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주요 기관 물가 상승률 전망치 보다 낮은 2.5%로 결정되면서 실질 임금을 기준으로는 사실상 삭감됐다. 결국 그간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받아온 월급이 중소기업·소상공인 지급 능력에 비해 과도했다는 결론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18∼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밤샘 논의 끝에 15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시급 9860원, 월급(209시간 기준) 206만 740원을 결정했다. 올해(시급 9620원·월급 201만 580원)보다는 2.5% 높다. 이에 내년 최저임금은 당초 가장 핵심적인 기준점으로 주목 받았던 1만원에 못 미쳤다. 특히 인상률 2.5%는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물가상승률 전망 평균치(3.4%) 보다는 낮은 수치다. 이런 결정이 나온 뒤 노동계를 대표해 논의에 참여했던 근로자위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내년도 최저임금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치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결정됐다"며 "이는 실질임금 삭감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2년간의 최저임금 결정 산식도 잘못된 예측으로 물가 폭등 상황을 반영하지 못해 저임금 노동자 생활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임금이 올라도 오르지 않은 것이 돼버린 현실에서 제일 고통 받는 것은 저임금 취약계층 노동자"라고 주장했다. 당초 최저임금위는 역대 최장 논의 기간 가지면서까지 노사 ‘합의’를 시도했다. 최저임금 제도는 1988년 도입된 뒤 3차례 제도가 변경됐는데, 현행 방식이 적용된 2007년부터 작년까지 최장 심의기일은 2016년 108일이었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에 걸린 기간은 110일로 현행 제도상 최장 기록을 7년 만에 갈아치웠다. 결국 더 시간을 갖지 못한 최저임금위는 이날 노사가 제시한 최종안(11차 수정안)인 1만원과 9860원을 놓고 투표했다. 이후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들 제시안 9860원은 17표,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들 제시안 1만원은 8표, 기권이 1표 나왔다. 현재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 8명(9명 중 1명 구속돼 해촉),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6명으로 이뤄져 있다. 이날 투표 결과는 공익위원 대부분이 사용자위원들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에 결정된 인상률은 코로나19 발생 연도인 2020년 2.87% 보다는 낮고 방역 절정기였던 2021년 1.5% 보다는 높다. 1.5% 인상률이 역대 최저치였던 점을 고려하면, 내년 최저임금은 국가적 재난 상황이 없는 평시 가장 낮은 수준 인상률 보인 셈이다. 특히 이번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도 최저임금과 연관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외부 정치 이슈가 영향을 끼치면서 구조적 취약성을 재차 노출했다. 올해 최저임금 심의 시작부터 노동계는 정부 노동 개혁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근로자위원들은 노사 간 중재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정부 노동 개혁에 앞장섰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결국 4월 18일 첫 전원회의는 시작도 못 한 채 무산됐다. 이후에도 근로자위원 중 한 명이던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망루 농성’을 벌이다 구속돼 논의에 차질이 빚어졌다.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정부 사상’이 강하게 반영되면서 최저임금 인상률이 크게 흔들렸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2020년(적용 연도 기준)까지 최저임금 시간당 1만원’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는 정부 출범 뒤 국정과제로 추진됐다. 이 공약이 달성되려면 매년 최저임금을 15.7%씩 인상해야 했다. 그러나 정부 초반부터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가팔라 시장이 적응 시간을 갖지 못하는 부작용이 벌어졌다. 이에 2018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출발했던 최저임금 인상률(16.38%)은 2021년 1.51%로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결국 문재인 정부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8.32%로 박근혜 정부 때(8.28%)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에도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구분 적용’ 공약이 초반 주요 논제였다. 그러나 공익위원들이 노동계 손을 들어 반대 15표, 찬성 11표로 무산됐다. 구분 적용안이 무산된 뒤 경영계를 이를 근거로 전체 최저임금 수준을 가장 어려운 소상공인에 맞춰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hg3to8@ekn.kr내년도 최저임금 9천860원으로 결정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 간사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