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5일 경남 사천 소재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 생산동에서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 양산 1호기 출고식이 열렸다. 이는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새 지평을 여는 역사적인 행사로 이재명 대통령을 필두로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안규백 국방부 장관 △손석락 공군참모총장 △김종출 KAI 사장을 비롯한 방산업체 임직원 △시험 비행 조종사 등 국가 안보와 과학·기술 분야의 최고위급 인사들, 공군사관생도와 영국·페루·일본·캐나다 등 14개국 주요 외교 사절단 등 500여 명이 참석해 거대한 국가적 성취를 목도했다. 출고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마침내 대한민국은 땅과 바다에 이어 하늘에서까지 우리 기술과 의지로 평화를 지키는 무기를 보유하게 됨으로써 자주 국방의 위용을 떨치게 됐다"고 선언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 6.25 전쟁 이후 외국의 원조 무기에 안보를 의존해야만 했던 척박한 역사를 뒤로하고 독자 기술로 최첨단 무기를 직접 만들어 전 세계 국방 수요국들이 앞다투어 찾는 방산 4대 강국으로 도약했다는 강렬한 국가적 자부심의 표출이다. 또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와 LIG넥스원의 천궁 미사일 등을 통해 입증된 지상·방공 무기체계의 세계적 경쟁력이 가장 진입 장벽이 높은 항공우주 영역으로 확장됐음을 시사한다. KF-21은 2001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국산 전투기 개발 프로젝트를 최초로 천명한 이래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숱한 기술적 난관과 경제성 논란, 그리고 우방국의 핵심 기술 이전 거부라는 뼈아픈 시련을 극복하고 쟁취해 낸 끈기와 집념의 산물이다. 그 과정에는 정부와 군, 수백 개의 민간 방산 산업체들의 협력이 녹아있다. 독자 개발 전투기로는 최초로 인도네시아와 16대 수출 계약을 확정 지으며 글로벌 무기 공급망에서 대한민국의 입지를 확고히 하는 경제적 쾌거까지 뒤따랐다. 그와 같은 서사만큼이나 KF-21 양산 1호기 출고식은 우리나라가 미국·러시아·중국·일본·프랑스 등 항공우주 강국들에 이어 세계에서 8번째로 4.5세대 이상의 첨단 초음속 전투기를 독자적으로 설계·제작·실증할 수 있는 최정상급 역량을 보유한 국가 반열에 올랐음을 국제 사회에 공식 선포하는 징표이기도 했다. ◇4.5세대 첨단 전투기의 기술적 성취와 성능 지표 KF-21은 현대 공중전의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저피탐(스텔스) 형상 설계 기법과 다차원 센서 융합 기술을 접목한 4.5세대 다목적 전투기다. 현대 과학 기술의 총아인 전투기는 수십만 개의 정밀 부품과 수천만 줄의 소프트웨어 코드가 한 치의 오차 없이 결합돼야 하는 초고난도 시스템 엔지니어링의 정수를 보여준다. 동체의 형상과 제원은 그 전투기가 수행해야 할 전술적 목적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KF-21은 전장 16.9m, 전폭 11.2m, 전고 4.7m다. 이는 글로벌 베스트 셀러 경량 전투기인 F-16보다 크고 미 해군의 주력인 F/A-18 슈퍼 호넷과 유사한 중형 전투기 체급에 해당한다. 기체의 넉넉한 체급은 향후 이어질 블록(Block) 개량 사업에서 내부 무장창을 신설하거나 대형 외부 연료 탱크, 첨단 전자전 포드를 추가 장착할 수 있는 훌륭한 플랫폼 확장성을 제공한다. 쌍발 엔진의 채택은 KF-21의 특징 중 하나다. 단발기에 비해 애프터 버너 사용 시 4만4000파운드에 이르는 최대 추력을 발휘해 무거운 무장을 가득 싣고도 민첩 기동이 가능하다. 특히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해상 상공에서 단일 엔진이 고장 날 경우 조종사의 생존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쌍발 엔진 구조는 하나의 엔진이 피격되거나 고장을 일으키더라도 나머지 엔진으로 기지를 귀환할 수 있는 잉여 추력을 제공해 무기체계의 생존성과 신뢰성을 본질적으로 끌어올린다. 신형 전투기가 설계 수치를 넘어 실제 하늘에서 완벽 작동함을 증명하는 과정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위험을 동반한다. 2022년 7월 19일 시제 1호기가 첫 비행에 성공했고, 같은 해 11월 10일 2호기 비행 등 총 6대의 시제기가 투입돼 고강도 비행 시험을 전개했다. 약 42개월의 기간 동안 진행된 1600여 회의 비행 시험이 진행됐고, 1만3000여 개의 엄격한 시험 조건을 통해 기체의 한계 성능이 철저히 검증됐다. 이 과정에서 초음속 영역에서의 기체 진동 현상과 극단적인 받음각에서의 실속 회복 능력, 급기동 시 발생하는 중력 가속도(G-포스)에 대한 동체 구조물의 피로도 등을 모두 데이터화하고 수정 보완했다. 금번 출고된 양산 1호기는 복좌형(2인승) 기체로 제작돼 초기 운용 인력인 교관 조종사 양성과 부대 전력화 준비 과정에서 핵심적인 훈련·데이터 축적 플랫폼으로 활약할 예정이다. ◇ 핵심 장비 국산화와 AESA 레이더의 진가 2015년 KAI가 주관 업체로 선정되며 본 궤도에 올랐던 한국형 전투기(KF-X) 체계 개발 사업은 초창기 거대한 암초에 부딪혔다. 현대 공중전의 승패를 가르는 4대 핵심 항전 장비인 능동 위상 배열(AESA) 레이더·적외선 탐색 추적 장비(IRST)·전자 광학 표적 추적 장비(EO TGP)·전자전 방해 장비(RF Jammer)에 대해 미국 정부가 기술 이전을 전면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자국의 첨단 항공 기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통상적인 수출 통제 조치였으나 당시 국내에서는 독자 개발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심각한 회의론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위기는 대한민국 방산업계가 핵심 기술의 완전한 내재화를 결단하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국방과학연구소(ADD) 주도 하에 한화시스템·LIG넥스원 등 국내 최고 수준의 전자·통신 방산기업들이 연구·개발(R&D)에 사활을 걸었다. 그 결과 현재 KF-21 체계 전체의 부품 국산화율은 65%를 넘어 방산 생태계 독립에 불을 지폈다.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받았던 AESA 레이더의 국산화율은 89%를 기록했다. 이는 기계식으로 안테나를 회전시키며 전파를 쏘던 과거와 달리 기체 기수에 장착된 수천 개의 초소형 송수신 모듈(TRM)이 전파의 위상과 진폭을 전자적으로 조절해 빔을 조향하는 최첨단 장비다. AESA 레이더는 레이더 빔의 방향을 마이크로초 단위로 변환할 수 있어 공중에 떠 있는 수십 대의 적기, 해상 위를 고속으로 기동하는 함정, 지상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 등 다차원적인 표적을 동시에 탐지하고 추적할 수 있다. 또한 적의 강력한 전파 방해 환경 속에서도 주파수를 기만적으로 도약시키며 아군의 유도 무기를 정확히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토록 고도화된 AESA 레이더 기술을 자력으로 확보함으로써 우리 공군은 향후 작전 요구 성능(ROC)의 변화나 새로운 무장 체계의 도입 시 외국의 허가 없이도 자유롭게 레이더 소프트웨어를 수정하고 개량할 수 있는 권한을 쥐게 됐다. 눈이 발달하면 그에 상응하는 신경망과 반사 신경 역시 고도화 돼야 한다. LIG넥스원이 담당한 KF-21의 내장형 통합 전자전 장비(EW Suite)의 국산화율은 65%로 전해진다. 이는 적의 대공 레이더 망이 아군 기체를 탐지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포착하고, 이를 기만하는 강력한 방해 전파를 방사해 적의 센서를 무력화하는 능동적 생존 장비다. 저피탐 형상 설계가 적의 레이더 반사 면적을 물리적으로 줄이는 '은신'이라면, 고성능 전자전 체계는 적의 시야를 강제로 가려버리는 '실명' 타격에 가깝다. 이러한 항전 시스템의 높은 국산화율은 향후 KF-21이 지속적인 진화적 성능 개량을 거치는 데 있어 비용을 절감하고 기술적 유연성을 보장하는 핵심 자산이다. ◇무장체계 통합, 그리고 블록3까지의 진화적 전력화 로드맵 현대의 전투기 개발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돼 한 번의 개발 주기에 모든 ROC를 완벽히 구현하려는 방식은 실패의 위험이 너무 크다는 특성이 존재한다. KF-21은 기술적 성숙도와 공군의 전력화 소요에 맞춰 점진적으로 성능을 개량하고 무장을 추가하는 '진화적 개발(Evolutionary Development)' 블록 로드맵을 철저하게 따르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2026년 상반기 중에 체계 개발을 완료하고, 하반기부터 공군 작전부대에 양산 기체를 순차적으로 인도해 당해 9월부터 실전 배치를 개시할 예정이다. 이는 수명이 다해 퇴역이 시급한 F-4 팬텀과 F-5 제공호의 전력 공백을 신속히 메우기 위한 조치다. 현재 사천 KAI 공장에서 양산 중인 초기 물량은 블록 1에 해당한다. 2028년까지 총 40대가 우선 전력화되는 이 기체들은 적 전투기를 요격하고 영공을 방어하는 공대공 임무에 철저히 집중돼 설계됐다. 블록 1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고성능 공대공 미사일의 성공적인 통합이다. 지난 2024년 5월 8일, KF-21 시제기는 유럽 MBDA의 미티어(Meteor)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딜(Diehl)의 아이리스-T(IRIS-T)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첫 실사격 테스트에서 성공했다. 특히 미티어 미사일은 램제트(Ramjet) 추진 방식을 채택해 마하 4 이상의 극초음속으로 비행하며, 회피 기동을 시도하는 적기를 끝까지 추적해 격추하는 '가시선 밖 요격(BVR, Beyond Visual Range)'의 세계 최강 무기다. 이를 안정적으로 기체 센서와 융합함으로써 KF-21 블록 1은 라팔·유로 파이터·F-16 최신형 등 동급 4세대 내지 4.5세대 전투기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교전 교환비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2028년 이후부터 2032년까지 추가로 80대가 양산될 예정인 블록 2 기체들은 공대공 임무를 넘어 지상 및 해상의 핵심 표적을 정밀하게 타격하고 정찰 임무까지 수행하는 다목적 전투기로 진화한다. 이 단계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대한 과제는 바로 국산 공대지 무장 체계의 통합이다. 공군은 F-15K에서 운용하기 위해 독일-스웨덴 합작의 타우러스 미사일 약 260발을 도입해 운용 중이지만 이는 고비용 문제와 기체 통합 시 원제작사의 기술 통제라는 한계가 명확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방사청과 국과연이 주도하는 국내 최초의 장거리 공대지 유도탄인 '천룡' 미사일 통합 사업이 핵심으로 떠오른다. LIG넥스원이 체계 종합을 맡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고성능 추진 시스템을 개발하는 천룡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최근 천룡 미사일은 비행 안전성 검증을 마쳤고 다양한 작전 플랫폼에서 운용 가능하도록 모듈식 연료 설계를 채택해 작전의 유연성을 극대화했다. 방사청은 KF-21 플랫폼이 공대지 무기 통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지는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제기를 활용한 체계 통합 시험에 돌입한다. 이후 2028년 체계 개발을 최종 완료하고, 2030년대 초반 초기 작전 능력(IOC) 확보를 거쳐 2031년까지 공군이 요구하는 최소 600발 규모의 천룡 미사일을 대량 생산해 실전 배치할 계획이다. 기체 플랫폼과 주력 무기체계를 동시에 국산화하고 동기화하는 이 작업은 전투기 작전 능력을 극대화할 뿐만 아니라 향후 해외 수출 시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방산 패키지의 핵심 경쟁력이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는 블록 3(KF-21 EX) 단계는 KF-21을 5.5세대 이상의 미래전 플랫폼으로 탈바꿈시키는 거대한 도약이다. 현재 4.5세대인 블록 1·2 기체들은 미사일과 폭탄을 날개와 동체 외부 하드 포인트에 장착해 레이더 반사 면적이 늘어나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KAI는 최초 설계 단계부터 이미 기체 동체 중앙 하단에 미사일을 기체 내부로 수납할 수 있는 '내부 무장창(Internal Weapon Bay)'의 공간을 확보하고, 외부 무장을 반매립식으로 장착하는 과도기적 기술을 적용해뒀다. 향후 고성능 센서 체계의 강화와 함께 내부 무장창 기술이 완성되면 KF-21은 적의 방공망에 탐지되지 않고 은밀히 침투할 수 있는 완전한 스텔스 기능을 지닌 5세대 전투기로 진화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AI)과 고속 데이터 링크 네트워크 중심 전투 능력을 기반으로 복수의 무인 전투기(UCAV)들을 지휘·통제헤 함께 교전하는 유·무인 복합 체계(MUM-T)의 모선 역할을 수행하는 5.5세대 개념으로까지 확장될 전망이다. ◇방위산업 생태계의 비약적 발전과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 항공우주 분야는 기술 집약도가 극도로 높아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미래 전략 산업으로 꼽힌다. 단일 품목 생산에 수십만 개의 부품과 항공전자·신소재·정밀 가공·시스템 소프트웨어 등 최첨단 산업 기술이 융합돼야 해 군사력 강화 외에도 국가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거시적인 전략의 일익을 담당하기도 한다. KAI는 KF-21의 적기 납품과 대규모 양산을 위해 사천 본사에 축구장 3개 크기에 맞먹는 약 2만1000㎡ 규모의 고정익 생산동을 새로이 구축했다. 이곳에는 '동체 자동 결합 체계(FAS, Fuselage Automated Splicing)'가 전격 도입됐다. 전투기의 중앙 동체를 기준으로 전방과 후방 동체를 정밀하게 결합하는 과정은 기체의 공기역학적 밸런스를 결정짓는 핵심 공정이다. 과거 수작업에 의존하던 이 과정을 레이저 측정과 자동 정렬 시스템을 통해 100분의 1밀리미터 단위의 오차까지 통제하며 자동으로 체결하는 혁신 공법을 적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KAI는 높은 정밀도와 품질의 균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연간 50대 이상의 대량 생산이 가능한 생산 능력을 증명해냈다. 올해 2026년에만 KF-21 8대와 FA-50 19대 등 총 27대의 고정익 기체를 납품할 예정이고 2027년 31대, 2028년 47대 등으로 점진적으로 생산 물량을 폭발적으로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이러한 대규모 양산 인프라 가동은 체계 종합 업체인 KAI를 정점으로 수백 개의 국내 중소·중견 협력업체들이 레이돔·랜딩 기어·비행 제어 컴퓨터·각종 센서류를 공급하며 탄탄한 산업 생태계를 지탱하고 있다. 부품 수요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해당 중소기업들의 시설 투자와 R&D 자생력을 높이는 긍정적 낙수 효과를 창출한다. 산업 생태계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대규모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가적 호재를 동반한다. 전투기 개발과 생산, 시험 평가, 그리고 향후 수십 년간 이어질 유지·보수·정비(MRO) 단계 전반에 걸쳐 항공 엔지니어·소프트웨어 개발자·정밀 가공 기술자·시험 비행 조종사 등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 인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숙련된 기술 인력 양성을 촉진하고 고용의 질을 높이는 데에 절대적으로 기여한다. 특히 KAI 본사와 다수의 협력사가 밀집한 경남 사천시 일대는 사업 관련 인력의 대거 유입과 투자 확대로 인해 지역 경제가 비약적으로 활성화되는 수혜를 누리고 있고, 지역 대학과 연계한 항공우주 특화 교육 프로그램 활성화 등 지방 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강력한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방산 분야에서 축적된 극한 기술의 민간 파급 효과다. KF-21을 개발하며 체득한 초경량 고강도 복합 소재 가공 기술과 정밀 항법 및 자율 비행 제어 알고리즘, 고성능 센서 융합 데이터 처리 기술 등은 향후 무인기·도심 항공 교통(UAM)·자율 주행 자동차·차세대 로보틱스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미래 산업 분야로 전이돼 대한민국 경제 전반의 파이를 키우는 혁신의 씨앗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 경제학적 관점에서 자체 무기 플랫폼의 보유 유무는 '국가 경제 선택권'과 직결된다. 전투기와 같은 초고가 첨단 무기를 외국에서 도입할 경우 수조 원에 달하는 기체 도입 비용뿐만 아니라 운용 기간 내내 부품 교체와 성능 개량을 위해 원제작국에 천문학적인 유지 보수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이는 고스란히 막대한 국부의 유출로 이어진다. ◇자주 국방 완성과 글로벌 톱티어 도약을 위한 민관의 핵심 과제 현재 책정된 KF-21 블록 1의 대당 양산 계약 가격은 약 1200억 원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수십 조 원 단위의 국방 예산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고 고스란히 국내 방산 생태계로 투입됨으로써 내수를 진작하고 재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방위산업은 국가 경제 주권을 확립하는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다. 체계 개발비가 8조1000억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국책 사업에서 초기부터 파트너로 참여했던 인도네시아의 분담금 미납 사태는 사업의 안정성을 뒤흔드는 오랜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치열하고 끈질긴 막후 협상 끝에 우리 정부는 끝없는 분담금 압박으로 자칫 공동 개발국이 이탈해 사업 전반에 불신이 조장되는 리스크를 원천 차단하고, 대신 확실한 16대 양산 물량을 보장받음으로써 조립 라인의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기체의 단위당 생산 단가를 낮추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노렸다. 아울러 동남아시아 최대의 군사 강국이자 비동맹 중립 노선의 핵심 국가인 인도네시아 공군의 주력 기종으로 KF-21을 확고히 자리 잡게 함으로써 향후 수십 년간 이어질 수리 부속과 창정비, 성능 개량 시장을 국내 기업들이 독점적으로 장악하는 '인(Lock-in) 효과'를 거두게 됐다. 이 외에도 인도네시아와의 16조 원대 방산 생태계를 아우르는 수출 성사는 전 세계 잠재 고객국들에게 KF-21 체계의 신뢰성을 입증하는 보증 수표가 됐다. 이처럼 KF-21 양산 1호기는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대한민국 공군 전력의 세대 교체와 글로벌 4대 방산 강국 진입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정부와 방산업계가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다. 완전한 의미의 '자주 국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중장기적 과제 해결이 절실히 요구된다. 가장 시급하고 뼈아픈 기술적 아킬레스건은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이다. 현재 KF-21에 탑재되는 엔진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미국 제너럴 일렉트릭(GE)의 F414 엔진 기술을 일부 이전받아 국내에서 면허 생산하는 방식으로 조달하고 있다. 비록 면허 생산을 통해 안정적인 부품 조달과 신속한 정비 라인을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으나 원천 기술이 없어 제3국으로 기체를 수출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미국의 핵심 부품이 탑재된 무기를 타국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 정부와 의회의 엄격한 수출 승인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만약 미국의 대외 정책이나 지정학적 이해 관계와 충돌하는 국가에 수출을 시도할 경우 단 하나의 엔진 부품에 대해서라도 승인이 나지 않으면 거부하면 수조 원대의 수출 계약이 허공으로 날아가게 되는 통제 불능의 종속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재명 대통령이 축사에서 “첨단 엔진 개발에 신속히 착수해 K-방산 경쟁력을 지속 높여가겠다"고 천명한 것은 사태의 시급성을 정확히 인지한 발언이다. 향후 정부는 최소 1만5000파운드 이상의 추력을 내는 국산 터보팬 엔진 독자 개발에 조 단위의 막대한 R&D 예산을 마중물로 투입해야 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민간 방산 기업들은 극한의 온도와 압력을 견디는 터빈 블레이드 신소재와 연소 기술 등 원천 기술 확보에 전사적 역량을 쏟아부어 완전한 엔진 독립 시점을 최대한 앞당겨야만 한다. ◇ K-방산 도약을 위한 범 정부적 '금융 원팀' 지원 따라야 무기체계는 전장에서 완벽하게 작동할 때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2026년 하반기 공군에 순차적으로 인도돼 실전 부대에서 운용을 시작하면 비행 시험 단계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갖가지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돌출될 수밖에 없다. 극단적인 기상 환경에서의 항전 장비 오류나 기계적 피로도 증가로 인한 부품 마모, 소프트웨어 체계 간의 충돌 현상 등은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성패의 관건은 이러한 문제에 얼마나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공군과 KAI는 실시간 비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빅데이터 기반의 예지 정비 시스템 고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부품의 고장 주기를 사전에 예측해 고장이 발생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교체함으로써 전투기가 언제든 임무에 투입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출격률'을 선진국 5세대 전투기 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고객들이 전투기를 선택할 때 가격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바로 원활하고 신속한 후속 군수 지원(PBL, Performance Based Logistics)이다. 아무리 훌륭한 전투기라도 수리 부속이 제때 공급되지 않아 격납고에 주기돼 있다면 무용지물이다. 철저한 공급망 관리를 통해 부품 단종을 사전에 대비하고, 수출국 현지에 긴밀한 정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서비스 경쟁력' 입증이 KF-21 글로벌 진출의 지속 가능성을 판가름한다. 전투기와 같이 단위 계약 규모가 수조 원에서 수십 조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 방산 수출은 기업의 영업력을 넘어 국가 대 국가 간의 신용과 경제력이 총력전으로 격돌하는 이른바 정부 간 거래(G2G)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수출 대상국인 인도네시아·폴란드 외 개발도상국 등은 천문학적인 도입 대금을 일시불로 지불할 여력이 모자라 수출국에 저리의 장기 금융 대출(융자)이나 대규모 수출 보증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 관례다. 이 지점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강력하고 파격적인 '방산 금융 지원 정책'이 필수적 타당성을 갖는다. 정부는 최근 글로벌 방산 수출을 획기적으로 견인하기 위해 한국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 등 국책 금융 기관을 동원해 향후 3년 간 방산업계에 1조 원 이상의 자금을 융자·보증의 형태로 지원하는 공격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또한 산 기업들에게 보다 촘촘한 보증과 공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작년 중 공식 출범시킨 방위산업공제조합의 자본 확충과 역할 강화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 등 글로벌 대형 금융기관들이 환경·사회·지배 구조 경영 기조를 강화하며 무기 수출과 관련된 사업을 '반(反) ESG'로 규정하고 자금 지원을 꺼리는 현상 역시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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