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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소액주주 지분이 두 배더라도 이길 수 없는 K-주총

주주총회는 지분이 많으면 이긴다. 하지만 K-주총에서는 절대적이지 않다. 지분 위에 '의장의 권한과 대표이사 인감'이 있을 수 있다. 지난 달 셀리버리 주주총회는 K-주총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주주 연대는 오너 지분보다 2배가량 지분을 더 보유했으나 주총에서 패배했다.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니라 임시주총과 정기주총 두 번 모두 패배했다. 첫 번째 주총에서는 물리적 시간이 이유였다. 의결권 위임 서류 확인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대관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는 것이다. 의장은 임시주총의 안건을 모두 부결시켰다. 두 번째 주총에서는 의결권 위임 서류가 문제가 있거나 적법한 위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든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사측의 안건은 통과되고 주주연대의 주주제안 안건은 부결됐다. 두 번의 주총 모두 '선명한' 문제가 있다. 우선 대관 시간이 지나면 상법 372조에 의거해 총회를 연기해야지, 안건을 부결시켜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의결권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를 통한 소액주주 지분 위임은 30곳 이상의 다른 종목 주주총회에서는 대부분 인정됐는데 셀리버리는 의결권을 '완전'히 부정했다. 이 같은 사례는 아미코젠과 셀리버리가 유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대웅 대표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가만히 있었다가는 회사를 눈 앞에서 빼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눈 앞에서 당장 본인의 경영권이 빼았기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조대웅 사태'를 사전적으로 막을 국내 주총의 관행과 구체적인 법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주주들은 두 차례 주주총회가 부당하다고, 법원에 주총 결의 취소·무효·부존재와 같은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사후적 해결책이지, 사전적 예방책은 아니다. 그간 국내 주총은 주요 이해관계자가 제한적이었기에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하더라도 공론화되지 않았다. 위임장이 경우,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면'이라는 상법 문구를 바탕으로 나머지를 판례로 해결하더라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젠 달라졌다. 소액주주는 500만명에서 1400만명까지 훌쩍 늘어났다. 다양한 개인들이 주주연대를 결성해, 다양한 종목에서 다양한 형태로 의견을 내고 있다. 당연히 논쟁의 양태도 다양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정한 주총을 위해서는 주총 절차와 관련한 강행규정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프로야구에서 로봇심판이 도입된 이후 스트라이크-볼 판정의 시비가 없어진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간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이사회 관련 논의가 활발했다. LG화학과 LG엔솔의 물적 분할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관련 공략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젠 주주총회에 주목할 때다. 정치권과 학계의 관심을 촉구한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이슈&인사이트] 인플레이션의 까꿍 놀이

아기와 놀아줄 때 흔히 까꿍 놀이를 한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까꿍' 소리와 함께 얼굴을 보여주면 아기는 즐거워하며 환하게 웃는다. 까꿍 놀이는 아기에게 보이지 않는다하여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대상영속성을 가르쳐주는 놀이로 알려져있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사라지는 듯 하더니 다시 나타나는 까꿍 놀이를 하고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반갑다거나 인플레이션 까꿍 놀이가 즐겁지만은 않다. 인플레이션은 국내총생산(GDP), 실업률과 함께 3대 거시경제지표이다.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며 이를 역으로 이해하자면 실물로 측정한 통화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이다. 지낸 해에 비해 올해 통화의 가치가 비슷하다면 우리들은 통화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나 해마다 그 가치가 10%씩 떨어진다면 1년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보유하는 것이 편치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수중에 돈이 들어온다면 이를 실물로 바꾸려는 수요가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 통화의 가치는 더욱 하락할 수 있으며, 어느 시점에는 누구도 통화를 보유하지 않으려는 혼란이 발생한다. 이러한 급격한 화폐가치 하락을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자국의 화폐를 발행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 정책목표인 중앙은행이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2% 내외 수준에서 지속되기 원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다. 인플레이션이 통제범위를 벗어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통화이탈' 현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의 1면을 장식하는 인플레이션은 국가경제활동의 성적표인 GDP, 생계와 직결된 노동시장의 지표인 실업률과 달리, 수년 전만 해도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 중반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한 놈만 패' 전략을 택한 이후 최근까지 2% 내외에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무역관계의 변화, 전쟁 등에 의한 원자재 수급차질과 공급망 단절, 기후변화에 의한 농산물 생산 변화 등 공급요인들에 의해 인플레이셔이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금리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3% 전후로 하락하며 예전의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자연히 금융시장의 관심은 미연준의 금리인하가 언제 시작될 것이며 올해 몇 번 인하할 것인가에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인플레이션은 쉽게 하락하지 않는 끈적한 특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유래없는 빅스텝과 자이언트스텝으로 이제는 물가목표인 2% 수준으로 돌아가야할 때도 되었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인플레이션이 과거 30년간 보여준 것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통해 억제하는 인플레이션은 주로 수요측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경기가 좋아 수요가 증가한데 주로 원인이 있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은 금리를 올려 수요를 감소시킴으로써 그 원인이 사라지고 인플레이션은 다시 하락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은 전쟁, 기후, 글로벌 무역관계 변화 등 공급측면에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중앙은행이 수요를 억제한다고 하여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빅스텝, 자이언트스텝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고 한들 지정학적 요인 등 공급측 요인에 변화에 의해 언제든지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인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으로 향후 상당기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을 목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잠시 눈 앞에서 사라진듯한 인플레이션이 우리에게 '영속성'을 가르쳐주듯 까꿍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현

[EE칼럼] 광물안보 위해 리튬 확보 나서야 한다

한국에 있어 리튬 확보는 절실하다. 현존하는 금속 중 가장 가벼운 리튬은 휴대폰과 노트북 등의 전지에도 쓰인다. 한국의 미래 첨단산업은 반도체과 배터리이다. 특히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은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도권을 놓치고 만다. 따라서 탄산리튬 매장량 세계 전체 약 65%를 갖고 있는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3개국에서 리튬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 국가 중 볼리비아가 제일 많은 량을 갖고 있어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이 집중 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볼리비아는 세계 제일의 탄산리튬 부존국이지만 리튬 생산국과는 다른 문제가 있다. 볼리비아 우유니 염수는 마그네슘 성분이 리튬 함량 대비 약 18~24배 수준으로 인근의 칠레, 아르헨티나에 비해 고농도로 존재한다. 또 우유니 지역은 연간 증발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자연 증발의 적용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볼리비아는 다른 국가들의 리튬 정제 과정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없는 난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국가에 기술개발 협력이 필요하다. 2009년~2012년 우리나라가 볼리비아 리튬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염수에 존재하는 리튬의 특성, 현존하는 자연건조 기술 그리고 농축된 염수로부터 불순물을 제거해 고순도 염화리튬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 등으로 계획을 준비했다. 볼리비아의 염수가 한국의 기술과 합쳐진다면 이 보다 더 강력한 결합은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토착민, 유럽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들이 모두 포함하는 다민족 국가로 유명한 볼리비아는 세계에서 28번째로 넓은 나라다. 콜롬버스 이전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잉카제국의 일부였던 이곳은 아마존 지역과 안데스 분지를 아우르고 있다. 그 중 알티플라노 고원지대의 티티카카호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우유니 소금사막이 가장 유명하다. 한국은 2010년 8월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 이하 광물공사)와 볼리비아 과학기술위원회 간 리튬 개발 및 산업화 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시 볼리비아에서는 자체적으로 탄산리튬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다른 국가의 리튬 공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볼리비아 염수만의 특수성이 존재했다. 칠레, 아르헨티나의 경우 염수를 빛에 자연 건조시키면 리트당 60g의 리튬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볼리비아 염수는 다량의 복합 염으로 인해 타 국가처럼 리튬을 농축하는 데 무리가 있다. 볼리비아 우유니는 지각 변동으로 안데스 산맥이 융기하면서 바닷물이 갇혀 호수가 됐고 그 호수는 오랜 시간 햇빛을 받아 증발되면서 소금만 남아 오늘의 소금 사막이 됐다. 당시 볼리비아 리튬을 둘러싼 한국·일본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었고 일본은 대표단 40여명을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 보내 현지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볼리비아의 리튬 확보를 위해서 전 세계 8개국이 경합중이였지만 당시는 한국과 일본의 2파전으로 압축되고 있었고 여기서 최종적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2011년 7월 29일 볼리비아 광업부 회의실에서 한국과 볼리비아 간 리튬사업 공동 추진 MOU 체결이 있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염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체결한 MOU는 세계 최초였다. 볼리비아에서 백색황금 '리튬'을 얻기 위해, 한국의 노력은 이렇게 진행됐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렸다. 최근 유럽 국가들이 중국 등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광물 안보 확보를 위해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인센티브까지 도입하고 있다. 독일 리튬 공급업체인 발칸에너지는 처음으로 염화리튬 생산을 시작했다. 유럽연합(EU)회원국이 자체 리튬 채굴에 속도를 내는 건 핵심 광물의 일정 비율을 자체 조달하도록 의무화 했기 때문이다. EU는 2035년부터 합성연료를 제외한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면서 배터리 공급망이 더 중요해 졌지만, 리튬 등 핵심 광물은 여전히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글로벌 리튬 배터리 수요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11월 기준 글로벌 리튬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중국 CATL 34%, LG엔솔 14%, BYD 12%, 파나소닉 10%, SK온 7%, 삼성SDI 5% 순으로, 2030년 리튬 배터리 수요는 3,360GWh에 달해 2023년 이후 연평균 22%의 고성장 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2022년 탄산리튬 및 수산화리튬 수입액은 각각 8억9000만 달러(약 1조1906억원), 20억 달러(약 2조7690억원)로 전년동기 대비 각각 256%, 426% 증가했다. 주요 수입 대상국은 칠레(6억6000만 달러), 중국(1억6000만 달러)으로 전체 탄산리튬 수입액의 92%를 차지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첨단산업의 핵심인 배터리산업을 육성.발전 시키기 위해서는 리튬 배터리의 주원료인 리튬 확보는 필수이다. 정부의 자원외교를 통해 리튬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강천구

[EE칼럼] 에너지산업, 지난 15년을 반추해 본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곧바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이어졌고 일본 정부는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일본은 원전 가동 중단에 따라 모자라는 전력을 LNG 발전소의 풀가동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국제 LNG 현물가격은 폭등했고, 그 바람에 우리 전력시장에서 SMP(전력도매가격)가 급등하며 한국의 구입전력비용은 치솟았다.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로 접어든 세계 경제에서 국제유가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경제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전기요금을 묶어버렸다. 기름값과 가스값이 모두 올랐는데도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자, 모든 부문에서 전력으로의 대체수요가 급증하게 되면서 잠재되었던 문제는 결국 동일본 대지진이 있던 2011년 9월 15일 수도권의 순환정전으로 터져버리게 됐다. 이때부터 2013년까지 절대적으로 전력이 모자라서 정부는 겨울철과 여름철의 피크시즌에 절전규제를 시행하게 된다. 정부는 모자라는 전력공급을 증가시키기 위해 제5차·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민간 석탄발전을 비롯한 발전설비의 건설을 독려했다. 2015년 이후 세계 에너지산업을 뒤흔든 것은 미국의 셰일혁명이다. 엄청난 천연가스와 석유가 셰일층에 있는지는 알았지만 이를 경제적으로 포집할 방법이 없어 무시되었던 셰일의 분포지역에서 천연가스와 석유가 쏟아져 나왔다. 국제유가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하루 아침에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그 위상이 바뀌었으며 중동의 석유패권은 크게 약화됐다. 한편, 2015년을 뒤흔든 또 다른 사건은 그해 12월에 체결된 COP21(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파리협정이다. 이 협정에서 각국은 5년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는 NDC와 2050년까지의 장기목표를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문제에 도화선이 된 사건은 2018년에 발간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 따라 각국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를 감축해야 하고, 2050년까지는 순 탄소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이끄는 한편 온실가스를 큰 폭으로 줄이기 위해 임기말인 2021년에 COP26 글래스고우에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2018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낸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0년 전 세계를 뒤흔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수송용 에너지 수요가 줄어들자 국제유가는 급락했으니 2021년부터 국제 에너지 가격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2022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 정세는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와 석유의 공급을 차단한 유럽은 미국과 중동으로부터 이를 보충했고, 이 와중에 전 세계의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이 소비하는 LNG를 유럽으로 돌리는 바람에 국제 LNG 가격이 급등해 한국과 일본의 에너지 수입액은 급증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에너지 가격의 급등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온실가스 감축 중심으로 흘러가던 에너지 이슈에 더하여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에너지 안보의 문제가 에너지 부문의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여파와 온실가스 이슈로 주가가 급락하고 27조1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엑슨모빌은 다우지수에서 퇴출됐으나 2022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순이익 68조8000억원을 기록하고 주가가 80% 급등하는 반전을 보이며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제 또 어떤 변화가 에너지산업에 몰아닥칠까? 또 어떤 새로운 이슈와 논의가 에너지산업을 주도할까? 또 어떤 지정학적, 국제정치적 사건이 에너지산업에 영향을 미칠까? 4·10총선 이후 또 어떤 정치적 이슈가 에너지 분야를 뒤덮을까? 빨리 움직일 때와 느리게 움직일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참으로 어려운 시대다. 조성봉

[기자의 눈]기름값 안정화, 유류세 ‘정상화’가 먼저

국제유가가 오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어김없이 정부가 나타난다. 정유사 관계자들을 만나 가격 안정을 당부하고 주유소들이 어떻게 가격을 책정했는지 알아본다. 최근에도 산업통상자원부는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대한석유협회와 한국석유공사·한국도로공사·농협경제지주가 참석한 가운데 '석유시장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을 재점화된 중동 지역 분쟁이 국제유가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최남호 2차관은 업계에 '상생의 정신' 발휘를 당부했다. 기름값이 국민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유다. 정유사들의 연간 매출이 많게는 수십조원까지 잡히는 것도 이같은 행보에 힘을 싣는다. 국제유가 인상분 보다 가격을 더 올린 주유소가 없는지 조사도 했다. '국제유가가 올라갈 때는 기름값이 초고속으로 뛰지만, 반대인 경우에는 느릿느릿 걷는다'는 인식이 반영된 셈이다. 이번 조치는 유류세 인하 종료와도 무관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에 따른 국민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6월까지 연장했으나, 결국은 한시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ℓ당 휘발유 205원, 경유 212원, LPG부탄 73원을 인하하고 있다. 이에 따른 정부의 세수 손실은 59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지금까지 유류세 인하의 효과가 충분히 나타났는지는 의문이다. 정부도 정유사 담합을 의심하면서까지 가격을 점검한다. 이같은 문제는 유류세를 개편하기 전까지 피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가 오르든 내리든 교통에너지환경세는 보통휘발유와 고급휘발유 기준 ℓ당 396.7원이다. 교육세도 59.5원(교통세의 15%) 붙는다. 가격 연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석유수입부과금 16원도 추가된다. 민간 섹터에서 꾸준히 촉구하고 있는 석유수입 관세(수입가격의 3%) 폐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결국은 가격 연동이 제대로 되야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다. 해군력 증강 등으로 석유 도입선을 안전하게 지키고 다변화하는 등 특정 지역의 가격 변동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도 높인다면 유류세 인하라는 '필요악'의 부작용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신율의 정치 칼럼] 3지대 정당들의 몰락! 왜?

이번 총선의 특징으로, 첫째, 야권이 192석을 획득했다는 점, 둘째, 제3지대 정당 상당수가 '몰락' 수준으로 참패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제3지대 정당의 몰락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국혁신당이 12석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을 과연 3지대 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조국혁신당과 다른 3지대 정당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로운미래나 개혁신당은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주류에 반기를 들며 만든 '독립적'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 양당과의 차이점이 선명하다. 녹색정의당 역시 독립성이 분명한 이념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조국혁신당은 다르다. '지민비조'라는 용어가 상징하듯이, 조국혁신당은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민주당과 연대나 협력이 가능한 '민주당 유사 정당'이다. 즉, 민주당에서 파생된 정당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조국혁신당의 주된 지지층이 양당에 반대하는 중도층이 아니라, 야권 지지층 중 이재명 대표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국혁신당의 지지기반은, 기존 거대 정당인 민주당의 지지기반에서 파생된 '일부'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3지대 정당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당과 합당이 가능한 정당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재명 대표의 입장에서는 문재인 정권을 상징하는 인물을 견제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의 공천 과정에서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확고한 당 장악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리하면서까지 친명 위주의 공천을 했는데, 이런 과정을 상기하면, 조국 대표와 손을 잡아 새로운 불씨를 만들 이유가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이재명 대표는 친문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과거 이 대표 본인이 당내 비주류로 있을 당시, 주류인 친문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선거 유세장에 모습을 나타냈을 당시에도, 이재명 대표는 이를 달가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이 방문했던 지역 대부분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문 전 대통령의 유세 현장 등장을 오히려 선거 방해 요소로 생각할 수 있다. 문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문 정권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기억이 되살아나며 보수들이 결집했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런 측면을 봐도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 혹은 친문들을 반길 리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표는 조국 대표와의 합당은 전혀 고려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을 함께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견제와 경쟁의 대상, 그리고 언젠가는 힘이 빠지게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필요하면 연대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길 수는 있다. 조국혁신당의 기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국혁신당은 다른 3지대 정당과는 그 성격이 상당히 다른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찐 3지대 정당'들은 왜 참패를 면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는 이렇다. 과거 3지대 정당들 중 성공한 사례는, 고(故) 정주영 회장이 만든 통일 국민당, 고(故) 김종필 전 총리가 창당한 자민련 그리고 안철수 의원이 주도했던 국민의당 정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정당이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이들 정당 모두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하지 않았을 때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3지대 정당이 원내 교섭 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는, 사표 방지 심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미래는 1석, 개혁신당은 3석의 의석 확보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들 정당이 이런 의석만을 가지고 계속 정치활동을 하기는 어렵다는 데 있다. 결국 정당 간의 이합집산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인데, 새로운미래와 개혁신당이 다시 합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새로운미래가 조국혁신당과 연합 혹은 합당할 가능성은 있다. 새로운미래 구성원 대부분이 친문이라고 할 수 있고, 조국 대표는 친문의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조국 대표는 자신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정당의 규모를 늘려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고 할 텐데, 이런 이유에서 새로운미래와의 연대 혹은 합당은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변수는 조국혁신당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다. 만일 민주당이 원내교섭단체 구성 기준을 10석으로 낮춘다면, 조국혁신당이 의원 영입에 전력을 다할 이유는 없어진다. 하지만, 만일 교섭단체 기준 하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조국혁신당은 민주당 내부의 비명 의원들 영입에 나설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총선 직후지만, 다시 한 번의 정계 개편이 발생할지 모르는 것이다. 신율

[이슈&인사이트] 대만 강진은 반도체 허브 육성의 기회다

지난 3일 대만 동쪽 해저에서 발생한 규모 7.2도의 지진으로 인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의 일부 반도체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TSMC 측은 3nm(나노미터·10억분의 1m) 첨단공정 시설의 핵심 장비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도 8∼15시간 가동이 멈췄다고 밝혔다. EUV 노광장비 등 주요 기계는 손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공장의 정상 가동에 수일이 소요된다. 특히, 반도체는 정밀하게 만들어져 있어 작은 충격에도 취약한 특성을 가진다. 때문에 생산시설의 복구에 대한 우려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한다. 인공지능(AI)·전기차 등에 필요한 최첨단 반도체 생산의 90% 이상을 점유한다. 애플, 엔비디아, 퀄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주요 고객사로 뒀다. 강진이 최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집중된 대만을 강타하면서 TSMC 공장이 멈춰서자 전 세계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는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일찍부터 제기돼왔다. 대만해협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이 문제가 거론됐다. 특히 2022년 8월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할 무렵 중국이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한 뒤 그 문제 제기는 더욱 빈번해졌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핵심은 기술패권 경쟁이고 그 핵심은 반도체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제어를 위해 기술과 장비 수출 통제 고삐를 조이고 있다. 그렇지만 만일 중국이 대만을 통제하게 되면 최첨단 장비와 고급 기술 인력을 한꺼번에 확보하게 돼 일약 반도체 산업 강자로 도약하게 된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이 TSMC를 폭파하고 반도체 인력을 분산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더해 강진이 발생하면서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생산의 허브로서 적합한 지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TSMC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2차 공급처로 꼽히는 삼성전자가 주목을 받고 있다. TSMC의 고객사들이 삼성전자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서 1위 TSMC와의 큰 격차를 보이지만 시장 점유율 14%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지진에 안전하고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용수 확보도 대만에 비해 쉽다. 그만큼 입지 조건이 좋은 편이다. 공교롭게도 TSMC는 생산 다변화 차원에서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설립했다. 그런데 일본 역시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대만의 반도체 공급망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한국이 반도체 산업의 허브로 도약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마침 정부가 2023년 3월 용인시 남사면 710만㎡(215만 평)에 2042년까지 300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개를 구축하고, 국내외의 우수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 팹리스 등 최대 150개를 유치한다고 발표했다. 국회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산업에 기업이 설비투자를 할 경우 세액 공제 비율을 확대하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정부는 또 올해 1월 622조원의 민간 투자를 통해 2047년까지 경기 평택·화성·용인·이천·안성·성남·판교·수원 일대에 반도체 생산 공장 13개, 연구시설 3개를 신설한다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계획'도 내놓았다. 대만에서 강진이 발생한 직후인 지난 9일엔 '반도체 현안 점검회의'를 열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동향 및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추진현황'을 논의했는데, 그 자리에서 '첨단산업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법 개정은 전력, 용수 등 기반시설 설치에 협조하는 인근 지방자치단체에 재정적 지원을 추진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인근 지역의 반대로 공사가 지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자 국가 총력전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면서 반도체 공장 유치전을 벌이고 있다. 경쟁국들의 투자 유치 정책에 대응해 보다 과감한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특히, 우수한 반도체 전문인력 확보에 전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업계는 인력 부족에 대한 우려를 계속 제기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31년에 5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설상가상으로 '인재 유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학 정시모집에서 서울 주요대학 반도체 학과에 합격한 학생들의 상당수가 등록을 포기하고 의대를 선택한다고 한다. 우수한 인력은 한정돼 있다. 저출산 상황도 심각해지는 추세다. 때문에 적절한 인력 배분이 매우 중요하다.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의대생 증원 추진의 경우에도 마땅히 이러한 점을 고려했으면 한다. 인력이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면 아무리 단지를 조성하고 인센티브를 준다 해도 반도체 산업 허브 국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강국

[기자의눈] ‘액트’의 돌풍…내년에도 이어지려면

소액주주들의 외침이 그 어느 때보다 컸던 주총 시즌이 끝났다. 돌풍의 중심에는 소액주주를 위한 플랫폼 '액트'가 있다. 14일 금융감독원과 액트 등에 따르면 올해 열린 정기주주총회 시즌에 주주제안을 주주총회 안건으로 상정한 상장사는 총 41개다. 그중 액트를 통해 주주제안이 이뤄진 종목은 총 13개다. 또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위임을 요청(대리 행사 권유)한 종목은 총 52개로 이 중 30곳이 액트를 통해 의결권 위임이 이뤄졌다.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곳은 OCI와 통합을 추진하던 한미사이언스다. 주총장에서 펼쳐진 표 대결로 결국 통합이 무산됐고, 그 과정에서 액트를 통한 주주제안으로 이사 후보에 올라왔던 인물들이 대거 선임됐다. 이 밖에도 베뉴지와 삼목에스폼, 캐스텍코리아 등에서 액트를 통한 주주제안 이사 후보들이 선임에 성공했다. 또 DB하이텍, 대유 등에서는 최대주주 측의 안건이 액트로 의결권을 모은 소액주주들에 의해 저지되는 사례를 만들었다. 한편 액트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도 남았다. 셀리버리의 경우 임시주총과 정기주총 모두 액트를 통해 소액주주들의 의견을 모았지만, 실제 주총장에서는 표 대결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액트를 통해 모은 의결권을 검수한다며 시간을 끌다가 대표의 도주로 주총을 마무리했다. 정기주총에서는 아예 액트를 통해 모은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안건을 날림으로 처리한 뒤 대표가 또 도주했다. 휴마시스의 경우도 황당한 일이 있었다. 액트를 통해 선임된 주주 대표가 의결권을 모아 주총장에서 행사했어야 하는데, 주주 대표가 의결권을 모은 뒤 주총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활발한 소액주주들의 활동을 본 금융당국은 뒤늦게나마 제도개선을 진행 중이다. 금융감독원은 앞으로 공시하는 정기 보고서에는 주주제안 등 소수주주권 제기 사실 및 처리경과를 상세히 기재하라고 공시서식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번에 드러난 아쉬움을 달래기는 부족해보인다. 액트를 통해 의결권을 모을 수는 있지만 이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주총장을 찾아야 하고, 회사가 마음먹는다면 행사를 저지할 수도 있다. 활발해진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 움직임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전자투표제와 전자 위임장 제도 등을 의무화하고, 주주총회 관련 제도를 더욱 구체적으로 정비해 회사 입맛대로 규정을 적용하는 사례를 막아야 한다. 더 탄탄한 토대 위에서 펼쳐진 소액주주들의 반란을 기대한다. 강현창 기자 khc@ekn.kr

[데스크칼럼]‘안미경중’과 이별을 확실히 할 시간

한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패러다임이 대한민국 전략의 한축으로 자리를 차지한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 듯 했다. 하지만 이제 '안미경중'과 확실히 이별을 해야할 시간이 왔다. 세계정세는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이란 전략이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중심으로 그 이유를 살펴보자. 반도체는 인공지능(AI), 로봇, 우주, 슈퍼컴퓨터 등 첨단산업과 탄도미사일, 레이더 등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방위산업의 핵심이다. 이에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을 겨냥해 반도체 공급망에 직접 개입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의 생산 거점과 시장 지배력이 한국·대만·일본 등 동아시아에 편중돼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려고 한다. 실제로 메모리 반도체의 75%, 시스템 반도체의 90%가 동아시아에서 생산되고 있다. 10나노미터 미만 웨이퍼 가공 공정 반도체 제조능력은 대만과 한국만 갖추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이러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으며, 중국이 추진하는 '반도체 굴기'를 꺾으려는 직접적인 조치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내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체계를 갖추기 위한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마련했다. 칩스법은 미국의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자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를 완벽하게 구축하는 게 목표다. 이를 통해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전 과정에서 지배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미국내 △반도체 공장과 생산장비 보조금에 390억달러 △연구개발(R&D)에 110억달러 △국방과 관련된 반도체 분야에 20억달러 △국제 정보통신기술보안에 5억달러 △반도체 인력양성에 2억달러 등 527억달러를 지원키로 했다. 이에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가 반도체 제조공장과 패키징 시설 및 연구개발센터를 짓기로 했다. 미국의 인텔도 10나노 미만 제조공정 건설을 추진 중이다. 최근 TSMC가 미국 보조금 지원 확대 정책에 힘입어 미국 반도체 공장 3곳을 6곳으로 늘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공장과 패키징·연구개발 시설 4곳을 추가적으로 지을 것이란 보도가 나오고 있다. 또한 미국은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18나노미터 이하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14나노미터 이하 로직칩을 생산하는 중국 기업에 반도체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특히 첨단 반도체 제조공정에 필수적인 노광장비 EUV(극자외선)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최근 네덜란드 ASML사는 EUV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고품질 반도체를 생산하기에 충분한 DUV(심자외선)마저 중국에 수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가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중국 SMIC, YMTC 등의 기업들은 첨단 반도체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 뻔하다. 또한 중국 현지에서 낸드플래시와 D램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미국의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낸드와 D램 공장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는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장비 반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분간 중국에서 범용 반도체 생산에 머물러야 한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중국제조 2025'에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면서 중국의 '제조굴기'를 꺾으려고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고뇌의 결단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송영택 기자 ytsong77@ekn.kr

[기자의 눈] 전세불안 잠재울 실효적 대책 마련해야

“곧 전세계약이 끝나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최근 전셋값이 너무 많이 올라 걱정이다. 서울살이를 포기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최근 만난 한 지인의 한탄이다. 그의 말대로 최근 전셋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4월 첫째 주(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07% 상승을 기록해 전주 상승 폭을 유지했다. 작년 5월 넷째 주 이후 46주째 상승세다. 실제로 서울 성동구 '서울숲리버뷰자이' 전용 59㎡는 작년 12월 7억8000만원(16층)에 전세 계약을 체결했지만 이달 2일에는 8억5000만원(12층)에 나갔다. 성동구 금호동 4가에 위치한 힐스테이트서울숲리버 전용 84㎡는 지난달 초 11억8000만원(15층)에 전세 계약서를 썼다. 이는 1년 전 계약된 7억1000만원 대비 67%(4억7000만원) 오른 가격이다. 이처럼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보이고 이유는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일시적으로 세들어 살면서 시장 분위기를 관망하려는 수요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수년째 수도권 일대를 휩쓴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다세대·연립) 기피 현상이 맞물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물론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전세불안 해소를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긴 하다. 공공이 주택을 매입한 뒤 전세로 공급하는 '든든전세주택'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빌라·오피스텔·단독주택 등 비아파트 10만가구를 매입해 시세보다 싼 전월세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부동산 업계에선 전세불안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공의 제한적인 공급만으로 전세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오히려 든든전세주택으로 수요층을 외면한 주택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에서 매입하는 주택 중 상당수가 입지와 상품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현재의 전세불안이 우려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달 초 출입기자간담회에서 “도시경제 구조가 흔들릴 정도로 위험한 수준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세불안이 이어지면서 서울살이를 포기하고 경기도나 인천으로 집을 옮기는 전세난민이 늘고 무자본 갭투자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세불안을 잠재울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정부는 전세불안 해소를 위해 다주택자들이 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공급 촉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현주 기자 zoo100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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