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 전지성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전기·가스요금 인상 속도조절 방침에도 정부 내에서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26일 관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물가 안정이 절박하고 물가에 미치는 전기요금의 영향이 적지 않지만 2분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30조원을 웃도는 영업손실을 기록한데 이어 올해도 현 전기요금체제에선 적자를 나타낼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부 내 이같은 인식이 더욱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인상의 가장 좋은 기회를 2분기로 보고 있다. 2분기의 경우 다른 분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기요금 인상의 충격파가 적을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겨울철이 지나 난방 수요가 크게 줄어들고 전기 수요도 연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일 때이기 때문이다. 2분기 전기요금 기회를 놓치면 내년 3분기까지 전기요금을 올리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도 2분기 전기요금의 불가피론에 힘을 보탠다.요금 인상이 미뤄지면 소비자 입장에선 올 겨울 ‘난방비 폭탄’에 이어 당장 여름철 냉방 성수기인 오는 3분기 ‘냉방비 폭탄’까지 맞을 있다. 내년 4월엔 총선이 예정돼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총선이 끝날 때까지 정부의 요금인상 부담이 더 커지게 된다. 관가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전기요금 인상 속도조절 입장은 2분기 요금을 올리지 않고 뒤로 미루자는 게 아니라 고물가 속에 소비자의 요금 인상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인상 요인을 잘게 쪼개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반영하자는 취지일 것"이라며 "정부는 2분기 요금 인상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적극 검토하되 윤 대통령의 입장을 고려, 당초 계획됐던 인상 폭을 줄이는 쪽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이같은 방향의 언급을 했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 7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에너지 가격은 외국에 비해 굉장히 저렴하다"며 "지난 정부는 도매가가 10배가 올랐지만 한번도 요금을 조정하지 않았다. 그건 이번 정부도 마찬가지다. 시장에 반항하면서 올려야 할 에너지값을 올리지 않는 정부는 어떤 정부를 막론하고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추경호 부총리도 지난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업무보고 모두발언에서 "전기·가스 등 에너지 요금은 국민부담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되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상황 등도 감안해 조정 수준과 시기 등을 검토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두텁게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정부는 그간 수차례 2분기 요금 인상을 시사해온 만큼 더 이상 미룰 경우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정부의 요금 동결 등 에너지정책을 가열차게 비판해놓고 똑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정부의 물가 안정 최우선 정책은 이해하지만 사실상 이번 2분기가 전기요금 인상 적기"라며 "일단 2월을 끝으로 한달 간은 전력 구매가격인 SMP(계통한계가격) 상한제 시행이 끝나지만 액화천연가스(LNG)도입 가격이 일시적으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또 봄철이 되면 전력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전기요금 인상 충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이번 2분기에 요금을 못 올리면 올해 내내 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3분기는 냉방수요 급증으로 연중 최대 전력 성수기인데 그때 요금을 인상하면 소비자 부담이 한꺼번에 커질 수밖에 없다. 절약캠페인을 계속하고 있는데 가격신호 없이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또 "당초 올해 기준연료비를 최소 킬로와트시(KWh)당 50원은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13.1원 이상에 그쳤다. 사실은 2배로 올라야 하는 상황이다. SMP가 KWh당 250원대이고 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19.5원을 반영하면 280원 정도가 원가인데 소매전기요금은 130원 수준이기 때문에 팔면 팔수록 적자"라며 "그렇다고 당장 2배를 올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기준연료비를 40~50% 정도 올리고 나머지를 정부의 재정보조금으로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한편 한전은 연결 재무제표 기준 지난해 세 차례(4·7·10월) 전기요금 인상에도 32조 603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고 지난 24일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한전 전체 매출 71조2719억원의 45.7%에 해당하고 2021년 영업손실(5조8465억원)의 5.6배 수준이다. 특히 세 차례 전기요금 인상 이후인 4분기 영업손실은 10조7670억원으로 분기별 사상 최대 규모를 나타냈다. 연료비 급등을 따라가지 못하는 전기요금 ‘찔끔’ 인상 만으로는 전기를 팔수록 손해 보는 한전 사업구조의 취약성이 점점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jjs@ekn.kr한국전력 실적 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