처리에 대한 개별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 목적 외 이용, 제3자 제공을 위해서는 그에 따른 별도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데, 이러한 활용의 제약을 정책적으로 완화하고자 한 것이 가명정보이다. 그럼에도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은 실무적으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동의 만능주의에 기울어 있다.개인정보를 가명처리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명정보는 데이터 기반 경제 발전을 위해 유용한 수단이다. 다만 유럽의 GDPR(일반개인정보보호규졍)에서도 가명처리에 대한 언급은 있지만 가명정보 자체에 대한 정의는 따로 없다. 식별 가능성이 없는 익명정보와 달리 가명정보는 개인정보임에도 사회 전체의 공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그 활용을 확대했기에 더욱 세심한 처리 절차와 보호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정보주체인 개인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동의 없이 가명처리되어 활용되는 경우 혹시 재식별될 수도 있으므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기초로 개인정보보호법 제37조에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으로 구체화되어 있고, 가명정보 처리 가이드라인에서도 인정한다. 그런데 개인정보보호법 제28조의7은 이미 가명처리가 끝난 가명정보에 대해서는 개인정보 처리정지 요구권을 배제하고 있다.결국 개인은 자신의 정보가 가명처리되어 가명정보가 되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만 처리정지 요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들은 자신의 개인정보가 가명정보가 된 후 재식별되어서야 비로소 이를 인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 이러한 권리는 사실상 무용한 것이 된다.우리는 새로운 제도 도입 여부만 두고 오랫동안 갑론을박을 거듭하다가 어설픈 제도를 급박하게 시행하곤 했다. 가명정보 관련 제도도 미흡한 제도를 성급하게 시행하다가 가명정보가 재식별되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가명정보를 도입한 취지를 살리되 정보주체인 개인의 정보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미묘한 시소의 균형점을 계속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이슈&인사이트] 경기불황과 슬기로운 소비생활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 샐러리맨들이 흔히 하는 푸념이다. 그런데 요즘들어 월급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는 일이 일상이 됐다. 고물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금리도 치솟고 있다.최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소비자심리지수(2022년 7월 기준)는 86이다. 소비심리지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경기에 대한 판단이나 전망 등을 조사하여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로서, 보통 소비자심리지수가 100보다 낮으면 소비심리가 비관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경제에서 소비심리지수가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으로 국내총생산(GDP)에서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소비심리지수는 향후 경기 상황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경기선행지표의 역할을 하며, 이는 선진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얼마전 미국 소비자들의 신용카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근 들어 모든 소득계층에서 소비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빠른 물가상승 때문에 저소득층의 소비도 줄어들고 있고, 주식시장의 불황으로 고소득층의 소비 역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가계부채와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크게 작용함으로써 미국 소비자의 소비심리도 위축되고 있다. 이렇듯 불황을 설명하는 다양한 지표들은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2016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는 ‘불황기 소비유형’ 이라는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불황기 소비유형은 ‘불황복종형’, ‘불황순응형’, ‘불황자존형’, ‘불황부지형’의 4가지 소비유형으로 분류된다.첫째 유형인 불황복종형은 소비를 최대한 자제하는 소비유형이다. 이 소비유형에 포함된 소비자들은 나보다는 가족을 위한 소비를 지향한다. 두번째 불황순응형은 가성비를 따져 소비하나 작은 사치를 즐기기도 한다. 셋째 불황자존형은 불황이지만 나를 위한 소비를 줄이지 않으며, 내가 좋아하고 유행하는 것을 구매한다.넷째 불황부지형은 지금을 불황이라 생각 안하며 따라서 소비에도 변화가 없다. 교육,건강, 식료품 지출은 오히려 더 늘린 것으로 조사되었다.당시 발표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소비자들의 61%는 ‘현재 경기가 불황’이라고 응답했다. 그럼에도 조사 당시 MZ세대에 해당되는 10~30대의 응답자들은 현재의 경제상황은 불황이지만 나를 위한 소비는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그러나 최근의 고물가는 나를 위해 소비하는 MZ세대의 소비패턴을 변화시키고 있다. 오히려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를 극도로 줄이는 무소비 활동이 SNS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IMF 외환위기 시절 ‘아나바다 운동’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짠테크’와 ‘무지출챌린지’가 그들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얼마전 까지만 해도 짠내나는 소비를 하면 ‘궁상맞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최근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이는 불과 얼마전까지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YOLO)문화와 플렉스(FLEX)를 외쳤던 것과는 매우 대비되는 현상이다. 그들은 지금 지출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SNS를 중심으로 공유하고 있다. 소비의 유행에 중심에 있었던 그들이, 고물가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자구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식비를 아끼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하며, 합리적 소비의 일환으로 중고 제품 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해서 가까운 거리는 공공자전거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6월에 발간된 ‘서울 교통이용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 공공자전거 서비스인 따릉이의 5월 하루평균 이용건수는 약 15만 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74.4% 증가했다.기업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싼 물건을 찾는 소비자의 관심을 이끌기 위해자사 브랜드의 중고 제품을 직접 구입해 판매하는 기업이 등장했다. 또한 매월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할인된 가격으로 도시락을 구매할 수 있는 ‘도시락 구독 서비스’를 내놓기도 했다. 결국 소비자들은 소비를 줄이기 위해 가성비 높은 상품에 관심을 기울이며,기업도 이에 발맞추기 위해 가격파괴 상품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그러나 가격파괴가 소비 전반으로 확산될 경우투자와 고용이 위축되고 결국 이것은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더욱이 가격을 내려도 소비가 늘지 않으면, 장기 불황의 악순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짠내나는 소비가 길어지면 시장에서 돈의 흐름이 멈추는 ‘경제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무조건 지출을 줄이기 보다는 나에게 맞는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통해 지출을 조절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다.지루한 장마처럼 우리 모두에게 힘든 시기이다. 지치지 않고 슬기로운 지출을 계획하는 현명함을 발휘해야 할 때다.이홍주 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한중수교 30주년 특별기고] 전환기 한중관계, 새로운 공생방안 고민해야

한국과 중국이 24일 수교 30주년을 맞는다. 그간 한중 경제관계는 무역과 투자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등 큰 시련이 있었지만, 한중 경제관계는 꾸준히 성장해왔다. 수교 이후 한중 무역은 한국 기업의 대중국 직접투자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01년 12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무역 및 투자장벽이 완화되면서 한국 기업의 대중국 직접투자도 크게 늘어 2005년에는 전체 해외직접투자의 39.5%를 차지하기도 하였다. 한국 기업의 대중국 직접투자가 늘어나고 중국 기업의 한국 중간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한국의 대중국 무역흑자는 2018년 무려 556억 달러를 기록하였다.또한,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공연·게임 등 한류 콘텐츠가 유행하면서 한국 소비재에 대한 수요도 대폭 증가하였다. 화장품이나 과자류·식품류·의류 등 소비재는 한류 덕분에 크게 성장한 분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기업은 중국 매출이 오히려 한국 매출을 크게 상회하기도 하였다.그러나 금년 상반기 대중국 무역흑자는 불과 42억 달러에 그쳤다. 최근 3개월(5~7월) 연속 대중국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한국의 대중국 수출에 비상이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실은 금년 상반기에도 대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6.9% 증가한 814억 달러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고 수준에 달하였다. 문제는 한국의 대중국 수입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인데, 금년 상반기 대중국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9.7% 증가한 772억 달러를 기록하였다. 이 같은 특징은 한국의 대중국 수출입 비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한국의 대중국 수출과 수입 비중은 2018년 각각 27%와 20%에서 2021년에는 25%와 23%로 변하고 있다.이처럼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소폭 증가하는데, 수입은 대폭 증가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한국의 대중국 수출 품목은 중간재 비중이 70%를 넘어서는데, 중국이 소재·부품 등 자체적인 공급망을 꾸준히 확대하면서 한국으로부터 수입할 필요성이 작아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이 디스플레이, 특히 LCD 자체 생산을 대폭 늘리면서 오히려 한국 기업은 LCD 생산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자동차 부품 역시 2020년을 기점으로 대중국 무역적자로 전환하고 있다.다음으로 중국에 진출한 기업의 실적 부진을 들 수 있다. 한때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30%를 점유했던 삼성전자는 이제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4위까지 올랐던 현대자동차는 이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가성비를 앞세워 승승장구하였다. 중국 로컬 기업들이 품질이 조악한 상황에서 한국계 기업의 가성비 전략은 매우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로컬 기업이 기술수준을 끌어올리면서 가장 먼저 타깃이 된 기업은 한국계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여전히 프리미엄 시장에서 최고의 품질을 인정받는 애플의 아이폰이나 독일계, 일본계 자동차 기업들은 흔들림없이 건재하다.한편,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이 한류 콘텐츠에 대한 제한을 강화하면서 소비재의 대중국 수출이 타격을 입게 되었다. 한류 붐을 타고 크게 성장했던 아모레 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의 매출은 시간이 지나면서 대폭 감소했다. 종전에 중국에서 한글을 표기한 제품이 경쟁력이 있었으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하고 있다.그렇다면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어떤 방향으로 이어가야 할 것인가. 우선 정치적 갈등 때문에 대중국 교역이나 투자를 줄이는 것을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한국 못지않게 정치적 리스크가 있는 일본이나 대만은 여전히 대중국 투자와 교역을 늘리면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 중국은 구매력 기준 최대 소비시장이 된지 10년이 되어가고 있으며, 최대 무역대국이자 조만간 1위의 수입대국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이 시장을 버리고 다른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더 큰 리스크를 안게 될 수 있다. 현대자동차나 한류 관련 기업들이 중국에서 잃은 것을 구미 시장에서 회복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대체 시장을 찾지 못한 채 중국 시장만을 잃어버린 기업들도 상당하다. 특히 세계 반도체의 60%를 소비하는 중국을 버릴 경우, 한국의 수출은 급감하고 무역적자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된다.다음으로 한중 관계가 어떻든 중국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발굴하여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할 것이다. 중국 경제가 2030년 전후 미국을 넘어설 정도로 커질 전망이며, 2021년 중국이 세계 제조업의 30%를 점하여 미국의 2배에 이른 상황에서 중국이 필요로 할 차별화된 부품이나 소재를 적극적으로 육성함으로써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써나가야 할 것이다.마지막으로 한중 관계 회복을 통해 정치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경제교류의 촉매작용을 하도록 해야 한다. 중국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중국 정부가 한류 콘텐츠에 대한 제한을 해제할 경우, 한국의 유관 소비재에 대한 수요가 대폭 증가할 것이다. 특히 금년이 한중 수교 30년임을 감안하여 경색된 양국 관계 회복을 위한 외교적인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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