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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의 발톱’ 드러내는 美 연준 인사들…9월 ‘자이언트 스텝’ 확률 90% 육박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이어 주요 인사들이 매파적인 입장을 잇따라 강조하면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서 기준금리 0.75% 인상(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9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고등연구소(IAS) 연설에서 "다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정책 금리가 수요를 억누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은 오는 20∼21일 열리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지지한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 등이 해석했다. 앞서 연준은 7월과 8월에도 같은 폭의 이례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9월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할 경우 미국의 기준금리는 현재 2.25%∼2.50%에서 3.00%∼3.25%로 급등하게 된다. 월러 이사는 "물가상승률이 우리의 목표치인 2%로 내려올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연준은 2023년에도 통화긴축을 계속할 것"이라고 언급,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면모를 부각했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다소 둔화하기는 했지만 "2% 목표치를 향해 의미있고 지속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며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의미있고 지속적으로 완화할 때까지는 통화정책 긴축을 위한 커다란 추가 (금리인상) 조치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월러 이사는 연준이 "최소 내년 초까지는 금리인상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올해 상반기 시작된 경기침체 공포가 사라지고 노동시장이 강력하다는 점에서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 인사로 꼽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도 전날 저녁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8월 노동시장이 견고했다는 보고서를 근거로 "75bp(1bp=0.01%포인트) 쪽으로 기울어졌다"며 역시 자이언트 스텝을 지지했다. 최근 비둘기(통화완화 선호)적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 에스터 조지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는 이날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연설에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지속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연준 수장인 파월 의장은 지난달 말 잭슨홀 경제심포지엄에 이어 전날에도 매파적인 스탠스를 재확인했다. 그는 해야 할 일이 끝나기 전까지 강력히 행동해야 한다며 "통화정책을 너무 일찍 완화하는 것에 역사가 경고하고 있다"고 했다.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은총재도 "인사들이 9월에 75로 기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9월에도 0.75%포인트 인상이 유력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10일 한국시간 오전 9시 17분 기준, 연방기금(FF) 금리 선물시장에서 9월 자이언트 스텝 확율이 무려 90.0%까지 급등했다. 전날의 87%보다도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증시는 이날 반등에 성공했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19% 올랐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각각 1.53%, 2.11% 급등했다. 이번 주 전체로는 다우 지수가 2.7%, S&P 500 지수가 3.7%, 나스닥 지수가 4.1% 각각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3대 지수 모두 4주 만에 첫 주간 상승이다. 연준의 고강도 금리인상이 어느 정도 반영되면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씨티그룹은 "시장 분위기가 너무 비관적이어서 리스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반등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추세적 상승으로의 전환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CIBC 프라이빗 웰스의 데이비드 도나베디안은 이번 주 증시 반등은 경기에 탄력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도 △연준의 긴축 종료 △인플레이션의 추세적 하락 △기업 실적에 대한 현실적인 전망 등이 나와야 지속가능한 강세장이 연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연준이 경제를 죽일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아직도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약세장의 바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다음 강세장까지 나오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USA-FED/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사진=로이터/연합) 연준 건물 미 워싱턴DC에 위치한 연준 건물(사진=로이터/연합) USA-STOCKS/ (사진=로이터/연합)

찰스 3세 英 새 국왕 "평생 헌신하겠다"…10일 공식 선포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영국의 새 국왕인 찰스 3세는 평생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찰스 3세는 9일(현지시간) 첫 TV 대국민 연설에서 "평생 헌신한다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약속을 오늘 여러분께 되풀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충성심, 존중, 사랑으로 영국인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다짐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관해서는 "좋은 인생이었고 운명과의 약속을 지켰으며, 깊은 애도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남 윌리엄은 이제 왕세자이며, 콘월 공작이자 웨일스공"이라고 말했다. 찰스 3세는 윌리엄 왕세자의 부인 캐서린 왕자빈을 ‘웨일스공 부인’(Princess of Wales)이라고 불렀는데 영국 왕세자빈에게 주어지는 이 작위는 찰스 3세의 왕세자 시절 부인이자 윌리엄 왕세자의 어머니인 다이애나빈의 사망 이후 공석이었다. 이어 그는 부인 커밀라 왕비도 새로운 역할에 헌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왕실을 뛰쳐나가 갈등을 빚고 있는 둘째 아들 해리 왕자 부부에 관해서도 애정을 표했다. 그는 여왕을 ‘사랑하는 엄마’라고 표현하면서 가족을 대표해서 위로와 지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전날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여왕의 곁을 지킨 뒤 이날 오전 커밀라 왕비와 함께 런던으로 이동했다. 그는 리즈 트러스 총리와 첫 회동을 하는 등 국왕으로서 임무를 시작했다. 국왕으로 공식 선포는 10일에 이뤄진다. 찰스 3세 부부는 이날 버킹엄궁의 새 주인으로서 처음 입성했다. 버킹엄궁 앞에 모인 추모객들은 새 국왕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내고 국가인 ‘하느님, 국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를 부르기도 했다. 이 노래 제목과 가사에서 전날만 해도 ‘여왕’이 쓰였는데 이제 ‘왕’으로 바뀌었다. 찰스 3세 부부는 당초 추모객들이 남긴 꽃만 보고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예정에 없이 대중에게 다가가 10여분간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눴다. 일부 여성들은 찰스 3세의 뺨이나 손에 키스하기도 했다.BRITAIN-ROYALS/KING-TRUSS 영국의 새 국왕인 찰스 3세와 리즈 트러스 총리(사진=로이터/연합)

70년 재위 영국 여왕, 현대사 산증인…한 시대가 저물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6세를 일기로 서거하면서 2차대전 후 영국은 물론 세계 현대사의 한 챕터가 끝났다.25세에 갑자기 왕관의 무게를 넘겨받은 여왕은 70년 재위 기간 변함없는 모습으로 역할에 충실했다.고령에도 날카로운 판단력, 유머, 친화력을 잃지 않았고 끝까지 뜨거운 인기를 누렸다.◇귀염받던 ‘릴리벳’, 큰아버지 스캔들에 왕위 승계여왕은 1926년 4월 21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 윈저이고 가족들은 릴리벳이라고 불렀다.그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36년.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평민 출신과의 스캔들로 왕위를 포기하면서다.갑자기 아버지 조지 6세가 즉위하고 왕위와는 거리가 멀던 여왕은 승계서열 1위로 올라섰다. 영화 킹스 스피치의 주인공인 조지 6세는 심한 말더듬증을 극복하고 2차 대전 독일 공습 때에도 피하지 않고 국민 단합을 이끌어 존경을 받았다.군주가 되는 교육을 받던 여왕은 16세가 되자 근위보병연대 시찰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1945년 여군에 입대해서 군 트럭 정비 등을 하면서 2차대전에 참전한 군주가 됐다.21세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해서 방송을 통해 "영연방에 평생을 바쳐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왕은 최근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졌을 때도 약속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여왕은 1947년에는 어릴 적 한눈에 반한 필립공과 결혼을 하고 이듬해 찰스 왕세자를 낳는 등 비교적 평범한 생활을 즐겼다.그러나 1952년 2월 6일 조지 6세가 폐암으로 갑자기 서거하면서 25세 두 아이의 엄마인 여왕은 왕좌에 오른다. 여왕은 당시 케냐 순방 중이었고 남편에게서 소식을 처음 들었다. ◇대관식 TV 중계로 영국 위상 알려…올림픽 본드걸여왕은 1953년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장엄하고 화려하게 대관식을 치르고 이를 사상 처음으로 TV로 생중계해서 2700만명이 지켜봤다. 필립공이 여왕의 배우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아 기획해 이뤄낸 성과였다. 전후 내핍을 견디며 대영제국의 영화가 사그라드는 것을 목도하던 영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주고 대외적으로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냈다.여왕은 왕실이 존립하려면 국민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알고 실천했다. 몰락 왕실 출신인 남편의 영향도 있었다. 여왕은 변함없이 근면성실하고 헌신하는 모습으로 믿음을 산 데 그치지 않았다.여왕은 국민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1957년 TV 크리스마스 메시지를 시작하고 유튜브와 SNS도 일찍 도입했다. 호주에서 일반인 가까이로 다가가 걸은 일도 화제가 됐다.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백발인 여왕이 개회식 영상에 ‘본드걸’로 출연했고 영국이 큰 위기에 봉착했던 코로나19 때는 대국민 담화 메시지로 위로와 격려를 보냈다.품위 있게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100세가 가까운 고령에도 호기심 가득하고 유머 있는 모습은 계속 사랑을 받았다. ◇필립공과 70여년 해로…찰스·앤드루·해리 자손들 골치필립공은 작년 4월 99세로 별세할 때까지 70여년 여왕의 곁을 지켰다. 젊었을 때 속을 썩이기도 했지만 여왕을 향한 충성심은 굳건했다.여왕은 아버지는 일찍 잃었지만 어머니는 101세까지 장수하다가 2002년에 사망했다.본인도 올해 즉위 70주년 기념 플래티넘 주빌리까지 성대하게 치렀다.그러나 필립공이 떠난 뒤로 급격히 쇠약해졌고 지난해 10월에는 처음으로 북아일랜드 방문 일정을 취소하고 병원에 하루 입원했다. 그 무렵부터 지팡이를 짚고 올해는 간헐적으로 거동에 불편을 겪는다고 밝혔다. 이후 올해 2월 코로나19에 감염됐다고 고비를 넘긴 뒤로는 주요 일정을 아들 찰스 왕세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늘었다.영국 언론들은 공개하지 않은 건강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여왕은 자녀들 문제로 상당히 골치를 앓았다.아들 찰스 왕세자의 결혼과 이혼은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며느리 다이애나비가 왕실 인기를 높였지만 부부사이가 좋지 않았고, 결국 1996년 이혼하며 세기적 스캔들이 돼버렸다. 그 와중에 후계자인 찰스 왕세자가 커밀라 파커 볼스와 불륜관계인 것이 드러나서 평판에 흠집이 났다.특히 다이애나비가 비극적으로 사망한 뒤 여왕이 입장을 바로 내지 않았다가 비난이 솟구쳐 위기를 맞기도 했다.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폭행 의혹으로 망가졌고 손자 해리 왕자는 왕실을 뛰쳐나갔다.가뜩이나 21세기 군주제에 회의론이 커지는 가운데 이런 사고가 왕실 폐지론으로 번지지 않도록 여왕은 위기관리에 애를 썼다.여왕이 가장 힘들었다고 밝힌 해는 1992년이다. 당시 찰스 왕세자 부부 불화가 심화하고 앤드루 왕자와 앤 공주가 이혼했다. 윈저성에 큰불이 나는 바람에 막대한 복구 비용에 관해 여론이 악화하자 소득세 면책 특권을 포기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연합뉴스1933년 7살이던 엘리자베스 2세 여왕(가운데)이부왕 조지 6세의 생일을 축하하는 군기 분열식을 마친 뒤 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이 무렵 가족들은 어린 엘리자베스를 릴리벳이라고 불렀다(사진=AP/연합)1947년 결혼식을 마친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공이 버킹엄궁 발코니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AP/연합)1952년 케냐 방문 중 부왕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국왕이 된 엘리자베스 2세가 귀국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AP/연합)

"끝날 때까지 강력히 행동"…파월,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8일(현지시간)에도 통화정책을 둘러싼 매파적인 입장을 재확인했다. 블룸버그통신, CN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카토 연구소가 주최한 통화정책 콘퍼런스에 참석, "우리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즉각적이고 단도직입적이면서 강력하게 행동해야 한다"며 "해야 할 일이 끝나기 전까지 이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준은 2%의 인플레이션을 의미하는 물가 안정에 책임이 있다"며 "통화정책을 너무 일찍 완화하는 것에 역사가 경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보여졌던 매파적인 스탠스가 이날 재확인된 셈이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은 최근 두 차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연속적으로 단행한 바 있다. 이후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조금씩 둔화된 움직임을 보이자 시장에서는 금리인상 속도조절에 대한 기대감이 모아졌다. 그러나 파월 의장은 물론 연준의 주요 인사들마저 잇따라 매파적인 발언을 내놓으면서 이번 9월 FOMC 회의에서도 또 한 차례의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이 커졌다.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이날 "인사들이 9월에 75로 기울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본인은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서도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면서 뱅크오브아메리카, 바클레이즈, 제프리스의 이코노미스트들은 9월 금리인상 폭을 기존 50bp(1bp=0.01%포인트)에서 75bp로 이날 상향 조정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골드만삭스는 그 전날에 75bp로 상향 조정했다. 아울러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오랫동안 웃돌 경우, 대중은 물가가 상승된 것이 새로운 기준으로 삼기 시작해 물가잡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승할 것"이라며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노동시장에 수요는 여전히 매우, 매우 강력하고 취업률과 임금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정책 개입을 통해 성장을 둔화시켜 노동 시장이 균형을 잡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연준은 다가오는 20일부터 이틀간 9월 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금리인상 여부를 논의한다.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9일 한국시간 오전 9시 36분 기준,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에서 9월 자이언트 스텝이 일어날 확율이 87%에 달한다. 다만 파월 의장은 9월 금리인상 폭이 발표될 경기지표에 따를 것이라고 언급했기 때문에 13일 발표될 8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더욱 주목받는다. 블룸버그 조사결과, 이코노미스트들은 8월 CPI가 8.1% 오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뉴욕증시는 파월 의장의 이러한 발언에도 상승 마감했다.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0.61% 올랐고,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와 기술주 중심 나스닥 지수는 각각 0.66%, 0.60% 상승 마감했다. 연준의 고강도 긴축은 어느 정도 반영됐고 투자자들이 8월 CPI 발표를 앞두고 관망 분위기로 돌아선 영향으로 풀이된다. BMO 캐피털 마켓의 이안 린젠 미국 금리 전략총괄은 "한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글로벌 금리인상 사이클이 금방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사진=AFP/연합)

英 여왕 장례 절차는?…10일 뒤 국장 치르고 원저성에 영면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9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는 오는 18일(현지시간)까지 열흘간 이어진다. 서거 닷새 후인 13일부터는 닷새간 여왕의 유해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하루 23시간 동안 일반에 공개돼 일반인에게도 경의를 표할 기회가 주어진다. 왕위를 계승한 큰아들 찰스 3세는 서거 당일인 8일(현지시간) 리즈 트러스 총리에게 처음 알현을 받은 뒤 열흘간의 장례 절차를 개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날 버킹엄궁이 서거 사실을 공식 공표한 뒤 전국에서 1분간 묵념이 이뤄졌다. 공식 공표 이전에 군주를 대신해 영국 정부를 운영하는 트러스 총리와 내각, 여왕을 위한 정치문제 자문기관인 추밀원은 여왕의 개인 비서로부터 사전 통보를 받았다. 이후 여왕의 처소와 영국 관가에는 일제히 조기가 게양됐다. 버킹엄궁에서는 공식 서거 발표문을 철책에 내걸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세인트폴 대성당에서는 종이 울렸다. 다음 날인 9일에는 즉위위원회가 구성돼 제임스 궁의 발코니에서 찰스 3세를 공식 군주로 선포한다. 런던 증권거래소에서도 공식선포가 이뤄진다. 오후에는 차기 군주로 공식선포된 찰스 3세가 트러스 총리와 내각, 야당 당수, 캔터베리 대주교, 웨스트민스터 성당 주임사제의 알현을 받는다. 서거 이틀 후(10일)에는 여왕의 관이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육로로 스코틀랜드 의회로 옮겨진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웨일스 카디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공식 선포가 이뤄지고, 의회에서는 고인에 대한 헌사가 이어진다. 서거 사흘 후(11일)에는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성 자일스 대성당까지 여왕의 관을 앞세운 장례 행렬이 이어진다.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는 찰스 3세를 비롯해 왕가가 참석한 가운데 장례미사가 거행된다. 미사 후 여왕의 관이 머무는 성 자일스 대성당은 대중에 24시간 동안 공개된다. 찰스 3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조문을 받은 뒤 항공편으로 에든버러로 향한다. 그는 군주로서 첫 일정으로 스코틀랜드 의회와 이어 성 자일스 대성당에서 열리는 장례미사에 참석한다. 이후 스코틀랜드 자치수반의 알현을 받으며,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조문을 받는다. 서거 나흘 후(12일) 늦은 밤 여왕의 관은 에든버러에서 왕실 열차로 런던으로 옮겨진다. 찰스 3세는 비행편으로 북아일랜드로 가서 힐스버러 성에서 조문을 받고, 벨파스트의 성의 세인트 앤 대성당에서 추도예배에 참석한다. 서거 닷새 후(13일)에는 여왕의 관이 버킹엄궁에 도착한다. 장례식에 앞서 여왕의 관은 버킹엄궁에서 웨스트민스터 홀로 옮겨져 유해가 일반에 공개된다. 5일간의 참배 기간 일반인이 여왕에 경의를 표할 기회다. 여왕의 관은 웨스트민스터 홀 중간의 관대에 놓인다. 웨스트민스터 홀은 23시간 동안 대중에 개방된다. 서거 7일 후(15일)에는 찰스 3세가 웨일스로 가서 카디프의 란다프 대성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한다. 이후 그는 웨일스 의회를 방문해 조문을 받고, 웨일스 자치정부 수반을 알현한다. 영연방 전체에서는 파견단이 런던에 도착한다. 서거 8일 후(16일)에는 찰스 3세가 왕국 총독과 총리들을 맞이한다. 서거 9일 후에는 찰스 3세가 장례식 참여를 위해 방문한 해외 왕가 인사들과 전 세계 주요 인사를 맞이한다. 서거 10일 후에는 마침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이 치러진다. 여왕의 관은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사원으로 옮겨진다. 전국에서는 2분간 묵념이 이뤄진다. 1시간의 예식 끝에 여왕의 관은 포차로 하이드파크까지 옮겨진다. 거대한 장례 행렬이 뒤따른다. 이후 여왕의 관은 영구차에 실려 윈저성으로 옮겨진다. 이후 윈저성 내 성조지 교회에서 예식과 함께 지하 납골당으로 내려진 뒤 영원한 안식에 든다.Britain Queen Elizabeth II 조기 내걸린 버킹엄궁(사진=AP/연합)

안동 하회마을서 ‘생일상’…영국 여왕, 한국과의 인연 주목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영국 최장 집권 군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은 한국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1999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김대중 당시 대통령 내외의 초청으로 3박 4일간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이는 1883년 두 나라가 한·영 우호통상항해조약을 맺고 수교한 이래 영국 국가원수로서는 첫 방한이었기 때문에 한영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꼽혔다. 국민들도 ‘116년 만의 귀빈’에 큰 관심을 보이며 환영했다.특히 이 기간 여왕이 73세 생일상을 받은 것이 한영 관계에 특별한 인연으로 각인됐다. 73세 생일인 4월 21일에 한국 유교 문화의 정수인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한 엘리자베스 여왕은 담연재에서 안동소주 명인인 조옥화(2020년 별세) 여사가 마련한 성대한 생일상을 대접받고 축배를 드는 등 한국의 전통 환대를 경험했다.과일, 국수, 편육, 찜, 탕 등 47가지 전통 궁중음식이 차려졌고, 특히 생일상의 백미로 나뭇가지에 각종 꽃과 열매를 장식한 높이 60㎝의 떡꽃 화분이 올랐다.엘리자베스 여왕은 당시 안동에서 봉정사도 방문하고,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하고 고추장과 김치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는 등 한국 문화를 체험했다. 풍산 류씨 문중의 고택 충효당을 방문했을 때는 여왕이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가는 등 한국의 예법을 존중하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깊은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방한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은 하회마을뿐 아니라 서울 인사동 거리를 방문하고 이화여대를 찾는 등 한국 국민들을 직접 만나는 일정을 여럿 가졌다.그는 김대중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마련한 국빈만찬 답사에서 "오늘 보는 한국은 제가 왕위에 오른 1952년 당시 영국민이 알고 있던 한국과 많이 다르다"며 한국 국민들이 산산조각이 난 나라를 다시 세우고 세계 주요 산업국가 중 하나를 만들어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그러면서 "새천년 시대를 바로 앞둔 이 시점에 이뤄진 저의 방한은 양국관계의 힘을 상징하는 그런 방문"이라고 말했다.이후에도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국 측 인사들에게 방한 당시 환대를 기억한다며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십수 년이 지난 뒤에도 신임장을 제정하기 위해 버킹엄궁에 온 신임 주영 한국대사들에게 하회마을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등의 언급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사진은 1999년 방한 당시 안동 하회마을에서 어린이들과 인사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 (사진=연합)1999년 방한 당시 안동 봉정사를 방문해 스님들과 대화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모습. (사진=연합)

‘70년 재위 군주’…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96세로 서거

[에너지경제신문 박성준 기자] 영국 최장 집권 군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간) "여왕이 이날 오후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앞서 왕실은 이날 정오가 조금 지나서 의료진이 이날 아침 여왕을 더 살핀 결과 건강이 염려스럽다고 발표했다.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즉각 찰스 3세로서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여왕은 예년처럼 밸모럴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이었으며 불과 이틀 전인 6일에는 웃는 얼굴로 신임 총리를 임명하며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다음 날인 7일 오후에 왕실에서 여왕이 의료진의 휴식 권고로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여왕은 지난해 4월에 70여년 해로한 남편 필립공을 떠나보낸 뒤 급격히 쇠약해졌으며 10월에는 하루 입원을 하고 올해 초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최근엔 간헐적인 거동 불편으로 지팡이를 짚고 일정을 임박해서 취소하는 일이 잦았다. 왕실은 찰스 왕세자가 국왕 자리를 자동 승계해 찰스 3세로 즉위한다고 밝혔다. 찰스 3세는 이미 공식적인 영국의 국왕이지만 관례에 따라 대관식은 몇 개월 뒤에나 열릴 것으로 보인다. 찰스 3세 부부는 이날 밸모럴성에 머문 뒤 9일 런던으로 옮긴다. 영국 정부는 ‘런던브리지 작전’으로 명명된 여왕 서거 시 계획에 따라서 절차를 진행한다. 이에 따르면 국장은 여왕 서거 후 10일째 되는 날에 치러진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연방 국가를 순방 중이던 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25살 젊은 나이에 케냐에서 왕위에 오른 뒤 70년 216일간 재위했다. 세계 역사에서 두번째로 오래 통치했다. 역사상 최장 재위 군주는 72년간 통치한 프랑스 루이 14세다. 여왕은 지난 2012년 빅토리아 여왕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다이아몬드 주빌리’를 맞았고 지난 6월에는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15명의 총리가 거쳐 간 이 기간 영국은 전후 궁핍한 세월을 견뎌야 했고 냉전과 공산권 붕괴, 유럽연합(EU)의 출범과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이 이어졌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나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특히 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했으며 이러한 역할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21세에 한 약속을 지켜 평생 헌신하고 개인적 감정은 뒤로하는 모습으로 영국인들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았다. 여왕은 영국의 강력한 소프트파워였다. 그는 영연방을 결속해서 영국이 대영제국 이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했고 미국 대통령 14명 중 13명을 만나고 유엔 연설을 하는 등 외교 무대에도 직접 뛰어들었다. 영국 뿐 아니라 세계 현대사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빼놓고 얘기할 수가 없고,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여왕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현대에 국민 지지 없이 왕실이 존립할 수 없음을 잘 아는 군주였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개회식 영상에 ‘본드걸’로 출연하고 코로나19 때 대국민 담화 메시지로 위로와 격려를 보낸 모습, 필립공 별세 때 코로나19 봉쇄 규정을 지키느라 외로이 앉은 모습 등은 영국인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와 국제정치 흐름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유머와 친화력을 잃지 않은 점도 인기의 비결이다. 이러한 덕성으로 국민의 마음을 얻은 덕택에 21세기에 들어서도 영국 군주제는 존립의 위기를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여왕은 그러나 후손들의 말썽으로 골치를 많이 앓았다. 여왕은 필립공과 슬하에 찰스 3세,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자녀 4명, 윌리엄 왕세자 등 손자녀 8명, 증손자녀 12명을 뒀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비의 이혼은 세계가 떠들썩한 이슈였다. 이후 다이애나비가 사고로 사망했을 때 여왕은 입장을 늦게 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최근엔 해리 왕자가 왕실 밖으로 뛰어나가서는 가족들과 불화를 겪고 있고 아끼던 차남 앤드루 왕자는 미성년자 성폭력 혐의로 ‘전하’라는 호칭까지 박탈당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지난 1999년 영국 군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1883년 두 나라가 수교한 지 11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여왕은 안동에서 생일상을 받고 사과나무를 심었으며 안동 하회마을, 서울 인사동 거리, 이화여대를 방문해 한국 전통문화와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나타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자 온 세상이 슬픔에 빠졌다. 찰스 3세는 성명에서 "친애하는 나의 어머니 여왕의 서거는 나와 가족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라며 "우리는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애도와 변화의 기간, 우리 가족과 나는 여왕에게 향했던 폭넓은 존경과 깊은 애정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고 견딜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즈 트러스 총리는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연설을 하면서 "여왕은 세계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트러스 총리는 "여왕은 바위였고 그 위에서 현대 영국이 건설됐다"며 "여왕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힘을 줬다. 여왕은 바로 영국의 정신이었고, 그 정신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러스 총리는 "우리는 찰스 3세 국왕에게 충성심과 헌신을 바친다"고 강조했다. 밸모럴성과 런던 버킹엄궁 등 앞에는 애도하는 인파가 모였고 방송 진행자들은 가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여왕 서거에 영국뿐 아니라 각국 전·현직 정상과 프란치스코 교황 등 주요 인사들이 애도를 쏟아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부인 질 여사와 공동 성명을 통해 "여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존엄한 지도자였으며, 기반암과 같은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지속적으로 심화시켰다"며 "그녀는 우리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추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찰스 3세와도 우정을 이어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Britain Queen Elizabeth II Presidents 1961년 당시 케네디 대통령과 엘리자베스 여왕(사진=AP/연합) Britain Queen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서거한 8일(현지시간) 버킹엄궁 앞에 애도 인파가 모여있다(사진=AP/연합) Britain Queen Elizabeth II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사진=AP/연합) Britain Queen Elizabeth II (AP) 1959년 당시 엘리자베스 2세와 남편인 필립 공(사진=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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