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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 칼럼] 중국 디플레이션, 쉽게 볼 일 아니다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바로 중국 경제의 부동산시장발 디플레이션이다. 이 이슈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한국과 중국의 경기 동조성 때문이다. 우리의 대 중국 수출의존도는 2022년 기준 22.8%(홍콩 포함 땐 26.8%)로 수출 대상국 중 비중이 가장 높다. 그 다음인 미국은 16.1%에 불과하다. 중국 경제가 위기에 빠지면 한국 경제도 함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러한 중국발 경제 위기의 전이효과는 유럽 재정위기 직후에 경험한 바 있다. 2013~2015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5% 안팎으로 안정세를 유지했지만,같은 기간 중국은 7.8%에서 7.0%로 하락했다. 당시는 경제 위기 수준은 아니지만 내부적인 조정 과정에 따른 경착륙을 경험했다. 이 여파로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고 경제성장률도 2013년 3.2%에서 2015년 2.8%로 둔화됐다. 당시 현대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감안할 때 중국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은 0.5% 포인트 하락압력을 받는 것으로 추정됐다. 지금은 한국 경제가 중국 시장에 대한 교역과 투자 의존도가 그때보다는 낮아져 당시 만큼의 경제성장률 하락은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연쇄적인 경기 둔화 압력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최근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중국 경제성장률을 올해와 내년에 큰 폭으로 하향조정하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앞으로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실물 경제의 동조성보다는 금융시장이다. 실물경제의 위기 전이는 그나마 다소 시차를 두기 때문에 최소한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거의 시차 없이 위기가 전이된다. 금융시장에서는 위기가 인터넷을 통해 빛의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의 전이효과가 우려되는 이유는 금융지표가 한 국가 경제에 대한 대외적인 평판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발 디플레 쓰나미의 첫 번째 파도가 금융시장을 통해서 밀려 들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다소 진정되는 듯이 보이지만 주식시장에서의 동조성이 매우 높아졌다. 나아가 위안화와 원화도 최근에 부쩍 동조화가 강화되는 모습니다. 이러한 동조성은 시장에서의 단순한 공포 심리의 전이효과만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 중요한 정보를 가진 대규모 글로벌 자금들이 먼저 움직이는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서 중국 경제의 위기를 ‘강 건너 불 구경’식으로 취급해선 안되는 이유다. 무엇보다 한국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정부 차원에서 비상조직을 가동하는 등 비상계획 마련이 급선무다. 정부가 지난 8월 20일 기획재정부 주도로 산업통상자원부와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주요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중국경제상황반’을 운영계획을 밝힌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여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정부 차원을 넘어 민·관 합동의 비상 대응 체계를 갖춰야 한다. 여기에는 반드시 주요 금융기관이 참여해 협업 체제를 이뤄야 한다. 그리고 드러나지 않는 잠재적 위험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중국발 위기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 이후 다양한 중국발 리스크가 하도 많이 부상하면서, 중국 경제의 변동성에 한국 경제가 강한 내성이 생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시작되는 차이나 리스크는 그런 내성으로 감당할 수준을 훨씬 넘어설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사대우

[기자의 눈] 50년 만기 주담대, 은행 책임만 있을까

"50년이라는 기간이 왜 나왔겠어요? 55년도 있고, 60년을 할 수 있잖아요. 정부가 내놓은 상품에 맞춰 50년이라는 기간이 나왔죠. 은행이 자의적으로 내놓지는 못해요."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회피 수단이라고 규정 짓고 은행권을 압박하자 은행권 관계자가 한 말이다. 주담대 만기가 50년으로 길어진 것은 상생금융을 강화하라는 금융당국 기조에 발 맞추기 위해서인데, 은행들 잘못으로 몰아가니 억울하다는 것이다. 은행권에서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한 것은 지난해 6월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가계대출 정상화 방안에 50년 초장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이 계기가 됐다. 금융위는 금리상승기 취약차주 부실 가능성에 대비해 상환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로 50년의 초장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한다고 했다. 대출 만기가 길어지면 월 상환액이 줄어든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후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만기 50년의 보금자리론, 적격대출, 특례보금자리론을 잇따라 내놨고, 은행권에서는 지난 1월 Sh수협은행을 시작으로 DGB대구은행에 이어 하나은행, NH농협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이 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했다. 하지만 출시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수요가 몰리자 50년 만기 주담대는 가계대출 증가 주범으로 지목받았다. 금융당국 지목에 당황한 은행들은 일시적으로 판매를 중단하거나 나이 제한, DSR 강화 등으로 50년 만기 주담대를 손질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금융당국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주담대도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꼽았다. 인터넷은행 주담대가 비대면·저금리로 이뤄지는 만큼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 지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비용을 줄여 낮은 금리로 상품을 취급하고, 2030세대의 이용률이 높아 취급액이 늘어났다고 보는 인터넷은행들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50년 만기 주담대와 인터넷은행의 주담대로 수요가 쏠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책임이 은행에 전적으로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상품이 나오게 된 배경과 가계대출 증가 이유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은 금융당국 주도의 50년 특례보금자리론 출시 이후 대출 수요가 늘었고,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압박으로 인해 은행권의 가계대출 금리 인상에 제한이 있었다는 인식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은행의 성격상 이자장사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맞지만, 모든 책임을 지게 되면 은행이 억울해 하는 것도 이해될 만하다. dsk@ekn.kr

[이슈&인사이트]휴대폰 시장에 ‘공짜폰’은 없다

오래 전부터 정부는 이동통신 서비스 요금 인하와 소비자권익 향상을 위한 경쟁적 시장환경 조성 정책을 펴왔다. 대표적인 경쟁촉진 정책이 알뜰폰으로 불리는 MVNO사업자(가상이동망사업자)제도의 도입이다. 알뜰폰은 이동통신망을 가지지 못한 사업자가 기존 통신3사의 망을 빌려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이다. MVNO 사업자들은 네트워크 투자 비용이 들지 않기 때문에 이른바 ‘반값 요금제’를 앞세워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이런 이점 때문에 알뜰폰 시장 점유율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실제로 2022년 말 기준 알뜰폰 시장점유율은 16.7%에 달한다. 정부는 알뜰폰 도입 외에도 5G 중간요금제 확대와 제4통신사 설립 등을 추진 중이고,이동통신 사업자들도 어르신·청년 요금제 출시, 중간 가격대 요금제 추가 등을 추진하며 값싼 요금 정책에 부응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들어 가계 통신비가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는 점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가구당 통신비가 13만원을 넘어섰고 저소득층의 통신비 지출 비중도 15% 늘었다. 5G(5세대) 이동통신 가입자가 늘어나면서다. 여전히 이동통신요금제의 시장 가격이 높아 기본 단가를 낮추지 않으면 가계 통신비 인하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데이터 단가를 낮추고, 공공 와이파이 설치를 늘리고, 사용한 만큼 요금을 내는 후불 요금제를 도입하는 한편 데이터 단가 공개를 의무화해 경쟁을 촉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데이터 단가 후불 요금제를 도입하면 사용하지 않는 데이터만큼 요금이 줄어 결과적으로 통신비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3000만명이 가입한 5G 요금제의 하한선을 현행 월 4만원대에서 3만원대로 낮추라고 통신사에게 주문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5G 요금제의 기본 단가를 내려야 가계 통신비 부담을 확실하게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와이파이의 경우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요청을 받은 통신사가 공익 목적으로 제공하지만 품질이 낮고 유지보수가 취약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기간통신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무엇보다 이동통신시장에 경쟁 구조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 변화도 중요하다. 소비자들의 선택에 따라 경쟁적 경쟁적 시장구조 형성, 요금 인하, 다양한 서비스 도입, 기업 혁신, 품질 향상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시장을 들여다보면 소비행태는 여전히 무제한요금제를 선호,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자주 바꾼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에 따르면 5G 서비스 가입자의 85%가 데이터 제공량보다 적은 데이터를 사용한다. 결국 이 같은 소비자들의 소비행태로는 요금 인하와 경쟁적 시장환경 조성은 요원하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요금할인 받아 기기 할부금 없는 자급제폰 사용. 가족 결합 할인제 이용 등 통신비를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리점에서 비싼 요금제를 가입하면 지원금을 더 준다는 말에 24개월이나 36개월 할부로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할부로 구입하면 할부 종료까지 통신사 이동이 불가능하며 무조건 해당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요금제만을 사용해야 한다. 다른 이통 통신사에서 저렴한 요금제를 출시해도 약정 때문에 옮기지 못한다. 이에 비해 제조사 홈페이지를 통해 구입하면 카드 혜택을 통해 할인을 받을 수 있고, 구매 후 기존에 사용하던 유심칩을 넣어 사용하면 할부 이자를 줄일 수 있다. 다른 이동통신사에서 좋은 요금제가 나오면 쉽게 옮겨 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요금제 혜택을 바라기에 앞서 자신의 휴대폰 사용 행태를 철저하게 따져보고 거품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 휴대폰 시장에서 공짜폰은 없다.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

[EE칼럼] 건강한 에너지 시장이 에너지 안보의 핵심

1차 에너지의 해외의존도를 기준으로 에너지 안보를 따진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다. 기름값이 높을 때는 97%, 떨어지면 93%로 등락은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한다. 이처럼 객관적으로 불리한 여건에서 어떻게 에너지 안보를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안인지 그 근본적인 개념부터 재정립해야 한다. 지난 2013년 감사원은 정부가 형식적으로만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데 치중했으며, 정작 비상시에 국내로 들여올 수 있는 자원 물량을 확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내로 에너지 자원을 들여와야만 에너지 안보가 확보되는 것일까? 우리가 확보한 해외 에너지를 현지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파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더 효율적인 에너지 안보라고 할 수 있다. 돈에 꼬리표가 없으므로 수익성이 있으면 팔고 그 돈으로 다른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에너지 자원이 부족했던 일본은 석유 생산지인 인도네시아를 점령하기 위한 사전 군사적 조처로 미군 주력이던 진주만을 공격했다. 독일은 소련과 ‘독·소불가침 조약’을 맺어 제1차 세계대전의 실패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1941년 여름 소련을 침공하게 된다. 기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당시 소련 영토였던 카스피해 연안도시 바쿠에서 기름을 가져오는 것이었지만 이를 위해 소련 지상군의 주력이 있었던 레닌그라드, 모스코바, 스탈린그라드 등을 향해 진격했다. 일본과 독일이 미국과 소련을 공격해서 전선을 확대한 것이 2차 대전에서 패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다. 에너지 자원이 부족이 안보에 얼마나 치명적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자원은 많을수록 좋은 것일까? 20세기 말 소련의 붕괴는 또 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1973년과 1979년에 발생한 1·2차 오일쇼크로 가장 큰 횡재를 본 나라는 소련이었다. 국제유가가 무려 10배 이상 급등했는데 소련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 아니어서 생산량을 줄일 필요도 없었다. 엄청난 석유판매 수입이 들어왔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은 이슬람 혁명으로 위협적인 이란으로부터 사우디 아라비아를 군사적으로 보호했다. 그 대가로 석유생산을 최대한 늘리도록 설득해 국제유가가 그 이전의 1/3 수준으로 급락하는 저유가 시대가 도래한다. 석유판매 수입이 하루아침에 급감하면서 소련의 자금은 말라버렸고 그 여파로 소련은 1991년에 해체됐다. 소련은 풍부한 에너지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고, 약점을 간파한 미국이 저유가 정책으로 급소를 때리자 소련이 붕괴한 것이다. 에너지 자원이 많다고 에너지 안보가 확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빚어진 국제 에너지 가격의 급등으로 에너지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국가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건강한 에너지 시장이 뒷받침된 미국은 엑슨모빌이 68조8000억원이라는 사상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하는 등 생각보다 그 영향이 크지 않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도 전기와 가스요금을 대폭 올려 에너지소비를 줄이면서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산업은 시장원리보다 정부의 계획, 가격규제 그리고 공기업을 통한 명령과 통제로 운영된다. 가격신호가 작동하지 않아 한전은 50조원의 적자와 200조원의 빚을 안고 있다. 가스공사는 미수금이 12조원을 넘는다. 어렵게 들여온 1차 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하지만 송전선을 제때 건설하지 못해 수도권으로의 전력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역별로 전기요금이 똑같아 발전소와 송전선 건설을 회피하는 바람에 생긴 문제점이다. 경직적 계획으로 천연가스 장기도입이 결정돼 모자라는 물량을 비싼 현물거래로 들여오고 있다. 천연가스에 대한 사업자간 유연한 거래를 금지하고 있어 값싸게 천연가스를 들여올 기회도 놓치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시장이 건강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에너지의 생산 및 배달 인프라를 제때 건설하고, 필요한 소비자와 사업자에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건강한 에너지 시장의 구축이 에너지 안보를 위한 지름길이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데스크 칼럼] 가계신용, 위험관리 주력할 때

경기회복 기조를 이어가자니 금융권의 건전성이 우려되고 돈줄을 옥죄자니 내수위축이 염려다. 가계부채 관리를 둘러싼 딜레마다. 대출정책은 정부와 실수요자 간에 동상이몽이 계속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정책모기지론을 포함한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월 말 기준 1068조1000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원 늘었다. 잔액 기준으로 6월에 이어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고, 7월 가계대출 증가 폭은 2021년 9월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가장 컸다. 특히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완만하게 하락한 반면 우리나라는 가계부채 누증을 방지하기 위한 다각도의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당 비율이 계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작년 4분기 기준 스위스(128.3%), 호주(111.8%)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인 105.0%를 기록했다. 과거 초저금리 기조 속에 무리하게 빚을 내 주식시장에 투자하는 영끌, 빚투가 유행처럼 번진데다 코로나19라는 특수성 속에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생계형 대출까지 확대된 영향이다. 이 과정에서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하기 위한 규제가 조기에 도입되지 못한 부분도 아쉬움으로 남는다.가계부채를 잡기 위한 정부의 근본 기조는 확고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문제는 빚을 내서 자산을 불리려는 실수요자들의 의지가 정부의 의지보다 더 높다는데 있다. 최근 정부가 도입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두고 정부 스스로 가계부채 증가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가계부채 총량이 더 불어나서는 안된다는 정부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가계대출규제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며 부동산 대출규제의 단계적 정상화에 나섰다. 윤석열 정부 출범후 첫 가계대출 관리방안임과 동시에 금리상승이 진행중인 상황이었던 만큼 대출수요자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당시 발표안에는 취약차주 보호 정책의 일환으로 이자부담을 줄이고자 50년 만기 정책모기지를 도입, 보금자리론·적격대출 최장 만기를 40년에서 50년으로 확대할 계획도 포함됐다. 대출만기를 확대해 소득이 적은 신혼부부들이나 청년층의 대출금액을 늘려주고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정부의 복안이었다. 50년 만기 주담대 도입 초기만 해도 정부의 의중은 명확했다. 고금리 시대에 차주들은 금융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고, 당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강조하는 상생금융 정책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주택금융공사의 50년만기 정책모기지를 시작으로 올해 7월부터는 시중은행은 물론 지방은행과 2금융권인 보험사들까지 잇따라 50년 만기 주담대 상품을 판매하며 금융당국의 정책방향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부동산 가격이 바닥을 쳤고, 금리 고점론에 대한 기대감이 맞물리면서 50년 만기 대출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국이 뒤늦게 50년 만기 주담대를 DSR 규제를 우회하는 수단으로 지목하고, 그 책임을 금융사들에게 돌리면서 50년 만기 주담대도 금융시장에서 종적을 감추게 됐다. 가계부채 증가의 원인이 어느 한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당국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우리나라 가계부채가 잡히지 않는 것은, 정부와 차주 모두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적게나마 간과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가계부채를 확대하는 것은 현재 소비를 늘려 단기적으로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것이 과도하게 늘어나면 소비위축 효과가 부채 확대에 따른 소비진작효과보다 커지면서 장기 성장에 부정적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 속 가계대출 부실화에 대한 긴장감은 그 어느 때 보다 높아진 상황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가계는 적절한 규모의 가계신용 운영을, 정책당국은 경제적 파급효과를 신중히 살펴 근시안적 결정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해야 할 것이다.mediasong@ekn.kr

화웨이와 미국, 또 불거진 악연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중국이 화웨이 ‘쾌거’로 들떴다. 중국 최대 IT기업 화웨이는 8월 말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이 내장된 신형 휴대폰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했다. 화웨이의 휴대폰 업그레이드는 3년만이다. 새 칩은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이 설계하고, 중국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인 SMIC가 생산을 맡았다. 이를 두고 중국이 미국의 뺨을 때린 것이란 평가가 나왔다. 미국의 집요한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독자적인 반도체 혁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의 견해를 대변하는 환구시보는 "지난 3년간의 침묵 이후 화웨이가 마침내 최신 스마트폰을 출시했다"며 "이는 미국의 극단적인 억압이 실패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미국과 악연이 깊다. 반미 애국주의의 선봉에 선 기업이 바로 화웨이다. 중국은 화웨이를 앞세워 과연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 화웨이의 와신상담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부터 세계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를 정조준했다. 2018년 12월 캐나다 정부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했다. 화웨이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위반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 뒤엔 미국이 있었다. 멍완저우는 화웨이 창업자인 런정페이의 딸이다. 멍 부회장은 2년 9개월 간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2021년 9월 풀려났다. 중국은 온갖 고초를 겪은 ‘영웅’ 멍 부회장을 전세기로 모셔왔다. 관영 CCTV는 귀국 장면을 생중계했다. 런정페이는 틈만 나면 ‘상감령’을 언급한다. 상감령(上甘嶺)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가을 미군과 중국군이 오성산 일대 저격능선과 삼각고지에서 벌인 전투를 말한다. 중국은 이를 상감령 전투라 부른다. 상감령은 대미 항전 승리의 상징으로 통한다. 오성산은 현재 철원 맞은 편 북한 땅에 속해 있다. 2019년 5월 관영 CCTV와 인터뷰에서 런 회장은 "지금은 (미국에) 얻어맞아 밀려 내려갈 수 있지만 다시 일어나 고지에 올라 결국 정상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선 "단기 돌격전이 아닌 장기 지구전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싸울수록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월 중국 언론 매체들은 "우리는 달러가 아니라 인재를 비축하고 있다"는 런 회장의 말을 일제히 보도했다. 런 회장은 인민해방군 통신 장교 출신이다. 미국은 늘 중국 공산당이 화웨이 뒤에 있다고 의심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예 화웨이를 ‘스파이웨이’라고 불렀다. 미국은 화웨이 통신 장비의 사용을 금지했다. 나아가 한국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우방국 기업들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에 첨단 반도체 칩, 장비, 설계, 소프트웨어 등을 팔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다. 이런 난관을 뚫고 화웨이가 7나노미터 칩을 탑재한 새 휴대폰 모델을 내놨으니 중국이 흥분할 만도 하다. ◇ 중신궈지(SMIC)는 어떤 회사 ‘메이트60 프로’ 휴대폰에 탑재된 7나노미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SMIC가 만든 ‘기린 9000s’로 확인됐다. 지난 2000년 상하이에 설립된 SMIC는 중국 최대의 파운드리 업체다. 파운드리는 다른 데서 반도체 설계를 넘겨받아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을 말한다. 대만 TSMC가 대표적인 파운드리 업체다. 크리스 밀러 터프츠대 교수가 쓴 ‘칩 워’에 따르면 SMIC는 리처드 창이란 인물이 "골드만삭스, 모토로라, 도시바 같은 국제 투자자들로부터 끌어온 15억달러를 밑천 삼아 창업했다." 리처드 창은 중국 난징 출신이지만 대만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인물로, 미국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창은 (SMIC에서) 쫓겨났고 민간 투자자들 역시 중국 정부에 지분을 내놓게 되었다. 2015년에는 중국 공업정보화부 전직 관료가 SMIC의 새로운 회장으로 지명되면서 SMIC와 중국 정부의 관계를 분명히 했다." 요컨대 ‘메이트60 프로’는 화웨이와 SMIC가 대미 결사항전 각오로 개발한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 반도체 굴기에 성공할까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월 대만에서 열린 IT 박람회에서 "중국의 반도체 자립 능력이 충분하다"며 "중국을 얕봐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이번 기회를 활용해 자국 현지 기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계 미국인인 황 CEO는 중국을 세계 반도체 공급망에서 제외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에 부정적이다. "중국과의 칩 전쟁은 미국 기술 기업에 큰 피해를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을 제조하는 엔비디아는 AI의 시대로 총아로 떠오른 기업이다. 로이터통신은 5일 중국이 반도체 산업 활성화를 위해 3000억위안(약 55조원) 규모의 국가 지원 투자 기금인 ‘중국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조성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기술 개발은 연구개발(R&D) 자금 규모에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앞서 중국은 지난 2015년에 ‘제조 2025 전략’을 발표했다. 반도체 굴기가 핵심 과제 중 하나다.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까지 7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지금으로선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긴 시야로 보면 중국이 그 방향으로 한발씩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 반도체 굴기 쉽지 않을 것 반도체는 설계, 장비, 소재, 생산 등 단계별 공급망이 서로 얽힌 대표적인 산업으로 꼽힌다. 어느 한 나라 또는 한 기업이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다. 대만 TSMC의 창업자인 모리스 창 전 회장은 지난 8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과 반도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미국이 주도하는 한·일·대만 반도체 동맹을 언급하며 "우리가 (반도체 공급망의) 급소(choke point)를 잘 통제하고 있다. 이 급소를 쥐고 있는 한 중국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밀러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 "여러 나라에 걸친 공급망을 지닌 분야에서 기술 독립은 언제나 허황된 꿈일 수밖에 없다. 기계장치부터 소프트웨어까지 공급망의 다양한 측면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을 보유하지 못한 중국의 기술 독립은 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칩 워’)는 것이다. 밀러 교수는 대중 제재에 동참한 네덜란드 ASML 사례를 든다. ASML는 첨단 칩 제조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장비를 독점 공급한다. 이 장비는 웨이퍼에 반도체 회로를 새길 때 쓴다. "극자외선 시스템의 구성 요소 중 하나일 뿐인 레이저만 해도 완벽하게 구현된 45만7329개의 부품을 조립해야 만들어진다. 설령 그들(중국 스파이)이 ASML의 내부 전산망에 침입해 설계도를 다운받았다고 한들, 이토록 복잡한 기계는 파일 하나 내려받듯이 손쉽게 복사해서 붙여넣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틈날 때마다 ASML 경영진을 만나 극자외선 장비 공급에 공을 들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 ‘화웨이 쇼크’는 아니다 중국의 화웨이 ‘쾌거’는 냉정히 보면 그리 흥분할 일도 아니다. 파운드리 1위 TSMC와 2위 삼성전자는 이미 3나노미터 칩 시장을 두고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화웨이는 7나노미터 칩이다. 아직은 최첨단 기술력과 간격이 있다. 삼성전자는 2018년에 7나노미터 칩을 양산했다. 이번에 화웨이는 다시 미국을 자극했다. 당장 대중 강경파인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상무부는 화웨이와 SMIC에 대한 모든 기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대중 반도체 제재에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재차 면밀히 살필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SK하이닉스는 화웨이 휴대폰 신제품에 자사 메모리 반도체가 들어갔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랐다.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도입된 이후 화웨이와 더 이상 거래하지 않고 있다"고 서둘러 해명했다. 이어 "곧바로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에 신고했고,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향후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반도체 기업들은 대중 거래에 한층 더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이는 적어도 단기적으론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략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HUAWEI TECH-SMARTPHONES/SUPPLIERS 중국 IT기업 화웨이는 8월말 7나노미터 칩을 탑재한 신형 휴대폰 ‘메이트60 프로’로 출시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기자의 눈] 희망 보이는 저축은행, 건강한 긴장은 계속돼야

최근 국내 79곳 저축은행을 두고 금융감독원과 전문가(신용평가사)의 진단이 주목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79개 저축은행의 실적을 발표하며 "2분기 적자 폭이 다소 축소됐고, BIS비율도 규제비율을 상회하고 있어 손실흡수능력이 양호하다"고 진단했다. 저축은행은 상반기 96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러나 2분기 적자 규모는 434억원 손실로, 1분기 손실액(528억원)보다 소폭 감소했다. 총여신 연체율도 5.33%로 작년 말(3.41%) 대비 1.92%포인트(p) 올랐지만, 2분기 상승폭(+0.27%포인트)은 1분기(1.65%포인트) 대비 크게 둔화됐다. 상반기 전체로 보면 저축은행이 순손실을 기록했고, 연체율도 올랐지만, 위험수준은 아니라는 뜻이다.금감원은 하반기 경제 여건을 고려할 때 저축은행의 영업 환경은 다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과정에서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악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저축은행의 건전성 제고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신용평가는 금감원의 ‘낙관론’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분석을 내놨다. 부동산금융과 가계신용대출을 중심으로 자산건전성 저하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올해 하반기 이후 부동산금융과 개인신용대출 부실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게 한신평의 전망이다. 저축은행이 조달비용 증가, 높은 대손비용 부담 등으로 대출 공급을 줄이고 있는데다 차주의 열악한 신용도 등을 고려할 때 하반기 건전성이 부정적일 수 있다고 짚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는 저축은행 위기설이 수면 위로 부상한 올해 초부터 위기설을 진화하는데 집중했다. 저축은행이 2017년 이후 매년 1조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시현했고, 대부분 사내 유보했기 때문에 올해 상반기 손실액은 충분히 흡수 가능하다는 게 핵심이었다. 실제 최근의 실적 부진은 부동산 경기 침체, 조달금리 상승 등 대외적인 요인이 핵심으로, 회사 자체적인 경영 부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저축은행이 과거와 다르게 기초체력을 강하게 다지고, 충분한 손실흡수능력을 확보한 것은 과거 호실적 속에서도 언제든지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적당하고도 건강한 긴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금감원과 한신평 진단의 핵심은 하반기에도 저축은행이 자금조달 능력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하며, 건전성 제고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저축은행은 하반기 경기 상황 호전과 관계없이 언제든 부실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과거와는 다른, 더욱 디테일한 리스크 관리 능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E칼럼] 에너지공기업 정상화,정부 순환출자 해소부터

일반적으로 순환출자라고 하면 재벌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쓴다. A기업이 B기업, B기업이 C기업, C기업이 A기업의 지분율을 확보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는 방식이다. 적은 자금을 이용해 편법적으로 계열사 간에 꼬리물기 식으로 지분을 확보해 결과적으로 개별 기업 단위로는 실제 투자규모를 뛰어넘는 지분율을 변칙적으로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대다수 재벌기업들은 이런 식으로 계열사들을 통제해왔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와 에너지공기업간에 순환출자라는 해괴한 일이 존재한다. 정부가 대기업들처럼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도 아니고. 정부는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순환출자 방식을 활용할 수 없는 구조인데도 말이다. 최근 결산 기준으로, 대한민국 정부(기획재정부)는 산업은행의 지분 91.2%를 보유하며 독보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다. 이 산업은행은 한국전력 주식 32.9%을 보유하고,여기에 기획재정부가 18.2%를 추가보유해 과반수(51%) 지분을 갖고 한국전력을 좌지우지한다. 더 나아가 한국전력은 한국가스공사 지분을 20.47% 나 보유하며 계열사와 같은 지배구조를 형성하고있다. 한국가스공사도 여기에다 기획재정부(26.15%), 국민연금공단(7.56%) 지분을 포함해 정부 지분이 54.18%로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피라미드식 지주회사 소유구조가 기획재정부-산업은행-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순으로 사실상의 순환출자 구조로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전기와 가스요금으로 정권을 교체할 만한 강력한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주목해봐야 한다. 전기와 가스요금 통제 혹은 하락은 정부의 정권 유지와 재창출을 이끄는 데 기여하고,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은 정권 교체 위기를 일으킬 만한 위력을 가졌다.정권의 지지율을 뒷받침하는 게 한전과 가스공사의 요금 통제와 적자 재무구조라고 생각해보면 된다. 즉 정부가 한전과 가스공사의 지분을 일부 소유하고 한전과 가스공사는 정부의 정치적 지분을 일부 소유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어낸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와 가스요금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펴 정권을 창출, 즉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정부를 장악할 수 있다면 순환출자나 다름없다. 정부는 순환출자를 규제할 공정거래위원장 임면권도 갖고 있으니 매우 강력한 순환출자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리를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튀르키에 대선에서 당선된 에르도안 대통령이 가스 가격 전면 무료를 선언한 사례나, 볼리비아의 우고 차베스가 휘발유와 생필품, 무상교육, 무상의료, 저가주택 공급을 제공한 사례는 모두 지지율 향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이 감히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을 입에 올릴 수 없는 이유다. 굳이 여당의 역할을 하는 기간 내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필요가 없다. 더구나 그런 총대를 멜 필요성이 이전 정권에서 왔다고 하면 더 억울할 것이다. 이전 정부 귀책사유로 비난받는 한전공대 출자 혹은 경직된 전기료로 대규모 적자 논란을 겪는 한국전력을 두고, 현 정부가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이유다. 한국전력의 막대한 누적적자로 인해 주주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아예 나머지 49%에 해당하는 지분을 정부가 인수해 완전 국영화시켜 달라며 상장폐지 운동까지 벌어진다. 어차피 지분구조 상 정부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일하는 리더십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다. 한국가스공사는 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해 국내 도시가스 사업자와 발전회사에 공급한다. 그런데 국제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공공요금 인상 제약 등으로 한전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순환출자는 소유 구조와 경영권에 차이가 생기므로 시장경제의 대원칙인 투명경영과 자기책임성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투자자금이 적어도 되는 만큼 당연히 오너 입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분 맞물림 구조이겠으나, 민간부문에선 이미 IMF 이후 총수 일가가 일부 지분만으로 대기업 전체 집단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분 1% 마법’으로 비판받으며 금지된 지 오래다. 정부와 에너지공기업이 이 같은 경영 원칙을 어기면서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에너지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기자의 눈]선 넘은 고준위 방폐장 건설 지연…공장 멈춘다

[에너지경제신문 나광호 기자]"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너무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당장 시작해라." 개그맨 박명수가 ‘무한도전’에서 남긴 말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을 생각하면 이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화강암이 많은 국내 특성상 주민수용성만 확보할 수 있다면 부지 선정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온 야당에게 발목이 잡혀 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21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되면 다음 국회가 다시 입법 절차를 밟아야 하는 만큼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우려도 본회의장 문턱을 넘지 못하는 모양새다. 그 동안 원자력 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소화 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수력원자력이 월성원자력본부 내 건식저장설비 맥스터를 증설하면서 숨통을 돌렸지만, 올 2분기에만 3000다발이 넘는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등 2028년부터 고리 2~4호기와 신고리 1·2호기를 필두로 모든 원전 내 저장시설이 가득찬다는 분석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방폐장 건설에는 30년에 달하는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맥스터를 추가하는 임시방편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2037년까지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면 원자로를 비롯한 설비에 문제가 없더라도 발전소를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력은 석탄·천연가스와 함께 대한민국 전력 공급을 책임지는 ‘3대장’으로, 올 1~6월의 경우 8만6655GWh를 생산하는 등 30%에 달하는 비중을 차지했다. 정부와 민간이 태양광·풍력·연료전지 등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나, 아직 원자력의 3분의 1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기준 원자력 발전소를 멈출 경우 국내 공장의 절반 이상이 전력을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산업이 ‘셧다운’되는 셈이다. 탈원전을 넘어 탈산업을 우려해야 하는 수준으로, 탄소중립과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다른 곳으로 전가하면 가정과 학교로 가는 전기가 끊어질 수 있다. 국민경제를 위한 가장 경제적인 전력원을 끊겠다고 나서면서 ‘민생’을 부르짖는 모순은 이제 멈춰야 할 때다. spero1225@ekn.kr나 나광호 산업부 기자

윤활유 기업의 변신은 무죄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전기차가 대세가 되면 윤활유를 만드는 회사들은 뭘 먹고 살지? 걱정할 거 없다. 물론 전기차는 엔진오일이 필요 없다. 대신 모터와 배터리의 열을 식히는 냉각유가 필요하다. 자동차 기어 등 기계 사이의 마찰을 줄이는 윤활유도 여전히 필요하다. 윤활유 지크(ZIC)를 만드는 SK엔무브는 며칠전 ‘지크 브랜드 데이’ 행사를 가졌다. 여기서 박상규 사장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윤활유 수요가 꺾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섣부른 판단"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전기차도 모터를 냉각하고 기어 마찰 저항을 줄이는 윤활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SK엔무브는 전력 효율화 시장을 선점해 미래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내연기관 시대의 연비 효율화가 전기차 시대를 맞아 전력 효율화로 진화한 셈이다. 전력 효율화 시장은 오는 2040년 54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 각광받는 액침냉각 시장 전력 효율화 분야에서 요즘 핫 아이템은 액침냉각 시장이다. 액침(液浸)은 액체 곧 냉각유에 담근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Immersion Cooling이라고 한다. 데이터 센터를 예로 들어보자. 서버를 대량 가동하는 데이터 센터는 1년 365일 한겨울이다. 서버에서 나오는 열을 식히기 위해 에어컨을 줄기차게 가동하기 때문이다. 이를 공랭식이라 한다. 공기를 차갑게 해서 열을 식힌다는 뜻이다. 그런데 공랭식은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에어컨 돌리는 비용이 만만찮다. 열을 식히는 효율도 썩 좋지 않다. 2010년대 중반 암호화폐(가상자산) 채굴이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비트코인 가격이 폭등할 때라 너도나도 채굴에 뛰어들었다. 전력 소모가 큰 고사양 대용량 컴퓨터가 불티나게 팔렸다. 채굴용 컴퓨터는 전기 먹는 하마가 됐고, 컴퓨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도 골칫거리였다. 이를 계기로 액침냉각 기술이 새삼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데이터 센터 서버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냉각유 통에 통째로 푹 담그는 식이다. 액침냉각은 공랭식에 비해 냉각 효능이 탁월하다. 데이터 센터의 경우 전력 효율을 30% 이상 개선할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최근 반도체 기업들은 칩 크기를 줄이는 경쟁 대신 패키징(포장) 기술 향상에 힘을 쏟는다. 칩을 층층이 쌓으면 성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이를 패키징 곧 후공정이라 부른다. 이를테면 10나노 칩이라도 쌓아서 연결하면 최첨단을 달리는 5나노칩도 당하지 못한다. 문제는 역시 발열이다. 냉각유는 전력을 보관하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에서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ESS는 잦은 화재가 걸림돌이다. 에너지를 저장한 배터리에 자주 불이 붙기 때문이다. SK엔무브는 데이터 센터, ESS, 전기차용 배터리 등의 열관리를 위한 액침냉각 시장이 2020년 1조원 미만에서 2040년 42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자체 추산한다. ◇인텔이 투자에 앞장 글로벌 IT 업체 중에선 미국 인텔이 액침냉각 기술 개발에 앞장서고 있다. 인텔은 지난해 5월 액침 냉각유 기술 개발에 7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2009년에 설립된 미국 GRC(Green Revolution Cooling)도 액침냉각 기술에 특화한 기업이다. SK엔무브는 지난해 GRC에 2500만달러(약 334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윤활유 경쟁사인 GS칼텍스는 2021년 전기차 전용 윤활유 ‘킥스(Kixx) EV’를 출시했다. 에쓰오일(S-Oil)은 작년 10월 ‘S-OIL 세븐 EV’를 내놨다. 디지털 시대에 제때 적응하지 못한 사례로 흔히 코닥을 든다. 코닥은 카메라 필름 시장을 지배했다.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바람에 아뿔싸, 승자의 저주에 빠졌다.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적자생존을 말했다. 적응하지 못하면 그 생물은 도태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윤활유 기업들은 전기차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컴퓨터·배터리 열 관리는 미래 수익원으로 떠올랐다. 이들의 변신 노력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발언하는 박상규 SK엔무브 사장 박상규 SK엔무브 사장이 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지크(ZIC) 브랜드 데이’ 행사에서 미래 비전과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SK엔무브가 선보인 데이터센터 액침 냉각 시스템 SK엔무브 관계자가 5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에서 열린 ‘지크(ZIC) 브랜드 데이’ 행사에서 액침 냉각을 활용한 데이터센터 열관리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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