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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소형모듈원자로 사업화는 민간기업 중심으로

기후 위기와 에너지 위기에 대한 대응수단으로서의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한 관심이 높다. 원자력 선진국들이 모두 SMR 개발에 뛰어들었고,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이미 여러 기가 운영 또는 건설 단계에 있다. 우리나라도 2010년대에 개발된 SMART의 해외 수출을 모색하는 한편으로 경제성, 안전성, 운전편의성 등을 더욱 강화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i-SMR 개발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총 3992억원(국고 2747억원 포함) 규모의 사업으로, 2028년까지 설계개발과 검증 및 규제기관 인증(표준설계인가)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해상용 용융염원자로를 비롯한 다른 원자로형 개발은 물론 민간기업과 외국 SMR 개발업체와의 협력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공기업 중심의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통해 대형원전 기술의 독립과 선진화를 이루고, 국내 건설과 해외 수출을 성공적으로 추진해왔다. 공기업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면서 국책연구기관과 대학이 기술개발과 검증을 지원하고 민간기업이 설비 공급과 건설에 참여하는 국내 원자력 산업체계의 경쟁력은 국내외 대형원전 사업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 현재 i-SMR 개발도 공기업과 국책연구소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민간의 관심이 높고 다양한 전문기술의 도입도 필요해 40여 민간기업이 분담금을 부담하며 참여하고 있다. 개발되는 i-SMR의 사업화에는 민간기업의 역할이 훨씬 더 커져야 한다는 데에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i-SMR 최초호기 국내 건설 사업을 공기업 중심으로 민간기업이 적극 참여하는 형태로 신속하게 착수해야 한다. 둘째, 본격적인 국내외 건설에서는 민간기업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셋째, 국가 차원의 원전기술 개발 역량은 지속적으로 유지·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이 중요한 이유를 좀더 살펴본다. 최초호기의 신속한 국내 건설 필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나라 원전산업의 최대 쾌거인 APR1400형 원전 4기의 아랍에미리트(UAE) 수출은 같은 노형인 신고리 3·4호기(현 새울 1·2호기) 국내 건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면에 세계 최초로 규제기관 인증을 획득한 SMART 원자로의 해외 수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장 큰 이유가 국내 건설계획이 없다는 점이었다. 더욱이 i-SMR은 새롭게 도입되는 모듈형 원자로이므로 정부, 공기업, 민간기업이 협력하여 위험을 분담하면서 성능을 실증하고, 향후 본격적인 상용화에 필요한 상세설계, 제작·건설, 운영기술 등을 완성할 필요가 있다. 민간 대기업들은 최초호기 건설사업에 참여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스스로 사업을 주도할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 주도 사업화가 중요한 첫째 이유는 SMR의 이용 분야와 운영 방식이 매우 다양하여 소수의 공기업 중심으로는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제철, 반도체, 화학 분야의 에너지 다소비 대기업군은 주도적으로 SMR을 건설·운영하면서 필요한 전력이나 열을 공급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탄소중립 정책에 따라 폐쇄될 화력발전소를 대체하여 기존 발전공기업이 민간기업과 협력하여 SMR을 건설·운영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숨어있는 외국 시장을 개척하는 데도 민간기업이 더욱 유리할 것이다. 민간 대기업들은 과거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지금은 세계적 영향력이 더 크다. 물론 한수원은 대형 원전 국내 건설·운영 및 수출사업을 계속하면서, i-SMR 최초호기를 포함하여 국내외 i-SMR 건설사업을 계속해야 한다. 즉, i-SMR 사업화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양날개 전략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전 기술개발역량 유지·강화의 중요성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가 기적적으로 구축한 원전 개발 및 설계·건설 사업체계는 자유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으며, i-SMR 개발사업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SMR의 개발과 사업화에서 민간기업의 역할이 확대하더라도 국가적인 기술개발역량의 약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투자자본이 지배한 웨스팅하우스의 사례나 프랑스, 영국, 미국 등에서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배경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민간기업이 i-SMR 사업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려면 제도적 측면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SMR이 안전성과 운전유연성 등의 장점을 살리면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전력시장 제도와 안전규제 제도를 전반적으로 재검토하여 개선해야 한다. 아울러 전력수급기본계획에 i-SMR 건설을 반영하고, 이를 위한 추진 일정 및 체계 등에 대한 논의를 조속히 착수하기를 기대한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이슈&인사이트] 한국 교육의 서글픈 현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독일 사람 안톤 숄츠(Anton Scholz)씨가 쓴 『한국인의 이상한 행복』(문학수첩, 2022)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책이면서 고마운 책이다. 한국인의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교육에 대한 것도 있다. “유치원 입학시험이 있는 곳도 있다"(151면), “교과 선행 학습은 물론, 한국의 사교육 산업은 줄넘기나 레고 만들기처럼 놀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는 것조차 학원에서 배워야 할 과목으로 만들어 낸다"(154면)는 지적은 정곡을 찔렀다. “중요한 것은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156면), “독일 학생들은 1시간씩 1주일간 수영을 배우면 웬만큼 하는데, 한국에서는 6개월이 걸려도 수영을 제대로 못하는, 말하자면 '가르치는 척'하는 교육"(156면)에는 할 말이 없다. “한국인의 영어 수준은 높아졌지만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드문 편"(156면), “독일에서는 잘 배우려고 시험을 보는데 한국에서는 시험을 잘 보려고 배우므로, 가장 중요한 것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이 한국 교육의 특징"(159~160면)이라는 대목에서는 감탄하게 된다. “무엇을 배우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시험을 통과할지에 교육의 초점이 있는 한국"(160면)이라는 비판은 설득력 있다. 대학 교수들은 요즘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학생들이 점점 좌경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이 아주 조금씩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다. 좌경화의 원인은 정치권과 좌파 경제학자들의 영향이 크다. 백광엽 지음, 『경제 천동설 손절하기』(미래, 2023)를 보면, “한국에는 '따뜻하고, 착한 경제학'이라는 수식어를 앞세우는 자칭 진보경제학자 그룹이 존재한다. 서민을 위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에 진심이라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다. 이들은 여러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고 검증되지 않은 '진보 경제정책'으로 폭주했다. '사람 중심 경제'라는 깃발 아래 문재인 정부에서 소득주도성장을 기획하고 밀어붙인 일단의 학자들이 대표적이다"(11면, 들어가는 말). “진보경제학자의 대부 변형윤 교수가 직접 '학현학파'로 거론한 4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김대중ㆍ노무현ㆍ문재인 등 자칭 진보정부에서 큰 감투를 썼다. 정권을 바꿔가며 두세 번씩 요직에 오른 이도 수두룩하다"(105면). 해가 갈수록 성적이 나빠지고 있는 이유는 비정상적인 교육 시스템에 있다. 시험이 공부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피할 수 없다. 한글학회가 '한글 전용'을 주장해 관철됐고, 학생들이 '익일', '작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금일'을 '금요일'로,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알아듣는다. 그런데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미적분Ⅱ와 기하를 보는 '심화수학'은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한다. 미적분은 '수학의 꽃'으로서 자연과학ㆍ공학 분야에 핵심 역할을 하는 데다, 인공지능(AIㆍ기계ㆍ원자력ㆍ바이러스 증식 등의 현상을 분석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과학 영역인 경영, 경제, 사회학, 심리학 등 분야에서도 기본적인 통계학 지식을 학부 수준에서 다루기 때문에 그 근간이 되는 데이터를 이해하는 데에도 미적분은 필수다. 기계공학의 근본인 뉴턴 역학은 힘(벡터)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기하 과목에 대한 기초지식 없이 벡터를 좌표계 및 대수로 연결하는 개념을 접하게 되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기하를 모르고 어떻게 기계를 만들고 건축설계는 어떻게 하나. 숄츠씨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시험과 무관한 공부를 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인데, 오히려 수학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노라 자화자찬하는 장관은 화성 사람인가? R&D 예산도 크게 줄었다. 정부가 우주 분야 육성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최근 연구개발 예산 삭감에서 우주 분야 기업을 지원하는 '스페이스 이노베이션' 사업 등이 대폭 삭감되었다. 과학자와 대학교수들을 화나게 해 간단하게 적으로 돌려놓았으니 4월 총선에서 여당의 참패는 이미 정해진 것 아닌지?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기자의 눈] 총선에 묻힌 금융법안

송두리 금융부 기자 4·10 총선을 앞두고 금융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오는 19일부터 2월 임시국회가 열리지만, 그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금융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번에 처리되지 못하는 법안들은 폐기 수순을 밟고, 22대 국회에서는 법안 발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정무위원회의 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과 행정안전위원회의 새마을금고법 개정안, 기획재정위원회의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 등이 있다. 산은법 개정안은 여당과 야당의 입장 차이가 뚜렷한 법안이다. 산은법 개정안은 산은 본점은 '서울'에 둔다는 기존 산은법의 문구를 '부산'에 둔다로 바꾸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두고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산은을 부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국민의힘과 산은의 부산 이전 명분이 뚜렷하지 않고 제대로된 절차를 밟는 것이 필요하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입장이 대립되고 있다. 반면 새마을금고법 개정안과 수은법 개정안은 여당과 야당이 크게 이견을 보일 만한 법안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새마을금고법 개정은 지난해 11월 새마을금고가 발표한 혁신안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개정안에는 새마을금고중앙회 회장을 단임제로 하고, 전무이사와 지도이사를 경영대표이사로 통합하는 등 지배구조를 손질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수은법 개정안은 수은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현행 15조원에서 30조원 이상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확대되면서 각종 정책금융 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수은으로부터 수출 금융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방산업계 중심으로 수은법 개정에 대한 요구가 큰 상황이다. 산은법과 같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법안의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법안 처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에서 공회전하고 있는 금융 법안들을 보면 여야간 큰 이견이 없는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총선을 의식해 대치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총선 국면에 국회의원들의 모든 관심이 공천에 쏠려 있어 우선순위가 아닌 금융 법안은 논의 대상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다는 아쉬움도 나온다. 총선 이후 22대 국회에서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만큼 금융법안의 처리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동안 국회만 바라보고 있던 업계 입장에서는 답답한 일이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이슈&인사이트] 기업가 정신 살려 저성장 파고 넘자

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한국경제는 2024년 새해에도 그리 밝지 못하다. 대외적으로는 우크라니아-러시아 전쟁 장기화와 중동 분쟁의 확산,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급격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우리가 어찌 해볼 수 없는 불안 요소와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고금리로 인한 소비 위축과 기업의 투자 둔화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적 요인으로 올해도 2% 초반의 저성장이 예상된다. 과거에는 이러한 경기 위축 이후 기저효과로 경제성장률이 크게 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그런 기저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렇게 경기 회복력이 약화된 것은 글로벌 경제의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체적인 성장동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완전고용 상태에서 물가상승을 일으키지 않는 최대성장률을 의미하는 잠재성장률 추이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2023년 OECD 보고서는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 3.5%를 기록한 이후 계속 낮아져 올해는 1%대 중후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경제의 활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업하기 어려운 제도적 환경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라는 것에 대다수 기업인들이 동의한다. 제도적 환경은 한마디로 '규제'다. 규제는 집행력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제재가 따르게 마련이다. 규제가 불합리하거나 과도해서 순응하기 어려우면 불합리한 제재가 수반되고 기업인들은 전과자가 된다. 법을 어긴 사람이라면 정치인, 기업인 가릴 것 없이 처벌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과도한 규제에 동반되는 과도한 처벌은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을 꺾고 결과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막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준다. 2021년 한경협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6개 중앙부처의 경제관련 법령 301개 중 6568개의 기업 형벌 규정이 있다. 이 가운데는 이중 삼중 처벌도 있으니 '기업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정부는 기업인 과잉 처벌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하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만 대부분이 번번히 문턱을 넘지못한다. 이렇게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처벌을 개선하기 어려운 것은 정치권에서 이들을 잠재적인 범죄자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인은 감시,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외에서는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인을 극진히 대접한다. 1995년 삼성전자가 영국 윈야드에 7억달러를 투자할 당시 영국은 투자금의 20%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했고, 공장 준공식에는 엘리자베스 여왕, 왕실 유력인사, 정치인 등이 대거 참석했다. 당시 영국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조그마한 미지의 국가에 불과했겠지만,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인에 대해서는 최고의 예우를 제공한 것이다.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에 관련된 인사들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2020년 9월 검찰 기소로 시작된 사법적 다툼이 3년5개월이나 지난 2024년에야 겨우 1심이 끝난 것이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 것은 다행이지만 그간의 조사, 심리절차 등을 위한 시간과 재정적 비용, 돈으로 계산이 불가능한 기업과 기업인의 평판 훼손 등 해당 그룹과 경영자도 많은 고초를 겪었다. 여기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검찰 조사에 대한 국민의 불편한 시선, 언제 내 차례가 올지 모른다는 경영자들의 불안감 등 사회적 자본의 돌이킬 수 없는 훼손이 그것이다.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사회적 자산을 잃어버린 셈이다. 기업인들은 최고의 예우를 기대하며 사업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누가 괴롭히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른다. 이제 기업인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 나아가 기업인의 공을 그대로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고, 후세들에게 부모세대만 경제성장의 과실을 누렸다는 비판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EE칼럼] 해묵은 전력망 문제 해법은?

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과 교수 지금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해묵은 난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쌓여만 가고 있다. 전력망 문제도 그중 하나다. 동해안 등 일부 지역에서는 송전망 부족으로 이미 발전소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발전이 급격히 늘어난 제주도나 서남해안 지역도 변전소 증설은 물론 남아도는 전기를 융통할 수 있는 송전망 보강이 시급한 실정이다. 더구나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재난으로 인해 전력망의 복원력과 신뢰도 유지에 대한 우려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현재의 전력망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정부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발전소 신설에 따른 전력 수송을 위한 송전계획도 함께 수립한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는 계획대로 추진되는 송전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년씩 지연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HVDC, 765kV 등 시급한 국가 기간송전망은 하세월이다. 현재 상태라면 언제 설비 준공이 가능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한전은 오직 대용량 송전망 신증설이라는 접근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이나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하고 있지만, 충분하고 강건한 전력망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개발연대인 1970∼1980년대에 시작된 발전소 건설과 전력망 신설은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수요는 늘어나고 대규모 발전소가 해안선을 따라 집중적으로 건설됐다. 거리는 멀지만 한꺼번에 많은 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것이 비용도 저렴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런 접근 방법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더는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전력산업의 경제적, 기술적, 사회적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력 수요 또한 산업구조 변동과 인구 등의 영향으로 수년째 거의 정체 상태다. 수도권 집중이 계속된다고 하지만, 전기 다소비 산업의 지역적 분산으로 수도권의 전력 수요 비중은 더 이상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다. 송전망 건설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원거리 송전망은 발전소와 달리 많은 지역을 통과하는 만큼 이해관계자가 많다. 자기가 사는 지역으로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송전망 건설을 위해서는 당연히 각종 보상비용이 들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증가하고 있다. 그나마 비용으로 해결되면 다행이지만, 환경 훼손, 경관 문제 등으로 인해 건설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많다. 보다 근본적인 변화로는 지금까지 수십 년간 전력산업을 지탱해 오던 대규모 발전과 원거리 송전이라는 패러다임이, 앞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에너지시스템은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기술을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산업도 지금까지의 대규모 공급중심의 방식에서 수요중심의 분산 시스템으로 변하고 있다. 이렇게 된 것은 그동안 대규모 발송전설비에 대한 기술적 경제적 우위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생에너지, 열병합 등 분산형 전원과의 격차가 급격히 좁혀지거나 심지어 역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런 변화에 발맞춰 몇해 전 분산에너지를 활성화법을 마련해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한전이 독점하는 송전사업에 민간 진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송전망 건설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민간의 역량과 자본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영국에서는 오래전부터 해상풍력단지로부터 송전망 건설을 위해 해상풍력 설치 시 송전망운영자(OFTO)를 선정하고 있다. 우리도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송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접근방식을 도입하려 한다. 그러나 한계에 달한 한전의 재무적 문제를 제외하면 정부나 한전이 송전망 문제를 해결할 묘안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보다 더 큰 비용이 필요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공급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전기요금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우리 전력수급 구조상 기존의 송전 방식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제는 필수가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 관점에서 봐야 한다. 현재의 전력 수급은 지역 간 불균형이 매우 크다.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체 발전 설비가 거의없는 지역도 많다. 이는 타 지역 전력에 무임승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로 전기가 남아도는 지역은 발전 설비 건설이 쉬운데 비해 상대적으로 전력을 쓰는 산업체나 시설이 적다. 이런 지역 간 불균형이 이어진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송전망을 구축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다. 이제는 송전망 문제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 새롭게 전력 수요를 유발하는 데이터센터나 대규모 시설을 유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송전수요를 줄일 수 있다면, 막대한 전력망 확충비용을 회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분산 시스템 구축에 필요한 기술경제적 토대는 만들어져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과 시장 신호만 작동하게 하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개발시대의 패러다임과 마인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확장의 시각에서 계속 설비 스톡만 늘리는 방식은 시스템의 진화를 저해할 뿐이다. 전력망 구성에 대한 의사결정 기준과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 개발연대의 경험과 사고는 진화하는 기술 변화와 다원화 환경과는 거리가 있다. 국가 전력망 구축에 대한 접근방식도 혁신이 필요하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기자의 눈] 금융주 주가 급등세...중장기 추세로 이어져야

연초부터 금융주 주가가 급등세다. KB금융 주가는 1월 8일 5만2200원에서 이달 현재 6만3000원대로 20% 넘게 급등했고, 이 기간 하나금융지주(31.15%), 우리금융지주(17.72%) 등도 강세를 보였다. 한화생명(44.25%), 미래에셋생명(36.6%) 등 보험사 주가도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금융위원회가 국내 상장사의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기업 특성을 고려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금융주 주가에 불을 지폈다.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의 기업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데다 최근 금융지주사들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에 주력하고 있는 점도 금융주에 대한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그간 우리나라 금융주는 사상 최대 실적, 주주환원 확대 등의 온갖 노력에도 기를 펴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는 금융사를 바라보는 정부의 시선이 한쪽에만 치우쳐져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리나라 은행들을 향해 “일종의 독과점이기 때문에 갑질을 많이 한다"며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비판에 은행들은 즉각 '억' 소리나는 상생금융을 내놨고, 이는 작년 한 해 순이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정부가 은행권의 비은행 및 비이자이익 확대, 글로벌 진출 강화 등을 독려하거나 이에 대한 규제 완화에는 미온적이면서 이자이익 비판에만 혈안이 된 점은 여러모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방침이 향후 금융사에 대한 규제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투자자들이 보험, 은행을 포함한 금융주의 밸류에이션보다 정부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최근 금융주의 주가 강세가 반갑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언제, 어떻게든 금융당국의 기조로 인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금융사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대상일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주의 저평가 현상, 그리고 금융사를 향한 정부의 온당치 못한 비판과 규제는 분명 바로잡아야 한다. 금융주의 주가가 '반짝' 강세가 아닌 중장기적인 상승세로 이어지고, 시장에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시급하다. 나유라 기자 ys106@ekn.kr

[이슈&인사이트] 대구 전쟁으로 본 해양분쟁 해법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U연구소장 국민생선 대구(cod)는 맛이 좋고 영양가가 높아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한국에서는 입이 크다는 의미에서 대구(大口)라고 불리는 이 생선은, 사실 세계적으로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수산물로 갈 수록 귀한 몸 대접을 받는다. 이런 가운데 한-미 통상문제는 물론이고 아이슬란드, 영국, 러시아,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과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을 사유로 국가간 분쟁을 낳기도 했다. 아이슬란드 연근해와 북극해에서는 여전히 대구 어획량이 풍부한 편이어서 아이슬란드와 영국 사이에 수산자원의 확보에 관한 '대구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전쟁은 국지전에 불과한 소규모 전쟁이었지만, 포격전도 있었고 사상자도 발생했으며 국제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랫동안 영국 어부들이 아이슬란드 영해에서 대구를 남획하며 양국 어부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 어선들이 해군으로 징발되면서 이러한 모습이 잠시 사라지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대구 어획을 목적으로 하는 영국 어선들은 다시 아이슬란드 영해에 나타났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자국의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국의 영해 범위를 지정하여 강력히 대응했고, 아이슬란드의 일방적인 조치에 영국 정부는 자국 어민들의 불만을 해결하고자 반발하며 전쟁에 이르게 됐다. 영국은 세계 대전 이전까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강대국이었고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에서 겨우 독립한 작은 국가에 불과했으므로 당시 아이슬란드의 대응이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 전쟁은 시기에 따라서 제1차(1958-1961), 제2차(1972-1973) 그리고 제3차(1975-1976) 전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기별로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정부의 강경책과 영국 해군의 물리적 대응, 포격전과 외교적 협상 등이 이루어지는 모습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그러한 과정에는 유럽경제의 변화, 냉전 시기의 국제안보,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 등 국제사회의 큰 사건과 배경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아이슬란드는 이러한 국제정세를 활용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아이슬란드는 영국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며 미국에 무기 구매를 의뢰했고,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당시 소련 호위함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만약 아이슬란드가 소련 무기를 구매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한다면, 이것은 아이슬란드에 주둔한 미국 해군이 철수하고 이 자리를 소련이 대체하면서 북해와 북극해를 장악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당시 미국과 유럽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며 이른바 '200해리에 관한 해양수역법'을 통과시키는 등 아이슬란드를 끌어안고자 노력했고, 양국 사이의 분쟁은 NATO의 중재로 아이슬란드의 협상안이 관철되면서 종결되었다. 약소국 아이슬란드는 국민적 이해와 국제관계를 활용해 강대국인 영국을 상대로 승리한 셈이다. 양국은 원래 NATO라는 안보공동체에 속해있었고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자국민의 어업권 확보라는 당면한 이해관계에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대구전쟁의 경과와 그 결과를 보면, 국익은 국가의 존립 기반이자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해양 거버넌스와 해양 자원의 확보를 위한 영해권 관할 문제는 동맹국 사이에도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으로 연결되며, 어업권 수호는 해양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핵심 사안이다. 그 형태와 양상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대구전쟁이 오늘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때, 약소국이라도 영해권 또는 어업권 분쟁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아이슬란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그 내용이 이후 제정된 UN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UNCLOS)에서도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개념으로 명시되었다. 이 규정으로 이제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수역에 천연자원 탐사와 개발 및 보존, 그리고 해양환경의 보존과 과학적 조사 등 모든 주권적 권리가 국제사회 전반에서 합법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국제적으로 해상 영해권에 관한 분쟁은 국제법에 따라 해결할 수 있도록 해결의 통로를 열어두고 있는데, 실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정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해양 분쟁에 대해 과거보다는 성숙한 기준과 분쟁의 해결 방법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ICJ의 판정을 통한 분쟁의 처리는 당사국이 이 방법에 합의해야 성립한다는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여전히 보완해야 할 과제도 많다. 해양강국인 우리나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우종필 한국빅데이터학회장 취임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빅데이터&AI MBA 주임교수 “기관·기업에 빅데이터 기반 인사이트, 교육연구 제공" 세종대학교 경영학과 우종필 교수가 제6대 한국빅데이터학회장으로 취임했다. 6일 세종대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한국빅데이터학회장에 취임한 우 교수는 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빅데이터 & AI MBA' 주임교수로,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의 압승이 예상되는 가운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빅데이터와 AI 분석을 통해 트럼프 당선을 예측해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우 신임 학회장은 “빅데이터 효율성과 가치를 찾고,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으로 경영 혁신을 선도하는 데 학회가 기여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학회 운영방침으로 기관과 기업 임원에게 실질적인 빅데이터 기획과 분석을 통해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생성형 AI를 비롯한 사물인터넷(IoT)·블록체인 등 빅데이터 기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교육 및 연구 확산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EE칼럼] 뒷전으로 밀린 열 에너지 정책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우리나라 에너지소비 중에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21.5%로 전체 에너지사용량의 5분의 1에 달한다. 정부가 발표한 다양한 중장기 계획을 살펴봐도 2050년 전력 소비 비중은 25~35% 수준이다. 이는 산업, 가정, 건물, 수송 부문 등 우리나라 에너지사용 각 부문에서 주로 소비하는 에너지 형태가 열이나 동력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정 및 건물의 경우 대부분 열 에너지가 차지한다. 수송 부문이 그나마 수소, 전기차 등으로 정책적 이슈를 유지하고 있고 산업의 주요 동력원들 역시 수소환원제철공법 등으로 분석의 대상이 되어있다. 반면 가정과 건물에서 사용하는 열 에너지에 대한 정책은 빈약하다. 겨울철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정책 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 효과적인 난방 효율 개선 정책이나 새로운 열 에너지 보급 정책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열 에너지에 대한 통계조차 명확하지 않으니 제대로 된 분석과 정책이 나오기도 어렵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가정 부문 에너지소비를 100이라고 할 때 난방 및 온수용 에너지 비중은 약 65%를 차지한다. 그리고 취사는 10% 수준이며 냉방은 5%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정용 도시가스 소비의 약 88%가 난방에 쓰인다고 추정된다. 국민이 생활에 사용하는 최종 에너지 소비량의 대부분은 난방, 온수, 취사 등 열 에너지다. 주거 형태의 변화와 주택 단열 및 난방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난방 및 온수 관련 에너지 사용량의 감소는 10%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열 에너지와 난방 부문에 보다 획기적인 정책과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재생에너지 정책으로 가면 이러한 공백 현상은 더욱 선명해 진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 전기를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정책만 보일 뿐 열을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을 보기 어렵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생산량 중 열이 더욱 더 많다는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통계를 보면 2021년 전세계 재생에너지 공급량 중 바이오와 폐기물 에너지가 65%, 지열이 5%이며 나머지가 수력, 태양광, 풍력 등이다. 우리도 2021년 재생에너지 공급량 중 바이오 및 지열이 42%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책과 제도는 모두 전력 부문에 치우쳐 있으며 난방에 도움이 될 열을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 때 전국에 보급되었던 태양열 주택도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전력 편중 정책은 행정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해 말 국회의 재생에너지 정책 보고서에도 태양광, 풍력 등 전력 부문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이슈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열을 생산하는 태양열, 바이오, 지역, 폐기물 등 재생에너지는 다루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에 밀려 힘을 못쓰고 있는 에너지 재사용(cascading) 및 효율화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에너지원에서 발생한 열을 열 발생원 주변에서 최대한 사용하는 방법은 유럽에서 아주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산업단지의 남은 열을 주변의 주택에 공급하거나 지하철 터널 공간을 사용하는 열교환, 수입 액화천연가스의 기화열을 사용하는 방안 등이 제안되었으나 이들에 대한 지원은 재생에너지 지원책에 비하면 크게 낮아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1980년대에 시작한 천연가스의 도입은 연탄으로 난방하던 시대를 끝내고 국민들이 보다 깨끗하고 안전하며 무엇보다도 편안하게 겨울을 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때 개발된 열 에너지 공급시스템은 아직도 신도시와 아파트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열 에너지 옵션 마련과 열에너지 공급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단열을 포함한 건축 기술과 신규 건물이 열 및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해 신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패시브하우스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물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리고 첨단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건물의 스마트화를 꾀해야 한다. 국민의 실생활과 직결된 열 에너지 정책의 개발과 토론의 장이 활발히 열리기를 기대한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기자의 눈] 새로운 테마주 ‘저 PBR’, 가치함정에는 주의

주가순자산비율을 뜻하는 PBR은 주식투자를 논할 때 주가수익률(PER)·자기자본이익률(ROE)과 더불어 가장 많이 쓰이는 기초지표다. 주식 1주당 기업의 순자산가치의 몇 배에 거래되고 있는지 측정하는 것으로, 그 값이 1보다 낮을 경우 대개 저평가된 종목으로 평가한다. 최근 국내 증시 대부분 종목들이 저 PBR 종목으로 분류됐다는 통계가 나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새삼스럽지만 그만큼 오랜 세월 국내 증시가 저평가돼 왔다는 의미며, 정부가 직접 나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나선 것은 다시금 '국장'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 충분한 요소다. 적극적인 PBR 제고 정책을 펼친 일본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찍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요즘 '저 PBR주'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는 것은 마치 과거 이차전지·초전도체 등 테마주를 연상케 한다. 1월 증시 약세를 겪어 새로운 투자처를 찾던 개인투자자들이 확대되는 주주환원 정책, 장기간 이뤄질 기업가치 개선에 기대를 걸고 낮은 PBR 을 보유한 종목을 앞다퉈 사들이는 모양새다. 한편으로는 또 수많은 개미들이 저 PBR의 '함정'에 빠져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흔히 가치투자를 공부하는 초보 개미들이 범하는 실수로, 저 PBR이라고 해서 언젠가 주가가 반드시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가치 함정(Value Trap)'에 걸렸다고 표현한다. 그 이유는 PBR 산출에 쓰이는 순자산이 기업의 자산을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특히 PBR은 기업이 가진 부채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도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해당 종목의 사업이 정확히 어떤 업종인지, 그 업종의 업황과 전망이 어떤지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시점 제무재표 상으로 견실한 기업이더라도 업종이 사양산업이라던가, 회사 내부에 문제가 존재할 경우 주가는 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가 깊은 해외 증시에서도 주가가 수년째 바닥을 기고 있는 저 PBR주는 많다. 저명한 가치투자가이자 워렌 버핏의 스승으로 불렸던 벤저민 그레이엄 역시 3년간 보유한 저 PBR주가 성장하지 못할 경우 과감히 정리했다고 전해진다. 주식이란 단순히 기업의 가치뿐만이 아니라 매수자와 매도자의 의사 합치가 이뤄져야 거래가 되는 만큼, PBR이라는 단편적인 지표에 매몰되지 말고 전반적인 실적과 외적인 요소를 두루 살펴 투자에 나서기를 권한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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