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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비은행 스테이블코인, ‘어떻게’가 중요하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가 본격화되며 비은행 기관의 발행 허용 여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부와 여당은 기술 혁신과 시장 활성화 등의 측면에서 비은행 참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빅테크·핀테크 기업 등 다양한 민간 기업들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와도 맞닿아 있다. 미국은 지니어스법(Genius Act)에 따라 인증심사위원회를 두고 비은행 기관의 발행을 심사한다. 유럽연합(EU) 또한 미카(MiCA) 법안에서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비은행 발행을 허용한다. 이외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도 엄격한 조건 아래 비은행 발행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비은행 기관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무분별하게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이 떨어지고 금융 시스템 불안이 확산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발행 주체 리스크로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이 발생하면 기존 금융시장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 민간이 화폐 기능을 가진 디지털자산을 대규모로 발행할 경우 한은의 중앙은행 역할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존재한다. 이에 따라 한은은 은행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 역시 한계를 갖는다. 스테이블코인의 태생적 목적인 탈중앙화가 구현되지 못하는 데다, 은행만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구조는 기술 혁신과 시장 경쟁을 제약할 수 있어서다. 사용자가 스테이블코인의 실질적인 편의를 누리기 어려운 것은 물론, 급변하는 기술력에 대응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력도 약화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비은행 발행의 허용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허용할 것인지'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들이 이제 막 발의되고 있는 만큼 자본금 요건 강화, 준비금 보유 의무, 위기 대응 체계 등 안전장치를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 발행 기관에 대한 실시간 감독과 공시 체계 마련도 필요하다. 발행과 등록 관련 절차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제도화해 시장 질서를 해치지 않도록 투명하고 안정적인 발행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 도입을 앞둔 지금은 혁신과 제도 안전성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동시에 금융 안정이란 과제를 균형 있게 풀어나가야 한다. 송두리 기자 dsk@ekn.kr

[기자의 눈] 정부, ‘부동산 추가 규제’ 시사...시장과 싸울 준비 됐나

6.27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이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일선 시중은행 영업점과 국민들의 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누군가는 대책이 나온 지 고작 일주일밖에 안됐다고, 규제에 적응하기까지 일주일의 시간은 너무 짧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일견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써야 하는 정부는 결코 이 시간들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부동산,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현 정부의 목표와 지침은 확고하다. 한국 경제의 부동산 자금 쏠림 현상을 해소하고, 주식으로 대표되는 '대체 투자 수단'을 활성화해 궁극적으로 집값 안정화, 국내 기업 육성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달 1일 국무회의에서 “투자 수단이 주택 또는 부동산으로 한정되다 보니까 자꾸 주택이 투자 수단 또는 투기 수단이 되면서 주거 불안정을 초래해 왔다"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업자대출금을 주택 구입에 활용하면, 해당 대출 금액을 즉시 회수하고, 최대 5년간 신규 대출 등을 금지하겠다는 지침도 이 대통령 발언의 연장선상이다. 문제는 정부의 거듭된 엄포와 추가 규제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달 1일부터 시행된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까지 켜켜이 쌓이면서 실수요자는 물론 중저신용자, 자영업자 등 급전이 필요한 이들까지 발을 구르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정부는 신용대출을 활용한 주택 구입 등을 막고자 신용대출 한도를 차주별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고, 카드사의 카드론까지 신용대출로 분류했다. 이로 인해 긴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중소 자영업자, 소상공인, 취약차주는 그야말로 코너에 몰렸다. 정부는 지난 일주일간 규제의 사각지대는 없는지, 투기 수요 잡다가 자영업자, 소상공인까지 잡고 있는 건 아닌지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투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관련 불법·탈법·이상거래를 일삼는 이들의 심리가 무엇인지도 인지해야 한다. 시장의 심리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당장의 '집값 급등'이라는 현상만 잡는 것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만 낳을 뿐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예고한 추가 대책이, 그리고 현재 지금까지 발표된 대책들이, 부동산 투기를 노리는 누군가에게 '기회'로 작용하지 않도록, 애꿎은 서민들을 울리지 않도록 더욱 냉철한 판단과 세심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진정한 소통 끝에 재대로 된 대책이 나온다. 정부는 그들과 소통할 준비가 됐나. 나유라 기자 ys106@ekn.kr

[기자의 눈] 부동산 세제 카드보다는 ‘공급’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주택시장 불안정이 계속 이어질 경우 부동산 세제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한 발언이지만 기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는 거리가 있는 의견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부동산시장에 국민적 저항감이 큰 세금 규제는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시장을 세금으로 잡으려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미 한 번 실패를 맛본 인위적인 세금 규제 카드를 다시 꺼낼 경우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부작용으로 오히려 주택 시장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지난달 발표된 6억 초과 주택담보대출 전면 금지로 시장이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더 자극제를 쓸 필요가 있나 싶다.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한 단기책으로 대출 전면 금지라는 초강력 처방을 내려 고열을 잡았다면, 이제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장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또 여기서 더 강한 추가 규제가 나온다면 그렇지 않아도 관망세로 전환된 부동산시장이 아예 얼어붙을 수 있다. 이번 대출 규제로 집값은 잡히더라도 역설적으로 건설사들은 수익성 악화로 분양 사업 속도 조절에 나설 수 있다. 건설산업은 시공사 뿐만 아니라 시행사, 자재업체, 공사 현장의 일선 근로자까지 개별 가계와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기여도가 큰 기간산업이다. 집값은 잡더라도 건설 경기가 악화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결국 집값도 잡고, 건설산업 활성화를 꾀하는 핵심엔 이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주택 공급 확대책이 있다. 물론 공급책은 수년 간의 공사 기간을 감안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이다.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도 않고, 미래가 어찌 될지 모른다. 지금 당장 주택 공급 확대에 나서도 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5년 후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나지 않을 수 있다. 진 의장을 비롯해 정부 여당, 대통령실 주변 참모들은 이런 시각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주택 공급책보다는 바로 효과가 눈에 보이는 세제 카드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했다. 당장에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주택 공급 확대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다. 이재명 정부 임기는 5년이지만 이 한반도 땅에 살고있는 국민들과 대한민국은 영속성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마침 이 대통령이 지난 1일 국방부에 경기 북부 미군 기지 반환 공여지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주택 공급 확대를 염두에 둔 행보일 것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서울 중심 한복판엔 여전히 거대한 규모의 미군 용산 기지가 미래의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임진영 기자 ijy@ekn.kr

[기자의 눈] ‘피’ 같은 내 돈, 공부해서 투자하세요

“예전과 조금은 달라졌지만, 재무제표 하나 보지 않는 '묻지마 투자'는 여전하다." 일회성 요인에 그치는 이벤트, 여기에 세력이 개입한 것 같은 종목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심리에 대해 묻는 기자의 말에 한 시장 전문가가 한 대답이다. 6.3 조기대선 당시 정치인 테마주에 대한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올 때 한 질문이었다. 이 전문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공시 자료조차 보지 않고 '주변의 권유로', 혹은 '다들 사니까' 덜컥 투자하는 투자자가 아직도 우리나라에 많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 안타까운 기자들이 자신만의 영역에서 왜 그 종목이 위험한지를 알려도, 정작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기자들이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거품'이라는 사실을 줄기차게 경고해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초 치러진 조기 대선을 앞두고 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특정 정치인과의 인연 하나가 주가 상승의 근거가 될 수 없는 이유, 연일 상한가를 찍는 주가가 이슈 해소와 동시에 본래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재무적으로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리는 기사들이 나왔다. 일부 종목의 경우 세력 개입 정황이 있다는 사실까지 알리고 또 알렸다. 일부 종목은 위에서 언급한 '거품' 관련 의혹들이 점철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해당 종목은 대선을 앞두고 1000% 이상 급등했다. 우려했던 대로 주가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최고점 대비 80% 가까이 급락한 후 연일 하락세다. 최고점 구간에 매수한 투자자 입장에서 너무도 아찔한 하락률이다. 주주들이 모인 종목 토론방에는 '살려 달라'는 절절한 글들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요즘도 '정책 수혜주' 테마로 분류돼 연일 급등하는 종목들이 매일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입을 모은다. 최소한 실질적인 정부 예산 집행과 방향성, 기업 성장성을 파악하고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직접적인 분석과 예측이 어렵다면, 증권사나 신용평가사의 분석 보고서라도 살펴봐야 한다. 특히나 몇 분 몇 초 사이에 종목을 사고파는 스캘퍼(초단타매매자)가 아닌 이상 더 그렇다. 기업의 성장성은 수치로 보이고, 전략으로 입증되며, 시장에서 평가받는다. 내 소중한 돈을 투자함에 있어, 그 회사의 성장성과 전략에 대한 관심을 최우선에 두는 투자 문화가 더욱 확대되기를 바란다. 장하은 기자 lamen910@ekn.kr

[기자의 눈] 게임, 더이상 ‘중독 누명’ 안된다

게임(Game)의 어원과 기능을 찾아보면 인도유럽조어(PIE)의 어근 'ghem'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경험과 흥겨움을 뜻하는 이 단어는 이후 여러 언어에 다양한 형태로 파생됐다. 그 가운데 기쁨과 즐거움을 의미하는 고대 게르만어 'Gaman'이 대표적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게임은 기자의 유년시절 추억을 채워주던 오랜 친구였다. 주말이면 어머니와 함께 즐겼던 첫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학교 끝나고 헤네시스"가 암구호로 통하던 넥슨의 '메이플스토리', 큰아버지의 치트키에 함락당하던 '넥서스(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프로토스 핵심기지)'가 기억에 생생하다. 당시 느꼈던 즐거움과 재미는 어른이 된 지금도 낭만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대다수 부모세대 어른들에게 게임은 학업과 건강을 해치는 '만악의 근원'인 모양이다. 과거 컴퓨터가 감당했던 욕받이 역할이 게임으로 넘어가면서 사회질서를 저해하는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있다. 이제 어엿한 K-콘텐츠의 일원으로서 수출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게임의 무해함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경기 성남시가 인공지능(AI) 활용 중독예방 콘텐츠 제작 공모전 진행 과정에서 게임을 '4대 중독' 범주에 포함한 건 이같은 인식을 드러낸다. 특히, 게임의 순기능을 가장 잘 알 법한 지자체에서 게임에 부정적 시선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에 충격이 컸다. 성남시가 '게임 1번지' 판교를 품은 곳이기 때문이다. '게임=중독' 방정식을 입증할 수 있는 법적·의학적 근거가 없음을 고려하면 지극히 1차원적 판단이란 비판이 거세다. 게임과 비슷한 결을 갖는 취미생활까지 중독산업으로 간주할 수 있단 점에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마저 우려된다. 즉, 정규시즌마다 경기에 과몰입하는 일부 야구팬들도 중독자로 봐야할 지,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중독자 양산 범죄집단으로 몰아가야 할지 되물어본다면 그 답은 명료하다. 스포츠는 알콜이나 도박·마약과 달리 '손 대기만 해도 중독되는 성질'이 아니다. 하물며 게임을 중독과 결부하는 건 시대착오이자 어불성설이다. 게임은 어느덧 대한민국 대표산업으로 자리매김해 해외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게임에 덧씌워진 '중독 누명'을 벗기고, 경제·문화적 가치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래가치산업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태민 기자 etm@ekn.kr

[기자의 눈] 2030년 전기차 420만대 ‘공염불’인가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대 보급' 기치를 내건 이재명 정부의 전기차 비전에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판매가 부진한데다 정부의 정책이 전혀 뒷받침이 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목표만 거창하게 잡아놨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정체) 극복은 “판매량을 늘리겠다"고만 선언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충전 인프라, 소비자의 신뢰, 합리적인 보조금 제도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세세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재명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차 420만대를 보급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달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한, 이 대통령도 대선 공약과 여러 연설에서 2030년 전기차 보급률 50% 달성을 핵심목표로 확인했다. 업계에선 이같은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0'에 가깝게 보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전기차 누적등록대수는 약 68만대다. 이재명 정부가 내건 420만대까진 어림잡아도 350만대, 1년에 적어도 약 60만~70만대는 팔아야 가능하다는 논리다. 과연 이 수치가 현실성이 있을까. 단순계산으로 살펴보면 전혀 가능성이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올해 1~5월 국내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약 7만2000대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며 약 17만 2000대 전기차가 올해 팔릴 전망인데, 2030년까지 5년 남은 상황에서 어림없는 수치라는 견해다. 정부의 목표를 달성할 유일한 방법은 중국의 '전기차 굴기' 사업처럼 국가에서 수조원을 기업에 지원하고, 소비자들에 보조금을 제공하면서 전기차를 공급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같은 방법은 현재 전기차 과잉공급으로 줄도산을 이어가는 중국의 상황에서 알 수 있듯이 한계가 뚜렷한 수단이다. 현재 전기차의 포지션을 보면 소비자에 그리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동급의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를 비교하면 전기차가 약 20% 가격이 높다. 성능에서도 주행거리가 매우 짧고 충전 인프라도 아직 부족하다. 화재 불안감도 여전하다. 이전과 달라진 점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420만대'라는 목표는 너무 지나친 수치다. 차라리 충전 인프라 확충, 보조금 체계의 합리적 개편, 화재 예방 및 안전성 강화 등 실질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대책이 더 시급하다. 이찬우 기자 lcw@ekn.kr

[기자의 눈] 언제까지 ‘중국산’이라고 무시만 할 텐가

1990~2000년대까지만 해도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제품을 쓴다고 하면 싸구려를 쓴다는 인식이 먼저 따랐다. “돈이 없어 그걸 쓰느냐"는 비아냥까지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값은 싸지만 품질은 떨어진다는 고정관념이 오랫동안 중국산 제품을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최근에도 이같은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중국 가전기업 샤오미의 신형 스마트폰 구매를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자 한 지인이 “굳이 그걸 왜 사느냐"며 핀잔을 주었다. 산업계 일각에서도 “그래도 아직은 우리가 낫다"는 자신감 어린 발언이 여전히 나온다. 하지만 시장의 현실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오히려 상황은 엄중하다. 스마트폰, TV, 생활가전 등 많은 중국산 제품이 기술력, 기능, 디자인 측면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을 위협하거나 추월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기업의 위상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샤오미를 비롯해 하이센스, TCL 등은 중저가 제품을 기반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넓힌 데 이어 이제는 프리미엄 시장까지 보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수년간 공들여 쌓아온 프리미엄 브랜드의 영역이 중국 기업의 맹추격을 받고 있는 셈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전략은 단순한 '가격 경쟁력'에 머무르지 않는다. 꾸준한 기술 투자와 소비자 분석, 디자인 고도화로 제품 전반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특히, 샤오미는 경쟁사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상대방의 앞선 기술력과 브랜드 가치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 샤오미 관계자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 등) 경쟁사의 장점을 배우겠다"고 밝혔다. 이런 자세야말로 배움과 혁신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그렇다면 메이드 인 코리아는 어떤가. '우리가 최고'라는 자부심에 기대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혁신은 겸손과 학습에서 시작된다.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려면 타인의 강점을 빠르게 흡수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혁신해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배워야 할 상대 앞에서도 “그래도 우리 게 낫지"라는 말로 현실을 외면해 온 건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중국기업의 약진을 단지 한국기업에 위협으로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위기의식을 넘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할 시점이다. 글로벌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메이드 인 차이나'를 향한 낡은 편견은 소비자뿐 아니라 기업의 판단까지 흐릴 수 있다.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더 이상 무시하던 상대가 우리를 무시하기 전에, 그들의 강점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우리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과연 진짜 최고인가"라고 자문해 봐야 할 때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기자의 눈] 바이오벤처 모험투자 활성화 물꼬 터야

최근 중국 정부는 바이오벤처 육성을 위한 주목할만한 정책을 발표했다. 바이오제약, 인공지능(AI), 우주항공 등 미래산업 분야에서 현재 아직 수익성이 없는 기술 스타트업이라도 성장 잠재력과 기술개발 진전이 있는 스타트업이라면 미국 나스닥에 해당하는 중국 상하이 '스타 마켓'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는 아직 실제 수익이 나지 않고 있더라도 모험자본을 유치해 미래산업 분야의 혁신기업을 다수 육성하고 중국의 미래산업 분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이 제도를 통해 상장하는 스타트업은 '과학기술혁신성장층'이라는 신설 경로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으며 연간 순수익 1억위안 이상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이 성장층을 벗어나 기존 정규 상장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기술특례상장제도를 통해 현재 매출이나 수익이 없어도 기술 우수성이 입증되면 스타트업이 코스닥에 상장할 수 있다. 2005년 도입된 이 제도를 통해 다수의 바이오제약 스타트업이 상장에 성공했지만, 이 제도는 매출은 상장 후 5년,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은 3년간만 상장유지조건 적용을 유예해 준다. 바이오신약 1개 개발에 10년 가량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상장 3~5년 후에 매출과 수익이 본궤도에 오르기는 어려우며 이때문에 많은 바이오 스타트업이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본업인 신약개발을 제쳐두고 건기식, 물티슈 등 당장 매출이 발생하는 사업에 매달리기도 한다.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들은 최근 미국에서 열린 '바이오 USA'에 역대 최다 규모로 참가해 우리 기술력을 알리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돌아왔다. 한국바이오협회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운영한 한국관에만 총 51개 바이오제약 벤처기업이 참가해 총 450여건의 상담을 현장에서 진행하는 등 성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 바이오제약 강국들은 정부가 나서서 바이오헬스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일본 경제재정정책위원회(CEFP)는 의료 스타트업에 대한 통합지원을 담당하는 후생노동성 의료혁신지원실(MEDISO)을 강화해 헬스케어 스타트업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바이오제약 산업이 후발주자에서 선도주자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보다 과감하고 긴 안목의 제도 및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박주성 기자 wn107@ekn.kr

[기자의 눈] MG손보 계약 받는 5대 손보…‘당근’은 없나

노동조합이 정상 매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으나, 가교보험사를 통한 MG손해보험 계약 이전이라는 방향성은 흔들리지 않을 공산이 크다. 상대적으로 노동자 친화적인 새 정부가 출범했으나, 지금까지 여러차례 매각이 불발되는 과정에서 매력도가 낮아진 탓이다.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비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결정타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관련 규제 완화에 나섰지만, 기본자본 킥스 도입이라는 '후속타자'가 타석에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같은 국면에서 MG손보의 계약을 받게 되면 장·단기적인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MG손보가 장기보험을 다수 들고 있는 점도 악재다. 당국이 리첸트화재를 정리했던 방식을 들고 나왔지만, 단기계약이 많았던 당시 보다 더 큰 충격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현장에서는 원치 않는 부담을 떠안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인센티브가 과도하면 특혜 논란이 발생할 수 있지만, 주가와 킥스 비율 하락을 비롯한 부작용이 발생하면 회사가 감당해야 때문이다. 계약을 받는 일명 '빅5(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KB손해보험·현대해상)'도 일반·자동차보험 손해율 악화 등 손보업계가 직면한 악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업무상 배임 논란도 빚어질 수 있다. '계약을 적정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사실상 다른 회사에 더 많은 부실계약이 이전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 업계에서 거론되는 기준은 킥스 비율과 당기순이익 등이다. 일부 기업은 개선됐으나, 업계 전체적으로는 수치가 악화되고 있어 여유가 있는 쪽에 몰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좋은 성과를 낸 것이 페널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게 맞냐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결국 보상을 장담할 수 없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일각에서 거론되는 무작위 분배 방식도 지양할 필요가 있다. 특정 상품을 적게 취급하는 회사에 해당 상품군이 몰리는 등 경영방침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교보험사를 통한 계약 이전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최근 정권을 막론하고 '민관 원팀'이 대두되고 있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기업들을 '관치'의 대상으로 본 것 아니냐는 것이다. MG손보가 끝이 아닌 '스노우볼'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이 확산되는 것도 당국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다. 당국이 이제부터라도 기업들이 받는 타격을 최소화하고 다시금 밸류업에 나설 수 있도록 허심탄회한 소통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나광호 기자 spero1225@ekn.kr

[기자의 눈] “충실하게 지갑 열어야”…‘통 큰’ 빚 탕감에 난감한 은행권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영화 '부당거래'에 등장해 유명해진 대사다. 이는 최근 새 정부의 '빚탕감 정책'을 접한 한 은행권 관계자의 입에서도 나온 문장이다. 최근 이재명 정부가 2차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의 뚜껑을 열면서 '배드뱅크' 추진 방향도 윤곽이 잡혔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채무 탕감 대상은 113만명으로 7년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장기연체채권을 금융권에서 일괄 매입해 소각할 방침이다. 이번 원금 감면 대상엔 취약계층에서 저소득층으로 기준이 확대됐고, 지원 기간도 늘려 코로나 이후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10만명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16조원 규모의 채무 탕감을 위해 필요한 예산 8000억원 중 정부가 4000억원을 부담하고 금융권이 나머지를 분담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최소 3000억원 이상 지원하게 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은 금융 소외계층을 통 크게 돕는다는 취지는 좋지만, 정부가 '통 큰 지원'을 외치고 뒷감당은 은행권 주머니를 통해 메우려 한다는 목소리다. 한 관계자는 “말이 협의지, 실질적인 부담을 떠안는 건 금융권이다"고 말했다. 지난 정부의 상생금융 요구에 지난해 4조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기도 했던 은행권은 이자수익 감소와 연체율 상승으로 건전성 부담이 높은 업황 속 사실상 강제적인 자금출연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은행권의 마음이 무거운건, 재정적 부담은 차치하더라도 정책의 실효성에 물음표가 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번 정책으로 인해 시장에서 '빚을 안 갚은 사람이 혜택을 보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의 정책을 소개하는 다수의 유튜브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선 “모든 정부가 빚 탕감을 해주는데 이걸 놓치고 받지 않으면 바보"라는 식으로 광고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앞서 박근혜·문재인·윤석열 정부에서 탕감한 취약계층 대출 원리금이 최소 18조원에 달했지만 가계 평균 신용대출액은 오히려 증가했다. 은행권에선 “지원 규모도 부담이지만 정부의 명분 좋은 요구에 충실하게 지갑을 열어야 하는 형국이 될 때가 있다"며 “은행의 재원 충당이 사실상 명령처럼 작동하고, 공적 재원을 통한 빚 탕감은 어느새 당연해진데 반해 정책 성과는 좀처럼 느끼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재정적자 3% 이내 관리'라는 재정준칙이 사실상 무너진 상황에서 정부 지원이 계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는 재원을 충당하는쪽도, 도움을 받는쪽도 정책 효과와 형평성에 공감할 수 있도록 부담 주체에 대한 논의나 성실상환자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도 보다 깊게 고려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경현 기자 pearl@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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