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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AI와 칸트 철학의 융합: 과학 혁신에서 윤리적 책임까지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2024년에 선정된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은 갑작스런 벼락처럼 인공지능(AI)이 번뜩였다. 제프리 힌튼과 존 홉필드는 신경망에 대한 연구로 물리학 분야에서 데이비드 베이커, 존 점퍼, 데미스 하사비스는 AI를 활용한 단백질 설계 및 구조 예측으로 화학 분야에서 수상했다. 이러한 성과는 인공지능, 특히 생성형 인공지능(GenAI)이 과거에는 도전조차 엄두를 못 내었던 난제들을 거침없이 해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AI가 주로 자동화와 최적화에 관련된 보조적인 도구로 인식되었지만, 최근에 보여준 놀라운 성과를 보면, AI가 근본적인 과학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새로운 도구임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AlphaFold2 모델은 50년간 풀리지 않았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하여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혁신적인 도약을 이루었다. 이 기술로 약물 설계, 환경문제 해결, 신소재 개발 등의 연구를 가속화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신경망에 대한 연구는 패턴 인식 및 복잡한 문제를 인간의 인지과정을 흉내된 자율적인 시스템으로 해결 가능케 하면서 오늘날의 기계 학습 분야의 발전을 견인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적인 AI의 모습은 단순한 자동화 도구로 이해하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다차원적인 관점에서 AI의 잠재력을 이해하고 동시에 AI를 바라보는 태도 및 활용하는 방식을 재정립해야 하는 필요성을 높인다. 먼저 인간과의 협력에 있어서 AI를 인간의 노력을 대체하는 도구라기 보다는 인간의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증대시키는 협력자가 되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AI가 인간과 함께 새로운 단백질 분자를 설계함으로써 의료 및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고 있다. AI는 기존의 과학 영역을 넘어 학문 간 가교 역할을 하며, 생물학, 물리학, 화학 등의 융합 등 학제 간 통합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촉진하고 있다. 이는 다양한 과학 및 기술 분야 간의 더욱 긴밀한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또한 AI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윤리적 도전 및 이에 대한 통제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제프리 힌튼이 경고한 바와 같이, AI가 인간보다 더 지능적으로 발전할 때 그 통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으며, 이를 관리할 새로운 윤리적 틀이 시급하다. 이제 AI는 우리 인간의 작업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난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인간의 접근방식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AI를 앞에 두고, “이것을 해 줘"라고 말한다면 AI가 귀담아 들을 지 의문이다. 이제는 AI 개발과 응용이 더욱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며, 목적 지향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부문도 예외가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언어모델로서 AI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을 이해함으로써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을 넘어, 인간의 사고, 감정, 사회적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도구로서 의미의 생성 및 해석 등 복잡한 기능이 작동할 수 있다는 잠재성을 갖는다. 이에 가능한 실험적인 접근으로 칸트의 철학적 틀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이성으로 추론하고 윤리적 판단을 하는 숨은 능력을 일깨워 볼 수 있다. 인류가 축적한 높은 수준의 사고 체계를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부문에 적용해 본다. 이를 통하여 AI가 합리성, 윤리성, 창의성을 균형 있게 발전하고, 사회에 유익하고 책임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도구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 본다. 즉, 순수이성 비판은 AI가 인식의 한계를 인지하고 합리적인 구조 내에서 작동하도록 하고, 실천이성 비판은 AI의 의사결정이 보편적 도덕 원칙을 따르도록 하며, 판단력 비판은 창의적 협업과 목적성을 촉진한다. 구체적으로,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은 인간 지식의 한계와 조건을 탐구하며, AI의 학습과 '추론' 과정이 어떻게 아키텍처와 학습 데이터에 의해 형성되는지를 고찰한다. AI 모델의 내부 구조를 이해하고, 그 구조가 출력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함으로써 설계된 입력(프롬프트)이 AI의 고유 구조와 일치하도록 한다. 실천이성 비판은 윤리적 행동을 위한 보편적 규범을 강조한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이를 적용할 때, AI의 출력이 윤리적 원칙을 준수하도록 한다. 예를 들어, 의료나 법률과 같은 중요한 분야에서 프롬프트는 공정성, 자율성 존중, 해악 방지를 포함한 윤리적 원칙을 반영한다. 마지막으로 판단력 비판은 미적 판단과 인간 경험의 목적성을 다루는데, AI가 단순한 작업 도구가 아닌 창의적 협력자로서 작용하도록 프롬프트를 설계한다. 그 결과로 창의적 탐색을 촉진하고, 과학적 또는 예술적 발견에 있어 AI가 인간 연구자들과 협력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칸트의 세가지 비판을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적용하는 것은 AI 개발과 활용이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며, 목적 지향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적 틀에 기반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은 단순한 기술적 작업이 아닌, 인간의 이성, 도덕, 그리고 창의성을 반영한 지적 도전이 될 것이다. 칸트의 철학을 내재화함으로써 AI는 효율성의 도구를 넘어 책임 있고 창의적인 인류 발전의 동반자로 자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한성

[EE칼럼] 첨단산업, 기술개발 통해 돌파하자

세계 각국이 무역 장벽을 세우고 있음에도 중국 자동차 수출이 늘어나고 있는 배경에는 공급망 파워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공급망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풍부한 핵심광물을 바탕으로 배터리 가공 및 생산에 이르는 전 과정을 장악하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 2분기(4~6월) 매출액 기준으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10위 내 중국 업체가 6개다. CATL(1위. 31.6%), BYD(3위.11.9%) 등 중국 업체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양극재.음극재 등 배터리 소재 출하량도 90% 안팎에 이른다. 첨단산업의 핵심인 전기차와 배터리의 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국내 주요 배터리 업체는 공장 가동률이 역대 최저인 50~60%대로 급락하는 등 고초를 겪고 있다. 여기에 최근 전기차 대형 화재라는 약재까지 터졌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기술개발을 통해 높은 수준의 제품이 만들어져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특허 정보조사 업체 WIPS에 따르면 LG엔솔은 한국과 미국, 유럽, 중국, 일본 등 5개국에서 BMS 특허 등록. 출원 건수 1위를 기록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총 5475개의 특허를 내 한.중.일 배터리 상위 10개 기업의 관련 특허 1만 3500개의 40%를 차지했다. SK온은 LPF(리튬인산철), 각형, 원통형 등 배터리 폼팩터 다변화 노력을 하고 있다. SK온이 내 놓은 "윈터프로 LPF 배터리“는 보통 LPF 배터리의 경우 일반적으로 영하 20도 수준 저온에서 주행거리가 절반 이상 급감하는데, 이 제품은 에너지 밀도를 19% 높이고도 저온에서 충전.방전 용량을 기존보다 각각 16%, 10% 늘렸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은 이차전지용 동박(銅薄)이 중국에서 공급 과잉이 이어지자 기술력을 통해 동박의 원재료로 쓰이는 구리 생산 원가를 낮추는 기술을 확보했다. 동박은 구리를 얇게 펴는 작업을 통해 2차전지의 음극집전체로 전기화학 반응에 의해 발생하는 전자를 모으거나, 전기화학 반응에 필요한 전자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고려아연은 아연과 연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과 폐전자제품의 인쇄회로 기판 등을 재활용해 구리를 생산하고 있다. 구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는 좋은 특성을 보유한 산업용 금속이면서, 대체가 어려운 핵심 소재이다. 구리의 특성은 전력에 대한 전도율이 좋으며, 열을 매우 잘 전달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가공이 쉽고 잘 늘어난다. 또한 쉽게 부식되지 않고 화학물질에 대한 내성이 강하다. 그래서 대체가 매우 어렵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 따르면 9월 29일 구리 가격이 미 연준의 금리 인하 발표 및 중국의 수요 증가로 두달만에 최고가(9,405달러/톤)를 기록했다. 고려아연은 온산제련소 내 구리 생산 설비 증설을 2025년 내 완료하고, 2028년까지 생산량을 연간 15만톤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글로벌 특수강 기업 세아베스틸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해상풍력 특수강 시장에 뛰어 들었다. 해상풍력 발전기에 사용되는 특수강 소재는 진입 장벽이 높고 범용 제품 대비 수익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친환경에너지인 해상풍력은 발전기가 핵심이다. 세아베스틸은 해상풍력 발전기에 사용되는 특수강 파스너(볼트, 너트)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세아베스틸은 2011년부터 지멘스에 풍력 터빈용 기어박스의 특수강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2018년 핀란드 풍력발전 기어 박스 회사와 협업해 2020년부터 GE에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등 해상풍력 특수강 소재 레퍼런스를 쌓아 왔다. 세아베스틸은 내년까지 전체 특수강 수출의 10%를 해상 풍력향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친환경에너지 등 첨단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다 일시적 수요 정체라는 암초를 만났다. 하지만 탄소중립 등 각국의 정책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전기차 전환과 AI 등 반도체 시장, 친환경에너지 산업이 대세임에는 확고하다. 따라서 전기차, 배터리, 양극재. 음극재, 동박 등 소재, 부품까지 배터리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국내 업체들은 최근 부진한 업황을 버티고 장기 로드맵을 준비해야 할 계획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시장을 주도할 기술개발에 매진해야 한다. 정부는 전기차, 배터리, 친환경에너지 등 첨단산업의 기술개발에 필요한 연구개발(R&D) 예산 지원을 더 확대해야 한다. 강천구

[데스크 칼럼] ‘첫 노벨문학상’, 황석영이 아니라 한강인 이유

“왜 황석영이 아니고 한강이란 말인가?" 지난 10일 스웨덴 한림원의 2024년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국내 일각에서 나오는 반응이다. 황석영도 전쟁과 분단, 군사 독재와 압축 성장, 민주화 운동을 정면으로 다뤄 온 국내 대표 소설가다. 비영어권이란 한계만 없었다면 진즉에 노벨문학상을 타고도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영어권, 백인, 노인, 남성에게 치중되던 노벨문학상이 갑자기 왜 '변방' 한국의 젊은 여성 소설가에게 꽂혔단 말인가? 다름 아닌 '혁신'에 주목했다. 실제 스웨덴 한림원은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 문학평론가들도 비슷한 분석이다. 김명인 평론가는 '황석영이 아니라 한강'인 이유에 대해 “(한강 등 현재 주류 여성작가들은) 오래도록 민족 민중 계급 등으로 표상되어온 한국 문학의 고질적 남근주의, 가부장주의에 대한 집단적 반란"이라며 “이러한 문학적 위상을 귀신같이 알아채서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고 평가했다. 한마디로 한강은 '혁신적 글쓰기', 즉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기존의 문법을 깬 새로운 실험과 도전에 나서 전세계의 인정을 받았다. 오늘날 한국에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은 10여년 새 '잘 나가는' 국가였다. 경제적으로 전세계에서 중진국 함정을 극복한 최초의 사례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벗어나 '한강의 기적'으로 부자가 된 유일한 나라다. 군사독재 청산 등 민주주의 발전까지 쟁취했다.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음악, 웹툰, 드라마, 음식까지 전세계적 유행이다. 1980년대 G2 자리를 노리던 일본을 방불케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구조적 위기다. 수출로 먹고 살아 온 경제가 단순 싸이클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직면했다. 기후 변화와 4차 산업 혁명, 미국·중국간 패권 경쟁 등 국제 질서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는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리쇼어링(제조업 본국 회귀) 속에서 송두리째 흔들린다. 전기자동차·배터리는 캐즘(일시적 수요 지체)과 값싼 중국산에 휩쓸리고 있다. 인공지능(AI)·로봇 등 차세대 산업기술도 주요 국가들에게 뒤처졌다. 선박·철강·화학 등 제조업이 '샌드위치' 신세가 된 지는 오래다.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변신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동안 앞선 나라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전력 질주해서 성공을 거뒀다. 막상 선두에 서게 되니 길을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사회적 지속가능성마저 의구심이 생기고 있다. 전세계 최저 출산율로 장차 경제 성장은커녕 국방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인구 고령화와 빈부 격차, 마약·사기 등 범죄, 사회적 갈등도 심각하다. 기후 위기 대응에서 뒤처져 '기후악당 국가'로 전락했다. 칭송받던 민주주의도 언론 자유 후퇴·제왕적 대통령제 등으로 “독재화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를 극복할 방향타를 알려준다. 그동안 한국 경쟁력의 원천이 된 '들들볶는 경쟁 사회'를 혁신해야 한다. 한 단계 진화시켜 대안을 내놔야 한다. 생산성을 높이되 자유와 평등, 공정과 경쟁간의 애매한 간극을 메울 수 있는 혁신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야 한다. 누구도 가지 못한 길, 한 발씩 내딛어야 살아 남는다.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EE칼럼] 원자력을 거부하는 친구에게

보고싶은 친구여, 오랜만에 원자력에 대해 이렇게 글을 적어보네. 7~8년 전, 친구가 나로서는 수긍하기 어려운 논리를 펴며 원자력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출했을 때 난 상당히 놀랐었지. 그때 나는 시간이 지나면 원자력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리라고 생각했어.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원자력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크게 변하면서 우리가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한때 탈원전 정책의 중심지였던 유럽에서도 이제 원자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어. 많은 국가들이 재생에너지만으로도 탄소 중립을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었지만, 수력이 풍부하거나 원자력을 함께 사용하지 않는 나라들은 지금 탄소 중립 정책 추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 에너지 정책에서 공급 안정성, 환경성, 가격 적정성을 균형있게 고려해야 한다는 상식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생각해. 특히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원자력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어. 이 변화의 중심에는 EU의 2022년 그린 택소노미 결정이 있어. 원자력이 지속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인정받으며 기후변화 대응에서의 역할이 공식화된 거지. 2023년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12개국이 원자력 동맹을 결성하기도 했다네.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점유율을 50% 수준으로 줄이려던 정책을 폐기하고 6기의 신규 원전(8기 추가 검토)을 건설하기로 했고, 영국은 6.4GW인 원전 설비를 2050년까지 24GW로 늘리겠다고 발표했어. 이밖에 체코, 헝가리, 폴란드, 스웨덴, 루마니아, 네덜란드,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핀란드, 불가리아 등이 신규 원전 건설을 계획하고 있지. 이탈리아, 스위스, 벨기에와 같은 대표적 탈원전 국가들까지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규 원전 도입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해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핀란드에서 최종처분시설을 완공하는 단계일 뿐만 아니라 스웨덴에서도 건설 중이고, 프랑스, 스위스 등이 뒤따르고 있어. 셰일가스와 태양광, 풍력 자원이 모두 풍부한 미국의 최근 동향도 주목할 만하다네. 캘리포니아 디아블로 캐년 원전은 2025년 폐쇄 예정이었지만, 최근 20년 연장 운전이 결정되었어. 미시간주의 팰리세이드 원전도 2022년 폐쇄되었지만, 2025년 재가동할 계획을 세우고 있지. 그뿐만 아니라 2019년 폐쇄되었던 스리마일아일랜드(TMI) 1호기도 마이크로소프트사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을 위해 재가동을 추진 중이야. TMI 원전은 1979년 2호기 사고로 많은 사람에게 두려움을 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만큼 원자력 발전이 미국 에너지 정책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지. 작년 12월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8차 당사국총회(COP28)에서는 22여개국이 원자력 발전을 2050년까지 3배로 확대하겠다는 선언했어. 또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COP28의 Global Stocktake(이행점검) 문서를 통해 원자력이 처음으로 기후변화 대응의 주요 해결책으로 공식 인정되었어. 원자력이 효율적인 저탄소 에너지원임에도 그동안 정치적 이유와 반대 세력의 영향력 때문에 유엔기후변화협약 체계에서 무시되어 왔지만, 이제는 그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이지. 지난 3월 탈원전 국가로 분류되던 벨기에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와 함께 38개국이 참여한 원자력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봐.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산업 인프라와 경쟁력을 자랑하며, 이미 수출까지 하는 나라이네. 게다가 유럽과 달리 에너지 시스템이 고립되어 있으며,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 소비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원자력이 우리 경제의 중요한 축을 차지해. 원자력은 가장 경제적이고 안정적인 준 국산 저탄소 에너지로서 국가 경제를 견인하고,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 완화에 기여하고 있지.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된다면, 우리 원자력이 UAE와 체코에 이어 여러 유럽 국가들과 아시아는 물론 미국에까지 진출하여 국가의 위상과 경제력을 높이면서, 국민에게는 좋은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네. 친구여, 외부 세계의 변화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네. 이제 다시 한번 원자력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우리보다 에너지 환경이 유리한 많은 국가들이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일 거야. 에너지 문제는 너무도 복잡하여 더 깊게 공부하고 더 많이 논의하면서 생각을 정리해야 할 것 같아. 에너지와 원자력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눌 날을 기다리겠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자의 눈] 우리나라가 기후악당이 아니라고 말할 용기

지난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국정감사가 시작부터 파행되는 일이 있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이 노트북에 붙인 '기후파괴범 윤석열' 스티커를 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떼라고 항의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은 정 의원의 문구를 두고 “비과학적이고 사실적이지도 않다. 기후변화 문제의 인과관계를 정확히 안다면 기후파괴범 바이든, 시진핑 이렇게 했으면 용납하겠다"며 우리나라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만 배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 물론 여당 의원이니 현 정부를 비호해준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기후환경 전문가 출신이 하기엔 이 바닥에선 신성모독 수준의 말이다. 다들 알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후대응을 재촉하는 데 열중하느라 쉬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기후악당으로 보다 보면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에 악영향을 주는 무리한 정책 방향을 요구하는 데 빠질 수 있다. 환경부도 기후악당 프레임에 넘어간 모습이다. 최근 환경부가 산업통상자원부에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의 2030년 신재생에너지 목표 발전량 비중 21.6%를 상향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는 산업부가 환경부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환경단체는 이를 두고 산업부가 환경부 요청을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그건 묵살이 아니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다. 마라톤 코치가 마라톤을 2시간 이내로 완주하라고 요청한 걸 선수가 못 받아들이면 그게 묵살인가. 환경부는 11차 전기본 실무안 기후변화영향평가에서 “태양광 수력 발전 등 국내 신재생에너지 잠재량을 적극 활용할 경우 신재생에너지 비율 상향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수력 발전은 조그마한 소수력 발전을 말하는 건지 왜 넣었는지 모르겠지만 2030년까지 신규 수력발전은 없다 봐야 한다. 결국, 태양광을 우겨넣어 2030년까지 21.6% 이상을 채우라는 건데 이는 지금도 위태로운 전력수급 시스템을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10%인 지금도 봄이나 가을에 한낮의 태양광 발전량이 순간 전체의 30% 이상까지 치솟는다. 만약 21.6%면 태양광 발전량이 한낮에 순간 전체 발전량의 50% 이상까지 오를 수도 있다. 전력은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도 전력망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태양광이 늘면 화력 발전을 줄일 수 있는 게 아니라 경직적인 원자력 발전을 미리 꺼놔야 한다. 시간 단위로 요동치는 태양광 발전량을 보완하는 건 유연한 화력 발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전을 줄이면 탄소배출량은 늘어난다. 풍력 발전에는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 풍력은 배정된 2030년 목표 할당치를 채우기도 버겁다. 환경부는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을 20%를 넘긴 일본 사례를 들었다. 하지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수력 발전량이 10배 이상 많은 나라다. 한 기상 전문가의 말도 떠오른다. 일본은 서쪽과 동쪽으로 긴 나라로 나라 전체로 보면 해가 길게 떠 있어 우리나라보다 태양광을 하기 유리하다 말했다. 우리나라는 전력시스템 개편이나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 등 우리 사정에 맞춰서 태양광이 늘어나야 한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 때 급하게 태양광을 늘리느라 생긴 부작용이 아직 치유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는 허용 수치를 넘어 태양광을 받아들였고 지난 2021년부터 태양광 보급량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기후악당이라 자책하고 급해지는 건 오히려 독이다. 2030년은 최종 목표가 아니라 중간 과정일 뿐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기자의눈] ‘개굴’거리는 대한상의…지배구조 개혁이 두려운가

'우물 안 개구리(井底之蛙)'라는 말이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규제강화 법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 보고서를 보면, 이 고사성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좁은 우물 안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개구리처럼, 대한상공회의소는 변화하는 환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회원사, 아니 어쩌면 '회원사의 오너'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하는 모습이 역력할 뿐, 글로벌 시장의 변화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새가 꼭 개구리같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기업지배구조 규제 강화가 “기업경영 근간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닐 수 없다. 대한상의는 이번 입장을 '교각살우(矯角殺牛)'라는 사자성어로 대변했다. 하지만 이것 말고 대한상의에 들려주고 싶은 사자성어와 속담, 우화가 한두개가 아니다. 먼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세계 경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며,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그 변화의 중심에 있다.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의 태도는 마치 제자리에 멈춰 서서 이끼만 키우겠다는 것과 같다. 이러한 구태의연한 태도로는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이솝 우화도 떠오른다.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태도는 마치 닿지 않는 포도를 보고 '어차피 신 포도일 거야'라며 자기위안을 하는 여우와 비슷하다. 개구리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결국 '루저'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제도"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도 적용할 수 있겠다.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은 당장은 크게 체감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향은 분명해질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혁신을 이루는 법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도 들려주고 싶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실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대한상공회의소는 규제 강화를 반대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여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도 있다. 특히 지배구조 규제는 '폭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장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장기적으로 한국 기업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러한 장기적 안목을 제시해야 하는 기관이 아닐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쓰는 사자성어 중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떠오른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당장은 쓴 약과 같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기업과 경제 전체에 달콤한 결실을 안겨줄 것이다. 잠시의 인내로 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산업계가 겪었던 고난과 시련을 생각한다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성어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기업지배구조 개선 역시 당장은 불가능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안 되는 게 어디있나. “이봐, 해봤어"라는 故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말이 떠오른다. 한국 기업들을 대표하는 대한상의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이를 거부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 한국 기업들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자세일 것이다. '교각살우'로 '소'를 들어 비유한 대한상의에게 이왕이면 '우보만리(牛步萬里)'가 더 좋을 거 같다는 제안을 해본다. 만리 길을 위한 한 걸음을 걷자. 강현창 기자 khc@ekn.kr

[이슈&인사이트]체코원전 수주의 정치적 왜곡을 경계한다

체코가 추가로 건설할 예정인 두코바니 원전 5호기의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이 선정됐다. 한국 원전의 우수성이 유럽에서 인정된 것이라 향후 원전 수출 가능성도 크게 높아진 것이라 경사 중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체코 원전 수주를 둘러싸고 국내에서는 괴담이 난무하고 있다. 30조 원은 과장된 것이고 실제로는 10조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든지, 1GW급 APR1000 모델은 처음 시도하는 기술이라 위험성이 크고 CDF(노심손상빈도)와 LRF(대량방출빈도) 면에서 다른 나라 최신 모델에 뒤처진다는 주장 등이 그것이다. 또 금융조달의 측면에서 한국이 25억 달러를 대출해 주고, 47억 달러를 자본 투자했다는 UAE 바라카 원전 수출 사례를 들어 체코 원전도 결국 우리 돈을 들여 짓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원전 수출은 투명성이 부족하고 공기가 지연되기 십상이어서 당초보다 비용이 크게 초과되는 경우가 많아 체코 원전 사업도 위험하다는 식의 주장이 일부 언론이나 유튜브 채널, 심지어 국회에서 민주당 의원들에 의해서도 제기되고 있다. 체코 원전 수주에 대해 부정적 주장에 대해 필자 포함, 4명이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에교협(에너지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이 지난 10월 7일, 과학적 전문성과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밝히기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3명의 발제자 중 중앙대 정동욱 교수가 “체코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의 의의와 향후 전략"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하도 말이 안되는 주장이 많으니 이에 대해 FAQ까지 만들어 사실관계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의 의미, 그리고 국익 극대화를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이하는 정 교수의 발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우선 건설비는 체코가 EU 회원국이어서 EU의 공정 조건에 따라 전액 체코 정부가 지원한다. 향후 추가건설 가능한 3기의 원전은 다양한 파이낸싱 모델이 있을 수 있어 그때 가서 협의해 결정하게 된다. 체코의 참여율 60% 보장은 사실과 다르다. 원전건설에 자국 기업의 참여를 원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우리도 고리원전 1호기를 처음 도입할 때 우리 기업의 참여를 요구했었다. 이번 두코바니 5호기 건설에 체코의 자국기업 참여 요구가 있었지만 60%는 계약조건에 포함되지 않았고, 체코기업의 참여가 가능한 부분도 국제입찰을 통해 공정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즉 외국 경쟁기업에 비해 체코의 기업이 더 우수한 기술과 더 나은 조건이어야만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덤핑 주장은 한마디로 무식의 소치다. 올해 착수한 신한울 3·4호기의 사업비는 1기당 5조7,500억 원이다. 두코바니 5호기의 사업비는 11조6,000억 원으로 거의 두 배의 가격에 수주한 것이다. 물가 상승과 해외 건설로 인한 공사비 상승 요인이 있으나 반대로 용량 감소로 인한 비용감소 요인도 있다. 바라카 원전 건설 당시에도 국내 건설비의 약 2배 정도로 계약한 것을 고려하면 결코 덤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웨스팅하우스의 지적재산권 주장도 사실관계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은 수출통제와 서브라이선스의 문제지 지재권의 문제가 아니다. 지재권은 이미 소멸된 지 오래다. 수출통제는 NSG(Nuclear Suppliers Group)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으로 웨스팅하우스의 제소는 미국법원에서 이미 기각됐다. 미 수출통제법에 의한 제한(10CFR810)은 미국인을 대상으로 적용되므로 체코와는 상관없다. 또 서브라이선스는 기술전수에 해당해 원전건설과 별도의 계약이 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체코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폄훼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사실관계를 모르거나 원전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정치적 목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APR1000 모델은 체코의 전력수요에 맞춤형으로 제시한 모델로 국내에서도 아직 시공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위험성이 크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국내 컨설턴트들도 알만한 위험성을 이미 두코바니 원전 4기와 테믈린 2기를 운용하고 있는 체코가 모를 리 없다. 공기가 늘어질 가능성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원전건설은 공기 준수, 효율성, 저렴한 가격, 안전성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체코는 물론, 다른 원전 수입 예정 국가들도 모두 알고 있다. 안전성이나 공기 준수, 가격 등이 EU 회원국인 프랑스를 제치고 한국을 선정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는 체코의 발표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만 처음 시공하는 모델이니 국내에서 동일한 모델을 동시에 시공한다면 혹시 나타날 수 있는 기술적 어려움에 대응하고,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홍성걸

[EE칼럼] 전력시장 정상화 빠를수록 좋다

제주도를 대상으로 전력시장 제도개선을 위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시범사업에는 실시간시장, 예비력시장,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내년 말까지는 이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니 전력산업의 오래된 과제인 시장 정상화가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 같다. 지금 우리 전력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중 많은 부분이 비정상적인 전력시장에 원인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설비투자, 연료비용. 발전입지 선정과 송전망 확충, 재생에너지 적정수익, 전기요금 문제가 산적해 있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러한 문제의 많은 부분이 발생하기 않았거나 해결되었을 것이다. 우리 전력시장은 시작부터 시장기능이 제한된 상태였다. 당초 짧은 이행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이었던 전력시장은 20년 넘게 피일차일 미뤄져왔다. 아직도 비용기반시장(CBP)라는 이름 하에 비용평가, 보정계수라는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 시장가격은 본래 수요공급 이론에 따라 수익과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가변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료비의 경우 계약-도입-사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입선과 시차가 있다. 도입가격도 장기계약, 현물, 선물시장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처럼 국제유가의 등락이 커지면 비용의 변동도 커지게될 것이다. 비용평가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공급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매시장 가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소매요금 즉, 전기요금과의 연계성도 줄어들게 된다. 전기요금 정상화에 가격기능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다. 전력시장 개선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 2015년 이후에는 민간발전사의 비중이 커지고 민간석탄발전이 도입되면서 현물시장뿐 아니라 CfD와 같은 차액계약의 필요성도 대두되었다. 당시 전력거래소에서는 가격입찰, 계약시장 및 실시간시장 도입을 위해 관련 제도와 시스템 보완 등 시장개선 로드맵을 의욕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계획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으나, 아직도 실행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작년부터 제주도를 대상으로 전력시장 개선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제주에서의 시행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내년부터는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할 것으로 계획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어정쩡하게 운영되고 있는 '재생에너지인증서(REC) 시장', 수요자원(DR) 시장, '소규모전력중개시장'등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통합되거나 새롭게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시장을 기본으로하되 용량시장, 보조서비스시장을 별도로 운영하여 공급과 계통운영의 안정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에너지산업의 변화와 진화에 발맞추어 재생에너지, 분산에너지, 수요자원, 저장자원 등 친환경 신기술의 확대를 위한 규제시장의 정비도 필요하다. 이중 일부자원은 이미 경제성 확보가 가능하거나 경쟁적 시장에서도 차익거래(arbitrage)나 용량공급, A/S서비스 공급, 송배전 회피편익을 통해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앞으로 도입될 전력시장은 이러한 요인들을 적절히 담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관건은 전력시장이 자원의 기여도와 편익을 공평하고 적절히 반영해줄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레거시 전원에 초점이 맞추어진 전력시장 운영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재편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기존의 비용평가방식에서 실시간 가격입찰이라는 본래의 시장기능으로의 전환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시장은 시장참여자의 판단하에 투자와 수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전력시장의 선결 요건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전력시장 입찰도 시장가격 왜곡을 방지하고 재생에너지의 기여도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재생에너지의 특성과 과도한 수익 변동을 방지할 수 있는 보완책 마련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전력수급에서는 공급안정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피크시 공급지장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정 용량확보가 필수적이다. 시장참여자가 제공하는 용량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반영할 수 있도록 용량시장의 개선이 필요하다. 단순히 기존전원의 고정비용에 대한 최소한의 보전이 아니라 전원의 유형에 관계없이 보장용량(firm power)의 제공이 가능한 전력자원에 대해서는 용량입찰을 통해 용량비용 지불이 필요하다. 실제 지불액 수준은 약정용량에 대한 이행율에 따르면 될 것이다. 나아가 기존의 용량지불에서 탈피하여 미래 예상되는 적정 설비규모(adequacy)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용량시장의 개설도 필요하다. 미래시기에 대한 용량입찰을 통해 용량시장이 자연스럽게 수급계획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연자원시장도 다양한 수급자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더 넓혀야 한다. 대상자원을 태양광, 풍력과 ESS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DR, EE와 같은 수요자원은 물론 DER의 범주에 드는 신기술 분산자원의 참여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여야 한다. 양질의 집합자원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전력시장의 문을 더 열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전력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자원의 다양성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장기능의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분산자원의 활용성 확대와 에너지산업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창호

[EE칼럼] 우리가 원전 수출에 진심이어야 하는 이유

“모든 기준에서 한국이 제시한 조건이 우수했다." 지난 7월 17일,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가 두코바니 5·6호기 원전 건설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하며 한 말이다. 우리 원전의 경쟁력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멘트다. 이제 시작이다. 더 많은 나라가 우리 원전을 신뢰하고 선택하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 2030년까지 10기를 넘어 그 이상 원전 수출이 되도록, 우리의 진심을 다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첫째, 우리 원전산업 생태계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우리 원전산업은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었다. 그동안 우리 원전산업은 2~3년마다 이루어지는 국내 신규원전 건설에 초점을 맞춰 성장해왔다. 그러다보니, 지난 정부의 신규원전 건설취소와 중단이라는 단순 조치에도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탈원전 정책이 폐기된 이제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그런데 탈원전 정부가 다시 들어서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 국내 일감 증발에 대비하여, 해외에서 지속적이고 충분한 일감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전 수출이다. 앞으로 원전 수출은 원전 도입국과 건설하는데 10년, 운영하는데 60~80년, 해체하는데 10년 등 도합 100년의 관계를 만들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장기적이고 충분한 일감을 확보케 해, 국내 정치상황과 무관하게 우리 원전산업계를 지켜줄 버팀목이 될 것이다. 둘째, 국가 안보 강화를 위해서다. 원전 수출은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국가 안보와도 직결된다. 우리나라가 원전을 대폭 수출하여 동맹국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안정적 에너지 공급을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우리나라는 글로벌 원전 공급망에서 대체불가의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국가 안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대만의 반도체 기업으로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이 60%에 달하는 TSMC를 생각해보면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 회사가 문제를 겪을 경우 세계 경제에 미칠 치명적인 타격 때문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대만을 중국의 침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글로벌 원전 공급망에서 지위를 확고히 하면할수록 우리 안보도 그만큼 튼튼해질 것이다. 셋째, 후세대에 지적 유산을 남기기 위해서다. 필자가 유럽갈 때마다 느낀 점은 유럽 국가들은 그들 조상이 남겨준 유산을 바탕으로 관광산업을 일으켜 돈을 벌고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원전 수출도 단순히 현재의 경제적 이익을 넘어, 우리 후세대가 돈을 벌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유산을 남길 수 있다. 앞서 얘기했듯이, 원전 수출은 원전도입국과의 장기적 관계를 이끌어낸다. 그 기간 중 우리나라는 세계 곳곳의 우리 원전에 핵연료와 엔지니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일례로 우리나라가 2009년 원전을 수출한 UAE와의 협력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UAE 원전에 핵연료를 공급하고 있다. 또 UAE 현지 핵연료 공장 건설사업 입찰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다른 분야에서의 교류도 활발해질 것이다. 우리가 원전 수출을 많이 할수록, 우리 후손이 활용할 수 있는 지적 유산이 많아지는 것이다. 넷째, '홍익인간' 정신 구현을 위해서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은 우리나라의 비공식적 국시이자 정신적․사상적 기반이다. 이를 지금 상황에 맞춰 재해석해보면, 우리의 원전 기술을 이용해 세계 시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1년 펴낸 'World Energy Outlook'에 따르면, 세계 인구 중 약 13억명이 전기에 접근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이 수치가 다소 줄었겠지만, 여전히 엄청난 수의 인구가 전기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전기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은 재정적으로도 여의치 않다. 그렇기에 이들 나라에 값싸고 품질 좋은 우리 원전이 제격이다. 세계적 기술력과 경쟁력을 가진 지금이 '홍익인간' 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다. 문주현

[기자의 눈] 오명이 된 밸류업 지수

“밸류없, 밸류 다운 지수…" 최근 시장에서 한국거래소가 야심차게 내놓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표현하는 말이다. 지난달 24일 밸류업 지수가 공개된 이후 시장에서는 혹평을 내놓고, 거래소는 해명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기업가치 제고 종목인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 KT'가 빠지고 수익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SK하이닉스가 특례로 편입되면서 기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주환원에 소극적이었던 엔씨소프트, SM엔터, 두산밥캣도 편입됐다. 경영권 이슈나 인수·합병이 진행 중인 기업들은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고려할 여력이 제한적인데 포함된 것도 거래소의 시장 관심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요인이다. 증권가에서도 발 빠르게 '밸류업 지수 편입 부적합 명단'을 내놓았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는 증권사 중 처음으로 밸류업 지수 100개 종목 중 55개 종목에 대한 정성적 평가를 진행했고, 24개의 종목을 부적합하다고 봤다. 개별 지배구조 및 중장기 전략을 고려하지 못했고 실적이 일시적으로 양호했던 기업도 기술적으로 편입되는 부작용을 낳았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밸류업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종목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보고, 시장의 관심도 쏠리고 있다. B증권은 지난달 30일 '밸류업 미편입 금융주, 주가 하락은 기회'라는 리서치 보고서를 내고 밸류업 편입 실패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만큼 강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과 자본 비율을 개선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실제 KB금융은 9월 25일부터 10월 8일까지 14.04%나 상승하기도 했다. 시장 상황이 심각해지자, 거래소는 지수 공개 이틀 만인 지난달 26일 연내 밸류업 지수 구성 종목 조기 변경을 검토하기로 했다. 밸류업 지수 시장의 실망감, 지적에 무관심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 것이다. 일은 벌어졌고, 밸류업 지수에 대한 시장 의구심은 지속해서 나올 수 밖에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은 중장기적인 우리 증시의 목표다.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선 기업의 특성, 지배구조, 기업가치 제고 현황 등을 세세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밸류업 지수가 이름과 같이 평가 받는 날이 올 수 있길 바란다. 윤하늘 기자 yhn770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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