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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미중 ‘관리모드’, 한중 실리외교 계기 삼아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20국) 정상회의에서 첫 대면회의에 이은 두 번째 대면 회담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을 마친 후 가진 단독 기자회견에서 세 가지 회담성과를 꼽았다. 첫 번째는 수년간 보류되었던 마약 대응 협력 재개다. 펜타닐은 마약성 진통제로 미국은 중국에 대해 펜타닐 원료 유통 차단 등에 대한 협력을 요구해왔다. 중국 측은 펜타닐 원료를 만드는 화학회사를 직접 단속하겠다고 화답했다. 두 번째는 군 대화 소통 재개다. 미국은 남중국해·동중국해 공역에서 중국군이 위협적 공세를 계속하고 있는 만큼, 오판을 막기 위한 군 소통 채널의 복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양국 군의 고위급 소통, 국방부 실무회담, 해상군사안보협의체 회의, 사령관급 전화통화 등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세 번째는 인공지능(AI) 개발에 관한 문제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문가들과 함께 인공지능(AI)과 관련된 위험 및 안전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양국 간 최대 갈등 현안인 대만문제에 대해서는 평행선을 달렸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이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구현해야 한다며 대만 무장을 중단하고 중국의 평화통일을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결국 통일될 것이고 반드시 통일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겠지만 무력 사용을 포기하지는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은 변함없다고 확인하면서도, 대만의 선거 절차를 존중해 달라고 요구했다. 내년 1월에 열리는 대만 총통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다. 대중국 수출 통제에 대해 미국은 양보하지 않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했다. 시 주석이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일방적인 제재를 해제해 중국 기업에 공평하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인 환경을 제공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중국에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소통은 하지만 국익이 걸린 핵심 현안은 양보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평가할 수 있다. 군사 소통채널 복원에 합의하는 등 긴장 완화를 위한 제스처를 취했지만, 대만 문제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수출 통제에 관해서는 현저한 시각차를 드러냈고 서로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회담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의미를 부각시키려고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나눈 가장 건설적이고 생산적이 대화 중 하나"라고 자평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중미 관계와 관련된 전략적·전반적·방향적 문제와 세계 평화·발전에 연관된 중대 문제에 관해 솔직하고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평했다. 회담 모두발언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경쟁이 충돌로 비화되지 말아야 한다"고 한 데 대해 시 주석이 "충돌은 감당 불가"라고 화답했다.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바이든 대통령과 경기침체에 직면한 시 주석이 충돌 격화만은 막은 셈이다. 지난 몇 년 동안 패권경쟁으로 칭할 정도로 충돌했던 미중관계는 바이든 대통령이 기자 질문에 시진핑을 주석을 독재자로 칭하고, 중국외교부가 무책임하다고 반발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한 것처럼 앞으로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일단은 관리 모드로 가는 분위기는 조성됐다고 볼 수 있다. 한국으로서는 이번 정상회담 결과를 외교적 활동 공간을 넓혀나가는 기회로 활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 먼저, 한중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와 탈북자 문제 등에 있어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둘째, 중국의 갈륨·게르마늄, 그리고 흑연 등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통제로 인해 한국의 경제안보가 위협받지 않도록 관리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생산에 필수적인 원부자재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셋째, 미중 간 마약 대응 협력 재개 기회를 활용해 국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연예계, 학원가 등에 확산되고 있는 마약 퇴치에 진력해야 한다. 넷째, 대외활동을 자제해 온 시진핑 주석이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6년 만에 미국 땅을 밟았는데, 시 주석의 방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한중관계를 회복하고 발전시키는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이강국 전 중국 시안주재 총영사

[기자의 눈] 강제연장 방지 당근 빠진

[에너지경제신문 김유승 기자] 정부가 현행 주52시간제 근로시간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해 한 차례 개편을 시도하려다 국민 반대 여론에 부딪혀 무산된 뒤 지 채 1년도 안되는 ‘숨고르기’를 하다 재추진 카드를 빼든 것이다.고용노동부는 지난 13일 제조업, 건설업, 연구·공학, 보건·의료직 등 일부 직종에 한해 현행 주 52시간의 근로시간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안은 지난 3월 전체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국민의 거센 반발을 사 실패한 지 약 8개월 만에 내놓은 수정안이다. 지난 3월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서일까, 고용노동부는 이번 시도에서 지난 6∼8월 국민 약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로시간 관련 대면 설문조사 결과를 추진 근거로 내밀고 정부 일방진행이 아닌 노사 간 합의를 거쳐 근로시간 개편을 추진한다는 형식적 절차를 갖췄다.대국민 설문조사가 아니더라도 정부가 근로시간제도 개편 작업에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로부터 주 52시간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중소 제조업체 대표는 "제조업은 일반업종과 특성이 다르다"면서 "추석·설 등 명절 대목을 맞아 일감이 들어왔을 때 납품 기한을 맞출 수 있도록 바짝 일하고, 일감이 없을 때는 푹 쉴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며 주 52시간제 개편 필요성을 호소했다.그럼에도 일반국민들의 반대가 꺾이지 않는 이유는 한국이 최장근로시간 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을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기업친화정책에 상응하는 근로자가 체감할 수 있는 노동정책이 없는 가운데 근로시간 개편으로 ‘일하는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실제로 최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근로 비율이 17.5%로 유럽연합 국가들의 수치인 7.3%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전체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도 지난해 기준 1901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가운데 튀르기예·콜롬비아를 제외한 나라 중 멕시코(2226시간), 코스타리카(2149시간), 칠레(1963시간)에 이어 상위 4위를 차지하고 있다.또한, 지난 13일 ‘공짜 야근’의 주범으로 불리며 주52시간제 개편의 최대 걸림돌로 꼽혀온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 법제화도 좌절되는 등 ‘보상 없는’ 연장근로를 근절할 법적 개선 방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정부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장시간 근로가 필요할 때 바짝 일하고 쉴 때 몰아쉴 수 있어 근로자에게도 좋은 제도라며 전형적인 ‘탁상행정 논리’를 펴고 있다. 가뜩이나 워라밸(일과 여가생활의 균형)을 추구하는 20~30대 MZ세대들이 노동시장 편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에서 근로자의 편의를 보장할 수단 없는 근로시간 개편안 추진은 연장 근로의 명분을 위한 것이라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계에서 연장근로를 계속 요구하는 만큼 정부가 정말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 근로시간 개편안을 추진하고 싶다면 강제 연장노동 금지 관련 법제화 등 일반 근로자와 그 가족들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를 함께 제시해야 할 것이다. kys@ekn.kr김유승 유통중기부 기자.

[이슈&인사이트] 트렌드를 읽자

"내년엔 좀 좋아질까?" 많은 사람들은 내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변화를 예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다. 그래서 연말이 가까워 올 수록 내년에 예상되는 유행과 트렌드에 관심을 쏟고, 트렌드를 예측하는 관련 도서가 쏟아져 나온다. 트렌드와 유행은 비슷한 개념이지만 트렌드는 오래 지속되는 패턴이나 변화를 말하고, 유행은 일시적이고 급격한 인기를 얻는 단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 때문에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변화와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는 새로운 해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해 한다. 하지만 트렌드 분석에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현재의 패턴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트렌드 분석에 대한 불확실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여기에 일부의 사회적 이슈들은 트렌드로 지속하기 못하고,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하기 때문에 오랜 기간 동안 유지되지 않을 수 있는 만큼 유행과 트렌드의 구분이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트렌드에 대한 주관적 분석과 그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어떤 트렌드가 진정으로 중요한지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모호성에도 트렌드 분석은 여전히 중요한 비즈니스 및 개인적인 전략 수립 도구로 자리잡고 있다. 그렇다면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사람들은 트렌드를 지나가는 ‘유행’쯤으로 간주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욕망과 해당 시대의 가치를 반영해 사회·문화적인 변화의 흐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은 개인 및 비즈니스 관점에서 모두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트렌드는 우리의 갈망과 가치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트렌드를 지속적으로 분석하여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면, 기업은 더 현실적이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전략을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트렌드 전망이 가져오는 장점은 무엇일까? 첫째, 소비자의 욕망과 선호도를 반영한다. 소비자들의 변화하는 욕망에 민감하게 대응해 제품과 서비스, 마케팅 전략을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현대 비즈니스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이해하면 제품이나 서비스의 맞춤화가 가능하고 이는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 둘째, 트렌드를 이해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혁신을 추구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트렌드는 미래의 가능성을 열는 열쇠이며, 이를 통해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제품, 서비스를 창출하는데 필요한 동력을 얻을 수 있다. 미래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조치를 취함으로써 기업은 기존의 경쟁자들을 뛰어넘고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트렌드를 기반으로 한 혁신은 제품과 서비스의 다양성을 증가시키고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기업은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제품과 기업에 대한 충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셋째, 트렌드는 사회적인 변화와 연관이 있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면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트렌드 분석을 통해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은 비즈니스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함으로써 예상치 못한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트렌드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것 이상으로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하고 개인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사회적 현상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트렌드를 읽을 필요가 있다.이홍주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

[EE칼럼] 폐 배터리냐, 사용 후 배터리냐

일본 에도시대, 에도(江戶)에 ‘인분(人糞)’ 거래시장이 있었다. 에도지역의 인구 급증으로 도시의 농산물 수요가 크게 늘어나면서 인근지역의 농산물 생산을 위한 인분 퇴비의 수요가 덩달아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시장이다. 인분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그동안 기존 인분 처리업자들이 돈을 지불하고 수거·처리하는 보통의 폐기물에 지나지 않았던 인분, 특히 고품질 인분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뛰어들었다. 급기야 인분에도 품질에 따라 등급이 부여되고 가격을 차등화하며 사실상 ‘상품화’ 됐다. 요즘에도 ‘상품’과 ‘폐기물’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는 분야가 있다. 바로 전기차 배터리다. 이와 관련해 최근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지난 14일 배터리 제조, 전기차 제작, 배터리 재활용, 유통·물류 분야에 이르는 24개 민간업체·기관이 참여한 협의체인 ‘배터리 얼라이언스’가 업계의견을 담아 ‘사용후 배터리 통합관리체계’ 업계안을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했다. 이 안에는 향후 규모가 커질 것으로 보이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시장을 조성, 육성하기 위해, 민간 중심의 사용후 배터리 거래 체계 구축, 배터리 전주기 통합이력관리 시스템 구축, 공정한 거래 시장 조성을 위한 시장거래 규칙 마련, 재생원료 사용의무제 도입, 사용후 배터리 산업육성을 위한 정부 지원 등에 대한 정책제언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법률안까지 담았다. 헌데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업계안에는 이목을 사로잡는 2가지 대목이 있다. 첫 번째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의 정의 부분으로 업계는 사용후 배터리를 ‘폐기물’이 아닌 ‘상품’으로서 ‘전기차에서 분리돼 재제조·재사용과 함께 재활용 대상이 되는 배터리’까지로 새롭게 정의하자고 한 것이다. 두 번째는 이 안이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됐다는 점이다. 그 동안 해당 정책을 주도해온 환경부가 아니고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부는 인식이 다르다. 환경부는 기본적으로 전기차에 탑재됐다가 폐차 등으로 철거되는 배터리를 ‘폐기물’로 인식해 ‘폐배터리’로 지칭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존 폐기물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유형의 폐기물로 간주, 전처리 후 일정 공정을 통해 니켈, 코발트, 리튬 등 희귀 유가금속 등을 추출하는 ‘재활용’ 측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환경부는 자원순환법 개정하면서 전기차 배터리가 다시 전기차 재사용되거나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재제조할 경우에만 순환자원으로 인정, 폐기물 규제를 면제해주는 대신 ‘재활용’에 대해서는 ‘지정폐기물’로 지정, 규제·관리하겠다고 천명했다. 배터리가 순환자원이 아닌 지정폐기물로 분류되면 밀폐·보관사항에 대해 안전규제를 받고, 어디에서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실시간으로 감시받으며, 사업허가나 입지규제, 보관, 운송, 거래 등 전반에 걸쳐 보다 강화된 규제가 적용된다. 그러니 환경부가 재활용 배터리에 대해서는 ‘보다 강한 그립(Grip)감을 유지한다’는 말이 나온다. 사실은 전기차에서 탈착된 배터리가 재제조·재사용하든, 재활용하든 사실상 동일 생산라인에서 동일한 원료를 다루는 공정이라 위험 물질 함유량에 차이가 없다. 그리고 전기차에서 탈착한 배터리가 잔존성능이 70~80%이면서 경제성이 높은 광물을 포함한 경우 재제조하거나 재사용된 이후 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순환구조(closed loop)’ 속에서 이해당사자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하나의 ‘상품’이 되어야 건강하게 성장하는 순환경제 기반 산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재제조·재사용처럼 배터리(특히 셀·Cell)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활용하면 ‘상품’으로서의 ‘사용후 배터리’가 되지만, 배터리를 파쇄하면 폐기물인 ‘폐배터리’가 된다. 결국 재활용 배터리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법적으로 아직 육성해야 할 시장이 존재하는 ‘상품’이 아닌 그냥 위험한 폐기물로 취급받고 있다. 물론 최근 전기차의 보급 추세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확장성은 크다. 이에 따라 향후 전기차에서 쏟아져 나올 사용후 배터리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해 자원 순환도하고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신시장을 열려는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고 있고 또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전기차 탈착후 배터리 정책 관련해 산업육성 전담 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규제를 전담하는 환경부가 벽을 허물어야 한다. 당장 따로국밥인 ‘사용후 배터리’·‘폐배터리’라는 용어부터 자원순환에 초점을 맞춰 ‘사용후 배터리’로 통일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상위 조직으로 범부처가 참여하는 총리직속의 ‘컨트롤타워’ 설치를 검토해 볼만하다.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자의 눈]

현대자동차·기아가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하면서 연일 박수를 받고 있지만 국내 중견 완성차 3사인 한국지엠, KG모빌리티, 르노코리아자동차는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내수 부진으로 점유율 두 자릿수를 넘지 못하는 상황인데다 수입차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본격적으로 북미, 유럽, 중동 등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올해 1~9월 중견 3사 승용차 판매량은 9만7100대다. 국내 완성차 브랜드 전체 판매량 중 10.6%에 불과한 수치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KG모빌리티 5만984대, 한국지엠 2만9056대, 르노코리아 1만7060대다. 중견 3사 내수 점유율은 그간 두 자릿수를 거뜬히 넘었다. 2017년엔 22%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꾸준히 감소하며 지난해엔 11.4%로 반토막이 났다. 올해는 최저 점유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지난달만 해도 이들의 성적표는 처참하다. 한국지엠·르노코리아자동차·KG모빌리티의 지난달 판매량은 5만8435대로 국내 완성차 5개 사의 전체 판매량의 8.41%에 그쳤다. 같은 기간 현대차는 9.6% 증가한 37만7986대를, 기아는 7.7% 늘어난 25만7709대를 판매했다. 중견 3사는 수입차에도 밀리는 상황이다. 지난 9월 판매량을 보면 KG모빌리티 4069대, 한국지엠 2632대, 르노코리아 1651대 수준에 그쳤다. 같은 기간 메르세데스-벤츠는 6971대, BMW는 6188대를 판매했다. 향후 현대차·기아 또는 수입차로 향하는 소비자 쏠림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현대차·기아는 신차 개발·생산, 플랫폼 개발, 공급망 확보 등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진행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점에서는 이기지 못할 싸움이다. 이젠 생각을 다르게 해 봐야 할 때다. 국내 시장을 놓지는 말되 시야를 해외 시장으로 넓힐 필요가 있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선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였다. 한국지엠은 올해 국내에선 부진하지만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북미 수출이 성공하면서 수출 물량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성장했다. 올해 1~9월 한국지엠 수출은 29만4263대로 전년대비 81.4% 증가했다. 내수판매에 비해 10배 많은 수준이다. 지난 9월 해외 판매는 전년대비 66.2% 증가한 총 3만3912대를 기록하며 18개월 연속 전년대비 성장세를 이어갔다. 또 3분기 누적 수출만으로도 이미 작년 연간 수출량을 넘었다. 이대로 밀리기엔 중견 3사의 기술력과 노하우가 너무 아깝다. 가끔은 ‘이렇게 잘 만든 차가, 이렇게 가성비 좋은 차가 밀린다니’라는 아쉬움이 든다. 이젠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꼭 더 큰 물에서 기량을 뽐내길 응원한다. kji01@ekn.kr김정인 산업부 기자 김정인 산업부 기자

[EE칼럼] 에너지 산업에 필요한 넛지 디자인

최근에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자 교육에 참석했다. 바쁘다고 그 동안 미뤄왔던 교육이었지만, 의무적으로 연내에 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이틀이나 꼼짝 없이 교육장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오랜만에 학생의 기분으로 열심히 들어보자는 마음에 수업을 하나하나 수강했는 데 예상외로 재미도 있었고 안전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 중 한 수업 시간에 안전 및 보건 분야에 적용된 다양한 디자인적 요소나 인센티브에 대해 들으면서 자유주의적인 개입을 의미하는 ‘넛지(Nudge)’에 대해 오랜만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리처드 세일러와 캐스 선스타인의 공동 저서 제목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개념은 전 세계에 퍼지기 시작한지도 이미 10년 이상 됐고,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하고 있지만 경제학, 사회학, 그리고 정책학 분야 등으로 확장되며 큰 호응을 얻은바 있다. 특히 마케팅 차원에서 다양하게 적용된 사례들을 찾아 볼 수 있는데, 구매 결정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상품에 대한 홍보를 대놓고 하기 보다는 구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가 돌아올 때면 장난감 가게에 들르지도 않았는데 어김없이 손에 장난감 하나가 들려있는 경우다. 이는 진료를 받은 후에 약국에 들어갔을 때, 부모들이 처방전을 약사에게 내미는 동안 아이들이 자기 눈높이에 맞추어 진열돼 있는 장난감이 포함된 비타민 사탕을 손으로 집을 수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넛지 기반의 디자인적 요소가 에너지 분야에는 어느 정도 적용돼 있을까? 잠시 생각해 봤지만 그다지 효과적인 설계 예시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에 나오는 동일 면적 세대 대비 에너지 사용량 그래프 정도가 아닐까 싶다. 경쟁 심리를 끌어들여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처음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요즘에는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조차도 그 그래프를 볼 때만 인식할 뿐 에너지 절약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는다. 중장기적인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향상과 함께 에너지 절약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에너지 효율향상을 위한 기술개발이나 관심도는 어느 정도 가시적인 것에 비해 절약 부분에 대한 기술개발이나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낮은 분위기다. 지난달 한 대학에서 에너지산업 및 정책에 대하여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30대 이상의 수강생 30여 명 중에서 2~3명 정도만 자기 집의 전기요금 수준을 알고 있다고 답했던 것을 상기해 보면, 일반 국민들의 에너지 요금에 대한 관심도나 절약 차원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넛지 기반의 디자인적 요소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경제학적으로 소비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요소는 가격이다. 최근에 전기요금이 조정됐지만 국민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 인상된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지만, 이내 연예계나 정치계의 주요 사건들을 다루는 기사에 덮여 금세 잊히는 것 같아 좀 아쉽다. 이달 들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전력사용량이 또 급증할 조짐이다. 이-팔 전쟁으로 ‘에너지 보고(寶庫)’인 중동 지역의 분위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 또 다시 에너지 수급의 위기가 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아무 쪼록 에너지 절약을 위한 넛지 기반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와서 자연스럽게 에너지절약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한다.손성호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

[EE칼럼] 그린워싱 의심받는 기업ESG

필자가 다니는 학교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매년 교정의 단풍사진을 찍어서 올리는데 올해는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아 작년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올해는 가을까지 무더운 날씨가 이어져 단풍이 제대로 들지 못한 탓이다. 이달 초순까지도 단풍이 제대로 들지 않아 단풍여행을 갔다가 실망을 했다는 글들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이제는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해 사람들도 몸 소 느끼는 시대가 온 것 같다. 환경보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환경 보호의 실효성에 대한 논의를 불러왔다. 대중의 관심이 늘고, 친환경 제품 선호가 높아지자 기업들은 앞다투어 ‘환경기업’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탄생한 것이 ESG이다. 한때 ESG는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이제 ESG 문제는 단순히 기업의 펀더멘털과 가치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서 나아가 주식시장에서 중요한 시장 테마로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예상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김한성 자문역은 환경적 문제는 소비자 선호의 변화로 이어져 기업의 수익과 영업 마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사회적 문제는 기업의 평판과 지지가 확산되면서 순차적으로 관련 규제와 세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또 거버넌스 문제는 기업이 조직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성별, 지역별 차별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유능하고 창의적인 직원들의 이탈을 막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ESG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ESG위원회를 운영하고, 공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적·물적자원의 투입이 늘어남에 따라 공시품질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그러나 공시품질이 올라가는 것에 따라 비용이 늘어나고 있어 이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나오는 실정이다. 공시품질이 기업가치를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는 데도 ESG경영은 단기 비용을 상승시킬 소지가 있기에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배척되거나 폄훼하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심사위원장을 맡은 ‘공시품질이 재무성과와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원용연 박사의 학위논문(신상윤교수 지도)’에 따르면 환경경영은 재무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나, 기업가치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환경경영은 공시품질을 증가시키고, 공시품질을 통해 기업가치를 간접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논문에 비록 환경경영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을 증가시켜 재무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상승시킨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ESG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에게 비용을 증가시켜 수익구조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가치를 증가시키기에 기업경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됐다. 하지만 과거 기업들은 ESG 중 사회적 책임(S)에 중점을 두고 활동을 하며, 단기적인 수익과 비용에만 신경 쓰며 실효적인 ESG경영은 방관했다. 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현재 ESG에서 소외되고 있는 환경보호(E)에 실효성이 있는 방향으로 경영을 해야 한다. 정부도 이런 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현재 ESG는 기로에 서있다. 침체된 경제분위기 속에서 기업의 ESG가 단순한 그린워싱이 아닌가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FTC는 월마트가 친환경 제품으로 소개한 침대가 합성 레이온으로 만들어진 것을 적발하고 300만 달러의 벌금 부과와 함께 친환경 마케팅 표기 규제안인 ‘그린 가이드’ 개정에 착수했다. ESG는 이런 상황일수록 대중들에게 직접 와 닿는 환경보호(E)와 관련된 경영에 힘을 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공시품질의 향상을 통한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통해 기업의 ESG경영을 장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기업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ESG에 대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기자의 눈] 민주당, 200석 낙관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과 지난달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압승으로 민주당의 ‘낙관론’이 커지다 못해 방심한 모양새다. 최근 민주당 사이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200석 발언’이 연이어 나왔다. 현 전체 의석 300석의 3분의 2인 200석을 차지하면 모든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 이번 정권에서도 있었던 대통령 거부권도 한 번은 쓸 수 있지만, 국회에서 200명 이상이 찬성해 재의결하면 무력화된다. 개헌은 물론 대통령 탄핵소추까지 추진할 수 있어서 사실상 200석은 ‘절대 의석’으로 불린다. 이번 200석 발언으로 화들짝 놀란 민주당 지도부는 직접 나서 자중을 당부했다. 이 대표는 비공개 회의를 통해 "모든 선거를 앞두고 절박한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익표 원내대표도 "우리 스스로 오만하거나 다 이긴 것처럼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의를 줬다. 다만 현재 민주당의 모습에서는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정책적 이슈 선점 경쟁에서는 국민의힘의 ‘김포 서울 편입’과 ‘공매도 금지’에 끌려다니고 있다.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만 머물며 여당의 연쇄적인 ‘개혁’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정책 주도권을 빼앗긴 민주당은 의석수를 앞세운 다수당의 힘 과시에만 몰두하고 있다. 우선 지난 9일 ‘노란봉투법’과 ‘방송법’을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으로 처리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절대 다수 의석으로 밀어붙인 것은 지지층에 총선용 보여주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 정부 인사에 대한 본격 ‘탄핵 카드’까지 남발하고 있다. 민주당의 현 정부 인사에 대한 공직 박탈 시도는 박진 외교부장관 해임건의안을 시작으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까지 네 번이나 있었다. 이번에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과 이정섭·손준성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벼르고 있다. 이번 탄핵은 실제 파면이 목적이라기 보다는 총선 전까지 방통위의 손발을 묶어두고 이 대표에 대한 수사를 지연시키려는 정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 대표는 최근 ‘3% 성장론’을 주장하고 나섰으나 이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년 복지 정책 재원 마련을 위한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이다. 이 대표는 3% 성장론과 함께 제안한 ‘청년 대중교통 3만원 패스’의 재원 조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예산소요액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하며 준비가 되지 않은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변화’와 ‘혁신’을 보여주겠다던 민주당은 온데 간 데 없이 ‘방탄 탄핵’에만 몰두하는 모습이다. 구속영장 기각과 강서구청장 승리의 기쁨은 이제 잊어야 한다. 한달 새 여론 지지율 추이도 낙관적이지 않다. 실제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리얼미터가 11월 9일부터 이틀간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 결과(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민주당 정당 지지율은 45.5%, 국민의힘은 37%로 집계되면서 한 달 사이 민주당 지지율이 5.2%포인트 떨어진 반면 국민의힘 지지율은 5.0%포인트 올랐다. 민주당은 최근 국민의힘의 맹추격에 쫓기고 있다. 사사건건 정부와 여당을 물고 늘어지는 민주당의 행태는 독이 될 뿐이다. 상승장은 끝났다. 근거 없는 낙관론은 잊고 진정 민생을 위한 민주당이 되어야 할 때다. ysh@ekn.kr윤수현 증명사진

[데스크 칼럼] KB금융의 양종희 승부수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예측 불가능한 금융사를 꼽으라면 그 주인공은 단연 KB금융지주일 것이다. 곧 취임을 앞둔 양종희 KB금융 회장 내정자 역시 KB의 ‘예측 불허한 면모’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냉정하게도 KB금융이 차기 회장 선임 절차에 착수하기 몇 달 전부터 시장에서 양종희 부회장을 차기 회장 유력 후보로 점찍은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윤종규 회장이 추가로 임기를 부여받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후배인 허인 부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여러 정황을 고려해보면 두 가지 방안 모두 KB금융 이사회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카드임에 틀림없었다. 리딩금융인 KB금융 이사회가 차기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굳이 모험을 강행할 이유는 많지 않았다.예상을 깨고 KB금융은 이번에도 승부수를 띄웠다. 행원 출신이지만 금융지주 회장이라면 응당 거쳐야할 KB국민은행장을 경험하지 않은, KB손해보험 대표 출신의 비은행 전문가인 양 내정자를 회장으로 발탁했다. 뻔하지 않았기에 흥미로웠고 신선했다. KB금융그룹의 맏형은 더 이상 국민은행이 아니라는 냉철한 분석이 없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본다. 이사회가 현 정권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허인 부회장을 택하지 않은 것도 의외의 결과다. KB금융은 앞으로도 정권과 정치라는 큰 바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양 내정자와 KB금융은 새 수장 취임 전부터 달갑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조만간 퇴임을 앞둔 윤종규 회장이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5대 금융지주 수장 가운데 유일하게 증인으로 채택된 것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국감 전후로 KB경영연구소가 금융당국의 정책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삭제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도 KB금융에는 신경쓰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원장은 지난 6월까지만 해도 KB금융을 향해 금융지주 회장 승계프로그램이 잘 짜여져있다고 호평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KB금융이 회장 후보군을 먼저 정하고 평가 기준을 정했다며 표정을 바꿨다. 최근 몇 달 새 KB금융을 향해 날아오는 따가운 시선들은, 앞으로 양 회장이 풀어야할 숙제와도 같다. 최대 실적, 배당 확대 등 겉으로 보여지는 공(功)보다 지배구조 개편, 내부통제 부실이라는 과제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금융업이 처한 숙명이다. KB금융을 이끌게 된 양 내정자가 외부에서 KB금융에 요구하는 정답이 무엇인지, 그 정답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수없이 질문하고 행동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양 내정자에는 윤 회장이라는 위대한 선배가 있다. 윤 회장은 9년 전, 차기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직후 "KB금융그룹의 리딩뱅크 위상을 반드시 회복하겠다"고 공언했고,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 윤종규 회장은 KB금융을 글로벌 빼고 다 갖춘 금융사로 키웠다. 양 회장은 자신을 신임한 이사회, 주주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 윤 회장이 KB금융 내 전무후무한 CEO로 평가받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 그 이상을 해냈기 때문이다. 이미 시장에서는 윤 회장을 이을 차기 수장이라면 리딩금융이라는 왕관을 지키면서 부코핀은행 정상화, 글로벌 금융그룹으로의 도약 등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특히나 부코핀은행의 부실이 진정 끝난건지에 대한 질문은 모두가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이 정답 또한 양 내정자가 더 잘 알 터이다. 국내 최대 금융지주인 KB금융을 바라보는 시장의 기대치, 그리고 경쟁사들의 긴장도는 9년 전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 보인다. 양 내정자가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어떤 고유의 색깔을 드러낼지, 기대감과 부담감 모두 안고 출발하는 새 KB금융이다. mediasong@ekn.kr

[EE칼럼] 신재생 앞세운 지역발전은

몇 년 전부터 국내 에너지문제에서 중심 의제는 전력이다. 4차 산업·정보혁명 시대에 전력이 주종에너지라는 점에서 당연하다. 2차 에너지인 전력의 생산 방식은 다양하다. 기존의 화석연료·원자력 발전에다 다양한 신재생발전이 그 대종을 이룬다. 지금은 연료전지, 전력 저장, 수소-메타놀 발전 등이 가세했다. 전력 생산 방식은 갈수록 복잡해져서 한꺼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하나의 도선(導線)으로 이뤄지는 전력수송과 배분 방식도 복잡한 전력 생산 체계와 연계돼 갈수록 복잡다기해지고 있다. 이런 여건에서 전력의 생산-수송-배분체계를 하나의 지도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 편리하다. 문제는 이런 지도체계가 갈수록 복잡해져 점차 그 편리성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제는 신재생을 포함한 전력 체계가 주는 국민 이득 파악이 힘들어지고 있다. 결국은 이대로는 미래 전력 체계가 국민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다. 에너지문제의 새로운 ‘아이러니’다. 정부와 한국전력이 산업용 전기요금을 ㎾h당 평균 10.6원 인상했다. 주택용과 소상공인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고 대기업 공장 등에 적용되는 산업용만 올렸다. 고물가에 따른 서민경제 어려움과 내년 총선을 앞둔 여론을 고려한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수익자 부담과 원가주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정부 당국이 나서서 가정보다 100배 정도 더 많은 전기를 소비하는 대기업들이 오랫동안 누려온 값싼 전기요금 혜택을 직시하면서 에너지 효율과 경영 효율 제고를 통해 이전 요금인상 부담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기요금 문제를 정부가 경제정책 차원을 떠나 사회 형평 일환으로 간주한다는 시각이 있다. 이는 향후 전력 정책에 대한 정부개입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의 판매수익이 올해 4000억원, 내년에는 2조 8000억원의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걸로는 한전의 1년치 이자도 못 갚는다. 애초 한전 적자 해소를 위해 올해 전기요금을 Kwh당 51.6원 올려야 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26원 남짓 올렸다. 이에 따라 한전의 재정 적자는 더 커질 것은 분명하다. 한전은 2021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누적 적자가 47조원이고,부채는 올 상반기 기준 201조원에 달한다. 하루 이자 비용만 118억원이다. 당연히 내년은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다. 누적 회사채가 법으로 정한 한도를 넘어 추가 발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적정 요금 인상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송배전 사업을 하는 한전이 발전 사업자들에게 지불한 도매가격이 2021년 Kwh당 70원 수준에서 지난해에는 260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국제 에너지 가격 인상에 주로 기안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경쟁 대상 선진국(OECD) 가운데 가장 싼 수준이다. 이런 판국에 한전이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 대책’을 내놨다. 조직 혁신, 인력 효율화, 자산 매각 등을 통한 재무 개선이 주요 내용이다. 본사 조직을 20% 줄이고, 희망퇴직을 받는다. 서울 인재개발원 부지(64만㎡)를 팔고 자회사인 한전KDN 보유 지분 20%도 국내 증시 상장을 통해 매각한다. 필리핀 의 태양광 사업 보유 지분도 정리한다. 그러나 이런 자구노력 대부분이 곧바로 실행하기 어렵다. 그래서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생색내기용이라는 일각의 말이 설득력을 얻는다. 특히 한전 전기요금 결정의 최종 결정권자인 정부의 역할과 책임 제시는 아예 없다. 정부는 요금 결정의 권한을 가진다면 국민을 위해 전력산업 공공성을 보장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못한다면 통상적인 ‘시장실패’를 넘어 심각한 ‘정부실패’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통령실과 여당에서 전기요금 인상안을 사실상 결정하는 상황은 후진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기요금과 같이 모든 국민이 이해 당사자인 공공재 요금은 별도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시장-가격 규제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주장도 많다. 그러나 법률상 독립규제기관인 ‘전기위원회’가 사실상 산업부 등 기관의 하부조직으로 편입된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전기위원회 구성원들은 2021년 시행된 ‘유가가 상승하면 전기요금도 올리는 연료비 연동제‘ 준수 책임을 어긴 셈이다. 따라서 지금은 비정상적으로 낮은 요금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급선무다. 당장 손해 본다는 소비자들에게 중장기적으로는 시장 논리가 유리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리적이고 예측가능한 요금제도를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근시안적인 정치 논리로 요금 인상에 소극적인 정부나 정치권이 행사한 ‘비합리적’ 가격정책이 결국은 더 큰 자기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나아가 한전이 주관하는 송배전 설비 등 전력망 구축 투자가 부진해 반도체·이차전지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육성에 큰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사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강조한 신재생 전력 투자의 급증으로 호남과 남부 서해 지역을 중심으로 태양광. 풍력설비 증설이 급증하고 있다. 효율적 전력 소비 체계 구축이 지연되고, 비싸고 비효율적인 전력 저장설비 투자 필요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는 극단적인 전력 투자 비효율을 의미하는 ‘무효(無效· Reactive)전력’ 증가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현 정부가 글로벌 차원에서 추진하는 신재생-원전 조화를 주축으로 하는 ’무탄소(CF ·Carbon Free) 에너지’ 체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무효전력 사태의 부작용을 구체적으로 산정하는 작업과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 혹시나 하는 제2의 새만금 ‘잼버리’ 사태의 재현과 영속화는 막아야 한다.최기련 아주대학교 에너지공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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