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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미국과 관세협상 타결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들과 합의한 글로벌 관세협정의 개요를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일본, EU와 미국과의 관세협정 조건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인다. 1일 이후에는 직접적 협상이 진전되지 않은 국가들은 추후 미국 통보로 자동 결정된단다. 이는 '협력과 공존- 번영'을 기축 이념으로 하는 2차 대전 이후 세계질서 기본'틀'인 '브레튼우즈' 체제의 점진적 종말을 의미한다. 사실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金兌換) 중단 선언(닉슨 쇼크)으로 이 체제 붕괴는 시작하였다. 주요국 환율을 유동화와 70 – 80년대 석유파동, 그리고 '코로나 판데믹'사태에 따라 더욱 쇠잔해 졌다. 미국 일방적 관세와 시장개방 압력에다 투자 강요는 쇠잔한 '브레튼우즈' 체제 종말을 재촉하는 것 같다. 따라서 새로운 국제공영의 '틀' 마련의 필요성과 시급성을 촉구하는 글로벌 움직임이 강하다. 현재 미국 내 일부 지식인 계층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압적인 '하드(hard)파워'에 집착하면서 그동안 미국의 국력과 국제적 영향력의 기반인 '소프트(soft)파워' 약화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국제정치학에서는 국가의 힘을 군사력, 경제력 등을 강조하는 '하드파워'와 문화, 가치, 이념, 정책 등을 강조하는 '소프트파워'로 구분한다. 민주주의, 인권, 개방성과 같은 '소프트' 요소들이 '미국의 힘'의 원천이라는 의견이 많다. 세계화와 글로벌 상호의존성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이해 부족을 우려한다. 이같은 미국의 글로벌 관세/투자정책 변화가 우리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우선 국제유가는 미국의 일방적 관세 부과의 영향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지난 29일(현지시간)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 9월물은 전 거래일 대비 3.77달러 하락한 배럴당 69달러 수준을 기록하였다. 런던시장에서 9월물 '브렌트'유는 오른 72달러로 수준이다. 1년 전보다 미국과 영국 시장에서 다 같이 10%쯤 하락하였다. 이들 시장은 미-일 무역 합의에 따른 세계경기 회복기대와 서방의 러시아 제재 강화 움직임으로 약간의 강세장 성격을 보이나 완전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관심 사항은 국제유가 수준 오르내림이 아니다. 그보다도 중동, 러시아 등 산유국들(속칭 OPEC+)의 반응과 전략변화일 것이다. 글로벌 관세 부과는 OPEC+ 등 주요 산유국 (특히 중동지역)들에게 정부 세수확보와 지역 안정에 저해요소일 것이다. 특히 OPEC+는 감산전략을 포기하고 2025년 말 220만 배럴/일 수준의 증산을 결정하였다. 이에 석유 시장은 가격 인상보다 시장 점유율 확보 경쟁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할 점은 중동의 아시아 에너지 시장에 대한 큰 관심이다. 그들은 증가하는 동-아시아 상호의존성 증대에 따라 양측 모두의 경기 침체를 우려하고 있다. 이제 걸프 산유국들은 아시아 석유 시장 예의주시가 중요과제가 되었다. 단기적인 측면에서 국제유가는 당분간 안정적일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독선적 정책이 에너지 부문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미미한 것 같다. 여기서 미국과 일본의 관세협정 타결을 보고 우리 입장을 살펴보자. 미국은 전통적으로 우리보다 일본을 중시해 왔다. 따라서 냉정하게 우리 입장을 재검토하고 차선의 대책 마련에 냉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품 수출 비중은 36.7%로 G20 국가 중 1위이고, 일본(17.0%)보다 배 이상 높다. 더욱이 2023년 한국의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6%로 OECD 두 번째이다. 따라서 관세협정이 제조업 성장, 고용 등에 즉각적으로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여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품 수출 비중은 36.7%로 G20 국가 중 1위이다. 일본(17.0%)보다 배 이상 높다. 이러니 수출기업 10곳 중 9곳(92%)은 '상호관세 15% 이상이면 감내가 어렵단다.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민간주도 대규모 미국투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우리도 조선, LNG(액화천연가스) 등 미국이 필요로 하는 전략산업 진출도 고려해야 한다. 협상과정에서 '마스가(MASGA;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라는 조선업 협력 프로젝트 제안이 데표적이다. 금융 '패키지' 제공 위주의 여타국과는 달리 현지 생산시설에 직접투자(그린필드형) 형태로 실질적 산업육성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이는 우리만이 인력 양성, 기술 이전, 조선소 건설 및 운영까지 실질적인 미국의 조선업 재건추진이 가능하다. 이런 우리 고유의 협력모델 발굴이 긴요하다. 관세협상의 마무리됐지만 국토정보 등도 적정 수준 개방 검토는 고려해야 한다. 전임 '바이든 정부'때의 '인플레 감축법(IRA)'에 의한 대미 투자실적의 적정 반영을 위한 교섭도 필요하다. 국방비와 연계수준도 냉정히 처리해야 한다. 결국, 경제 논리를 벗어난 '힘'에 의한 관세협정, 투자 강압 등 '거악(巨惡)'이 판치는 세상에서 '고식적' 시장실패 보정 노력만을 오래 해온 에너지 부문은 '힘없는 잔챙이'가 된 것 같다. 그래도 석유 위기 방지와 같은 우리 할 일은 꾸준히 해야 한다. 거악들은 언젠가 없어질 것이니까. 최기련

[EE칼럼] 에너지 없이는 AI도 없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7월 23일 'AI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이 행동계획은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혁신 가속화, AI 인프라 건설, 외교안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총 90개의 조치를 제시했다. 특히 GW급의 초대형 데이터센터와 풍부한 전력이 AI 시대 미국의 경쟁력의 근간임을 강조하면서, 막대한 AI 데이터센터와 이를 구동할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석유 개발을 강조하며 “드릴, 베이비, 드릴"을 내세운 미국은 이제 “빌드, 베이비, 빌드(Build, Baby, Build)"를 외치며 AI 인프라 구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I는 연구소 수준을 넘어 수조 달러의 시가총액과 벤처 캐피털이 몰려드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S&P 500에 상장된 AI 관련 기업의 시가총액은 2022년 이래로 약 12조 달러 증가했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글로벌 투자는 2022년 이후 거의 두 배로 늘어나 2024년에 5천억 달러에 달했다. 이러한 투자 붐으로 인해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 산업이 더 성장하려면 얼마나 많은 전기가 필요할까? 일반적인 AI 데이터센터는 10만 가구가 소비하는 전력량에 맞먹는 전력을 소비하지만, 현재 건설 중인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는 이보다 20배나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AI 데이터센터는 알루미늄 제련소와 같은 전력 집약적인 공장만큼이나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데이터센터는 2024년 전 세계 전력 소비량의 약 1.5%(415TWh)를 차지했다. 미국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의 45%를 차지했으며, 중국(25%)과 유럽(15%)이 뒤를 이었다.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량은 2030년까지 두 배 이상 증가하여 약 945TWh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재 일본의 총 전력 소비량을 넘는 수치이다.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충족에는 재생에너지와 천연가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분의 절반은 재생에너지로 충당된다. 재생에너지는 짧은 설치기간, 경제적 경쟁력, 기업의 RE100과 같은 전력 조달전략 때문에 2035년까지 데이터센터 수요 충족을 위해 450TWh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미 여러 국가의 전력망이 부족 상태에 놓여 있다. 이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으면 계획된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의 약 20%가 지연될 위험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새로운 송전선 건설에 일반적으로 4~8년이 소요되며, 변압기, 케이블과 같은 핵심 전력설비의 납품 기간이 지난 3년간 두 배 증가했다. 발전 설비에 대한 수요 역시 크게 늘어, 가스터빈 납품에 수년이 걸려, 신규 설비는 2030년 이후로 가동이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미국은 에너지 정책을 AI를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정책과 AI 전략을 별개가 아닌, 연결된 문제로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할 때이다. AI가 몰고 올 전력 수요 폭증에 어떻게 대응할지, AI를 활용해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전략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 첫째, 전력망과 재생에너지 여건이 양호한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도권에 데이터센터가 몰려 있지만, 수도권은 전력 공급 여력이 부족하다. 반면,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량이 많은 지역은 충분한 여유가 있다. 청정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설치하면, 전력망 인프라 구축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 동시에 글로벌 기업이 요구하는 RE100 기준도 충족할 수 있다. 둘째,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한다. 여러 대의 독립적인 서버를 하나의 물리적 서버로 통합하면 에너지 비용을 10%~40% 절감할 수 있다. 가동이 중단된 서버를 폐기하고, 불필요한 데이터를 정리해야 한다. 그 밖에도 고효율 서버, 외기 냉각시스템, 에너지 절약형 설계와 같은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화는 단지 비용 절감 차원이 아니라, 전력망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는 사회적 비용 감소 전략이기도 하다. 셋째, AI를 재생에너지를 더 잘 쓸 수 있고, 에너지 소비를 줄이며, 전력망을 더 똑똑하게 만드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는 바람과 햇빛의 변화를 미리 감지하여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게 도와준다. 공장에서는 에너지 사용 패턴을 분석해 낭비를 줄여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전력망에서는 갑작스런 수요 급증을 미리 감지하고 대처할 수 있게 한다. 에너지 없이는 AI도 없다. 지금은 AI의 성능이나 편리함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에너지가 AI 시대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AI 산업을 기회로 삼아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체계를 빠르게 확장하는 국가는 경제·기후·기술 세 분야에서 모두 앞서 나갈 수 있다. 박성우

[EE칼럼] 이제 한전 이사회는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요식절차가 아니다.

전기요금을 인상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전기요금 인상안을 한전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주무부서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신청하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를 기획재정부와 협의한 후 전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업통상자원부가 전기요금 인상안을 인가한 후 한전이 공고하고 시행한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절차다. 실제로는 어떻게 운용되는가? 한전 관계자가 산업통상자원부 담당 공무원에게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과 그 수준에 대한 한전의 의견을 전달하면 이를 두고 산업통상자원부는 기획재정부와 협의하는데 전기요금처럼 중요한 공공요금은 사실상 대통령실에서 검토하여 인상 여부와 그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이처럼 정부 부서끼리 긴밀한(?) 협의를 마친 후 이를 한전에 알려주면 한전은 이렇게 정해진 전기요금 인상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이사회를 소집하고 이를 의결한 후 위와 같은 절차를 형식적으로 거쳐 시행한다. 결국 한전 이사회는 전기요금 인상을 주도하는 기관이 아니다. 요식행위의 주체만 될 뿐이다. 이명박 정부 후반인 2011년 8월 한전 주주들은 2조8천억 원 규모의 배임 손해배상소송을 당시 김쌍수 한전 사장에게 제기하였다. 김사장은 사표를 던졌다. 임기만료 1주일 전이었다. 당시 정부 내에서 비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4.9%로 전기요금 인상안이 확정되어 한전 이사회가 4.9%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의결주문으로 내어 의결되었다. 그러나 한전의 재무상태로는 최소한 10% 이상 전기요금 인상안을 제출했어야 했다는 것이 주주들의 소송 이유다. 형식적인 절차와 서류상으로는 이렇게 작은 폭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된 책임은 한전에 있고 정부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전 주주들은 4년간의 소송전 끝에 대법원에서 패소하였다. 그런데 이제 변수가 생겼다. 지난 7월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제 상장된 공기업인 한전과 가스공사의 경우 대주주인 정부 이외의 소액주주 이해를 이사회가 무시해도 배임소송에 휘말릴 수 있게 된다. 상법이 바뀌어서 이제는 이사진을 견제하는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2011년 9월 공석이던 한전 사장으로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이 임명됐다. 김중겸 사장의 주도로 2011년 11월 한전 이사회는 10%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와 협의 없이 가결해 버렸다. 한전 이사회의 쿠데타였다. 전기위원회는 이를 인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전 이사회는 2012년 5월 13.1%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가결했다. 전기위원회는 이를 다시 반려했다. 한전 이사회도 별수 없이 2012년 8월 4.9% 소폭 인상안을 가결해 전기위원회의 인가를 받았다. 정부와 한전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김중겸 사장은 결국 2012년 11월 사퇴했다. 이제 한전 이사회는 전기요금 인상을 위한 요식절차가 아니다. 이사들이 주주들에게 배임소송을 당하지 않으려면 충분하지 못한 전기요금 인상안은 부결해야 한다. 한전의 부채가 206조 원에 달하고, 누적적자가 31조 원을 넘어섰다. 웬만한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안으로는 주주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 지금까지 정부가 허용했던 전기요금의 찔끔 인상은 개정 상법에 따라 주주들로부터 배임소송 당하기에 딱 좋다. 전기요금 인상안뿐 아니다. 가스공사 이사회도 지금까지 가스공사의 이해와 맞지 않으며 주주의 이해와는 더더욱 맞지 않는 결정을 많이 해왔다. 예를 들어 가스공사가 지분을 보유한 해외 가스전으로부터 들여오는 LNG 도입가격을 정부는 국민부담을 생각해서 낮게 책정하려고 하겠지만 가스공사와 주주를 위해서는 이를 가급적 높게 유지해야 한다. 더이상 상장 공기업의 이사회는 정치권이나 정부의 의견을 반영하는 요식절차가 아니게 되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주주가치 우선과 밸류업(Value-Up)이 정부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조성봉

[특별기고] 기후위기 시대, 에너지 전환의 숨은 열쇠는 ‘기상’이다

전국적으로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숨 막히는 열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며, 날씨 기사에는 '가장 더운', '역대 최고'와 같은 수식어가 수시로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의 전국 평균 기온은 22.9℃(도)로 전국적으로 기상관측망이 구축된 1973년 이후 가장 더운 6월이었고, 7월에도 전국 곳곳의 7월 상순 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극심한 폭염이 이어졌다. 이렇게 우리가 체감하는 무더위와 거듭해서 새롭게 쓰이는 기록들은 우리가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 주고 있다.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인 과제로, 세계 각국에서는 기후위기의 주된 원인인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석탄,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보다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발전의 비율을 높이고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큰 폭으로 확대돼 2024년 기준 전 세계 발전설비의 46.4%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럽은 60.2%, 미국과 일본은 각각 34%, 35.5%를 재생에너지가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은 어떨까. 올해 2월 정부가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하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 비중은 22%로 선진국은 물론이고 세계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국정기획위원회를 통해 조만간 확정될 정부 국정과제를 토대로,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와 지원 정책이 적극 추진될 계획이다. 가장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발전원은 태양광과 풍력발전이다. 여기에는 햇빛과 바람이 연료로 쓰이기에, 날씨에 의해 발전 여부와 발전량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름이 해를 가리면 태양광발전이 되지 않고, 바람이 약하게 불어 풍력발전기의 터빈이 돌지 않으면 전기가 생산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국전력공사, 전력거래소, 발전사 등 에너지 분야 관계자들을 만날 때마다, 국가가 나서서 정확하고 상세한 에너지 맞춤형 기상정보를 제공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정확히 예측하여 전력 수급 관리에 활용하기 위해, 기존의 기상정보에는 제공되지 않던 발전단지 위치의 일사량 예측정보, 풍력발전기 높이에 해당하는 약 80~220m 고도의 바람 예측정보 등을 필요로 했다. 기상청은 국민의 일상생활과 산업활동에 필수적인 전기가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며, 관련 기관들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재생에너지 맞춤형 기상지원 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한국형 수치예보모델과 천리안 기상위성 자료에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해, 신뢰도 높은 일사량·바람 예측 정보를 생산하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실증 발전단지 기상관측장비의 관측값과 예측값을 비교·검증하며 기술을 개선해, 내년 하반기부터 에너지기상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앞으로 전 세계 기후위기 극복과 각국의 경제 성장은 햇빛과 바람이라는 하늘과 자연이 가져다주는 소중한 친환경 자원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와 직결될 것이다. 기상청은 몇 시간 후부터 며칠 후까지의 일사량과 바람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에너지 기관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국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도 안전하고 건강한 일상이 지속될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 사회로의 전환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며, 그 과정에서 기상청도 역할과 책무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장동언 기상청장

[EE칼럼] 진짜 RE100은 솔선수범에서 시작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귀족은 그에 상응하는 의무를 갖는다"라는 프랑스어다. 이 표현은 오늘날 사회 지도층의 책임감과 도덕성을 강조할 때 종종 사용된다. 지금 우리 사회 지도층이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과제가 있다. 바로 '재생에너지 100%(RE100)'이다. 최근 정부가 'RE100 산업단지' 조성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RE100은 기존 에너지 시스템의 대대적 전환을 요구하며, 이는 국민과 기업에 막대한 비용 부담과 삶의 변화를 수반하므로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논란이 있는 RE100 정책을 주창하는 리더들은 말로만 설득할 것이 아니라, 직접 실천을 통해 RE100의 가능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적인 목표만 강조한다면, 오히려 정책에 대한 불신과 냉소주의를 초래할 것이다. 우선 정부가 나서야 한다. 환경부와 산업부 장관을 비롯한 관련 장관이 자신의 임기 동안 'RE100 리빙랩(Living Lab)'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는 장관이 자신의 집무실과 자택의 모든 전기를 재생에너지로만 공급하는 실험이다. 옥상이나 주차장에 필요한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야간이나 악천후에도 전기를 사용하기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갖추는 것이다. 냉난방, 조명, 컴퓨터는 물론 출퇴근 차량까지 모두 이 시스템에 연동하고, 실시간 전기 생산량과 소비량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재생에너지만으로 안정적인 생활과 업무 수행이 가능한지, 그 과정에서 어떤 불편과 한계가 있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를 국민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점은 서류상으로만 RE100을 맞추는 거다. 실제로는 화석연료로 발전한 전기를 사용하고, 그 양만큼 재생에너지 인증서를 구매해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고 주장하는 방식은 진짜 RE100이 아니다. 이러한 행태는 해외 사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24년 초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ASML이 '2040년까지 넷제로(Net Zero) 달성'을 공언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화제가 됐었다. 그런데 그 이행 방식을 살펴보니, 공장과 사무실 운영은 가스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고 그 양만큼의 인증서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재생에너지 생산지와 실제 소비지가 다르고, 생산 시간과 사용 시간도 맞지 않아 실질적인 탄소 감축 효과는 제한적이면서 기업의 전력 비용만 늘린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마치 진짜 RE100인 것처럼 포장되면, 에너지 전환에 대한 사회 전체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정부가 조성할 RE100 산업단지도 원자력이나 가스 발전은 배제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와 ESS만으로 전기를 공급해야 한다. 진짜 RE100 달성을 위해서는 단순히 재생에너지 구매 비율을 높이는 것을 넘어서, ESS와 같은 첨단 기술을 통해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전력 소비 현장에서 재생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RE100을 강력히 주장하는 언론사와 환경단체도 예외일 수 없다. 언론사는 자신들의 주장에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직접 겪어보고 그 결과를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메시지는 없다. 언론사는 신문 인쇄기, 방송 장비, 데이터 서버 등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시설을 재생에너지로 운영하는 도전에 나서야 한다. 흐리고 바람 없는 날에도 취재와 편집, 송출에 문제가 없는지, 마감 시간을 맞출 수 있는지 등을 직접 겪어보고 그 전 과정을 독자에게 솔직하게 보도할 필요가 있다. 환경단체도 사무실 운영과 모든 활동을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하고, 이로 인한 장단점과 소요 비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에너지 전환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진정한 변화는 책임지는 리더십으로부터 시작된다. 정부, 언론, 환경단체 등 사회 지도층이 RE100의 가능성과 한계를 일상의 실천으로 보여준다면, 국민과 기업은 이를 현실적인 목표로 받아들이고 동참하게 될 것이다. 이제는 넷제로 달성을 위해 진짜 RE100을 할 때다. 문주현

[김성우 칼럼] 재생에너지와 국가안보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기후대응기금 운용심의위원 최근 우연히 지난 5월 공개된 흥미로운 보고서를 접하게 되었다. 미국 비영리 안보 정책 연구소인 Council on Strategic Risks가 발간한 'The National Security Rationale for Japan's Transition to Renewable Energy'라는 제목의 보고서이다. 바이든 행정부 국방부 환경 및 에너지 안보 담당 부차관보와 사사카와 평화재단(Sasakawa Peace Foundation)의 국가안보 및 미일 프로그램 연구원의 통찰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은 일본이 에너지의 97%를 해외에서(83%가 화석연료) 수입하는 현실이, 높은 지정학적 리스크와 심각한 경제 안보 취약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야말로 에너지 자급률을 높여 지정학적 유연성을 확보하고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길임을 제언하며, 재생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과제와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들어 재생에너지와 국가안보의 상관성을 조명한 것이다. 그럼 일본과 사정이 비슷한 한국의 입장에서 재생에너지와 국가안보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궁금해 졌고, 세가지 키워드를 도출할 수 있었다. 재생에너지와 국가안보를 연결하는 첫번째 키워드는 에너지자립이다. 한국도 일본처럼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24년 국내 에너지 총 소비량 중 석유가 39.2%, 석탄이 21.9%, 천연가스가 19.7% 를 차지해 화석연료가 80%를 넘는다. 더욱이, 2023년 기준으로 석유는 중동에서 71.9%를 수입하고, 석탄은 호주에서 40%이상 수입하는 등 수입지역 편중과 높은 수입 의존도(2023년 기준 93.9%로 추정)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사정으로 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않거나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게 되면, 산업경쟁력 저하로 인한 국가 경제 악화는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해져 국가안보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국내에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확산은 에너지자립에 기여함으로써 국가안보에 기여할 수 있다. 글로벌 기후 싱크탱크 엠버(Ember)에 따르면, '태양광 패널 수입에 1달러를 투자하면 연간 가스 수입에서 1달러를 절약하면서도 동일한 양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재생에너지의 안보적 가치를 예시한 바 있다. 두번째 키워드는 기후회복력이다. 기후회복력이란 기후 변화 요인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의 능력을 말한다. 당장 이번 달에 우리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직후 400mm에 달하는 폭우를 맞는 유례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상기후로 농산물 수확량이 줄어 물가상승을 초래하는 기후플레이션은 밥상 물가를 포함한 국민 생활 물가는 물론 이를 재료로 하는 산업에도 경제사회적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실제로 7월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 통계에 따르면, 폭우와 폭염이 지속되면서 배추 가격이 한 달 만에 31.1% 폭등하는 등 기후플레이션의 심각성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집중형 에너지공급이 아닌 지역별 분산형 에너지공급이 주를 이루는 재생에너지가 확산되면, 기후재난으로 인한 정전 범위가 줄어드는 등 비상시 대응이 비교적 용이하고, 나아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 기후위기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역할도 함으로써, 국가안보에 간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세번째 키워드는 국방력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에너지수급이 불안해 지거나 이상기후가 잦아 지면, 군사시설 운용에 차질을 초래해 국방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 미 해군이 이미 수십억 달러를 기후관련 인프라 피해, 실제 리스크 대응에 투입 중인 이유다. 또한, 에너지수급 악화나 이상기후로 막대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면 국방비 지출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해 에너지자립도와 기후회복력을 높이면, 국방력에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추가로 상술한 키워드들과 병행해서 고민할 지점이 있다. 이는 군사적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이다. 지난 2022년 영국 NGO들에 따르면, 군사적 활동이 연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의 약 5.5%를 차지하여 이는 항공 및 해운산업을 합친 것 보다 많다고 한다.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에너지자립도를 높이고 기후회복력을 갖추어 국가안보에 기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정도에 따라 찬반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군사적 활동에 의해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기후변화를 야기하고, 이로 인한 이상기후가 다시 군사적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도록 군사적 활동 배출을 줄여 나가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이견이 적을 것 같다. 김성우

[EE칼럼] 황해의 위기, 미세먼지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

얼마전 우연히 다롄, 칭다오 등 중국 해안가에서의 끔찍한 오염상태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았다. 악취는 물론이고 기형적인 물고기들이 떠다니며 모래사장마저 거품처럼 끈적해진 상태였다. 얼마 깊지도 넓지도 않은 황해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서 한국은 해산물와 소금 등을 조달하고 있다. 다행히 남쪽에서 올라오는 해류가 한반도 해안가를 먼저 타고 북상해 발해만을 거쳐 중국 해안으로 남하하기에 크게 체감 못하는거 같다. 하지만 해류에 희석되어 봐야 이 좁은 황해 내에선 거기가 거기일 뿐이다. 한국 정부는 나름 연안 환경 관리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해왔다. 대표적인 정책은 연안오염총량관리제로, 특정 연안에 흘러드는 오염 부하량을 해당 해역의 환경 수용능력 이내로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환경부와 해양수산부는 분기별로 연안 수질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각 지자체에 생활하수와 산업폐수 등의 총 배출허용량을 할당하여 관리하고 있다. 아울러 지자체들은 지역 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환경개선 사업과 연계하여 오염물질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바다 건너 중국은 이와 관련해서는 그냥 손 놓고 있는 듯하다. 동부 연안에 거대한 공업 지대를 형성했고, 이에 따른 폐수와 폐기물이 상당 부분 황해로 흘러들고 있다. 그 결과 황해의 오염 수준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수준으로,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은 황해 생태계를 멸종위기 등급으로 분류할 정도다. 중국 당국은 늘 그렇듯 공식적으로는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표면적 스탠스와는 달리 정작 해안 지방정부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환경 단속을 소홀히 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산둥성 연안에서는 질소 비료와 하수로 인한 대규모 녹조 현상이 빈발하고, 그 중 일부는 해류를 타고 내려와 한반도 서남해안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언제나 그렇듯이 한국이 제기한 문제를 정치적 의도로 몰아가거나 지나친 반응으로 깎아내리곤 한다. 이런 중국의 태도는 자국 연안 개발에만 매몰될 뿐, 이웃 국가가 겪는 피해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한 그들의 속내를 드러낸다. 중국이 경제적 성장가도를 달리는 동안 황해는 마치 중국만을 위한 거대한 폐수 처리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와 비슷한 이슈로는 중국발 미세먼지를 들 수 있다. 대기와 해양과 같이 여러 나라가 공유하는 자원을 둘러싼 오염 문제는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 양상을 띤다. 한국과 중국 정부 모두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했지만, 중국은 자국도 피해자 라거나 한국 내부 배출 탓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책임을 분산시켰다. 그 사이 한국은 수동적으로 실내공기청정기 보급이나 비상저감조치 같은 자학적 자구책에 기댈 뿐,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미세먼지와 황해 오염은 본질적으로 분명한 차이가 있다. 미세먼지는 국경을 넘어 공기 중에서 끊임없이 섞이고 이동하기 때문에 어느 국가의 배출량이 얼마나 되는지를 정확히 수치로 잡아내기가 사실상 어렵다. 중국에서 배출한 미세먼지 비율이 크다고 짐작은 할 수 있으나, 특정 배출원을 정확히 지목하여 책임을 묻기엔 한계가 명백하다. 이에 반해 황해의 해양오염은 과학적이고 명확한 물리·화학적 증거를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닷물과 퇴적물에서 오염물질 농도를 분석하면 오염의 진원지와 그 기여도를 비교적 정확히 밝혀낼 수 있다. 실제로 황해의 퇴적물과 해수 내 중금속이나 영양염 농도를 측정한 결과, 중국 연안에서 유입되는 하천 부근이 압도적으로 높은 오염 수치를 나타냈고, 한국 연안으로 다가올수록 농도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는 중국의 육상 배출원이 황해 오염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근거다. 미세먼지처럼 복잡한 모델과 추정에 의존할 필요 없이, 비교적 단순하고 명료한 수질 데이터를 근거로 중국발 오염 책임을 피할 수 없도록 압박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이 명확성은 향후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중국의 책임을 묻고 대응책을 이끌어내는 데 효과적인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중국이 민감해한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늘 저자세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할 이유는 전혀 없다. 한국 국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중대한 국가 이익으로서, 중국이 그토록 강조하는 “핵심 이익"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환경 피해에 대한 책임과 배상은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된 '오염자 부담 원칙(Polluter Pays Principle)'을 엄중히 적용하면 된다. 이미 국제법적 틀에서도 초국경 환경 피해를 야기한 국가의 책임이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1972년 스톡홀름 선언과 1992년 리우 선언에서 분명히 밝힌 바와 같이, 어느 나라도 자국 관할에서 발생한 활동으로 인해 타국 환경에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 국제사법재판소(ICJ) 역시 국경을 초월한 환경 피해 방지 의무를 수차례 재확인했다. 한국 정부는 한중 환경장관 회담이나 한중해양협력협의회 등 공식적인 외교 채널에서 황해 오염 문제를 최우선 의제로 삼고, 공동 모니터링 체계 구축과 구체적 오염 저감 목표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간 정부 차원에선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해왔지만 이재명 정부는, 최근 이슈가 된 중국의 불법 구조물 이슈와 함께 새 정부 들어서는 대로 시급히 대응해야 한다. 더 이상 중국의 눈치를 살피며 미온적인 접근으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유종민

[EE칼럼] 기후위기 시대, 실용적 기후정치를 바란다.

임은정 공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2025년 7월, 세계 곳곳이 기후 재난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텍사스와 중국 충칭에서는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도시 기능이 마비됐고, 인도 북부와 유럽 남부는 5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전력 공급이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상기후는 더 이상 '기후위기'라는 미래형 담론 속에 존재하는 위협이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실시간으로 체감되는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시점에, 세계 주요국에서는 오히려 기후정치가 후퇴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 이후, 파리협정 재탈퇴, 화석연료 규제 완화, 미국 환경보호국(EPA: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구조개편, 기후손실·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 기여 중단 등 강력한 반기후 조치가 잇따르고 있다. 환경 규제뿐만 아니라, ESG 투자 및 정보공시에 대한 제도적 후퇴도 진행되며, 연방정부 차원에서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급속히 무력화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 가장 선도 주자였던 유럽연합(EU) 역시 일정 부분 정책 후퇴가 감지된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 이후, 우파 정당의 약진과 농민 시위, 산업계 반발 등을 계기로 기존의 EU 그린딜(Green Deal) 정책은 후속 입법과 집행에서 제동이 걸렸다. 탈산림 규제(EUDR: EU Deforestation Regulation) 유예,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CSRD: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 완화, 자동차 배출 기준 이행 시점 연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예외 확대 등 규제 완화 움직임이 잇따랐다. 친환경 농약 규제와 생물다양성 복원 법안도 통과가 지연되고 있다. 물론 EU는 여전히 강력한 배출권거래제(ETS: Emission Trading System)를 유지하고 있으며, 2050년 탄소중립 목표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경제적 여건 변화로 인해 실제 규제 수준은 약화되고 있고, 산업계와 금융시장에서는 기후 규범 피로감이 누적되고 있다. ESG 투자자들은 과도한 공시 부담과 고금리 환경 속에서 점차 자본 흐름을 재조정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이 기후정치의 '종말'을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주(州) 정부나 연방 법원이 연방정부의 규제 후퇴를 견제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한국과 여러 사정이 비슷한 일본은 2025년 상반기에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오히려 상향 조정하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3년 대비 60% 감축이라는 높은 수치를 제시했는데, 그 수단으로 재생에너지는 물론 원자력 발전, 수소·암모니아 발전, 탄소 포집, 활용 및 저장 기술(CCUS: 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 등 녹색전환(GX: Green Transformation)의 관점에서 다양한 감축 전략을 제시했다. 이는 결국 탄소감축과 산업경쟁력 제고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이중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전환의 시기, 한국 같은 중견국은 어떤 전략을 취할 수 있을까? 신정부는 '기후에너지부' 출범과 함께 정책 통합을 예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의 행보는 명확한 산업전략과 사회적 설득 모두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성환 환경부 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을 적정하게 믹스하면서 가는 게 장차 한국의 에너지 방향"이라고 말하며, 탈원전 정책으로의 회귀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는 선을 긋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원자력 확대, 수소와 LNG 활용, 전기요금 조정 등은 여전히 정치적 대립의 대상이 되기 일쑤이며, 기업 부담과 민생 불안은 정책 조율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상적 수사보다, 실용적 기후정치의 재구성이다. 국제사회와의 약속은 유지하되, 감축 수단과 기술 투자 방향은 한국의 현실에 맞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일본처럼 목표는 높이더라도, 수단은 산업 정책까지 아우르며 전략적으로 구성해야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정치의 후퇴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일 수 있다. 글로벌 규범과 국내 산업전략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 그것이 신정부 기후정치의 핵심 경쟁력이 되기를 요구한다. 임은정

[EE칼럼] 원전 수소는 철기문명의 디딤돌이다

인류는 3천 년 전 철기 시대를 열어젖힌 이후, 세계사는 지금까지 사실상 철기 시대의 연속이다. 철의 시대를 개막한 히타이트 제국, 코크스 제철 방식으로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 등 문명 전환기에는 항상 철이 있었다. 제철 기술에 앞선 국가는 번영했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실제로 청동기에 머무르고 있던 잉카제국이 철제무기로 무장한 스페인에게 힘없이 무너진 역사적 경험도 있다. 오늘날 현대 문명도 여전히 철강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는 약 19억 톤의 철강을 소비하고 있다. 전체 금속 소비의 95%에 해당하는 압도적 물량이다. 철강 생산이 문명의 지속 가능성과 맞닿아 있는 이유다. 철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된 결정적 계기는 코크스 제철 방식의 발견이다. 철은 산화철에서 산소를 제거하는 환원 과정을 거쳐야 생산된다. 1000도 이상의 고온이 필요한 공정이다. 처음에는 목탄을 사용했으나 목재 공급이 걸림돌이었다. 산림이 빠르게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영국 의회는 16세기 수목 벌채를 금지하는 법령을 제정하기도 했다. 제철산업 더 나아가 문명 발전의 위기였다. 구리 제조업자였던 아브라함 다비는 1709년 오늘날 코크스라 불리는 점결탄을 용광로에 넣어 철을 녹이는데 성공했다.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사용되는 코크스 제철 방식의 탄생이다. 코크스 방식은 연료비 절감, 고온유지, 규모의 경제 등의 이유로 철강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었다. 실제로 1700년대 초반 2,500톤 정도에 불과하던 영국의 철강 생산량이 1850년에는 약 1,000배가 증가한 250만 톤으로 급증했다. 화학적으로 탄소 덩어리인 코크스는 당연히 제철 과정에서 다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제철산업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비중은 7%에 이르고 있다. 단일 산업으로 최대 규모다. 당연히 금세기 최대 의제인 탄소중립과 충돌한다. 탄소중립은 단순 선언을 넘어 실존하는 무역 규제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로 전 세계 140개 이상의 국가가 탄소중립을 선언했으며,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행한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6개 업종이 첫 시험대에 오른다. 이들 산업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은 이제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다. 한국은 세계 6위의 철강 대국이다. 철강산업의 위기는 곧 한국 경제에 치명적일 수 있는 배경이다.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제철 기술은 수소환원제철이 유일하다. 이산화탄소 배출의 원인이 되는 코크스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시험 생산설비에서는 이미 검증된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규모 생산설비의 상업 생산에는 본격적으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대량의 수소를 값싸고 안정적으로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물 분해인데, 저온 전기분해와 고온 전기분해 방식이 있다. 전자는 전기만을 사용하는 반면, 후자는 열과 전기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어서, 고온의 열을 값싸게 얻을 수 있다면, 훨씬 경제적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여기에 한국 철강산업의 활로가 있다. 원전과 철강 산업의 결합이다. 원전에서 24시간 생산되는 전기와 열을 활용해 얻는 소위 핑크수소를 제철 환원제로 사용하면, 수소환원제철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3시간 남짓 전기만을 생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소위 그린 수소보다 훨씬 경제성이 높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세계는 이미 수소환원제철 경쟁력 확보 경쟁을 시작했다. 스웨덴의 HYBRIT 프로젝트는 수력과 원전을 기반으로 생산된 수소를 활용하는 수소환원제철 방식을 2026년부터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프랑스 EDF도 자국 원전을 활용해 2030년까지 1GW 규모의 청정 수소 생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한국도 뒤처지지 않았다. 포스코는 일찌감치 독자적인 수소환원제철 기술인 하이렉스 기술을 개발했고, 현대제철은 하이큐브라는 독자적 수소환원제철 기술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수소 확보는 난항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원전 수소만이 답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재생에너지 중심의 수소경제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어서 안타깝다. 철은 현대 문명의 근간이다. 수소는 미래의 에너지다. 원자력은 탄소중립 시대에 철기 문명을 이어갈 디딤돌이다. 박주헌

[EE칼럼] 에너지 없는 국가에는 내일은 없다

개인의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거나 국가의 산업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은 에너지와 자원이다. 인류의 문명과 산업 발전과 변화에 따라 필요한 에너지자원의 종류와 양은 변하고 있다. 에너지원을 살펴보면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면서 석탄의 사용이 증가하였다. 그 뒤를 이어서 대표적인 내연기관인 자동차의 등장으로 석유가 에너지원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의 지속적인 인구 증가와 산업 규모의 팽창은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였고 우리는 대부분 손쉽고 익숙한 화석연료로 공급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지구의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을 더욱 편하게 하는 전기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전기는 석탄, 가스, 원자력 등과 같은 1차 에너지원을 사용하여 만들어 우리가 필요한 장비나 장치에 사용되기 때문에 2차 에너지원이라 부른다. 향후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전환 시대의 핵심은 충분한 전력을 확보하는 일이다. 현재 20% 수준인 전기화 비율이 2050년엔 45% 수준으로 높인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계획이다. 확대일로에 있는 자동화 시대, 인공지능 시대, 빅데이터 시대는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필요로 할 것이다. 사람들이 한시라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스마트 폰에도 60가지 이상이 광물이 사용되고 있고, 대표적인 이동 수단인 자동차에도 석유나 전기 충전이 필요하다. 에너지 한국은 전기의 시대를 대비한 충분한 준비와 계획은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의 에너지와 자원 현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2024년 기준으로 1차 에너지원은 석유(39%), 석탄(22%), 천연가스(20%) 등 화석연료가 80%를 넘고, 저탄소 에너지원인 원자력(13%), 재생에너지(5%)는 20% 미만을 차지하고 있다. 더구나 94%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니 공급망 확보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국가의 에너지와 자원은 하나의 에너지원이 일회성으로 한 번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국가의 책임하에 꾸준한 안정적 확보가 필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토가 좁기 때문에 부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자원도 빈약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미래 시대를 준비하는 제대로 된 국가라면 국내외 에너지와 자원확보에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정부에서 한번 시도해 보고 실패했다고 이번 정부에서 손을 놓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러다 보니 40년이 넘는 자원개발 역사에서 배운 것이 있어도 축적이 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버렸다. 그동안 우리는 일을 잘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아니라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스템만 만드는 것 같다. 에너지와 자원개발은 성공하고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또한 불확실성이 크고 성공 확률이 낮은 대표적인 사업이다. 이런 분야에서 필요한 과학과 도전 정신이 사라지고 있으니, 자원개발의 성공은 점점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지난 45년 동안 자원개발이 잘 추진되지 못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계획이 없어서도 실력이 없어서도 아닌, 자원개발의 정치적 이용에 있다. 과학기술 분야의 탈정치가 필요한 것처럼 에너지자원의 탈정치도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국가 차원의 에너지자원 확보를 정권의 정치적 활용도에 따라 냉온탕만 오가다 보니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도 불가능하고 성과도 기대할 수 없다. 한 국가의 에너지와 자원확보는 국가 산업 발달 단계에 따라 다양성과 변화가 있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이어달리기와도 같다. 내가 맡은 임기만 열심히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국가의 장기적인 계획에서 각 정부의 주어진 임기에서 주어진 책무를 잘 이해하고 추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큰 현실의 문제에 현명하게 대처하면서도 긴 안목으로 장기적인 국가 차원의 에너지자원 확보 정책이 추진되길 기대해 본다. 신현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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