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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구조조정 직면한 위기의 부동산PF

한국의 금융시장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조명할 때 빠지지 않는 국가는 단연 미국이다. 미국 지역은행의 위기는 이번에도 우리나라 금융시장에 교훈이 되기에 충분했다.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을 시작으로 시그니처은행, 퍼스트리퍼블릭 등 미국 내 지역은행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은 충격에 빠졌다. 한때 전문가들은 대규모 예금인출 등 은행권 시스템에 대한 위기가 미국 경제 전반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금융시장 충격은 단기에 그쳤고, 전문가들의 경고는 기우에 그쳤다. 은행들의 파산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은행을 상대로 더욱 강력한 규제를 들이대는 계기가 됐다.미국의 금융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일시멈춤 단계에 이르렀다면, 우리나라 금융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국내 부동산PF 연체율이 지속적인 상승세에 있고 최근에는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손실까지 겹치면서 하반기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꼽히고 있다. 저금리 시기에 국내 금융사들이 앞다퉈 뛰어든 해외 부동산 투자가 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 대규모 공실 문제까지 얽히고설키면서 시한폭탄으로 돌아오는 형국이다. 4년 전 미래에셋증권이 2800억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해 중순위 대출에 나섰던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는 보증인 파산으로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약 90%를 회계상 손실로 상각 처리했다. 국내 최대 부동산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도 PF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 운용사는 2018년 총 37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투자한 독일 트리아논 오피스 건물을 결국 매각하기로 했다고 한다. 국내외 PF의 위기는 곧 국내 저축은행을 포함한 상호금융권의 위기이기도 하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 시장 침체로 PF대출의 수익성 악화 및 자금회수 실패, 그로 인한 일부 소규모 저축은행의 정리 역시 불가피한 수순일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총체적 위기를 직면한 금융당국은 바로 관리모드에 돌입했다. 지난 4월 말 재가동한 PF 대주단 협약을 통해 부실 사업장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진행한 데 이어 오는 9월부터는 1조원 규모의 부동산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펀드를 가동한다고 한다.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저축은행 M&A 규제 완화 역시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차츰 족쇄를 풀고 있다. 다시 미국의 사례를 보자.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6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섬뜩한 경고를 내놨다. 기준금리 인상과 지역은행 붕괴로 중소 규모 은행들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은행 간에 추가적인 인수합병(M&A) 소식이 들려올 수 있다는 발언이다. 미국은 옐런 장관 자신이 아는 다른 국가보다 많은 은행이 있고, 결국 은행부문의 더 많은 합병은 금융시장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고 자신했다. 미국은 모든 은행을 살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우리나라 금융당국 시각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부동산 PF 부실 우려와 관련해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일부 시공사나 건설사가 어려움에 직면하겠지만 시스템 리스크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대출 부실에 따른 새마을금고 합병 사례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금융사들도 과거와 달리 위기를 버틸 수 있는 상당한 체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저축은행 M&A 역시 구조조정 측면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국내 금융사의 PF부실이 임계치에 도달한 지금, 시장기능에 따라 부실화된 일부 금융사의 선제적인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한계사업장의 퇴출을 활성화해야 한다. 금융부실 가능성 최소화, 건전성 강화에 대한 당국의 대원칙이 필요한 시점이다.mediasong@ekn.kr

[이슈&인사이트] 기상재해는 인류 모두의 책임

7월 중순 집중호우로 사망자와 실종자 등 70명에 가까운 인명피해가 났다. 예측을 넘어서는 극한호우가 인명 피해를 키웠다. 이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상황이 아니다. 전 세계가 극단적인 기상 현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갑작스런 강우가 한정된 시간에 집중되다 보니 돌발 홍수와 산사태가 상시화되는 상황이다. 집중 호우와 같은 개별 기상 현상과 기후 변화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정확히 단정 짓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기후 변화가 게릴라성 폭우와 같은 극한의 강우 현상의 빈도와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하는 과학적 증거가 많다. 기후 변화는 지구 표면의 대기 및 해양에서의 물의 증발→구름→강수→지표수화→다시 증발이라는 물 순환에 영향을 미친다. 온실 가스 배출 증가로 인한 지구 대기의 온난화는 폭우 발생에 기여하는 몇 가지 주요 요인으로 이어진다. 첫 번째는 대기 수분 증가다. 기온이 높아지면 바다, 강, 지표면에서 물의 증발이 가속화돼 대기의 수분 양이 증가한다. 이렇게 늘어난 수분 함량은 강렬한 강우 호우의 연료가 된다. 두번째는 대기 순환 패턴의 변화다. 기후 변화는 제트 기류 및 몬순 시스템과 같은 대규모 대기 순환 패턴을 변화 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극한 강우 현상의 발달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내곤 한다. 결국 인류가 만들어낸 온실 가스의 증가와 기후변화는 매년 적지 않은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우리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가장 위기감과 좌절감을 주는 사실 중 하나는 초기에 행동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행동을 취하지 않은 상태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구 온난화를 관리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탄소감축량은 급증한다. 결국 기후변화는 우리에게 기후위기라는 재앙으로 돌아왔다. 이는 21세기 인류가 직면한 환경적 도전이다. 우리는 기후변화 대책의 시급성을 몸으로 더 느껴야 한다. 가장 빠른 산업화 국가로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기후변화를 일으킨 선진국 중에 우리나라도 포함돼 있다. 이번 여름의 극한호우와 이로 인한 피해는 우리가 야기한 기후 변화와의 큰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하는 책무가 있다. 이제는 상황 개선을 위해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겨야 할 시점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행동은 너나 할 것 없이 정부,기업,개인 등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연구 및 대응 전략과 전술을 업데이트하고 그에 맞춰 온실 가스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에 높은 수준의 ESG 활동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감시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더불어 범 국가적 노력과 기업들의 ESG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개인(소비자)는 그린 컨슈머(Green Consumer)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캠페인에도 적극 나서고 선진적인 환경단체에 후원금을 보내는 방법도 있다. 해변을 걸으며 해양쓰레기를 줍고, 산악 모임에선 타인이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한편 야생동물에게 물을 주는 등 이른바 ‘플로깅’의 생활화도 필요하다. 더 적극적 활동을 위해 노벨상 후보였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다. 기후 변화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행동 선택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빙하가 녹으며 해수면이 점점 높아져 육지가 사라질 것이라는 과거의 ‘괴담’이 지금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기후변화와 기상재해는 인류 모두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다.박세원 S&P Global 상무/거시경제 및 국가리스크 한국 총괄

[EE칼럼]분산에너지법

이동일 법무법인 에너지 대표변호사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는 달을 향해 날아갔다. 4일 동안 쉼 없이 날아간 뒤 닐 암스트롱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에 첫발을 내딛었다. 달에 도착하기 위한 인류의 꿈을 실현하는 데 수소연료전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당시 우주선의 에너지원으로 핵연료와 2차전지를 우선 고려했지만 핵연료는 안전성 우려, 2차 전지는 우주에서 충전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결국 수소연료전지를 선택했다. 1대당 2300W까지 전력을 생산하는 수소연료전지 3대를 탑재했다. 수소연료전지는 우주선내 무수히 많은 기기를 작동시킬 전기를 생산했고 발전 과정에서 생긴 순수한 물은 우주비행사들의 생명수가 됐다. 수소연료전지는 연료 연소 없이 수소와 산소를 화학적으로 반응시켜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하는 발전원이다. 이름만 보면 전기를 저장하는 전지(배터리)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직접 전기를 만드는 발전기의 일종이다. 수소연료전지는 전해질, 양극, 음극으로 구성된다. 수소연료전지에 공급된 수소가 음극에서 수소와 전자로 분리되고 분리된 전자가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르며 전기를 생산한다. 한편으로 전해질을 통과한 수소는 산소와 결합해 물로 배출되는 구조다. 수소연료전지는 수소 생산과정 외에 전기 생산과정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전혀 없다. 더 나아가 소음과 진동이 적고 공기를 정화하는 기능도 있다. 일반적인 발전은 연료를 연소시켜 열에너지를 생산하고, 터빈을 활용한 운동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므로 에너지 형태가 변환된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 그러나 수소연료전지는 수소를 전기로 직접 변환하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적다. 연료전지는 신에너지법 이전인 1987년 ‘대체에너지개발촉진법’ 제정 당시부터 대체에너지의 일종으로 법에 규정됐다. 2005년 신재생에너지법 체제에서는 신에너지의 일종으로 자리매김 했다. 2021년 수소경제 이행 촉진을 위한 기반 조성 및 수소산업의 체계화를 위해 수소법이 제정됐다. 수소법은 수소전문기업 육성을 위한 각종 지원제도와 함께 수소연료전지를 비롯한 수소연료공급시설의 설치 확대를 유인하기 위한 규정을 담고 있다. 최근 개정된 수소법은 청정수소발전 의무화제도를 두면서 세계 최초로 수소발전입찰시장을 열었다. 신재생에너지법을 통한 수소연료전지 촉진의 한계를 수소법을 통해 넘어서겠다는 의도다. 최근 제정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은 연료전지발전사업을 분산에너지로 규정해 수소연료전지 발전이 더욱 활성화 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 제13조 이하는 대규모 건물의 소유자, 대규모 개발사업의 시행자에게 분산에너지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택지개발사업의 시행자,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자, 도시재생사업의 관리자, 혁신도시의 관리자, 산업단지의 관리자와 같이 대규모 에너지 사용이 예상이 되는 경우 일정 규모의 분산에너지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강제조항도 뒀다. 연료전지는 설치공간이 작고, 소음과 진동이 적게 발생하고 전기 생산과정에서 안전사고 발생 우려가 적어 분산에너지의무 설치자로부터 상당한 선택을 받을 것을 보인다. 한편으로 분산에너지법 제23조 이하의 전력계통영향평가제도는 전력계통영향평가 대상 지역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에게 전력계통영향평가를 하도록 하고 있다. 전력계통 영향평가 제도를 통해 데이터센터와 같은 대규모 전기를 사용하려는 사업자에게 분산에너지의 설치를 유도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센터는 수만 대의 컴퓨터 서버와 서버를 하루 24시간, 주 7일 가동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장비로 가득 찬 공간이다. 데이터센터는 정전이 발생해도 서버는 계속 가동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따라 데이터센터 운영자는 정전 발생에 대비한 백업전원 구축에 신경을 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를 달성하기 위해 연료전지를 선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지난해 미국 뉴욕 라담에 있는 데이터센터에서 진행된 3MW급 데이터센터 비상전원용 연료전지 실증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도 급증하는 데이터센터와 함께 호흡할 파트너로 수소연료전지발전소가 각광받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청정수소를 통한 수소연료전지발전이 사업경쟁력을 확보하고 활성화된다면 탄소중립과 대형발전소 및 송전망 건설회피라는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연료전지발전이 해외 수출로 이어져 국가경제에도 기여하는 효자 발전원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이동일 에너지 대표 이동일 법무법인 에너지 대표변호사

[기자의 눈] 불지옥 건설현장, 법적 강제성 있는 폭염 대책 필요

최고기온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면서 건설노동자들의 안전에도 비상이 걸렸다. 건설노동자는 폭염에 취약한 대표적인 옥외 노동자다. 푹푹 찌는 날씨에도 안전을 위해 안전모를 착용해야 하는 데다 외부작업 시간이 길어 열사병 등 온열 질환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여름철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산재를 경험한 노동자는 총 182명이었고, 29명(15.9%)이 사망했다. 이 중 건설업의 경우 온열질환자가 87명, 사망자는 20명을 차지했다. 건설노동자가 폭염에 따른 건강 위협에 가장 많이 노출된 셈이다. 특히 지난해에는 7월 한 달간 건설현장에서 열사병 의심 사망사고가 5건이나 발생했다. 일례로 경기 시흥시 한 건설 현장에서 퇴근하던 근로자가 어지러움을 느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고, 대전 유성구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도 근무 중 쓰러져 응급조치를 받고 휴식을 취했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다 다시 쇼크가 발생해 사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나름의 예방조치를 추진하고 있긴 하다. 고용노동부는 열사병 예방 가이드를 제시하고 사업장 점검에 나서고 있다. 예방 가이드에는 폭염특보 발령 시 10~15분 이상 휴식 규칙적으로 부여, 무더운 시간대(오후 2∼ 5시) 휴식을 부여해 옥외작업 최소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가이드는 권고일 뿐 강제성이 없어 무용지물이라는 평가다. 실제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따르면 ‘폭염특보 발령 시 1시간 일하면 10~15분씩 이상씩 쉬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6.3%에 불과했다. 아울러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는 작업중지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폭염 상황에서는 큰 의미가 없다. 고용노동부는 폭염 시에도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다고 보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노동계의 설명이다. 폭염 또는 한파 시 근로자의 작업을 중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21대 국회에서 여야가 각각 발의했지만 상임위원회조차 통과를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건설노동자들의 안타까운 온열질환 사망사고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법적 강제성이 있는 폭염 대책이 필요하다.55428_50514_5439

[김성우 칼럼]CCUS는 탄소감축을 넘어 미래 먹거리다

2023년 7월, 전세계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더위와 마주하고 있다. 중국 신장은 섭씨 52.2도, 이탈리아 로마는 41.8도를 기록했고, 미국 아리조나는 26일 연속 43.3도를 넘기는 등 전세계 평균 기온도 관측이래 가장 뜨거운 7월로 기록되고 있다. 주요 원인은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다. 국제사회는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우리 삶과 밀접한 탄소배출을 하루아침에 줄이기 어렵다보니 감축이행이 더디다. 이에 따라 이미 배출된 탄소를 제거하거나 배출될 탄소를 포집,저장, 활용하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가 주목받고 있다. CCUS는 화력발전소 등에서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땅이나 바다 속에 저장하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유용한 물질로 바꿔 활용하는 기술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CCUS를 전기화 및 수요관리와 더불어 3대 주요 감축수단 중 하나로 꼽았다. 선진국은 이미 세제지원 등 과감한 지원 정책을 도입해 CCUS 기술확보와 함께 시장선점 경쟁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CCS에 대해 이산화탄소 톤당 85달러의 세제혜택을 부여하고, 캐나다는 CCS 투자비용의 50%에 대해 세액을 공제해 준다. 호주는 CCS를 통한 배출량 감축이 일정 기준에 부합할 경우 탄소배출권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CCUS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 정책과 관련 기술 진화 등에 힘입어 이산화탄소 감축량이 2021년 기준 연간 4000만톤에서 2030년에는 12억톤으로 늘어나고 관련시장 규모가 142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탄소배출이 많은 글로벌 기업들도 CCUS를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전략으로 삼는 추세다. 미국의 대표적인 석유회사인 엑손모빌(ExxonMobil)은 2027년까지 170억달러 규모의 저탄소투자 계획에 CCUS를 포함했고, 유럽의 석유회사들은 북해 저장소를 활용해 석유회사에서 탄소관리회사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4월 CCUS를 통한 2030년 국가 감축목표를 기존 1020만톤에서 1120만톤으로 늘렸다. 이를 위해 연간 100만톤 탄소포집을 위한 대규모 실증과 함께 10억톤 규모의 국내저장소 확보,석유가스전 보유 국가의 해외저장소 선점, CCU상용화 및 수출패키화 등의 내용을 담은 ‘CCUS 산업활성화 및 기술혁신 추진방안’을 마련했다. 이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곳곳에 흩어져 있는 관련 제도를 통합,일원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올해 2월 발의된 ‘이산화탄소 포집·수송·저장 및 활용에 관한 법률안’은 지난 4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소위원회로 회부된 상태다. 주요 내용은 사업 인허가 절차, 저장소 관련 규제, 산업에 대한 지원 등이다. 이산화탄소 포집시설 설치·운영과 관련해서는 그 설치계획을 산업통상자원부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했고, 이산화탄소 수송사업 때는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수송관 설치 때는 안전관리규정 승인 취득, 안전관리자 선임 신고, 안전검사 등 안전관리 기준을 반영했다. 더불어 저장소 발굴을 위한 탐사와 관련해서는 탐사승인을 받은 날부터 3년 이내에 탐사실적을 제출하도록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한 차례 3년의 범위에서 제출기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포집된 이산화탄소 활용 기술 및 제품에 대한 인증과 R&D 지원 등도 포함됐다. 기업들은 이미 뛰고 있다. SK E&S, 삼성중공업, 포스코인터내셔널 등은 국내에서 포집한 탄소를 동티모르, 말레이지아, 호주 등 해외로 이송해 저장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사업이 실현되려면 이산화탄소 수출입 및 저장소 보유국 간 긴밀한 협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정부간 협의와 관련 법체계의 확립이 급선무다. 탄소감축실적 인증도 병행돼야 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0일 그리스의 캐피탈 마리타임 그룹(Capital Maritime Group)으로부터 세계 최대 규모 액화 이산화탄소 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 이산화탄소를 액화해 운송하기 위한 친환경 선박으로, 이산화탄소 뿐 아니라 무탄소연료인 암모니아 등 다양한 액화가스 화물을 운반하도록 설계한다고 한다. 세계 1등의 조선강국인 우리나라가 경쟁국과의 초격차를 벌리기 위한 친환경 기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CCUS를 단순히 탄소감축의 수단을 넘어 미래의 새로운 먹거리 차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김성우 김앤장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EE칼럼] 지방에서 전기차 보기 힘든 이유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기나긴 장마와 역대급 재해를 몰고 온 7월 중순, 대한전기학회 하계학술대회가 강원도 평창에서 개최됐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전기자동차가 화두로 떠올랐다. 개회식에서 전기자동차산업의 미래전망에 대한 전문가 초청강연이 이뤄졌다. 또 본 행사에서는 전기자동차 부문 특별 세션과 자동차 업계 대표이사의 특별 강연이 마련되는 등 전기 산업과 자동차 산업을 함께 연결해서 생각해 보는 지식교류의 행사가 많았다. KPMG 인터내셔널의 ‘Global Automotive Executive Survey’와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 등 해외 주요 리서치 기관들은 오는 2030년 세계 전기자동차 점유율이 25~33%에서 최대 40%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점유율 예측치 범위를 이렇게 최대 15%포인트나 넓게 잡은 것은 전기자동차가 각국 정부의 전기차 지원 및 활성화 정책과 배터리 원자재 수급난 여부,이차전지 기술의 진화 정도, 그리고 충전인프라 확충과 소비자 선호도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있고 여기에 변수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 가운데서도 전기차 산업 활성화의 가장 큰 변수는 주행거리와 충전인프라가 아닌가 싶다. 이번에 한국전기연구원 본원이 위치한 경상남도 창원에서 학술대회 장소인 강원도 평창까지 이동할 때도 함께 참석하는 동료들과 렌트카를 이용했다. 그런데 차량 선택지에서 전기자동차는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400km가 넘는 거리를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켜고 전기차를 운행하려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충전해야 하는데 충전소가 모든 휴게소에 있지도 않을 뿐 더러 충전 대기와 충전시간이 얼마나 될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장거리 이동은 1년에 두세 번 있을까 말까 한 경우이지만, 그 때 예상될 수 있는 불편함이 전기 자동차를 선택하는 데 많은 제한을 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여전히 전기자동차는 출퇴근 등 근거리나 시내 이동 위주용 자동차 정도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전기자동차가 장거리나 시외 이동용으로 일반화되고 활성화되려면 기본적으로 주행거리가 지금보다 더 늘어나도록 배터리 용량이 더 커져야 하고. 충전 시간 단축기술과 충전소 등 기본적인 인프라도 훨씬 더 강화돼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이런 제약 때문에 전기자동차 선호도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필자가 지난해까지 근무했던 수도권 지역에서는 주행 중에 전기자동차를 많이 볼 수 있었으며, 전기자동차 주차 공간이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 근무하고 있는 경남 지역에서는 1인당 자동차 등록 비율이 0.6으로 0.5의 경기도 지역이나 0.3의 서울 지역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주행 중에 전기자동차 보기가 쉽지 않다. 전기자동차 주차공간은 가장 좋은 위치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대부분 여유가 있다. 따라서 전기자동차와 수소자동차 등 친환경 자동차 보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 상황에 맞춰 차별적인 활성화 전략을 세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구 대비 자동차 등록 비율이 1.0으로 가장 높은 제주 지역이 높은 전기자동차 비율을 달성한 것은 이유가 있다. 물론 전국에서 처음으로 전기자동차 민간 보급을 시작한 제주 지역도 보급목표의 절반 정도밖에 달성하지 못했기 전략을 수정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필자도 곧 20년이 되어가는 내연기관 차량에서 요즘 안전과 직결될 수 있는 이상 신호들이 감지되고 있어서 신차 구매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이것저것 생각해 볼 때에 선뜻 전기자동차로 결정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마케팅 전략의 주요 공략 대상이며 입소문의 진원지로 알려진 선각 수용자(early adopter) 성향은 아닌 것 같다.손성호 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곽인찬 칼럼] 뉴 노멀이 된 일하는 노인

올해 장마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가슴 아픈 소식도 들려온다. 극한호우란 말도 처음 들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1시간 누적 강수량이 50㎜, 동시에 3시간 누적 강수량이 90㎜가 넘으면 극한호우다. 기상 전문가들은 비가 순식간에 왕창 쏟아지는 극한호우가 뉴 노멀, 곧 새로운 일상이 될 걸로 예측한다. 그 뒤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미적대다간 언제 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 워킹 시니어, 곧 일하는 노인이 꾸준히 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보면 60세 이상 취업자는 643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1년 전에 비해 34만3000명이 늘어난 숫자다. 지난해 말 기준 60세 이상 취업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선을 넘어섰다. 처음 있는 일이다. 일하는 사람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60세 이상 고령자란 뜻이다. 나이별 비중을 보면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20대, 30대 취업자 수를 훌쩍 넘어섰다. 머잖아 40대, 50대도 추월할 기세다. 이유는 말 안 해도 다 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 출생)가 대거 은퇴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한국 베이비부머들은 말 그대로 ‘신인류’다. 수백 만명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마다 나라 전체가 들썩거린다. 가수 임영웅, 김호중을 향한 트로트 열풍을 베이비붐 세대의 열정이 빚은 작품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기적 같은 산업화를 일군 주역이다. 은퇴했다고 집에 눌러 앉을 사람들이 아니다.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아 소득을 올린다. 60세 이상 취업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은 당연하다. 고백하건대 필자 역시 고령층 취업자 수를 늘리는 데 한 몫 했다. 지난해 10월 한국은행은 ‘고령층 고용율 상승요인 분석’이란 흥미로운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60세 이상 고령자 취업이 증가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자녀의 사적이전 감소를 꼽았다. 사적(私的) 이전은 국민연금 등 공적(公的) 이전과 대비된다. 요컨대 자녀들이 부모에게 주는 용돈 등 지원금을 말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령층이 자녀로부터 받는 지원은 2008년 연간 250만원에서 2020년 200만원으로 줄었다. 지원을 받는 비율도 2010년대 초중반 약 80%에서 2020년 65% 수준으로 떨어졌다. 자녀로부터 지원이 줄면 스스로 직접 돈을 벌어 쓸 수밖에 없다. 얼마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깨달음을 얻었다. 필자가 "죽을 때까지 자식한테 부담 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지인이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핀잔을 주었다. 요즘엔 부모 부양이라는 부담을 느끼는 젊은이가 없으니 괜한 걱정 말라는 것이다. 하긴 요새 젊은층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재원을 대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 최대 수혜자는 다름아닌 부모다. 젊은이들은 이미 효도를 할 만큼 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예전의 사적 이전이 공적 이전으로 형태가 바뀌었을 뿐이다. 노인 건강 측면에서도 일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노인 정신과 의사인 와다 히데키는 "언제까지나 현역 직업인으로 생활한다는 자세가 노화를 늦추고 긴 만년을 건강하게 보내는 비결"이라고 말한다(‘70세가 노화의 갈림길’). 철학자 김형석은 "나에게 있어서는 일이 건강의 비결이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장수하는 편"이라고 회고한다(‘백년을 살아보니’). 극한호우는 뉴 노멀이다. 마찬가지로 저출생·고령화가 부른 일하는 노인 역시 뉴 노멀이다. 선제대응이 상책이다. 고용노동부는 연초 업무보고에서 계속고용제 도입을 위한 사회적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도입한 계속고용제는 정년을 맞은 직원을 퇴직시키지 않거나 퇴직 후 재고용하는 것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정년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저출생·고령화 속도가 더 빠르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취업자 평균 나이는 46.8세다. 오는 2035년엔 평균 나이가 50세에 이를 전망이다. 부족한 노동력을 고령층으로 보충하지 않을 수 없다. 고용부가 계속고용제 도입에 좀더 속도를 내기 바란다. 이런 게 진짜 노동개혁이다. 다만 계속고용제는 부분적으로 청년 일자리와 충돌할 우려가 있다. 2013년 국회는 정년을 60세로 높였다. 이때 임금피크제 의무화 장치를 두지 않는 바람에 청년들이 손해를 봤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실 고령층 일자리와 청년 일자리가 크게 겹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계속고용제를 추진하되 먼저 청년층의 이해를 구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 한다.곽인찬 경제칼럼니스트

[기자의 눈]한국 첫 갤럭시 언팩, 자신감이 성과로 나타나길

삼성전자가 올해 27회차를 맞는 스마트폰 신제품 공개 행사 ‘갤럭시 언팩’을 처음으로 국내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한다. 이번 ‘갤럭시 언팩’은 지난해보다 2주 가량 빨라졌다. 반도체 부진 등으로 실적이 악화되고 폴더블폰 경쟁이 치열해진 분위기 속, 갤럭시Z5 시리즈 출시 일정을 앞당겨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는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출하량에서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세계 1위를 차지했으나 애플의 아이폰15 등판 시기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현재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강자는 애플이다. 지난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애플(75%)과 삼성전자(16%)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나 두 기업 격차가 크다. 아이폰은 젊은층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국내외에서 점유율 몰이를 하고 있다. 특히 최근 북미시장에서 아이폰 점유율이 사상 최대 수준까지 올라간 반면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줄어들고 있다.이 같은 1020세대의 아이폰 선호 현상은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국갤럽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020세대가 소유한 스마트폰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제품은 아이폰(52%)으로 나타났다. 갤럭시의 비중은 44%로 뒤를 이었다.다만 국내 전체 스마트폰 중 폴더블 스마트폰의 판매 비중은 2022년 기준 13.6%(수량기준)로 전세계에서 폴더블 사용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지난해 공개된 갤럭시Z4 시리즈는 국내에서 사전 판매량만 97만대를 기록하며 폴더블폰 최고 성적을 갱신했다. 이영희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장(사장)은 ‘갤럭시 언팩’ 서울 개최에 대해 "한국은 의미 있고, 할만한 시장"이라고 답한 바 있다.노태문 삼성전자 MX사업부장(사장)은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공개할 폴더블폰 신제품에 삼성전자의 디자인 철학을 담아 사용성과 외형적 아름다움을 모두 이뤄냈다고 자신했다. 노 사장은 삼성전자의 사용자 중심 디자인 철학을 바탕으로 본질을 추구하고, 혁신적이며,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 이라는 3가지 방향성을 도출했다고 강조했다. 앞서 2025년까지 갤럭시 플래그십 스마트폰 연간 판매량 과반을 폴더블폰으로 채우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삼성전자는 이번 ‘갤럭시 언팩 서울’을 위해 전 세계 주요 매체 기자 500여명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폴더블폰 종주국의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자신감이 비쳐지는 대목이다. 올해 글로벌 폴더블폰 출하량은 전년대비 50% 증가한 2200만대로 관측된다. ‘갤럭시 언팩 서울’을 통해 삼성전자의 자신감이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본다. gore@ekn.kr여이레 산업부 기자

[EE칼럼]명분 없는 주택용 전기료 누진제 폐지해야

우리나라의 여름은 고온다습하다. 근래 들어서는 폭염이 더 잦아지고 강도도 세지고 있다. 올해도 장마와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후온난화로 6월부터 때 이른 더위와 폭염이 닥치며 냉방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사무실이나 가게는 에어컨을 가동한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일반 가정에서의 에어컨 사용은 아직도 적지 않는 부담이다. 폭염에 견디기 어려울 때는 도리가 없지만 가능하면 에어컨 가동을 줄이고 선풍기로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전기요금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OECD 국가 중 상당히 낮지만 주택용은 아직도 누진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당 월평균 전기사용량은 300kWh 정도다. 이 중 2인 이상 가구의 월 전기사용량은 250∼500kWh로 전기요금이 대략 월 4만∼5만원이 든다. 에어컨을 1대를 매일 4시간 정도 가동할 경우 전기사용량이 두배 가까이 늘어나고 여러 대를 가동하면 더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여름철에는 가구당 전기사용량이 500kWh에서 많게는 1200kWh 까지 늘게 된다. 월 400kWh를 사용하는 일반가구에서 에어컨 2대를 매일 사용하면 전기요금은 22만원으로 늘어난다. 전기 사용량은 2배가 조금 넘게 느는 데 비해 요금은 4배로 늘어나는 불합리한 구조다. 주택용 전기요금의 누진제는 과거보다는 단계가 많이 축소됐지만 아직도 사용량이 많아질 수록 구간별로 kWh당 120원, 215원, 307원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전력사용량이나 피크수요 기여도가 훨씬 높은 업무용이나 산업용은 계시별 또는 단일요금이다. 아무리 많이 써도 사용량에 따른 단가는 동일하다. 여름철에 빌딩이나 상가에서의 과도한 냉방기 가동도 이런 요금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주택용에만 지금까지도 누진제를 적용해야하는 당위성이나 효과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누진제로 인해 주택용 전력소비는 줄어들겠지만 이 보다는 국민들의 불편과 불합리한 비용부담으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크다. 재화나 서비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영향을 받는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를 것이고 반대면 내려갈 것이다. 전기도 마찬가지다. 냉난방 수요가 높아지는 여름철이나 겨울철에는 연료비가 높고 효율이 낮은 비싼 발전소까지 가동해야 하므로 한계비용, 즉 가격이 높아지게 된다. 따라서 수요가 많은 피크시간대에 요금을 높이고 반대일 때 요금을 낮추는 것은 이런 수급여건에 부합한다. 우리나라의 전기 수요패턴은 여름철에는 평일 오후부터 일몰전후까지, 겨울철에는 저녁시간대에 수요가 집중돼 공급비용이 높다. 따라서 이 시간대를 제외하면 수요가 높지 않고 공급비용도 낮아지게 된다. 최근 여름철 전력수요는 평일 주간시간대 8400만 kW를 넘나들고 있지만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평일에 비해 전력수요가 1000만 kW 이상 줄어든다. 최근 태양광 설비의 영향으로 피크 발생시간이 다소 불규칙하지만 대체로 저녁 8시 이후에는 전력수요가 줄기 시작한다. 주택용 냉방수요는 대체로 가족이 모이는 평일 저녁시간대와 공휴일에 많다. 이 시간대는 전력설비에 여유가 있어 공급비용이 낮은 시간대에 해당한다. 주택용 냉방수요가 늘더라도 전력수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택용 요금구조는 전력설비가 남아돌 때는 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족할 때 사용하게 하는 꼴이다, 수급여건과 비용에 부합되는 요금체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렇게 된다면 에어컨 사용에 따른 주택용 전기사용 행태나 요금 부담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주택용에도 실시간요금제나 계시별 요금제가 적용되면 여름철에 ‘요금폭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업무용과 산업용에는 계시별 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10여년 전 부터는 주택용에도 시간대별 계량이 가능한 AMI 미터기가 보급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빠른 시일 내에 전력수급과 공급비용을 반영한 합리적인 요금체계로 전환할 수 있다. 주택용 요금체계의 개선에 따른 효과는 크다. 첫째, 합리적인 전력소비가 이뤄진다. 구호만으로 소비억제를 외치기보다는 전력수급 여건이 투영된 요금신호를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유도할 수 있다. 설비가 빠듯해 공급비용이 높을 때는 수요를 억제하고, 설비여유가 많은 시간대로 소비를 유도하는 요금정책이 필요하다. 둘째는 국민의 불편이 줄고 에너지 사용으로 인한 편익이 높아진다. 주택용 수요는 다소 늘어나겠지만 전력수급에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 셋째는 소비자 요금의 형평성 문제 해소다. 전력설비가 부족할 때 공장가동을 위해 일반가정의 에너지 절감을 강요하던 시대는 이미 옛날 얘기다. 불합리하고 경제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소비자간 차별적인 요금구조를 더 이상 지속할 이유가 없다. 마지막으로 진화하는 전력에너지시스템에 맞춰간다. 에너지 절약도 무원칙한 방식에서 벗어나 실시간이나 시간대별 요금으로 합리적인 소비반응을 유도해야 한다. 맹목적으로 주택용 전력사용을 규제하는 방식으로는 에너지절감도, 전력수급 정상화도 달성하기 어렵다. 분산에너지, 에너지프로슈머, 섹터커플링 등 전력산업의 변화와 사회경제적 발전에 부합하는 전력시스템 운영과 함께 요금구조를 손질해야 한다.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이슈&인사이트] 학습의 조건

이번 여름에 필자는 국외출장 중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는데 어려움을 여러 차례 겪었다. 시애틀공항에서는 체크인과 보안검색 대기줄이 길어서 항공기를 놓친 여행객을 여럿 봤고 필자도 그 중 하나였다. 미국출장을 마치고 간 에콰도르에서는 출장단 중 2명이나 짐과 사람이 따로 도착해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귀국 길에는 출발지연으로 환승을 하는 미국 공항에서 8시간이나 대기하기도 했다. 계속 이어지는 사고, 심각한 지연 등을 목격하거나 겪으면서 미국의 공항시스템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COVID 19 팬데믹 이후에 폭증한 여행객들을 공항이 잘 대처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카운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일 처리가 무척이나 더딘 모습을 보면서 공항의 하드웨어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한다기 보다는 사람들의 작업 능률이 예전 같지 못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에서 주창한 ‘1만 시간의 법칙’을 들지 않더라도 반복이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복은 일처리 지각단위,이른바 ‘스키마의 청크(chunk)’ 단위를 크게 만들고, 이는 일처리 속도를 빠르게 한다. 다시 말해, 특정 자극에 반복된 노출은 한 번에 처리하는 정보의 양을 늘리고, 이는 정보처리 속도를 끌어올린다. 상황에 익숙하게 하는 반복 훈련이야말로 평소의 일처리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는 경우에도 적응처리를 할 능력을 갖출 수 있게 한다. 신입사원이 처음에는 일 처리가 미숙해서 실수도 자주 하고 느리더라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능숙하게 처리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본다. 공부도 반복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기에 예습과 복습이 공부 잘하는 비결이라고 귀에 따갑게 들어왔다. COVID 19로 촉발된 온라인 학습 환경 아래서 학습효과를 늘리기 위해 온라인 예습과 오프라인 심화학습을 결합한 플립러닝이 크게 전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모든 분야에서 실제로 작업이나 지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심지어 잊혀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깝게는 고려시대의 청자제작 기법의 맥이 끊기며 여러 장인들이 새로 그 기법을 알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고대인들이 현대 기술로도 만들기 힘든 유물과 유적들을 남긴 것을 보면서 미스테리로 여기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고대의 지식이 제대로 전수 됐다면 인류의 기술과 지식은 지금보다 훨씬 발전됐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많은 분야에서 지식은 왜 후대에 제대로 전수되지 않는 걸까. 기록을 자세히 남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여기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정보와 지식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대개 정보를 지식으로 잘못 이해하면서 오해가 발생한다. 정보는 의미가 있는 단편적인 자료이며, 지식은 이런 정보를 체계화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한마디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한다’는 우리 속담에서 구슬은 정보이고, 꿰는 것은 지식이다. 지식은 크게 사전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으로 구분된다. 우리가 지식을 기술할 때 대부분 사전적 지식으로 기록을 남기기에 실제로 적용을 하려면 절차를 몰라서 아예 어떻게 시작할지를 모르거나 숱한 시행착오를 하기 때문에 자세한 기록만으로는 실행하는데 부족하다. 더군다나 절차적 지식이 자세히 기록돼 있더라도, 문자로 남기거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암묵적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식전수는 더욱 어렵게 마련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암묵적 지식이 중요한 사업에는 도제제도가 성행했다. 그러나 도제제도는 많은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현대의 대량생산 체제로 오면서 많은 산업에서 계량화, 표준화를 통해 지식전수의 대량화를 추진했고 사전적 지식, 절차적 지식을 자세히 담아 이른바 매뉴얼화, 시나리오화를 확립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암묵적 지식 또는 내재적 지식을 외재적으로 표출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너무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항공분야에서는 고가의 시뮬레이션 비행 연습장치로 조종사들을 훈련시킨다. 항공분야 외에도 모든 분야에서 학습한 사전적 및 절차적 지식을 직접 체험을 하면서 암묵적 지식을 내재화하고 이 토대에서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 강조되는 창의성도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피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반복훈련과 더불어 체험학습을 통해 탄탄한 기초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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