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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글로벌 녹색 중추 국가 도약을 위한 과제

지난 9월 20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 연설에서 언급하였던 그린 ODA(공적개발 원조)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기후 위기에 취약한 개도국을 지원하기 위해 기후변화 개도국 지원 금융기구이자 우리나라에 본부를 둔 녹색기후기금 (GCF)에 3000억 달러의 공여금 지원을 다시 확인했다. 또 그린 ODA를 통해 재생에너지, 원전, 수소와 같은 고효율 무탄소에너지 (CFE·Carbon Free Energy)를 국제사회의 누구나 폭 넓게 활용하도록 오픈 플랫폼인 ‘CF 연합 (Carbon Free Alliance)’을 결성하겠다고 천명했다. 녹색항로를 적극 개척하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엔총회에 앞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국제사회에 공여금 기여, 녹색기술과 인프라 분야에서 개발도상국 지원을 통한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녹색 사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유엔총회에서 밝힌 우리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 의지는 국제사회의 녹색 중추국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정부의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에서의 선도적인 역할은 과거 녹색성장 정책 추진을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 당시 정책-금융-기술의 녹색 트라이앵글을 구축하기 위해, 개도국을 지원하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GGGI) 설립을 주도했고, 유엔 기후변화 금융기구인 녹색기후기금 (GCF)을 유치했으며, 녹색기술 정책을 담당하는 현재의 국가녹색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개도국 지원을 위해 동아시아 기후파트너십이라는 ODA 프로그램도 추진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 하에서는 10대 기후기술을 정해 지원하고, 다소 급하고 무분별하게 외국사례를 받아들인 면은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은 기후변화가 국내 정책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게 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의 우려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글로벌 녹색 중추국가 추진을 위해서 앞으로 몇 가지를 좀 더 보완해야 한다. 첫째, 현재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분야의 개도국 지원은 정부가 주도하는 ODA의 영역에서 민간부문과의 협업을 강조하는 혼합금융(Blended Finance)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많은 개도국은 정치적, 제도적 위험이 많은 데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해 시행하기에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한 교육훈련과 함께 향후 민간부문이 개도국에 진출해 많은 기여를 하고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의 ODA 기관들은 아직 이런 역할을 중심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미비하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국제사회의 규범과 연대를 강조하는 중추국가로서 기후변화 분야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기후변화의 규범과 연대가 이뤄지는 중심에서 우리 역할을 키워가야 한다. 바로 인류 역사상 뉴욕을 제외하고 가장 큰 정상회의 3개가 모두 열렸던 유엔기후변화협약 체제를 중심으로 G20 등 관련 협력체제를 활용해야 한다. 기후통상 국가인 우리의 글로벌 녹색 중추국가의 실현의 출발과 끝은 이런 유엔 등 다양한 다자체제의 기후변화 관련 다양한 메커니즘을 활용하면서,인도·태평양 전략 등 구체적인 지역 및 소다자 체제를 통해 구체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와 녹색기후기금 등 우리가 주력하는 대상 협력기구들과의 협력의 초점은 우리의 가치와 표준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드는데 두어야 한다. 우리의 가치와 표준이 들어가지 않은 기여금 증액은 공허하다. 유럽과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와 표준을 만들어 가는 국제기구에 금전적 기여만 한다면 중추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의 위상 정립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표준과 가치를 국제사회에서 드높이는 글로벌 녹색 중추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져 가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기대한다.정서용 고려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E칼럼] 조삼모사(朝三暮四) 전기요금 정책 안된다

글로벌 에너지시장과 금융시장은 한국 상황을 별도로 배려할 이유가 없다. 유가는 100달러를 넘볼 기세로 치솟고 있고 천연가스는 역대 최저 수준이라 더 이상 내려갈 여력 없이 상승 힘만 잔뜩 축적해놓고 있다. 제롬 파월의 미 연준은 당분간 금리인하가 없으며 연내 추가적인 금리인상까지 예고한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고금리 추세는 당분간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할 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도 내놨다. 한국 경제를 둘러 싼 상황이 녹록치 않다. 한미간 금리 역전으로 외국자본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고, 여기에 추가한 채권가격 상승으로 자본흐름의 동맥경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요동치는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 위기로 이어지고, 이것이 미분양 증가와 함께 건설사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건설사의 부도는 주택공급 위축으로 연결돼 장기적으로 수급불균형을 초래해 집값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전 회사채발 구축효과는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든 한계상황을 금융시장에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 억제는 더 이상 한전이나 전력시장만의 이슈로 머무르지 않는다. 작년에 급등한 에너지 가격으로 40조원에 달하는 적자가 발생했는 데도 전기요금을 현실적 수준으로 올릴 수 없어서 한전은 회사채를 이미 대폭 발행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초우량 채권인 한전채의 발행이 시중 일반 회사채를 외면케하는 이른 바 구축효과를 경험했다. 최근 시중에서 은행채 발행 규모 역시 큰 폭으로 늘었다. 은행채 순발행액은 지난 8월 약 4조원에서 이달에는 7조원을 넘어섰다. 한전채와 더불어 우량채권인 은행채 순발행 증가는 시장금리를 상승시키고, 이는 가계대출이나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의 이자비용 부담증가로 이어진다. 작년 말에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 전기요금 정책은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기초했다. 연초에 당정은 2023년 새해 물가 전망을 ‘상고하저’라는 시나리오 아래서 전기요금 인상폭을 제한했다. 하지만 하반기에 오히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치솟고 있어 한전 부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정부예산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200조원의 한국전력 부채를 최우선순위로 관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거시금융, 통상, 심지어 국민의 노후 밥줄인 연금에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국민연금이 한국전력 주식의 6.59%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추가해 미수금으로 역시 천문학적인 적자를 껴안고 있는 한국가스공사의 부채도 해결돼야 한다. 금융과 부동산, 에너지·전력 시장 간에 이와 같은 연결성 복잡계는 한 부문에서 촉발되는 네거티브 충격이 걷잡을 수 없는 전방위적이자 총체적인 위기로 확대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더 이상 전기요금 인상을 미적거리면서 이미 한계상황에 있는 이들 시장 상황을 추가적으로 악화시키는 오판을 내려서는 안 될 것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하는 정치권이나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정부의 고심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 억제로 해결될 수 있을 만큼 우리 경제의 체력이 더 이상 튼튼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전기요금 인상이 억제될 때에 각 가정에서 전기요금은 몇 천 원 절약할 수 있겠지만, 한전채 발 금리상승의 이자비용 부담은 수만 원에서 십 수만 원으로도 증가할 수도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전기요금 인상 관련 소득취약계층이나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에게는 선별적인 비용부담 완화 정책을 펴면된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재난지원금 등도 선별적으로 집행한 IT 강국인 한국에서 전기요금을 굳이 보편적 복지와 공공요금 규제 수단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 정책의 파급효과는 복잡한 연결고리를 타고 승수효과에 의해 훨씬 큰 규모로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앞 주머니로 전기요금은 덜 내지만 알게 모르게 뒷주머니로 이자비용을 더 부담하게 하는 ‘조삼모사’의 전기요금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박호정 고려대학교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이상호 칼럼] 러북 밀착과 동북아 정세 변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9일간의 러시아 방문 일정을 마치고 만족한 모습으로 평양으로 돌아갔다. 이번 방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으로 부족해진 탄약과 장비를 북한에서 공급받기 위해 추진했다고 알려졌다. 대화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항상 회의 장소에 늦게 나타나던 푸틴이 김정은 보다 무려 30분이나 먼저 와서 대기할 정도로 마음이 급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러북간 정상의 만남으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북한의 지원 대가로 러시아가 북한에 최신 무기와 각종 첨단 기술을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체면을 구겼지만, 러시아는 여전히 군사 강국이면서 군사기술 대국이다. 전차, 헬기 등 일부 러시아제 무기의 성능이 과대포장 되고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대공방어체계, 자살 드론 등 첨단 장비는 우수하다고 알려진다. 문제는 탄약 부족 등 러시아의 전쟁 지속능력 부재로 지루한 소모전 양상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토 등 대부분의 서방 군대가 당면한 도전으로 이들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최근에 폴란드를 비롯해 여러 국가에 무기 수출로 대박을 터뜨릴 수 있었던 이유가 분단 준 전시 국가로 탄약 등 각종 무기와 보급품 재고가 충분해 빠른 물자 공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병영국가인 북한 역시 대규모 군수물자를 비축했다. 한국이 방산 수출로 큰 이익을 봤듯이 북한으로서도 한몫을 챙길 기회다. 문제는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최신 무기 수출이나 기술 이전이 동북아 전략 지형을 바꿀 만큼 민감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핵과 미사일 관련 기술의 이전은 중장기적으로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다. 러시아는 무기 수출을 전략적 지렛대로 사용해 왔다. 소련 붕괴 이후 외화 획득을 위해 무기 수출에 집중하면서 중국과 인도 같은 아시아 지역 국가를 지원했다. 초기에는 러시아가 이들 국가에 주로 무기 완제품을 판매하며 상호 이해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다 경제가 더 어려워지자 중국과 인도의 전략적 고성능 무기와 최첨단 핵심 기술 이전 요구에 굴복했다. 러시아도 무기 판매 시장 유지를 위해 전략적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첨단 무기 판매와 기술 이전을 수용하는 등 스스로 문턱을 낮췄다. 서방 입장에서 가장 껄끄러운 것은 중국을 강력한 패권 국가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결국 러시아는 경제 등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 힘의 균형과 역학의 균열을 초래했다. 러시아는 서방과의 긴장을 아시아로 확산하며 국제적인 ‘갈등 수출국’이 됐다. 이는 서방이 인도를 중국 견제 세력으로 만들고, 인도가 미국에 접근해 아시아·태평양 안보 공동체를 구성하더라도 해결되기 어려운 지구촌 안보 난제가 됐다. 이번 북한과의 밀착도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무기와 기술을 넘겨주면 동북아 지역 힘의 균형이 깨지고 국제 질서도 복잡해진다. 이로 인해 서방의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정책을 짜기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더군다나 러시아가 당장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에서 영향력 강화를 노릴 것이다. 아시아 지역이 전략적· 경제적 중심지가 됐고 러시아는 여기서 소외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러북 정상의 만남은 수세에 몰린 러시아가 북한에 손을 내민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북한 지원을 통한 동북아 지역 이익 수호 및 영향력 확대, 중국 견제 및 대 서방 연합전선 구축 등 다중 목표 달성을 위한 중장기 전략적 포석이다. 북한은 이 기회에 러시아와 중국 사이를 오가며 국익 극대화를 꾀할 것이다. 북한은 이미 1960~1970년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전개하며 많은 이익을 챙겼다. 이후 러시아 쇠퇴와 함께 중국에 종속됐던 북한으로서는 자존심과 실리를 동시에 살릴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여러모로 북한에는 좋은 일이다. 이 상황이 한국에겐 커다란 도전이다. 북한은 러시아의 최신 기술을 가지고 핵 무력을 비롯한 전력 강화를 통해 김정은 체제를 굳히고 4대 세습 추진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과거 러시아 행보를 보면 북한을 지원하지 말라는 한국과 국제사회 설득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과거 냉전 시대와 유사한 동서 진영 간 대결 구도가 현실화된 상황에서 한국은 다시 한번 국제 갈등의 최전선에 서게 되는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운명에 처했다.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교수

[기자의 눈] 경마를 언제까지 사행산업에 가둘 건가

[에너지경제신문 김철훈 기자] 지난 10일 경기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국내 유일의 국제경마대회 ‘제6회 코리아컵·코리아스프린트’가 일본 경주마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경마장 관람대 내 2040세대 전용 라운지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홍콩 등에서 온 외국 관람객들이 서로 태극기와 자국 국기를 흔들고 소리치며 자기네 국적의 경주마들을 응원하는 모습이 보여 국제대회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울마주협회도 일본 우마무스메 프리티더비(실존 경주마를 의인화해 육성하고 경주에서 승리시키는 일본의 경마 온라인게임)의 유저 30여명을 현장에 초청해 한국 경주마를 소개하는 등 경마 국제교류에 힘을 보탰다. 올해 대회에는 일본 중앙경마 다승 1위 기수와 세계 상금 1·2위 대회인 사우디컵과 두바이월드컵에서 올해 나란히 5위를 차지했던 일본 경주마가 참가하는 등 세계 수준의 경주마와 기수가 참가했다. 앞서 지난 2019년 제4회 대회 때는 가장 가까운 경마선진국 일본이 참가하지 않았고, 지난해 제5회 대회에도 세계 최상위의 해외 경주마들이 참가하지 않아 일부 경마팬들은 당시 한국마사회가 ‘노 재팬(일본상품 불매운동)’ 분위기와 한국마 성적을 감안해 일부러 해외 경주마를 초청하지 않았다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코리아컵·코리아스프린트를 명실상부한 국제대회로 키우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세계랭킹 1위 경주마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을 비롯해 해외 경마선진국의 최고 경주마들을 초청해 대회 수준을 높이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경마선진국과 실력 격차가 엄존하는 국내 경주마의 발굴 및 육성도 시급하다. 이날 두 경주에서 대회 총상금 30억원 중 일본이 우승상금 등 22억원을 쓸어가면서 우리 마주와 기수, 국산 경주마 생산·판매자들은 상금 획득과 국산마 판매 기회를 놓친 것에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경주마 육성뿐 아니라 국내 경마장으로 해외관람객 적극 유치와 국내 경주실황 해외수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경마산업 인프라 투자와 지원 제도의 과감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 특히, 경마업계가 요구하는 다른 사행산업보다 과도한 2중·3중의 규제 해소는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국회가 경마를 더 이상 사행산업이 아닌 국민레저산업, 선진경마국과 어깨를 겨루는 글로벌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 kch0054@ekn.kr김철훈 기자 김철훈 유통중기부 기자

[데스크 칼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처신과 품격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가 거침없다. 대통령 재임 시절보다 더 왕성하다. 정치 전면에 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통령 재임 중 "퇴임 후 잊혀진 삶을 살고 싶다"던 자신의 희망사항과는 전혀 딴판이다. 경남 양산 사저 인근에 개인 사비를 들여 ‘평산책방’을 열고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를 개봉했다. 사사건건 정치적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낸다.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파행 운영 등이 쟁점으로 떠오르자 이번에도 가만있지 않았다. 최근에도 문 전 대통령의 그런 두 일정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9.19 평양 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을 찾았다. 퇴임 이후 첫 공식 행사 참석이다. 9.19 평양 공동선언의 핵심은 상대방을 겨냥한 군사적 적대행위를 모두 중지한다는 ‘9.19 군사합의’다. 문 전 대통령은 단식 도중 건강 악화로 서울 면목동 한 병원에 입원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같은 날 방문했다. 퇴임 후 경남 양산의 사저에 줄곧 머물러오다 모처럼 서울 방문하는 길에 두 일정을 하루에 모두 소화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이 두 일정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을 가진 지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또 이 대표의 단식 20일째이자 이 대표가 건강악화로 입원한 지 이틀째이고 법무부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을 국회에 두 번째 제출한 날이기도 했다. 김정은과 푸틴은 북-러 정상회담에서 양국의 무기거래와 군사협력 등 내용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시로 미사일을 펑펑 쏘며 도발을 서슴지 않아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김정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공으로 국제사회 비난과 규탄의 대상인 푸틴이 손잡은 것이다. 남북 9.19 군사합의를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인류의 평화를 깨뜨린 장본인들이다. 문 전 대통령은 그런 김정은과 푸틴의 악수 장면을 목도하고 일주일 뒤 9.19 군사합의 기념식에 직접 참석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최근 폐기 논란이 일고 있는 9.19 군사합의를 ‘최후의 안전핀’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정부에서 안보 성적도, 경제 성적도 월등히 좋았다"며 ‘안보는 보수정부가 잘한다’ ‘경제는 보수정부가 낫다’는 ‘조작된 신화’라고 꼬집었다. 문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임 당시 이룬 남북 평화 및 화해 성과를 5년 만에 기념하고 자축하는 것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시기가 부적절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짝사랑도 때가 있고 원칙이 있는 법이다. 우리의 안보와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북-러 정상회담 직후라면 전직 대통령의 처신은 신중했어야 했다. 당초 잡힌 일정이라도 취소하는 게 옳았다. 굳이 기념하고자 했다면 영상축사 또는 축전으로 대체하는 것도 방법이었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이 대표 단식 병원 방문도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빨리 기운 차려서 다른 모습으로 다시 싸우는 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에도 이 대표 단식 진정성 및 체포안 처리방향에 대한 당 안팎의 논란이 한창일 때였다. 이 대표는 검찰로부터 소환수사 통보를 받은 상황에서 단식에 돌입했다. 단식의 명분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원내 권력을 장악한 거대 정당의 대표가 극단적인 투쟁 방식의 단식을 선택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민주당은 국회 재적의원 298석 중 과반을 훨씬 넘긴 168석을 차지하고 있다. 단식 말고도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국정을 얼마든지 견제하고 바로잡을 수단을 가졌다. 실제로 민주당은 그간 우리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국회에서 막강한 거대 야당의 힘을 유감없이 행사했다. 입법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조직 또는 정책·예산 운영 등을 제한했다. 국무위원 탄핵안 또는 해임안을 잇따라 가결했다. 걸핏하면 특검 도입 및 국정조사·청문회 실시를 위협하기도 했다. 이 대표가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 윤석열 정권이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면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탄핵 등의 방식으로 대통령을 몰아낼 수 있다. 우리 국회는 이미 현 민주당보다 적은 야당 의석으로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한 적이 두 번이나 있다. 설령 국회가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 주도로 민주주의를 파괴한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하면 대선이든 총선이든 선거로 해당 정권을 심판할 수 있다. 그런 절차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고 그 절차를 따르지 않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다. 개명천지 야당 주도의 국회에서 그 야당 대표의 단식을 야당 지지자 말고 민주주의 수호 투쟁이라고 누가 인식하겠는가. 이 대표는 여러 차례 불체포 특권 포기를 공언하고 검찰 수사나 있을 수 있는 법원 구속영장 실질심사에도 당당하게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단식 중 검찰의 소환수사 관련 출석날짜를 편의적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고 나아가 단식에 따른 건강악화 속도조절을 의심하게 하는 정황들도 솔직히 엿보였다. 결국 이 대표의 체포안은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민주당 내 40표 가까운 이탈표가 발생했다. 이 대표는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고 구속의 기로에 섰다. ‘방탄’ 논란으로 시끄러웠던 단식도 급기야 24일째를 맞은 지난 23일 중단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그런 이 대표를 찾아 단식 중단을 설득했다. 목숨을 걸고 하는 단식을 멈추도록 권유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보이고 인간적인 도리이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인 지난 5월 10일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의 평산책방을 방문한 것에 대한 답방일 수 있다. 국민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필요와 의지만 중요하다고 보는 정무적 감각을 탓 하는 것이다. 이 대표 단식의 성격은 다소 달랐다. 단식의 주체가 제1야당 대표이기 전에 10가지 안팎의 중대 혐의를 받는 피의자다. 그 단식 자체도 이미 첨예한 진영대결의 대상이자 현장이 됐었다. 문 전 대통령이 그런 단식을 아무리 만류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 대표 단식 병원을 직접 찾은 것은 스스로 진영싸움의 전사(戰士) 참전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전직 대통령이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는 뜻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의 단식 이틀째인 지난 1일 이 대표에 격려 전화도 했다고 한다. 문 전 대통령은 4~5분 가량 이어진 통화에서 이 대표에 "걱정이 되기도 하고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어 전화를 드렸다"며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너무 심해 제1야당 대표가 단식하는 상황이 염려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와 함께 윤석열 정부에 정권을 넘겨 준 지난 대선 패배의 공동 책임자다. 그 책임의 멍에를 평생 지고 살 것까지는 없다. 그렇더라도 전직 대통령이라면 적어도 자중하고 염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마땅하다. 지미 카터(98)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대통령의 교본이다. 무능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아 미국 정치에서 드물게 재임에 실패했지만 퇴임 후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미국의 땅콩 산지로 유명한 곳이자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고향 플레인스로 돌아갔다. 퇴임 이듬해인 1982년 비영리단체인 카터센터를 설립, 전 세계 저소득층을 위한 집짓기운동인 ‘해비타트’(habitat) 활동을 펼쳤다.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1994년엔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담판을 통해 제네바합의의 물꼬를 텄다. 카터는 그 공로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백악관 생활을 경제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며 미국 전직 대통령들이 해온 고액 강연이나 회고록 출간 등 경제활동도 거부했다. 문 전 대통령은 요즘 왜 그럴까. 현행 헌법상 전직 대통령의 대통령선거 도전은 불가능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에 묶여 있어서다. 개헌의 단골메뉴인 대통령 중임제가 도입되지 않는 한 문 전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직에 오를 수 없다. 그런데도 문 전 대통령의 최근 모습을 보면 다시 정치하려는 것 같다. 대선에 또 나가는 것만 정치하는 게 아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 수 있다. 벌써부터 문 전 대통령이 친문재인 세력의 구심점으로 나섰다는 얘기들도 흘러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문재인 정부 성과 ‘흠집 내기’나 ‘흔적 지우기’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 사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이념 공세’ 또는 ‘정책 뒤집기’가 지나친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문 전 대통령의 최근 처신에 대한 비판이 그가 억울하더라도 참으라는 게 아니다. 시기와 형식을 가려서 대응하라는 것이다. 절제가 필요할 때다. 전직 대통령 본인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있으면 나설 측근 참모들은 많지 않는가. 그런 충성스러운 참모들조차 없다면 본인의 덕이 부족한 점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들은 대체로 불행했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말에도 40% 넘는 지지율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역대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치적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다. ‘잊혀진 삶’을 언급한 대통령 치고 너무 의외다. 막상 퇴임하니 잊혀지는 게 그리 두려웠는가. 그렇지 않다면 퇴임 또는 탄핵 후 수사를 받고 철창 신세 등을 면치 못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떠올랐는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김대중·이명박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실패한 김영삼·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렇지 않았다. 후임 대통령 시절 감옥을 가는 등 온갖 시련과 수모를 겪었어도 비교적 조용한 퇴임생활을 했다. 물론 일부 전직 대통령이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점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현직 대통령이 과거처럼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해 오찬 또는 만찬을 함께 하며 자문하던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된 것 같다. 현직 대통령의 전직 대통령 초청 오찬 또는 만찬은 국가 통합 및 화합의 필요성이 있을 때 협조를 당부하거나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경험과 지혜를 얻는 자리였다. 문 전 대통령은 우리의 불행한 대통령 역사를 딛고 전직 대통령의 품격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부디 자중했으면 한다.구동본 프로필 사진 편집 구동본

[김성우 칼럼] 자발적 탄소시장, 본질은 투자다

지난 6월 마이런 숄즈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향후 탄소배출권 시장이 큰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생금융상품 가격의 이론적 기준을 만든 그는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탄소배출권은 탄소감축 실적을 제3자로부터 인증 받아 이를 주식처럼 거래하도록 만든 가치상품이다. 이는 저탄소 연료로의 전환, 재생에너지 생산, 삼림 보존 및 조성, 탄소 포집·저장·활용 등을 통해 회사 밖에서 탄소를 감축한 경우도 포함되기 때문에 회사 배출량을 상쇄하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숄즈 교수는 다만 탄소감축 실적을 인증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탄소배출권은 유망한 수단이지만 엄격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취지다. 글로벌 탄소시장은 정부가 감축을 의무적으로 규율하는 규제적 탄소시장(Compliance Carbon Market)과 민간이 자발적으로 감축을 주도하는 자발적 탄소시장(Voluntary Carbon Market)으로 대별된다. 모건 스탤리는 자발적 탄소시장의 경우 2022년 기준 20억달러에서 2030년에는 1000억달러로 50배 가량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기술적·비용적 한계로 회사내 감축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이 자발적으로 선언한 ESG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증 기준이 비교적 유연하고 비용도 저렴한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규제적 탄소시장에서 인정되지 않는 신기술 개발 및 제품 혁신을 통한 탄소감축도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는 점도 감안했다. 보스톤 컨설팅이 2022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0개 글로벌 기업리더 중 응답자의 52%가 2030년까지 탄소관리 포트폴리오에서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비중이 압도적일 것이라고 응답해 이를 뒷받침 한다. 국내에서도 올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자발적 탄소시장 활성화를 위해 감축실적 인증을 시작했다. 증권사들도 경쟁적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거래를 중개하는 업무뿐만 아니라 감축사업 투자, 거래 플랫폼 운영 및 파생상품 거래까지 확장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에 ‘자발적 탄소배출권에 대한 자기매매 및 장외거래 중개업무‘를 부수업무로 신고한 증권사는 이달 현재 9곳이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매출액 10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 10곳 중 7곳은 자발적 탄소시장이 탄소감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의 문제 제기 흐름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발적 탄소시장에서 인증된 배출권의 감축실적에 대한 진위여부다. 지난 8월 캠브리지대학 과학자들은 사어언스지를 통해 자발권 탄소배출권을 발급한 세계 26개 산림전용 및 황폐화 방지 사업을 분석한 결과 실제 감축량과 인증된 감축실적간에 차이가 크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선물거래위원회도 환경사기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올 여름부터 탄소시장 사기에 대해 신고를 받고 있다. 자발적 탄소배출권을 주도적으로 구매해 왔던 델타항공, 네슬레, 케링 등 글로벌 기업들도 최근 배출권 사용을 중단하거나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탄소가격도 올 6월 기준 톤당 8.2달러로 지난해 8월 대비 약 11% 하락했다. 이와 관련해 민간 주도의 자율 감독기구들은 지난 3월 자발적 탄소배출권 인증·판매 핵심원칙을, 6월에는 구매·사용 실무수칙을 각각 내놨다. 배출권 공급자에게 제3자 검증과 추적을 요구하고, 구매자에게는 회사의 기존 감축목표를 초과 달성한 부분에 배출권을 사용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유의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발적 탄소배출권의 품질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감축실적을 인증하는 기관이 충분한 경험과 권위를 갖고 있는지 살피고, 스스로도 품질을 판단할 역량을 갖춰야 한다. 둘째, 자발적 탄소배출권은 회사내 감축노력에 추가되는 보조적 수단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회사내 감축노력이 우선이고, 이 노력이 배출권의 활용으로 희석되거나 가려지지 않아야 한다. 셋째, 자발적 탄소시장 참여를 통해 얻는 효용과 함께 감축책임 측면의 비용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감축투자 과정에서 수익이 수반될 수는 있지만 본질은 감축 비용의 투자다. 고품질의 배출권을 보조적 수단으로 책임감 있게 사용하는 것이 슬기로운 자발적 탄소시장의 활용법이다.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기자의 눈] 3당 흡수

에콰도르 해안에서 서쪽으로 약 926㎞ 떨어진 태평양의 섬 갈라파고스. 화산과 바다가 만나 인간이 절대 살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저주의 섬’으로 불린다. 갈라파고스섬의 지리적 특성은 ‘고립’이다. ‘외로운 섬 하나’로 보일 수 있지만 갈라파고스섬이 가진 고립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다양한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면서 섬 자체를 진정한 자연사 박물관으로 거듭나게 했다. 인간이라는 거대 포식자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갈라파고스 동식물들이 그 안에서 생존할 수 있었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내년에는 국민들이 22번째 국회라는 섬을 만드는 시기다. 총선이 6달 앞으로 다가오자 정치권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선거는 국민들에게 혁신의 정치와 새로운 정치인을 기대하게 만드는 축제다. 국내 정치는 지금까지 거대 양당 체제로 고착화 돼왔다. 최근에는 양당의 대립각이 뾰족해지면서 국민들도 강 대 강 대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정치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희망하는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내년 총선을 향한 거대 포식자들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최근 원내 의석 수 한 자리에 불과한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을 인재로 영입했다. 국민의힘은 "보수와 중도를 아우르는 연대체를 만들자"며 시대전환에 합당을 제안했다. 시대전환의 슬로건은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다.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창당 정신에 어긋나는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20대 대선에서도 3당을 흡수했다. 마지막 후보자 TV토론까지 마친 뒤 다음날 아침 갑자기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깜짝 단일화’를 했다. 합당에는 ‘정치 이념을 떠나 인재를 영입한다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라는 명분이 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결국 거대당에 흡수된 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창당을 마친 신당들도,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는 국민들도 동력을 잃기 충분하다.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건 획일화나 단일화가 아닌 다양성이다. 거대당이 여러 층을 아우른다는 핑계로 합당을 이어간다면 이는 정치의 다양성을 앗아가는 반(反) 민주적인 정치활동이다. 다양성이 필요하다면서 왜 굳이 ‘우리 당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라고 고집해야 하는가? 갈라파고스는 고립됐기 때문에 다양한 종의 생물들이 생존할 수 있었다. 고립되지 않았더라면 거대 포식자들에게 먹혀 종의 다양성이 사라졌을 것이다. 정치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담는 큰 그릇이어야 한다. 종의 다양성처럼 인간의 의식이나 철학은 다양하다. 그래서 의회에서도 여러 목소리를 낼 다양한 정당이 나와야 한다. 이는 거대당이 단순히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충족시킬 수 없는 부분이다. 오히려 여러 목소리를 낼 다양한 정당이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의회정치가 힘써야 한다. claudia@ekn.kr오세영 기자수첩

[이슈&인사이트] PF굴레에 갇힌 주택건설 시장

아파트, 오피스텔, 주상복합 등의 부동산 개발 사업의 자금 조달 방식으로 주로 쓰이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roject Financing)은 일반적으로 브릿지론, 본 PF, 중도금 대출, 잔금대출 순서로 진행이 된다. 그리고 각 진행과정에서 자금이 유동적으로 연계돼 단계마다 자금회수와 신규 공급이 이루어지면서 부동산 금융과 건설 자금이 흘러간다. 자금을 대는 증권사, 금융기관 등은 해당 사업과 사업 시행자에 대한 PF대출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PF대금의 회수를 위해 시행자에게 시행목적이 되는 부동산을 신탁하도록 하고, 시공사의 보증을 요구한다. 부동산 시행사업의 수익구조는 분양수익금과 사업에 지출된 비용을 비교해 분양수익금에서 사업비용을 뺀 순수익이 크면 클수록 시행자의 이익이 커지는 구조다. 이에 따라 분양률이 높을수록 시공사는 공사대금을 온전히 회수할 수 있고, 새로운 주택공급사업을 벌일 ‘실탄’을 확보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발 고금리 및 원·달러 환율 상승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파동 등으로 철근, 시멘트 등 건설 원자재 가격이 치솟아 원가가 크게 오르면서 시공사는 시행자에게 공사대금 추가 증액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행자 역시 고금리에 따라 PF대출에 대한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마당에 시공사의 공사대금 증액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편인 데다 주택경기 침체로 분양마저 어려워지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모든 PF사업장으로 확산되며 주택건설시장에 PF발 동맥경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에 이뤄진 PF대출의 변제가 어려워지며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고, 제1금융권은 물론이고 새마을금고 증권사 등 PF 대출 중단사태로 이어진다. 수익성이 좋은 곳으로 평가되던 노른자위 시행사업 PF대출 마저도 선순위 대출금리가 10~12%에 달하고, 중·후순위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치솟는다. 분양경기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비용과 금리마저 치솟아 사업성을 확보할 수 없으니 재개발·재건축 사업시행자 입장에서는 손해보고 사업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PF보증을 선 시공사도 공사대금의 회수가 지연되면서 신용평가등급이 떨어지는 등으로 자금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PF자금의 경색은 재개발·재건축사업의 중단으로 이어지고 수급난을 가중시켜 결국에는 시장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표심잡기용으로 공급확대를 통한 주거안정을 공약의 단골 메뉴로 앞세운다. 윤석열 정부도 지난해 8월 16일 규제완화를 통해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과 민간도심복합사업 등 수도권 위주의 민간개발사업을 촉진해 5년간 270만가구의 주택을 공급하는 내용의 ‘국민주거안정 실현방안’을 내놨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실적은 참담하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주택 분양 및 준공물량이 각각 28만7624가구, 44만3370가구에 그쳤다. 올해는 7월까지 공급물량은 7만8631가구에 불과하고, 준공물량도 23만758가구에 그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올해 1월 PF보증제도 개선을 통해 10조원을 공급하고, 준공 전 미분양사업장에 대한 보증지원으로 미분양대출보증을 신설해 5조원을 추가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올해 4월을 기준으로 기존 PF대출 상환 용도의 PF보증 실적은 1건에 불과했고, 미분양 대출보증은 발급실적이 없다. 이렇게 보증실적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건설업계는 HUG의 대출 심사기준이 지나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시행자가 토지비의 10%와 총사업비 2% 중 큰 금액을 먼저 투입하고, 시공사는 HUG자체 신용평가에서 BB+등급 이상·시공능력평가순위 500위권 이내로 책임준공이 가능한 경우 등의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사업부지를 HUG가 지정하는 부동산 신탁사에 신탁해야 하고, 외부전문기관으로부터 사업성분석보고서를 받아 별도심사를 거쳐야 하는 등 지나치게 가혹해 사실상 ‘하지 말라는 거와 다름없는 시늉만 낸 지원책’이라는 볼 멘 소리가 나온다. 사업시행자와 건설사의 도산 위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도 대출 부실화 방지에만 신경 쓸 뿐 PF정상화에는 정부나 공기관, 금융기관 누구 하나 관심을 갖는 이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건지,애써외면하는 건지. 주택 건설 활성화와 대출부실화 예방이라는 두 토끼를 잡을 정교한 부동산 PF 정상화 정책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박지훈 비욘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E칼럼] 버려지는 신재생에너지,속도조절이 답이다

에너지자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인 우리나라에서 깨끗한 에너지원인 전력이 아깝게 버려지고 있다. 전력당국은 전력 수요는 줄어드는 데 비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크게 늘어나는 봄, 가을철에 전력이 남아도는 것을 막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전력망 접속을 차단해 전력 공급을 강제로 제한하고 있다. 이른바 출력제어(curtailment)다. 전력 공급과 수요가 시간적,지리적으로 불일치할 때, 이로 인해 야기되는 전력계통의 전압 및 주파수의 불안정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다. 한국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전력수요가 적은 제주지역의 태양광 발전 출력제어 횟수는 2021년 1회에서 지난해 28회, 올해는 132회(8월 기준)로 급증했다. 풍력 발전도 출력제어 횟수가 2019년 46회에서 2020년 77회, 지난해에는 104회로 늘었다. 출력제어 사례는 제주 뿐 아니라 전국 태양광 설비의 40%가 집중된 호남 등 다른 지역에서도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출력제어가 더욱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당장 일주일 후부터 시작되는 추석, 임시휴일, 개천절 연휴로 인해 산업용을 중심으로 전력 수요가 크게 줄어주는 데 실효 전력 설비용량은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더욱 늘어 날씨가 맑으면 계통불안정성을 막기 위해 출력제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당국은 올 가을 최저 전력 수요가 여름철 피크 수요의 3분의 1 수준인 32GW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월 기록한 역대 최저 전력 수요 39.5GW보다 더 낮은 수준이다. 최저전력 수요 하락은 태양광을 중심으로 계량기에 잡히지 않는 자가용 발전(BTM: Behind the Meter)이 증가한데 적지 않은 원인이 있다. 출력제어는 이용할 수 있는 전력을 버리는 것인 만큼 경제적으로 낭비다. 출력제어로 전력을 판매할 수 없게 된 태양광 발전 사업자들은 사실상의 ‘영업정지’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정부와 한국전력, 한국전력거래소 등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잉여전력 문제의 심각성은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2~2036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계획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정격 설비용량은 올해 32.8GW에서 2030년 72.7GW, 2036년 108.3GW로 크게 늘어난다. 전체 설비용량에서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도 같은 기간 22.1%에서 36.7%, 45.3%로 높아진다. 전력 수급의 미스매치인 상황에서 잉여전력을 흡수할 수 있는 기술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버려지는 전력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현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계통의 확충이다. 전력을 생산해도 이를 수용할 송·변전 설비가 없으면 전력을 공급할 수 없고, 결국 전력은 버려지게 된다. 문제는 계통을 확충해야 할 주체인 한전이 막대한 부채로 투자할 여력을 상실했다는 점이다. 2036년까지 송변전망 확충에 소요되는 자금은 56조원에 달하지만 지난해 이후 40조원이 넘는 누적 영업적자에다 채권발행 잔고가 77조원에 달하는 한전으로선 이를 감당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상황이다. 젼력이 남아돌 때 이를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ESS(에너지저장장치) 보급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ESS는 화재, 폭발 위험 등 기술적 취약성을 갖고 있고, 설치 비용이 비싸다는 한계가 있다. 태양광 잉여 전력을 수소 생산에 사용하는 것도 한 대안이다. 그러나 태양광 전력의 간헐성 때문에 전기분해 설비의 이용률이 저조하고 이로 인해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가 있다. 대용량 데이터를 수집, 저장, 처리하는데 막대한 전력이 소비되는 데이터 센터 설립과 운영을 통해 잉여전력 문제를 푸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다. 지난해 9월 현재 국내에서 운영중인 147개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는 176만 kW로 최대전력 부하인 9110만 kW의 1.93%를 차지한다. 2029년까지 구축될 630여개의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를 신재생에너지 잉여전력으로 충당한다면 잉여전력 문제도 상당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잉여 전력이 발생하는 낮 시간대의 전기요금을 인하해 전력사용을 촉진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잉여전력 사용자에게 요금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플러스 DR(Demand Response)이 좋은 예다. 전력 수급의 시간적, 지리적 불일치를 해소할 수 있는 실시간 전기요금제나 지역별 차등요금제 등도 잉여전력을 해소하는데 효과적일 것이다. 잉여전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요조절 뿐 아니라 공급능력을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태양광발전소를 무턱대고 더 짓는 것보다는 계통제약을 고려하면서 수용가능한 범위내에서 지어야 한다. 먼저 2036년 108.3MW로 설정된 신재생에너지 설비 정격용량 목표부터 재조정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무리하게 늘리기 보다는 또 다른 무탄소 전원인 원전, 수소, CCUS 등과 균형을 맞추며 적절한 속도로 늘려야 한다.온기운 에교협 공동대표

[기자의 눈] CF100·RE100 정치언어에 휘말리는 업계

"CF100(사용전력의 100%를 무탄소에너지로 조달)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고집하는데 잘될 리가 없어요. 정부가 원자력발전을 밀어주려고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펼치는 겁니다." 야당과 재생에너지에 우호적인 에너지 전문가는 물론이고 재생에너지 업계 관계자를 만나도 자주 듣는 이야기다. 반대인 원전 쪽에서는 RE100에 대해 에너지정책을 망치고 있는 주범으로 보는 듯하다. CF100과 RE100으로 나뉘어 서로 홍보하는 원전과 재생에너지 업계가 정치 집단처럼 느껴진다. CF100과 RE100은 이제 정치 언어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에서 밀고 있는 CF100은 RE100(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조달)에서 원전과 수소 정도를 얹은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야당은 여당에서 주장하는 CF100을 국제 기준이랑 다르고 우리나라 혼자 밀어붙이는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그 말도 맞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말하는 CF100은 단순히 RE100에서 원전과 수소를 얹은 개념이라 보기 힘들다. 외국에서 말하는 CF100은 무탄소 에너지원의 전력을 생산과 동시에 사용하겠다는 의미가 추가됐다. 하지만 RE100에도 정치적 결함이 있다. CF100은 RE100의 정치적 결함 속에서 탄생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태양광·풍력 발전은 우리나라에서 주요 선진국보다 비싸게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국내 재생에너지 제조업은 외국에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결국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설치하려면 외국산에 많이 의존해야 한다. 우리나라 바다에 외국 기업들 다수가 해상풍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에게 비싸게 전기를 사주면 그 이익은 다른 나라로 흘러간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로 수출기업들에 탄소배출량을 줄이라고 압박하고 있다. RE100 안 하면 세금 더 내라는 의미다. EU가 무역장벽을 당당하게 펼치는 이유는 전 세계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서다. CF100은 재생에너지도 확대하지만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 중 국내 산업에게 유리한 에너지원을 활용하겠다는 명분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RE100을 중심으로 세워진 국제 기준도 무시하기 어렵다. CF100과 RE100은 모두 명확하게 한쪽이 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정치 언어라고 보이는 이유다. 에너지 업계는 CF100과 RE100이라는 정치 언어에서 빠져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두 단어에 기댈수록 정치소용돌이에 더 깊게 빠지게 될 것이다. wonhee4544@ekn.kr이원희(증명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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