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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고객이 불평할 때가 최고의 마케팅 기회

“고객이 불평할 때야말로 최상의 마케팅 기회다." 이 말은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일본경영의 신으로 추앙하며 인용하는 말이다. 그의 불평하는 고객에 대한 예찬론은 계속된다. “고객의 불평을 듣고도 내버려 둔다든가,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그 태도가 조금 불성실하다는 것은 '나는 사업할 생각이 없소'라는 말과 같다. 이 경우에는 어떤 사업이든 그만두는 것이 좋다. 기업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강력한 경쟁사가 아니라 바로 고객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불평할 때가 최상의 마케팅 기회인 것은 기업 경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2002년 4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인천 경선장에서 이인제 후보가 비장의 무기로 노무현 후보의 장인이 6·25 때 좌익활동으로 부역했다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먼저 꺼냈다. 바로 이어 노무현 후보는 장인의 좌익활동을 인정하고, '지금은 자식 잘 키우고 서로 사랑하며 잘살고 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만 대통령 자격 있는가?'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그날 노 후보의 당당하고 솔직한 감성 연설은 여성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 말은 공수를 180도 바꾸는 절묘한 신의 한 수였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최상의 마케팅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의 사례를 본다. 2024년 1월 18일 전북의 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윤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꿔달라'고 말했다가 경호처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갔다. 2024년 2월16일 윤 대통령이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장에서 축사하는 가운데 검은색 학사복을 입은 한 졸업생이 윤 대통령이 선 곳을 향해 고성을 질렀다. 이 학생은 '연구·개발 예산을 복원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후 경호원들이 이 학생의 입을 막고, 팔과 다리를 들어 졸업식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후 이어진 한국의 연구·개발 예산의 확충을 약속하는 윤 대통령의 연설이 공허하게만 들렸다. 만일 윤 대통령이 경호원들에게 졸업생이 질질 끌려 나가는 것을 제지하고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빌려 공약을 발표할 수 있는 최상의 마케팅 기회를 날려버린 결과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대응은 2013년 11월 이민 개혁안 연설에서 본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처와 완전히 대조를 이룬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설 도중 한 청년이 소란을 피우자, 이를 만류하려던 경호원들을 직접 제지하며 대화와 연설을 이어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괜찮다, 청년들을 그냥 두시라. 내가 마무리 지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만류하는 듯한 손짓을 취했다. 그러자 이 남성들은 퇴장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난 이 젊은이들의 열정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이 청년들은 진심으로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거니까"라며 연설을 이어갔다. 국민의 불평하는 소리를 외면하는 정치인은 자동차 엔진의 소음을 차단벽으로 둘러싸서 방음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차 안은 조용하겠지만 엔진 사고의 위험은 커진다. 자동차 엔진 소음은 엔진의 어딘가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엔진은 소음을 통해서 운전자에게 기체 결함을 사전에 알린다. 그런데 이를 차단하면 엔진이 큰 고장을 일으키는 재앙이 일어난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한다. 300번의 위험 소지가 있으면, 29번의 소형 사고가 나고, 29번의 소형 사고가 나면 1번의 대형 사고가 난다. 그러므로, 대형 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사소하지만 300번의 사고의 위험 소지를 없애야 한다. 하찮지만 300번의 국민의 경고를 무시하면, 정치인은 큰 재앙을 면할 길이 없다. 이것이 하늘의 이치다. 불평하는 고객이 아름다운 이유다. 그들이 불평하지 않았다면 묻혀버렸을 위험의 소지를 현재화시키는 공이 있다. '칭찬하는 고객은 고작 8명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불평하는 고객은 무려 22명에게 영향을 미친다'라는 미국의 마케팅 전문 TARP 사의 굿맨의 법칙을 유의할 일이다. 윤덕균

[EE칼럼] 미래세대의 기후소송이 갖는 의미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는 미래세대가 정부의 기후변화에 대해 충분하지 못한 대응으로 인해서 미래세대의 헌법상 생명권, 환경권, 건강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청소년 기후단체가 2020년에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한 공개 변론이 있었다. 이번 공개 변론은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아시아에서 최초로 제기된 기후소송에 대한 공개 변론으로, 2021년 녹색당 정의당 그리고 기후변화 시민단체가 제기한 헌법소원, 2022년 아기기후소송, 2023년 탈핵법률가 모임인 해바라기 등이 제기한 탄소중립기본계획소송 등과 함께 병합하여 진행되었다. 본 헌법소원에서 미래세대는 현재 세대는 상대적으로 더 깨끗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음에 반하여 앞으로 미래세대는 재앙에 가까운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하고,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정부는 입법부의 아무런 통제가 없는 무한한 재량권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즉, 현재 정부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은 1.5도 온도상승을 억제할 만하지 못하고, 그래서 다수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소송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비법률적인 수단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짙은 아시아와는 달리 서양에서는 정부에 대한 기후소송은 이미 다수의 선례가 있다. 당장 최근에 유럽 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가 화석연료의 생산을 중단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노인의 인권을 침해하였다고 결정하였고, 미국 몬태나주, 호주는 물론 남미 브라질에서도 인권 기반 기후소송이 게류 중에 있다. 앞으로 헌법재판소에서 기후소송에 대해서 어떠한 판단을 내리게 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제기된 기후소송이 사회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일깨우게 될 것이다. 이미 이번 헌법재판소에 대한 공개 변론을 국내외 언론이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그 반증이다. 전통적으로 기후변화나 지구 환경 문제를 논의하면서 미래세대에 대한 현세대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지속가능한발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구 환경 문제가 유엔 차원에서 처음 다뤄진 1972년 스톡홀름 지구 환경 회의 이후, 유엔 차원에서 지구 환경 문제 대응의 중심 개념이 된 지속가능한발전의 개념은 어떻게 미래세대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환경과 발전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잘 다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의 이상기후를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매년 겪어 왔던 기후 패턴과는 확연히 다른 무서운 폭염과 폭우는 우리 주변 기후체계의 심각한 변화를 직감케 하였다. 이대로 가면 과학자들이 예견한 대로 많은 곧 해안변의 도시가 수몰되고, 지구 생태계는 파괴되며, 대규모 산불은 우리가 살아온 곳을 태워버려서, 정말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와 손자, 손녀가 살 터전이 없어지고 생존을 위협당할 수 있다. 분명히 현재 세대는 미래세대에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더욱 미래세대에 더 나은 삶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함은 자명하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정부는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정부는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구조 아래에서도 국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서 야심 찬 목표인 40퍼센트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각 관계부처는 부처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다. 지방정부도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문제의 대응이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기후변화 대응이 진정성을 갖고 대통령은 물론 지방정부 차원에서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 강력한 리더십에 기반한 정책조정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문제가 가져오는 수많은 부처 간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지 않고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지방정부의 정책도 효과적으로 중앙정부의 정책과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은 하나 된 국제사회의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의 외교정책과 국제협력에서 기후변화 대응은 최우선 추진 과제여야 한다.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여 지구사회의 모든 국가와 연대하여 우리의 해결책을 국제사회의 표준으로 만들 수 있도록 체계적인 기후변화 국제 정책조정과 협력 추진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래세대도 기성세대에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세대에 더욱 중요한 것은 곧 다가오는 미래에 그들 스스로 기후변화 대응을 잘할 수 있는 역량, 즉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지식과 창의력을 함양하는 것이다. 현재 세대가 기후변화 대응이 부족한 이유의 하나는 현재 세대 리더의 대부분이 과거에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였던 데에 큰 원인이 있음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서용

[기자의 눈] 좀비기업 퇴출 이전에 장외시장 거래 활성화부터

금융당국이 거래소에 상장돼 있으나 기업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좀비기업'을 대상으로 상장폐지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진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상장폐지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이고, 코스닥시장 상장사의 상장폐지 절차는 3심제에서 2심제로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것이다. 이는 좀비기업을 방치할 경우 기업사냥꾼의 시세조종 도구 등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본 것으로 전해진다. 앞서 지난 달 28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여의도에서 열린 금융 관련 연구기관장 간담회 후 기자들과 만나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상장 기업에 대해서는 거래소 퇴출이 적극 일어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만큼, 금융당국 간 큰 틀에서 합의점이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그간 문제가 돼 온 부분은 좀비기업으로 분류되는 상당수 기업들의 거래가 장기간 정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거래정지 기업들의 정지 일수를 분석한 결과 평균 500일 이상 거래가 묶인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자 찬성하는 측은 팔고 싶어도 거래가 장기간 정지돼 있어 팔지 못해 재산권을 침해받는다는 의견과 반대하는 측은 사실상 투자한 자산이 대부분 증발하는 만큼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달라는 의견으로 나뉜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을 보면 유가증권시장 20개, 코스닥 56개 등 총 76개 종목이 거래가 정지중인 상태다. 특히 아리온과 이큐셀은 각각 2020년 3월 19일과 3월 20일부터 거래가 정지돼 왔다. 좀비기업의 정리는 시급한 문제로 금융당국의 이같은 조치는 환영할 만 하다. 하지만 정규시장이 거래소에서 퇴출됐다 해도 이들 기업들이 장외시장에서 활발히 거래가 이뤄져야 시장의 안정과 투자자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문제는 대표적인 장외시장인 K-OTC는 오히려 위축중인 상태다. 금융투자협회가 내놓은 '2023년 K-OTC시장 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일 평균 거래대금은 33억3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5.6%가 감소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지난 2020년 '상장폐지종목의 장외거래 특성 분석' 보고서를 통해 “상장폐지기업의 부담을 경감하고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장외시장 환경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장외시장을 통해 충분한 재기와 거래의 기회를 제공해 거래소 퇴출위기에 놓인 기업이 자발적으로 대안시장을 선택하고 상장폐지 이후에도 장외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거래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통해 국내 자본시장의 성장을 도모한다면 2부 리그인 K-OTC와 코넥스에 대한 육성도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실패가 끝이 아닌 재기를 위한 발판이, 스타 기업의 발굴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성모 기자 paperkiller@ekn.kr

[EE칼럼] 우크라이나 전쟁 3년차, 뒤바뀐 에너지 지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어느덧 3년차를 맞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유엔 헌장을 정면으로 위반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전황이 러시아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러시아는 2014년에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이번 전쟁에서도 우크라이나 동부 영토의 일부를 잠식하게 됐으니, 흑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은 더욱 세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관문에 앉아있는 튀르키예의 전략적 가치도 이전보다 더 커질 것이다. 한편 200여 년 동안 중립국 지위를 유지해 온 북유럽의 강호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헝가리의 동의를 얻으면서 NATO와 러시아의 경계선은 오히려 동진하게 됐다. 발트해가 사실상 NATO 회원국에 둘러싸인 NATO의 호수처럼 되어 중장기적으로는 러시아에게도 전략적으로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렇듯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가 간 경계선의 의미를 바꾸어 놓고 있다. 이 전쟁의 결론은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전쟁 종료 후의 세계 지도는 전쟁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전쟁의 가장 큰 의미는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지정학적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에너지 시장, 특히 가스 시장에서 나타났다. 전쟁 이후 유럽 국가들은 파이프라인으로 들여오던 러시아산 에너지원 수입을 축소하는 데 박차를 가하면서 유럽 대륙과 지중해 너머의 북아프리카와 중동, 나아가 대서양 너머의 미국 사이에 에너지 교역이 확대되었다. 육상으로 운반하는 파이프라인천연가스(PNG)보다는 해상으로 운반해 오는 액화천연가스(LNG) 교역이 증가했고, LNG 추가 공급의 80%를 미국이 감당하게 되면서 미국은 세계 최대 가스 공급국 자리에 올라섰다. 미국의 LNG 수출이 증가하다 보니, 북미 대륙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파나마의 전략적 의미도 더욱 커졌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파나마 운하청(ACP)이 하루 통과 가능 선박 대수를 제한한 것이 아시아 지역의 가스 가격 상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미국 등의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재정 수입에 타격을 가하고자 러시아산 원유 가격에 상한제를 실시했지만, 오히려 이런 제재 조치 덕분에 저렴해 진 러시아산 가스는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가진 인도와 중국이 흡수하고 있다. 13억~14억의 인구가 있는 두 나라에게 이런 상황은 오히려 호재였는지 모른다. 유라시아대륙에 속한 거대한 국가들 사이의 유대는 에너지를 매개로 더욱 공고해 지고 있다. 물론 이 전쟁을 계기로 천연가스 의존도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나 원자력에너지와 같은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나 원자력에너지도 땅에서 나오는 자원을 활용하는 부분이 있는 한, 또 다른 지정학 및 지경학적 게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AI 같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이 일상적인 화제가 된 세상이지만, 이렇게 혁명적으로 발전하는 기술도 결국은 에너지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데, 에너지를 생산하는 어떤 수단도 '땅'과 무관할 수 없는 한 '지리의 힘'은 여전히 작동할 것이다. 한국은 유라시아대륙의 일부이지만 실제로는 섬처럼 대륙에서 떨어져 있다. 영토는 좁고 지하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니 수입 없이 수출도 어렵다. 대륙에로의 길은 막혀 있고 그나마 영토의 삼면이 바다여서 수출입의 99.7%는 해상 운송에 의존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대양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몇 군데 중요한 길목을 거쳐야 한다. 어떤 에너지원도 국제 무역 없이 한국 경제를 운영할 방안을 제공해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지정학적 변화를 예민하게 읽어내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지정학적 변화에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난맥상을 뚫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기술뿐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정부는 물론 기업과 공공연구기관 등 우리 사회의 역량을 모두 끌어 모아 에너지 패권 경쟁의 격랑을 타고 나아갈 수 있는 핵심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임은정

[이슈&인사이트] 유럽의 확장 발트 연안, 한국에겐 기회의 땅

유럽 스칸디나비아의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독일과 폴란드가 접하고 있는 바다인 발트해는 동쪽으로 세 개의 작은 유럽 국가(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러시아까지 연결된다. '발트3국'이라고 하면 발트해에 접한 이 작은 유럽 국가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유럽의 중세 시대부터 이 바다를 무대로 상공업과 무역으로 한자동맹과 길드를 구성하며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오히려 외부의 적들이 침략하고 지배하게 만들기도 하여, 발트3국은 천년 가까이 인접 국가들에 정복당하는 아픈 역사도 있다. 이 지역 곳곳에서 중세 튜턴기사단부터 북유럽과 독일, 러시아와 구소련 등의 침략자들이 만든 승리와 정복의 상징물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은 구소련의 일부로 편입되었는데, 특히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냉전이 지속되었던 시기에 많은 이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시베리아까지 강제 유배형을 당하기도 했다. 발트3국은 독립 이후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제통합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연합(EU), 그리고 북미와 유럽의 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며 빠르게 '탈 러시아' 또는 '친 유럽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각국의 관공서와 교육기관 등에서 EU의 상징과 회원국의 깃발이 자주 눈에 들어오고, EU와 NATO 관련 기관들과 사무소가 많다. 특히 서유럽 국가들의 통합에서 비롯된 EU가 확장을 거듭하며 냉전의 종결과 함께 중동부까지 미치게 된 시기에 발트3국이 EU에 가입했다는 점은 여러 의미가 있다. 새롭게 들어선 건물과 구소련 건물들을 리모델링한 건축물에는 EU의 지원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EU는 확장의 한 축이 된 발트지역에 여러 지원을 통해 '유럽식' 기준을 심으려고 노력했다. EU의 다양한 경제적 지원은 이 국가들이 구소련 시절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빠르게 적응하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는 데 비교적 빠르게 유럽 공용화폐를 사용하는 유로존(Euro-Zone)에 편입될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U의 지원은 단순한 생산 경제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회, 문화, 법, 정책, 교육, 관광 등 다양한 범위로 확장됐다. 그러한 영향이 발트국가의 새로운 산업 분야 발굴과 혁신의 가능성을 열었다. 발트3국은 상대적으로 유럽의 주요 생산 및 소비시장과는 거리가 멀고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할 수 없다는 단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활로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혁신적이고 빠른 정부의 지원이 디지털 관련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빠르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스타트업(Start-up) 기업이 스카이프(Skype)와 같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확대한다. 최근 이들의 경제적 발전이 전통적인 농업이나 상품의 제조업보다는 레이저와 디지털 관련 분야 등 새로운 산업군에서 선전하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이 발트의 친 유럽화와 현재 전쟁 상황에서 반 러시아 정책을 두드러지게 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연결하면,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마주하고 구소련의 기억이 생생한 이곳 사람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가깝게 느낄 것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피난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며, 여전히 사회에 러시아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반 러시아 감정이 반영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디지털화를 추진한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나토의 사이버 방위센터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빠르게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고 많은 혁신기업을 유치하면서 새로운 산업을 발굴하려는 발트3국의 정책은 상공업과 무역으로 번영하던 과거의 전통 위에서 자본주의를 통해 단점을 극복해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새로운 의미의 안전'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확장과 반발이 충돌하는 지역인 발트해와 이곳의 각국 정부는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상황에도 관심이 많은데, 그들이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을 발견해 성공했다는 점은 한편으로 한국과의 기술적 협력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의 기술력과 발트3국의 기술력이 조화를 이루며 협력하는 것은 전쟁 이후 국제경제의 안정화 노력 과정에서 새로운 글로벌 순환 경제 모델이 될 수 있다. 김봉철

[김상호 칼럼] 민주당 하남시 전략공천, 풀뿌리 ‘실종’

다가올 4월 총선에서, 하남시 민주당 총선 후보 2명을 전략공천으로 선정한다는 민주당 전략공천관리위원회 발표가 있었습니다. 하남시 '갑'에 추미애 후보(전 법무부 장관), 하남시 '을'에 김용만 후보(김구 선생 증손자)가 각각 선정됐습니다. 이에 따라 선거구 두 지역 중 한 지역 전략공천만을 예상했던 하남지역 민주당 전체가 놀랐고, 출마자 4명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하남시가 전략공천 선거구가 된 데는 민주당 당규 10호 '공직선거후보자추천및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규정'에 근거, '분구가 확정된 선거구 중 최종윤 국회의원이 불출마 선언으로 지역위원장이 공석인 해당 선거구'이기 때문입니다. '해당 선거구 후보자 본선 경쟁력이 현저히 낮은 선거구' 등도 당규에 있으나, 하남시 기존 출마자들에 대한 여론조사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최소한 하남시 한 지역은 출마자들 경선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컸습니다. 손영채, 이교범 전 하남시장 등이 긴급히 민주당 전직 선출직 공직자들과 만나 의견을 공유하고 뜻을 모았습니다. 전략공천은 중앙당 고유 권한이지만 형평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민주당 하남시 전략후보 2인 단수 결정은 3곳의 전략지역(용인, 화성, 의정부) 후보 선정과도 형평성이 없습니다. 용인정은 영입인사인 이언주 후보가 참여하는 3인 경선을, 화성정은 지역 출마 후보자 3인 경선을, 의정부는 1호 영입인사 박지혜 변호사와 지역 출마자 간 2인 경선을 합니다. 3곳 모두 지역 출마자들을 배려, 경선에 참여시켰습니다. 하남시 한 곳만이라도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그동안 지역에서 당을 지키며 활동해온 당원들과 지지자들과 함께 승리하는 선택입니다. 전략공천은 지역 민주당 통합성을 높여야 합니다. 그동안 경선을 준비해온 민주당 6명 출마 후보자를 원천 배제한 결정은 하남 민주당 통합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 곳이라도 전략경선이 되도록 하남 민주당 최종윤 국회의원도 앞장서, 최고위원회에서 이번 결정이 재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전략공천은 지역정치 경쟁력을 키우며 가야 합니다. 전략공천은 풀뿌리 정치인들도 포용해야 합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기자의 눈]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 초라한 성적표는 예상된 결과

당국과 손을 잡고 호기롭게 문을 연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가 시장으로부터 당차게 외면받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1월 19일 출시된 자동차보험 비교·추천 플랫폼의 한 달간 서비스 이용자 수는 약 12만명이며 계약 체결 건수는 약 6100건에 그쳤다. 최근엔 차 보험료를 애써 내린 보험사의 상생금융 행보가 무색하게 정작 소비자가 이전보다 높은 금액을 받아드는 헤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플랫폼 상품에 보험사 홈페이지보다 3% 비싼 보험료를 부과하는 데 대해 보험료 산정 근거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시장으로부터 제기됐다. CM(사이버마케팅) 보험료에 플랫폼 수수료를 단순 합산한 금액을 플랫폼 고객에게 들이미는 건 '이중부과'라는 지적이다. 플랫폼 수수료인 PM 수수료율에 대해 보험사들은 플랫폼 보험료가 더 저렴해지면 자사 채널이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입장을 앞세우고 있기에 이 같은 기싸움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일각에선 처음부터 이런 결과가 예상됐다는 시각도 나타난다. 서비스 출시 직전까지 보험업계와 핀테크 업계가 밥그릇을 잡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 목격되면서 소비자 편익은 뒷전됐다는 평가다. 앞서 표준 API 사용을 두고선 개별 데이터를 기반으로 상품을 추천해주기 어렵다는 플랫폼 업계의 만류가 따랐다. 표준 API는 공통 데이터만을 취합하기 때문에 개별적인 보험 상품별 특약을 반영하기 어렵다. 이에 개별 API 사용이 무산됨으로써 보험 비교라는 본질적 기능부터 잃었다는 지적이다. 수수료를 두고도 막판까지 첨예한 대립각이 이어졌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핀테크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두고 몇 퍼센트를 지급할 것이냐로 업계 입장이 갈렸다. 현재 보험사가 지불하는 수수료율은 3%대로, 대형 보험사의 경우 이를 보험료에 포함시켜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보험사마다 플랫폼 수수료율의 적용 수준도 다르며 현재 일부 회사는 개별 다이렉트 채널을 이용하는 게 더 저렴하다. 플랫폼 적용 수수료를 낮춰야한다는 지적에 금융당국은 “시장에서 결정해야 하는 가격을 정부 차원에서 규제할 수 없다"며 뒷짐을 지고 있다. 결국 보험상품 특성을 반영해 '제대로' 이뤄진 상품 비교도 되지 않는 데다 수수료 부담으로 가격 경쟁력은 낮아진 서비스만 남은 셈이다. 초반 관심과 기대가 꺾이면서 자동차 보험 이후 바통을 이어 받을 다른 보험상품의 흥행 여부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혁신을 외치다 소모전만 치른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지금, 진정한 서비스 혁신을 위한다면 밥그릇 경쟁이 소비자 편익에 대한 경쟁으로 변모해야 하지 않을지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EE칼럼] 테헤란로의 비밀

테헤란로(Teheran 路)는 서울 강남의 한복판, 강남역에서부터 삼성역 인근까지의 약 4km 길이 도로의 이름이다. 삼성, 현대, 포스코 등 대기업은 물론, 첨단 IT기업들이 도로 양쪽에 즐비한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길이다. 이런 서울의 대표적인 길에 하필이면 중동 국가의 수도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강남의 대표적인 거리에 테헤란로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1977년 여름이다. 그해 봄에 서울시는 이란의 수도인 테해란 시와 자매결연을 맺기로 하고 테헤란 시장인 닉페이(Nikpey)를 서울로 초청했는데, 이때 닉페이 시장이 구자춘 서울시장에게 상대국의 수도명을 딴 도로명 부여를 제안해 성사됐다고 한다. 두 시장은 그해 6월27일 서울에서 테헤란로 명명식을, 11월에는 테헤란시에서 서울로의 명명식을 가졌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는 이란과 1977년에 자매결연을 맺게 되었을까? 이유는 바로 1차 석유파동이다. 우리나라는 이란과 1962년에 이미 수교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는 석유를 직접 수입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돈도 없고 사용량도 적은데다 수입을 담당할 번듯한 석유회사 조차 없었다. 그래서 셰브론(Chevron) 같은 미국 석유회사에게 부탁해 국내에서 사용할 석유를 수입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이 발발한다. 이미 여러 해 동안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있던 아랍국가들이 친이스라엘 국가에게는 원유를 수출하지 않는 금수조치를 취한 것이다. 배럴당 3~4달러 하던 원유가격은 12~14달러로 3~4배나 급상승했고, 이스라엘을 지원하던 미국이 중동에서 원유를 받지 못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도 친이스라엘국으로 몰려 석유를 아예 수입하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다급해진 정부는 기업들과 사절단을 꾸려 아랍국가들을 찾아 단지 미국과 친한 나라일 뿐이라고 설득했고, 겨우 한 나라의 국왕을 설득하는데 성공해 원유를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중동 산유국 중 유일하게 한국에 석유를 공급한 나라가 이란이다. 석유 수입 협상 이후 한-이란 관계가 급격하게 가까워지면서 1977년에 테헤란 시장을 초청해 자매결연식을 맺고 지금의 테헤란로를 탄생시키게 됐다. 지금의 공급망 사태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말로 긴급한 공급망 단절 상황이 발생한 1970년대 중반에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나라가 직접 발로 뛰어 공급망 문제를 해결한 그 징표가 바로 테헤란로다. 그 시절 이란은 회교국가였지만 세속적 노선을 추구하던 팔레비 왕이 통치하던 시기였기에 사절단은 겨우겨우 설득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한국에는 산업도,자본도, K-팝이나 영화와 같이 한국이 내세울 것이 전혀 없는 처지였기에 이들 사절단의 성과는 정말로 눈부셨다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공급망 대란을 피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는 1, 2차 석유위기에도 산업 발전을 성공시킬 수 있게 됐다. 참,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로마자 표기는 Tehran이다. 그런데 서울 테헤란로 표지판에는 영문명이 Teheran으로 되어 있다. 한국 사람들의 발음을 존중해 그리하기로 했다고 한다. 또 테헤란로 명명식 2년 후 이란에는 회교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가 막을 내렸고,혁명 세력은 왕조 시절의 모든 업적을 부정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서울로는 지금도 그대로 그 이름으로 남아 서울을 찾는 이란 방문객들 사이에서 테헤란로는 대표적인 방문지라고 한다. 지난달 자원안보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공급망 3법'이 모두 시행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5조원 가량의 기금을 조성하고, 6월부터는 경제부총리 산하에 위원회를 꾸려 세부적으로 계획을 수립해 시행한다고 한다. 이제 자본도 있고 산업도 있으며 자원 부국들이 좋아할 K-문화도 있으니 보다 효과적인 공급망 문제 해결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테헤란로의 교훈을 본받아 양자, 다자협력을 포함해 연구개발과 공동산업개발, 공동구매/비축 등 다양한 국제협력방안을 충분히 개발해 시행하기 바란다. 허은녕

[이슈&인사이트] ‘이재명의 민주당’ 그 후

'이재명의 민주당'.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져 위기에 처하게 되자 선거캠프를 전면 개편하면서 내세운 구호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지금부터는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필자는 이재명 후보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당이 있고 후보가 있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이 후보는 당이고 뭐고 필요 없고 오직 자신이 먼저이고 자신만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선거 열기에 휩싸여 그렇겠지 싶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도 이재명의 민주당은 더욱 공고해졌다. 낙선 이후 곧바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입후보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이어서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 대표 자리를 꿰찬 이재명은 대선 당시 약속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헌신짝처럼 내 버렸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임시회기를 연장해 가며 국회를 이용해 철저하게 방탄 정국을 유지했고, 수차례에 걸친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를 검찰독재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렇게 철저하게 당을 통제하면서 공천권을 가진 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동의할 의원은 없을 줄 알았는데, 무려 39명의 의원이 가결 표를 던져 하마터면 감옥에 갈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속 의원들의 배신(?)으로 불체포특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갈뻔한 이재명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두 번 다시 이런 위험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범죄혐의로 추가 기소의 위험이 있는 이 대표로서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체포동의안 가결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천은 당의 총선 승리나 후보의 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공천하는 것이다. 혼자 힘으론 절대 국회의원 배지를 달수 없는 사람들을 공천해 의원을 만들어 놓으면 이 대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것이고 그에 비례해 충성심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 김근태 전 의원과 부인 인재근 의원이 내리 6선을 한 민주당 텃밭인 서울 도봉갑구에 듣도 보도 못한 35세 안귀령이라는 여성을 공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인 의원에게 전화해 출마포기를 요구했고, 그 자리에 안귀령을 공천했다고 한다.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파동의 본질은 이것이다. 그래서 비명, 혹은 친문 정치인들이 대거 낙천의 쓴맛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어떤 비판과 비난을 쏟아부어도 이 대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듣기 싫으면 그들이 모이는 의원총회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사실 그 당시는 대부분 국민이 어렵게 살았었지만) 평생을 혼자 힘으로 거칠게 살아온 이재명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형과 형수에게 쏟아부은 막말과 욕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지금 비명, 친문 정치인들이 겪고 있는 낙천의 서러움은 스스로 만든 업보일 뿐이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영주 의원, 판사직에 있던 이수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비교적 중립적이고 상식적인 활동을 해 온 박용진 의원, 유승희·전병헌 전 의원 등 이름만으로도 상당한 표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인들이 경선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동안 이들은 이재명을 옹호하고 그의 사법리스크를 오히려 검찰 독재 때문이라고 비판해 온 사람들이다. 성남시장 시절 지역개발사업과 관련한 이재명의 부패 의혹은 공익을 수호해야 할 검찰이 반드시 수사해 옳고 그름을 밝혀야 할 일이다. 공천 배제된 정치인들이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지방권력의 전형적 부패구조에 해당하여 수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만일 몰랐다면 스스로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정치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알량한 국회의원 자리를 유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불의를 보고도 눈감은 것이어서 역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맹자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지단야(智之端也)요, 무시비지심(無是非之心)은 비인야(非人也)라고 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은 지혜의 근본이요, 시비지심이 없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아니라는 말의 뜻은 금수(禽獸)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이재명 대표의 행태를 보고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보다도 못하다는 뜻이다. 자신이 공천에서 배제됐다고 뒤늦게 비난하고 소리 지르는 것도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국민의 눈에는 이 대표나 공천 배제된 사람이나 시비지심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지금 민주당의 공천과정을 보며 이번에는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홍성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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