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EE칼럼] 미국 전기차 판매 100만대 돌파의 ‘빛과 그림자’

미국의 전기차 판매 대수가 올해 10월 말 기준 120만대를 돌파했다. 이는 EV Adoption에서 예측한 올해 연간 판매 대수인 115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유럽자동차공업협회가 발표한 8월 말 기준 유럽전체 전기차 판매대수인 128만4920대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전기차 시장이 고속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전 세계시장에서 미국의 비중도 가늠해 볼 수 있다. 미국이 완전 전기자동차 누적 판매 100만대를 기록하는 데는 2011년 1·4분기부터 2020년 3·4분기까지 약 10년이 걸렸고, 200만대에 도달하는데도 2020년 4·4분기부터 2022년 2·4분기까지 약 2년이 소요됐다. 300만대 돌파까지는 2022년 3·4분기부터 2023년 3·4분기까지 1년 남짓이 걸렸다. 이를 감안할 때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본격적인 성장기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의 성장동력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부의 일관성 있는 정책추진과 테슬라(Tesla)를 중심으로 한 자동차 회사들의 시장확보 노력에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전임 트럼프 행정부와는 다르게 ‘세계 기후변화에 따른 친환경 자동차 정책’을 입안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전기차 구매 지원금, 세금감면, 전기차 충전기 설치 지원금 등 정책자금을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쏟아 붓고 있다. 특히 전기차 보급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충전설비다. 충전설비가 촘촘하게 설치될수록 전기차 충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 전기차 구매력이 상승한다. 올해 11월 말 현재 미국정부, 주정부, 전기회사 등에서 전기차 충전설비 지원금 규모가 615억달러(약 80조원)를 넘는다. 미국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이른바 ‘Green 뉴딜’ 정책을 펼치고 있고, 이를 통해 전기차 시장에서 세계 맹주자리를 굳히려 하고 있다. 그리고 Tesla를 중심으로 자동차 회사들이 다양한 전기차 모델을 시장에 선보이는 가운데 중가모델을 앞세워 전기차 시장 저변 확대를 꾀하고 있다. 올해 11월 말 기준 미국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전기차 모델은 배터리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량을 합쳐 83종에 달한다. 과거 데이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새 모델이 고급스러우면서도 가격은 점점 저렴해지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전기차 신차 구매에 지불된 평균가격은 16% 줄었다. 전기차 신차 가격은 2022년 6월에 정점을 찍은 후 올해 현재까지 6000달러 이상 하락했다. 여기에다 정부가 최대 7000달러까지 전기차 구매지원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신차의 절반을 전기차가 차지하도록 하겠다"는 바이든 행정부의 말이 현실로 이루어질 것 같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정적인 소식들도 나온다. 전기차 수요가 하락세로 전환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전기차 회사들이 투자를 철회하거나 연기한다는 것이다. 과연 미국 전기차 시장에 먹구름이 끼는 것일까? 미국의 올해 분기별 전기차 판매 증가율을 살펴보자. 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1·4분기 55%, 2·4분기 57%, 3·4분기는 63% 성장하면서 성장폭을 키웠다. 이 수치만으로 보면 미국 전기차 시장은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어둠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기차 수요 감소에 따른 전기차 회사들의 투자 철회 및 연기 결정 소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소식의 진원은 바로 GM과 Ford다. 그렇다면 왜 이 두 회사가 전기차 생산 시설에 대한 투자 철회를 하거나 연기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이 두 회사가 전기차 시장에 진입하면서 목표로 한 시장 점유율에 크게 못 미치는 성과를 낸 것이 주요인으로 보인다. 앞서 보았듯이 미국의 전기차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Tesla 대비 가격 등의 경쟁력이 없다 보니 두 회사의 시장 확보에 최소한 노란 불이 켜진 것이다. 물론 여기에 최근의 고금리 정책으로 고객의 구매력이 약화돼 성장률이 지금보다는 둔화될 것으로 보이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은 큰 빛이 비치는 상태에서 조그마한 그림자가 비치는 상황으로 보인다.조셉 김(Joseph KIM) 한미에너지협회 이사장

[EE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성공 조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이 중대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이 수립 중이기 때문이다. 전기본은 향후 15년 동안의 전력수급 기본방향과 전망, 전력설비계획, 전력수요관리 계획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국가 전력정책으로 2년마다 수립된다. 과거 5년마다 수립되던 ‘에너지기본계획’은 지난 정부에서 폐지됐고,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에 따른 계획은 분명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제11차 전기본에 대한 국민과 에너지 업계의 관심이 높은 이유다. 지난 정부때 시작해 현 정부에서 마무리한 제10차 전기본은 두 정부 간의 입장 차이가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표됐다. 특히 수요 예측, 전원 구성 등 세부 사항과 부족한 근거 자료에 대한 비판이 컸다. 제11차 전기본은 더 높은 완성도를 갖추고 국민적 공감을 얻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이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목표와 방향을 명확하게 밝히고, 최고의 데이터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에너지 환경 및 수요 변화, 에너지 기술의 발전을 예측해 확실한 정책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계획 수립 과정에서는 이해관계자 뿐 아니라 국민과도 적극적이고 투명한 소통을 통해 신뢰와 공감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정책은 환경, 안보, 산업, 기술 정책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므로 데이터와 과학을 기반으로 통합적인 관점에서 수립돼야 한다.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며 재생에너지 일변도의 에너지전환을 추진한 독일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경제성· 환경성(탄소중립)·안전성 등을 고려하고, 원자력과 신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무탄소 전원을 균형 있게 활용하겠다는 제10차 전기본의 기본방향은 적절했다. 전력망 보강과 전력시장 개편 등 전력수급기반 강화를 강조한 점도 타당했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방향이 실제 계획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으므로 제11차 계획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데이터들을 철저하게 수집하고 분석해 널리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수집되는 데이터 자체가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수집된 데이터를 검증하고 정리해 공유하는 체계도 부족하다. 이로 인해 에너지 전문가들조차 다른 분야를 피상적으로 이해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에너지 경제와 기술 분야 사이, 그리고 기술 분야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종 위원회에서 전문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이는 결국 이해관계의 충돌이나 특정 기관에서 마련한 초안을 부분적으로만 수정하는 수준의 부실한 계획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에너지 관련 데이터를 광범위하게 확보하고 공유해야 한다. 현재 여러 기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보고서와 일부 실시간 데이터가 있지만, 이는 충분하지 않다. 에너지 정보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기관을 지정하고, 각 기관의 비공개 데이터를 포함해 국가 에너지 정책 수립에 필요한 모든 데이터를 검증하고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국민과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최신 데이터 처리기술을 활용하면 데이터의 수집, 분석, 공개의 질과 양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계획 수립에서는 각 위원회에서 정책 방향을 정하고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렇지만 기초자료를 분석해 계획 초안과 근거자료를 마련하는 전문가 그룹 또는 기관의 실질적 역할이 더 중요한 경우도 많다. 이러한 기초자료 분석과 정책 초안 작성에는 에너지 경제, 에너지원 기술, 전력시스템 기술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해야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 전기연구원, 원자력연구원, 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이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협력 연구를 통해 데이터와 과학 기반의 에너지정책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제11차 전기본의 수립 과정을 우리 국민의 에너지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높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에너지 정책이 포퓰리즘에 좌우되거나 정권에 따라 춤을 춘다면 머지않아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정부와 전문기관들은 신뢰도와 가독성이 높은 에너지 관련 자료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공개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에너지 전문가와 소통 전문가들이 대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론 또한 다양한 강연과 지식 채널, TV 토론, 지상 토론 등을 통해 객관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에너지 문제는 우리와 우리 후손과 인류의 미래에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데이터와 과학에 기반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우리나라 에너지 백년대계의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장/ 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장

[EE칼럼]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대한 소회

12월 초 낮 기온이 20도까지 오르고, 동해안 지역에서 폭설과 폭우 특보가 동시에 발령되는 등 겨울철 이상 기후 징후가 뚜렷하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지난 3일에 145년만의 폭설로 항공편이 결항하고, 전 도시가 마비됐다. 파나마에서는 기후변화로 역대 최악의 가뭄이 지속되자 지난달 파나마 운하의 선박통행량을 감축을 결정했으며 내년부터는 40% 정도 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10년에 이르는 파나마 운하 운영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처럼 최근들어 전 지구적인 기후 위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하와이의 특정 지역에서 기후변화의 가장 중요한 지표인 이산화탄소(CO2)를 지속적으로 측정하는데, 가장 최근인 지난 7일에 420~425ppm으로 일년 전에 비해 2.5ppm 이상이 늘어나는 등 매우 우려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미 연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420ppm 대에 진입해 산업화 이전보다 50% 더 높은 수준이 됐고, 증가 속도나 내용이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이전까지의 NOAA 조사에서는 연간 2ppm을 넘는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가 3년 이상 연속으로 기록된 적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두려운 수치다. 이런 가운데 세계 각국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논의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가 지난 11월 30일부터 이달 12일까지 아랍에미리트에서 개최됐다. 이번 COP28은 기후변화와 관련해 그간 각국의 이행 내용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것을 주제로 한 모임으로 정상들의 모임은 12월2일 종료됐다. 이런 가운데 이번 모임의 주최국으로서 의장을 맡은 알자베르 의장이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화석연료의 단계적 감축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은 없다"고 말해 여러 단체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석탄화력발전 건설 중단 선언과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 확대라는 협약을 이끌어 낸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지구온난화 현황 분석 국제기구인 ‘글로벌 탄소 프로젝트(GCP)’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화석연료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23년 368억톤(t)으로, 2022년 배출량과 비교했을 때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화석연료로 인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23년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럽, 일부 등지에서는 화석연료로 인한 탄소 배출량이 줄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분석이다. COP28의 폐막일인 지난 12일 합의문을 앞두고 각국의 입장에 따라서 치열한 논의와 토론이 전개됐다. 이번 합의문은 "지극히 중요한 10년 동안 새로운 대응을 취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데 특히 화석연료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공동 선언 합의문에 채택될 화석연료와 관련된 부분은 현재 3~4가지의 다양한 안들이 검토됐는 데 이 같은 상황은 각국의 에너지 상황, 경제력, 산업구조가 나라마다 크게 달라 입장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또 화석연료 산업 비중이 큰 일부 국가는 화석연료 퇴출보다 화석연료를 쓰되 탄소포집 (Carbon Capture)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차와 배터리 관련 법안으로 알려진 미국의 IRA법과 관련하여 주목할 부분이 있는데 탄소포집 및 저장과 관련된 부분이다. 여기에는 이산화탄소의 포집, 저장, 활용 부문에서 실제적인 적용이 2033년까지 이루어지면 12년간 세제 해택을 주는 방식으로 대응하여 기술 주도권과 함께 탄소 저감 문제에 대응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올해도 화석연료 사용 폐지와 관련하여서는 각국의 복잡한 상황과 이해 문제로 원론적인 합의와 달리 구체적인 합의문 작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더라도 화석연료 폐지의 내용은 실제적으로 우리나라에는 상당한 압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필요한 에너지원이 제한된 우리나라의 경우에 국가 에너지망을 담당하는 발전 부문은 특히 그렇다. 아직까지 기저부하의 상당부분을 석탄에 의존하고, 첨두부하 상당 부분을 LNG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기본적인 탄소 중립을 위한 자발적 감축 노력에서 목표에 걸맞은 성과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 단기적으로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화석연료 퇴진을 위하여서도 이산화탄소 포집 및 지중 저장 중규모 국가 프로젝트에 유의미한 진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발전을 포함한 화석 연료 사용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 전반은 탄소국경세 도입이 이미 코 앞에 도래한 만큼 전 국가적 지속적인 관리와 검토가 필요하고 미래를 위한 산업 정책 확정과 지원을 위한 정부와 국회 차원의 논의와 합의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지금까지의 경제 운용 방식은 전지구적인 이산화탄소 관련 정책으로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운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우리의 경우에는 산업 부문 뿐 아니라 생활 전반이 영향을 받을 것 같다. 국민들은 성큼성큼 다가오는 상상을 넘는 고 에너지 비용의 시대를 감안할 때에 개개인들의 생활에서 에너지 효율 높은 제품의 사용에서 냉난방 효율 개선과 같이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절감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박기서 전 대기환경학회 부회장

[EE칼럼] 해외용 따로, 국내용 따로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진행 중이다. 이번 COP28에서는 198개 당사국 정부 및 지자체 대표단과 전문가 등 7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15년 파리 기후협약 이후 첫 이행점검을 수행했다. 때마침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열어 탄소중립 달성 촉진방안을 내놨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온실가스 배출허용총량 재조정을 통한 감축 경로 재조정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명시적으로 대외에 공표된 감축경로라는 게 있었던가? 2030년 목표에 맞춰 배출권 거래제의 허용총량을 맞추고 있음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3년 단위의 감축 추세와 관련된 대략적인 그림만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해외에서 감축하는 온실가스의 처리 방안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국내 계획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연히 목표치가 왔다 갔다 움직이니 2025년 이후부터 2030년까지의 경로도 미정일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지난 11월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상향안’과 관련해 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검증 체계나 감축 방안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내놔 산업계와 감축산업 현장에서 큰 혼란에 빠졌다. 기존 계획의 신뢰성과 향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다. 무리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이었고, 이제는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비공식적으로 주요 당국자나 관변 전문가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정책을 만드는 핵심 주도층이라는 점에서 가벼운 사적 견해로 보기가 힘들어 보인다. 어떤 방향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기에 앞서서, 그래도 대한민국의 선택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야 추후에 또 코리아는 ‘거짓말’만 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있지 않을까. 파리협정 당시 감축경로를 제시하지 않고 목표만 제시해 이미 국제협상 자리에서 여러 유럽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들었던 우리나라다. 해외 크레딧을 일시적으로 구입해 매꿔서 2030년 감축 목표만 어떻게든 맞추겠다는 말은,2031년에는 다시 원상복구될 수도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장기 목표를 믿고 관련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업자들의 금전적 손실은 어찌할 것인가. 정책의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은 사업에 있어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그렇지만 이와 관련한 신뢰관계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진 지 오래이다. 사상 최저치를 바라보는 배출권 가격이 이를 방증한다. 왜냐하면 국제사회에선 체면치레 든 뭐든 야심차게 스스로 공언했던 약속들을, 국내에서는 책임을 부인하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온실가스 감축관련 전세계 시민단체들은 한국의 진정성에 대해 맹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관련 인사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양새다. 못하겠으면 비난을 좀 받더라도 중국처럼 206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하겠다는 그룹에 들어가든가, 그것도 아니면 ‘2070 그룹’을 하나 만들든가 능력에 맞게 솔직하게 가야할 거 같은데 말이다. 파리협약에서의 ‘후퇴금지 원칙’ 때문에 국제사회에선 또 그럴 순 없고, 그러니 계속 국내용과 해외용 입장이 따로 노는 것이다. 올해 GOP28에도 여지없이 정당 및 정부 관계자, 기업, 공공기관, 연구단체,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줄줄이 참석했다. 직접 기후변화 관련 협상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엄청난 인원이 참석했다. 최소한 한국인 참석자들만이라도 어떤 방향이든 공감대를 형성하고 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 세대 간 형평성의 문제로 이어지는 에너지 요금

지난달 초 대기업과 중견기업용 전기요금만 ㎾h(킬로와트시)당 10.6원 올랐다. 가정용과 식당·상점 등 소상공인용, 중소기업용은 동결하였다. 10여년전 이라면 잘한 결정이라 칭찬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 등 에너지 공기업의 누적된 적자와 미수금 뉴스가 연일 보도되면서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일반 기업이었으면 벌써 부도가 났을 상황인데 정부가 세금으로 망하지는 않게 하겠지. 지금 세대가 나눠서 감당하지 않으면 쌓인 빚은 고스란히 다음세대로 부담이 전가될 수 밖에 없을텐데…’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결정에 누가 동의를 했다고 할 것인가. 그래서 물가와 서민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했다는 정부의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파리협약이 제시한 지구평균기온 1.5도를 제한하려면 글로벌이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해야 한다. 올해 나온 미국의 제5차 국가기후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 태어난 세대는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 보다 기후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 세대 간 기후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언급한다. IPCC 6차 보고서는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얼마나 더 덥고 다른 세계를 경험하게 될 지는 현재와 단기 미래에 우리가 하는 선택에 달려 있다고 전한다. 지금 당장 효과적이고 공평한 기후행동을 주류화하면 자연과 인류의 손실과 피해를 줄일 수 있고, 실행가능하고 효과적인 방안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핵심메세지다. 그리고 효과적인 기후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정치적 책임을 첫 번째로 꼽는다. 원료비에 연동되어 결정되는 에너지 요금 결정 구조는 깨어진지 오래다.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 유지를 위해 동결된 에너지 요금은 이번 정부 물가 안정으로 이어지며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있다. 정치권에서 에너지 공기업을 상대로 자구책 마련과 혁신을 요구하는 것은 시민들 눈높이에서 지극히 옳다. 그간 한국전력공사가 정부에 기대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에너지 신산업 발전에 발목을 잡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권은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해 에너지 요금의 인상도 결정했어야 한다. 기후우울증까지 겪는 미래세대에 정치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글로벌 선진국들이 기후대응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며 새로운 일자리에 투자하고 있고, 이러한 움직임에는 탄탄한 예산이 뒷받침되어 있다. 현 세대로부터 합당한 에너지 요금을 걷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저탄소 산업에 투자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실현가능한’ 약속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 이상을 수입하는데 국민들의 에너지에 대한 위기감은 전반적으로 낮은 편이다. 국내에너지기구 21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8번째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GDP 대비 에너지 소비량인 에너지 원단위도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35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에너지 원단위는 에너지효율을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되는데, 에너지 원단위가 높다는 것은 단위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데 에너지를 더 많이 쓴다는 의미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마치 산유국처럼 에너지를 많이 쓰고 마구 쓰는 나라다. 이렇게 된 주된 요인은 정치적 이유로 오랜 기간 인상을 눌러 온 전기요금 때문이다. 낮은 전기요금은 기업들의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술투자를 유인하지 못했다. 국민들 역시 마찬가지로 한여름 냉방에 실내에서 긴팔을 걸치고, 한겨울 내복대신 과도한 난방으로 집안에서 반팔을 입는다. 상점에서 호객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문 열고 냉방을 하고, 시내의 랜드마크 건물의 조명은 갈수록 화려해지고 있다. 기후대응은 전 국민의 동참없이는 어렵다 누구나 얘기하고 있지만, ‘에너지를 마음껏 쓰세요’라고 말하는 전기요금으로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4월 청년들의 모임인 ‘클리마투스 컬리지’는 에너지 요금 정상화를 위해 2030세대 1000여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 기획재정부 장관 앞으로 의견서 전달한 바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원료비에 따른 전기, 가스 요금을 책정해 기업과 소비자가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내 기후행동의 시작은 에너지 요금 정상화에 달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EE칼럼] 벼랑 끝 한전 구하기

지난 달 전기요금이 인상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비자는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사업용 전기요금만 kWh당 평균 10.6원 인상됐기 때문이다. 한전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인상폭이다. 연명을 위한 산소호흡기를 댄 정도다. 실제로 정부와 한전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발표 당시 "채권발행 한도를 고려해 인상폭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누적된 적자와 부채 해결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빚을 돌려 막으며 시간 벌기용 인상만이 목적이라는 것을 고백한 셈이다. 결국 이번에도 전기요금이 정치에 굴복했다. 발전원가에 한참 못 미치는 가정용 전기요금은 손도 대지 못하고, 대기업용 전기요금만 올린 것이 증거다. 민생경제의 어려움도 고려했겠지만, 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거를 의식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 한전의 골병은 깊어만 간다. 이제 빚내서 돌려 막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한전채 발행금액이 한전법이 정한 한도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자본적립금의 5배까지로 설정된 한전채 발행한도가 영업적자 누적으로 자본적립금이 줄어들면서, 현재 104조6000억 원에서 내년에는 70조원 안팎으로 쪼그라들 것이 확실시 된다. 현재 발행액이 거의 80조원 정도이기 때문에 발행한도를 확대하지 않으면 한전은 바로 생사기로의 벼랑 끝에 내몰린다. 한전채 발행한도를 의식한 자금조달은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금리 조건에서 불리한 은행 대출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레고랜드 사태로 대규모 한전채 발행이 회사채 시장을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를 줄이기 위해 은행 대출을 늘린 것도 이유가 되지만, 작년보다 20% 늘어난 은행 대출은 아무래도 한전채 발행한도를 의식한 조치라고 해석할 수 있다.한전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과거에 한번도 쓰지 않았던 무리수까지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전은 정관에도 없는 발전자회사의 중간배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중간배당은 주주친화적 경영의 일환으로 일부 기업이 실시하고 있으나, 사실상 한전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유일한 주주인 발전공기업은 중간배당을 실시할 이유가 크지 않다. 중간배당의 가능여부도 불확실하다. 발전자회사는 이미 낮은 정산조정계수를 적용받고 있어 실적이 저조한 상태에서 중간배당까지 하면 결손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간배당으로 발전자회사의 장기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수원의 재정 악화는 대규모 자금의 조달 비용을 올려 신규 원전 건설, 원전 수출 등을 어렵게 할 수 있다. 기업이 위기에 빠지면 보통 최대주주가 발 벗고 나선다. 유상증자와 같은 최대주주의 출자도 검토된다. 유통 주식 수 증가에 의한 주가하락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적자 기업에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최대 주주의 출자는 시장에 긍정적일 수 있다. 한전의 최대 주주는 산업은행과 정부로 각각 32.9%, 18.2%의 지분을 갖고 있다. 산은도 정부가 100% 출자한 국책은행이기 때문에 한전의 사실상 최대주주는 정부다. 벼랑 끝 한전을 구해내야 한다. 한전법 4조에 따라 한전의 자본금을 최대 6조 원까지 늘릴 수 있다. 현재 자본금은 3조2000억원 정도로 출자할 공간이 남아 있다. 한전 자본금 수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재정여력이 부족한 현실이 야속하다. 지난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을 비판하는 이유를 여기서도 찾게 된다. 하지만 현실을 탓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한전의 위기는 에너지산업 전체를 궁지로 몰아넣으며 한국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중대사라는 점에서 비상한 방법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궁극적인 해결방안은 전기요금 인상이다. 그리고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전기요금을 정치에서 떼어내야 한다. "전기요금도 금통위 같은 독립된 기관에서 연료비 원가에 연동해 결정하는 것이 어떤 정부가 됐든 국정운영 부담도 덜고 국민 수용성도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라는 한전 사장의 말에 귀 기울일 때가 됐다.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EE칼럼] 전력수급기본계획, 시나리오별 아웃룩으로 개편해야

전력수급기본계획(전력계획)의 목적은 이름에 나온 것처럼 전력의 수요와 공급을 잘 맞춰보자는 것이 핵심이다. 전기사업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전기사업법 제25조 제1항에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전력수급의 안정을 위하여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전력수급의 안정이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 전기사업법 제25조 제7항에는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기본계획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제8조에 따른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부합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정도의 규정으로는 꼭 지키지 않더라도 ‘노력’만 하면 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 제5항을 보면 ‘노력’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이 다음 각호의 계획을 수립·변경할 때에는 온실가스 중장기 감축목표 등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제2호에 전력계획을 명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도대체 전력계획을 수립할 때 전력수급 안정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부합하도록 해야 하는가? 문제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분명하게 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전력수급 안정이란 말은 다소 모호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맞는 계획을 입안하고 전력수급 안정이란 목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안 하는 것이 속 편할 수 있다. 담당 정부부처의 입장에서 실무적 목적은 다를 수 있다. 한전의 내부 계획이었던 ‘전원개발계획’을 전기사업법에 규정해야 했던 이유는 전력계획에서 명시된 설비계획을 근거로 발전설비에 대한 건설허가를 내리고 원전 등 발전설비와 관련된 복잡하고 다양한 허가를 ‘전원개발에 대한 특례법’을 통해 일괄적으로 의제처리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점에서 정부 입장에서 전력계획을 수립하는 실용적인 목적은 사실상 발전설비에 대한 건설허가를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력계획은 2년마다 수립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2년 후에 다시 세우고 바꾸게 될 계획을 뭐하러 조급하게 2년마다 수립하는가? 그 이유는 2년 사이에 새로운 발전설비의 건설허가를 내줘야 발전설비가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건설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착공을 해야 발전설비가 몇 년 후에 속속 준공되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은 2년 후의 일은 급하지 않다. 당장 재임기간 동안 발전설비를 착공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전력계획의 결론으로 정부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설비건설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설비건설이라는 정부의 실질적 목적은 사실상 발전량을 토대로 파악하는 전력수급의 안정과는 크게 동떨어질 수도 있다. 지난 10차 계획에서 2030년에 발전량 23%를 담당하던 LNG를 불과 6년 후에 9%로 줄여버렸다. LNG 설비는 그럴듯하게 건설한다고 계획하더라도 수익성이 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하는 LNG 발전설비를 누가 건설할지까지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이런 수준의 LNG 발전량은 LNG 장기계약 물량을 적게 잡도록 하는 셈이어서 수요 증가시 LNG 스팟물량을 추가시켜 국내 천연가스 소매가격과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된다. 지금까지 정부는 이 목적, 저 목적에 맞추기 위해 곡예를 해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질적 목적인 수급안정,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충 아젠더의 제시, 탈원전(또는 그 반대로 원전 확충), 그리고 실무적 목적인 설비건설 계획의 확정 등 여러 목적을 어떻게 포장하고, 그 실질적 효과를 어떻게 거둬야 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이제 정부는 솔직해져야 한다. 전력계획을 시나리오별 아웃룩(outlook)으로 바꿔서 다양한 목표와 함께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를 병행해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하고 솔직한 게임을 하는 것이 낫다.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E칼럼] 1980년대 수준 못벗어나는 에너지효율화시스템

21세기 들어 정보통신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우리는 생활 여러 분야에서 스마트한 혁신을 맛보고 또 즐기고 있다. 휴대폰은 우리의 스마트한 생활을 이끄는 대표적인 기기로 통신과 자료검색은 물론이고 카메라나 리모컨 같은 다른 전자기기의 역할도 하고 더 나가 금융 거래와 최첨단 AI 기능까지 모두 탑재해 다음 단계로의 혁신을 이끌어가려 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통신 분야의 혁신과 발전은 다른 분야로 전파되어 사회 전체의 혁신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에너지 분야는 이제 더 이상 그렇지 못한 것 같다. 1980년대 에너지산업은 우리나라의 혁신을 앞서서 이끌었다. 막 석유위기를 넘어선 당시, 우리나라는 전력망 건설 및 관리체계를 완성해 건국 후 처음으로 전국 어딜 가나 TV, 냉장고 등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00%가 넘는 전기보급률과 0%에 가까운 정전발생률 덕분에 선진국보다도 좋은 전기를 정전 걱정없이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다 천연가스의 도입으로 연탄난방 시대를 끝내고 보다 편안한 겨울을 나게 되었다. 도시가스, 열병합발전 등 당시 개발된 난방시스템은 지금도 신도시와 고층아파트에 사용되며 밤중에 연탄을 가는 수고없이 따스한 겨울을 지낸다. 천연가스는 버스의 연료로도 사용되며 도시의 매연가스를 줄여 생활 편의를 크게 높여주었다. 이렇듯 1980년대에 일어난 전기 및 천연가스의 사용은 편안하고 청정한 생활을 가능하게 한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반면 정보통신산업은 아직 전화기의 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정보통신산업은 민간의 대형투자와 혁신적인 기술개발로 CDMA에서 5G에 이르는 무선통신 개발, 디지털화, 서비스 다양화 등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이에 비해 에너지산업은 제자리에 머무르며 혁신 속도도 후퇴하고 있다. 게다가 정보통신 분야의 혁신과 발전을 전달받아 에너지 분야에 적용하는 것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서비스 다양화의 부재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정보통신산업과 달리 서비스라는 게 달랑 ‘전기’ 하나 뿐이다. 전국 곳곳에 설치된 전력망을 활용한 부가서비스가 전혀 없다. 정보통신 분야의 다양한 요금제나 편리한 서비스 등은 그림의 떡이다. 한마디로 소비자는 스마트한 행동을 할 수 없고, 단지 더 쓰고 돈 많이 내거나 아니면 덜 쓰고 덜 내거나의 두 가지의 선택만이 가능하다. 겨울철 난방이나 여름 냉방 수요 급증으로 인한 에너지 효율화 수단에서도 1980년대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 등 끄기, 냉난방 온도 제한, 차량 10부제 등 클래식한 방법들 말이다. 첨단기술을 사용해 에너지소비를 스마트하게 개선하는 방법은 없을까? 독일은 21기 들어 LEEN(Learning Energy Efficiency Network) 사업을 적극 펼쳤다. 지역별로 기업들이 모여 에너지절약을 위한 유한회사를 만들고 이들을 지방정부와 대학, 연구기관이 지원하는 참여형의 자율형 에너지효율개선제도이다. 2002년 시작해 현재까지 1000여개 기업이 혜택을 보고 있다. 이 방식은 무엇보다 지역 중소기업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게 한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원하는 정보의 공유를 통해 문제를 해소하는 정보분석 및 정보서비스 사업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독일의 지방 중소기업들은 자신들의 소비패턴이 반영된 스마트한 에너지소비가 가능해졌으며 이로 인하여 고용증대는 물론 독일 제조업의 국제적 경쟁력이 향상되었다. 스마트한 소비와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함께 유도한 스마트한 정책이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스마트 소비를 시행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아직 미미하다. 다양한 요금제도와 수요자에 맞춘 서비스 공급이 없기 때문이다. 휴대폰 사용 요금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고 휴대폰에서 직접 변경이 가능하다. 빅 데이터로 적절한 요금제도를 추천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기 등 에너지 요금은 실시간으로 알 수 없으며 요금제도 옵션이 없다. 이건 전기나 가스요금을 올리는 것과 무관하게 시행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기술들이 에너지 분야의 혁신을 이루어내는 것만이라도 북돋아 주면 한다. 이렇게해서 국민과 기업들이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스마트한 에너지 수요관리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기고] 도시가스산업에 대한 오해와 이해

우리나라 가구의 85%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도시가스는 전기와 함께 주요 범용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편리하게 경제적으로 도시가스를 사용하면서도 도시가스와 도시가스산업에 대한 인식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고 오해가 많은 점이 이채롭다. 이하에서는 도시가스와 도시가스산업에 대한 오해의 관점을 살펴보고 소비자들의 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첫째, 오해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도시가스를 전력과 같이 국가 또는 공기업이 공급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일반도시가스사업자는 명명백백 사기업이다. 도시가스사업법에 따라 허가를 받은 34개 민간 기업에 의해 공급되고 있다. 다만 해외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해서 도시가스회사까지 공급해 주는 도입 및 전국배관망 공급사업은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가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둘째, 도시가스를 공공재(public goods)로 인식하는 오해이다. 공공재는 국방이나 치안, 도로, 항만 등과 같이 시장원리에 의한 공급과 가격이 결정되면 시장의 실패 등 민간이 공급하기에 한계가 있고, 대체가 불가능한 재화이다. 즉, 소비의 비경합성과 비경제성을 특징으로 하는 재화이다. 반면 도시가스는 민간기업에 의해 40년 이상 공급되고 있는 경쟁적이고 대체가능한 에너지이다. 전력과 경합하며 지역난방과 치열하게 경쟁한다. 따라서 도시가스는 공공재가 아니며,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시장에서 거래되는 사적 재화이다. 셋째, 국제 천연가스시장에서 천연가스 가격이 올라가면 도시가스회사의 이익이 대폭 늘어난다는 오해이다. 도시가스요금 결정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소비자들의 오해는 말끔히 불식될 수 있다. 도시가스는 소비자요금의 약 90% 정도가 도매사업자인 한국가스공사의 원료비와 공급비용 및 세금으로 구성된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원료비만 인상되는 것이지 도시가스사의 추가 이익은 발생하지 않는다. 10%에 불과한 도시가스사의 공급비용은 지방공공요금으로 분류되어 지자체에서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도시가스사의 이익은 사업자가 투자한 자본에 대한 투자보수만큼만 가질 수 있는 구조이다. 이는 도시가스사의 영업이익이 1~2%에 불과한 이유이다. 최근 15년간 도시가스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의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가 0.17에 불과한 점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넷째, 도시가스는 위험하고 전기는 안전하다는 인식도 많지만, 도시가스가 전기보다 휠씬 안전하다고 본다. 최근 10년간 정부 통계를 살펴보면, 전기사고 사망자가 도시가스 사고 사망자 보다 17배 많고, 사고 건수도 전기가 수십 배 많다. 어떤 에너지든지 소비자가 스스로 안전수칙을 지키고 사용하는 점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도시가스를 사용하면 유해 물질이 나온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고등어 파동으로 촉발된 유해 물질 논쟁은 전기레인지나 가스레인지 모두 조리 과정에서 미세먼지 등이 발생하는 것이지, 에너지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전기레인지 판매사업자들의 얄팍한 상술에 불과한 과대·허위광고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미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에너지복지 포퓰리즘의 확대 요구는 도시가스를 정부가 공급하는 공공재라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공공재적 성격은 있으나 엄연히 사적 재화인 도시가스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거나 최소한의 규제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천연가스는 현존하는 에너지원 중 안전하고 가장 청정한 화석 에너지임에도 불구하고 전전화(全電化)의 미명 아래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에너지로 낙인되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의 가교 역할에 가장 충실한 천연가스의 역할을 과소평가 한다면 탄소중립은 요원할 것이다. 천연가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지금부터라도 바르게 정립되길 바란다.정희용

[EE칼럼] CCUS, 화석연료 퇴출의

르네상스시대 이후 과학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은 사물을 다루는 기술을 진보시켰고, 새로운 소재와 기계는 현대 산업 문명의 토대가 돼 21세기 80억 인류를 부양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곧바로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진전이나 아이디어는 상당 시간 동안 숙성되고 검증되어야 우리의 일상생활에 함께 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은 이러한 기술의 성숙도를 9개의 단계로 나눈다. 하나의 기술은 기초연구단계(기초 이론·실험:개념 정리)에서 시작해 실험단계(기본 성능 검증: 소재·부품·시스템 성능 검증)와 시작품단계(시작품 제작 및 성능 평가 : 파일롯 규모의 시작품 제작 및 평가), 실용화 단계(신뢰성 평가 및 수요기업 평가 : 시제품 인증 및 표준화)를 거쳐야 비로소 마지막 단계인 양산 및 사업화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그 기간은 수년에서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지만 상당수가 중간의 어느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사장되기 일쑤다. 개발자나 이해관계자는 사업화를 위한 투자를 받기 위해 개념 정리 단계에서부터 그 효과와 이익을 홍보하지만 실제 사업화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첩첩산중을 넘어야 한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28)에 즈음해 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CCUS) 세일즈가 한창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파리협정 이행 점검을 비롯해 ‘손실과 피해기금’의 조성이 중점 논의되지만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합의될지도 관심을 끈다. 이미 G7 정상회의에서는 이번 세기 안에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산유국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총회의 의장을 아랍에미리트 국영석유회사의 CEO 술탄 알 자베르가 맡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우리는 화석연료 배출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동시에 실행 가능한 탈탄소 대안을 추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탄소를 줄이는 CCUS를 강조한 바 있다. CCUS는 화석연료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따로 모아 깊은 땅속에 파묻거나 다른 유용한 물질로 변환해 활용하는 기술이다. 이론상 온실가스를 배출해도 처리할 수 있으니 화석연료의 사용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산유국을 비롯해 기후위기를 과소평가하는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과학기술이다. 그동안 각국은 CCUS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왔고 탄소 포집에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모은 이산화탄소를 처리하는 방법이다. 처음에는 땅속 지하수 층이나 폐 유전·가스전 등에 파묻는 방법이 모색됐다. 그러나 삽입 후 다시 새어 나오지 않도록 관리하는 문제와 모은 이산화탄소를 이송하기 위해 파이프를 설치해야 하는 문제 등으로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산화탄소를 재활용하는 방법에는 폴리카보네이트 같은 화학물질로 변환하는 방법과 메탄올 등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방법, 칼슘염이나 마그네슘염 등과 반응시켜 광물질로 변환하는 방법 등이 연구되고 있다. 하지만 화학공업의 원료로 사용한다고 해도 그 사용량이 온실가스 배출량의 10%에도 이르지 못하며,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미생물의 발견과 반응속도의 제고 등에 한계가 있다. 화학적 방법으로 메탄올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다량의 수소가 필요한데, 현재 수소를 생산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화석연료인 천연가스를 개질하는 방법이다. 이때는 수소만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도 발생하기 때문에 모순에 빠진다. 또 탄산염 광물질로 바꾸는 방법은 그 물질의 활용을 찾지 못하면 또 다른 폐기물이 양산된다는 문제가 있다. 현재 CCUS의 기술성숙도는 실험단계에 머물러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과학기술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5단계 이상의 진전을 이뤄야 하며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에너지전환을 위한 글로벌 씽크탱크인 에너지전환위원회(ETC)는 지난달 발간한 ‘에너지전환에서의 화석연료’ 보고서에서 CCUS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낙관을 경계했다. ETC는 2022년 보고서에서 "CCUS는 고비용의 기술이지만 이에 대한 투자 확대로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 비용이 낮아지고 설비가 증설된다면 탄소 감축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전망했으나 올해 보고서에서는 "탄소포집 기술을 활용하면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해도 기후변화를 악화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위험한 망상(dangerous delusion)’"이라고 일침했다. 그런 만큼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3배로 확대’하겠다는 지난 9월의 G20정상 합의가 더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임을 상기해야 한다.신동한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이사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