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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과학 수난시대

과학에 대한 불신은 국가적 재앙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과학을 불신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20년 9월 한국을 비롯해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 20개국 3만2000명에게 과학자에 대한 신뢰도를 군과 언론, 정부, 재계지도자와 비교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과학자들은 다른 사회기관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응답자 중 36%가 과학자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OECD 36개국 중 2위인 한국은 놀랍게도 과학자에 대한 신뢰가 14%에 불과했다. 조사대상 20개국 중 최하위다. 한국 국민의 과학불신은 정치 지향적인 일부 과학자들이 정치와의 야합을 통해 과학의 정치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 사례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것이 금강산댐 사건이다. 1986년 11월 서울대 공과대학의 모 교수는 "금강산댐과 같은 사력댐은 물이 넘치면 순식간에 파괴된다. 1분당 50~60㎝씩 균열이 계속되면 높이 200m의 댐은 4~5시간이면 파괴된다. 저수량 200억 톤의 댐이 무너지면 하류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라며 대응댐 건설을 주장했다. 여기에 당시 KBS는 금강산댐 붕괴를 가정해 여의도 63빌딩의 21층까지 물이 차 오르는 섬뜩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전국에 중계했고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그 이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정치과학자는 10년 후 서울대 총장이 됐고 명지대 총장도 맡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국민에게 해명이나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념적인 정치와 논리적인 과학이 야합할 때 무서운 결과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소련의 생물학자 리센코다. 리센코는 시험장에서 종자를 개량하는 생물학자였다. 그는 가을밀을 봄에 파종하면 싹이 나오지 않는데 영하에서 수십일 간 종자를 보관하는 ‘춘화처리’를 거치면 봄에 파종해도 싹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리센코는 이렇게 개량된 종자가 형질이 완전히 변해 후대의 종자도 봄 파종용 밀이 된다는 기존의 멘델이론과 충돌하는 ‘획득형질 유전이론’을 주장했다. 이 이론은 당시 ‘새로운 공산주의적 인간 창조’라는 당의 정치적인 이념의 기본이 됐다. 더욱이 공산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념에도 들어맞았다.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과학을 극복한 사회주의 과학의 탄생’을 선언하고 기존의 멘델이론에 기초한 부르주아 과학을 퇴출했다. 그러나 구소련은 리센코의 이론에 의한 곡물 증산에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구소련 붕괴에 리센코의 형질유전이론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과학과 정치의 상생 관계를 말할 때 인용되는 대표적인 모델이 1911년 설립된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회다. 이 연구 모임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 빌헬름 2세는 부국강병을 위해 연구소가 필요했고 과학자들은 안정적인 연구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지원만 할 뿐 아돌프 하르나크에게 연구회 운영의 전권을 맡겼다. 이렇게해서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과학기술계의 성공모델이 만들어졌다. 이 연구모임은 지금은 자연과학연구소 세계 1위, 광학연구소 3위로 평가받는다. 이 연구모임은 30여 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을 정도로 독일의 자랑이 됐다. 일부 정치인이나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자신들의 편향된 이념의 합리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과학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이런 유혹에 말려들기 않기 위해서 과학은 정치와의 불가원(不可遠),불가근(不可近)의 원칙을 추구해야 한다. 과학의 정치와의 불가원은 연구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정치와의 불가근이 지켜지지 않는 과학의 정치화는 과학에 대한 불신을 낳을 뿐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집단 이익보다 객관적 진실을 더 중시해야 한다. 광우병 사태,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과 같이 국민의 과학에 대한 불신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재앙이다.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지난 13일 오전(미국시간) 뉴욕으로부터 34쪽 분량의 판결문이 공개됐다. 암호화폐 ‘리플(XRP)’과 관련한 미국 감독당국의 소송에 대한 뉴욕 법원(판사 아날리사 토레스·Analisa N. Torres)의 판결 내용이다. XRP가 거래소나 알고리즘을 통해 일반투자자에 판매되는 경우 증권이 아니며,기관투자가에게 XRP를 직접 판매한 것은 증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소송은 2020년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 랩스(Ripple Labs)와 CEO인 브래들리 갈링하우스와 공동 창업자 크리스천 라센 등 2명의 경영진이 XRP를 증권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13억달러의 공모를 진행했다고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SEC는 XRP가 증권으로 분류돼야 하며 다른 증권과 동일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고,리플은 XRP가 증권이 아닌 디지털 통화라며 SEC가 XRP를 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공정 고지(Fair Notice)를 제공하지 않았고 XRP를 비트코인, 이더리움과는 다르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이 소송은 3년 가까이 규제의 복잡성과 어려움을 전면에 부각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법원은 하위테스트(Howey Test)에 따라 이 사건을 해석하고 XRP가 기관 투자자를 모집한 맥락에서는 증권으로 간주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증권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하위테스트는 특정 거래가 투자 계약(Investment Contract, 증권의 일종)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946년 미국 대법원에서 판단한 기준이다. 판결에 대한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으로 XRP의 가치는 610원에서 1120원까지 80% 이상 뛰었고 여타 알트코인으로 파급되면서 매틱(Matic), 라이트코인(Litecoin), 솔라나(Solana) 등도 20% 안팎 동반 상승했다. 반면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은 상승폭이 5% 이내로 대조를 보였다. 이번 리플 판결은 감독당국이 암호화폐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한 여러 소송 가운데 처음으로 패소한 사건으로 기록되면서 암호화폐 산업에 주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금번 판결을 중요한 승리로 인식하면서 앞으로 도입될 모든 암호화폐 관련 규제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특히 증권법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법적 선례로 현재 진행중이거나 향후 암호화폐 관련 다른 소송에서 적극적으로 이 판례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XRP를 포함한 여러 알트코인을 거래하는 거래소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투자자를 암호화폐 시장으로 끌어들여 수익성과 함께 변동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한편으로 SEC는 이번 판결로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서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기존 접근 방식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리플 사례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리플에 대한 증권거래위원회의 3년 가까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암호화폐인 XRP는 사실상 규제 기관의 엄격한 감독 아래의 증권이라는 족쇄에 얽매였다는 것이다. ‘법이 없는 곳에 자유가 없다’는 홉즈의 주장처럼, 법이 미비한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데 있어 암호화폐 업체의 권리를 언제든지 침해할 수가 있다. 의회가 입법을 게을리하면서 명확하고 충분한 내용을 담은 법령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법원이 나서게 될 것이고 판사의 결정은 바뀔 수 있어 업계에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이는 헌법상 판사의 역할은 법을 해석하는 것일 뿐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암호화폐 규제(CryptoReg)는 대부분 전통적인 증권에 맞춰 설계돼 암호화폐의 고유한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재의 법령이 암호화폐의 잠재적 가능성과 잠재적 함정을 처리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면 보다 명확하고 포괄적이며 공정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갖출 수 있도록 의회는 시급히 입법에 나서야 한다. 암호화폐와 관련한 명확하고 포괄적인 법제는 혁신적인 분야가 번창하는 데 필요한 확실성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소비자를 보호하고 오용을 방지한다. 지금이야말로 암호화폐가 운영되는 일관된 툴을 제공해 권리와 책임을 정의하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하는 한편 규칙을 집행하는 메커니즘을 확립해야 할 시점이다.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이슈&인사이트] 디리스킹과 ‘화이부동’의 한중관계 발전

트럼프 정부 이래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견제하기 위해 추진돼 온 미국의 공급망 분리 중심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정책이 지난 5월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를 계기로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정책으로 바뀌고 있다. 디리스킹은 중국과 완전히 결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리스크를 관리해나가자는 취지로 제안된 개념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책사’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과 다양화를 추구하고 무역을 차단하지 않는다면서 디리스킹의 주요 대상으로 첨단 반도체와 배터리를 언급했다. 미국 정부가 첨단 산업분야 등에서 중국을 완전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에 물밑에서는 협상의 손을 내밀며 ‘중국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 이어 재닛 옐런 재무장관 등 미국의 장관급 인사들이 연이어 중국을 방문해 디리스킹을 강조하고 있다. 옐런 재무장관은 방중 일정을 마무리하며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추진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디커플링은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실행할 수도 없다"고도 했다. 디리스킹으로 미중관계가 완화할 조짐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수출 위주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 대중 경제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중국에 강경한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만약 한중관계가 더 악화된다면 중국은 그간 한국에 대해 보복수단으로 써왔던 ‘수입 통제’가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등 주력 수출산업에 필요한 핵심 광물의 ‘수출 통제’ 카드를 쓸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나아가 중국이 전통적인 라이벌 국가인 일본에 대해서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한국에는 상당히 냉담한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중국과의 교역규모가 큰 한국이 디리스킹 상황에 따른 새로운 전략을 전개해야한다는 것이다.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안미경중(安美經中)’과 같은 모호한 정책으로는 험난한 국제 정세를 헤쳐 나갈 수가 없다는 인식 아래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고 한일관계를 회복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대중국관계에서 강한 버팀목이 없으면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그 정책기조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국도 주변국이자 주요 교역대상국이므로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양국 관계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해협 현상 변경 반대’ 언급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 논란으로 빚어진 경색국면이 좀처럼 호전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4일 자카르타 아세안외교장관 회의에서 박진 외교부장관과 왕이 중국 중앙정치국 위원간 회담이 한중관계 발전의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강 외교부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고 왕이 위원이 대신 참석하면서 박진-왕이 회담이 이루어졌는데 ‘전랑외교’의 대표격인 친강 부장 대신 한반도문제 등 국제정세 전반을 꿰뚫고 있는 왕이 위원과의 회담이 오히려 양국관계 발전에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회담 개최 시점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2차 시험 발사 도발(12일) 직후였다. 양측은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 나가기로 했고 북핵 문제와 관련해 각급에서 소통을 강화하자는 데 공감했다. 또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 인적교류 확대, 문화콘텐츠 교류 활성화 등 실질협력의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양측은 한일중 3국 협력 협의체의 재활성화를 위해서도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왕이 위원은 한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준수하고 신중하고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바란다고 했고, 박진 장관은 한국은 일관되게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해왔고 이 입장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대만문제와 관련 갈등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서 눈 여겨 볼 대목은 중국이 "한국과 상호존중의 정신으로 협력하고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군자의 길을 추구하겠다"고 표명한 점이다. 사실, ‘화이부동’ 방식은 작년 8월 칭다오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박진 장관이 제안했는 데 이번에 왕이 위원이 화답함으로써 앞으로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 주재 총영사

[이슈&인사이트]민주노총,뭐를 위한 총파업인가

지난 7월 5일 필자는 퇴근길에 승용차로 경복궁역에서 시청 앞까지 가는데 약 1시간이나 걸렸다. 다음날인 6일 오후에도 본가에 가던 길에 시내를 피하고자 사직터널 방향으로 차를 몰았지만 거기도 주차장이긴 마찬가지였고 수많은 차량 물결 속에 가벼운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평소 사회적 약자로 여겨지는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쟁취하는 것에 비교적 관대한 입장이었지만 이번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분노가 치밀었다. 도로 막힘의 이유를 알고 보니 민주노총이 7월3일부터 15일까지 2주 동안 산별노조를 동원해 시내에서 이어달리기식 파업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온 나라와 정치권의 관심이 온통 후쿠시마 원전처리수 방류 문제로 시끌시끌 해서 민노총이 총파업을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찾아봤다. 총파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니 윤석열 정부 1년 동안 노동시간을 늘리고 노동권을 말살하려 공격했기에 지금 견제하지 않으면 퇴행이 더 가속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윤 정권의 실상을 알리고 퇴진시키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란다. 출범 1년 만에 퇴진을 요구하는 것이 비현실적 아니냐는 물음에는 박근혜 정부의 예를 들어 퇴진 압박을 계속하면 가능할 것이란다. 정권 퇴진을 내건 총파업의 적절성에 대하여는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노력이라고 주장한다. 정치파업이 불법 아니냐는 물음에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하게 정치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 나라라며 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노조가 5년만에 파업에 동참한 이유에 대하여는 정부의 임금동결, 노조 회계자료 공개, 단체협약 시정 요구 등에 대한 반발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의 구체적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노동정책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의 노사 법치주의 회복, 노동개혁이라는 주장에 대하여는 노조파괴, ‘천박한’ 노조관, 노조 때려잡기 등 수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그밖에도 많은 내용이 있으나 너무 상세한 것은 언론 보도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략한다.노동자의 조직권과 파업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지만 관계 법률이 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적법하게 행사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차로를 점거해 시민에게 많은 불편을 주는 파업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최근 민주노총의 파업과 그간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원하는 윤 정권의 퇴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많은 국민은 건설노조의 조폭 같은 행태에 분노해 오다가 윤 정부 들어서 정상화되는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운송노조나 택배노조, 기타 여러 산별노조에서 조직력을 바탕으로 자신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간 것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갖고 있다. 기아차나 현대차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면 평생 자동차 가격을 20~30% 싸게 구입하거나 가족들을 우선 채용한다는 일자리 세습을 규정한 단체협약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국민 세금의 지원을 받는 모든 조직은 회계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것도 상식이다. 과거 잘못된 수많은 관행에 대해 민주노총이 단 한 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도 국민은 알고 있다.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정규직 일자리를 가진 중산층이다. 그들보다 어려운 수많은 비정규직이나 일자리조차 갖지 못한 이웃들이 많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전기요금 등 에너지 가격은 많게는 2~3배씩 올랐지만 지난 정부에서 올리지 않았기에 지금 우리가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위기와 미중 패권경쟁의 영향으로 세계 경제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고,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던 삼성전자조차 전년 대비 분기 이익이 96%나 줄었다. 작금의 경제적 어려움은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런 때에는 허리띠 졸라매고 함께 노력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생각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제 욕심만 채우려 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목적은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국민의 불편과 어려움에 눈감고 오로지 자신들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한 민주노총의 미래는 없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생활용품 안전성,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야

어린이는 누구보다 안전사고에 쉽게 노출되고 사고 발생시 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안전 취약계층이다. 장난감 총이나 완구류, 킥보드, 자전거, 롤러 블레이드 등으로 인한 생활속 어린이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안전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이다. 그런 점에서 어떤 제품도 완벽하게 안전한 제품은 없다. 현재 안전하다고 인정받는 제품도 과학기술 발전으로 미래에는 새로운 위해성이 발견될 수 있다. 석면은 100년 전에는 널리 사용돼 왔지만 현재는 발암물질로 취급 받고 있다. 안전 개념은 시대에 따른 사회적 기대수준과 소비자 의식수준에 따라 변한다. 베이비 부머들이 대학을 다니던 1970∼1980년대 시내 커피숍에 들어가면 담배 연기가 자욱했지만 담배의 간접 흡연 위험성에 대해 항의하는 소비자는 없었다. 어른에게는 안전한 제품이 어린이에게는 안전하지 않아 안전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장난감은 물론이고 일상 생활용품도 어린이 안전 고려해 디자인하고 설계해야 한다. 어린이가 녹즙기를 가지고 놀다가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가 일어나자 채소 투입구를 길게 하여 손가락이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전기 포트를 거실에 세워 두고 사용하던 중 7개월 된 아이가 이를 만지다 넘어져 뚜껑의 빈틈으로 뜨거운 물이 새어 나와 아이가 3도 화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 이 경우 전기보온 포트가 제품출시 당시 안전을 갖추었다고 보기 힘들다. 뚜껑이 닫혔음에도 물이 새는 것은 제조 설계상 결함이며, 제조물책임법에 근거하여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 또 다른 사고 사례로 아이가 싱크대 위에 있던 믹서를 내려 전원을 연결하여 작동시키는 순간 컵이 깨지면서 튀어 나가 어린이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칼날이 노출된 상태에서는 제품이 작동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린이 옷은 화상에 강해야 한다. 안경이 벽에 부딪혀 안경 깨지면서 어린이가 실명한 사고가 있었는데, 안경 제조업자의 충격에 강하다고 선전한 것이 문제가 된 바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성인 신발에서 납성분초과 검출된 중국산 신발이 리콜 된 바 있는데, 이는 납 성분이 성인의 발에 투입될 수 있어서 리콜 된 것이 아니라 집안에서 성인 신발을 어린이가 빨아서 문제가 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어린이용 줄 끈이 달린 후드 T 셔츠(가디건 포함) 는 판매할 수 없다. 이유는 어린이 후드 옷 모자 부분에 달린 줄이 놀이터 미끄럼틀 위에서 걸려서 미끄럼 틀에서 내려 오는 어린이 목을 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 등에서 NO WIRE !! 가 대세이다. 장난감 등 생활용품에서 긴 끈이나 줄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 되고 있다. 어린이 목을 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곰 인형 눈이 쉽게 떨어져 아이들이 삼킬 위험이 있는 경우 생산·판매할 수 없다. 이들 사고에서 모든 가정용품 디자인과 제조 과정에서 호기심 많은 어린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제품 자체의 품질이나 안전 기준을 충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안전취약계층의 사용행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어린이 안전확보를 위한 제도적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2016년부터 시행 중인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이 대표적이다. 만 13세 이하 어린이가 사용하는 모든 어린이용품은 KC 인증을 받아야 하고 사업자에 부과하는 위해사실 의무보고, 정부 직접 리콜, 주의경고 표시 등 어린이 안전을 위한 강한 조치를 담고 있다. 어린이용품, 어린이 관련 시설 등 어린이 안전에 규정은 앞으로도 더욱 강화되고 안전을 위한 제품과 아이디어 및 기술개발도 지속돼야 한다. 어린이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장마철이다. 우산 8 면중 2면 조각이 투명한 어린이 우산, 우산 살 끝 및 대 끝의 모양이 플라스틱 큰 원형으로 제작된 우산, 밤에 시각적 안전을 위한 야광 처리된 우산을 들고 다니는 어린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주원 칼럼] 반도체시장 지나친 낙관은 금물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발표될 때마다 주식시장이 요동을 친다. 유가증권시장에서 반도체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이 약 2010조원인데 이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2개 기업의 시가총액이 499조원으로 25%를 차지한다. 따라서 이들 기업의 실적이 잘 안 나오면 해당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고,이것이 전체 유가증권시장 지수인 코스피(KOSPI)의 약세로 이어지게 된다. 주식시장 흐름을 보면 반도체와 관련이 없는 업종들도 덩달아 동조화 현상을 보인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치는 직·간접적 파급 영향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의 모든 산업의 핵심 기초 부품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의 방향성을 예고해 주는 일종의 선행 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 7일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약 40%의 시장점유율을 가진 삼성전자의 2분기 잠정실적이 발표됐다. 2분기 매출은 약 60조원으로 작년동기(약 77조원)에 비해 20% 이상 줄었고 영업이익은 약 6000억 원으로 지난해 동기(14조원)와 비교하면 쇼크다. 영업이익이 시장 예상치인 3000억원 수준보다는 높게 나왔다는 점과 1분기에도 영업이익이 6000억원 정도로 반도체 업황이 바닥을 지나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그나마 선방할 수 있었던 것은 반도체 가격의 하락세가 둔화된 영향이다. 국내 2개사와 마이크론 등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3사가 감산에 나서면서다. 이를 근거로 다수의 시장 분석 기관에서는 3분기부터 반도체 업황이 개선될 것으로 점친다. 거시 경제 분석기관에서도 반도체 시장의 회복으로 한국 경제가 하반기에 강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8.9%와 설비투자의 20%를 각각 차지하기 때문에 반도체 산업의 시황은 곧 한국 경제의 시황이 된다. 그래서 정부도 하반기 경기 회복을 점치는 근거 중 하나로 반도체 시장 회복을 든다. 여러 기관이 하반기 반도체 시장을 낙관하는 방향성에는 동의한다. 최악 상황이 지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몇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2분기 반도체 기업의 실적이 더 나빠지지 않은 이유가 수요 회복이라기 보다 공급량을 줄였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공급을 줄이면 가격은 올라가게 돼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웨이퍼 투입량을 10~25% 줄였기 때문에 시장에서 단가가 더 내려가지 않고 상승하게 된다. 재고도 단가 상승으로 평가액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과장되게 말하면 우리는 인위적 감산으로 실적이 개선되는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보고 있는 중이다. 시장의 회복은 본질적으로 수요가 회복돼야 한다. 가격이 하락하면 수요가 조금은 늘 수 있지만 그것은 제한적인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반도체 시장이 진짜 살아나려면 세계 경제가 살아나면서 IT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컨센서스가 만들어지고 이후 IT 제품에 사용되는 반도체 수요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순차적 경로가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런데 세계 경제 상황은 여전히 어둡다. 그동안 잘 버티던 미국의 경기 침체 가능성이 상존하고, 우리 반도체 수출의 약 56%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의 회복은 소가 걷는 것처럼 더디기만 하다. 유럽은 여전히 옆에서 벌어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헤매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반도체 경기의 대세회복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다. 과거의 경험에 비춰볼 때 반도체 사이클이 불황 국면에 진입한 후 본격적인 회복으로 이어지는 시점이 시장의 예상보다 더 멀었다. 필자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지만 개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10만 전자’가 되기를 바라는 기대를 충분히 이해한다. 또 개인적으로는 선행지표의 역할로서 반도체 업황이 크게 개선되면서 하반기 한국 경제가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그러나 기대는 기대고, 현실은 현실이다. 지금은 개인이나 기업이나,경제 정책을 이끄는 정부나 모두 시장에서 한 발 물러나서 시장을 보다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찌됐든 그래도 하반기 한국 경제의 바로미터인 반도체 산업이 도약하길 기대해 본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슈&인사이트] 성공한

지인 중에 자식들을 다 훌륭하게 키워낸 어르신이 있다. 여기서 ‘훌륭하게’란 세속적 기준에서 ‘성공했다’고 인정받는 경우를 말한다.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고 비싼 학비를 대느라 평생 허리를 못 펴고 살아온 덕분에 아들 셋은 의사, 변호사, 교수가 됐다. 자식들의 성공을 평생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하던 어르신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홀로 남게 되었다. 상실감과 외로움으로 힘들어하던 어르신은 얼마 안 있어 병을 얻었다. 그러자 아들 셋은 곧바로 아버지를 요양원으로 보내버렸다. 물론 혼자서 거동이 힘든 정도가 되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신세를 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일 수는 있다. 그러나 거동을 할 수 있는 데도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신경 쓰지 않으려 미루며 다투다가 ‘손쉬운 타협’을 본 것이다. 아픈 몸보다 자신으로 인해 자식들이 눈치 보고 아웅다웅하는게 더 견디기 힘들었던 아버지는 두 말 않고 요양원으로 갔다. 너무 잘 나가는 자식들이라 늘 바쁘다는 핑계로 면회는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자식들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어르신은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 이후가 더 가관이었다. 저마다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자식들이다 보니 장례식장엔 문상객이 넘쳐났다. 그러자 막대한 조의금을 나누는 문제로 삼형제가 혈투를 벌이다 결국 재판까지 가고 의절로 마무리되었다. 세상 떠난 어르신이 하늘에서라도 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지인 중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자식 둘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분 있다. 대대로 가난한 집안에서 공부는 사치였고 그저 자식들 안 굶기기 위해 평생 뼈 빠지게 노동일을 했다. 그러자 자식들은 일찌감치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직장을 잡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가난한 부모님 때문에 공부를 더 하지도 못했고 이래저래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있을 법도 한데 자녀들은 늘 부모님에게 항상 "고맙다"고 말한다. 낳아주고 길러주느라 최선을 다한 부모님의 인생을 존경하며 틈만 나면 부모님을 모시고 서로 살가운 정을 나누고 산다. 2019년 뇌졸중으로 투병 중인 유명 영화배우 알랭들롱((Alain Delon)이 일본인 동거녀에게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있다고 자녀들이 고소했다. 안락사가 합법인 스위스에 살고 있는 알랭들롱은 "안락사가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사람은 병원을 거치지 않고 평화롭게 떠날 권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나가다 쇼윈도만 바라보고 있어도 옷가게 주인이 달려 나와 제발 자기네 옷을 입어달라며 공짜로 양복을 줬다는 세계 최고 미남 배우의 노후도 외롭고 힘들기는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다. 노년의 삶은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 힘들고, 병마와 싸우느라 힘들고, 외로워서 힘들다. 자식에게 학대를 받으면서도 드러내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는 노인들도 많다.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노인학대는 ‘노인에게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 성적 폭력 및 경제적 착취 또는 가혹 행위를 하거나 유기 또는 방임하는 것’을 말한다. ‘노인 한 명이 사라지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OECD 회원국 중 노인자살률이 1위인 한국에선 40분마다 한 개의 도서관이 사라지고 있다. 노인 고독사 역시 한국의 주된 사회문제 중 하나다. 사실 병약한 어르신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다. 병원이나 요양시설이 아니라면 배우자나 자녀가 이를 감당해야 하지만 배우자 역시 역시 연로한 노인인 경우가 많다. 장성한 자녀가 있어도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기 바쁜 데 부모를 봉양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도 많다. 우리 속담에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효자는 하늘에서 내린다는 데 도대체 성공한 ‘자식 농사’의 기준은 뭘까? 한 아이는 가슴에 안고, 한 아이는 손을 잡은 채 박물관에 들어오는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며 잠시 상념에 잠긴다.송문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전 고려대학교 연구교수

[이슈&인사이트] KT 이사회 구성의 한계

지난 6월 30일 KT가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사외이사 7인을 선임했다. 대표이사와 사외이사 후보가 주총을 앞두고 전원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지 약 3개월 만이다. 아직 대표이사 선임이라는 가장 중요한 과제가 남았지만 그래도 한시름 덜었다. 이번에 선임된 KT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보면 매우 훌륭한 분들을 모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보통 사외이사 후보명단을 내부적으로 보유하고 있고, 이사회 내 위원회인 ‘이사후보추천위원회’ 또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의 명칭을 가진 위원회가 후보군 내에서 사외이사를 선발한다. 이번에 KT는 이런 업계의 관행에서 벗어났다. KT는 지난 4월17일 국내외 주요 주주들의 추천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들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TF는 ‘사외이사 선임 절차’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했는데, 주주 권익 보호 차원에서 ‘주주 대상 사외이사 예비후보 추천’ 방식을 도입했다. 회사와 관련해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존재하는 데 그중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주주다. 그러므로 주주로부터 추천을 받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사회라는 것이 다양한 주주 그룹의 대표자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조직이 아니다. 주주의 성향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서 이런 방식은 ‘콩가루 이사회’가 될 위험성을 내포한다. 이사는 대표이사의 경영철학을 이해하고 그 의지가 관철될 수 있도록 조언하고 협력하되 대표이사를 포함한 다른 이사들의 업무집행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이사는 전문성이 우선이고, 대표이사를 감독할 만한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 대표이사의 하수인이 돼서는 감독권을 행사할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의식해서인지 KT TF는 주주 추천과 함께 외부 전문 기관(써치펌) 추천 후보를 포함해 사외이사 후보자군을 꾸렸다고 한다. 다만 굳이 써치펌을 활용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써치펌은 헤드헌터들이 모여서 일하는 곳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도 1900여명에 달하는 전문가 풀을 가진 ‘사외이사 인력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100% 사외이사만으로 구성하고, 사외이사 후보 심사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 외부 위원 5명으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을 활용한다고 한다. TF가 후보들에 대한 1차 평가를 진행하고, 인선자문단이 1차 평가를 압축한 결과를 바탕으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2차 평가해 최종 사외이사 후보를 확정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보면 사외이사 선임 과정과 이사회 구성이 거의 외부인사에 의존하는 방식이 참 구차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외이사 선발과정은 단순해야 한다. 그럼에도 사외이사 선임에 회사가 이렇게 복잡하게 공을 들이는 이유는 KT가 금융지주회사처럼 소유가 분산된 기업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사회의 대부분을 사외이사로 채우고 사내이사는 1~3명에 그치는 구조도 금융지주회사와 똑같다. 필자는 이런 형식에 찬동하지는 않는다. 한국 상법과 시행령이 세계에 유례가 없이 이사회 내 사외이사의 비율, 결격사유 등을 지나치게 꼼꼼하게 규정하여 간섭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본다. 기업 이사회는 사외이사보다는 사내이사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 어떤 법률에서도 KT 등 소유가 분산된 기업은 사외이사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 이유는 미국 대부분의 기업 이사회(대략 80%가 독립이사(independent director)로 구성)를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 내용을 잘 모르는 사외이사보다는 IT전문가들인 실무형 기술자를 이사진에 포진시키고 사내이사 비율을 늘려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기술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시대다. 대표이사는 회사가 승계프로그램을 마련해 자체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2001년 민영화 이후 성년이 된 KT는 이제 홀로 서야 할 때가 됐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자기 성찰에 인색한 안전학계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우리나라 안전수준이 낮은 이유는 뭘까. 안전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 붓는데도 성과가 저조한 원인은 뭘까. 법제의 엉성함, 행정기관의 비전문성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분야 학계의 수준이 낮은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양적으로는 우리나라만큼 안전학자가 많은 나라가 없다. 그러나 역량은 선진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낮다. 학자의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질이 문제인 것이다. 사회과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막스 베버는 한 강연에서 학자가 갖춰야 할 자질에 대해 "중요한 문제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학문을 단념해라. 학문에 대한 도취, 열정과 소명의식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일을 해라"라고 일갈했다. 우리나라 안전학자들 중 베버의 요구를 반이라도 충족하는 학자가 얼마나 될까. 베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안전’에 관한 ‘학문’을 한다고 평가받을 만한 학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세간에선 안전공학과 교수를 위시한 안전학자들을 보고 "정작 안전을 모른다. 무늬만 안전학자다", "안전을 오염시키고 있다", "학문보다 돈벌이에 치중한다"는 등 혹평이 자자하다. 제대로 된 학식을 갖추지 못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안전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을 모르는 건 안전학자 자신들뿐이다. 학자들의 안전에 대한 이론과 문제의식이 실무자보다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공공연하게 들린다. "이론 없는 경험은 맹목적이고, 경험 없는 이론은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이마뉴엘 칸트). 안전학자 대부분은 안전에 대한 경험과 이론 모두 빈약하다. 경험이 있어도 이론에는 문외한이다. 문제는 부족함을 메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학생들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 사회 전체에 미친다. 교수 타이틀만 갖고 있으면 전문성이 없어도 전문가로 인정돼 공공기관과 기업의 평가·심사위원, 시험출제위원으로 위촉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학습 방향성도 제시하지 못하는 게 안전학계의 현실이다. 애꿎은 학생들이 안전에 대한 전문성도, 사명감도 부족한 교수들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안전과 접목시킬 생각 없이 다른 학과에서도 얼마든지 수강할 수 있는 과목을 가르치는 데 급급하다. 기본서 없이 파워포인트로만 알량하게 수업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수업이 머리에 남는 게 없고 실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안전공학과를 현재처럼 운영할 거면 학생들을 위해, 정부와 기업의 착각을 유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없애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학과 명칭과 커리큘럼의 혁신이 절실히 요구되는데도 무지와 기득권에 갇힌 교수들이 무작정 반대를 한다. 학계는 모름지기 정부 정책과 기업 실무에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안전학계는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인식도 없고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안전의 기초뿐만 아니라 안전부서의 위상과 역할조차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수요자는 안중에도 없다. 오죽하면 세금과 등록금만 축낸다는 비판마저 나오겠는가. 안전학계의 또 하나의 병폐는 비판적 사고가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안전학계는 비판의 무풍지대’라는 비아냥이 들리기도 한다. 안전에 대해 모르거나 무관심하다 보니 법제도와 정부정책, 현안사항에 대한 관심과 문제의식이 약하다. 정부를 견제하고 비판하는 학자의 본연의 역할보다는 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하는 어용학자가 많은 이유이다. 학회가 아카데믹하지 않고 아이러니하게 학술대회에 학술토론회가 없다. 안전 관련 자격(면허)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안전 분야는 초급자격증뿐만 아니라 기술사, 지도사까지도 기본서 공부 없이 기출문제만 공부해도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게 자격(면허)이 역량을 높이는 수단이 되지 못하는 건 학자들이 주축인 출제위원부터 안전의 대한 지식이 미흡한 탓이 크다. 기출문제나 지엽적이고 단편적인 사항 위주로 출제를 하게 되는 주된 이유이다. 안전학계만큼 존재감이 없는 분야가 있을까 싶다. 안전학의 특성과 학문 흐름을 읽지 못하고 개혁의 저항세력이 되고 있다. 안전학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사회의 안전이론을 견인하기는커녕 산업계의 수요에조차 부응하지 못하는 학계의 잘못된 관행을 더 이상 이대로 놔둬선 안 된다. 훗날 역사의 가혹한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혁신해야 한다. 사회는 묻고 있다. 누구를 위한 안전공학과인가?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산업 정보·기술 관리 체계화 시급하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대한민국의 경제는 절대적으로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주요 생산 및 수출 제품인 반도체, 자동차, 선박 등 제조업 분야 주력제품은 물론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한류 문화의 핵심인 영화, 드라마, 음악 등의 K-컨텐츠 역시 다양한 정보와 기술의 도움으로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한국의 방위산업도 무역과 수출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탄약 등 소비재에서 시작해 지금은 자주포와 전차, 더 나아가 전투기,함선 등까지 확대되는 추세다. 대한민국은 방위산업 생산 제품에서 더 나아가 주요 무기체계 전반을 수출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을 갖췄다. 최근 한국이 방위산업 분야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기술의 발전이 힘입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다른 요인들도 존재한다. 예상되는 경쟁국의 내부 정치적 판단, 국제사회에서 이해관계의 변화, 기술이전 및 생산 조건에 대한 부담, 한국에 대한 이미지 등이 그 요인들이다. 이런 요인들은 방위산업 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좋은 판단을 위한 좋은 정보가 필요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과거 선진국의 기술을 배우고 단순히 베껴쓰는 시절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혁신적인 수준에 이른 것이다. 국내 기술은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을 넘어 다른 국가나 국제사회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폴란드는 한국으로부터 무기를 수입해 자국의 독자적 무기체계를 발전시키고, 기술이전을 받아 자국 방위산업의 성장과 생산 기반을 구축하려고 한다. 당분간 폴란드는 한국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겠지만 언젠가는 국제 방위산업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한국은 이제 중요한 정보와 기술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신경을 써야 할 때가됐다. 정보와 기술을 ‘관리’한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다. 가장 낮은 단계로 지금까지 발전시켜온 정보와 기술을 꾸준히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국내에는 이미 정보와 기술을 발전시키도록 장려하고 지원하는 기준과 제도가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을 개정해 체계적인 지원을 약속했는 데 이런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발전된 정보와 기술이 유출되거나 방향성을 잃고 함부로 사용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방위산업 기술보호체계는 ‘방위사업법’이나 ‘방위산업기술보호법’등을 기반으로 수출통제 및 지적재산권 등록 등 다양한 보호 장치가 있다. 기술 보호에 대한 노력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특히 핵심적인 정보와 기술을 접하는 전문가들에 대한 체계적인 인력관리와 보안 교육 등이 필요하다. 정부와 기업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긴 하지만 기술과 정보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점을 감안할 때 그 노력은 앞으로 확대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보와 기술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활용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기존 정보와 기술들을 잘 조합하거나 예술이나 문화와 같은 분야와도 결합해 새로운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단순한 경제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이고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기술이전 등 전략적으로 다른 국가 또는 기업과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협력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는 중요한 결단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위해서는 투명한 기준과 절차를 설정해 기술의 보호와 전략적 공유의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정 기능을 부여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이다. 정보와 기술을 잘 활용하는 것은 그 대상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관리하는가에 달려있다. 정보와 기술은 사회적인 인식을 새롭게 해 이것이 단순히 이익의 원천이 아니라 우리가 소중하게 보호하고 발전시키며, 지혜롭게 활용해야 할 자원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이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EU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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