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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산림분야가 선도하는 대규모 온실가스 국외감축활동

우리나라는 파리협정6조에 맞춰 2030년 한해동안 최소 3750만톤의 온실가스 국외감축결과(ITMOs)를 국내로 이전해 달성해야 하는 도전적인 과제를 안고 있다. 본격적인 국외감축 활동을 위한 국제사회의 구체적인 규칙이 어느 정도 마련된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감축 대상지를 정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대규모 국외감축활동을 추진해 그 결과를 만들기 위해 매진해야 할 때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서는 기존의 CDM(청정개발체제) 사업과 유사한 소규모 프로젝트 단위의 활동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에는 CDM 사업의 결정적인 문제점인 충분한 양의 ITMOs 확보가 어렵다. 소규모 다수의 프로젝트 관리를 위한 상대국과의 협의는 물론 국내에서 이를 관리하는 데도 많은 행정비용 발생을 동반한다. 따라서 국외감축 목표 달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대규모 감축활동을 협력 상대국에서 추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산림분야는 국제사회에서 2030년까지 가장 비용효과적으로 대규모 온실가스 감축이 실제로 가능한 분야로 꼽힌다. 국가나 주단위로 대규모 감축활동을 추진할 수 있는 이른바 ‘REDD+ 바르샤바 메커니즘도’ 국가 간 합의로 이미 유엔 차원에서 마련돼 있다. 산림청은 얼마 전에 이 방법을 활용, 대규모 ITMOs를 확보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인 라오스의 퐁살리 주를 대상으로 양국 간의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마련을 위한 정부 간 워크숍을 라오스 수도 비엔티엔에서 개최했다. 앞으로 한 두 차례 워크숍 더 진행한 뒤 양국 간에 필요한 협정체결 등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2년마다 있을 유엔 보고절차(BTR) 주기를 감안하면 2026년에 첫 국외감축 활용결과를 유엔에 보고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섞인 전망도 해본다. 하지만 선례가 없는 새로운 도전이기에 몇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들도 있다. 첫째, 파리협정 제6조의 ITMOs는 그 사용목적이 국가 국외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활용을 비롯한 3가지 목적 중 하나로 특정돼야 하는 데 일단 사용목적이 특정되면 후에 다른 목적으로 전환이 어렵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 정부가 라오스에서 국가 온실가스 국외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ITMOs를 사용하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이를 전제로 계획이 추진돼야 한다. 만일 기업의 ESG 목적 달성을 위한 목적으로 ITMOs를 발행한다면 후에 국외감축목표로의 사용목적 전환이 어렵다. 둘째, 국외 감축활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민간부문의 경우 많은 개도국에서 추진되고 있는 자발적시장 메커니즘에 의한 크레딧 발행은 파리협정 제6조 체제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라오스의 경우 기존 자발적 시장메커니즘(VCM)을 활용해서 발행된 크레딧은 현 단계에서는 국가 인벤토리상의 상응조정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했다. 즉 우리 정부의 국외감축목표 달성 차원에서 국외감축활동에 관심이 있는 민간기업은 처음부터 정부와 함께 유엔에서 개발된 REDD+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물론 기업이 국가의 국외감축 목표가 아닌 ESG 등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자발적 시장메커니즘을 기업차원에서 계속 활용할 수는 있다. 셋째, REDD+ 메커니즘을 파리협정 제6조와 잘 연계해 활용해야 한다. 유엔의 REDD+ 메커니즘은 호스트 국가의 산림분야에서 온실가스 감축결과(MOs)를 크레딧 형태로 생산하는 방법이지, 이를 ITMOs로서 우리나라와 같은 사용국에 이전해 활용하는 방법까지 갖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기존의 REDD+ 메커니즘에 더해서 파리협정 제6조 (특히 제6조2항 협력적 접근법)에 따라서 이전 및 보고를 하기 위한 호스트 국가의 제도와 이행 역량을 강화하고, 양국간에 이를 전제로 한 협력 메커니즘 구축 등 추가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전략적 ODA 활용, 국내 전문가 양성 등도 필수적으로 고려돼야 한다. 라오스에서 추진될 산림분야의 국외감축 노력이 산림분야는 물론 에너지 등 다른 분야의 대규모 국외감축 노력에도 본보기가 되기를 바란다.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이슈&인사이트]‘순살자이

최근 신축아파트에 대한 부실시공 논란이 거세다. 설계도면에서 규정된 철근을 빼고 시공했다는 ‘순살자이’, 폭우 속에서 콘크리트를 타설했다는 ‘물갈비자이’, 비로 누수와 침수됐다는 ‘침수자이’와 ‘흐르지오’, 철근 다발이 외벽을 뚫고 나왔다는 ‘통뼈캐슬’ 등 웃픈 신조어가 난무한다. 이들 아파트는 모두 신축 중이거나 지어진 지 3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신축아파트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특히 ‘순살자이’의 사례는 시공과정에서 부실이 드러났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 상태로 입주가 진행된 후에 이런 사태가 빚어졌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2000년 이후 최근 몇 년 새 아파트분양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고환율과 고금리에 이은 우크라이나 전쟁발 원자재가격이 크게 뛰면서다. 특히 시멘트와 철근가격이 종전보다 50%이상 오르자 시공사들은 이미 계약한 공사단가로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급기야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시행사(조합 등)와의 분쟁이 분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자구책으로 시공사들은 공사원가를 낮추는 방법으로 손해를 보전하고자 철근을 빼돌리거나,콘크리트를 묽게 타설한 것이 이 같은 부실로 이어졌을 것이라는 얘기 마저 나돈다. 지난해 1월 시공 중이던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후 국토교통부는 공공공사에만 적용해 온 표준시방서의 민간공사까지 확대, 감리의 공사중지 명령 의무화로 감리 내실화, 국토안전관리원에 대해 현장점검과 지도권한 부여, 부실시공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 대응 등을 골자로 한 부실시공 근절방안을 내놨다. 그런데도 이를 비웃듯이 건설현장에서는 순살자이, 물갈비자이, 통뼈캐슬 등 부실시공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더구나 국토부가 GS건설의 시공 사업장 83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조사완료된 14곳 중 12곳에서 모두 48건의 안전문제 또는 시공불량이 지적되며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우리는 이미 삼풍백화점,성수대교에 이어 광주 화정 아이파크 등의 붕괴사고로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고책임자의 처벌과 반성, 부실시공 근절방안 발표를 되풀이해 왔다. 그러나 똑 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시공사,감리,주무관청 등의 현장관리 소홀이 1차적인 책임이지만 필자는 이 보다 더 근본적으로 낙후된 시공자 선정 및 수주 방식과 건설현장에 뿌리 박힌 비정상적인 하도급 문화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시공사는 공사를 따내기 위해 무조건 낮은 가격에 더 나은 조건으로 조합원들을 현혹하며 출혈수주에 나서고 공사를 따낸 뒤에는 낮은 단가의 공사대금을 맞추고 이익까지 만들어내기 위해 하도급 가격을 후려친다. 이렇게 해서 공사를 받은 하수급업체는 인건비를 낮추거나 철근 등 자재를 빼먹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공사를 하다보니 부실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니 제대로 된 공사가 이뤄질 수 없고 앞으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당국은 더 일이 커지기 전에 근본적인 ‘약방문’을 내야 한다. 바로 제값주고 제대로 공사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현재의 부실시공 근본문제가 시공사 선정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시공사 선정관행을 확 뜯어고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민간시행 공동주택도 정부가 표준공사비를 공시하고 적정공금액으로 입찰을 유도할 것을 제안한다. 이 표준공사비를 기준으로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한 시공사에 대해서는 이에 대한 보증과 향후 책임을 부담하도록 하는 서류 및 검토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해 적정한 단가로 입찰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공동주택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하도급을 금지해 시공사가 책임시공을 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특수한 기술이 필요하거나 부득이한 사유만으로 한정해 하도급을 허용하는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 시공과정에서의 감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시공사의 법 위반과 부실시공 등에 대해서는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리고 자이아파트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최근 3년 전부터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신축 아파트에 대한 부실시공 여부에 대한 전수조사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당국은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말을 되새길 시점이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

[기자의 눈] 주식 공부에 대한 회의

[에너지경제신문=성우창 기자] 얼마 전 오랜만에 한 지인을 만났다. 오랜 기간 간간히 문자로만 소식을 주고받았기에, 지인이 주식투자에 상당히 관심이 있었다는 최근에야 알게 됐다.그런데 꽤 ‘구력’이 오래됐다는 지인의 말이 조금 충격적이었다. 자신은 주식 종목의 수익성·사업성 등을 평가하는 ‘기본적 분석’을 전혀 믿지 않으며, 차트의 형태를 해석하는 ‘기술적 분석’만을 맹신한다는 것이었다. 언뜻 비슷한 이슈를 두고도 이 종목은 주가가 오르고, 저 종목은 주가가 내려가는 것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서라는 이유다.물론 경력 있는 주식 투자자들이 나름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차트 분석을 맹신하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명색이 증권 기자라는 필자가 지인의 발언에 그럴듯한 반박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자는 여전히 기업 내재 가치의 객관적 평가를 바탕으로 주식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증시 동향을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최근 코스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에코프로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창 에코프로에 대한 고평가론이 일던 지난 5월, 지금이라도 에코프로에 올라타야 할 것 같다던 친구를 필자가 뜯어말린 일이 있었다. 그러나 에코프로의 주가는 당시 50~70만원선에서 현재 110만원대까지 올라갔고, 그때 에코프로를 매수하지 않은 친구는 아직도 필자에게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있다.이렇게 국내 증시에서 이론을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개인 투자자들이 객관적인 주식 이론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더욱더 주식에 대한 공부를 기피하게 되는 것 같다. 건전한 주식투자 문화가 사회에 정착하는데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다. 이는 나아가 주식투자에 대한 신뢰성, 예측 가능성에 대한 마이너스(-)로 작용해, 국민 자산 증식에 있어 금융투자라는 수단이 또 부동산을 넘어설 수 없는 또 하나의 벽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suc@ekn.kr

[이슈&인사이트] 과학 수난시대

과학에 대한 불신은 국가적 재앙이다. 그런데 한국인은 과학을 불신한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2020년 9월 한국을 비롯해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세계 20개국 3만2000명에게 과학자에 대한 신뢰도를 군과 언론, 정부, 재계지도자와 비교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과학자들은 다른 사회기관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응답자 중 36%가 과학자를 신뢰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이 OECD 36개국 중 2위인 한국은 놀랍게도 과학자에 대한 신뢰가 14%에 불과했다. 조사대상 20개국 중 최하위다. 한국 국민의 과학불신은 정치 지향적인 일부 과학자들이 정치와의 야합을 통해 과학의 정치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 사례는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것이 금강산댐 사건이다. 1986년 11월 서울대 공과대학의 모 교수는 "금강산댐과 같은 사력댐은 물이 넘치면 순식간에 파괴된다. 1분당 50~60㎝씩 균열이 계속되면 높이 200m의 댐은 4~5시간이면 파괴된다. 저수량 200억 톤의 댐이 무너지면 하류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라며 대응댐 건설을 주장했다. 여기에 당시 KBS는 금강산댐 붕괴를 가정해 여의도 63빌딩의 21층까지 물이 차 오르는 섬뜩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전국에 중계했고 국민은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그 이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정치과학자는 10년 후 서울대 총장이 됐고 명지대 총장도 맡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국민에게 해명이나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이념적인 정치와 논리적인 과학이 야합할 때 무서운 결과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구소련의 생물학자 리센코다. 리센코는 시험장에서 종자를 개량하는 생물학자였다. 그는 가을밀을 봄에 파종하면 싹이 나오지 않는데 영하에서 수십일 간 종자를 보관하는 ‘춘화처리’를 거치면 봄에 파종해도 싹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리센코는 이렇게 개량된 종자가 형질이 완전히 변해 후대의 종자도 봄 파종용 밀이 된다는 기존의 멘델이론과 충돌하는 ‘획득형질 유전이론’을 주장했다. 이 이론은 당시 ‘새로운 공산주의적 인간 창조’라는 당의 정치적인 이념의 기본이 됐다. 더욱이 공산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이념에도 들어맞았다.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과학을 극복한 사회주의 과학의 탄생’을 선언하고 기존의 멘델이론에 기초한 부르주아 과학을 퇴출했다. 그러나 구소련은 리센코의 이론에 의한 곡물 증산에 실패했다. 결과적으로 구소련 붕괴에 리센코의 형질유전이론이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과학과 정치의 상생 관계를 말할 때 인용되는 대표적인 모델이 1911년 설립된 독일의 막스 플랑크 연구회다. 이 연구 모임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정치적 색채가 강했다. 빌헬름 2세는 부국강병을 위해 연구소가 필요했고 과학자들은 안정적인 연구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빌헬름 2세는 지원만 할 뿐 아돌프 하르나크에게 연구회 운영의 전권을 맡겼다. 이렇게해서 ‘지원하지만 간섭하지 않는다’는 과학기술계의 성공모델이 만들어졌다. 이 연구모임은 지금은 자연과학연구소 세계 1위, 광학연구소 3위로 평가받는다. 이 연구모임은 30여 명의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을 정도로 독일의 자랑이 됐다. 일부 정치인이나 일부 시민사회단체는 자신들의 편향된 이념의 합리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과학을 끊임없이 유혹한다. 이런 유혹에 말려들기 않기 위해서 과학은 정치와의 불가원(不可遠),불가근(不可近)의 원칙을 추구해야 한다. 과학의 정치와의 불가원은 연구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정치와의 불가근이 지켜지지 않는 과학의 정치화는 과학에 대한 불신을 낳을 뿐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집단 이익보다 객관적 진실을 더 중시해야 한다. 광우병 사태, 후쿠시마 원전 사태 등과 같이 국민의 과학에 대한 불신은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재앙이다.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E칼럼] 탄소중립, 에너지 전환 기술 국산화에 달렸다

지난 몇 년 동안 산업현장 곳곳을 다녔다. 점차 웅장한 모습으로 위용을 갖추는 LNG 비축기지와 허브 터미널 공사현장의 수많은 근로자들 사이에서 뿜어나오는 활기찬 기운, 수많은 엔지니어와 연구자들이 에너지 전환과 저탄소·무탄소 기술을 연구하고 실증하는 현장 등에서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 여러 발전소뿐만 아니라 송전탑, 동해 1기지, CCS 기술개발 등 다양한 현장을 경험했다. 수소와 암모니아 혼소발전의 실증 현장도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에너지 발전 분야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역동성은 과거 반세기 전에 포항제철이 만들어지고, 경부고속도로 길이 뚫리고, 조선소가 세워지는 장면을 목격한 경험과 비슷하다. 에너지 산업의 부흥을 통해 국가 신성장동력을 확보함으로써 미래 세대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강건함과 경제적으로도 강건한 시스템을 물려줘야 할 책임이 있다. 탄소중립은 한두 해로 끝날 과제가 아니다. 우리 기술과 자본과 노동력으로 산업 생태계를 갖춰 나가면서 수십 년간 진행해야 하는 과제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2050년 무렵에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상당히 비관적으로 바뀐 상황이 될 수 있다. 국민연금은 고갈돼 2060년부터 수백 조 원의 정부 재정이 매년 투입돼야 하고, 경제성장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운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죽하면 온실가스 넷제로가 경제상황 악화로 달성될지도 모른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올 정도다. 주요국 거의 모든 나라가 자국 제조업을 육성 내지 보호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화석연료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 등 거의 모든 자원을 풍부하게 가진 미국 조차 자국의 노동과 기술과 자본으로 자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키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전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에까지 일관된, 즉 공화당과 민주당을 초월하는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의 연장선으로 보면 된다. 대한민국의 탄소중립 정책도 ‘코리아 퍼스트 정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어, 그동안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발표된 바와 같이 석탄발전기가 LNG 발전기로 전환 예정인데 이 과정에서 국산 발전기 육성 정책이 동반돼햐 한다. 사람도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충족해야 한다고 하는데, 국산 기술의 가스터빈이 7000 시간 이상 운전 확보되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조치다. LNG 발전기는 향후 수소혼소나 수소전소를 통한 탄소중립에 기여할 것이다. 언제까지 해외 주기기 제작사에만 의존할 일이 아니다. 이미 한국은 조선, 철강, 자동차, 반도체 등에 이어 최근에는 방위산업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그 기술과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발전시장이라고 해서 그러지말라는 법은 없다. 기술의 국산화는 에너지 안보,더 나아가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미국은 중국의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와 ZTE의 설비를 교체하는 이른 바 ‘Rip and Replace(뜯어내고 교체하기) 프로그램’를 가동 중이다. 초기에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의 예산을 넘어서서 이제는 50억 달러 (6조5000억 원)를 넘는 투자를 단행하면서까지 이 정책을 강행하는 이유는 국가안보와 상업기술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태양광뿐만 아니라 인버터까지도 우리 자체의 산업역량을 갖춰야 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태양광 패널은 사이버 해킹에 취약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안보 차원에서도 국내 산업 생태계를 갖춰야 한다. 모든 것을 국산화하자는 것도 아니며 이는 오늘날 국제분업 체제에서 가능하지도 않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향한 먼 여정 속에서 기술 종속적 관계가 아니라 우리의 주도적인 기술과 산업 생태계 구축 중심으로 전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함으로써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연도에 쪼그라든 국민연금으로 걱정하는 나라가 아닌 다시 웅비하는 성장국가를 달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실업급여 개선이 동력을 잃었다. ‘샤넬 선글라스’와 ‘시럽(Syrup) 급여’ 탓이다. 자초한 일이다. 지난 12일 공청회에서 실업급여 담당 공무원은 "남자분들 같은 경우 어두운 표정으로 오시는데 여자분들이나 젊은 청년들은 계약기간 만료된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고 말했다. 이어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간다. 내가 일했을 때 살 수 없었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옷을 사든지 이런 식으로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실업급여가 악용돼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급여’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말했다.야당은 호재를 만났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4일 "노동자 스스로 내는 부담금으로 실업급여를 받는데 마치 적선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정부·여당 태도가 참으로 한심하다"고 말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실업급여 받는 분들을 조롱하고 청년과 여성 구직자, 계약직 노동자를 모욕하고 비하했다"며 "실업급여를 받는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고 인간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이준석 전 국힘 대표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이 전 대표는 1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실업급여를 받아서 소고기를 먹든, 명품을 사든 그건 개인의 자유"라고 말했다. ◇정부·여당 해명정부와 여당은 즉각 해명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답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작년(2022년) 9월 상당히 권위 있는 ‘한국 경제 보고서’를 발표했다"며 "우리나라의 기여 기간 대비 실업급여가 세계에서 제일 높고, 취업해서 받는 수입보다 실업급여가 많은 점을 빨리 개선하도록 권고했다"고 말했다. 박대출 의장은 14일 페이스북을 통해 "일하는 사람은 179만원 받고 실업급여는 184만원 받는 구조를 바꾸자는 것, 취업·실업을 반복하며 19~24번 실업급여를 타 먹는 구조를 바꾸자는 것, (고용보험기금이) 10조2000억원 흑자였다가 3조9000억원 적자 나는 구조가 된 걸 바꾸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에게 주는 혜택, 청년에게 주는 기회를 뺏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약자 복지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해명이 먹히지 않는 이유복지만 보면 한국은 선진국과 까마득히 멀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12.3%로 최하위 수준이다. 한국은 튀르키예(12.4%)보다 낮고, 코스타리카(12.3%)와 같다. 한국보다 낮은 나라는 칠레(11.7%)와 멕시코(7.4%) 두 나라 뿐이다. 추정치이긴 하나 2022년 수치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한다. 복지 선진국을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2019년 기준 1위 프랑스는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이 30.7%, 2위 핀란드는 29.4%, 3위 덴마크는 28.4%에 이른다. 이웃 일본은 22.8%이며, 복지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미국도 18.3%로 집계됐다. OECD 평균은 20.1%다.이 마당에 ‘샤넬 선글라스’ ‘시럽(Syrup) 급여’ 같은 말을 하니까 절로 반감이 생긴다. 정부·여당만 한국을 대단한 복지 선진국으로 여기는 듯하다. ◇고용안전망은 더 넓혀야실업급여는 대표적인 복지 정책이다. 누구든 일자리를 잃었을 때 숨을 돌리는 안식처 역할을 한다. 문재인 정부는 전국민 고용보험 정책을 추진했다. 2019년 가을 실업(구직)급여 지급기간을 최대 240일에서 270일로 늘리고, 지급 수준도 평균임금의 50%에서 60%로 높였다. 2020년 초 코로나 위기가 터지자 실업자가 급증했고, 실업급여 신청이 줄을 이었다. 같은 해 12월엔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임금 근로자뿐 아니라 특수고용직(특고), 플랫폼 종사자, 자영업자 등 모든 취업자에게 2025년까지 고용보험을 적용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실업급여엔 돈이 든다. 문 정부는 2019년 고용보험료율을 1.3%에서 1.6%로 올렸다. 고용보험료는 고용주와 종업원이 반반씩 낸다. 그래도 고용보험 기금이 흔들리자 문 정부는 2021년 고용보험료율을 1.8%로 또 올렸다. 정부 재정 지원도 확대했다. 두 번씩이나 고용보험료율을 올리자 비판이 쏟아졌다. 문 정부가 좀 서둔 감은 있다. 그러나 고용안전망을 더 촘촘히, 더 두텁게 짜려는 시도 자체는 올바른 방향이다. 한국 노조는 전투적인 투쟁으로 유명하다. 근본 원인 중 하나는 일자리를 잃으면 곧바로 생계가 곤란해지는 구조에 있다. 직장을 잃어도 상당 기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서면 굳이 사생결단 투쟁에 나서지 않아도 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명장 켄 로치 감독은 2016년 칸 영화제에서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화는 영국 복지 시스템과 관료주의의 맹점을 들췄다. 주인공 블레이크는 심장병이 악화돼 목수 일을 그만 둔다. 그는 복지센터에 질병수당, 구직수당을 신청하지만 번번히 자격 커트라인을 넘지 못한다. 컴퓨터를 못하는 블레이크는 자필로 이력서를 써서 공사장을 돌며 ‘구직활동’을 한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컴퓨터로 작성한 이력서도 없고, 구직사이트에 접속한 기록도 없다. 결국 구직수당이 끊긴다. 복지센터 직원은 식료품 무료 지원을 받겠느냐고 묻는다. 평생을 목수로 성실하게 살아온 블레이크는 수치심을 느낀다. 자존감이 상한 블레이크는 센터 외벽에 ‘I DANIEL BLAKE’라고 스프레이로 분노를 표시한다. 그를 지켜보던 이들이 박수치고 환호한다.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7일 실업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보다 퇴직자에 대한 회사의 허위 신고와 협박 등으로 실업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이 더 문제라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이 단체는 "고용보험 상실 신고 코드를 회사만 입력할 수 있어서 회사가 권고사직과 직장 내 괴롭힘 등 ‘비자발적 퇴사’를 ‘자발적 퇴사’로 만드는 허위 신고가 판을 치고 있다"고 주장했다.◇복지 누수는 바로잡아야 하지만한국 사회는 이쪽, 저쪽으로 편이 갈려 서로 말도 섞지 않는다. 그만큼 양극화가 심하다. 폭넓은 복지는 양쪽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고 했다. 일자리를 잃어도 한동안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한결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을까.한국은 대표적인 저부담·저복지 국가다. GDP 대비 복지 지출을 적어도 OECD 평균인 20%까지는 부지런히 끌어올려야 한다. 그래봤자 중부담·중복지 국가에 속할 뿐이다. 복지 누수를 바로잡겠다는 걸 누가 반대할까. 다만 주종(主從)이 뒤바뀌어서는 곤란한다. 어디까지나 주는 복지 확대다. 실업급여 혜택을 넓혀도 모자랄 판에 ‘샤넬·시럽’ 이야기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이다.실업급여 개선 공청회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위가 주관한 것도 부적절해 보인다. 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 주무부서인 건 알지만, 실업급여는 노동개혁이 아니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약자 복지’가 현 정부의 원칙이라면 더욱 그렇다. <경제칼럼니스트>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가운데)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실업급여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기자의 눈] 설계부터 치열한 압구정 재건축 수주 쟁탈전

압구정아파트지구 특별계획구역3(압구정3구역) 재건축 설계사 선정을 두고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해안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과 희림건축사사무소 컨소시엄(기호 순)이 한판승을 벌인 결과 희림건축이 웃었지만, 과정이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용적률이 300%냐, 360%냐를 두고 진실공방전을 벌인 탓이 크다. 오세훈표 정비사업인 신속통합기획을 적용한 압구정3구역 재건축은 용적률 상한선이 300%인데 희림건축이 360%가 가능하다고 이를 제안했다. 이에 해안건축은 홍보기간 내내 홍보관을 폐관하며 조합에게 설계공모지침을 어긴 상대사 실격처리를 요구했다. 반면 희림건축은 공모기준에 인센티브를 적용해 용적률을 상향시킬 수 있다며 자사 설계홍보에 열을 올리니 조합원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까지 가세하는 바람에 재건축 현장이 혼돈의 도가니가 됐다. 앞서 서울시는 희림건축이 건축설계 공모 지침을 위반해 사기미수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고, 투표 전날에도 긴급 브리핑을 열어 압구정3구역 공모 절차를 중단하도록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희림건축이 막판에 용적률을 360%에서 300% 하향 조정안을 제시했으니, 오히려 서울시에게 빌미만 잡혀 재공모를 해야 한다는 등 차후 진행을 더디게 만든 것이다.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조합은 이제 시공사 선정을 준비해야 하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공사 선정은 얼마나 더 치열할지 눈에 훤하다. 이미 지난해 용산 한남2 재정비촉진구역을 두고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이 크게 한판 벌인 일을 우리는 기억한다. 시공사로 선정됐던 대우건설이 고도제한(90m 이하)에 어긋나는 ‘118프로젝트’(높이를 118m까지 올리는)를 선보이며 이번 설계 수주전이 당시와 평행이론을 걷는 모습이다. 다만 이때는 서울시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개입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압구정 재건축은 국내 최고 명품단지로 탈바꿈하게 될 단지이기에 서울시가 강력히 제지에 들어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연히 원칙이 우선돼야 한다는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님 또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원칙을 지킨 설계사와 조합 편의성 극대화를 강조한 설계사의 싸움은 후자에게 돌아갔다. 이제는 향후 있을 신통기획을 적용한 압구정 1·4·5구역 설계사 선정과 그 이후에 있을 시공사 선정까지, 공정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수주전이 펼쳐지길 기대한다.김준현 ㅇㅇ

[EE칼럼]선제적이고 근원적인 기상재난 대응 서둘러야

유례 없는 긴 장마와 폭우로 너무나 안타까운 희생이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이상 기후로 인한 재해와 피해가 갈수록 더 빈번하고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해양대기청의 환경정보센터가 발표한 ‘2022년 재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상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160억달러(약 274조원)으로 추산됐다.지난해의 피해규모는 2017년과 2011년에 이어 세번째로 크다.특히 1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초래한 대형재난은 1980년부터 2022년 사이에 연평균 7.9건이었지만 2018∼2022년으로 좁혀보면 17.8건으로 최근 5년 새 2배 이상 늘었고 이 기간 경제적 피해액은 5955억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2018년 이후 매년 평균 1191억달러(약 150조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가운데 그 피해액은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제 기상 재난은 뉴 노멀이 됐다는 것을 방증한다. 실제로 올해만 해도 엘니뇨 현상으로 지구 온도가 평균 0.2도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엘니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10월과 11월에는 기온이 이보다 훨씬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관도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82~1983년 엘니뇨로 인한 이상고온으로 4조1000억 달러의 피해를 초래했으며 1997~1998년에는 피해규모가 5조7000억달러로 늘었다. 에니뇨가 발생했을 때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3% 정도 감소했고, 페루나 인도네시아 같은 열대기후 국가는 GDP가 10%이상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기후 변화로 인해 생물 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들고 가뭄과 홍수, 산불 등이 일어나며 엄청난 경제적 피해를 가져온다는 것은 이미 언론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엘니뇨가 원자재나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결코 간과 할 수 없다. 기상재난은 유가,철,비철,금속 등에 타격을 준다. 특히 광산의 경우 집중호우 등으로 침수되면 채굴량이 줄어 수급에 영향을 준다. 칠레,페루 등 주요 구리·리튬 산지 등은 이로 인한 공급 차질이 자주 발생한다. 2019년 폭우로 칠레 국영 광산기업의 1분기 구리 생산량은 전년 대비 20%나 줄었다. 한국 사발전사들은 인도네시아의 폭우로 석탄 공급에 차질 빚어 전력생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렇듯 기상재난은 에너지 공급에도 막대한 차질을 야기할 수 있다. 원자재 수급은 물론이고 지금 처럼 장마가 장기간 지속되면 태양광이나 풍력의 발전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갈수록 악화하는 이상기후에 대응하는 근원적이고 선제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에너지분야에서 신개념의 에너지 안보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신재생 에너지의 취약성을 보완하면서 에너지의 공급안정을 이룰 수 있도록 분야별로 세밀하면서 다양한 에너지 전략이 필요하다. 일부 신재생 에너지에만 의존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먼저 발전분야에서는 기존의 원전과 화력,태양광 및 풍력 등의 발전원과 함께 바이오메스, 양수발전, 소수력, 조력 발전 등의 다양한 발전원을 확보하는 데 신경써야 한다. 또 수송분야에서는 바이오 연료, 예컨대 바이오 디젤, 특히 바이오 에탄올 등의 대체연료를 적극 개발 보급해야 한다. 바이오 디젤 혼합비율을 5%에서 7%로 늘리기는 했지만 이보다 더 확대해야 한다. 바이오 에탄올도 중국, 인도, 미국 남미 등 거의 30개국에서 이용하고 있고 유럽의 항공사는 의무적으로 바이오 항공유 사용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급을 서둘러야 한다. 조선분야에서도 이런 바이오 연료의 공급은 이미 기정사실화 됐다. 폐기물을 이용한 연료나 원료의 대체도 필수적이다. 플라스틱이 대표적이다. 이미 전 세계는 ‘순환경제’라는 슬로건 아래 광물 자산의 재활용(흔히 도시광산이라고 한다), 플라스틱의 이용 극대화와 사용최소화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탈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만들어 사용을 최소화 하려한다. 물론 한국도 동참하고 있다. 결론은 명확하다. 한국과 같이 에너지 공급이 취약한 나라 일수록 다양한 에너원을 확보해야 한다. 에너지원의 다양화야말로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으로 부터 국민안전을 확보하는 일이다.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유언대신 "청년들 잘 부탁한다"고 했다.에너지안보와 에너지원 확보는 미래의 청년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김정인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지난 13일 오전(미국시간) 뉴욕으로부터 34쪽 분량의 판결문이 공개됐다. 암호화폐 ‘리플(XRP)’과 관련한 미국 감독당국의 소송에 대한 뉴욕 법원(판사 아날리사 토레스·Analisa N. Torres)의 판결 내용이다. XRP가 거래소나 알고리즘을 통해 일반투자자에 판매되는 경우 증권이 아니며,기관투자가에게 XRP를 직접 판매한 것은 증권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 소송은 2020년 12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리플 랩스(Ripple Labs)와 CEO인 브래들리 갈링하우스와 공동 창업자 크리스천 라센 등 2명의 경영진이 XRP를 증권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13억달러의 공모를 진행했다고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SEC는 XRP가 증권으로 분류돼야 하며 다른 증권과 동일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고,리플은 XRP가 증권이 아닌 디지털 통화라며 SEC가 XRP를 증권으로 간주할 수 있는 공정 고지(Fair Notice)를 제공하지 않았고 XRP를 비트코인, 이더리움과는 다르게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암호화폐 세계에서 이 소송은 3년 가까이 규제의 복잡성과 어려움을 전면에 부각시킨 사건이기도 하다. 법원은 하위테스트(Howey Test)에 따라 이 사건을 해석하고 XRP가 기관 투자자를 모집한 맥락에서는 증권으로 간주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증권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이다. 하위테스트는 특정 거래가 투자 계약(Investment Contract, 증권의 일종)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1946년 미국 대법원에서 판단한 기준이다. 판결에 대한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반응으로 XRP의 가치는 610원에서 1120원까지 80% 이상 뛰었고 여타 알트코인으로 파급되면서 매틱(Matic), 라이트코인(Litecoin), 솔라나(Solana) 등도 20% 안팎 동반 상승했다. 반면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은 상승폭이 5% 이내로 대조를 보였다. 이번 리플 판결은 감독당국이 암호화폐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한 여러 소송 가운데 처음으로 패소한 사건으로 기록되면서 암호화폐 산업에 주요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암호화폐 업계에서는 금번 판결을 중요한 승리로 인식하면서 앞으로 도입될 모든 암호화폐 관련 규제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특히 증권법과 관련된 사건에 대한 법적 선례로 현재 진행중이거나 향후 암호화폐 관련 다른 소송에서 적극적으로 이 판례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또 XRP를 포함한 여러 알트코인을 거래하는 거래소가 늘어나면서 더 많은 투자자를 암호화폐 시장으로 끌어들여 수익성과 함께 변동성을 증가시킬 것이다. 한편으로 SEC는 이번 판결로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서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기존 접근 방식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리플 사례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리플에 대한 증권거래위원회의 3년 가까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암호화폐인 XRP는 사실상 규제 기관의 엄격한 감독 아래의 증권이라는 족쇄에 얽매였다는 것이다. ‘법이 없는 곳에 자유가 없다’는 홉즈의 주장처럼, 법이 미비한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는 데 있어 암호화폐 업체의 권리를 언제든지 침해할 수가 있다. 의회가 입법을 게을리하면서 명확하고 충분한 내용을 담은 법령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법원이 나서게 될 것이고 판사의 결정은 바뀔 수 있어 업계에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이는 헌법상 판사의 역할은 법을 해석하는 것일 뿐 법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행 암호화폐 규제(CryptoReg)는 대부분 전통적인 증권에 맞춰 설계돼 암호화폐의 고유한 특성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현재의 법령이 암호화폐의 잠재적 가능성과 잠재적 함정을 처리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면 보다 명확하고 포괄적이며 공정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갖출 수 있도록 의회는 시급히 입법에 나서야 한다. 암호화폐와 관련한 명확하고 포괄적인 법제는 혁신적인 분야가 번창하는 데 필요한 확실성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소비자를 보호하고 오용을 방지한다. 지금이야말로 암호화폐가 운영되는 일관된 툴을 제공해 권리와 책임을 정의하고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하는 한편 규칙을 집행하는 메커니즘을 확립해야 할 시점이다.김한성 마이데이터코리아 이사

[EE칼럼]빚더미 한전, 신재생에너지 비용 감당할 수 있나

재무상태가 극히 나빠진 한국전력이 늘어나는 신재생에너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전은 2012년부터 시행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RPS) 제도로 해마다 거액의 RPS 이행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RPS는 500MW 이상의 발전설비(신재생에너지설비는 제외)를 보유한 발전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다. 올해 초 개정된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에 따르면 RPS 의무공급 비율은 올해 13.0%에서 2026년 15.0%, 2030년엔 25.0%로 높아진다. 25% 목표 달성 연도를 당초 2026년에서 4년 뒤로 미뤘지만 우리나라의 지리적 여건이나 일조량, 풍량, 계통여건, 주민수용성 등을 고려할 때 이 목표 달성은 도전적이다. 현행 RPS 제도 아래서 발전사업자는 할당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량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재생에너지를 자체 생산하거나 다른 신재생에너지 생산자로부터 인증서(REC)를 사들여야 한다. RPS 이행 비용은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입하는 한전이 1차적으로 부담한다. 이 비용은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전기요금에 얹어 회수되는 게 맞지만 실제로는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한전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전력통계에 따르면 한전의 RPS 이행 비용은 2020년 2조31억원에서 지난해엔 3조 7507억원으로 2년 새 87.2%나 급증했다. 한전은 전력시장을 통해서 뿐 아니라 전력시장 외에서도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구입한다. 신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자로부터 직접전력거래계약(PPA)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일정한 가격(SMP·계통한계가격)으로 구입해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물론 전력시장 외에서 자가용(BTM· Behind the Meter)으로 생산·소비되는 신재생에너지 전력은 한전이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신재생에너지 부문에서 한전이 부담한 PPA 이행 비용은 2020년 8980억원에서 지난해 3조 6054억원으로 2년간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천연가스 가격과 SMP 급등이 주된 원인이다. 지난해이 경우 태양광 에너지가 신재생에너지 부문 PPA의 99.6%(금액 기준)를 차지했을 정도로 태양광 에너지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2020년에 kWh당 평균 68원이던 SMP가 지난해 200원선을 돌파할 정도로 급등해 한전의 전력구매 비용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정부는 급기야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3개월간 SMP상한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한전의 부담 증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뜩이나 한전은 송·변전 설비 등 계통 확충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올해 초 발표된 제10차 송·변전 설비계획을 보면 송전설비는 2036년까지 5만7681C-㎞로 2021년보다 1.6배 늘리는 것으로 돼 있어 여기에만 56조원의 자금이 소요된다. 하지만 막대한 적자와 부채를 짊어진 한전으로선 이 자금을 조달하기가 벅차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아무리 늘려도 계통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전력이 소비자에게 원활하게 공급될 수 없다. 특히 국내 태양광발전 설비가 밀집된 호남지역은 송·변전 설비 부족 현상이 심각해 계통연계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접속 대기중인 설비만 수십 GW에 달한다. 전력당국은 계통확충이 미흡한 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 출력 제한은 물론 기저전원인 원전의 출력 제한까지 실시하고 있다. 지난 봄철 전력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 태양광 전력 공급이 급증해 송·변전망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자 영광 한빛 원전의 출력을 10~25% 낮추기도 했다. 발전설비의 출력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은 경제적으로 손실이다. 제10차 전력수급기본게획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정격용량은 2023년 32.8GW에서 2036년에는 108.3GW로 증가한다. 3배 이상으로 증가하는 설비 용량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폭적인 계통 확충이 불가피하다. 한전은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부채가 192조8000억원, 부채비율이 459.1%에 달한다. 주가도 크게 떨어져 증시 시가총액이 13조여원으로 삼성전자의 33분의 1 수준인 13조여원에 불과한 한전이 계통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신재생에너지 계통설비 투자가 저조할수록 전체 계통 불안정성은 높아지고, 사용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전력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결국 계통확충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전의 재무구조 정상화와 이를 위한 전기요금의 현실화가 불가피하다.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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