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성우창 기자] 가상자산 예치 업체 하루인베스트에 이어 델리오도 투자자들에 출금 정지 조치를 내려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가상자산업계의 연쇄 뱅크런(대규모예금인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투자자들이 자기 자산을 보전하기 위한 별다른 법적 보호장치가 부재한 상황이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더 많은 업체들이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받을 수 있도록 가상자산사업자(VASP) 자격 허들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과 함께 VASP 자격에 대한 더 엄격한 감독이 있어야한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델리오 역시 VASP 취득을 받아 홍보에 활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먹튀 아니냐" 투자자 발동동15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델리오는 전날 고객이 예치한 자산을 출금하지 못하도록 출금 정지 조치를 실시한다고 공지했다. 전날 하루인베스트에 이은 두번째 출금 제한 조치다. 델리오는 하루인베스트발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 변동성이 급격히 증가해 그 여파가 해소될 때까지 ‘부득이’ 정지 조치를 시행하게 됐다고 사유를 밝히기도 했다.그러나 업계와 투자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델리오는 예치 중단 공지와 동시에 전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라는 공지를 올려 사실상 사무실을 폐쇄한 상태다. 또한 델리오가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지갑 주소에서 대규모 자산 이체를 보여주는 트랜잭션까지 발견돼 사실상 ‘먹튀’를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이미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5개 거래소는 델리오의 출금 정지 발표 직후 델리오로의 출금을 제한하겠다고 일제히 공지했다. 델리오에 자금을 예치했던 투자자들도 각종 SNS 등을 통해 피해자 모임을 결성하고 대책 마련에 분주한 상태다.문제는 가상자산 예탁 업체의 연이은 출금 정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별다른 재산권 보호장치 없이 극심한 먹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하루인베스트·델리오 사태를 필두로 가상자산 예치 업체의 연쇄 뱅크런을 우려하고 있다. 공포에 휩싸인 투자자들이 수익을 포기하고 예치한 자산을 빼내는 동시에, 일부 악덕 업체들도 ‘시장 혼란에 의한 투자자 보호 조치’를 앞세워 먹튀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직 헤이비트·샌드뱅크 등 유사업체들이 남아있지만 어디도 신뢰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로펌들 지원에도 효과는 글쎄…투자자들의 불신은 외부에도 번지고 있다. 일부 로펌이 나서 투자자들의 재산 보호를 위한 법률지원에 나섰지만, 상당수의 투자자가 냉소를 보내고 있다. 제도 미비로 별다른 법적 수단이 없는 데다, 상당한 재산을 잃은 피해자들의 체감상 수임료 등 소송 비용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거 루나·테라 사태 당시에도 몇몇 로펌이 피해자를 대리해 자산 동결 등 여러 수단을 시도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바 있다.이정엽 블록체인법학회장 및 법무법인 LKB 대표변호사는 "시장 상황이 비정상적 혼란에 달했다면 투자자의 출금·예치 제한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관련된 조치를 취했을 때 고객을 안심시켜 줄 조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다 보니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이번 델리오의 예치 정지에 대해서는 하루인베스트 건과 달리 금융위원회 등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델리오가 자본시장법상 VASP로 등록돼 있어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관리 감독 대상이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당국은 델리오의 횡령·배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기관과 협력할 예정이라고 전한 바 있다.단 여전히 대다수의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는 VASP 라이센스가 없는 채 자산을 운용하고 있어, 투자자들로서는 충분한 신뢰성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업체에 무방비로 자산을 맡기고 있다. ◇ ‘VASP’ 허들은 낮추고 관리는 엄격히가상자산업계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규정을 일부 개정해 VASP 자격을 얻기 위해 허들을 조금 낮추고 더 많은 업체가 양지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가상자산업계 한 관계자는 "델리오는 그나마 업계에 몇 안 되는 VASP로서 금융당국의 관리 감독을 받으니 조금은 나은 편"이라며 "현행법상 수백억원 규모 자본금이 있어야만 VASP를 받을 수 있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신흥시장인 가상자산 분야 스타트업들이 자본시장법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반면 VASP 취득만으로 해당 업체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델리오 역시 VASP를 받은 정식 업체임을 내세워 적극 홍보에 나선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VASP 승인이 오히려 사태의 피해를 키웠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변창호코인사관학교의 변창호 씨는 "델리오는 VASP 취득을 통해 법적·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건전성을 과시했다"며 "금융당국의 VASP 승인으로 인해 피해가 커졌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suc@ekn.kr지난 14일 게시된 델리오 측의 투자자 출금 정지 조치 공지. 사진=델리오 홈페이지금융당국으로부터 자본시장법상 가상자산사업자(VASP) 라이센스를 받았음을 내세운 델리오 측 자료. 사진=델리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