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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잭슨홀 미팅을 기다리며

미국 시간으로 22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와이오밍에서 잭슨홀 미팅이 열린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지난 달 발표한 비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년 만에 최저치인 48.8로 발표되고 일본 BOJ가 시장의 예상과 다르게 금리를 0.1%에서 0.25%로 15bp (1bp=0.01)나 인상하자 세계 금융시장은 텐트럼을 일으켰다. 엔화가 달러당 150엔도 깨고 하락(엔화 가치상승)하기 시작하자 엔케리 투자자금의 회수(unwinding)가 일어났고 코스피가 8월5일 장중에 10% 넘게 빠지며 거래가 중지되는 서킷 브레이크까지 발동되었다. 단 3일만에 코스피는 13% 일본 니케이는 18% 그리고 미국 S&P 500과 나스닥은 각각 6%, 7.8% 하락했다. 가히 금융위기에 준하는 사태로 전세계 금융시장이 경기를 일으켰다. 다행히 일본 중앙은행장인 우에다 총재가 10월 추가로 25bp 금리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사실상 철회하면서 엔화가 안정되자 시장은 반등을 시작했다. 그 후 발표된 미국의 ISM 서비스지수, 생산자물가지수(PPI)와 소비자물가지수(CPI) 그리고 소매판매(Retail Sales) 지수마저 좋게 나오면서 미국의 3대 주가지수는 급락했던 시점의 포인트를 넘어섰고 우리와 일본도 90% 넘게 지수가 회복한 상태다. 시장은 이제 다시 금리인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 연준(FED)이 금리인하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물가 지표인 CPI와 PCE를 중요시했지만 지금은 고용지표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하반기로 접어들자 수면 위로 올라온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시장 참여자들을 긴장시켰고 이번 달 초 엔케리 여파로 장이 폭락하자 이를 막아 달라고 9월 연준회의(FOMC)까지 기다리지 말고 비상회의를 소집 해 50bp 이상 금리를 내리라고 아우성을 쳤다. 지난 주 엔화의 안정과 인플레를 나타내는 PPI와 CPI가 예상보다 약하게 나오면서 인플레는 안정적으로 줄어드는 게 확인됐고 미국 GDP의 70%를 구성하는 소비를 알 수 있는 Retail Sales마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면서 카드 연체가 늘고 저축율이 줄어 미국 소비가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한 순간에 잠재웠다. 엔비디아로 대표되는 반도체 주식들과 특히 개인들의 소비 바로미터인 월마트의 실적이 좋게 나오면서 8월 초 급락을 이겨내고 주식시장은 상승을 하였다. 이제 FED는 FOMC 회의 전까지 나오는 데이터를 가지고 금리인하 폭과 향후 금리인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의 추석 연휴 기간에 미 연준 회의가 열리고 이 때 금리가 결정된다. 대부분 사람들의 예상은 25bp 인하지만 혹시나 Big rate cut도 가능하지 않을까 추측만 하고 있는 상태다. 그 문제의 열쇠가 될 잭슨 홀 미팅이 이번 주에 열린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장, 재무장관, 경제학자 및 초청된 사람만이 참석하는 연례 행사, 참석자 중 당연히 세계는 제롬 파월의 입만 주시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금리인하의 어떤 힌트를 주지 않을까 하는 이유다. 금 값의 최고치 경신을 보면 시장은 이미 경기침체를 대비하고 있다. 시장은 50bp 인하를 기대하고 있다. 인플레 지표가 안정되어 걸림돌이 없어졌다. 하지만 금리인하의 또 다른 조건인 경기침체를 확신할 만한 지표가 나오지 않고 있어 큰 폭의 금리인하는 힘들 거라고도 생각한다. 7번 금리인하설 등 여러가지 궁금증들, 하지만 파월은 에둘러 이야기할 거다. 그래도 그가 실수라도 어떤 얘기를 하지 않을까 세계는 촉각을 세우고 있다. 우리 금리인하의 선제 조건이 미국의 금리인하이고 개인 부채와 부동산 PF 문제도 걸려있기에 이번 잭슨홀 미팅이 우리에게도 정말 중요한 행사임에는 틀림이 없다. 최용

[EE칼럼]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변동대책 체계화해야

오래 종사한 에너지-자원 국제동향 파악에는 나름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 능력 부족을 의미하는 비학비재(非學非才)의 한계를 절감한다. 변화무쌍이라는 시쳇말처럼 글로벌 에너지-자원 산업변화가 심하기 때문이다. 평생 몸담아온 에너지 부문에 대한 최소한의 기여도 못 한다는 후회가 크다. 국외 전문가 그룹들은 유례없는 비상사태에 있다고 한다. 시장여건의 급변상황을 학제적 논리로 파악하여도 정치적-지정학적 여건 급변에 따라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련 학문과 전문가들의 존재 이유가 의심받을 위기상황이라고 국외 동료들이 전한다. 따라서 세계 차원 수급예측을 바탕으로 검증 가능한 시간과 국가-지역 범위를 정하고 연구방법론 설정한 후 가설제시- 검증- 사후 평가라는 전통적 시장분석과 예측의 적정성이 급변하기 마련이다. 중-장기 시장분석과 예측보다 바로 눈앞의 시장 혼란과 관련 당사자들의 손실경감을 위한 단기분석과 대응전략 제시가 시급하다. 최근의 국제 에너지 시장의 단기 관심사는 1) 국제유가의 하향 안정 가능성 확대 2) 러시아 가스 의존도 하락과 유럽의 단기(특히 금년 겨울) 에너지 수급 안정 여부 3) 미국의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 발전의 추가 확대 등이다. 국제유가는 8.19 일 뉴욕시장에서 WTI((서부 텍사스 중간 품질원유) 기준으로 지난 한 달간 10달러/'배럴' 수준 하락 후에 하향/안정세이다. 미국과 중국 경기회복 지연과 추후 하락 가능성에 주로 기인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식- 금융시장과 기타 원자재 시장에도 같은 추세로 나타난다. 따라서 올해 에너지 시장 중기 예측은 차분한 약보합세가 주된 내용이다. 수요부문의 불확실성이 공급부문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여 유가는 미국 시장과 유럽 시장에서 배럴당 70달러 후반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2년 평균 수준보다 대략 10% 낮다. 유럽 가스 가격도 2년 동안 최저 수준이다. 곡물과 기초금속도 전반적 약보합세다. '코로나' 사태 이후 2020년대 초 글로벌 경기회복에 따른 일시적 에너지-원자재 가격 상승 추세가 기력을 다한 셈이다. 유럽 천연가스 문제는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2022년 12월 러시아 원유-에너지 수입금지조치로 유발되었다. 그 후 해상 파이프라인의 폭발 등으로 러시아 가스 수입량은 2021년 450백만M3(큐빅미터)에서 올해 150백만M3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2년 만에 1/3 수준이 된 것이다. 유럽 천연가스 수요감소는 주로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와 우크라이나와 터키 등 남유럽 경유 가스등으로 충당되고 있다. 그러나 단기 이상 혹한 등에 비상 대비책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겨울 유럽 가스 비상대책은 수요 조정 이외에는 뚜렷한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자유 시장체재에서 원활한 물량이동과 조정이 적정시간 내에 완료되기를 기대할 뿐이다. 미국의 경우 수백억 '달러'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정부의 지원/허가를 통해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대규모 수력과 배터리저장 사업도 진전되고 있다. 원전의 경우 폐쇄된 원전의 수명연장을 통한 재가동이 주목된다. 예컨대 40년 가동 후 2 022년 폐쇄된 미시간 Palisade 원전이 재가동되었다. 다른 폐쇄 원전들도 재가동하여 소형 '모듈'원전(SMR) 개발 때까지 전력수요를 담당할 것이다. 기존 폐쇄 원전 재가동은 투자비 절감과 공기 단축뿐 아니라 SMR 등 미래 신에너지개발 기간 중의 인공지능(AI) 사업용 전력수요 충당을 할 것이다. 이에 미국 정부는 원자력을 청정에너지로 간주하고 '인플레 감축'법(IRA) 지원 대상으로 지원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위기의식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단기 시장 대책은 매우 부족하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의 폐기에 따른 원전부흥과 이를 위한 새로운 장기전원개발계획 수립에만 큰 관심이 쏠린다. 지금 당장 실행하여 그 책임이나 공과 회피로 오해될 수 있다. 정부나 공기업 등 공공기관, 그리고 미래 사회를 선도할 학계로서는 변명의 여지가 많지 않다. 수많은 언론기사나 관련 전문가 의견들도 같다. 앞에서 언급한 경우들을 종합하면 우리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강조한 남북분단, 동북아 지역 긴장 고조 등에 대응한 '자유주의' 진전에 큰 장애가 우려된다. 이는 진영이나 이념의 일부 차이에도 우리나라의 필수 생존과 번영조건의 하나일 것이다. 20세기 후반 이후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두 가지 근간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이다. 이 중 정치적 자유주의는 민주 진영 국가 확대와 동유럽-아프리카 자유화 진전 등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주의는 퇴보가 많다는 관련 학자들의 기존 주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사실 국가나 종교와 이념, 노조 등 강력한 사회 주체들의 과도한 관여와 영향력을 행사에 따라 건전 경제성장과 배분에 장애가 발생했다. 러시아가 참여하는 OPEC+ 등 경제 '카르텔'과 공동체들의 활동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이에 '경제적' 자유주의 한계는 지난 세기말∼이번 세기 초까지 지속 증가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코로나 대유행 사태 이후 지난 2년 동안의 경기 둔화와 그 직후에 닫친 '인플레이션' 위기가 미국, 유럽 등 주요 선진국에 닥쳤다.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30년 동안의 저물가 시대 지속인 셈이다. 이 결과로 기후변화 대처와 에너지전환 투자에 악영향이 불가피하였다. 물론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불확실성이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금년 초 국회를 통과한 '자원안보특별법'의 보다 적극적 활용 방안 검토가 요구된다. 이 법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 수소, 핵심 광물, 신재생에너지 설비 소재·부품 등을 '핵심자원'으로 지정하고, 평상시에도 정부가 비축, 공급망 취약점 분석, 조기경보 시스템 운영 등을 운영한다. 이에 국가에너지계획, 장기전력-천연가스 수급계획, 신재생에너지 보급계획, 지구온난화방지대책 등과 한전 등 수많은 공기업 운영전략 수립과 정부승인과정에서 전략 보완과 상호 연계 강화가 요구된다. 장기 정책목표 실행과정에서 정부 실패를 당연시하고 공기업 등에 의한 시장실패를 허용하는 기존 정책체계를 '자원안보특별법'의 강력 시행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그리고 유사(類似)독과점 성격을 가진 민간기업들까지 가세한 자기들만의 관료주의 관행에 의한 시장/정부 실패 가능성을 이참에 끊자. 최기련

[기자의 눈] ‘꼼수합병’ 논란의 두산,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두산그룹이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의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을 발표한지 한 달이 지났지만 '꼼수합병', '밸류다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두산밥캣 1주를 두산로보틱스 0.63주로 받는 1대 0.63의 합병비율이다. 영업이익 연 1조원의 두산밥캣과 적자 회사인 두산로보틱스의 합병비율이 상식상 부적절하다는 거다. 두산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보유한 주주 입장에선 손해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합병비율을 재산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두산밥캣에 투자한 한 미국계 투자사 관계자는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 관련 세미나에서 “합병 공시를 보고 솔직히 두 눈을 의심했다"며 “이번 합병의 실질 수혜자는 두산으로, 두산을 위한 합병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도 꼬집었다. 두산은 “자본시장법에 맞게 산정한 비율"이라는 이유를 들어 합병비율 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주들은 물론 금융당국과 정치권도 지탄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합병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경우 횟수에 제한 없이 정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정치권에서는 박정원 두산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재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국회에서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하는 일명 '두산밥캣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상장법인간 합병비율 산정 시 주가만이 아닌 기업의 자산가치, 수익가치 등으로 산정해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대로라면 합병 무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함으로써 합병에 반대할 가능성이 농후해서다. 지난 2014년 이미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해 합병이 무산된 사례가 있다. 업계에서는 또 이번 합병이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지적한다. 주주친화, 이사충실의무 등 밸류업 정책의 핵심이 되는 내용들과 상충한다는 것. 시기상 한국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이 첫 발을 내딛은 시점이라서 금융당국으로선 쉽게 합병을 승인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두산그룹은 합병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합병 증권신고서의 효력 발생일 전날인 27일이면 금융감독원의 수용 여부가 결정된다. 수용 대신 정정 요구가 나올 것으로 점쳐지는 가운데 두산이 합병에 성공하려면 합병비율 산정에 대한 재조정만이 답이다. 합병비율 조정 없이는 합병을 향한 기차가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을 두산이 깨닫길 바란다. 김기령 기자 giryeong@ekn.kr

[이슈&인사이트] 전기차 배터리에 계영배 시스템을 설계하라

계영배는 과음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잔으로, 절주배라고도 한다. 술잔의 이름은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이며, 잔의 70% 이상 술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지닌다. 고대 중국에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하늘에 정성을 들이며 비밀리에 만들어졌던 '의기'에서 유래되었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스스로 과욕을 경계하기 위해 사용했던 '의기'를 보았다. 의기에는 술을 어느 정도 부어도 전혀 새지 않다가 7할 이상 채우게 되면 밑구멍으로 새어 나가게 되어 있었다. 공자도 이를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자신을 스스로 가다듬으며 과욕과 지나침을 경계했다. 조선에는 도공 우명옥이 만든 계영배가 있다. 이 술잔을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이 소유하게 되었는데, 그는 계영배를 늘 옆에 두고 끝없이 솟구치는 과욕을 다스리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한다. 전기차 배터리에 계영배 시스템을 제안하는 이유는 전기차를 안심하고 사용하기 위해선 폭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과충전을 차단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들에게는 '가득'이라는 단어에 대한 선호 현상이 있다. 술도 가득히 넘쳐야 상대를 배려한다고 생각하고 주유소에서도 기름을 주입할 때, '가득히(만땅)'를 선호한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전기차도 과충전한다. 벤츠를 비롯해 전기차 판매 기업 다수는 충전 상한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80% 이상 충전 시에는 충전 속도를 늦추거나, 계기판에 나타나는 충전 상태보다 실제로는 더 적게 충전되게 하는 등의 기능도 제공 중이다. 그러나 장거리 주행이 필요하거나, 자주 충전하기 어려운 운전자의 경우, 더 높은 수준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려 한다. 이때, 충전기가 배터리 잔량 정보를 확인하고 과충전을 차단하는 전력선통신(PLC) 모뎀이 해결책 중 하나다. 이것이 바로 전기차 배터리의 계영배 시스템이다. 그런데 문제는 PLC는 전체 충전기 19.4만기의 89.4%인 완속 충전기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인천 청라 풍경채 아파트 지하 주차장 벤츠 EQ 전기차 화재로 23명이 다치고 차량 140여 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린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이번 화재로 인해 정전이 발생하면서 480여 세대의 전기와 물 공급이 끊겼다. 전기차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환경부 주관으로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이 참여하는 관계 부처 긴급회의를 열고 내달까지 전기차 화재 종합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한다. 이제라도 전문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단순히 지하 주차장에 전기차를 진입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충전기의 지상 이전과 같은 피상적 방안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에 전기차 화재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과충전이 지목되자 아파트 등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배터리 잔량이 90% 이하인 전기차만 출입하도록 바꿔나가겠다고 한다. 이것은 누가 어떻게 90% 이상 충전된 차를 점검하고 차단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없다. 국립소방연구원이 2023년 발간한 전기차 화재 대응 가이드를 살펴보면 2022년 기준 차량 1만대 당 화재 발생 비율은 내연기관차가 1.84대, 전기차가 1.12대로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최근의 전기차 화재 사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어설픈 정부 대책으로 캐즘에 포비아까지 가뜩이나 어려운 전기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기차는 한국이 반도체 이후 국가 경제의 큰 축인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을 이끄는 미래 먹거리 산업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탁상공론이 아닌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윤덕균

[이슈&인사이트] 쾨니히스베르크를 아시나요?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오래전 프로이센 왕국의 동쪽 발트해의 항구도시인 쾨니히스베르크 중심부를 흐르는 프레겔강에는 두 개의 섬이 있었다. 이 섬들에 접근하기 위해서 일곱 개의 다리가 건설되었는데, 많은 사람은 '어느 지점으로부터 일곱 개의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서 원래 위치로 돌아오는 방법'을 찾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이른바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라고 부르는 이 한붓그리기 문제는 당시 학자들의 고민거리가 되었는데, 이 문제가 현대 수학의 새로운 분야를 창조하기까지 하였고 통신망 분석과 컴퓨터 회로 디자인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당시 독일 학문의 중심지였는데, 일곱 개의 다리로 연결된 섬에는 대성당과 16세기에 설립된 대학교가 프로이센 왕족, 러시아의 고위 관료, 발트 독일인들이 선호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이 대학교는 중상주의 철학과 신학, 법학 그리고 의학과 수학 등으로 높은 명성을 가졌다. 이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는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이다. 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고 평생을 보내며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하며, 칸트가 평생 이곳을 떠난 적이 없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쾨니히스베르크라는 도시의 역사는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트인들이 살고 있던 이곳에 독일계 튜튼 기사단이 요새를 건설하면서 역사가 시작되었다. '왕의 산'이라는 의미의 쾨니히스베르크는 북방 십자군의 전진 기지 역할을 했으며, 기사단 국가의 수도가 된 이후 프로이센 공국으로 전환되는 16세기에도 국가의 수도로서 발전하였다. 프로이센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과 통합되면서 수도는 브란덴부르크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정해졌고, 쾨니히스베르크는 동프로이센의 중심도시로 남았다.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긴 후에도 프로이센 국왕들은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대관식을 치르는 등 특별한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베를린이 함락당하자, 프로이센의 국왕은 쾨니히스베르크로 수도를 옮기며 프랑스군에 저항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곳은 독일의 통일이 이루어진 제국 시대에도 베를린과 함께 독일 제국의 동부 거점 역할을 하였다. 이 도시는 발트해와 폴란드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요충지였고, 러시아로도 연결되는 길목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일은 파괴된 쾨니히스베르크를 소련에 내주어야만 하였는데, 소련은 이 도시의 이름을 칼리닌그라드로 바꾸었다. 그러나 쾨니히스베르크 당시 독일이 만들었던 항구나 노면전차와 같은 여러 시설은 소련 시절을 거쳐 현재 러시아에서도 여전히 활용되고 있다. 발트 3국이 소련에 편입되어 있던 시절이 끝나고 독립하면서, 지금 칼리닌그라드는 러시아 본토와 분리된 역외영토가 되었다. 이곳은 러시아에 드문 부동항이어서 해상무역에 유리하고 전략적으로도 중요하여, 러시아 해군에서 가장 오래된 발트함대의 본부가 자리하고 있는데, 최근 유럽의 안보 상황을 고려하면, 칼리닌그라드의 중요성을 크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이 도시에 많은 영향을 받아온 리투아니아와 같은 일부 유럽 국가들은 최근에 '칼리닌그라드' 대신에 '쾨니히스베르크'라는 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도시의 역사에 나타나는 사건들을 해석하는 것에 시비를 걸거나 소유권을 논의하자는 것은 아니다. 발트해의 상업적 요충지였던 이곳이 군사적 도시이자 국가의 수도나 제국의 주요 도시로 발전하였으나, 전쟁터가 되고 파괴를 경험하면서 이름조차 사라지는 불행을 겪었다는 점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도시들 역시 전쟁을 겪었던 아픔을 간직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쾨니히스베르크가 사라지고 칼리닌그라드가 되는 이야기는 한국인에게는 생소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도시의 성장과 발전이 갈등과 전쟁을 부르고 파괴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의 도시들을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할 숙제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김봉철

[기자의 눈]‘내 집 마련의 꿈’ 청약 제도 손 볼 때 됐다

“아파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작년 말 후보자 시절 첫 출근길에서 한 말이다. 인구 고령화 등 사회가 변화하면서 주택 수요 역시 다양하게 바뀔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최근 나온 '8·8 부동산 대책'에 빌라 공급 활성화 대책이 포함된 것도 해당 발언과 그 궤를 같이한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이미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점이다. 전체 가구 중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수요자들도 대부분 아파트에 살기를 원한다. 건설사들의 기술력도 '더 좋은 아파트'를 만드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주택 청약 제도는 이 같은 현상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집을 보유한 이력이 있으면 좋은 아파트에 청약하기 힘들어진다. 빌라를 사는 것은 전과자처럼 낙인이 찍히는 길이다. 자연스럽게 시장도 왜곡된다. 충분히 집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중산층이 청약 점수를 높이겠다며 전세 계약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서민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을 꾸게 한다는 제도 도입 취지는 무색해진지 오래다. 자금 여력이 없으면 '로또 청약'도 기대하기 힘들다. 1977년만 해도 주택 청약은 공공 주택에만 할 수 있었다. 정부는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규제를 풀거나 조이며 이를 다듬어왔다. 1순위 자격 기준을 꾸준히 변경했고 '0순위' 같은 말들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다만 '무주택자=서민'이라는 잘못된 공식을 아직 바꾸지 않은 탓에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별공급 요건을 무제한으로 추가하며 누더기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작 보호가 필요한 계층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가는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 수는 2548만9863명으로 전월(2550만6389명) 대비 1만6526명 줄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34만7430명이나 감소하며 청약 통장 해지 열풍이 부는 모습이다. 수십억원대 전세를 살면서 부부가 동시에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 청약을 넣는 이들은 사회가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아파트가 너무 비싸 빌라를 구입한 이력이 있는 사람은 불이익을 줄 대상이 아니다. 정부는 주택 청약 제도를 근본적으로 손볼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를 아파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게 해줄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여헌우 기자 yes@ekn.kr

[신연수칼럼] 이재명, ‘여의도 제왕’에서 벗어나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격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하는 말이다. 살다보면 누구나 영혼 없이 의례적인 말을 할 때가 있다. 일반인들도 그런데 무슨 문제가 되느냐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사 의례적인 말이었다 하더라도 본인 스스로 “그건 거짓말이었소" 하는 식으로 정면 부정하는 일은 별로 없다.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은 100%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경쟁하거나 싸우는 상대라도 서로 존중하는 문화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며, 특히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이 대표는 그건 가짜였다며 자신이 했던 앞의 행동을 전면 부인해버렸다. 그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심각한 일이다. 그가 언제든지 마음에 없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사례는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방위산업체에 2억 3100만원 상당의 주식 투자를 한 일이다. 0.73%포인트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후 많은 지지자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 후보 본인은 거액의 주식 투자를 하고,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하고,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국회 국방위원회를 지원했다. 경기도지사 시절 부인의 법인카드 남용 의혹과 함께 공공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행동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나는 살아 남아야겠다'는 강한 자의식을 가졌다는 점에서 '한국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떠올리게 한다. ◇헌정사에 새 역사 쓰는 '이재명의 민주당' 그제 8·18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는 압도적 지지로 연임이 확정됐다. 민주당 계열에서 당 대표를 연임한 것은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표 이후 24년 만이다. 민주 정당의 선거에서 85%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되는 것도 역사에 없던 일이다. 민주당은 지난 4·10 총선에서 이재명 1극 체제를 완성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의 공천이 이뤄지며 수준 미달이라는 비판을 받는 다수의 후보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이 대표에게 유리하게 당헌 당규를 고치는 일은 이제 이야깃거리조차 안 될 정도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이처럼 헌정사에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지지자들의 말처럼 야권에 그를 대체할 사람이 없을 만큼 이 대표가 뛰어난 지도자이고, 전당대회의 주인인 당원들의 지지가 열렬하기 때문일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 것을 이 대표가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누가 뭐래도 그는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고, 민주당 내에서는 “민주당의 아버지"라는 찬양까지 나올 만큼 강한 팬덤을 갖고 있다. ◇'먹사니즘'의 진심, 행동으로 보여주길 다만 당 대표 연임이 그의 말대로 '개인적으로는 손해지만 국민과 나라가 당면한 거대한 위기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이라면 그 진심을 증명하는 일은 그의 몫이다. 그는 당 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출범한지 두 달이 넘은 22대 국회의 모습은 먹사니즘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다수당이 국회의장을 가져가면 법사위원장은 소수당에게 주던 관례도 무시하고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알짜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면서 22대 국회는 사상 처음으로 아직 개원식도 열지 못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등 대통령의 막무가내 인사와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 같은 '내맘대로 국정운영'이 촉발한 측면도 크지만, 현재의 국회 파행에서 민주당의 책임은 결코 작지 않다. 정부 여당과 합의하고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 없이 대통령 거부권이 뻔한 법안들을 통과시키는 것은 “우리는 할 만큼 했다"며 강성 지지층에만 호소하려는 입법 독주로 보일 수 있다. 민주당의 일방적 입법-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대통령 거부권으로 이어지는 무한정 도돌이표에 민생은 신음하고 국민은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이 대표가 자신의 사법 리스크를 방어하기 위해 거대 야당 대표를 자임한 게 아니라면, 애국위민(愛國爲民)의 수권(受權)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 대표가 행동으로 진심을 보여준다면 민주당에 비판적인 중도층도 돌아올 것이다. 설마 내심 “먹사니즘이 유일한 이데올로기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 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기자의 눈] 계속되는 폭염, 요원해지는 분산에너지

매년 역대급 폭염이 계속되면서 국내 전력수요와 발전설비 또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에어컨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날씨로 인해 수요가 늘어나니 이를 위한 전력 생산도 줄일 수가 없는 실정이다. 지난 정부부터 에너지전환, 탄소중립 등 친환경 정책 기조로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소비를 효율화 해 대규모 발전설비를 줄이고자 했으나 현실은 정반대인 셈이다. 특히 친환경, 분산형 발전원이라는 태양광이 늘어나면 다른 발전설비들이 줄어들 것이란 기대도 완전히 빗나가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양광 발전량의 43%가 호남 지역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태양광이 호남지역의 분산에너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호남 지역의 전력 소비는 전체 전력 소비량의 12%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호남에서 생산된 태양광 전력을 고압 송전망을 통해 수도권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분산에너지라고 모두 장거리 송배전 투자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에 날씨의 영향으로 전력생산이 들쭉날쭉해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액화천연가스(LNG)설비가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분산전원 활성화라는 정부의 정책 실현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다. 분산에너지 활성화는 대형 발전소 중심의 중앙집중식 전력 공급 체계를 전력을 소비하는 곳에서 직접 생산하는 분산형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분산에너지는 연료전지·신재생에너지·중소형 원전(SMR)·집단에너지발전과 같은 무탄소 또는 환경친화적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말한다. 송·배전 인프라 등 전력 계통망 구축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환경정책기본법에 규정된 '오염원인자 책임원칙'에도 부합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구의 극단적인 수도권 분포도는 분산에너지 활성화에 심각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전체 인구의 50.6%에 해당하는 2600만명이 서울·인천·경기를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전력 수요도 수도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런 수도권에 수요에 걸맞는 수준의 분산에너지 설비를 설치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공간적인 제약과 발전설비는 물론이고 물론 오염 방지와 사고 예방을 위한 시설을 갖추기 위한 비용도 감당하려면 당연히 발전단가가 높아진다. 이를 해결하려면 막대한 전기요금 인상이 필연적이지만 여야 정치권은 앞다퉈 선심성 요금 인하에 여념이 없다. 정치권과 당국이 상시적 폭염에 대비하기 위한 전력시장 개편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E칼럼]재생에너지 전력의 우선 접속을 보장해야

“전력망 운영자는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자의 전력망 접속을 보장해야 한다." 이는 1990년 독일 연방의회에서 제정한 '전력망접속법(Stromeinspeisungsgesetz, the Electricity Feed-in Act)'의 첫 번째 핵심 조항이다. 이어서 이 법은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전력 소매 가격의 90%, 수력과 바이오매스 발전은 65~80%의 가격으로 20년간 구매를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로써 육상 풍력의 보급은 속도를 내게 되었지만 생산비가 비싼 태양광은 아직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독일 연방 정부는 2000년에 전력망접속법을 대체하는 '재생에너지법(Erneuerbare Energien Gesetz, EEG)을 제정하여 구매 가격을 생산비를 보전하는 수준으로 정하였다. 재생에너지 전력의 전력망 우선 접속권은 당연히 유지되었다. 송전망 운영자가 '재생가능에너지 우위 원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우는 첫째, 이를 발전소 운영자와 계약으로 합의하였고, 둘째, 그 합의가 발전소를 송전망에 더욱 효과적으로 연결시키도록 할 때 만이다.또한 송전망 운영자는 재생에너지 전력의 접속을 보장하기 위해 자사 송전망을 “기술 수준에 상응해 최적화, 강화시키고 확대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무리일 때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송전망 용량 확대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그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송전망 운영자의 송전망 용량이 소진했고 아직 용량 확대 방안을 마련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해서는 2009년 개정법에서 상세히 규정하였다. 이 과도기에 송전망 운영자에게는 특정 조건 하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대신 발전소 운영자는 송전망 운영자에게 수익금 손실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였다.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23년에 독일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서 51.6%를 기록했다. 파이프로 연결한 러시아의 가스를 사용하던 유럽은 2022년 2월에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독일은 천연가스 소비량의 55%를 러시아에서 들여오던 만큼 타격도 컸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줄였던 석탄발전까지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립에너지인 재생에너지가 전력소비량의 절반을 생산했으니 이런 효자가 없게 되었다. 이 두 법에서 밝힌 법의 취지는 자립에너지 사용으로 에너지 안보를 제고하고 청정에너지로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에 대응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독일은 이제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수입 에너지 가격의 변동에 따른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탄소국경세 시행으로 그동안 들어간 비용의 일부를 고탄소 국가의 기업들로부터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 부담에 한몫할 것은 물론이다. 이 제도의 시행에 대해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석탄발전과 원자력 발전으로 전력산업을 독과점하고 있던 전력대기업들은 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유입으로 경쟁을 해야 하는 데다 특히 첨두부하 시 높은 가격을 받던 가스발전량이 먼저 감소하여 수입이 줄어들었다. 1998년 초 독일의 4대 전력회사 중의 하나인 E.ON의 전신 프로이센엘렉트라가 유럽사법재판소(EJC)에 독일의 전력망접속법이 유럽연합의 반보조금규칙을 위반했다고 제소하였다. 그러나 2001년 3월 13일 유럽사법재판소는 첫째, 그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실제 경제적 가치보다 최소한의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고, 둘째, 재정적 부담을 전력망업체가 부담(최종적으로는 소비자 부담)하므로 재정 보조가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이후 독일의 송배전망 업체들은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면서 재생에너지 전력의 간헐성이 전력망 운영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방안을 강구하였다. 현재 4% 이하로 오차율이 떨어진 예측 시스템의 개발은 그 중의 하나이다. 데이터가 축적되면서 오차율은 더욱 개선되어 가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송배전망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전력은 재생에너지 전력에 대한 총공세를 펴고 있다. 전력망 접속 비용 및 통제 시스템의 발전사업자 부담과 보상 없는 출력 제한, 송전망 용량 소진에 따른 발전사업 허가 중지 등 2~3년 사이에 재생에너지의 진입 장벽을 첩첩이 쌓고 있는 중이다. 일개 기업에 의해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정책이 헤어날 수 없는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모양새다. 행정 규칙과 공기업의 지침으로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퇴행하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정부의 의지가 없다면 국회가 나서 입법으로 막아야 한다. 유럽의 산업강국 독일의 현재는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따라가야 할 모델이기 때문이다. 신동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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