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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금융상품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 활성화와 소비자 후생 제고

고물가와 고금리 기조가 국민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다. 우선 민간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올해 민간소비 상승률 전망치를 1.9%에서 1.6%로 하향 조정했다. 또한 금융거래 비용 증가도 가계의 채무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다시 인상되며, 주택마련을 위한 차주의 이자비용이 늘어나게 됐다. 제2금융권 거래 역시 녹록지 않다. 자동차·전자제품 등 내구재 구입시 이용되는 할부금융 수수료율도 여전히 높은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재 가계의 금융비용 부담 완화를 위해 다양한 정부 정책이 마련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환대출 프로그램과 금융상품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다. 전자가 은행권을 중심으로 주택담보·전세대출 갈아타기 흥행으로 이어지고 있지만, 후자는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면서 플랫폼은 금융거래의 주요 접점채널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금융상품 중에서 의무적으로 매년 갱신해야 하는 자동차 보험은 예상과 달리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 이용률이 특히 저조하다. 이 서비스는 당초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과 가격 비교를 통해 탐색비용 절감과 업계의 경쟁유발을 통한 서비스 가격인하를 기대하게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올해 1월 중순 출범한 자동차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 이용률은 최근까지 낮은 편이다. 플랫폼 이용자중 약 5% 정도만이 플랫폼을 통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된다. 주요 원인중 하나로 플랫폼을 운영하는 핀테크사에 지급되는 수수료 때문에 대형 보험사의 이탈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형 보험사는 자체적인 개별 다이렉트 채널을 통해 보험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판매채널 경쟁력이 약한 중소형 보험사들은 플랫폼 수수료를 보험료율에 포함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는 플랫폼을 통한 소비자의 금융비용 절감이란 취지에 벗어나 있다. 더욱이 플랫폼을 통한 보험상품 비교·추천서비스의 이용 저하는 최근 여행수요가 늘며 함께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여행자보험 등 여타 보험상품에 대한 비교·추천 서비스의 기능도 약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한편 플랫폼 금융거래의 활성화는 혁신금융 시대에 고객 데이터 확보 및 활용을 통한 맞춤형 금융상품 제공을 가능케 함으로써 소비자 후생을 제고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마이데이터 사업(본인신용정보관리업)이라는 금융인허가를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금융기관에 분산된 고객의 개인정보를 한 개의 플랫폼에서 통합 관리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편의성 제고와 금융비용 절감 등 소비자 후생 제고 차원에서 최근 출범한 자동차 보험 플랫폼 금융사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정책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우선 해당 플랫폼이 사업 참여자에게 호혜적 플랫폼으로 기능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자동차 대상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 영위를 위해서는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 인허가가 필요하다. 그런데 마이데이터 사업자는 플랫폼에서 금융상품 비교 및 추천서비스 업무를 영위하는 관계로 금융상품 판매대리·중개업 영위가 가능하다. 하지만 대표적인 자동차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캐피탈사의 경우 보험업법 시행령에 따라 보험비교·추천서비스 영위가 불가하다. 보험업법 시행령은 여신전문금융업체 중 신용카드사만 보험대리점 등록이 가능하다고 명시한다. 캐피탈사가 마이데이터 사업자임에도 보험업법 시행령에 근거해 보험비교·추천서비스 사업 영위가 불가한 것은 플랫폼 참여자에 대한 호혜의 원칙 측면에서 어긋난다. 더욱이 금소법에서 마이데이터 사업자의 겸영업무로 허용한 보험상품 판매대리·중개업 영위가 보험업법 시행령으로 인해 불가한 점은 금융소비자의 후생을 제고시키기 위해 출범한 금소법의 취지를 퇴색시킨다. 플랫폼 금융서비스 제공시 우려되는 개인정보 노출 및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를 예방하기 위해 마이데이터 사업자로 인가받은 금융업체들은 고객 데이터 관리에 책임감 있게,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 개발을 영위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마이데이터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한 금융당국의 면밀한 인허가 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한 판단이다. 더욱이 최근 부동산 PF 부실로 인한 캐피탈사의 대손충당금 적립이 강화되며, 캐피탈 업권의 수익성이 큰 폭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는 캐피탈사의 조달비용의 증가와 함께 수익성 악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는 캐피탈 업권의 수익성 악화를 가져오고 수익성 보전을 위해 자동차 할부금융·리스 수수료율 인하가 상당기간 지체될 가능성도 있다. 결론적으로 캐피탈 업권에 대한 보험상품 판매대리·중개업 허용은 중고차 플랫폼 등 자동차 판매 채널의 경쟁력을 갖춘 캐피탈사의 다양한 서비스 창출 및 할부·리스 수수료 등 금융서비스의 가격 인하를 유도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보험업계의 경우 일반 법인보험 대리점 의존도가 높아 보험료 인상, 불완전판매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도 캐피탈사에 대한 자동차 보험 비교·추천 플랫폼 사업 허용 등 자동차 보험상품의 비교·추천 플랫폼 서비스에 대한 금융업권간 문호 확대가 시급하다. 서지용

[이슈&인사이트] 고객이 불평할 때가 최고의 마케팅 기회

“고객이 불평할 때야말로 최상의 마케팅 기회다." 이 말은 마쓰시타 고노스케를 일본경영의 신으로 추앙하며 인용하는 말이다. 그의 불평하는 고객에 대한 예찬론은 계속된다. “고객의 불평을 듣고도 내버려 둔다든가, 애프터 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그 태도가 조금 불성실하다는 것은 '나는 사업할 생각이 없소'라는 말과 같다. 이 경우에는 어떤 사업이든 그만두는 것이 좋다. 기업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강력한 경쟁사가 아니라 바로 고객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불평할 때가 최상의 마케팅 기회인 것은 기업 경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2002년 4월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인천 경선장에서 이인제 후보가 비장의 무기로 노무현 후보의 장인이 6·25 때 좌익활동으로 부역했다는 가슴 아픈 가족사를 먼저 꺼냈다. 바로 이어 노무현 후보는 장인의 좌익활동을 인정하고, '지금은 자식 잘 키우고 서로 사랑하며 잘살고 있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만 대통령 자격 있는가?'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그날 노 후보의 당당하고 솔직한 감성 연설은 여성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이 말은 공수를 180도 바꾸는 절묘한 신의 한 수였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과의 대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최상의 마케팅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의 사례를 본다. 2024년 1월 18일 전북의 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윤 대통령과 악수하며 '국정 기조를 바꿔달라'고 말했다가 경호처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갔다. 2024년 2월16일 윤 대통령이 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장에서 축사하는 가운데 검은색 학사복을 입은 한 졸업생이 윤 대통령이 선 곳을 향해 고성을 질렀다. 이 학생은 '연구·개발 예산을 복원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후 경호원들이 이 학생의 입을 막고, 팔과 다리를 들어 졸업식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이후 이어진 한국의 연구·개발 예산의 확충을 약속하는 윤 대통령의 연설이 공허하게만 들렸다. 만일 윤 대통령이 경호원들에게 졸업생이 질질 끌려 나가는 것을 제지하고 그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빌려 공약을 발표할 수 있는 최상의 마케팅 기회를 날려버린 결과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대응은 2013년 11월 이민 개혁안 연설에서 본 오바마 전 대통령의 대처와 완전히 대조를 이룬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연설 도중 한 청년이 소란을 피우자, 이를 만류하려던 경호원들을 직접 제지하며 대화와 연설을 이어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괜찮다, 청년들을 그냥 두시라. 내가 마무리 지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며 만류하는 듯한 손짓을 취했다. 그러자 이 남성들은 퇴장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난 이 젊은이들의 열정을 존중한다. 왜냐하면 이 청년들은 진심으로 가족을 걱정하는 마음에 그런 거니까"라며 연설을 이어갔다. 국민의 불평하는 소리를 외면하는 정치인은 자동차 엔진의 소음을 차단벽으로 둘러싸서 방음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 차 안은 조용하겠지만 엔진 사고의 위험은 커진다. 자동차 엔진 소음은 엔진의 어딘가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다. 엔진은 소음을 통해서 운전자에게 기체 결함을 사전에 알린다. 그런데 이를 차단하면 엔진이 큰 고장을 일으키는 재앙이 일어난다. 이를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한다. 300번의 위험 소지가 있으면, 29번의 소형 사고가 나고, 29번의 소형 사고가 나면 1번의 대형 사고가 난다. 그러므로, 대형 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사소하지만 300번의 사고의 위험 소지를 없애야 한다. 하찮지만 300번의 국민의 경고를 무시하면, 정치인은 큰 재앙을 면할 길이 없다. 이것이 하늘의 이치다. 불평하는 고객이 아름다운 이유다. 그들이 불평하지 않았다면 묻혀버렸을 위험의 소지를 현재화시키는 공이 있다. '칭찬하는 고객은 고작 8명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불평하는 고객은 무려 22명에게 영향을 미친다'라는 미국의 마케팅 전문 TARP 사의 굿맨의 법칙을 유의할 일이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유럽의 확장 발트 연안, 한국에겐 기회의 땅

유럽 스칸디나비아의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독일과 폴란드가 접하고 있는 바다인 발트해는 동쪽으로 세 개의 작은 유럽 국가(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러시아까지 연결된다. '발트3국'이라고 하면 발트해에 접한 이 작은 유럽 국가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유럽의 중세 시대부터 이 바다를 무대로 상공업과 무역으로 한자동맹과 길드를 구성하며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점은 오히려 외부의 적들이 침략하고 지배하게 만들기도 하여, 발트3국은 천년 가까이 인접 국가들에 정복당하는 아픈 역사도 있다. 이 지역 곳곳에서 중세 튜턴기사단부터 북유럽과 독일, 러시아와 구소련 등의 침략자들이 만든 승리와 정복의 상징물을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은 구소련의 일부로 편입되었는데, 특히 스탈린의 공포정치가 극단으로 치닫고 냉전이 지속되었던 시기에 많은 이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시베리아까지 강제 유배형을 당하기도 했다. 발트3국은 독립 이후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경제통합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연합(EU), 그리고 북미와 유럽의 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며 빠르게 '탈 러시아' 또는 '친 유럽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각국의 관공서와 교육기관 등에서 EU의 상징과 회원국의 깃발이 자주 눈에 들어오고, EU와 NATO 관련 기관들과 사무소가 많다. 특히 서유럽 국가들의 통합에서 비롯된 EU가 확장을 거듭하며 냉전의 종결과 함께 중동부까지 미치게 된 시기에 발트3국이 EU에 가입했다는 점은 여러 의미가 있다. 새롭게 들어선 건물과 구소련 건물들을 리모델링한 건축물에는 EU의 지원에 의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EU는 확장의 한 축이 된 발트지역에 여러 지원을 통해 '유럽식' 기준을 심으려고 노력했다. EU의 다양한 경제적 지원은 이 국가들이 구소련 시절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경제질서에 빠르게 적응하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됐는 데 비교적 빠르게 유럽 공용화폐를 사용하는 유로존(Euro-Zone)에 편입될 수 있었던 것도 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U의 지원은 단순한 생산 경제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회, 문화, 법, 정책, 교육, 관광 등 다양한 범위로 확장됐다. 그러한 영향이 발트국가의 새로운 산업 분야 발굴과 혁신의 가능성을 열었다. 발트3국은 상대적으로 유럽의 주요 생산 및 소비시장과는 거리가 멀고 지리적인 이점을 활용할 수 없다는 단점을 인식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활로를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혁신적이고 빠른 정부의 지원이 디지털 관련 새로운 사업 아이템이 빠르게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스타트업(Start-up) 기업이 스카이프(Skype)와 같은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확대한다. 최근 이들의 경제적 발전이 전통적인 농업이나 상품의 제조업보다는 레이저와 디지털 관련 분야 등 새로운 산업군에서 선전하면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이러한 경제적 발전이 발트의 친 유럽화와 현재 전쟁 상황에서 반 러시아 정책을 두드러지게 했다는 점도 이해해야 한다. 이런 점들을 연결하면, 러시아와 직접 국경을 마주하고 구소련의 기억이 생생한 이곳 사람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가깝게 느낄 것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전쟁을 피해 우크라이나에서 피난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으며, 여전히 사회에 러시아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반 러시아 감정이 반영된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직후부터 디지털화를 추진한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나토의 사이버 방위센터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빠르게 디지털 사회로 전환하고 많은 혁신기업을 유치하면서 새로운 산업을 발굴하려는 발트3국의 정책은 상공업과 무역으로 번영하던 과거의 전통 위에서 자본주의를 통해 단점을 극복해 이익을 창출하면서도 '새로운 의미의 안전'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유럽의 확장과 반발이 충돌하는 지역인 발트해와 이곳의 각국 정부는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의 상황에도 관심이 많은데, 그들이 새로운 경제발전 모델을 발견해 성공했다는 점은 한편으로 한국과의 기술적 협력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한국의 기술력과 발트3국의 기술력이 조화를 이루며 협력하는 것은 전쟁 이후 국제경제의 안정화 노력 과정에서 새로운 글로벌 순환 경제 모델이 될 수 있다. 김봉철

[이슈&인사이트] ‘이재명의 민주당’ 그 후

'이재명의 민주당'. 지난 대선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자신의 지지율이 떨어져 위기에 처하게 되자 선거캠프를 전면 개편하면서 내세운 구호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지금부터는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당시 필자는 이재명 후보가 선을 넘었다고 생각했다. 당이 있고 후보가 있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이 후보는 당이고 뭐고 필요 없고 오직 자신이 먼저이고 자신만이 중심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당시엔 선거 열기에 휩싸여 그렇겠지 싶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도 이재명의 민주당은 더욱 공고해졌다. 낙선 이후 곧바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입후보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이어서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 대표 자리를 꿰찬 이재명은 대선 당시 약속한 불체포특권 포기를 헌신짝처럼 내 버렸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임시회기를 연장해 가며 국회를 이용해 철저하게 방탄 정국을 유지했고, 수차례에 걸친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소속 의원들에게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를 검찰독재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정치적이라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렇게 철저하게 당을 통제하면서 공천권을 가진 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에 동의할 의원은 없을 줄 알았는데, 무려 39명의 의원이 가결 표를 던져 하마터면 감옥에 갈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속 의원들의 배신(?)으로 불체포특권에도 불구하고 감옥에 갈뻔한 이재명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두 번 다시 이런 위험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범죄혐의로 추가 기소의 위험이 있는 이 대표로서는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것이 체포동의안 가결일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천은 당의 총선 승리나 후보의 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배신하지 않을 사람을 공천하는 것이다. 혼자 힘으론 절대 국회의원 배지를 달수 없는 사람들을 공천해 의원을 만들어 놓으면 이 대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것이고 그에 비례해 충성심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고 김근태 전 의원과 부인 인재근 의원이 내리 6선을 한 민주당 텃밭인 서울 도봉갑구에 듣도 보도 못한 35세 안귀령이라는 여성을 공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재명 대표가 직접 인 의원에게 전화해 출마포기를 요구했고, 그 자리에 안귀령을 공천했다고 한다.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천 파동의 본질은 이것이다. 그래서 비명, 혹은 친문 정치인들이 대거 낙천의 쓴맛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어떤 비판과 비난을 쏟아부어도 이 대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듣기 싫으면 그들이 모이는 의원총회에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사실 그 당시는 대부분 국민이 어렵게 살았었지만) 평생을 혼자 힘으로 거칠게 살아온 이재명에게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형과 형수에게 쏟아부은 막말과 욕설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지금 비명, 친문 정치인들이 겪고 있는 낙천의 서러움은 스스로 만든 업보일 뿐이다. 국회부의장을 지낸 김영주 의원, 판사직에 있던 이수진,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비교적 중립적이고 상식적인 활동을 해 온 박용진 의원, 유승희·전병헌 전 의원 등 이름만으로도 상당한 표를 얻을 수 있는 정치인들이 경선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공천에서 배제됐다. 그동안 이들은 이재명을 옹호하고 그의 사법리스크를 오히려 검찰 독재 때문이라고 비판해 온 사람들이다. 성남시장 시절 지역개발사업과 관련한 이재명의 부패 의혹은 공익을 수호해야 할 검찰이 반드시 수사해 옳고 그름을 밝혀야 할 일이다. 공천 배제된 정치인들이 이재명의 사법리스크가 지방권력의 전형적 부패구조에 해당하여 수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만일 몰랐다면 스스로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정치할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알량한 국회의원 자리를 유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불의를 보고도 눈감은 것이어서 역시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 맹자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지지단야(智之端也)요, 무시비지심(無是非之心)은 비인야(非人也)라고 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은 지혜의 근본이요, 시비지심이 없는 자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이 아니라는 말의 뜻은 금수(禽獸)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이재명 대표의 행태를 보고도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보다도 못하다는 뜻이다. 자신이 공천에서 배제됐다고 뒤늦게 비난하고 소리 지르는 것도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국민의 눈에는 이 대표나 공천 배제된 사람이나 시비지심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로 보인다. 지금 민주당의 공천과정을 보며 이번에는 국민이 올바른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홍성걸

[윤석헌 칼럼] 의료개혁,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라

의료사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사태 발생 후 한 달째인데, 해결의 기미는 안보이고 행정조치 압박과 대규모 시위 등으로 강대강 대치가 지속되면서, 환자와 가족들 애가 타들어 간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여론은 정부 편이다. 국민 대다수(갤럽, 76%)가 지지하는 의대증원을 의사들이 무슨 권리로 반대하는가 라고 묻는다. 그러나 상황이 단순하지 않다. 정부가 제시한 의대증원 2000명의 근거가 불투명하고, 선거를 앞둔 시점에 급작스레 제기할 문제도 아니다. 무엇보다 의료계가 제기하는 반대 이유가 나름 타당성을 지닌다. 적정 의사수 예측과 별개로, 의사증원이 의료서비스 개선의 필요조건이라는 정부 주장도 설득력이 낮다. 의사증원과 의료서비스 개선 간의 연관성이 궁금해 OECD 자료(Health at a Glance 2023)를 살펴보았다. 인구 1,000명당 의사수에서 한국(2.6명)은 일본, 미국 등과 함께 OECD(평균 3.7명) 하위권이다. 의사수 부족을 드러낸다. 다만 한국은 호주, 노르웨이, 영국 등과 더불어 의사수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로 분류된다. 한편 한국은 의료의 성과지표라 할 수 있는 기대수명, 회피가능사망률, 영아사망률 등에서 OECD 최우수 수준이다. 인구 1000명당 병상수에서 한국(12.8개)은 OECD 평균의 3배, 의료기관 이용률(17.2%)도 우수하고, 의사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의료서비스에 대한 자체 부정평가 비율은 매우 높다. 요약하면, 한국은 의사수는 작지만 의료성과는 우수하고, 의료기관 이용률이 높고 외래환자 수도 많지만 소비자 평가는 박한 실정이다. 위 분석을 토대로 의사수 증가가 의료서비스 수준을 높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OECD 자료로부터 '의사수가 작아 의대증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긴 어렵다. 게다가 인구감소, 고령화 시대의 간병인 증가, 로봇 활용, 가치중심 진료시스템 전환 등은 모두 의사수 증가세 약화 내지 감소를 가르킨다. 문제의 핵심은 의대증원 자체 보다 필수의료 서비스 확충에 있다. 의료계 입장도 의대증원에 앞서 제도적 보완과 정부의 적극적 지원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의대는 일반대학과 달리 실습이 요구되고 시설확대나 부속병원 신설 등도 필요한데, 2000명 의대증원은 시간적으로 촉박하고 민간 병원의 투자의지도 의문이다. 서남의대 사태 재발도 우려된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학장들이 2000명 증원이 가능하다고 했다지만, 요즘 폐교위기에 처한 대학들이 증원요구를 수용가능수준 이상으로 부풀렸을 가능성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의대 블랙홀' 문제다. 과다한 의대증원은 의대쏠림을 불러 이공계 등 연관분야 학생 모집에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 둘째, 필수의료 분야는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 필수의료 분야는 업무강도가 높고 사법리스크가 크며 수가는 낮아, 의대증원이 전공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 사직 전공의가 겪었던 문제를 신입 전공의도 조만간 인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 의대 졸업생의 비필수 분야 진출을 시사하는데, 이에 따라 비필수 분야가 활성화되어 필수와 비필수 간 격차가 확대되면 오히려 필수잔류 유인이 낮아지는 악순환이 예상된다. 의대증원에 앞서 필수의료 분야의 근무여건 개선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지방의료체계 정비도 필요하다. 요즘 지방대 의사들이 서울로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데, 이는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추구하는 환자들이 서울로 향하니 그들을 따라 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입 의사들은 지방에 남겠는가. 결국 지방 의료시스템에 대한 소비자 인식 제고를 위해, 지역의무 근무제, 시니어 의사제, 수가조정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전공의 사직이 장기화될 경우 국가의 귀중한 의료인력자원이 사라져 필수의료부문 포함 의료역량의 전반적 하락이 우려된다. 조기 수습이 절실한 이유다. 이번 사태는 2000명 증원이라는 충격요법을 들고 나온 정부의 책임이 커 보인다. 따라서 결자해지 차원에서 정부가 먼저 손을 내미는게 바람직할 것이다. 의대증원 이슈 포함 의료개혁 전반에 대한 원점 재논의를 조건으로, 전공의 요구사항을 수용하여 이들을 협상테이블로 이끌어야 한다. 의사들도 한시바삐 환자와 국민들이 기다리는 병원과 협상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협상을 위한 중재방안으로, 중립적 시각에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제3의 기구를 민간인으로 구성하여, 수요예측과 의료개혁 문제를 원점에서 재논의하는 방안이 적절해 보인다. 윤석헌

[이슈&인사이트] 소비자 주권과 표준화

1942년 2월 미국 볼티모어의 한 빌딩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지하에서 시작된 불은 1시간도 안돼 삽시간에 주변건물로 옮겨붙었고 당시 볼니모어시가 보유한 24대의 소방차와 8개의 사다리로는 속수무책이었다. 워싱턴 D.C., 뉴욕시, 필라델피아 등 주변에서 소방차와 장비가 동원됐지만 장비가 소화전과 연결호스 규격에 맞지 않아 화재진압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불길은 번저 도시 전체를 삼키며 잿더미로 만들었다. 당시에 주마다 각기 다른 소방장비의 표준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같이 큰 대가를 치른 후 미국에서 소방안전 장비 표준화가 이뤄졌다. 요즘 공중화장실에서 한 줄 서기는 생활표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한 줄 서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빠를 것으로 예상되는 화장실 칸 앞에 줄을 서 있다가 운이 나쁘면 늦게 줄을 선 사람이 빠르게 문이 열린 칸에 먼저 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공공안내 표시나 그림 표지를 보게 된다. 공공안내 그림 표지는 그야말로 천 마디 말보다 1개의 그림이나 표시로 더 빨리 더 쉽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지금까지 남성 모습으로 표시해온 비상출구 표지에 치마를 입은 여성의 모습도 추가한다고 한다. 시대 변화에 맞춰 비상구 유도등에 '치마 입은 여성' 도안을 추가해 혼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표준화된 그림 표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의미를 알아볼 수 있게 한다. 국제교류가 확대 될수록 국제 공통의 표시나 표준을 중시한다. 표준은 물품이나 용역에 관한 품질, 성능, 시험방법 등을 단순화·통일화하는 문서다. 표준화는 품질의 개선, 생산능력의 증대 기타 생산의 합리화, 거래의 단순화 및 사용·소비의 합리화와 함께 공공복지 증진에도 기여한다. 표준은 공기와 같아서 평상시에는 못 느끼지만 없으면 매우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 생활 주변의 침대 등 가구, 차량 부품 등 수 없이 많은 제품에 표준이 적용되고 있다. 제품 뿐만 아니라 제품, 서비스, 시험, 검사, 국가 간의 무역 등 거의 모든 분야에 표준이 활용되고 있다. 표준은 소비자의 편리성 확보외에도 기업 및 국가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한다. 시장에서 먼저 표준이 정해지는 소비제품의 표준은 기업 경영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고 기업의 경쟁력 강화 나아가 국가의 경쟁력 강화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게다가, 표준의 중요한 목적인 호환성은 기업 생산공정의 혁신, 신기술개발 촉진 등을 촉발한다. 표준화는 생산비용을 감소시키고 생산자 및 소비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글로벌 경제하에서 국가 간 무역이 확대되고 상품 및 서비스의 이동이 많아지고 자유로와짐에 따라 국제표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무역의 80% 정도가 표준의 영향을 받고 있다. WTO/TBT 부속서에는 국가 간 상품 및 서비스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려고 국제표준이 존재하는 경우 각국은 국제표준을 국가표준으로 받아들여 불필요한 무역장벽을 만들지 않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아울러 각국은 국제표준을 소비자 안전과 편익, 환경 보호 등을 위한 각종 규제와 기술기준으로 받아들일 것을 권고 받고 있다. 과거 표준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유형적인 분야에 적용됐지만 산업이 발전하고 다양화되면서 무형의 서비스, 안전, 소비자 분야로 확대되며 일상생활에서 표준이 적용되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최근 AI 및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등장과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관련 제품 및 서비스에소 표준이 제정되는 추세다. 한편으로 소비자는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제품과 서비스 다양성 속에서 안전, 환경, 편익 등의 문제를 겪기도 한다. 표준이 이처럼 생활속에 깊숙히 자리잡았는 데도 일반 소비자들은 표준을 국가나 기업 등 남의 일처럼 생각할 정도로 인식 수준이 낮다. 소비자 주권 확보 차원에서도 국가나 세계 표준 제정에 참여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이슈&인사이트] ‘안전카르텔’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법률가 키르히만(Kirchmann)은 “법률가는 엉성한 실정법으로 말미암아 튼튼한 나무를 버리고 썩은 나무를 먹고 사는 벌레가 되고 말았다"고 일갈했다. 이 주장을 안전을 둘러싼 우리나라의 현 상황에 빗대어 말한다면 로펌뿐만 아니라 정부, 안전컨설턴트, 안전학계 등이 '카르텔'을 형성해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썩은 나무에 기생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원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안전이 흔들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카르텔의 중심에 학계가 있다. 안전학계는 우리 사회의 안전에 관한 중요이슈에 대해 학문적으로 대안제시는커녕 문제제기도 하지 못하고 있다. 학회 학술대회에 학술토론이 없고 학회가 친목단체와 다를 바 없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더더욱 학계로서의 전문적 권위는커녕 존재감조차 없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대재해처벌법에 편승해 안전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데 급급한 자들로 넘쳐나고 있다는 점이다. 안전에 관한 학문적 역량이 의심스러운 '무늬만 학자'인 자들이 교수라는 감투를 쓰고 엉터리 연구와 자문, 평가를 하면서 안전을 오염시키고 있다. 학자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다. 심지어는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안전에 대한 높아진 사회적 관심을 악용해 아예 드러내놓고 '학위 장사'를 한다. 로펌과 안전컨설팅기관은 공포마케팅을 통해 '묻지마' 컨설팅을 부추기고 있다. 안전을 제대로 공부한 적 없는 이들은 실질적 안전이라는 염불보다는 돈벌이라는 잿밥에 여념이 없다. 엉성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무기 삼아 기업을 대상으로 한몫 챙기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안전관계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아마추어들이 대놓고 전문가 행세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의 모호성과 공포분위기 조성이 아마추어의, 아마추어에 의한, 아마추어를 위한 안전컨설팅 시장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에게 휘둘리거나 전적으로 의존하다시피 하는 기업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노동조합도 겉으로 내거는 명분과는 달리 안전카르텔을 간접적으로나마 조장하고 있다. 소위 강성노조일수록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은 따지지도 않고 엄벌만능주의라는 도그마에 빠져 있다. 이들은 평상 시 노동자의 안전을 확보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고 안전을 주로 회사 측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생각한다. 노조입장에선 모호하고 지키기 어려운 법일수록 협상력이 커지기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만큼 좋은 법이 없을 것이다. 예측가능성과 이행가능성이 결여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수사기관의 자의적 법집행에 날개를 달아줬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수사기관은 CEO를 피의자로 소환하고 본사를 손쉽게 압수수색한다. 실제로 로펌과 대기업에서 수사기관 출신 '전관'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 법원칙에 맞지 않는 자의적 법집행의 남발은 기업으로 하여금 '전관'을 찾게 하는 주범이다. 기업에게 예방역량 강화라는 정공법보다는 편법을 동원하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작업중지명령 해제위원회'라는 제도와 이의 자의적 운영이 전관을 이용해 작업중지명령을 빨리 해제하도록 로비하게 하는 꼼수를 쓰게 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후 남발하는 안전보건진단명령도 흑심을 품은 전관이 활개 치게 만드는 온상이 되고 있다. 경험상 실질적 재발방지보다는 전관을 활용한 대응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산업안전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잘못된 법제도와 그 운영이 안전카르텔의 텃밭이 되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려고 하기는커녕 되레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주무부처에 이 문제를 맡기는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안전카르텔 문제는 지난 정부에서 제공한 측면이 크지만, 이 문제를 방치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윤석열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안전카르텔에 손을 대는 것은 현 정부의 국정철학인 정의와 공정과도 부합한다. 정부가 힘 있게 문제해결에 나서도록 하려면 역시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정진우

[이슈&인사이트] 한국 핵무기 보유, 만병통치약 아니다

북한이 최근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며 군사 위협을 강화하면서 한국 국민의 70% 이상이 자체 핵무장을 지지한다는 여러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민 여론만 보자면 한국의 핵무장은 시간문제일 뿐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보인다. 이에 국내외 여러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한국 핵무장시 이해득실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고 있다. 찬성 측은 북한 핵에 대응에 가장 효과적이고 핵무기 없이 북한에 대한 전쟁억제력을 가질 수 없으며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을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대측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 훼손과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따른 국제사회의 외면과 비난을 초래해 고립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많은 비난과 고립 가능성을 무시하고국가 안보 위협을 내세워 핵무장 목표를 달성했다. 핵무장 후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국제사회는 결국 이들 국가의 핵 보유를 인정하거나 묵인했다. 북한은 핵 보유를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지도부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들 사례를 보면 한국의 핵무장도 당위성 확보가 가능하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최고의 억제력은 핵무기이고 핵 보유가 장기적으로 국가안보를 보증할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한국의 핵 보유는 중장기적으로 국방력 약화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은 북한 핵 등 안보 위기와 함께 급격한 인구 감소 및 복지 예산 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 압박이 크다. 핵 보유는 초기에 개발과 보유에 많은 예산이 소요되지만 중장기적으로 재래식 전력을 축소해 예산도 절감하고 병역 자원문제도 해결해 복지 예산을 확충하는 대안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핵 보유가 국방력 약화를 초래하는 동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은 냉전 초기 핵무기를 대규모 병력이나 대포, 로켓 등 보다 성능이 좋은 대량파괴 무기로 많은 돈과 인력이 필요한 재래식 전력을 대신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1960~1970년대 '핵우선사용' 원칙을 고수하며 재래식 전력 증강을 등한시한 결과 1980년대 핵무기와 함께 강력한 재래식 전력도 확보한 소련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미국이 핵무기로 일본을 굴복시킨 1945년 이후 핵이 사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핵무기는 가공한 파괴력을 가진 최고의 무기이지만 국가의 절대 무력을 상징적으로 과시하는 대안이지 전쟁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의 재래식 침공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핵전쟁을 회피하고자 핵무기를 보유했는데 결국 핵전쟁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미국과 나토는 많은 재정적 출혈을 감수하며 재래식 전력을 확충하여 서방의 핵 억제력의 신뢰와 효용을 제고했다. 핵보유국의 재래식 전력이 약하면 오히려 전쟁에서 핵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어려운 선택이었다. 현재 동북아 상황은 한국이 핵을 가져야 할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만약 미국이 인정한다면 한국이 핵 보유에 나서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미동맹을 훼손할 정도로 한국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밀어붙일 동기는 부족하다. 만약 미국이 한국에 안전보장과 핵우산 제공을 포기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핵무장이 가시화될 수 있다. 한국은 성급하게 독단적인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기보다 미사일 등 투발 수단, 원자력추진 잠수함 등 관련 분야 기술을 확보하여 향후 핵 보유에 대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핵무장을 통한 궁극적인 국가안전 보장은 정교한 한국만의 핵과 재래식 균형 전략에 기반을 둬야 한다. 국제사회가 핵무장을 지지하더라도 중장기적인 '핵무장의 저주'를 피해야 한다. 핵무기는 전쟁에 사용하지 않기 위해 보유하는 모순적인 무기이기 때문이다. 핵무기를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한 많은 국민이 재래식 전력 유지를 위한 노력을 거부할 수 있다. 이런 오판을 방지하기 위해 핵무기는 최후의 보루이자 국가를 보호해 주는 보험이라는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 이상호

[이슈&인사이트] 북한의 ‘적대적 두국가’ 선언과 한국의 대응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개최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노선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을 정리·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제시하고, 유사시 핵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는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라고 하면서,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란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속조치로 조평통,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 등 통일추진기구를 폐지했고,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범민련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평화통일협의회 등 남북 민간교류에 관여해 온 단체들을 정리했다.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조국통일 3대 헌장기념탑도 철거했다. 북한의 '통일'과 '동족'을 지우려는 모습은 동독이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서독과 단절해 분단을 고착화하려 했던 시도와 흡사하며, 김일성 정권 이래 견지해 온 '민족자주' 통일노선을 파기하게 셈이 된다. 그렇다면 김정은이 '두 투 코리아(Two Korea)' 정책을 선언한 배경은 무엇일까? 첫째, 체제를 유지하고 흡수 통일을 막기 위한 방어적 성격이다. 남북관계를 독립된 주권국가 관계로 하는 것이 후계구도의 제도화를 위한 정치체제 전환에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북 간 치열한 체제경쟁의 결과, 한국은 선진적 중견국이 되었으나, 북한은 만성적인 경제위기·식량위기를 겪고 있는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한류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고 탈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과 정치적·국제법적으로 완전히 단절해 흡수 통일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것이다. 둘째, 남한을 향한 핵사용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공격적 성격이다. 북한은 2022년 4월 5일 김여정 담화를 통해 전쟁 초기 주도권을 장악하고 타방의 전쟁 의지의 무력화를 위해 핵 사용을 밝힘으로써 사실상 한국이 대상임을 천명했다. 이제 김정은이 '적대적 국가 간 관계' 선언을 통해 한국을 동족관계가 아닌 독립된 주체이자 타자로 정체성을 규정하여 핵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했다. 셋째, 긴장을 조성해 4월 한국 총선에 영향을 미치고 11월 미 대선 이후 미국과의 담판에서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다. 넷째, 외교 전략 공간을 확대하려는 심산이다. 북한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북러 밀착, 나아가 북·중·러 북방 3각 연대 가능성 등 현 국제정세가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과 보다 가까워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입장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북한은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및 미국과의 수교 교섭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의 '두 개의 국가' 선언은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 관계"로 규정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경계해야 한다. 남북한이 별개의 국가로 존재함을 인정하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통일 추진의 당위성이 약화된다.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고, 주변 4강 등에 대한 통일 외교 기반이 흔들릴 우려가 있다. 중국 등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하는 데 있어서 제약이 생겨 북핵문제 해결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남북한 특수한 관계' 원칙 아래 처리해 온 탈북자 문제에 있어서도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헌법 개정 문제 대두가 대두되고 이념 갈등이 증폭될 것이다. 북한내 급변사태 발생시 한국의 개입 명분이 없어지게 되는데, 한국은 통일을 지향하는 분단국가로서 북한 문제에 개입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2국 체제'에서는 개입이 어렵다. 한편으로 김정은의 '두 개 국가' 선언은 북한의 형제국이라 할 수 있는 쿠바에게 부담을 덜어줘 한국과의 재수교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에 대한 불만으로 외교단 소식을 전할 때 쿠바를 언급하지 않았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를 내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북 가능성을 언급했는데, 북일 관계 정상화 가능성을 내비쳐 한-쿠바 재수교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두 개 국가' 주장에 대해 통일부는 “북한의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노선과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정부로서는 역대 남북 합의가 유효하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해 나가면서 북한의 도발에 대한 위기관리에 주력하되, 주변 4강에 대한 외교 전략을 치밀하게 가다듬고 대응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북한 주민들이 대내외 실상을 보다 더 많이 알게해 체제붕괴 등 내부 변화가 생기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이강국

[이슈&인사이트] 거시경제학으로 본 의료개혁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심장부인 한국은행 조사국에는 J.M. 케인즈의 어록이 걸려 있다. 케인즈는 순수한 시장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경제 개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거시경제학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이 분야는 정부 정책의 효과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경제학 분야이다. 필자는 거시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의료개혁과 같은, 겉보기에 경제학과 관련 없어 보이는 사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건강보험부터 의료개혁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정부가 의료시장에 개입하는 경제학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짚어보자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필수의료 서비스의 부족 문제는 공급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실패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다시 추가적인 규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건강보험 시스템은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지 못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주저한다. 현재의 의료공백 문제는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다. 경제원론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떠올려 보자. 수요가 증가하면 일반적으로 가격도 상승한다.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은 더욱 올라간다. 반면,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량은 증가하고 공급량은 줄어든다. 우리나라 의료시장에서는 필수의료(급여) 서비스의 가격이 포괄수가제 등을 통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요량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공급량은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가격통제에 의해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할 경우 암시장이 형성돼 수요공급의 균형을 이루지만, 의료서비스라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는 암시장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시장은 지속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 가격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해졌다. 이론상으로 필수의료는 더욱 수요량과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료비가 저렴한데 건강보험은 중복지급되니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은 같은 상병으로 여러 병원을 방문해 중복진료를 받는다. 이런 중복지급은 건강보험 재정에 치명적일 것이지만, 급여진료에 대해 병원에 지급되는 수가는 원가 이하 수준으로 책정돼 재정 고갈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필수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의 상황은 어떠할까? 회사든, 정부든, 개인이든, 적자는 결국 파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원도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비급여 진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의료개혁 방안은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고 의사 수를 매년 2000명씩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고 매년 2000명의 새로운 의사들을 의료서비스에 추가 투입한다고 해도, 과연 필수진료과목인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의 수가 증가할까? 이 정책은 마치 실패가 예상되는 사업에 창업을 권하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의 직업을 통해 생활의 안정을 찾고, 사회적 지위와 부를 쌓는 것이 일반적인 목표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시스템 속에서 특정 산업에만 적자가 불가피한 직업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만약 이 정책이 의료분야로의 과도한 진입을 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대학입시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전체 의료분야를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 정책이 의료분야를 더 이상 선호되는 직업경로로 만들지 못한다면, 정부가 추가로 확대하려는 2000명의 의대 정원은 과연 누가 채우려 할까? 이는 단순히 대학 입시 문제를 넘어서 의료 분야 전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재평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김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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