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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세계 많은 곳에서는 전쟁과 정치적 문제 또는 경제적 목적으로 사람들의 이동이 이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심각한 사회문화적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모습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관광이나 비즈니스,국제결혼을 넘어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극복하고 부족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외국으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여할 상황이 됐다. 바로 다문화 사회가 현실화된 것이다. 오랜 시간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단일민족으로 살았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처음에는 이를 낯설게 여겼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정부는 출입국관리법,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다문화가족지원법, 난민법 등 다양한 법령을 만들어 이민 수용정책을 펴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은 국민과 외국인의 출입국 및 체류 관리 그리고 사회통합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은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의 처우 등에 대한 사항을 정해 외국인들이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 능력을 발휘해 한국의 발전과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도록 만들어졌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국제결혼에 의한 다문화가족이 안정적인 가족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문화가족 지원 근거를 두고 있다. 모두 외국인들이 국내에 잘 적응하도록 해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사회통합은 대체로 공동체의 가치를 공유하고 구성원들의 차별을 줄이려고 노력하며, 사회가 공통된 도전에 직면하면 모든 구성원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힘을 모으는 것으로 정의된다. 사회통합을 하려면 이민자가 이 사회를 이해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언어와 문화 등을 체계적으로 익혀 사회구성원으로서 적응하고 자립하도록 돕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회통합 프로그램은 이민자가 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교육, 정보제공, 상담 등을 제공하는 활동을 포함한다. 이민자가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출입국관리법 제39조는 한국 국적의 취득과 같은 유리한 체류자격으로 변경을 원하는 외국인을 위한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7년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 따라 처음으로 이민자 사회통합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이 법 제11조는 재한외국인이 한국 사회에서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 소양과 지식에 관한 교육 및 정보제공, 상담 등을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으며 다른 이민 또는 다문화 관련 법의 기본이 된다. 2008년에 마련된 다문화가족법은 정부가 가족상담, 부부·부모교육과 가족생활교육, 언어통역, 법률상담 및 행정지원 등의 서비스 제공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이민사회의 정착과 사회통합은 미흡하다. 사회구성원들의 사회적 인식과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가령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과 다문화가족 구성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가족지원법의 제도가 서로 중복 또는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난민법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가 다국적·다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들과 사회통합을 이루려면 제도적 미비점 개선과 함께 사회구성원들의 인식 개선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회통합을 위해 기존의 질서를 새로운 이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다문화 현상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9월 말 현재 국내 장·단기체류 외국인이 251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5137만명)의 5%에 육박하며 다문화·다인종국가로 진입했다. 한국사회는 이제 이민자가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김봉철 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U연구소장

[이슈&인사이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수혜자는 누굴까

10월 23일 이스라엘은 모처 군사기지에서 200여 명의 외신기자들을 대상으로 10월 7일 하마스(Hamas) 기습 공격 당시 행해졌던 참수와 유아 살해, 강간, 시신 훼손 등 잔혹 행위가 저질러진 정황이 담긴 43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CCTV, 하마스 테러리스트의 핸드폰, 액션카메라 등 다양한 출처에서 수집한 영상을 편집한 내용으로 10월 7일의 기습공격 당시의 참상이 생생히 담겼다. 하마스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번처럼 민간인을 대상으로 잔인하게 난동을 부린 경우는 드물다. 이는 적에 공포와 함께 극도의 적개심을 자극하기 위한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인간 도살 행위다. 하마스는 이런 도발이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보복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굳이 이런 잔혹한 테러와 범죄를 저질렀을까. 2006년 팔레스타인 가자(Gaza) 자치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도 세력인 파타당을 몰아내고 권력을 독점한 하마스는 이스라엘 파멸을 목표로 공격을 계속해 왔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살폭탄 테러와 로켓 공격 등 노골적인 도발을 했다. 이스라엘의 보복으로 가자 지구 민간인이 피해를 보면 하마스는 오히려 이를 자신의 존재 가치와 권력이 강화하는데 이용했다. 하마스의 행동은 ‘자해공갈단’과 같다. 자해의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오히려 공갈의 강도가 강해지는 것 처럼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확대되고 민간인의 희생이 많아질수록 하마스의 권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하마스 존재의 정당성과 정체성은 이스라엘에 대한 테러와 자해행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마스는 이번 공격을 위해 2년 동안 준비했고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란 등으로부터 각종 무기와 자금지원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하마스가 보유한 무기 중에는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해 러시아 기갑부대 섬멸에 큰 공을 세운 영국제 N-LAW 대전차 미사일 등 상식적인 경로로 획득하기 어려운 장비도 있다. 이번 공격에 하마스 이외 다른 배후가 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의문시되는 부분은 하마스가 왜 굳이 공개적으로 상식을 초월한 잔인한 만행을 저질렀냐는 것이다. 이런 하마스의 도발은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 여러 나라의 공분을 자초했다. 하마스 지도자들은 여느 정치집단 처럼 권력 유지를 위해 합리적이고 지능적이며 냉철한 판단을 하고 자신의 안전을 중요시하는 집단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이해하기 어려운 자해행위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예상대로 이스라엘은 하마스 완전 제거를 목표로 각종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하마스의 의도를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선 하마스는 중동 정세에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자신을 고립시킬 수 있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국교 정상화를 방해하고, 마침 네타냐후 정부의 실정으로 해이해진 이스라엘의 방어 태세 허점을 이용해 공격을 결심한 것이라는 판단이다. 여기에다 일부러 이스라엘에 지상전을 강요하여 최대한 많은 희생과 전력 낭비를 유도하고 아랍 국가들의 동정을 유발하여 범이슬람권 성전 참여를 독려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이 목표 달성을 위해 감수해야 하는 하마스의 피해가 엄청날 것이기 때문에 하마스보다는 제3의 세력이 더 큰 혜택을 얻게 될 것이며 바로 이 세력이 이번 사태의 배후일 가능성이 짙다. 당장 의심이 가는 세력은 이란이다. 이란은 숙적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가 미국의 안전보장을 전제로 이스라엘과 평화를 맺으면 중동과 이슬람 권역에서 영향력이 축소되고 고립될 것이 확실하다. 이란은 극단주의 이슬람 수출, 이슬람 신정정치 영구화 및 확산, 사우디 등 부패한 이슬람 왕정국가 응징, 중동 지역에서 미국 등 외세 축출과 지역 패권 확보 등 다양한 전략 목표 달성을 원한다. 하마스는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등 이슬람권 강국과 경쟁은 물론 서방과의 대결에서 이란 방식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구사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다. 중동의 혼란으로 이익으로 보는 또 다른 집단은 러시아, 중국, 북한 등 신흥 권위주의 세력이다. 지정학적 화약고에 위치한 이들 국가는 긴장과 위기 조성이 정치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푸틴 장기 집권 후 안전보장을 위한 대안이고, 중국은 대만 및 주변국 문제를 이용해 공산당에 장기 집권을 공고히하며,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 호전적 대남 행보를 통해 김정은과 백두혈통의 권력 영속화를 추진한다는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어려움을 겪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식, 중동 지역에서 평화 정착, 인도·태평양 지역 긴장 완화 및 미래 분쟁 예방을 목표로 긴장 완화를 원하고 있지만, 권위주의 세력은 혼란과 긴장을 통한 권력 유지와 확장을 원한다. 이번 하마스의 ‘자해공갈단’식 공격은 이런 최근의 국제정치와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범 자유민주주의 세력 및 ‘권위주의 축(axis of authoritarianism)’ 사이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한 본격적인 ‘대리전’ 성격의 대결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사건이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슈&인사이트] 기업활동 발목잡는 공정위 고발지침 개정안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은 크게 경쟁법과 대기업 집단을 규율하는 부분으로 나뉜다. 경쟁법 분야는 가격 담합,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지위 남용 등 건전한 시장경쟁을 해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 EU, 일본 등 세계 주요국들도 유사한 규정 아래 엄격하게 법을 집행한다. 반면 대기업 집단을 규율하는 부분은 우리나라만의 매우 독특한 제도다. 세계 주요국 중 대기업 집단을 규제하는 법제를 가진 나라는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대기업 집단 규제의 연원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 군정이 일본에서 실시한 대기업 집단 규제에서 찾을 수 있다. 미 군정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배경 중 하나를 일본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는 전범기업 집단으로 보고, 이를 해체하기 위해 대기업집단 규제를 단행했다. 미 군정이 물러난 후 일본은 이 규제가 경제 발전을 저해한다는 판단에 따라 일찌감치 폐지했다. 그런데 일본 전범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미 군정 당시의 규제를 1986년 우리나라 공정거래법에 도입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전범기업으로 대상으로 한 규제인 데다 경제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취지에서 이미 철폐한 구시대적 제도를 왜 하필 우리나라에 끌어들였는지, 그리고 아직까지 당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것이 의아하다. 대기업 집단에 대한 규제에는 대기업집단 지정제도, 동일인 지정제도, 상호출자 금지, 각종 의결권 제한 등이 있다. 이 제도들은 일견 기업에 대한 규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업 총수를 규제하는 것이 목적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 집단 지정시 계열사에 대한 각종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해야 하는데 오기나 일부 자료를 누락하면 기업 뿐 아니라 기업총수를 검찰에 고발해 형사처벌을 부과한다. 공정거래법상 의무 이행의 책임을 총수에게 지우고 있다. 앞으로 총수에 대한 형사책임이 더 무거워질 가능성이 높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등의 위반행위의 고발에 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 일부 개정안’(고발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 했기 때문이다. 공정위 보도자료에 따르면 일감몰아주기 위반으로 법인을 고발하는 경우 특수관계인, 즉 총수도 원칙적으로 고발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고발지침에는 총수의 법 위반 정도가 중대해야 고발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법 위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단 기업 충수를 고발하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법률도 아닌 지침으로 국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사항을 정한다는 것은 ‘권리를 제한 할 때는 법률로서 한다’는 헌법 규정과 충돌 소지가 크다. 더구나 상위법인 공정거래법 제129조 제2항에서는 ‘그 위반의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하여 경쟁질서를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공정위가 고발할 수 있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런 헌법과 법률의 원칙을 하위법령인 지침으로 거스른다는 것은 우리 법체계를 흔드는 엄중한 사안이다. 공정위에 전속고발권을 부여한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 사건의 전문기관이 공정위가 사건을 조사하고 법위반의 경중을 따져 고발 여부를 결정하라는 취지다. 지침 개정안과 같이 공정위가 법 위반의 경중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 총수를 검찰에 고발하게 된다면 공정위 전속고발권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적, 제도적 모순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업 입장에서 총수가 검찰 고발을 당한다면 기업의 이미지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해외에서는 경영자의 평판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해외사업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지금 가시밭길을 지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고유가, 고금리 그리고 주요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침체 등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 경영자들이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정부도 기업을 그 어느 때 보다 중요시하고 정책 환경 개선을 위해 규제개혁을 중요한 정부 정책기조로 삼고 있다. 공정위의 고발지침 개정안은 이런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는다. 고발지침 개정안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이슈&인사이트] 대통령의 중동 순방과 ‘제2의 중동 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1일부터 26일까지 4박 6일 일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를 잇달아 국빈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에너지와 건설, 첨단기술 등 전반에 걸쳐 중동의 핵심 협력국인 양국과 협력을 한층 강화하고 새로운 협력 영역을 발굴하며 우리 기업들의 중동 진출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윤 대통령은 사우디 실권자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가 전통적인 에너지, 건설 등의 분야에서 자동차, 선박도 함께 만드는 첨단산업 파트너십으로 발전시키고 관광· 문화교류 분야에서도 협력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국제 원유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현 상황에서 에너지 시장의 핵심 국가이자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에 대해 시장안정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해 달라고 말했다. 양국 간 경제·국방·안보 등 포괄적인 분야에서 상호협력을 한층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도 채택했다. 한·사우디 공동성명 발표는 1980년 최규하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이후 43년 만이다. 양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네옴 프로젝트를 비롯해 사우디가 추진 중인 키디야·홍해개발·로신·디리야 등 기가 프로젝트와 이와 연관된 인프라 사업의 성공을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관광·스마트팜·특허·해운 및 해양수산·통계·사이버안보·식약 규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 잠재력이 크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앞으로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도록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은 ‘사막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포럼에 주빈으로 참석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윤 대통령의 숙소인 영빈관에서 행사장까지 직접 차를 운전해 친근감을 표시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다음번에 오시면 사우디에서 생산한 현대 전기차를 함께 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국빈 방문 계기에 현대차는 사우디 국부펀드와 공동으로 약 5억 달러를 합작 투자해 전기자동차 조립공장을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윤 대통령은 포럼 연설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함께 같이 갈 친구를 선택하라’는 아랍 속담을 인용한 뒤 "대한민국은 미래를 위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혁신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라고 말했다. 카타르 방문에서는 현대중공업과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 간에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17척에 대한 건조 계약이 체결됐다. 정상 임석하에 스마트팜 협력, 건설·건축 분야 첨단기술 협력, 국가 공간정보 협력, 중소벤처 협력, 무역투자촉진 프레임워크 등의 MOU도 맺었다. 사우디와 카타르는 우리의 주요 교역국이자 중동지역 정치 경제의 핵심 플레이어로 이들 국가들과의 우호 협력은 우리의 경제와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1호 영업사원’으로서 세일즈 외교에 공을 들여왔는데, 주요 대상이 바로 중동이고 성과도 많이 냈다. 지난해 11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방한때 체결한 계약 및 MOU 사업규모가 290억 달러에 달하고, 올해 1월 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하며 300억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번 한·사우디 정상회담을 계기로 모두 51건 156억 달러 규모의 투자계약 및 MOU가 체결됐다. 카타르 방문 일정에서 MOU·계약 총 12건을 체결해 46억달러 규모의 수출·수주 성과를 거뒀다. 특히 HD 현대중공업이 카타르 에너지와 39억달러 규모의 LNG 운반선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조선업계 사상 단일 계약 최대 규모를 경신했다. 이로써 지난 1년 간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로 대표되는 중동 ‘빅3’에서 거둔 성과만 792억달러(약 107조원)에 달한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열사의 땅 중동에서 벌어들인 오일머니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원동력이 됐다. 이제 107조원이라는 거대한 ‘경제 운동장’이 중동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총 5000억 달러(676조2500억원)의 사우디 ‘오일머니’가 투입되는 네옴시티 사업에 한국기업의 참여 기회도 늘어날 전망이다. 방산 협력도 기대감을 키우게 한다. ‘제2의 중동 붐’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번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더욱 튼튼해진 기반위에서 시장개척을 가속화하면서 한편으로 중동국가들과 지속가능한 상호 호혜적 협력을 이루어 경제위기 타개는 물론 새로운 발전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 주재 총영사

[이슈&인사이트]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전환 딜레마

내연기관차는 약 3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다. 1~3차 협력사를 통해 단순 부품부터 모듈에 이르기까지 융복합적인 생산 과정과 최종 조립단계를 거쳐 완성차가 탄생한다. 협력사를 제외하더라도 완성차 업체의 최종 제작 공정에는 수많은 부품의 조립과 검사, 출고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많은 인력이 투입돼 유기적으로 생산 활동을 벌인다. 그런데 최근들어 전기차 대중화 시대가 열리면서 기존의 자동차 제작 생태계가 무너지고 자동차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부품수가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기존 내연차의 경우 자동차를 굴리기 위해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고 이것을 운동에너지로 바꾸는 등의 과정에서 엄청난 부품이 소요된다. 하지만 전기차는 배터리 배터리 하나로 모든 에너지를 얻기에 에너지 생산과정이 생략되면서 엔진과 동력전달장치(변속기·구동장치),전기장치 외에는 사실상 부품이 필요없게 된 것이다. 특히 내연기관차에서 엔진과 변속기는 가장 높은 난이도를 가진 제품으로 약 1만개의 부품으로 이뤄져 있지만 전기차에서는 이 자체가 필요 없다.실제로 전기차의 부품수는 1만3000개에서 1만8000개 정도로 내연기관차의 절반 수준이다. 이렇게 부품수가 적은 만큼 제작 공정과 조립과정이 단순화돼 생산 인력도 크게 줄어든다. 실제로 전기차의 경우 생산인력은 기존 내연기관차에 비해 30% 이상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말이 옛말이 된 셈이다. 문제는 현대차·기아 등과 같은 기존 내연기관차 업체들이 전기차로의 전환과정에서 기존 인력의 재배치나 전환배치 또는 인력 감축 등 근무조건 변경에 따른 갈등으로 전기차로의 전환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가뜩이나 국내 완성차 업체의 경우 노조의 위력이 상대적으로 거센 상황이어서 해당 기업으로서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노조에서는 해당 생산 인력에 대한 기존 근로조건 보장은 물론 정년연장 등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완성차 업체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은 기존의 생산 인력의 관리를 비롯한 전기차에 최적화된 인력의 안정적인 확보가 최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직된 노사문화와 함께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신규 인력부족에다 기업규제가 여전히 상존하는 상황이어서 국내에서의 생산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앞세운 미국은 물론 EU 등 우리나라 기업의 주력 수출 시장에서 각국이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옥죄면서 국내 기업들의 국내에서의 생산 여건이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에 따른 인력 수요감소는 완성차 업체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최근 전기차 전용공장을 건설하면서 기존 인력을 40%이상 감축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게다가 모듈화 공법 도입과 자동화 등으로 인력수요는 앞으로도 더 줄어 들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으로서는 자동화는 경영안정 측면이나 제품 경쟁력 확보차원에서 매력이 아닐 수 있다. 노조와의 갈등이나 안전사고로 인한 시간적·경제적 기회비용을 줄일 수 있고 필요하면 24시간 생산체제도 가능해 제품가격을 낮출 수 있고 이렇게되면 판매량도 늘어 높은 성장을 꾀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동화에만 매달릴 수 만은 없는 현실이다. ESG 시대를 맞아 기업에게 고용창출과 사회공헌 등 상생이라는 사회적 책무가 강조되고 이것이 또 하나의 경쟁력 지표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완성차 업체들이 기존 인력의 업종전환이나 직무 전환 교육은 물론 전기차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이에 맞춰 노조 문화도 개선돼야 한다.김필수 대림대학교 교수 김필수자동차연구소 소장

[이슈&인사이트] 의사만 좇는 세상, 4차 산업은 누가 키우나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대한민국은 의사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사 직종이 ‘신의 직업’으로 추앙받으며 의대 진학 열풍이 거세다. 고졸 수험생은 물론 재학중인 대학생들도 멀쩡한 기존 학과를 그만두고 반수,재수를 통해 의대 문을 두드리고는 게 일반화됐다. 심지어는 강남권 등 일부에서는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 진학에 맞춘 진학반을 운영하는 세태다. 디지털 혁명, 인공지능 등의 4차 산업혁명의 성공 열쇠는 인재 양성에 있다. 중국은 연간 이공계 졸업생이 460만 명에 달한다. 그런데 한국은 10만여 명에 불과하다. 양적인 열세와 함께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질적인 문제다. 서울공대의 최고 경쟁학과가 전국 대학의 의예과, 치의예과, 한의예과, 수의학과, 약학과에 못 미친다. 서울공대보다 지방대 의대를 나와서라도 의사 면허를 취득하는 걸 선호한다. 이공계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설립된 영재고 졸업생이 의대에 진학하면 각종 불이익을 주고 있지만, 의대행을 막지 못한다. 의대 선호 현상은 2023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고려대·서강대·연세대·한양대 4개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 수는 73명으로 전체 모집 인원인 47명보다 많았다. 종로학원이 2023학년도 정시모집 추가 합격자 발표를 마감한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모집 결과를 분석했더니 최종 1343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이는 세 대학 모집 정원(4660명)의 28.8%에 달한다. 자연 계열 등록 포기자의 상당수는 의·약학 계열에도 중복으로 합격해 옮겨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대 신입생 3606명 중 225명이 1학기에 휴학했다. 재수해서 의약계를 지망하겠다는 의도다. 초등학교에서는 때 이른 입시 준비로 의대 입시반 광풍이 불고 있다. 의대·치대·한의대 등 의학 계열 학과 입학을 위해 초등학교 입학부터 준비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학부모들 사이에 ’영어 유치원-초등 의대 반-자사고‘는 의대 입학으로 가는 ‘로열로드’로 꼽힌다. 문제는 이공계 인재들의 이대 쏠림 현상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한국의 미래산업,이른바 4차 산업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이러한 광풍을 잠재워야 할 정부가 나서서 기름을 붓는 격이다. 정부는 과학기술계의 카르텔 타파를 명분으로 내년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 대비 5조2000억 원이나 깎으면서, 부족한 의료인력을 확충한다며 의대 정원에 늘리기에 혈안이다. 물론 의료인력 부족 현상도 해소해야 한다. 의사 부족으로 지방 의료가 붕괴하면서 환자들은 서울로 몰리고,환자 부족으로 지방 병원 붕괴가 가속화되는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된다. 여기에 정부는 국립대 병원을 보건복지부로 이관하고 지방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지방 의료를 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복지부가 의사 인력 확충·지원이 정부 의료 개혁의 핵심이라고 거듭 강조하는데 그 타당성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청주 종합병원 심장내과에서 최근 ‘심장내과 의사에게 연봉 10억 원을 주겠다’라는 채용 공고를 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속초의료원은 연봉 4억 원을 주고 응급실 의사 3명을 충원했다’라는 등의 토픽으로 등장하는 의사 구인 이슈다. 그런데 본질적인 해법을 압구정동에 성형외과가 수백 개가 밀집된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구인난의 본질이 의사의 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극심한 편중 현상에서 기인한다. 극심한 의사 난의 화두가 ‘지방’, ‘응급’, ‘수술’ 등 이른바 의료 3D직종에 속한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해도 3D 기피는 상존한다. 의료 3D 해소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의사 증원만이 해법이라면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 활용하는 해외 의료 고급 두뇌를 수입하는 대안도 있다.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 취약지역과 취약 분야에 대한 낙수효과도 기대난망이다. 현행 의료 문제는 한국의 미래 산업의 경쟁력에 약화 문제에 비해서 작은 문제다. "의사만 늘리면 4차 산업 첨단 연구는 누가 하나?"라는 산업계의 절규에 정부는 답해야 한다.윤덕균 교수 윤덕균 한양대학교 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

[이슈&인사이트] 영화 속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술의 태피스트리 속에서 우리는 생성 AI(Generative AI)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GPT 시리즈와 DALL-E와 같은 첨단시스템은 텍스트에서부터 이미지, 스트리밍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창작적 표현을 반영하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디지털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이 같은 기술적 도약은 역사적으로 한 시대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오며 새로운 규범과 행동을 요구한다. 생성 AI의 물결에는 무한한 잠재력에 대한 설렘과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이 섞여 있다. 생성 AI는 의료, 교육,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며 효율성의 새로운 여명을 약속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첨단기술의 오용, 잠재된 편견, 예상치 못한 사회적 영향의 그림자도 어김없이 몰고온다. 이처럼 빠르고 복잡하게 변화하는 세상을 우리가 쫓아가거나 상상하기란 쉽지가 않다. 다행스럽게도 다가올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문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영화다. 끝없는 상상력으로 허구적 현실을 만들어 내는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영화계는 오랫동안 AI를 소재로 다루면서 미래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블레이드 러너’(1982)와 같은 고전적인 작품은 첨단 AI가 극도로 발전해 인간과 같은 욕망, 그러나 다른 의도를 가진 의인화된 AI 개체인 ‘리플리컨트’가 인간과 뒤섞인 사회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다. ‘엑스 마키나’(2014)는 AI 의식의 수렁을 깊이 파고들면서 인간과 AI를 구분하는 복잡하고 때로는 불안정한 경계를 탐구한다. ‘매트릭스’(1999)는 기계가 지배하는 암울한 세계에서 인간을 폭압하는 기계의 모습을 디스토피아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Her’(2013)에서는 좀 더 내면적인 관점도 제시된다. 이 영화는 지배력이나 의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서적 연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데, 인간과 기계 사이에 잠재적 관계가 현실에서 특히 사랑이라는 관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흔든다. 영화는 이야기 속 긴장감과 함께 인간의 의식을 정의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공지능이 인간과 구별된다는 관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의 대중화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2023년에도 AI를 다루는 영화는 우리가 직면할 도전과 기회를 계속해서 투영하고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시뮬란트’와 ‘크리에이터’는 고도화된 AI와 인류가 공존하며 겪는 갈등과 대립을 다루면서 ‘인간다움’과 ‘AI다움’에 관한 공감과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성 AI의 복잡한 지형을 탐색하다 보면 은막의 상상력과 우리가 보고 있는 기술 발전 사이에 점점 좁혀지는 간극을 발견한다. 그러나 영화가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해주지만 우리는 여전히 미지의 바다를 헤쳐나가듯 조심스럽다. 영화는 그 자체로 허구의 세계를 반영하지만, 그 안에서 나름의 진실과 우리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는 마치 흥미로운 나침반 역할을 하면서 단순한 오락을 넘어 미래의 사회를 경험하는 창문이다. 때로는 심오한 철학적,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우려와 호기심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영화의 메시지에 사로잡혀 있기만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우리 인간들끼리 보다 사려 깊은 대화와 신중한 행동을 도모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시대의 문화와 기술, 심지어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는 허구적 사실을 반영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이런 영화적 거울을 통해 우리는 현실에서 기술 진보, 특히 AI의 발전이 가져올 변화와 그 영향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상상의 경계를 넘어 실제로 새로운 기술 영역을 탐색하고, 이를 활용하는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인간의 근본적 가치와 기술의 발전을 조화롭게 결합하면서 공평하고 책임 있는 미래를 구축해야 한다. 영화는 우리에게 독특하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전달하지만, 현실에서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객관적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해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 세계에서 생성 AI의 방향성은 우리의 공동체적 선택으로 결정될 것이다. 이런 결정은 확고한 윤리적 기준을 바탕으로 하며,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과 시너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지금 수용하는 선택, 구축하는 보호 장치, 추구하는 비전이 다음 세대를 위한 생성 AI의 유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김한성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고문

[이슈&인사이트] 교권 정상화, 대증요법으론 안된다

지난 7월 18일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교권과 교사 인권의 실태와 문제점이 크게 부각됐다. 하나 혹은 많아야 둘 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비뚤어진 사랑이 교사에 대한 갑질과 무고에까지 이르렀고, 학생 인권을 강조하다 보니 반대로 교권이 무너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교사들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건수가 2014~2017년까지는 매년 한자리 수를 넘지 않았으나 2018년에는 19명으로 늘더니 2019년 17명, 2020년 19명, 그리고 2021년에는 25명에 달했다. 올해 들어서도 8월까지 14명의 교사가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통해 생을 마감했다. 지난 10년간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의 수가 144명에 이른다고 하니 평생을 가르치는 것을 업(業)으로 생각하고 교사의 길에 접어든 사람들이 오죽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학생들의 폭력행위로 인한 모멸감, 교사로서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려한 행위에 대한 학부모의 갑질, 업무 과중과 교직에 대한 회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고인의 연령대는 20~40대가 41.7%이고, 특히 초등학교 교사가 54.2%로 다수를 차지한 점을 미뤄볼 때 어린 학생들에 의한 교권 혹은 교사 인권 침해와 학부모의 과도한 대응, 이른바 갑질이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 그런데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등 정부의 관련 부처들이 내놓은 대책은 (가칭)교육공동체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조례 개선, 아동학대 관련법 집행 관행 개선, 교사의 마음건강 특별 대책 추진 등 일종의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여전히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 대응, 악성민원 대처, 교권보호 배상책임보험 도입 등 교사들이 요구하는 대책은 내놓지 못한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교원평가제 폐지, 특히 교사들의 정서를 해치는 서술형 평가항목의 폐지 등을 제시하긴 했지만 교원평가에 대한 필요성도 있는 만큼 그렇게 쉽게 시행할 문제는 아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엔 학생들의 인권이 무시됐다. 일부 탐욕스런 교사도 있었고, 자신의 권한을 악용해 학부모들로부터 금품을 뜯어내는 부도덕한 교사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극소수였다. 학생인권 조례는 극소수 교사들의 권한 남용이나 부도덕함을 전체 교사의 문제로 확대해 학생과 교사를 동등한 개체로 인식하게 만들었고,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과 부모들의 갑질을 유발한다. 어렸을 때부터 수행평가 관리를 철저히 해 대학입시에서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입장에 서려는 욕심에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나무라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교사를 무고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그것이 오늘날 교사 인권과 교권을 무너뜨리면서 수많은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불러온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가슴 아픈 현실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사랑과 존경에 바탕을 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계약에 따라 서로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대등한 관계로 인식하면서 비롯됐다. 인간으로서 평등하지만, 동시에 스승과 제자 관계에서의 존경과 사랑은 병행돼야 하는 데 후자는 빠지고 과도한 ‘평등’만 남았다. 거기에 대학입시를 위한 부모의 과욕이 거짓말이나 자기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로 나타나 무고나 갑질이 벌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 해결책은 교권의 남용과 악용을 감시할 수 있는 체제를 확보함과 동시에 존경과 사랑에 바탕을 둔 사제관계의 회복에 있다.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도 기본적 인성과 도덕성의 회복, 그리고 그에 바탕을 둔 사제관계의 재정립 없이는 교원사회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무엇이든 빠르게 변해가는 한국 사회에서 교사들의 인권과 교권을 위한 투쟁도 금새 잊혀져 가는 모양새다. 지금의 노력이 흐지부지되면 앞으로는 더 많은 교권침해와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이어질 것이고, 청소년들의 잔혹한 범죄도 늘어날 것이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학생들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할 가능성은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은 궁극적으로 부모를 학대하는 자식을 만드는 것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중국경제, 최대 위협요인은 저출산

최근 중국 경제가 위기라는 소식이 국내외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그 근거로 중국 경제의 25% 이상 차지하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서다, 비구이위안 등 대형 부동산개발기업이 채무불이행에 빠진 것을 들고 있다. 그 외에도 10여 년간 지속된 지방정부 부채, 그림자금융 등의 불안 요인도 중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누적 기준 2위 투자국인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불안정은 곧바로 한국 경제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우려와 달리 중국 정부는 부동산이나 지방정부 부채, 그림자금융 등을 중국 경제의 근본적인 불안 요인으로 보고 있지 않다. 그러면 중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무엇을 가장 위협적인 요인으로 간주할까. 물론 대외적으로 미중 패권전쟁으로 인한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통제는 중국 경제성장에 큰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반도체 통제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중국의 출산율 저하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신생아 수는 2016년 1786만명이었으나 2021년엔 1062만명으로 줄었다. 불과 5년 사이에 신생아 수가 724만명이 줄어든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가임여성 한 명당 평균 출산자 수는 1.09명으로 일본(1.26명)보다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정부는 저출산의 원인을 폭등한 부동산 가격과 양육비 부담으로 간주하였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청년층의 혼인율을 급격히 떨어뜨렸고, 양육비 부담은 결혼 후에도 자녀 출산을 어렵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폭리를 취하던 부동산개발회사의 자금 조달을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중국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고 헝다, 비구이위안 등 대형 부동산개발회사가 채무불이행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소폭의 금리 인하, 지준율 인하 등 급한 불을 끄는 수준에서 부동산 시장에 개입할 뿐 대대적인 부양책을 쓰지 않았다. 과도한 부동산 부양책은 결국 주택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혼인율을 떨어뜨리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가구당 세 자녀 허용에도 불구하고 양육비 부담은 중국의 출산율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있다. 유치원비 부담부터 초등, 중등, 고등학교까지 사교육비 부담이 매우 크다. 대체로 부부가 맞벌이하지만 한 사람의 수입은 자녀 양육비로 투입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양육비를 낮추고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결국 사교육 금지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출산율이 급락하던 일본은 사교육을 금지하면서 출산율이 다소 회복하고 있는 것을 벤치마킹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사교육 금지가 오히려 양육비 부담을 상승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학원 대신 과외로 몰리면서 사교육비 부담은 대폭 상승했다. 1대1 과외의 경우 시간당 300위안(약 5만5000원) 정도로 한국 과외비의 2배나 된다.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1/3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 부담은 세 배에 달한다. 최근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통제가 강화하면서 동시에 중국의 자체 반도체 칩과 장비 개발도 빨라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반도체 통제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미국의 대중국 통제가 다소 중국을 약화하더라도 결정적으로 약화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중국이 급락하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중국은 스스로 저성장의 늪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아직은 중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정도로 성장률이 낮지는 않다. 그러나 저출산 문제는 장기적으로 중국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협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 경제가 미국을 추월한 후 다시 미국에 추월당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구기보 숭실대학교 글로벌통상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문화로 자리잡은 탕후루 열풍

요즘 탕후루(tanghulu)의 인기가 뜨겁다. 서울 명동 등 번화가의 탕후루 판매대 마다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 모습에서 탕후루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탕후루는 과일을 꼬치에 꿰어 뒤집은 상태로 설탕이나 물엿을 덧씌워 겉은 바삭하고 달콤하며, 속은 상큼한 과일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중국 전통 길거리 간식으로 주로 겨울철에 많이 즐겨 먹은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기원했지만 최근 우리나라에서 MZ세대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최근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탕후루는 냉동·간편조리식품 부문에서 10대가 가장 많이 검색한 식품에 꼽혔을 정도다. 실제로 최근 국내 유명 탕후루 점포는 약 5개월 만에 600%의 성장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의학적으로 볼 때 탕후루의 단맛은 혈당을 높이고 도파민을 분비해 계속 먹고 싶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이렇듯 건강상 우려가 있는 간식인데도, 너도나도 아삭거리며 탕후루를 즐기는 모습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서 탕후루 열풍이 불고 있다. 특히 새로운 문화에 빠르게 반응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탕후루 챌린지 등을 통해 하나의 놀이문화처럼 유행하고 있다. 탕후루 이전에도 눈꽃빙수, 벌집아이스크림, 대만카스테라, 슈니발렌 처럼 소비자들의 입맛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간식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간식들이 인기를 타는 걸까? 첫째, 맛의 특별성이다.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 달콤한 맛, 매운맛, 향신료의 풍부한 맛 등 다양한 맛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존의 음식에서 새로운 식재료를 더하거나 독특한 조합을 시도해 색다른 맛과 경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양성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셋째는 소셜 미디어의 입소문이다. 요즘은 맛의 유행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음식사진과 리뷰가 쉽게 공유되는 플랫폼을 통해 식품의 외관이나 디자인이 매력적이고 독특해 사람들이 이를 시도하고, 이것이 자주 언급되고 홍보되면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시도하게 되면서 유행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유행이 유행을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특정한 문화, 패션, 행동, 아이디어 등이 사회에서 널리 퍼지며 그 자체로 인기를 끌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줘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 이는 주로 대중 문화와 연관이 있으며, 특정한 컨셉트나 아이디어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퍼지면, 그것이 유행이 돼 다른 사람들이 따라하게 된다. 다수의 세상 사람들은 주변에서 특정 아이디어나 행동을 받아들이고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면, 그것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유행이 형성된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은 새로운 경험과 트렌드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혁신적이고 흥미로운 것 들은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것이 유행을 만든다. 유행은 일반적으로 대중매체, 소셜미디어, 연예인, 예술가, 디자이너 등에 의해 시작되거나 확산된다.영향력 있는 인물이나 매체가 새로운 아이디어나 스타일을 제안하면, 그것이 사회적으로 수용되고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유행이 된다. 나아가 유행 현상은 문화적인 다양성과 사회적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에는 기술의 진보와 함께 유행이 더욱 빠르게 전파되고 변화하는 경향도 보인다. ‘유행이 유행을 만든다‘는 말은 다양한 측면에서 요소들의 조합과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며, 이는 소비자들의 욕구, 문화적 트렌드, 매체의 영향 등이 결합돼 특정한 것이 대중적으로 퍼지고 인기를 끌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유행은 우리 사회를 비추는 다양한 요소들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열풍을 일으켰던 간식들처럼, 탕후루 역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변화와 혁신을 통해 계속해서 우리사회에 머물며 어떤 유행과 트렌드를 만들어 낼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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