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나유라 기자] 은행권의 비이자수익 비중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투자일임업'이 부상하면서 증권사와 시중은행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재 투자일임업은 증권, 자산운용사에만 허용됐는데 은행권에서 투자일임업을 허용해달라고 금융당국에 건의한 것이 발단이 됐다. 증권사들은 시중은행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는 것은 증권사에 예금업무를 허용하는 것과 같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미 전국에 방대한 영업점을 보유한 은행 입장에서는 투자일임업을 하게 되면 자신의 고객들에게 미공개 정보 등을 알려 투자자 간에 정보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게 증권사들의 주장이다. 반대로 은행들은 이러한 우려들이 기우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투자일임업을 허용하면 금융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자산관리 대중화에도 득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이 투자일임업 허용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라며 말을 아끼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당국이 은행권의 비이자수익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만큼 공모펀드 등 제한적인 영역에서 일부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일임은 증권사의 고유 업무...전업주의 원칙 훼손 우려"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투자일임업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이달 10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열린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제8차 실무작업반’이 발단이 됐다. 은행권은 이 자리에서 비이자수익 확대 방안 중 하나로 ‘투자일임업 전면 허용’을 꺼냈다. 현재 투자일임이 ISA에 한해서만 허용되고 있어 은행 고객들이 원스톱 종합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받는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만일 전면 허용이 어렵다면 공모펀드,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투자일임업에 한해서라도 추가로 허용해달라고 건의했다. 투자일임업은 금융사(증권사)가 투자자로부터 주식, 펀드, 채권 등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 판단을 일임 받아, 투자자 개별 계좌로 운용해주는 업무를 의미한다. 현재 투자일임업이 허용된 금융사는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이다. 은행권은 과거부터 계속해서 투자일임업을 허용해달라고 주장했지만, 2007년과 2013년 논의 끝에 무산됐다. 해당 업무를 두고 증권사와 은행권이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은 투자일임 자체가 금융투자업 고유의 업무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은행권에 투자일임을 허용하게 되면 사실상 증권사 고유의 업무인 투자중개업, 일임업의 업무를 모두 다 영위할 수 있다는 게 증권사들의 주장이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은행 고유의 업무인 예·적금을 증권사에 허용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해당 사안에 정통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투자일임을 하게 되면 주식 매수, 매도 등을 증권사에 지시할 수 있어 사실상 증권사 본연의 업무를 다 영위하는 걸로 봐야 한다. 바꿔 말해 증권사에 예금을 허용한 격"이라며 "현재도 은행이 각종 펀드 등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데, 투자일임까지 허용하는 것은 전업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자 간 정보 불균형 가능성 vs 자산관리 대중화 기여, 소비자 윈윈특히 업계에서는 투자자 간에 정보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방대한 고객군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 특성상 향후 시장 상황이 좋지 않거나 은행권과 거래하는 특정 기업에 자금이 돌지 않는 등의 특수한 이벤트가 발생하면, 미공개 정보를 통해 은행권과 거래하는 특정 고객만 사전에 리스크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은행 고객은 대체로 원금 보장, 안전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증권사 고객들은 공격투자형이 많다는 점을 고려할 때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투자일임업은 증권사에만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기업에 중요한 이벤트가 발생하면 선행매매와 같은 불공정거래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즉각 공시한다"며 "은행 영업점 직원들이 얼마나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 투자일임 상품을 판매할 수 있을지 의문이고, 이러한 의문은 곧 금융소비자 보호랑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반면 은행권의 입장도 강경하다. 은행권은 투자일임업을 허용하게 되면 소액투자자, 은퇴자, 고령자 등 모든 고객들의 니즈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함에 따라 ‘자산관리 대중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산관리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은행, 증권 간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비자 편의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권은 방대한 지점과 광범위한 고객군을 대상으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며 "불완전판매는 투자일임뿐만 아니라 모든 금융상품에 해당하는 이슈로, 투자일임을 허용하면 은행권에 불완전판매가 많아질 것이라는 분석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소비자 입장에서 증권사, 자산운용사는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기 때문에 자산관리를 대중화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그러나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은행에서 투자일임업을 하게 되면 여유자금을 맡기는 고객들이 많아져 은행 입장에서도 저비용성 예금을 확보하는 게 유리해진다"고 했다.◇ 당국 "추후 검토"...비이자수익 확대 기조 속 일부 허용 무게전문가들은 은행권에 투자일임업을 허용하기 위해서는 직원 교육을 통해 전문성을 높이고, 성과평가지표(KPI)를 일정 부분 제한하는 등의 내부통제 강화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은행권은 순환근무가 많기 때문에 운용이나 전문성 측면에서 미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또 KPI에 투자일임업 비중을 늘리게 되면 직원 간에 과당 경쟁으로 이어져 불완전판매 소지가 커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비이자수익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은행권에 제한적으로나마 투자일임을 일부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금융위 TF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국민들의 금융지식 수준이 높아졌고, 자산을 불리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며 "투자일임업 허용은 (단순 업권 간에 밥그릇 싸움이 아닌) 금융시장 저변 확대, 투자자 접근성 확대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다만 증권사, 은행 측 주장이 모두 일리가 있는 만큼 부작용을 막기 위해 투자일임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직원 교육과 적절한 인사 배치, KPI 조정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투자일임업을 두고 각 업권의 의견을 청취한 단계"라며 "추후 실무작업반을 통해 다시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ys106@ekn.kr은행권이 비이자수익 확대 방안 중 하나로 ‘투자일임업 전면 허용’을 꺼냈다. 공모펀드 등 제한적인 영역에서 일부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금융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