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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챗GPT 신드롬

인공지능(AI) 시장과 AI 챗봇(Chat Bot)인 챗 GPT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챗GPT 사용자는 지난 1월 월간 활성 사용자 수(MAU·Monthly Activity User)기준 1억명을 돌파했다. 이는 오픈AI가 챗GPT를 출시한 지 2개월 만의 기록이다. 이 같은 기록은 다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보다 훨씬 빠르다. 틱톡은 1억 MAU에 도달하는 데 9개월, 인스타그램은 30개월, 핀터레스트는 41개월 걸렸다. 챗GPT 월 사용자 증가속도는 핀터레스트에 비해 20.5배 , 인스타그램의 15배, 틱톡보다는 4.5배 빠르다. 챗GPT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AI시장이 급성장할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마켓앤드마켓은 세계 AI시장 규모가 2027년까지 연평균 36.2%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현재 869억달러(약 107조원) 규모인 AI시장은 4년 후인 2027년에 4070억달러(약 501조원)로 약 5배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AI시장과 챗GPT 시장이 가장 유망한 분야로 급부상하고 있다. AI시장은 AI에 직접 관련된 좁은 범위로 본 것이며, 넓게 보면 훨씬 커진다.투자은행 세계 5위이며 유럽 2위인 UBS의 보고서에 따르면 챗GPT로 운영되는 총 가용시장이 1조 달러(약 1300조원)에 육박한다. 이는 챗GPT로 발생하는 새 시장에서 나오는 매출 규모로 챗GPT시장을 뜻한다. UBS는 "시장 규모가 줄어들 수는 있지만, 확장 가능성이 더 높다"고 봤다. 챗GPT를 초거대 AI(Hyperscale AI· Super-Giant AI)라고 한다. 초거대 AI란 대용량 데이터를 학습해 수천억 개 매개변수 기반으로 인간처럼 종합추론을 할 수 있는 AI다. 인간처럼 종합 추론이 가능해 기존 AI에서 한 단계 진화한 차세대 AI로 평가받고 있다. 챗GPT가 급부상하면서 국내외 초거대 AI 경쟁도 가속화하고 있다. 실시간 질의응답은 물론 사용자 요청에 따라 작사·작곡 같은 창작활동과 코딩까지 가능한 챗GPT가 AI업계 패러다임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초거대 AI는 세계적 AI연구소인 오픈AI가 만든 GPT 3.5 모델로 파라미터 수가 1750억 개에 달한다. LG는 올해 하반기 6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갖춘 AI를 공개하겠다고 한다. 올해 안에 공개될 GPT 4는 파라미터 가 100조개 까지 늘어날 수 있다. 파라미터는 인간 뇌에서 정보를 학습하고 기억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시냅스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학습량이 많을수록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은 것처럼, 파라미터의 규모가 커질수록 AI가 데이터를 분석하는 지능도 비약적으로 확대된다. 6000억 개의 파라미터를 가진 초거대 AI는 언어 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영상을 이해하고, 데이터 추론까지 가능하다. 챗GPT의 등장은 MS와 구글 등 빅테크 회사들의 AI 기술 경쟁에 불을 지폈다. MS는 오픈AI의 초기 투자사로,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자사 검색 엔진 ‘빙(Bing)’에 챗GPT를 접목했다. 이에 맞서 구글도 AI 챗봇 ‘바드(Bard)’를 발표했다. 구글이 서둘러 바드를 발표했으나, 시연하던 바드가 수많은 대중 앞에서 오답을 제시하며 검색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정확성에 허점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구글 모회사 알파벳 주가는 급락하기도 했다. 미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중국 등 세계 각국의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챗GPT에 맞설 AI 기술 개발 성과를 잇달아 공개하고 있다. 국내 최대 검색 엔진 업체 네이버 역시 글로벌 경쟁 대열에 가세했다. 네이버의 서치GPT는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버를 기반으로 한다. 하이퍼클로버는 국내 최초 한국어 특화 모델로, 학습 매개변수 2040억개를 자랑한다. 이를 활용해 네이버는 올 상반기 중 자사의 고품질 검색 데이터와 기술을 접목한 ‘서치GPT’를 선보일 계획이다. 챗GPT는 많은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부정적인 효과와 문제점도 적지 않다. 따라서 챗GPT의 장점은 잘 활용하되, 지속적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챗GPT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내용에 대해서는 계속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AI시장과 챗GPT시장이 상당 기간 고속 성장을 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AI시장과 챗GPT시장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비즈니스모델 발굴에 정부와 기업 모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문형남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이슈&인사이트] 대북 협상, 원칙과 기준에 입각해야

수년째 이어지는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도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일상화되고 강도도 점점 높아질 전망이다. 북한이 작년에만 70발이 넘는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데 쏟아 부은 비용은 약 5억6000만 달러(약 7200억원)을 것으로 추산된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때 B-1B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 배치에 대한 맞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북한의 잇따르는 도발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식량난 등 내부의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외부 긴장을 조성하는 전략이다. 통일부 브리핑에 따르면 (북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하고 북한 측이 세계식량계획(WFP)의 지원을 희망 하는 정황이 포착되었다. 둘째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관심끌기 전략이다. 하지만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의 선제적 변화 없이는 인센티브 제공도 없다’는 원칙론을 고수하면서 당근을 주기보다 대북제재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경쟁의 파고 속에서 북한에 대한 미국의 관심도는 낮아지고 있다. 비핵화 조치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이나 대북 제재 완화 ·해제를 희망 하는 북한의 요구가 관철되기 힘든 상황이다. 과거 냉전시기에 한국의 최대 목표는 생존, 즉 안보였다. 당시에는 한미동맹의 강화에 기반한 안보만이 유일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그리고 냉전종식 이후에는 안보보다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급상승했다. 특히 한반도 평화에 관심이 높았던 노무현 정부는 미·중 사이에 ‘균형자’를 주장하였고 박근혜 정부는 통일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며 중국과 관계개선에 나섰다. 이로 인해 한때 미국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점증하는 핵 위협에도 불구하고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억지력 강화보다는 대북 제재완화, 한미연합훈련 중지, 종전선언 등 한반도평화프로세스 구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미·중 패권경쟁과 신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남북 간 평화·통일 담론은 더욱 힘을 잃고 있다. 통일과 평화의 논쟁은 허무하게도 현실의 벽에 막혀 막을 내리고, 미중 관계 악화, 북한의 핵무기 보유 등으로 이제는 안보담론이 외교안보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앞으로 윤석열정부에서 북한과의 관계맺기는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까? 지난해 6월 윤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개최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삼각공조 강화가 논의되었다. 미국은 한·미·일 삼각협력을 인도·태평양 전략(Indo Pacific Strategy)의 10개 행동계획 중 하나로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한일 과거사 문제, 중국과의 관계,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 대한 논란 등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만큼 북한에 대응하는 한미일 협력이 실질적으로 가동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대북협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북핵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러나 이제 ‘도발- 제재완화- 도발-제재’라는 무한서클을 반복해온 기존 방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북한의 떼 쓰기식 도발에 임시방편용 당근을 주는 것이 아닌 원칙과 기준에 기반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 또 한가지, 우리 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있어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현금다발’을 전달하는, 즉 외교를 돈으로 사는 방식은 절대 피해야 한다. 햇볕정책도 좋고, 남북 간 교류협력도 좋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끌려다니면서 투명하지 못한 ‘돈’을 대가로 사는 평화는 지속가능성도 없고 가짜평화일 뿐이라는 것을 당국은 명심해야 한다.송문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정치평론가

[이슈&인사이트] 한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고민과 대안

지난 1월 30일 방한한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촉구했다. 같은 날 방한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도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나토의 글로벌 파트너 국가로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요 동맹과 동참했다. 또한 나토 한국대표부를 설치하고 사이버방위센터 정회원에 가입하는 등 나토와의 교류·협력을 강화해 왔다. 한국이 나토와 동맹국인 미국의 요청을 거절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이 군사 지원에 신중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러시아와의 우호 관계 손상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포괄적 제재로 고립된 상황에도 한국과는 상호 비자면제협정을 유지할 정도로 가깝게 지냈다. 경제·과학기술 분야에서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맺어 온 러시아와 향후 관계를 고민할 수 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우선 경제적 이익이다. 최근 어려운 경제 환경에서 효자 노릇을 하는 방위산업 수출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 한국 무기체계 성능이 실전에서 입증되면 수요가 급증해 한국이 세계 3대 방위산업 수출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약 1000조 원에 달하는 우크라이나 전후 복구 사업에 참여할 명분과 자격도 갖게 된다. 특히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사회간접자본 및 플랜트 사업 분야에 큰 역할이 기대된다. 두번째는 안보 이익이다. 북한은 이미 러시아에 무기 지원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는 이 대가로 북한에 현금과 각종 무기 및 군사 기술 지원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앞으로 한국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은 러시아가 북한의 전력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재고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 또한 러시아가 위축되면 중국이 이 공백을 메우며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를 견제하기 위한 국제 안보 네트워크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은 대만 침공 준비를 구체화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한 고도의 대응 전략이 필요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은 한국이 향후 미국과 나토로부터 충분한 군사 지원을 미리 확보하는 고도의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다. 그 다음은 국가 전략적 이익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으로 중장기적인 이익이 있더라도 당장 러시아와의 관계 파탄 등의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는 한국은 이를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급증한 북한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그만큼 북한의 핵 도발이 심각하다는 인식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확장억제 공약이 확고하다고 강조했지만, 한국의 잠재적 핵 보유 가능성을 계속 무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국제사회 압력과 제재를 감수하고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현재 고려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는 미국이 한국의 핵연료주기 완성 허용을 통한 핵연료 사용 관련 제한을 전면 해제하는 것이다. 핵연료주기 확보의 핵심은 전면적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이 포함된다. 재 처리된 핵연료는 원자력 발전에 다시 사용하여 발전 비용을 크게 절약하는 경제적 이점과 함께 유사시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원료를 보유하는 효과가 있다. 일본은 미국의 양해로 핵연료주기를 완성했다. 한국도 일본 수준의 핵연료 자율적 활용이 가능해야 한다. 당장 더 큰 양보를 기대하기 어렵지만, 이 정도는 한미 간 합의가 충분히 도출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한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즉시 대규모 군사 지원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의 부족한 포병 전력을 신속히 강화할 수 있다. 이미 수백만 발의 재고가 있는 105㎜ 포탄을 포와 함께 제공하여 우크라이나 전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 이외 155㎜포탄과 박격포탄을 비롯한 각종 총포탄 등을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는 국가는 세계에서 거의 한국 밖에 없다. 한국이 앞장서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주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종전을 앞당기기 위한 국제적 기여와 함께 한국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다면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춰 지원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이는 한국이 기본적인 핵 능력을 확보하여 국민 안전을 강화할 수 있는 납득 가능한 전략적 선택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슈&인사이트] 부작용만 키운 중대재해처벌법

요란한 빈 수레가 따로 없다. 중대재해 감소에 효과가 없는 것을 넘어 산업현장 안전에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면서 목적으로 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5년간 산재예방행정 인원과 예산이 2.5배나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이 법이 중대재해를 줄이는 쪽이 아니라 늘리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엄벌로 공포감을 조성해 재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단선적이자 순진한 발상이다. 그렇게 해서 안전수준이 올라갈 것 같았으면 북한이나 중국 등은 진작 안전 선진국이 됐어야 한다.중대재해처벌법을 밀어붙인 정치인이나 공무원 중 안전원리와 현장안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다른 건 몰라도 안전에는 아마추어였을 게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 법을 만들었나 되묻고 싶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면 의도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확한 현실인식과 정교한 방법론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설령 의도가 선하더라도 정반대 결과를 낳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의도도 선하지 않고 들끓는 여론 잠재우기에 급급했다는 점이다. 부작용이 양산되는 건 예견된 일이었다.중대재해처벌법의 대표적인 부작용 몇 가지만 짚어 보겠다.이 법 제정으로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존 안전관계법 위반에 따른 처벌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무감각해졌다.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는 데 집중하느라 많은 비용을 들이지만 실질적인 안전관리는 오히려 후퇴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게다가 사고사망에만 집중하다 보니 직업성 질환과 일반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최근 직업성 질환과 전체 산업재해의 지속적인 증가가 이를 방증한다.안전부서의 외형 확대로 현업부서의 안전역량을 강화하는 노력이 등한시되고 품질·환경업무와의 분절화가 야기되는 문제도 생기고 있다. 안전전담조직을 강제하다 보니 현업부서의 안전책임은 되레 약화되고 다른 업무와의 연계성이 파괴되는 것이다. 안전관리 비효율과 기능 중복이 초래될 수 밖에 없다.이 법 지지자들에게 여러 의무주체가 착종되는 상황에서 누가 안전조치를 해야 할지에 대해 물어 봤다. 답변을 못하거나 사람마다 답변이 제각각이었다. 같은 질문을 고용노동부에도 했지만 구렁이 담 넘는 듯한 답변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예방의 실효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엄청난 비용을 들이면서도 재해가 줄지 않는 이유다.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이 없다 보니 실효적인 안전관리는 온데간데 없고 외부기관의 형식적 컨설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문제는 컨설팅을 의뢰하는 기업이 형사처벌 회피에 주된 관심이 있을 뿐이라면 컨설팅이 재해예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엄청난 자원이 허투루 사용되고 있다. 그 막대한 비용을 현장의 재해예방에 사용한다면 요긴하게 쓰일 텐 데 말이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법이 처벌수준은 높고 의무내용은 불명확하다 보니 수사기관의 권한만 하늘을 찌를 듯 커졌다. 가뜩이나 권한이 많은 검찰 등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집행에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정치권은 말로는 수사기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면서 실제로는 이들에게 막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 1월 고용부는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를 꾸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TF에 안전 전문가는 단 한 명도 없고 주로 형법 전문가로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안전을 도외시한 처사이다. 안전기준은 손대지 않고 벌칙만 조정하겠다는 속셈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고용부 스스로 이 법이 처벌이 목적이라는 걸 자인한 셈이다. ‘올바른 개정안이 나오긴 틀렸고 개악안이 나올 수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이유다.이 법을 신주 받들 듯 하는 이들은 현실에서 초래되고 있는 많은 부작용에 대해 눈을 감고 애써 부정하려 한다. 이들의 세계에는 반성과 성찰이 없는 것 같다. 한 국가의 법을 과학과 이성이 아닌 감성과 분노에 편승하여 제정한다는 건 무책임의 극치이다. 21세기 법치국가에서 이런 허접한 법을 두고 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정치권과 정부의 진정성 있는 책임감을 기대한다. 현장 노동자들도 거창하고 요란한 구호가 아니라 실효성 있는 해법을 내놓길 바라고 있다.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ALPS 처리수의 해양방류 진실공방

ALPS 처리수의 해양방류에 대한 논란이 수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원자력 과학자들은 "방류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 중에는 다른 과학을 전공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이 과학적 능력이 있더라도 후쿠시마에 저장돼 있는 처리수의 정확한 방사능 농도와 배출기준까지 찾아보지 않으면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개중에는 아예 과학적 합리성 없이 강한 주장만 펼치는 경우도 있다. 어느 주장이 진실일까? 진실은 과학적 진실이 있고 사회적 진실이 따로 있는 듯하다. 어떤 회사의 실체적 가치와 가능성이 있고 사람들이 믿고 있는 가치와 가능성이 있다. 전자가 나쁘더라도 후자가 좋으면 주식시장에서 그 회사의 주가는 믿음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올라갈 것이다. 즉 본질과 관계없이 사회적 진실이 통하는 영역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적 진실만이 진실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다만 사실보다 인식이 지배하는 사회가 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울 듯하다. ALPS 처리수 방류의 위험성에 대해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있다. 후쿠시마 ALPS처리수의 방사성물질의 농도는 얼마인가? 현재 방사성물질의 농도가 배출기준보다 높은가 혹은 낮은가? 일본의 배출기준은 우리나라 배출기준과 같은가 혹은 다른가? 이러한 사실 확인이 과학적 진실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반면 언론에서 종종 논의되는 내용은 ‘수산물이 팔리지 않는다’, ‘학부모들이 걱정을 한다’, ‘단체도 반대를 표명했다’, ‘일본이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를 무시하고 있다’, ‘중국도 반대한다’ 등과 같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아는 것이 정답일까?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당시 교부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사회적 진실은 천동설이었기 때문이다. 교부들이 모두 천동설이 옳다고 생각한 것도 아닐 것이다. 천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땅이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사회적인 혼란이 예상됐다거나 신학적으로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정치적 판단을 내놓은 것이었으리라. 후쿠시마에서 방사성물질을 접한 건물 내 체류수가 발생하는 이유는 건물 주변 지하수의 수위를 건물 내에 체류하는 물의 수위보다 높게 하도록 관리하고 있어,결과적으로 건물 내부에 유입되는 지하수가 폐 연료의 냉각수와 섞이기 때문이다. 건물 주변 지하수 수위를 높게 유지하는 이유는, 마치 음압 병동과 같이, 방사성물질에 접한 물이 지하수를 타고 건물 밖으로 나가기보다 지하수가 유입되도록 하는 것이 환경적으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 물은 삼중수소를 제외한 방사성물질을 걸러내는 알프스(ALPS)라는 필터를 거쳐 저장된다. 일본의 삼중수소 방류기준은 리터당 6만 베크렐 이하인데 일본은 이를 해수에 희석해 리터당 1500 베크렐 미만으로 방류한다는 것이다.한편 우리나라의 방류기준은 리터당 4만 베크렐로 이 기준에 따라 국내 원전에서도 삼중수소가 방류되고 있다. 참고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음용수 기준이 리터당 1만 베크렐이고 호주의 음용수 기준이 리터당 6만 베크렐이다. 따라서 일본은 매우 엄중한 기준으로 삼중수소를 방류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제3자 입장에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전문가가 참여하는 IAEA 태스크포스가 ALPS처리수 방류가 IAEA의 안전 기준에 맞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기술적 리뷰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아직 ALPS 처리수가 안전하다고 하지 않았고 일본 정부의 조치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 이해는 된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방식으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주주행동주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한다고?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주행동주의 주체들이 강렬한 ‘행동’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그 중에도 한국 주요 기업의 막대한 지분을 보유한 연기금(국민연금)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 국민연금은 이슈가 있는 기업에 대해 종종 총회에서 반대의결권을 행사해 왔고,올해도 일부 기업의 주총 의안에 대해 반대하겠다고 한다. 국민연금은 먼저 대화를 통해 기업 스스로 대책을 마련할 것을 독려 왔다.그래도 개선이 불충분하거나 개선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될 때 제한적으로 주주제안을 해 왔다. 국민연금 다음으로 영향력이 큰 주체는 행동주의 펀드다. 이들은 겨우 1% 안팎의 지분을 매수한 후 기업에게 먼저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협의에 들어간다. 이에 대해 기업측이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으면 자신들의 주장을 공개하는 행동, 이른바 ‘언론플레이’를 한다. 언론플레이의 목적은 타깃이 된 기업의 주요 이슈(주로 지배구조나 저 배당)를 거론하면서 자신들은 힘없는 소액주주들을 대변하는 정의의 사도임을 자처하는 한편 여타 소액주주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위임장 대결 등에서 세력 확장을 꾀한다. 소액주주 연대, 개별 기업의 노조, 시민단체가 기업을 압박하기도 한다. 주주행동주의의 타깃이 되는 기업은 이사 등에게 보수를 과다하게 지급하거나 재원이 충분한데도 배당 등 주주환원에 적극적이지 않은 곳이다. 특히 ESG 이슈가 발생한 기업은 행동주의자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ESG 중 환경(E)과 관련해서는 환경 오염, 탄소중립 등의 이슈를 던지며 오염 저감 및 방지를 위한 시설 투자, 외부감시장치 도입, 이사회에서 ESG 이슈 논의 및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한다. 사회(S)와 관련해서는 작업장 안전사고, 직장 내 괴롭힘 등을 문제 삼아 안전시설 확충(시설 투자 및 사고재발방지 대책 마련), 근무형태 변경, 임직원 대상 안전교육 등을 요구한다. 지배구조(G) 관련 이슈는 행동주의자들의 주총 단골메뉴다. 소유ㆍ경영의 분리, 후진적 지배구조, 계열사 편법 지원, 내부회계부정, 최대주주 등의 비위행위 등의 이슈에 대해 내부 통제장치 마련, 외부감사 강화, 사외이사 비율 확대,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변경,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 제안 등을 요구한다. 특히 올해 들어 주주행동주의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2020년 말 개정된 상법의 영향이 크다. 개정 상법에는 이른바 ‘경제민주화’ 규정이 다수 도입됐다. 주주행동주의자들은 주로 표 대결과 주주제안으로 기업과 겨룬다. 그런데 개정 상법은 대주주의 의결권은 제한하고 주주제안 요건을 크게 완화해 쉽게 경영진을 공격할 수 있게 만들었다. 감사(위원) 선임에서 대주주의 3% 초과 지분에 대한 의결권 제한 외에 감사위원 1인 이상 분리선임제도가 2020년에 도입됐고, 상장회사에 대해 주주제안을 하려면 최소 6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한다는 요건을 폐지함으로써 1% 정도 지분만으로도 언제든 바로 경영진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를 준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즉 한국 주식의 저평가 현상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들의 활동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을까? 어림없다. 2000개가 넘는 한국 상장 기업 중 사회적으로 이슈가 있는 기업은 손에 꼽을 정도다. 행동주의 펀드들은 없는 이슈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타깃이 되는 기업은 늘어날 수는 있지만, 기업들도 호락호락 굴복하지는 않을 것이다. 몇 몇 기업의 지배구조를 변경한다고 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KOSPI 지수가 3000을 넘어 6000을 뚫고 올라간다는 것은 기대난망이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현재 2만7000 근처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근본 해법은 기업이 신나게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포퓰리즘 입법이 그런 환경의 조성에 발목을 잡고 있으니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요원하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중국 시장,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지난달 우리나라 무역수지가 127억 달러 적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서비스 수지도 적자를 나타낸 가운데 다행히 소득본원수지(임금·배당 등)가 흑자를 기록하며 경상수지는 흑자를 달성했다. 자본시장에는 외국인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주가도 어느 정도 회복되고 원·달러 환율도 안정을 찾았다. 그럼에도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 가격이 높은 상황에서 수출이 악화되는 것은 실물경제 기반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증가시킨다.우리나라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 가격이 지난해 4분기에 급락한 후 그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어서, 올 상반기에도 전년 동기 대비 무역수지 악화는 계속될 전망이다. 반도체 가격 주기는 경기 주기와 마찬가지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등락을 반복한다. 그 동안 반도체 호황기가 길어지면서 우리나라 수출 증가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불황기를 준비하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부분이다. 더구나 원유, 광물자원 등 원자재와 중간재 가격 폭등으로 수입이 급증하면서 수출과 수입 양면으로 불리한 국면을 맞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반도체 주기나 원자재, 중간재 수입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지난해에는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이 4.4% 감소하고 수입이 11.5% 증가하면서 대중국 무역흑자가 전년 대비 무려 231억 달러 감소한 12억 달러로 급락했다. 일각에서는 대중국 무역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대중국 무역수지 악화 요인을 보면 수출은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감소했고 수입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인해 증가했다. 무역의존도는 수출의존도와 수입의존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여타 국가에 대한 수출이 뚜렷하게 증가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의존도를 낮춘다는 것은 엄청난 규모의 무역적자를 초래할 수 있다. 수출의존도는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수출이 감소하면 자연스럽게 낮아진다. 우리나라의 1위 수출품인 반도체는 중국을 대체할 만한 시장을 찾기 쉽지 않다. 중국은 홍콩을 통한 우회수출을 포함할 경우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55%를 차지한다. 대중국 수입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국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중국보다 저렴하고 품질이 좋은 소재와 부품을 수입할 수 있다면 당연히 대중국 수입의존도는 낮아질 것이다.지난해 세계 각국은 중국의 제로코로나 상황에서도 전년 대비 대중국 직접투자(FDI)를 9% 늘어난 1891억 달러로 확대했다. 이 흐름에 역행한다면 한국의 입지는 중국 시장에서 더욱 약해질 것이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중국 수입시장 점유율은 대만(8.85%)에 이어 2위(7.37%)다. 중국 정부가 위드코로나 정책으로 전환하면서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은 우호적인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위드코로나 정책 전환으로 우리나라 화장품 등 소비재 주가가 크게 상승했고 중국의 생산이 회복되면서 우리나라 중간재 수출도 회복될 전망이다. 반도체 가격 급락 충격이 한 동안 지속되겠지만 중국의 위드코로나 정책이 반도체 가격 회복을 앞당길 전망이다. 그리고 중국 관광객의 우리나라 방문이 증가하면서 여행수지 회복으로 서비스무역수지도 개선될 전망이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 주력수출품의 수요처가 중국이라는 사실에 착안해 수출경쟁력 제고에 힘써야 한다. 우선 원자재를 가공한 소재, 부품 등 중간재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원유를 수입해서 석유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중국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이나 중국 기업과 차별화된 제품으로 승부해야 한다. 한 때 가성비 전략으로 중국 시장에서 최상위권에 올랐던 삼성 스마트폰이나 현대자동차는 중국 로컬 기업의 가성비에 밀려 바닥으로 추락했다. 반면 초기부터 프리미엄 제품으로 승부한 애플이나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정부도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함으로써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한다. 특히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심해지면서 우리나라는 미국의 입장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나치게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유연한 입장을 유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저출산· 고령화·저성장,‘K-UBRC 모델’로 풀자

우리 사회에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온 고령화, 저출산, 저성장 등 3가지 문제에 대한 실효적 대응방안을 준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초고령화 시대에 대응할 보건의료체계의 디지털 전환, 고등교육 인프라의 구조조정, 지자체의 재정·노동·의료·복지문제의 해소, 식량자급과 에너지수급의 안정화 등은 적시에 풀어야 할 과제들 인데,이를 개별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통합적 관점에서 중앙정부와 지자체,대학과 기업이 협력하는 것이 신속하고도 효과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령화는 국가보조금 같은 금전적 지원이나, 간병이나 돌봄 같은 노동집약형 고비용 구조로는 지속적으로 유지가 어렵다. 그래서 연금을 포함한 사회안전망을 꾸준히 보완하면서 보건의료체계는 디지털 대전환을 통해 의료비용을 낮추면서 디지털 돌봄 기술의 실용화를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한편으로는 전국 203곳 4년제 종합대학 중 3분의 1인 약 70개가 10년 안에 폐교되리라 예측된다. 교육부는 권역별 1개 대학에 1000억원씩 지원하는 다소 파격적 방안까지 내놓았지만,이와 동시에 한계대학 폐교 시 잔여자산의 교육부 강제귀속을 규정한 사학법을 완화해 주고,대학 간 학과나 정원거래제를 통해 생존하는 대학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대신 소멸할 대학이 보유한 인프라는 지역의 경제,보건의료,복지,노동 분야 등의 산적한 문제를 해소하는 유용한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고령화와 더불어 지역인구의 외부유출로 지방 생활권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10여년 내 전국에서 89개 지자체가 소멸한다고 추산됐다.육군 1개 사단이 해체되거나 종합대학교 1개가 폐교될 때마다 1만개 이상 일자리가 없어지고 지역경제 생태계는 심각한 상황에 처한다. 지방 소도시 인구가 줄면 공용터미널도 폐쇄돼 교통접근성은 악화되고 다시 인구유입과 생산성이 약화돼 지자체는 결국 소멸한다. 나아가 급변사태시 OECD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는 식량과 에너지수급에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2위라고 평가됐다.경쟁력을 상실해 공동화되고 있는 시화국가산업단지는 축구장 700개 규모인데 향후 활성화 방안이 아직 불투명하다. 하지만 대도시 근교에 위치했으므로 이번 기회에 청정에너지 생산기지나 식량생산을 위한 스마트 팜 집적단지로 재구축하는 것도 검토할 만하다. 앞에서 열거한 문제점들을 풀기 위해 필자는 미국에서 수 십 년 전부터 도입한 UBRC (University-based Retirement Community) 모델에 디지털기반 신사업을 접목한 이른바 ‘한국형 스마트 마을(K-Smart Village)’ 모델의 시범적 추진을 제안해왔다. UBRC란, 미국 동부의 아이비리그 대학을 포함해 100여개 명문대학들이 운영 중인 고령화 사회의 대안 모델로 대학이 보유한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한 ‘은퇴자 공동체 마을’이다. 우리나라의 70여개 한계대학이 가진 부지와 시설을 재활용하고,여기에 디지털 헬스케어 및 원격의료 체계를 갖춘 뒤,노인간 상호돌봄(老-老케어),그리고 노인과 어린이간 돌봄(老-幼케어)모형을 결합시켜 3대가 공존하는 거주 및 돌봄 시설을 중심으로 3000~5000명의 인구가 거주하거나 출·퇴근이 가능한 자급자족형 스마트 마을을 구축하는 방안이다. 고령화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노인층 부양비다. 2020년 국민연금연구원이 은퇴를 앞둔 50세 이상 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후의 적정 생활비는 개인이 164만원, 부부가 267만원이고, 노후 최소생활비는 1인 가구 기준 116만원, 부부 기준 194만원이었다. 만약 대학연계형 스마트 마을에 거주할 노인 1인당 적정 생활비의 3배 가량을 산출할 역량을 보유하도록 무인화,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저노동, 고수익 스마트 팜(Smart Farm) 같은 시설이나,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청정에너지 생산시설을 유치하면 타산성이 확보될 것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지역사회 통합 돌봄(Community Care) 모델은 인구가 감소되고 생산력이 축소된 우리나라 지방에는 아직 적합하지 않다.저출산,고령화,저성장의 함정은 깊고 어두워 보인다. 그렇다고 특별재정 투입,보조금이나 장려금 지급,세금이나 이자 감면 같은 재정지원 위주의 단기적 처방은 실효성이 낮다. 대신 고령인구에 대한 돌봄과 보건의료수준의 보장, 부양재정 확보,스마트 기술 기반 일자리 창출이 한데 엮어지면,인구와 생산력이 증가해 지역생태계는 보전되어 지방소멸까지 막는 다중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고령자 돌봄의 성패가 ‘주거환경’에 있다고 주장한다.재학생 규모가 축소되거나 폐교한 대학의 기숙사,도서관,강당,체육관, 교사등의 인프라를 재활용하므로 토지매입이나 용지확보도 필요가 없다.노인친화형,자연친화형,에너지 절감형 주택을 건축하고, 인근 의료기관과 연계하되 UBRC내부의 각 건물마다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자.스마트 팜같이 저공해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공급할 생산시설도 갖추자.‘대학과 연계한 한국형 스마트 마을(K-UBRC)’ 모델을 구체화함으로써 지역민과 노인을 위한 평생학습,공동체돌봄,디지털 건강관리,신산업육성, 평생직장제공,돌봄재정확보,지역경제 자립까지 동시에 구현해보자. 우리 사회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은 재정규모가 아닌, 발상의 전환과 고민의 깊이에 비례한다.방준석 숙명여대 약학대학 교수/대한약국학회 회장

[이슈&인사이트] 행동주의 펀드의 귀환, 기업 대비책 서둘러야

최근 행동주의 펀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일부 행동주의 펀드의 주장이 소수주주와 여론의 지지를 받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행동주의 펀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첫 번째 시각은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와 기업가치 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즉 현재 경영진을 견제하여 기업 가치를 높이고 배당을 늘려 소액주주의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각은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적 이익 추구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주주의 이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지배구조 투명성, 주주가치 제고 등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짧은 시간에 최대한 수익을 거둔 뒤 발을 빼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기업의 장기적 발전, 일자리 창출 등에 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이는 과거 단기차익을 실현하고 해외로 철수한 소위 해외 투기자본의 ‘먹튀’ 사례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SK와 소버린간 분쟁이다. SK측은 자사주 매입, 위임장 경쟁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해 1조원의 비용을 지출한 반면, 소버린 측은 2년 만에 투자금의 5배에 이르는 약 1조원의 수익을 거두고 한국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칼 아이칸, 헤르메스, 타이거 펀드 등이 우리나라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해 짧은 기간에 많은 수익을 내고 우리나라를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앞으로도 행동주의 펀드의 국내기업에 대한 경영권 위협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국내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통계적으로도 증명된다.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된 국내기업 수가 2017년 3개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47개로 15배 이상 증가했다. 해외 행동주의 펀드뿐만 아니라 토종 행동주의 펀드도 기존 ‘기업사냥꾼’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쇄신 노력과 함께 공모펀드 인수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더구나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세계적인 ESG 열풍 등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도 성숙되고 있다. 문제는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에게 골치 아픈 존재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배척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도 엄연한 주주이다. 기업에 대해 다소 과격한 요구를 하는 것은 맞지만 현행 법령이 허용하는 주주권 행사를 임의로 막을 수 없다. 행동주의 펀드의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이라면 기업도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행동주의 펀드에게 공격당할 수 있는 여지를 사전에 최소화해야 한다. 지배구조, 사회공헌, 기업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건의 사전 예방, 업계 평균 대비 배당 수준 등 기업의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ㆍ보완하여 행동주의 펀드가 공격할 여지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평소에 기관투자자와의 활발한 소통을 통해 주식을 대량으로 확보한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무성과가 좋지 않은 기업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업 경영에 충실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정책동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상법, 자본시장법, 스튜어드십 코드, ESG 관련 법령과 가이드라인 제ㆍ개정 등 행동주의 펀드의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변화를 면밀하게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동향도 살펴야 한다. 국민연금은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7%에 달하는 자금을 국내 주식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큰 금액이고 그만큼 기업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 국민연금이라는 공적기관이 특정 기업에 대해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면 행동주의 펀드는 국민연금의 의견에 편승해 기업의 경영에 관여 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행동주의 펀드를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기업 경영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의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

[이슈&인사이트] 한계돌파형 기술개발 없는 탄소중립은 허구다

마침내 오존층 파괴를 막아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세계기상기구(WMO)가 올해 초 공동 연구보고서를 통해 "2040년이면 오존층이 1980년대 구멍이 생기기 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이라는 반가운 전망을 내놨다. 한 때 ‘꿈의 냉매’로 불리던 프레온가스(CFC)가 오존층 파괴 물질로 밝혀지자, 국제사회는 1987년 CFC 사용 금지와 대체물질 개발을 독려하는 몬트리올의정서를 채택하고 30여 년간 합심해 CFC 사용량을 99% 줄이면서 드디어 오존층 회복을 확인한 것이다.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빚어진 지구환경 파괴를 연구개발과 지구촌 협력을 통해 해결한 최초의 결자해지 방식의 쾌거라 할 수 있다. 이번 몬트리올의정서의 성공은 국제사회가 또 다른 지구환경 문제인 기후변화 해결에도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물론 기후변화는 오존층 파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해 단순한 몬트리올의정서 방식의 도입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이번 성공은 기후변화 대응의 타산지석이 되기에 충분하다. 몬트리올의정서는 체결 당시 신기술이었던 HFC 개발 성과를 고려해 CFC 사용을 점진적으로 금지하는 규제를 도입하고, 규제는 다시 연구개발을 자극해 더욱 발전된 대체물질이 만들어지는 선 순환을 통해 오존층 파괴를 막을 수 있었다. 실제로 의정서 채택 이후 프레온 가스 대체재 개발을 위한 각종 연구 지원 기금이 약 39억 달러가 모였고 지금까지 약 8600개 연구를 지원해, 냉매는 CFC, HCFC, HFC를 거쳐 HFO로 계속 진화할 수 있었다. 결국 오존층 회복은 오존층 파괴 물질인 CFC를 현실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신기술의 가용성과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의 경제성 향상으로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전 세계가 기후변화 방지를 위해 30년 넘게 노력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유럽 국가들이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30% 줄였다고 하지만, 이것도 따져보면, 철강,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와 같은 온실가스 다 배출 산업을 우리나라, 중국 등으로 이전한 효과가 뒤섞인 결과다. 유럽에 국내산 철강을 많이 수출할수록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다는 말이다. 탄소중립은 지구 전체 온실가스배출 총량을 줄이는 것이지, 배출량의 국제간 분산 따위의 숫자놀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계 돌파형 신기술에 의한 이산화탄소의 절대량 감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무탄소기술인 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저장장치는 전 세계 에너지소비의 85%를 점하고 있는 화석에너지를 그것도 앞으로 30년 만에 대체하려는 탄소중립 목표 앞에서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와 같다. 그럴싸해 보여도 실제 탄소중립 달성에는 역부족인 기술 수준이라는 말이다. 한계돌파형 기술개발 없는 탄소중립은 허구다. 하지만 막연한 희망에 기대어 기술적 낙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완성 시점이 불투명한 미래 기술을 현실 정책 시나리오에 무분별하게 포함하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 훗날 탄소중립의 실패를 기술개발 지연 탓으로 돌릴 여지만 줄 뿐이다.인내심이 필요할 때다. 한계돌파형 기술개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며, 신기술이 개발할 때까지는 현재의 기술을 적극 활용해 기후변화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는 동시에 기술개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CFC 사용 금지로 극지방 오존층 구멍이 메워지듯이, 한계돌파형 기술이 개발되면 지구온도는 서서히 제 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관건은 한계돌파형 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일정 수준의 기후변화에 어떻게 적응하며 버텨내느냐에 있다. 우리 인간은 대자연 앞에서 여전히 연약한 존재다. 자연의 변화에 맞서기 보다 적응력을 높이는 편이 오히려 현명한 행동일 수 있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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