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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한국 반도체 장비 유예는 윤 정부 외교 성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별도의 허가 절차 없이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를 공급할 수 있도록 규제 적용을 무기한 유예했다. 두 회사의 중국 내 반도체공장을 미국 수출관리 규정에 따른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앞으로 별도 허가 절차나 기간 제한 없이 미국산 장비를 공급하겠다는 최종 결정을 전해온 것이다. 이에 따라 두 회사는 종전처럼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중국 내 공장에 들여보낼 수 있게 됐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장, 쑤저우에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 D램 공장, 충칭에 후공정 공장, 다롄에는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량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의 40%와 낸드의 20%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자국의 제조업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깨닫고, 자국우선주의의 공급망 강화와 제조업 부흥을 위해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등 일련의 정책과 입법을 추진해 왔다. 특히 상무부는 안보 전략 차원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과 기술 절취 등을 막고자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중국 반도체 생산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18nm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 등을 사용한 로직칩(16nm 내지 14nm) 등을 초과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기술을 미국 기업이 중국에 판매할 경우 허가를 받도록 했다. 다만, 중국 내 생산시설을 외국 기업(multinationals)이 소유한 경우는 개별적 심사로 결정하겠다고 했다. 당시 한미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중국에서 운영 중인 삼성반도체, SK하이닉스 반도체 등 한국 공장의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1년 동안 수출 통제 유예를 받았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 조치의 유예 연장을 호소해 왔고 한국 정부도 추가 연장을 목표로 협상을 벌여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수출통제 유예 조치가 중국 내 공장의 안정적 운영을 좌우할 핵심으로 보고 있었다. 공장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장비를 상시 점검하고 문제가 있는 장비를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반도체 수출통제 유예 조치의 무기한 연장으로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로써 중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에 대한 불확실성이 상당부분 걷히게됐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이번 결정은 우리 반도체 기업의 최대 통상 현안이 일단락됐음을 의미한다"며 "우리 반도체 기업의 중국 내 공장 운영과 투자 관련 불확실성이 크게 완화됐고 장기적으로 차분하게 글로벌 경영 전략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미중 대결 과정에서 굳어지고 있는 디커플링과 그에 따른 두 개의 공급망 체제의 등장으로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다.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경제안보 전략의 중요한 과제다. 경제와 안보가 연결된 상황에서 반도체 등 핵심 산업의 운명을 기업에만 맡길 수 없다. 기업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벅차며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특히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는 기업의 생존을 넘어 한국 경제의 생존과 대한민국의 안녕이 걸린 문제다. 정부가 기업들과 소통하면서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야 하며, 치열하게 협상을 해야 한다. 이번 반도체 장비 유예 조치의 무기한 연장은 정부의 전략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 사례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해 왔고, 그 기반 위에서 작년 바이든 대통령 방한, 올해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미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공급망과 수출 통제와 관련, 긴밀한 공조 의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왔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반도체 수출 통제 무기한 유예하는 결실을 보게 된 주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기술 패권경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다방면의 영역에서의 대결과 디커플링이 혼재함에 따라 한국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인 만큼 치밀한 전략과 민관협력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기자의눈] 허울 뿐인 인구특위…저출산 해법 모색 나서야

대한민국 인구수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9명이었다. 가장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 사는 서울 지역에서는 출산율이 무려 0.59명으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출산율이 1명 이하인 국가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대한민국이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초저출산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여야가 합의해 올해 2월 인구위기특별위원회(인구특위)를 출범했다. 인구특위는 여야가 특위 구성에 합의한 지 4개월 만인 3월 31일 첫 회의를 열었다. 당시 ‘늑장 특위’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음에도 한 달 뒤에 열린 두 번째 회의에서도 주요 국무위원들이 불참하면서 동력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6개월 만인 이달 5일 3차 회의를 열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이달 말로 활동이 종료될 예정이다. 정부의 저출산 대책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5년 간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28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활동인구 확충을 위한 시스템 구축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예산 투입에만 급급하다 보니 정책의 사각지대가 발생했고 저출산의 주된 원인들인 높은 부동산 가격, 젊은 층의 가치관 변화, 고용 불안, 젠더 갈등, 출산·육아 비용 부담, 수도권 쏠림 현상과 같은 난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출생 현상의 배경이 되는 현실은 복잡다단한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대책을 주문한 것이다. 올해 안에 저출산에 관련한 대책이 나온다고 해도 입법 과정을 거치면 한참 뒤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초 정치적 논란으로 인해 저출산 대책을 논의할 시간을 수 개월이나 허비했는데 국민들은 손놓고 정부의 대책을 기다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정쟁에 휩쓸려 유야무야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인구 위기 대책을 내놓겠다는 정부와 국회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금 투입 접근 방식인 현금 살포식 지원은 일차원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다각도의 시각과 장기적인 관점을 통한 근본적인 해결책 모색과 적극적인 실행이 시급하다. ysh@ekn.kr윤수현 증명사진

[이슈&인사이트] ‘좋은 이모님’ 구하기와 외국인 가사도우미 논쟁

최근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논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이 낳은 기쁨도 잠시, 육아 문제로 고통을 겪는 부모들은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를 낳아 기르나"라고 푸념한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1~3년 넘게 기약 없는 대기 줄을 서야 한다. 정부의 ‘아이 돌봄 서비스’ 역시 대기 줄이 긴데다 소득이 높은 맞벌이 부부는 소득 기준에 걸려 언감생심이다. 한국은 기혼 여성 6명 중 1명꼴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웬만한 봉급 생활자의 한 달 치 월급을 전부 바쳐야 할 정도로 육아비 부담이 높기 때문이다. 일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키우려면 가사도우미의 도움이 절실하다. 현재 국내에서 가사도우미는 내국인과 중국 조선족에게만 허용된다. 다른 나라 출신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내국인은 물론 조선족 가사도우미 구하기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로 인해 가사도우미 인건비도 치솟고 있다. 출퇴근하는 내국인 가사도우미의 경우 서울 기준 350만~450만원에 달한다. 그나마 조선족 도우미는 내국인에 비해 월 30만~50만원 낮아 맞벌이부부는 조선족 입주 도우미를 선호한다. 조선족 도우미의 장점은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점과 함께 문화가 비슷하고, 무엇보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이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며 때로는 담합도 하기에 시세에 맞춰 인건비를 계속 올려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코로나 사태 이후 조선족 도우미들이 입국하지 못하면서 임금이 껑충 뛰어 부모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에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에 필리핀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 100여 명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을 전망이다. 2024년 최저임금이 시급 9860원이니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월 인건비는 최소 206만740원인 셈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1970년대, 대만은 1990년대부터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했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여부에 대해서는 찬반 의견이 나뉘어 있다. 찬성 쪽은 ‘싼 비용’으로 가사노동 문제와 육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지금보다 아이를 많이 낳을 수 있고, 외국인 가사도우미도 본국보다 높은 임금으로 만족을 느끼는 ‘윈-윈’ 정책이라는 점을 든다. 이에 비해 반대 쪽은 문화적 이질감과 언어소통의 문제와 가사도우미를 빌미로 한 불법체류 증가, 내국인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최저임금 적용여부를 놓고도 견해가 극명하게 나뉜다. 최저임금 적용을 주장하는 쪽은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110호 협약을 근거로 제시한다. 반대 쪽은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가사비용 부담을 더는 것인데 최저임금을 적용할 경우 도우미 인건비가 200만원대 중반으로 30대 여성 중위소득(271만원) 수준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이 저출생대책으로서 효과가 있을까? 1970∼1980년대부터 이 제도를 도입한 홍콩과 싱가포르도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출산율의 급격한 감소 추세에서 예외가 아니다. 2022년 싱가포르 출산율은 1.05명이고 홍콩은 우리보다 낮은 0.68명이다. 그렇다면 저출생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 답은 단순 비교가 불가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정책목표는 당시 여성의 경제활동참여 증가에 초점을 맞췄고 일단 그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 기혼여성의 경력단절 원인 중 육아가 42.7%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미혼여성이 꼽은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되는 정책 설문에서도 ‘경력 단절 예방 지원(29.4%)’이 2위에 올랐다. 이를 감안하면 한국 역시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 해결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도입은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모든 문제의 만능해결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내국인 가사도우미가 부족한 가장 큰 원인이 사회적 인식과 낮은 급여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런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내용의 가사근로자법이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내국인 가사도우미가 어느 정도 늘어날지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은 사실상 외국인 없이 돌아가지 않는 경제임에도 외국인에 대한 국민 수용성은 상당히 낮다. 이들에게 빗장을 열기 시작한 만큼 이제는 동반자로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전 세계에서 출생률 꼴찌인 한국 부모들이 희망하는 저출생 해법은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다. 긴 노동시간을 유지하면서 양육에 타인의 도움을 지원받는 것보다 자녀를 직접 돌볼 수 있도록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제대로 실천만 된다면 가장 근본적인 대책이다.송문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

[EE칼럼] 도시가스 사각지대 농촌 난방, 해법은 바이오 매스

작년 겨울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 고유가로 난방비가 폭탄을 맞았다. 국민들은 전년보다 50% 정도 늘어난 도시가스 요금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그런데 난방비 걱정은 도시보다 시골이 더 심하다. 지금은 읍단위까지는 도시가스(LNG)가 들어오지만 그 외 대부분의 농촌 지역은 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취사에는 석유가스(LPG)를 쓰고 난방은 석유나 LPG, 심야전력을 이용한다. 그래서 보통 때도 농촌지역의 난방비는 도시 가정보다 많이 든다.요즘 필자의 고향 인근 담바우마을인 충북 괴산군 장연면에는 바이오에너지를 이용한 지역난방 공사가 한창이다. 약 50억원의 국·도비 지원을 받아 방치된 초등학교 폐교부지에 목재칩 보일러와 가스화 발전설비를 갖추고,인접한 장암리와 신대리 50여가구에 열배관을 연결하는 한편 가구마다 열교환기를 설치해 난방과 온수를 공급하는 공사다. 여기에 쓰이는 연료(목재칩)는 괴산군에서 군유림 간벌 등을 통해 공급한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바이오매스가 가정의 주 연료였다. 60대 이상에겐 어린 시절 산에 가서 나무를 하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결과 당시 우리나라 마을 주변의 산은 모두 민둥산이었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정의 연료는 연탄과 석유로 대체됐다. 부엌에는 석유곤로가 취사를 담당하고 아궁이에선 구공탄이 장작을 대신했다. 1986년 평택 인수기지에 첫 입항한 천연가스(LNG) 보급은 늘어나는 아파트 단지를 시작으로 단독주택까지 급속도로 확산됐다. 이제 가정 연료의 총아는 명실상부 도시가스의 시대가 됐다. 가정 연료의 변화는 황토빛으로 먼지를 날리던 민둥산을 푸르른 숲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제 동네 야산은 우거진 잡목으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밀림이 됐다. 등산로를 따라 산을 타다가 자칫 벗어나면 산중에서 헤매기 일쑤다. 잡목 숲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산림청에서는 해마다 벌목을 통해 수종을 개량하기도 하고 잡목을 걷어내는 간벌을 한다. 새롭게 연료로 복귀하고 있는 바이오매스는 이전과 활용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재래식 바이오매스 에너지는 아궁이나 화덕에 바로 나무나 짚 등을 태워서 용기를 데우거나 방을 덥히는 방식이라 열효율이 5~8%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목재칩을 만들어 보일러 연료로 쓰거나 가스화해 연료로 사용하므로 열효율이 높고 배기 중의 오염물질 관리도 가능하다. 그래서 현대적인 바이오매스 에너지는 재생에너지로 분류한다. 그렇다고 바이오에너지가 항상 재생에너지인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연간 재생산 범위 내에서 채취가 이뤄져야 한다. 해마다 자라는 식물량이 채취량을 따라가지 못하면 예전처럼 민둥산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재생에너지로 분류한 중요 근거인 기후변화 저감 연료라는 점은 전주기 탄소배출을 평가해 인정해야 한다. 바이오매스는 성장 과정에서 탄소를 흡수하고 분해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므로 ‘탄소중립적’이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목재칩은 해상 운송 에너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탄소중립의 범위를 크게 벗어난다. 그래서 국제바이오에너지파트너십(GBEP)에서는 전주기 온실가스 배출과 임산자원의 수확 수준 등 24개 환경·사회·경제적 요인을 고려해 바이오 에너지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할 것을 권고한다.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서 바이오매스의 중요한 장점의 하나는 바로 ‘자립에너지’라는 점이다. 사용하는 에너지의 94%, 연간 250조원의 에너지를 수입하는 나라에서 자립에너지의 수입대체 효과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더불어 태양광이나 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는, 즉시 대응이 가능한 에너지라는 점도 장점이다. 담바우 마을의 지역난방과 발전은 마을 주민들이 결성한 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에너지 소비의 핵심 시설을 주민이 직접 소유, 운영하는 것은 지역경제의 커다란 변화를 의미한다. 일방적으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에너지를 사용하던 소비자에서 에너지 생산자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외부로 유출되던 재화가 지역경제 내에서 순환하게 된다. 지역난방의 운영이 정착되고 경험이 쌓이면 지역에서 다른 에너지 산업으로 확대할 수 있다. 우선 필요한 것은 축산농가의 폐기물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다. 축산폐기물의 해양 투기가 금지된 2012년 이후 폐기물 처리는 축산농가와 정부의 비용이다. 하지만 축산폐수의 가스화를 통해 에너지를 추출하고 나머지로 액비를 만들면 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협동조합이 주체돼 공공시설이나 공유지에 태양광 설비를 운영하면 안정적인 농가 수입은 물론 자립에너지 증가로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농촌 지역에서 태양광 발전은 전기농사와 다름없다.담바우마을을 비롯해 횡성, 완주, 양평에서 진행되고 있는 ‘산림에너지자립마을’ 사업이 주민들의 참여로 성공적으로 운영돼 지역 에너지 산업의 성공모델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기자의 눈] 정부, 전기차 충전 인프라 문제 외면 그만해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변하고 있다. 국내에선 상황이 다르다. 업계가 분주히 사업 재편과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전기차 판매량은 주춤하고 있다. 정부는 부랴부랴 전기차 보조금 인상 정책 등을 내세워 수습에 나섰지만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은 아직이다. 문제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전기차는 지난 5월 기준 누적 등록 대수 45만대를 돌파했지만 고속도로의 전기차 충전소는 부족한 상황이다. 최근 한국도로공사가 국정감사를 위해 제출한 ‘전기차 충전시설 현황 자료’에 따르면 현재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는 총 206개인데 비해 전기차 충전소는 1015개로 휴게소 당 평균 4.9개에 그치고 있다. 또 현재 고속도로 휴게소에 설치된 50kw급 급속충전기는 892기(88%), 200kw급 초급속 충전기는 123기(12%)에 불과하다. 고속도로 휴게소 시설에 평균 4.9개 설치된 전기차 충전시설에 이용자들이 몰릴 경우 충전에 많은 불편함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고속도로 충전소에 가보면 상용 전기트럭이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용트럭의 경 우 주행거리가 약 210km 밖에 되기 때문에 고속도로 충전소를 보통 이용 한다. 때문에 일반 전기차 소비자들은 고속도로 충전소에서 속절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번 추석 황금연휴 동안에도 충전소 앞에 길게 줄지어 선 전기차 행렬을 여러번 목격했다. 정부는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둔화세에 접어든 데 대한 원인을 ‘가격’에서 찾은 모양이다. 정부는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보조금을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욕을 끌어올리는 차원이다. 이로써 기본 판매 가격 5700만원 미만의 전기 승용차에 지급하는 국비보조금이 기존 최대 680만원에서 780만원까지 늘어났다. 전기차 제작사가 전기차 가격을 할인해주면 할인폭에 비례해 보조금을 늘려주는 방식이다. 물론 가격도 중요하다. 문제는 아무리 저렴해도 충전할 곳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전기차도, 공을 들인 정책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미 전기차를 구매한 소비자들과 전기차 구매 의향자들이 원하는 건 일시적이고 단편적인 보조금의 문제가 아니다. 충전 인프라 문제가 해결돼야 소비자들은 안심하고 전기차를 구매한다. 정부는 장기간, 대규모 재정 투입을 통한 충전 인프라 확충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다. kji01@ekn.kr김정인 산업부 기자 김정인 산업부 기자

[EE칼럼] 국제감축 활성화를 위한 그린ODA의 역할

올해 4월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달성과 녹색성장 실현을 위한 국가 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를 감축하는 NDC(국가탄소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전환, 산업, 국제 감축 등 부문별 감축목표를 조정했다. 감축 준비가 안된 산업 부문의 실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목표를 낮췄고,국제 감축 부문은 2030년에 3750만톤을 확보해야 하는 상향 목표치를 부여받았다. 당시 파리협약 6조2항에 기반해 우리 정부와 양자협력을 맺은 국가는 베트남 한 나라 뿐이었다. 오랜 기간 준비해온 덕분에 20개 이상의 국가들과 양자협약을 맺어 국제 감축으로 10년간 1억톤을 NDC 목표에 활용하겠다고 제시한 일본에 비해 터무니없이 준비가 안된 건 사실이었다. 양자협력 대상국 확대, 시범사업 추진, 예산 마련 등 부처 간 협력을 통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사항들이 다행히도 매우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외교부의 노력으로 몽골, 가봉, 우즈베키스탄, UAE와 협약을 체결했고 페루, 모로코와는 체결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 20여개국을 우선 협력국으로 정해 협의를 진행 중이다. 동시에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는 감축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의 진출을 지원할 시범사업 추진을 진행하고 있다.그런데 지금은 우리의 속도감을 반감시키는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다. 6조2항 양자협력 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국과의 상응조정, 즉 온실가스 감축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양국 간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세부 지침들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도국들은 이를 위한 법령이 부재하고, 등록부 등을 마련할 역량 또한 부족한 상황이다. UNFCCC는 6조2항 사업 준비를 위해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개도국들이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필자가 2018년 기업들과 함께 미얀마에서 UN의 CDM(청정개발메커니즘) 사업을 진행할 때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고효율 쿡스토브 보급을 통한 온실가스 감축량을 산정하려면 땔감 사용량을 절감해 산림의 황폐화를 얼마만큼 방지했는지를 입증해야 했다. 당시 미얀마는 UN에 공식적으로 제출할 수 있는 산림 면적에 대한 통계 구축이 안돼 있어 베이스라인 선정이 어려웠다. 결국 인력을 추가로 투입해 미얀마 산림청과 함께 1여년간 국가 통계작업을 지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로 사업지연이 발생했다. 지금 6조2항 사업을 진행하며 발생하는 문제점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우리도 제도를 준비해 추진하는 상황인데, 개도국 역시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라 인프라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결국 역량 강화가 동시에 뒷받침 돼야 한다. 파리협약 6조8항 비시장 메커니즘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6조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ODA등을 활용해 지원하는 모든 것이 포함됨을 의미한다. 미얀마 사업은 기업들과 논의해 즉각적인 지원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ODA는 사전에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지원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계획돼 있는, 또는 앞으로 수립할 그린ODA 계획이 국가 NDC달성을 위해 추진하는 국제 감축사업과 전략적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앞서 언급한대로 현재 발생한, 앞으로 예상되는 개도국들의 어려움들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시의적절한 역량강화 지원이 ODA를 통해 뒷받침돼야 한다. 당장 베트남 정부는 6조2항 추진을 위한 법령 수립을, 우즈베키스탄은 ITMO 잠재량 파악에 대한 지원을 우리 정부 또는 국제사회에 요청하고 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는 개도국 온실가스 통계 구축 역량지원을 해왔고, 역량강화를 위한 지식공유 사업은 오랫동안 정부가 ODA를 통해 지원해왔던 경험이 있다. 지금은 부처별로 흩어져 있는 이런 사업들을 잘 취합하여 국제감축 추진을 위해 협의되고 있는 중점협력국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지원해 사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국제감축 사업은 궁극적으로 국내 기업의 기술 협력을 통해 개도국의 녹색성장을 지원해 글로벌 기후대응에 기여하는 사업이다. 불합리한 관행이 있다면 과감히 깨고 우리와 개도국이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개도국의 역량 인프라를 만들어주는 것이 그린ODA의 핵심이다.김소희 기후변화센터 사무총장

[이슈&인사이트] 새만금, 문제는 예산이 아니라 전략의 부재다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인 새만금 SOC 사업 내년도 예산 6626억원에 대해 기획재정부 심사과정에서 1479억 원으로 무려 78%가 삭감됐다. 이 같은 일방적인 예산 삭감에 대해 전라북도는 세계스카우트 잼버리대회 파행에 대한 전북 책임론을 기화로 명백한 보복성 예산폭력 행위로 규정하고 강력히 대응에 나섰다. 전북도의회 의원과 김제시의회 의원들의 삭발 투쟁을 시작으로 부안군의회,정읍시의회 의원들이 삭발에 동참했고 군산시의회 의원들도 삭발을 예고했다. 문제의 본질을 보면 이 예산의 결정 라인 상에 기본계획을 승인하는 새만금 위원회 수장인 한덕수 국무총리와 집행부처인 행정자치부의 수장인 이상민 장관이 전라북도 출신이라는 점으로 볼 때 보복성으로만 매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한덕수 총리의 말대로 전북 경제를 위해 새만금의 ‘큰 그림’을 그릴 시점이다. 1971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전북 표심을 잡기 위해 선거공약으로 새만금 개발을 제시했다. 당시는 안정적인 식량 확보를 위해 간척지 개발이 중요했기 때문에 농어촌개발공사가 주도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되자 흐지부지됐다. 이후 1987년 노태우 후보가 새만금 사업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고 당선된 후 1989년 새만금종합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세우고, 1991년 기공식을 가졌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새만금 사업은 1995년 환경분쟁으로, 10여 년간 환경단체의 시위와 소송 등에 휘말리며 사회갈등의 대명사가 됐다. 2006년 대법원 승소판결을 받아 20년간의 대역사 끝에 2010년 준공됐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이로써 개성공단(100만평)의 80배에 달하는 8000만 평의 간척지와 호소를 얻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 의도했던 대로 농지로 사용하기에는 축구장 3만3000개에 달하는 이 간척지가 너무 컸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으로 새만금은 전환점을 맞았다. 새만금 부지가 농업용지에서 산업 중심으로 전환되고, 새만금 경제자유구역 지정과 새만금 위원회 발족, 새만금 종합실천계획안 최종 확정 등 새만금 개발이 탄력을 받았다. 동북아 경제중심지 발상은 타당하다. 새만금은 일제 강점기에 대륙침략을 위한 병참·식량 기지화 정책의 핵심지역으로 검토됐다. 1931년 만주침략 기반으로 1937년 중일전쟁 통해 대륙을 침략하고자 했던 일제는 전쟁물자와 인력 보급의 전초기지를 한반도로 정하고 그 중심에 새만금을 검토했다. 그만큼 새만금은 중국의 경제 공략의 전략적 위치에 있다. 이런 입지여건을 고려할 때 새만금의 문제는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 21세기 먹거리 신산업을 찾는 전략의 문제다. 문제는 그 밑그림을 그릴 인재의 부재다. 동북아 경제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현재의 새만금개발청이나 개발공사의 인적 구성으로는 역부족이다. 적어도 동북아 경제중심지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국제감각과 먹거리 산업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필요하다. 최근에 먹거리 산업으로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환경·경제적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하책 중의 하책이다. 더구나 새만금에서 발전된 신재생에너지가 송배전망 부재로 버려지는 현실이다. 최근에 새만금에 이차전지 소재 제조시설 건립이 활성화되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 역시 미봉책에 불과하다. 2차 전지산업 자체는 유망산업이지만 금속·화학 산업은 새만금 방조제에 치명적인 공해 배출업종이 때문이다. 그 대안으로 농수산 식품클러스터가 제시되고 있다. 새만금이 위치한 익산에 농식품 산업 클러스터가 있는 데를 이를 확장해 새만금에 글로벌 농식품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푸드밸리가 좋은 본보기다. 오에닝겐에 있는 푸드밸리는 반경 30㎞ 달하는 대표적인 글로벌 식품클러스터로 연간 매출이 650억달러에 달한다. 이곳 고용 규모는 70만 명으로 새만금의 계획인구 70만 명과 일치한다. 새만금 글로벌 농식품 클러스터는 중국 인구의 5%인 7000만 명의 프리미엄 시장을 목표로 한다. 할랄 식품은 보너스다.윤덕균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기자의 눈] 서울 내 ‘하이퍼엔드’ 아파트 시장, 마냥 좋을까?

과거 우리나라의 자산가들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종로구 평창동, 성북구 성북동 등지의 개인주택에 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미국 뉴욕의 자산가들은 센트럴파크를 둘러싼 고액 아파트 단지에 거주해 왔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듯 서울 부동산 시장에서도 최근 가구당 100억대를 뛰어넘는 이른바 ‘하이퍼엔드’ 아파트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전용면적 200㎡ 입주권이 100억원에 거래돼 시장에 놀라움을 안겼으며 지난 3월에는 한남동 ‘한남더힐’ 240㎡가 110억원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 3년 연속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 1위를 차지한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청담’ 전용면적 273㎡의 최근 거래 금액은 145억원이었으며, 국내 최고 분양가로 알려진 서초구 방배동 ‘마제스힐’ 전용면적 273㎡의 분양가격은 500억원에 달했다. 이처럼 하이퍼엔드 아파트 단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현상이 도화선이 돼 서울의 아파트값이 전체적으로 상승함과 동시에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실제 뉴욕의 부촌으로 평가받는 맨해튼 내에서는 최근 상위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하위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는 등 양극화 현상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서울의 양극화 현상 또한 눈에 띄게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이에 대한 우려는 커져만 가고 있다. 지난 8월까지 서울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량은 전체의 17.5%를 차지해 국토교통부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6억원 이하 아파트 거래량은 전체 25.6%를 차지하는데 그쳐 역대 최저치로 집계됐다. 일각에서는 향후 한강변을 중심으로 초고급 아파트 재건축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서울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일부의 예상처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소유 중심에서 이용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극화가 최고조에 달한 뉴욕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부디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마련을 고려하기를 바라본다.증명사진

[이슈&인사이트] AI 춘추전국시대

필자의 어렸을 적 바나나는 매우 귀한 과일이었다. 국민소득이 오르고 수입이 자유로워지면서 이제는 마트에서도 국산 과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값에 팔리지만 보드랍고 뽀얀 과육과 달콤하고 향긋한 향으로 인기가 많다. 이렇게 많이 재배되고 팔리는 바나나가 멸종 위기를 겪는다는 소식은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바나나는 캐번디시 품종인데, 무성생식을 통해 동일한 맛을 낸다고 한다. 결국 품질관리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유전자를 갖는 단일 품종이 재배되는 것이다. 그런데 1960년대 널리 재배됐던 그로미셸 종을 멸종시킬 뻔한 파나마병의 변종이 이번에는 캐번디시 품종의 바나나를 위협하고 있다. 이처럼 유전적 단일성은 19세기 필록세라 진딧물로 멸종 위기에 처했던 와인 주조용 포도나무처럼 돌발적인 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알파고’ 충격 이후 인공지능이 특정 영역이나 기능에서 인간보다 뛰어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그 이후 오픈 AI에서 출시한 챗GPT는 인공지능이 단지 특정 영역만이 아니라 보편적 영역에서 인간처럼 혹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출 가능성을 생각하게 했다. 실제로 이후 개발된 GPT-4 모델은 글짓기 뿐 아니라 프로그램 코드를 작성하거나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이런 기반 모델(Foundation Model)은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능력을 발휘한다. 인공지능 진화하더라도 경제적 이유에서 단순한 기능과 능력치를 갖춘 인공지능이 활용되는 영역도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 주목받고 있는 챗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 경쟁이 가열되면서 그만큼 인공지능 이용 비용도 저렴해져 더 발달된 인공지능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필수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인공지능의 성능만큼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인공지능의 다양성이 중요해질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업무 자동화의 기초가 되어 미래 시장을 주도할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많이 알려진 오픈AI의 GPT나 구글의 바드(Bard), 메타의 라마(LLAMA)와 이 보다 매개 변수를 줄인 소규모모델도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LG의 엑사원 등 다양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있는데, 오픈AI나 구글 등 글로벌 모델에 비해 학습한 한국어 데이터가 많아 한국어에 기반한 기능에 강점을 갖고 있다. 인간처럼 사고능력과 자유의지를 가진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가 나와도, 이미 경쟁의 선두에 서 있는 국가나 기업들이 후발 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려는 선전이라는 의심을 사기도 하다. 생성형 인공지능 개발에 소요되는 노력과 비용이 어마어마하기에 현재 주도권을 쥔 국가나 기업들이 그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후발 주자의 싹을 자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런 경쟁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류가 소수의 인공지능 모델만을 사용했을 때의 잠재적 위험성도 간과할 수 없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감독위원회(SEC) 회장은 최근 투자자들이 인공지능으로 인해 네트워크의 상호 연결성이 증가된 상태에서 동일한 정보에 의존하게 돼 집단행동을 하면 금융의 취약성을 높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소수의 인공지능 플랫폼이 금융을 지배하면 동일한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하는 인공지능이 대규모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선도적인 인공지능을 개발해 보유한 국가나 기업은 그 정보와 데이터가 핵심 자산인 국가기밀이나 영업비밀로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그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개발된 수많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시스템은 내재된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국제경쟁력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구축할 디지털 세계의 안전성을 위해서도 근시안적으로 해외의 인공지능 활용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다양한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한다. 수천 년간 인류의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었던 춘추전국시대 사상가들처럼 다양한 인공지능의 백가쟁명을 통해 안전성을 갖춘 미래의 세계를 꿈꿔 본다.양희철 법무법인 명륜 파트너변호사

[EE칼럼] 신규 원전, 해법은 이익공유 모델

전남 신안군의 인구가 증가했다. 1004개 섬을 보유하며 인구 고령화와 지방소멸 위기 고위험군에 포함됐던 신안군의 인구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증가한 것이다. 인구 증가는 전국 최초로 시행된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 효과다. 쏠라시티발전소가 자리잡은 안좌면은 38명, 이웃한 지도읍은 51명의 인구가 순 유입됐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태양광 이익공유 정책이 인구 유입에 획기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만 30세 이하는 전입 때 바로 태양광 배당금을 지급받을 수 있어 청년층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경제적 인센티브와 인구유입의 인과관계를 설명했다. 신안군의 신재생에너지 개발이익 공유제는 다른 지역 재생에너지 발전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군산시와 서부발전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새만금육상태양광 2구역 사업, 지역 번영회와 이익공유 및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지원하는 한국난방공사의 강원도 정선 태양광발전소, 적극적인 지역사회 참여를 이끌어낸 남동발전의 ‘해창만 수상태양광’ 등 사례는 수 없이 많다. 이제는 지역상생 모델이 재생에너지 사업의 기본이 됐다. 이익 공유제는 지역의 적극적인 협조를 통한 공기단축과 금융비용 절감, 지역업체의 사업참여 확대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익공유 약속이 없는 양수발전소도 비슷하다. 전체 인구가 1만6000명으로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경북 영양군은 양수발전소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범 군민 유치위원회가 설립됐고, 지난 8월에는 양수발전소 유치를 위한 릴레이 캠페인을 벌였다. 수 백억원의 지역발전 지원금 확보, 연간 14억원의 지방세 수입등 직접적인 혜택과 함께 장기적으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10여년 전 영양댐 건설이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것은 ‘옛날 얘기’가 됐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이익 공유, 지역상생 컨셉트의 효시는 아니다. 십 수년 전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원전사업의 민간 참여를 추진했었다. 전문인력을 스카웃하고 회사 내에 원전사업 조직을 만들었으며, 민자원전 타당성 용역을 발주하는 등 대대적으로 투자를 단행했다.2030년까지 신규원전 규모가 400여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던 시기였다. 당시 필자가 정부에서 위탁 받아 수행한 과제가 ‘원전산업 선진화를 위한 민간참여 타당성 연구’다. 몇 가지 방안이 검토됐지만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호응을 받았다. 대안의 핵심 중 하나가 원전사업을 개방해 SPC에 지자체(주민)를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지자체가 부지 제공 등의 투자를 통해 주주가 되고 발전소 운영기간 동안 이익을 공유할 수 있게 하자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로 이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후쿠시마 사고 후 12년이 흘렀다. 기후위기,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에너지안보와 탄소배출 저감, 변동성 재생에너지의 보완 수단으로서 원전이 재평가되고 있다. 우리도 ‘실행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믹스 재정립’을 목표로 원전을 중시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조기착수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신규원전이 반영될 것이라는 예상이 일반적이다. 11차 전기본에 신규원전이 반영되면 당장 착수해야 하는 일이 지역의 수용성을 전제한 원전입지확보다. 원전 수용성이 예전보다 좋아진 것도 사실이다. 지역 이장협의회의 원전유치 플래카드가 걸리고 자생적 친 원전시민단체가 생겼으며 반원전 시위에 맞불 집회가 열리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혁신형 SMR 국회포럼은 SMR 선두주자와의 격차를 해소하고 조기에 사업화를 추진하려면 SPC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10여 년 전 필자의 구상과 같다. 굳이 이익공유, 상생 등의 용어를 쓰지는 않지만 세계적으로도 원전 소유형태는 국영, 공영, 민간 또는 혼합형태가 혼재 할 뿐 아니라 소유와 운전이 분리돼 민간 또는 지자체가 원전사업에 지분참여할 수 있다. 과제 수행 당시 에너지 전문변호사의 자문보고서 중 일부이다. "현행 전기사업법 하에서 전력산업에 대한 민간의 참여는 동법이 정하는 허가의 요건을 구비하는 한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그밖에 원자력안전법 등에서도 발전용 원자로 등의 건설허가는 공기업에 국한하지 않는다." 이는 법률적 관점에서 지자체나 민간의 원전산업 참여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익 공유, 지역상생 모델이 재생에너지 사업의 전유물은 아니다.노동석 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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