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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대만 총통선거 결과와 한국의 외교전략

세계 70여 국가에서 20억여 명이 참여하는 ‘지구촌 선거의 해’에 지난 13일 스타트를 끊은 대만 총통선거에서 친미·독립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됐다. 40.05%의 득표율로 친중 성향의 국민당 허우여우이 후보(득표율 33.49%)를 6.5% 포인트차로 제치면서다. 대만은 지난 2000년 첫 수평적 교체 이후 3명의 총통이 모두 재선에 성공하고, 다음 선거에서는 반대 측 정당 후보가 승리해 8년 주기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는 일이 반복됐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민진당이 이 같은 관행을 깨며 10년 이상 장기 집권하게 됐다. 야권 단일화가 무산돼 ‘3파전’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청년세대가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득표율 26.46%)를 대거 지지하면서 제3 정치세력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함께 실시된 입법원(의회) 선거에서는 의석수 113석 중 국민당 52석, 민진당 51석, 민중당 8석, 무소속 2석으로 여소야대 구도가 된 가운데 민중당이 캐스팅보트를 거머쥐게 됐다. 군용기와 군함 등을 동원한 중국의 전방위 압박에도 민진당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미중 대리전’으로 평가된 이번 선거에서 대만의 민심은 중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한 셈이 되었다. 대만 정체성이 변화·고착화되면서 총통선거에서 친중 후보의 설 자리가 좁아진데다 중국의 압박이 역풍을 부른 것으로 분석된다. 대만 총통선거 결과에 대해 중국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조국이 결국 통일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통일될 것이라는 점은 더욱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대만 지역의 선거는 중국의 지방 사무"라며 "대만 독립은 죽음의 길"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반면 미국은 안도감을 숨긴 채 바이든 대통령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등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라이 당선인이 "대만의 주권은 중국에 속하지 않는다"거나 "대만은 이미 독립 상태에 있다"고 발언하는 등 대만 정계에서 ‘독립’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인물이지만, 미 행정부는 ‘트러블 메이커’라는 지탄을 받았던 천수이볜 총통(2000∼2008년 재임)과는 달리 온건하고 신중한 정책을 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라이 당선인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대만이 전세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사이에서 계속 민주주의의 편에 서기로 결정했다"며 "중화민국(대만)이 계속해서 국제 민주주의 동맹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라고 밝혔듯이 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역할 확대를 모색할 것이다. 민진당의 연속 집권으로 초조하게 된 중국은 대규모 홍콩 민주화 시위 이후 홍콩에 강경 조치를 취한 것처럼, 대만에 대한 대응 수위를 높일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양안간 긴장의 파고가 높아질 것이며 한반도 정세와 우리나 국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한 치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중국이 군사 및 경제적 수단을 동원해 대만을 압박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대만해협에서 위기의 일상화 국면이 전개될 것이다. 전 세계 화물선박의 절반이 대만 주변 해역을 통과할 정도로 대만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화물선의 30%이상이 대만해협을 통과하는 만큼 이 지역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에 대비하는 방안을 시나리오별로 강구해 놓아야 한다. 둘째, TSMC(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를 보유한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반도체 역량을 활용하여 국제사회를 끌어들여서 중국과 대항하려고 할 것이다. 라이 당선인이 선거 기간중에 대만과 한국이 민주·자유·인권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신 공급망 형성을 위한 안보 대화를 열겠다고 언급한 만큼, 민주동맹을 기치로 한국과의 협력 강화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대만과 협력한다면 반도체 역량 강화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한중 관계에는 불협화음이 생길 수 있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미중간 힘겨루기가 첨예해질수록 더욱 선명한 목소리를 내도록 압박받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반영한 듯 우리 외교부는 대만 선거 결과에 대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긴요하며, 역내 평화와 번영에도 필수 요소다. 우리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기를 희망한다"고 원론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대만문제를 핵심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 중국은 타국의 입장 표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정부가 대만해협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를 우려한다는 메시지를 내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서 자국의 국익이 관련되어 있으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국익이 손상되고, 국제평화와 직결되어 있으나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내는데 두려워하고 회피하면 평화가 유지되기 어렵다. 다만, 단독으로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되도록 많은 나라들과 함께 내야만 효과도 있고 대응하기가 수월하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주원 칼럼] 한국경제 초저성장 해법은?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급속히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잠재성장률은 물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제 내 가용 가능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충분히 사용해 달성 가능한 최대치의 경제성장률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펜데믹 이전( 2009~19년) 연평균 3.0%에서 펜데믹 이후( 2020~2028년)에는 2.2%로 하락할 것이 예측됐다. 이런 추세라면 조만간 한국경제는 1% 미만(0%대)의 초저성장 국가로 전락하게 된다. 성장 없이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이다. 개개인이 밥만 먹으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성장이 멈춘다면 한국 사회는 아무런 희망도 가지지 못한다. 경제 활력이 없어지면서 성공의 기회도 없고, 거시적 지표인 경제성장률이 국내 투자수익률과 같이 움직인다고 보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투자도 없다. 개인도 기업도 모두 해외로 나가려고만 한다. 그래서 저성장을 버티기 위해서는 내수 시장이 커야 한다. 아니면 일본처럼 1970∼1980년대 쌓아 놓은 부(富)가 있어 그것을 까먹으며 버티거나, 자국 통화가 국제결제통화여서 발행된 채권을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사줄 수 있어야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성장을 극복할 방도는 없을까. 원칙적으로 출산율을 높이고 투자를 활성화하고 그도 안되면 기술혁신을 통해 선진국형 성장 구조로 가야하는게 맞다. 그러나 실제로 수십 년 동안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성과는 별로 없다. 그렇다면 무언가 핀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경제 전체를 볼 것이 아니라 미시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산업별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국가 경쟁력을 비교할 때 흔히 노동생산성을 사용하는데 한국생산성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당 노동생산성은 PPP(구매력평가) 기준 전 산업이 G7 평균의 86% 수준에 불과하지만, 제조업은 G7 평균의 122%에 달한다. 반면 우리 서비스업의 노동생산성은 G7 평균의 77%에 그친다. 또 우리나라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의 제조업 노동생산성 대비 비율은 47.5%로 G7 평균(76.0%)과 큰 격차를 가진다. 그만큼 우리나라 서비스업이 낙후됐다는 의미다. 바꾸어 말하면 동일한 관심과 국가적 재원을 투입할 경우 이미 효율적이고 스스로 잘하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성장여지가 더 많다는 의미가 된다. 잠재성장률을 키우려면 서비스산업을 더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과연 미래 글로벌 경제를 선도할 시장을 제대로 보고 있느냐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주력하고 있는 시장은 언젠가는 결국 후발공업국에 따라잡힐 운명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우리가 과거 후발공업국에서 출발해 선진국을 따라잡은 것이,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과연 우리 민족의 DNA가 월등해서일까? 혹시 우리가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 아세안, 인도, 남미 등의 신흥공업국도 우리가 이뤘던 성과를 내는 건 시간문제다. 이들이 언젠가는 우리처럼 미국 자동차 시장을 제패하고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석권하지 못한다고 과연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는 속도라면, 십 년 뒤 한국 경제와 이들 국가의 격차는 분명 크게 줄어들어 있을 것이다.답은 거시적 공급 요인에서 찾으면 안 된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새로운 시장을 찾아 키워야 한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서비스 시장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먹거리 시장 육성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경제 활력이 높아져 자연히 자본이 몰려들고 우수한 글로벌 인적자원이 집중된다. 나아가 생산가능인구도 하락세를 멈추고 점차 반등하게 된다. 이제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며 허송세월하는 것은 그만해야 한다. 현실로 내려와 손에 잡히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간이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이슈&인사이트] 1·10대책, 건설 구원투수 될까

지난해부터 이어진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부동산PF)대출 부실화에 따른 건설업계 줄도산 우려가 새해 들어 현실화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16위인 태영건설이 부동산 PF 우발채무에 발목을 잡혀 지난달 28일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했고, 지난 11일 채권단 75% 이상의 찬성을 얻어 가까스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태영건설이 진 부동산 PF관련 보증채무는 3조7000억원에 달하는 만큼 이번 워크아웃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중견건설사 줄도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업계는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총 571에 달한다. 이는 2006년(581곳) 이후 17년만에 최고치이며, 전년도(327곳)와 비교해 68.5%나 급증했다. 대한민국 건설경기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처럼 중견·중소형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부도나 부도위기로 내몰리는 것은 원자재값 폭등으로 인한 갑작스런 원가상승 등 공사비 불균형, 금리 급상승으로 인한 PF대출채무의 부담 가중,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른 미분양 증가 등이 주된 이유다. 이에 정부는 새해 첫날부터 건설산업 신속대응반을 꾸렸고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1·10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1·10대책은 주택건설과 공급,수요 전반에 걸친 규제완화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주택건설활성화, 공급확대,분양 활성화 및 미분양 해소 등에 대한 해법을 담았다. 먼저 도심주택 공급의 확대를 위해 준공된 지 30년이 지난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 입안제안 및 정비구역지정과 정비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해 재건축을 신속히 진행하도록 했다. 또 재개발사업도 노후도 요건을 60%로 완화하고, 신축빌라가 있어도 사업에 착수가 가능하도록 해 사업 활성화와 공급확대를 꾀했다.신도시 등에서 올해 공공주택 14만가구 이상을 공급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2만가구 규모의 신규 공공택지를 추가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또 주택수요 진작을 위해 올해 1월부터 내년 12월까지 준공되는 소형주택에 대해 세제산정시 주택수에서 제외해 종부세, 양도세, 취득세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특히 미분양이 집중된 지방의 미분양 물량에 대해서도 세부담을 완화해 미분양을 조기 소진하고, 국토부 예산 중 19조8000억원을 올해 1분기에 집중 투자해 건설산업 활성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더불어 공적 PF 대출 보증을 확대하고, PF대출에 있어 건설사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책정하는 불합리한 계약사항을 시정하도록 했다. 정부의 1·10 부동산 대책은 건설 활성화와 주택시장 수요공급 전반의 활력제고에 초점을 맞춘 파격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하지만 대책 중 상당부분이 법개정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여야 합의도 필요한 만큼 당장 시행이 어려워 ‘발등의 불’을 끄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재건축·재개발사업의 절차의 경우 수혜 사업장은 사업초기단계에 있는 곳에 한정된다. 더구나 안전진단 폐지로 5년 정도 기간을 단축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15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는 정비사업에 비춰보면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신축 소형주택에 대한 세제 완화 역시 내집 마련이 시급한 신혼부부나 금전적 여유가 없는 대다수의 무주택자들에게는 ‘그림의 떡’ 일 수 밖에 없다. PF대출 보증과 지원확대방안은 수익성 자체가 떨어지는 사업장에 보증과 지원을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이어서 현실적으로 회생이 가능하고,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장을 선별해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는 고금리와 원자재값 폭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대다수의 사업장이 보증과 지원을 받을 수 없어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최근의 건설산업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는 점은 큰 진전이다. 관건은 이번 1·10대책이 정부의 의도대로 제때, 제대로 시행돼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제시한 대책에 대해 정교하고 치밀한 시행동력을 만들어 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이슈&인사이트] 50인 미만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논란에 대한 단상

50인 미만 사업장(소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중대재해처벌법 찬성과 반대 측 모두 ‘재해 예방’이라는 본질에서 벗어나 있고 진정성도 없어 보인다. 찬성 측은 정작 중요한 실효성은 따져보지도 않고 예정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대 측은 정교한 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부담스러우니 적용을 유예하자는 식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 예방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은 채 그저 좋은 법이라는 전제하에 ‘묻지마’ 적용을 하자는 찬성 측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들의 엄벌주의 입장은 가히 종교 수준이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 북한 등 엄벌주의를 취하고 있는 나라의 산업안전 수준이 형편없는 사실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실효성 있는 예방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 소기업의 경영책임자는 중대재해 발생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이미 처벌되도록 돼 있어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실익이 없다. 소기업은 산업안전보건법도 못 지키고 있는 만큼 산업안전보건법이라도 제대로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먼저다. 이런 상태에서 소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한다면 이들 입장에선 옥상옥으로 받아들여져 혼란과 부담만 가중될 뿐 예방효과를 거두지 못할 건 명약관화하다. 그런데도 찬성 측은 이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무지하거나 솔직하지 못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찬성론자는 소기업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준수를 적은 비용으로 쉽게 준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형식적으로 준수할 때만 타당하다. 이 법의 핵심내용인 안전보건관리체계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실질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찬성론자는 이러한 기본적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안전의 형식화를 조장하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소기업에 확대 적용되면 수사에 치우친 고용노동부의 잘못된 관행이 훨씬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해야 한다. 가뜩이나 고용노동부의 처벌 일변도 법집행으로 일반경찰과의 차별성이 희미해지고, 산재예방기관이라는 존재이유에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더욱 왜소해질 수 있다. 찬성론자의 일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 재해조사 대상 사망자가 조금이나마 줄었다며 이 법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강변한다.(한겨레 2023.12.27 세상읽기). 이런 주장에는 사망사고가 많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는 기초지식과 종합적 사고가 결여돼 있다. 무엇보다 지난 5년간 산업안전감독관이 약 2.3배, 준정부기관인 안전보건공단 직원이 약 700명, 산재예방 예산이 약 2.3배나 전례 없이 증가했고, 산재예방 선진국보다도 많은 행정인원과 예산을 가지고도 법이 시행된 후에 사망사고 수에 큰 변화가 없었다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법 정책의 여건까지 고려하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를 오히려 증가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2023년엔 전 산업에 걸쳐 경기가 침체되고 사망사고의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공사 착공면적이 거의 반토막이 났다. 객관적으로 사망사고가 크게 줄 만한 상황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중대재해 감소효과에 대해 부정적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사회 전체적으로 이 법의 대응에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있는데도 중대재해 예방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점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중대재해 예방의 ‘가성비’가 낮은 것은 처벌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예방시스템이 고장 났다는 방증이다. 정치권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다는 점을 깨닫고 일찌감치 이 법의 문제 전반에 대해 대처했어야 했다. 대처할 시간과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이를 소홀히 한 것은 직무태만에 가깝다. 그간 변죽만 울리다가 소기업 적용 문제가 임박한 시점이 돼서야 마지못해 파편적으로 대응하는 식의 모습은 책임정치, 신뢰행정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안전관계법이 정법(正法)인지 악법인지의 바로미터는 처벌수준이 아니라 재해예방의 실효성이다. 소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 여부도 바로 이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진영논리, 장삿속과 감성팔이는 철저히 배격되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과학적이고 이성적으로 그리고 신중하고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이연된 경제 침체, 실력을 보여줄 때다

지난 연말부터 국가와 민간 연구기관에서 ‘2024년 경제전망’을 내놓고 있다. 모두 올해 경제전망이 어둡다는 비슷한 내용으로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당초 2023년으로 예상됐던 세계 경제 침체가 2024년으로 미루어졌다든지, 따라서 2023년은 그나마 세계 경제가 선방한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등은 정확한 진단이다. 이처럼 이연된 침체가 2024년 중반부터 현실화되며, 세계 경제성장률은 2023년 2.9%에서 2024년 2.4%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말하자면 경제가 작년보다 나아질 것도 없고, 고물가 역시 해소되기 어렵다. 인플레 우려 지속으로 금리를 조기에 크게 낮추기도 어렵고, 정부가 재정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리기도 어렵다. 이미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위험 수준이다. 결국 2024년은 세계경제가 ‘L자형 장기 저성장’에 본격 진입하는 해가 된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긍정적인 전망을 보이는 업종은 반도체, 휴대폰, 조선, 정유ㆍ화학, 에너지ㆍ유틸리티, 제약ㆍ바이오, 항공, 미디어ㆍ엔터테인먼트, 보험 등 몇 가지 뿐이다. 경제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기업인들 역시 같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글로벌 이슈 및 대응계획’ 조사에 따르면 ‘2024 글로벌 키워드’로 미ㆍ중 갈등의 지속 또는 악화로 글로벌 공급망 문제 심화, 미국 고금리 기조 장기화, 전쟁 장기화 및 지정학적 갈등 확산 등을 가장 중요한 애로 요인으로 꼽았다. 이외에도 미중 갈등으로 인한 탈 중국 필요성 증대, 보호무역주의 강화, 세계 경제 피크아웃에 따른 글로벌 수요침체, 미국 대통령 선거에 따른 불확실성 심화 등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칠 주요 글로벌 이슈로 생각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가장 중요할 것으로 봤다. 우선 글로벌 수요가 침체되는 것에 대해서는 ‘신사업 발굴 및 사업 다변화’로 대응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 그 방법은 새로운 파트너십 구축을 통한 대응이다. 신규 거래처 발굴을 통한 공급망 다변화나 주요 자원개발 투자확대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전쟁과 지정학적 갈등 확산에 대해서는 ‘대체 수출입처 물색’을 꼽았다. 그러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이나, ‘생산 물량 감소 및 생산기지 축소’, ‘인건비 등 원가 절감’ 등은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미 마른 수건을 쥐어짜 본들 의미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정부도 이에 부응해 해외시장 개척을 비롯한 신수요 창출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기업 규제 완화’를 가장 앞세웠다. 대통령이 킬러규제 폐지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지만, 기업 현실에서는 규제개선 효과를 거의 체감하지 못한다는 게 중론이다. 다음으로는 법인세 감세와 투자공제 등 세제 지원 강화, 통상영역 확대를 통한 해외 신수요 창출, 자금조달 등 금융지원 확대 등의 순이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통상영역 확대 부분에 있어서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거대 야당의 협조다. 야당은 그간 기업규제 완화는커녕 규제강화를 위한 법률들을 쏟아내 왔다. 반면 김병욱 의원이 주도해 민주당 일부 국회의원들이 "글로벌 대기업을 돕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해 기업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이 새해에는 더 확산되어 진정 기업에 도움이 되는 법률을 많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 기업들도 긴축경영을 하되 너무 위축되지 않으면 좋겠다. 워렌 버핏은 말했다. "썰물이 빠졌을 때 비로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고. 썰물 때 실력을 보여주는 많은 기업인을 우리는 보고 싶다.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 교수

[이슈&인사이트] 시늉만 낸 슈링크플레이션 대책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가 인플레이션 굴레에 갇혀있다. 수년째 이어지는 세계적인 인플레 현상에 대한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가계도,기업도,정부도 고통받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원자재값과 임금 상승 등 원가상승에 직면한 가운데 정부가 물가안정을 이유로 소비재에 대한 가격 통제에 나서자 소비재 기업들을 중심으로 단가는 유지한 채 제품의 크기나 용량을 줄이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가 압박이 거세지는 만큼 수익성이나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제품 가격을 올리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만 가격을 올릴 경우 인플레 압박을 받는 소비자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정부로부터도 눈치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포장 모양을 바꾸거나 눈길을 끄는 더 밝고 새로운 라벨을 붙이면서 용량을 줄이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편법 가격인상 ‘꼼수’라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고 정부도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0여년 전 과자의 양을 줄이고 대신 질소를 채운 이른바 ‘질소 과자’가 문제가 됐다. 2014년 당시 "과자봉지를 뜯었는데 70%가 질소였다", "질소를 샀는데 과자가 덤으로 왔다"는 등 질소 과자에 불만을 품은 대학생 2명이 국산 과자 60봉지를 엮어 만든 뗏목을 타고 한강 횡단을 하는 퍼포먼스를 펴기도 했다. 지난해 한 지역축제에서 갯고둥 한컵 5000원, 바비큐 한덩이 4만원, 빈대떡 1만5000원 등의 바가지 상혼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축제가 아니더라도 대표적인 서민간식인 치킨세트에서 떡튀김과 감자튀김이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으로 비화되며 씁쓸함을 자아내게 한다. 치킨 가격 오르자 치킨양을 줄이고 단가가 낮은 떡튀김이나 감자튀김의 양을 늘리는 식이다. 김치 등 무료 서비스를 없애거나 반찬수를 줄이고 음식 재료의 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 원가를 보전하려는 식당들도 늘어나고 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도 비싼 국산 부품 대신 저렴한 중국 브랜드의 부품을 쓰기도 한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우리나라만은 문제도 아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한 회사의 크리넥스 티슈 제품은 내용물을 최근 65장에서 60장으로 줄였고, 한 아이스크림 제조업체는 유지방 일부를 줄이고 물과 기타 우유 성분, 감미료 등의 다른 성분으로 대체했다. 인도의 빔 식기세척용 비누 한 덩이는 무게를 155g에서 135g으로 낮췄다. 호텔들도 조식,청소,용품 등에 대한 서비스를 줄이거나 유료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해 12월 새해부터 제조사가 가공식품 등의 용량을 줄이면 포장지에 반드시 용량 변경 사실 표기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을 발표했다.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은 제품가격 편법인상 꼼수를 막기 위한 대책이다. 그런데 포장지에다 변경 전 용량과 변경 후 용량을 써놓는다고 제품가격 편법 인상 꼼수를 막을 수 있을까. 실효성은 커녕 오히려 편법인상을 법적으로 조장하는 ‘면피용’ 구실을 주는 셈이다. 슈링크플레이션 대책이 제 효과를 내려면 단위 표시를 의무화해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으로 가격이 얼마나 올렸는 지 알게해야 해야 알권리를 보장하면서 가격 꼼수 인상을 견제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단위가격 표시를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전통시장,지역축제,농수산물시장,직거래장터 등 모든 온·오프라인 매장에도 게시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생산지와 직거래때도 단위가격 표시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용량을 줄인 제품에 자발적으로 ‘슈링크플레이션’이라는 스티커를 붙인 프랑스 슈퍼마켓 체인 까르푸와 제품 용량에 변화가 있을 때 해당 기업이 변경 전과 후의 용량과 변경 수치, 비율을 6개월 이상 포장에 표시해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한 브라질 정부사례는 슈링크플레이션,소비자 알권리 보장의 좋은 본보기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공급망기본법

COVID-19 팬데믹에 이은 국제사회의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각국의 친환경 탄소중립 정책 등으로 제품 생산을 위한 글로벌 공급망이 위기를 맞고 있다. 갑진년 새해에도 국제사회의 자국 우선주의와 원료의 무기화가 얽힌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공급망의 위기는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원료와 제품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그것을 활용하는 산업의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고 종국적으로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에 큰 불편을 준다. 따라서 주요 품목에 대해 공급망 정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수입선을 다변화해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주요 국가들은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 내재화하거나 블록화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과 유럽의 원자재법 이 대표적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주력산업의 핵심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도 기업과 정부차원에서 공급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9년 희소금속 소재산업 발전 종합대책에 이어 2011년 희소금속 산업 생태계 조성 계획을 수립하며 공급망 안정을 위한 민간투자 활성화, 핵심기술의 개발 및 체계적인 산업육성 기반을 구축했다. 지난해에는 기존 ‘소재와 부품 전문기업 등의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의 명칭을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 및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으로 바꾸며 공급망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높였다. 이 법은 소재·부품·장비 분야와 관련된 산업의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별도의 근거를 신설했고, 관련 기업의 공급망 안정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도 마련했다. 구체적으로 공급망 위기에 영향받기 쉬운 관련 산업에 대한 정부의 공급망 기본계획, 긴급수급 방안 등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포괄적인 근거를 확보한 것이다. 더 나아가 특정 산업의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공급망 안정품목을 정하고, 공급망센터를 설치해 공급망 관련 국내외 정보를 관리하고자 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희소금속 전문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희소금속센터에 대한 법적 근거를 명시한 점이다.기존의 ‘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도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에 초점을 맞춰 개정했다. 여기서는 국가첨단전략기술을 "공급망 안정화 등 국가·경제 안보에 미치는 영향 및 수출·고용 등 국민경제적 효과가 크고 연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현저한 기술"로 새롭게 정의했다. 국가첨단전략산업도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정부의 조치에 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기존 제도의 개정만으로는 급변하는 환경변화와 국가 경제 및 산업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른바 ‘공급망 기본법’인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은 공급망 위기 대응과 안정화 정책을 심의·조정하는 컨트롤타워인 ‘공급망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차원의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을 수립하는 근거를 담았다. 공급망위원회가 국가와 국민경제의 안정에 필수적인 품목을 지정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한편, 정부가 공급망 안정화 선도사업자를 선정하고 시설투자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설치 근거도 마련했다. 공급망 위험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 도입되고, 유관부처와 기관간 협력도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국민경제에 큰 영향이 있는 185개 품목을 공급망 안정 대상 품목으로 정하고 70% 수준인 특정국에 대한 수입의존도를 2030년까지 50% 아래로 낮추는 내용의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을 마련했다. 산업 공급망 3050 전략이 정부의 계획대로 성공적으로 실현되면 첨단 분야의 기술개발이나 품목 관리를 중심으로 하는 공급망 관리 체계를 넘어 서비스와 물류까지 아우르는 넓은 범위의 공급망 관리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적 노력에 대해서는 아직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어, 이미 개정된 기존의 규범들이 대부분 산업통상자원부의 소관이지만, 새롭게 제정된 공급망기본법은 기획재정부에 엄청난 예산과 권한을 부여할 여지가 있고 부처 사이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런 정부 차원의 관리와 지원이 자칫 WTO 규범이나 FTA 등 국제사회의 기준에서 금지하는 보조금 지원 등으로 취급돼 외국과의 통상 분쟁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한국은 국내 소비시장이 작고 무역의존도가 높아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화는 경제 안보 측면에서 그 어느 나라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이러한 경제 안보와 공급망 안정화라는 ‘두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보다 치밀하고 명확한 법적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법제 수립과정에서 기업과 사회적 갈등의 소지가 있는지, 국제사회에서의 통상 등 무역 분쟁 소지가 있는지를 보다 명확히 따져 안정적인 시행 기반을 갖춰야 한다. 공급망기본법은 말 그대로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한국유럽학회 수석부회장

[이슈&인사이트] 겉도는 부동산PF 대책

국내 16위 건설사인 태영의 워크아웃 신청으로 촉발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 우려가 새해 벽두 금융시장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했다. 문재인정부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까지 부동산 가격이 하늘 모르게 치솟자 ‘부동산 불패론’에 편승해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개발 사업의 미래 수익을 담보로 무분별하게 건설사업에 공사비를 대 준 것이,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 시장금리 상승, 공사비용 증가로 부동산 개발 사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부동산 PF 연체율이 급증하고 이로 인한 도미노 충격이 빚어지면서다. 자칫하면 금융기관은 빌려준 돈을 떼이고,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진 여러 건설회사들은 연쇄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금융기관들과 건설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과 경제 전반에 큰 위기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부동산 PF 부실화는 먼저 신용경색으로 이어져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헤칠 수 있다. 기업과 금융기관 등에서 돈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돈의 흐름이 막히는 것이 신용경색이다. 금융시장에 공급되는 자금의 절대량이 줄어들거나 자금의 통로가 막히면 금융 기관들은 자산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자금 회수에 나서게 되고, 대출을 줄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업활동이 위축돼 자금 부족으로 파산하는 기업이 늘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은 다시 부실채권에 대한 손실을 감당하느라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두번째는 부실한 부동산 PF의 매각이나 청산은 부동산 시장에 공급 확대효과를 불러 공급과잉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 압력을 가중시키게 된다. 이는 고금리 상황에서 부동산 물량 증가와 가격의 하락을 동시에 초래하고, 이는 부동산 업계 전체와 금융회사들, 이른바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아 가격이 높을 때 내집을 마련한 서민들에게도 적지않은 재정적 부담을 안긴다. 세번째로 부동산PF 부실화는 경기 침체와 불황, 고용 악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부동산 부실로 인한 금융 시스템의 충격은 기업들의 투자와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 둔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동산 시장과 연계된 가계 자산의 불안정성으로 주머니가 얄팍해진 소비자들은 소비를 절제하게 되고, 가계의 소비활동이 줄어들면 불가피하게 기업들의 매출 감소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기업들의 투자와 생산 활동을 위축시키므로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의 고용이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기업과 가계의 연체율을 볼 때 우리 경제에 빨간 신호는 켜졌다.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키기 어려운 악순환 고리의 재앙이 닥칠 수 있다.더 나아가 금융기관 상호 간에 보유 자산의 자산 건전성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시점이 되면 필자가 우려하는 시나리오가 벌어질 수 있다. 정부는 정확한 상황 진단과 평가를 통해 기민하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위기 관리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먼저 부동산 시장 충격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Stress Test)에 나설 것을 주문한다. 금융시장에서 스트레스 테스트는 경제분야의 여러 이벤트, 외부 충격에 대한 금융회사들의 위기 관리 능력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를 통해 얻어지는 각각의 경제 영향 시나리오를 활용해 그 여파가 어느 정도가 될지를 예측하고, 금융 위기 상황에서의 PF의 안전성을 평가, 상황에 맞는 조치를 해야 한다. 부동산 PF 부실의 충격에 금융기관들이 입을 수 있는 손실 또는 자금 과부족 등을 측정하고 자본확충계획과 같은 비상대책을 수립, 실행해야 하는 시점이다.사람의 몸에도 건강 이상 신호가 있을 때 조기에 정확한 진단과 수술이 필요하듯이 부동산 PF의 운영과 거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고 잠재적 리스크를 최소화해야 한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점을 당국은 유념해야 한다.박세원 S&P글로벌 상무/ 거시경제 및 국가리스크 한국총괄

[이슈&인사이트] 새해 외교안보 분야 화두와 과제

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으면서 윤석열 정부 집권 3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윤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확장억제에 관한 ‘워싱턴 선언’(Washington Declaration)을 도출하며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체제를 구축하고, 일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면서 냉담을 넘어 거의 단절에 가깝게 악화된 채 방치된 상태의 한일관계를 회복시켰다. 그리고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3국간 안보·경제를 망라한 포괄적이고 다층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윤 대통령은 나토(NATO)정상회의 등 국제회의에 활발히 참석하며 다자외교의 외연을 확장했으며 자칭 ‘1호 영업사원’으로 공을 들인 세일즈외교 성과도 적지 않다는 평가다. 지난 1년여 동안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로 대표되는 중동 ‘빅 3’에서 거둔 체결한 계약 및 MOU 사업 성과가 792억달러(107조원)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새해에는 윤석열 정부가 직면할 도전과 리스크 또한 만만치 않다. 윤 정부는 올해 중점적으로 회자될 세 가지 화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선거 이슈이다. 올 한해 동안 미국, 영국, 인도 등 70여 국가에서 20억명이 참가하는 선거가 진행된다. 오는 13일 미중 관계와 동북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만 총통 선거를 필두로, 3월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한 당사자인 러시아에서 대선이 치러지고, 6월엔 유럽의회 선거가 실시된다. 11월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복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미중 전략 경쟁과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경쟁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면 동맹 경시 경향이 다시 표출돼,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와의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은 크게 수정될 수 밖에 없고 한미일 협력 유인도 약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4월에 중요한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된다. 특히 선거 과정에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주시하고 경계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28일 김정은이 측근들에게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며 북한이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연초 군사·사이버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물샐 틈 없는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세계 공급망 문제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첨단 반도체, AI, 양자 등 하이테크 기술 분야 중심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나서자 중국은 갈륨·게르마늄,흑연 등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로 맞섰다. 미국은 화웨이가 시장에 5~7㎚(나노미터)급 프로세서를 내놓자 추가 반도체 제재에 착수해 주요산업분야의 ‘레거시 반도체’(legacy chips)로 불리는 범용 반도체 현황 조사에 나섰다. 이에 중국도 희토류 가공 기술 수출금지로 대응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무역의존도가 80%에 육박한다. 경제와 안보가 긴밀하게 연계돼 있는 상황에서 공급망 이슈는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 민관이 협력해 갈수록 심각해지는 세계 공급망 리스크를 다각적이고 선제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셋째는 지정학적 화두다. 2022년 2월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종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중 간 긴장과 갈등의 영향으로 대만해협 파고는 높아만 가고 있다. 아울러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가 강화되는 양상을 보이며 북한 핵문제 해결은 요원해지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지난해 12월 19일(현지시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도발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성과가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런 ‘빈손 회의’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미중간 대립과 관계 악화에 기인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형성된 신 냉전구도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북한은 이런 정세변화에 편승해 포탄을 제공하며 러시아와 관계 강화를 도모하고, 중국과의 연대에 주력하면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진영 간 대결보다 미국 견제에 주력하는 중국은 러북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군사밀착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한국으로서는 한중관계 회복과 발전을 통해 문제를 풀어갈 필요가 있다. 마침 조태열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한미 동맹 못지않게 한중 관계도 중요한 관계라며 조화롭게 양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윤 정부가 한미·한일·한미일 관계 강화와 NATO 정상회의 참석 등을 통해 전통적 협력관계 복원과 강화, 외교 외연 확대에 중점을 뒀다면 올해에는 안정적 관리에 외교 역량을 모을 필요가 있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 주재 총영사

[이슈&인사이트] 새해 한국경제 화두와 과제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작년 경제성장률이 1%대의 저성장을 면치 못해 새해를 맞는 경제계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못하다. 당초 2.5%대를 예상했던 작년의 성장률이 1.4%까지 하락하게 된 것은 반도체와 중국에서의 수출 부진이 주된 원인이다. 이 두 문제는 상당 부분 미중 패권경쟁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산업의 구조와 시대변화의 방향이 상충하여 발생한 불가피한 현상이다. 2018년 미국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된 미중 갈등은 최근 5년간 기업주도의 자유무역 세계화 체제를 형해화하였다. 미국은 미중 패권경쟁 구도 하에 경제안보 개념을 도입하고 안보위협 국가에 반도체 등 첨단분야 거래를 제한하는 디리스킹(de-risking) 동맹 체제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들도 경제안보의 명분으로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국가주의로 전환하고 있다. 올해는 국가수반을 선출하는 선거가 50건이 넘는 전례가 없는 해이다. 특히 미국, EU, 인도, 러시아, 대만 등 미중 패권경쟁에 밀접하게 연관된 국가들에서 선거가 이루어진다. 미국의 경우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선출되면 민주당에서 구축한 동맹체제를 해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미중 패권경쟁은 적어도 10여 년 이상 지속될 것이고 각국의 국가주의와 국가들간의 합종연횡은 더 심해질 것이다. 자유무역 세계화 체제에 최적화된 한국산업은 세계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함에 따라 과도기적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수출 감소와 저성장의 쇼크를 당하면서 현실의 변화를 절감한 정부와 산업계는 올해를 새로운 변화의 원년으로 공식화하고 최적의 변화를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새해 한국경제의 화두로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수출주도 패러다임의 재편을 제안한다. 먼저 미중 패권경쟁과 국가주의 패러다임에 상응한 우리나라의 산업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과 과제는 무엇일까? 최우선적으로 미국의 대중 기술력 견제로 가능해진 중국과의 기술력 격차 확대 기회를 절대로 무산시키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신산업의 육성에 한국경제의 미래를 걸어야 한다. 현재 정부도 중점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이 과제는 70년대의 수출진흥과 80년대의 중화학공업화를 추진한 것과 같은 정도의 강력한 민관협력과 정책 추진력이 요구된다. 둘째, 벤처·중소·중견기업들의 역동성과 혁신역량을 대폭 제고하여 전문기업화를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 R&D 지원과 벤처캐피털의 활성화, 기업활력법에 따른 사업재편 촉진, 산업계의 도전문화 조성 등이 긴요하다. 끝으로 정부 R&D 시스템의 획기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대표적으로 현 정부에서 제안한 해외 첨단기술 기관과의 R&D 국제협력과 현재 일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는 경쟁형 R&D의 확대 및 성과도출, 빅데이터와 챗GPT의 R&D 사업과 관리에서의 활용방안 개발 등이 긴요하다. 세 과제를 포함하여 대중 기술력 우위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과기부-기재부 협력형으로 운영하는 R&D 예산시스템을 미국과 같이 대통령실로 이관하고 대통령 의제로 직접 관장하기를 건의한다. 보호주의 경향을 띠는 국가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행 수출주도 경제시스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첫째, 내수를 강화하여 수출과 내수의 병행 발전으로 전환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전체적으로 수출 증가율이 국내생산 증가율과 거의 같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따라 수출만으로 고성장을 달성하기가 어려워졌으므로 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보장하는 내수기반 확충에 힘써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재 소비확대에 큰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는 가계부채 문제 해결이다. 이와 함께 내수산업 확충의 핵심인 서비스산업 혁신에 돌파구를 제공하는 정책의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진입장벽으로 작용하는 다양한 규제를 혁파해야 하는데 그동안 제안되었던 네가티브 규제시스템의 도입이나 사후규제를 이번에는 관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동반성장이나 이해관계자(stakeholder) 자본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21세기형 기업문화의 조성과 촉진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둘째, 수출방식에 대한 변화도 필요하다. 국가주의가 득세하면 양자 관계에서 큰 폭의 흑자구조를 지속하기가 어렵고 소나기 수출도 제약받게 된다. 이에 따라 해외투자를 통한 현지생산과 중간재 수출을 연계하고 일부 역수입을 하는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또한 물량 위주의 수출보다 차별화 제품 위주의 수출로 전환하는 것이 유리해진다. 수출대상국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비용상승을 초래하므로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해 종합상사와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 등 수출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부의 외교역량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특히 개도국에서는 정상외교의 영향력이 지대하므로 중소 수출기업들의 정상외교 활용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제 수출은 정부와 기업, 공공지원기관의 합작품이 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은 중국의 도전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한국산업에 천재일우의 회생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산업의 변신을 성공시켜 올해가 한국경제가 선진국의 선두대열에 우뚝 서는 변화의 첫해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장윤종 KDI 초빙연구위원/ 전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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