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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
최근 중국 소비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은 물론 글로벌 기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바로 중국의 애국소비열풍(궈차오러· 國潮熱) 때문이다. 그 동안 중국 소비자들은 외국 제품을 소비할 때, 그 나라의 이미지를 고려해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어느 국가의 이미지가 좋으면 그 나라의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했다. 이런 국가이미지는 정치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일관되지 않고 정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특히 일본 기업은 국가이미지 때문에 종종 큰 손실을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수교 이래 오랜 기간 우호적인 국가이미지를 구축해왔다. 한중관계가 정점에 달한 것은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 전승절 기념일에 참가한 직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중 정치적 관계에 힘입어 한류도 중국에서 더 유행했고,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도 크게 상승했다. 중국인의 대한국 이미지는 한국기업이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국가이미지 덕분에 발전한 한국 제품 선호도는 오래 가지 못했다. 2016년 한국에 사드 배치 후 한중 관계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소위 ‘한한령(限韓令)’은 중국 내 한류 열기를 순식간에 냉각시켰다. 중국인의 대한국 이미지가 급격히 부정적으로 변하면서 한국 제품에 대한 구매 열기도 빠르게 식어갔다. 반도체 등 중간재의 대중국 수출 증가는 중국의 자체적인 수요에 기인한 것이지 국가이미지에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드 배치 이전 우호적인 국가이미지와 한류의 유행으로 드라마, 영화, 공연, 게임 등 한류 콘텐츠 뿐 아니라 화장품, 식품, 의류 등 한국 소비재가 전반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게임 판호를 발급하고 드라마, 영화를 중국에서 상영하도록 하면서 중국에서 한류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한일, 한미일 관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중국이 극도로 민감해하는 대만문제까지 언급하여 한중 관계를 악화시켰다. 당분간은 중국 시장에서 국가이미지로 한국 제품을 판매하는 것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처럼 국가이미지가 긍정적인 역할을 못할 뿐 아니라 애국소비열풍까지 고조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중국 시장에서 한국 제품을 판매할 것인가. 기업이 스스로 제품(브랜드)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그 해법이다. 제품의 이미지는 최고의 품질과 디자인을 내세운 명품이미지,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한 가성비 이미지, 다른 제품과 구별되는 차별화 이미지,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감성 이미지 등 다양한 이미지를 포함한다. 최고의 품질로 승부한 한국 기업으로 ‘락앤락’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명품을 넘어서는 한국 기업이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국이 전략적으로 중시하던 가성비는 중국 제품에 밀린 지 오래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차별화 이미지와 소비자의 공감을 얻는 감성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차별화 이미지로 중국 시장에서 급성장한 한국 기업으로 F&F를 들 수 있다. F&F는 1997년 국내에 미국 메이저리그에 로열티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MLB 브랜드를 출시했고, 2019년 중국 시장에서 MLB 브랜드를 론칭해 미국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있는 중국 청년들의 큰 호응 속에 애국소비열풍을 극복했다.
감성 이미지로 중국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도 있다. 일본 화장품 기업인 SKⅡ는 부모의 압력(중매)을 통해 결혼하는 대신 스스로 꿈을 좇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광고로 미혼여성의 공감을 얻어 9개월간 매출이 50% 이상 상승한 적이 있다.
한편으로 애국소비열풍을 고려해 중국친화적인 제품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로레알 등 글로벌 화장품 기업들은 이런 애국소비 유행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인 모델을 고용하고,현지화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중관계 악화와 현지화 실패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등 한국 화장품 기업에게 좋은 본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