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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칼럼] 마비될 뻔한 헌법재판소

하마터면 헌법적 독립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마비될 뻔했다. 10월 17일까지 3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를 마치게 되는데도, 민주당은 자신들이 두 명의 재판관을 '추천'하겠다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은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라고 정하고 있는데, 3명의 퇴임으로 헌법재판관은 총 6명으로 줄어든다. 이는 곧 헌법재판소에 제소된 사건을 심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는 이런 마비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헌법재판관을 미리 추천했어야 했다. 이번에 임기를 마치는 3명의 재판관은, 자유한국당, 민주당 그리고 바른미래당이 각각 추천한 재판관들이었다. 2000년 이후부터의 관례를 따른다면, 1명의 재판관은 국민의힘이, 다른 한 명은 민주당이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의 재판관은 여야의 합의에 따라 제3당에게 넘기든지, 아니면 여야가 합의한 인물을 추천해야 한다. 1994년에는, 현재의 민주당의 주장처럼, 다수당인 여당에서 2명, 야당에서 1명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앞서 언급한 방식으로 헌법재판관을 추천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의석수를 내세우며 자신들이 2명의 재판관을 추천해야겠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2000년 이후부터 지속돼 온 관례는 깨고, 1994년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국민의힘에서 우선 한 명을 추천하고 나머지는 천천히 선출하자고 제안했지만, 국민의힘이 이를 거부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마비된다면, 국민의힘의 책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 정지 작업처럼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당이 자신의 의석수를 앞세워 관례를 깨버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번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 당시에도 기존의 관례를 완전히 무시한 바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관 추천 문제는, 22대 국회 원 구성 당시의 관례 파괴 행위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헌법재판관 추천과 관련한 문제는, 단순히 관례를 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정치 논리를 가지고 독립 기구인 헌법재판소를 흔든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안이어서 심각하다는 것이다. 만일 민주당이 지난 총선 승리의 결과물인 압도적인 의석수를 내세워 이런 상황을 합리화한다면, 이것은 상황의 '자의적 해석' 차원에서 벗어나, 헌법 정신을 왜곡하는 행위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여기서 한마디 안 할 수 없는 것이, 지난 총선 당시, 지역구에서 양당이 획득한 득표율의 차이는 5.4%P에 불과한데, 민주당은 '국민의 뜻'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지난 총선 당시, 매우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 국민의힘 후보를 찍은 다수 유권자들의 뜻은 '국민의 뜻'이 아닌지 묻고 싶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국민의 뜻을 말하려면, 의석수보다는 득표율을 말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헌법재판관 임명에 협조해야 한다. 아니, 관례에 따라야 한다. 그것이 안 되면 최소한, 여야 몫의 재판관을 한 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한 명의 재판관은 여야 간에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는 정도의 양보는 해야 한다. 지난 14일 헌법재판소가 정족수 제한을 '일시적'으로 효력 정지했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17일부터 헌재는 마비 상태에 빠질 뻔했다. 임시적이지만, 6명의 헌법재판관만 남더라도 사건 심리를 할 수 있도록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으니, 최소한 지금 헌재에 넘겨진 사건의 심리는 가능하게 됐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임시 조치'에 불과해, 민주당이 끝까지 버틸 경우, 결국 헌재 마비 사태는 실현될 소지가 있다. 이런 사태가 재현되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민주당이 헌법상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신율

[EE칼럼] 환경부가 환경산업부가 될 수 없는 이유

이번 환경부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된 이슈 중 하나가 기후대응댐이다. 기후대응댐 건설계획의 핵심은 기후변화로 인해 예상되는 미래의 극한 가뭄과 물 수요에 대비하고 이전보다 더 강도와 빈도가 커지는 홍수와 가뭄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댐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7월 다목적댐 3곳을 비롯하여 홍수조절용 댐과 용수전용 댐 등 전국 14곳에 대해 댐건설 후보지를 발표하였다. 특히, 지자체에서 원하는 곳을 대상으로 유역별 홍수 위험성과 물 부족량 등 과학적 자료에 기반하여 후보지를 선정하였고, 댐 수면에 수상태양광을 설치하여 재생에너지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후보지로 선정된 지자체 일부와 환경단체들 중심으로 기후대응댐 건설에 대한 반대가 표면화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2015년부터 2018년에는 극심한 가뭄이 발생하였고, 2020년에는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가장 긴 54일간의 장마가 발생했던 반면, 2022년에는 또 다시 50년만의 최악의 가뭄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한 산불 피해가 매우 컸다. 이처럼 가뭄과 홍수 그리고 또 다시 가뭄이 발생하는 “강수의 양극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원인은 우리나라의 기온과 해수면 온도가 세계 평균 보다 빠르게 상승하였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사과의 주산지는 더 이상 대구가 아니며 동해에서 흔히 잡히던 오징어는 귀한 어종이 된지 오래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미래의 기상 및 자연생태계의 변화가 심각하게 우려되고 있고, 이 변화는 시간의 문제일 뿐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 크고 작은 변화와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미래에 예상되는 물 부족 문제와 이상 기후현상에 대비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대안으로 댐건설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추측된다. 댐건설은 홍수와 가뭄 피해를 예방하고 물부족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일석이조 대안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게 드리운다는 속담처럼 댐건설은 그에 따른 효과 못지않게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크다. 댐건설로 인한 자연생태계와 서식지의 파괴를 비롯하여 수몰지역이 생기면서 이주민이 생기고 지역공동체가 훼손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댐건설은 오래전에 멈췄던 것이고 대신 숲의 긍정적 기능을 강조하는 의미의 녹색댐, 지하수와 도시빗물 이용, 도시의 불투과성 아스팔트 길을 투수성 재질로 바꾸어 물이 땅에 스며들 수 있도록 하는 그린 인프라 투자 그리고 불필요한 물 소비를 줄이는 강력한 물수요관리정책 등 다양한 물관리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물관리 분야의 국가 최상위 법정계획인 “물관리기본계획"에 잘 나타나 있다. 2021년 6월 수립되고 2023년 9월 일부 내용 수정을 거쳐서 최종 결정된 제1차 물관리기본계획은 물관리기본법 제27조에 의거하여 2030년까지의 국가 물관리 정책의 기본 목표와 추진방향, 미래의 변화 예측 및 전망 그리고 기후변화에 따른 물관리 취약성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가뭄과 홍수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재해의 경감 및 예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미래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강한 홍수와 가뭄에 대한 대비책으로 가뭄관리체계의 선진화 및 극한가뭄 대응체계 구축 전략, 댐・하천・저수지 등 기반시설의 홍수안전 강화 및 예방 투자 확대 전략, 그리고 홍수 예보체계의 고도화 및 도시침수 관리체계 강화 전략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댐건설에 대한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2022년 11월, 대통령이 주재한 수출전략회의에서 “환경부도 환경산업부가 돼야한다"는 일갈에 2023년도 환경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는 “2023년을 100조원 녹색산업 수출의 원년으로 잡고 2023년 한해동안 20조원의 수출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2024년 발표한 환경부 주요업무 추진계획에는 타당성 조사 3곳을 비롯하여 신규 댐 건설 10개소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하였다. 올 7월 환경부 장관이 기획재정부 출신 장관으로 변경되었고, 신임장관은 취임한 지 한달도 안된 상황에서 기후대응댐 14곳 건설후보지를 발표하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기후대응은 허울뿐이고 4대강 사업 후속조치 아닌가? 토목사업을 일으키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니냐? 등 여러 의심과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미래 기후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취지와 노력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하면서도 웬지 설익은 과일을 맛보는 느낌을 받는다. 정부24 사이트에 소개된 환경부 소개 글은 다음과 같다. “환경부는 환경오염과 환경훼손을 예방하고 지속 가능하게 관리·보전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중략) 나아가 지구환경을 보전하는 것을 주요 업무로 하는 중앙행정기관입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 그리고 저성장이라는 어려움에 처해있는 국가 여건을 감안할 때 환경부도 규제보다는 일자리를 만들고 내수를 확대하고 수출을 장려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환경부 고유의 목적과 업무는 경제성장을 보조하기 보다는 성장 속에서 가려지거나 훼손되는 가치는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따로 있다. 그렇기에 환경부는 환경산업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모쪼록 환경과 경제를 균형된 시각으로 바라보는 환경부를 기대한다. 조용성

[기자의 눈] 기후위기가 흔드는 밥상…위협받는 식량안보

최근 전 세계적으로 식량안보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우리 일상에서도 그 위기가 실감되는 사례들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치솟아 흔했던 식자재들을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사치품'이 돼가고 있다. 이는 기후위기로 인한 현상으로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일부 외식업체와 베이커리 체인에서 토마토 공급에 차질을 빚은 것만 봐도 기후위기가 우리 먹거리에 얼마나 깊숙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올여름 폭염과 같은 극한 기후가 농작물 생육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면서 농산물의 수급이 불안정해진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특정 작물에 국한되지 않는다. 배추, 무, 귤, 사과 등 다양한 농작물 가격이 오르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농산물 가격 상승의 배경에는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생산성 저하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는 안정적으로 공급되던 품목들이 이제는 기후위기에 따라 생산량이 들쑥날쑥해지면서 소비자의 식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식량안보 문제는 국민 건강과도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앞으로 기후위기는 더 빈번하고, 더 강하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이미 지구가열화로 인해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하는 환경에 살고 있다. 다른 나라들 역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연구와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벨기에는 2040년의 기후 조건을 예측해 서양배 재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변화에 맞춰 품종 개발과 농업 시스템 재정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대책은 매우 미흡하다. 최근 국정감사에 따르면 5년간 농림축산식품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연구용역을 단 한 차례밖에 발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식량안보는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정부는 기후위기로 인해 농산물 수급이 불안정해지는 것에 대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에 맞서 식량안보를 지키기 위한 대응은 단기적인 대책을 넘어서야 한다. 정부는 선제적으로 농작물 수급 예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장기적인 연구와 정책을 통해 국민의 식탁을 안정적으로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식량안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윤수현 기자 ysh@ekn.kr

[기자의 눈] 토종 OTT ‘숏폼’ 콘텐츠 도입 망설일 이유 있나

콘텐츠 시장 내 '숏폼'의 인기가 연일 화제다. 15초~10분 이내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한 숏폼 콘텐츠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이 시작됐다. 현재는 1인당 월 평균 숏폼 앱 사용 시간이 여타 앱의 7배가 넘는 52시간이란 조사 결과가 대변하듯 숏폼은 전 국민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숏폼이 콘텐츠 시장을 점령하면서 롱폼 위주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영역을 확대해 나갈지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최대 관심사는 토종 OTT의 숏폼 콘텐츠 도입 여부다. 숏폼 콘텐츠가 넷플릭스에 밀리는 토종 OTT의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재 OTT 시장의 절대 강자는 넷플릭스다. 초창기 대비 영향력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월간활성이용자수(MAU) 측면 국내 시장 유일한 1000만 앱이다. 넷플릭스의 성장은 '막강한 자금력'과도 맞닿아 있다. 일례로 최근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흥행몰이 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의 제작비는 1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공개를 앞둔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2의 제작비는 1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만성 적자에 허덕이는 일부 토종 OTT의 특성상 예능 제작에 100억원을 투입하는 건 부담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데 1000억원을 들이는 건 더더욱 힘들다. 숏폼 콘텐츠의 강점은 적은 제작비다. 2분 이내 드라마 50부작 기준 1억원에서 1억5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흑백요리사의 100분의 1 제작비로 이용자의 관심을 불러오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도 왓챠 외에는 토종 OTT의 숏폼 콘텐츠 도입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왓챠는 최근 숏폼드라마 전문 플랫폼 '숏챠'를 선보였다. 다만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 등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는 상태다. OTT 시장은 결국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이 살아남는 곳이다. 이용자의 관심을 끌어 모으려면 결국 더 나은 '한방'이 필요하다. 숏폼의 인기는 어쩌면 토종 OTT에게 기회일 수 있다. 숏폼 콘텐츠를 통해 막강한 자금력으로 대작을 선보이는 데 혈안이 돼있는 넷플릭스와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 트렌드는 급변하기 마련이다. 대세가 됐을 때 잡아야 한다. 토종 OTT들이 숏폼 콘텐츠로 반전 드라마를 써 내려가길 기대해본다. 김윤호 기자 kyh81@ekn.kr

[이슈&인사이트] AI 도입이 주4일제를 가능케 할 수 없을까?

디지털화와 기술 발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나 유연한 근무시간을 경험하게 되면서, 근로자들의 일과 개인적인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요구가 커졌다. 이에 따라 근로자가 주 4일 동안만 근무하고 나머지 3일은 휴식을 취하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인 주4일제는 뜨거운 논쟁 속에 근로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주4일제 도입으로 정해진 업무를 처리할 주간 업무 시간이 줄어들어 업무를 빠듯하게 처리하려 하면서, 과도한 스트레스나 탈진을 초래할 수도 있고, 특히 의료, 소매업, 서비스업 및 제조업 등의 경우처럼, 항상 일정 수준의 시간 인력이 필요한 산업군에서는 주4일제 도입으로 급여를 줄이는 보상 및 급여 문제 발생 우려도 크다. 여러 잠재적인 문제들과 필연적인 문제들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효율적인 업무 재조정과 수많은 업무 프로세스 개선이 필요하고, 실제로 실행하기까지는 예상보다 많은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이에 주4일제와 AI 도입의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AI가 보다 멀지않은 시점에 일부 산업에 먼저 주4일제 도입을 가속화하는 도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AI는 반복적인 업무를 자동화하고, 데이터 분석의 효율성을 높이며, 업무를 최적화하는 등의 기능을 통해 근로자가 수행하는 작업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할 수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같은 디지털과 AI 기술 기반의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에 AI의 역할은 직원들이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결과적으로 근로시간 단축과 더 높은 생산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 고객 서비스나 데이터 분석, 보고서 작성, 이메일 응답 등의 단순한 작업은 AI 기반의 챗봇같은 시스템이나 자동화 도구로 대체하고, 직원들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집중 및 작업 시간 단축을 가능케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다니고 있는 회사도 Web 플랫폼을 통해 접수된 고객 문의는 AI 챗봇이 1차 응대를 하여 업무 담당자의 고객 서비스 부담을 줄이고 있다. 더 좋은 사례로, 대만 Chimei Medical Center의 경우, AI 가 가진 수천,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몇 초 만에 분석하여 중요한 경향을 빠르게 도출해내는 데이터 분석 능력, 여러 작업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다중 작업 처리(Multitasking),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 결정 과정의 자동화를 통해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복잡한 업무의 단순화 기능을 통해 의료 서비스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인력 부족 문제를 완화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AI를 통해 의료 영상 분석을 자동화, AI 기반의 환자 원격 진료와 모니터링, 환자 데이터 분석, AI 기반의 의약품 관리 등을 통해 의료 인력 문제를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환자 기록 관리, 진료 예약, 진단 결과 입력 등의 행정 업무를 AI가 대신케 하면서 의사들은 환자 진료와 치료에 집중할 시간을 더 확보 중이다. 이러한 AI도입 사례들을 의사 부족 문제와 의료 인력의 과중한 업무라는 사회적 이슈와 연결하면 주4일제의 도입이 가장 어려울 것 같은 우리나라의 의료 산업에 시사점이 있지 않을까? 기술은 사회 문제 해결의 강력한 도구로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효율성을 높이며, 불평등을 줄이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가져오는 자동화, 효율성, 정확성, 접근성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며, 이를 통해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들을 보다 빠르고, 공정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인간은 기술 혁신을 통해 기존의 사회적 제약을 극복하고, 인간의 한계나 자원의 부족을 보완하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언젠가 AI도 인간의 근로시간 단축 뿐만 아니라 행복의 증대를 이끌어내리라 믿고 시도해 보자. 박세원

[EE칼럼] 탄소중립시대 정상적인 에너지 가격의 역할

탄소시대에서 저탄소 무탄소 시대로 전환되는 에너지 전환시대를 맞아 에너지 공기업의 두 축인 전력회사와 가스회사의 누적된 부채와 미수금이 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을 힘들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 에너지전환 속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낮은 에너지 가격은 국가 경제와 민생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에너지전환을 위한 에너지 공급망인 전력망과 인프라 구축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미래에 더 많은 부담과 어려움을 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2050 탄소중립의 핵심인 에너지의 전기화와 수소 에너지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대한 투자는 도대체 누가 언제 한다는 것인가? 정상적인 에너지 요금은 환경과 기후변화 비용을 포함하고 미래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기후환경 문제를 발생시키는 분야에서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 에너지 가격의 정의가 아닐까? 잘못된 에너지 요금은 에너지 소비를 부추기고 에너지 수요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에너지 효율 향상을 통한 에너지 소비 감축과 저탄소로의 에너지전환, 탄소의 포집 및 저장 기술 적용 등이 동시에 조화롭게 추진되어야 한다. 한국은 현재 20% 내외의 전기화 비율을 보여주고 있지만 2050 탄소중립 계획에 따르면 이 비율이 45%를 넘는다. 이는 더 많은 에너지가 전력의 형태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증가할 전력은 과연 어디에서 얻어야 할까? 전력원 구성을 살펴보면 전 세계 평균은 석탄 36%, 가스 22% 수력 15% 원자력 9%, 풍력 7%, 태양광 4% 및 기타 6%로 구성되어 있어 화석연료가 60% 정도이고 수력과 재생에너지 구성이 30%에 가깝다. 한국은 석탄 33%, 원자력 30%, 가스 26%, 태양광 5% 및 기타 6%로 구성되어 세계 평균과 비교하면 원자력발전의 구성이 상당히 높은 편이고 반대로 수력과 재생에너지 구성이 10% 이내로 낮은 편이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세계 주요국과 비교하면 무척 낮은 수준에 속한다. 한국의 2023년도 가격은 킬로와트시(KWh)당 160원 정도로 영국과 이탈리아의 600원대, 일본 호주의 300원대, 미국의 200원대에 비해서도 낮다. 우리의 전기요금은 신재생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유럽국가의 1/3 수준이고 우리와 유사한 에너지자원 빈국인 일본과 비교해도 반값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가 셰일에너지로 에너지 부국이 된 미국보다도 싸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이상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당연히 한 국가의 에너지 가격은 에너지원 부존 현황, 에너지원 믹스의 구성, 신재생에너지 생산량 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국가의 낮은 에너지 자급률, 낮은 원전의 구성비, 그리고 높은 신재생에너지 구성비를 차지할수록 전기요금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93% 이상의 에너지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전체 에너지원 구성 중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은 한국에서 전기요금이 싼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낮은 에너지 가격은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 누적이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문제를 넘어 더 중요한 것은 에너지에 대한 전 국민의 올바른 인식개선의 기회를 더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전 국민에게 에너지는 언제나 충분하게 공급받고 있고 값싼 재화라는 인식만 심어주게 될 것이다. 더구나 세계적인 탄소중립 노력으로 화석연료에 대한 탄소세 부담이 가중될 것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결국 비정상적인 에너지가격은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 실현을 더디게 하여 궁극적으로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에너지 공기업의 경영정상화와 국가의 바람직한 에너지전환을 위해서라도 실직적이고 현실성 있는 정상적인 에너지가격 제도를 하루 빨리 실행해야 한다. 신현돈

[기자의 눈] 양극화의 새로운 기준 ‘얼죽신’

신축 아파트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이른바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 열풍이 불고 있다. 최근 서울 신규 아파트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이로 인해 신축 아파트들의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서울 내 5년 이하 신축 아파트 가격은 지난 6~8월 석달 새 무려 5.7%나 올랐다. 서울 전체 아파트(3.1%)의 두 배에 가깝다. 얼죽신 열풍은 고분양가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분양가가 더 오르기 전에, 주변 단지 시세보다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상품성을 갖춘 신축. 즉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를 중심으로 수요자들이 쏠리고 있다. 실제 올해 서울 아파트 분양가는 지난해와 비교해 3.3㎡(평)당 1000만원 이상 상승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이날 발표한 9월 말 기준 민간아파트 분양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민간아파트의 최근 1년간 ㎡당 평균 분양가(공급면적 기준)는 1338만30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를 평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4424만1000원에 해당한다. 전년 동월(969만7000원) 대비 38.00% 오른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향후 서울 신규 아파트 공급 감소 예상이 기름을 끼얹었다. 본격적인 아파트 시대가 열린 후 출생한 30대들이 주택구매연령으로 성장하면서 주거환경이 우수한 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주효했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분양을 위해 필요한 청약통장 해지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월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는 2545만7228명으로 전월 대비 3만2635명, 전년 동월과 비교해 35만8657명이 줄었다. 전문가들은 부양가족이 있으면 가점을 주는 청약제도의 특성과 감당할 수 없이 올라간 고분양가 때문으로 보고 있다. 경쟁률이 워낙 높은 데다 당첨된다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분양가가 비싸다. 중산층 젊은이들조차 '그림의 떡'으로 여기며 청약 자체를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서울 시내 분양가는 3.3㎡당 4311만원으로 전용59㎡(공급 25평)형은 11억원, 전용 84㎡(공급 34평)형은 15억원 정도로 부모님 도움 없이는 꿈도 못꿀 형편이다. 서울 내 신축 아파트 입성이 양극화의 새로운 기준이 된 현 시점에, 불공정한 청약제도와 비현실적으로 높은 분양가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양극화가 고착되고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 희망도 사라지고 말것이다. 정부가 현명한 대책을 통해 불씨를 살릴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김다니엘 기자 daniel1115@ekn.kr

[이슈&인사이트]이스라엘의 헤즈불라 수장 제거가 한국의 북핵 대처에 주는 시사점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급습을 받아 허를 찔려 분노에 휩싸인 이스라엘은 이를 만회하고 '저항의 축'의 뿌리를 뽑겠다는 각오라도 한 듯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가자지역 하마스에 공격을 퍼부었는데,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진지를 타격하고 심지어 바닷물까지 주입하여 지하터널을 무력화시켰다. 아울러, 공중 폭격을 요인들을 제거하더니 급기야 하마스 최고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이란 수도 테헤란의 혁명수비대(IRGC) 영빈관에서 암살하여 대담성·은밀성·정확성에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상비군보다 예비군이 주력인 이스라엘은 장기전보다 단기전을 해야 하나. 1년 넘게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 피로감이 누적되고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하마스 기습을 막지 못한 안보실패 책임, 개인적 부정부패 혐의로 인해 권좌에서 밀리면 정치생명이 끝나고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는 네타냐후 총리가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장기적인 전쟁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심지어 트럼프가 재집권하는 것이 네타냐후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미국 대선 전까지는 휴전을 피하고 전쟁을 계속하려 한다는 관측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저항의 축' 중에서 가장 강한 헤즈불라에 대한 전방적위적인 공격이 성과를 거두면서 네타냐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희석되고 있다. 삐삐사건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헤즈볼라가 보안문제를 우려하여 대원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대신 나눠준 삐삐 3000여 대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공작기관 모사드가 트로이 목마 공작을 벌여 삐삐 내부에 초소형 폭탄을 숨겨둔 뒤 특정 신호를 발신해 일제히 폭발시켰다. 이어서 헤즈볼라 대원들의 워키토키도 폭발했는데, 통신장애를 겪게 된 헤즈볼라는 다른 수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최고 지도부의 보안에 문제를 일으켰다. 헤즈볼라 수뇌부를 제거할 목적으로 참수작전에 들어간 이스라엘은 벙커 버스터를 이용한 공습으로 32년간 헤즈볼라를 이끌어온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의 숨통까지 끊었다. 이 공습으로 압바스 닐포루샨 이란혁명수비대(IRGC) 작전부사령관도 함께 사망했다. 개혁파 페제시키안이 대통령이 되어 자제력을 발휘하던 이란은 하니예와 나스랄라, 자국 혁명수비대 지휘관의 죽음에 보복한다며 180여 발의 미사일을 이스라엘로 발사했는데, 이스라엘은 강력한 보복을 공언하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자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정유시설이나 핵시설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군은 레바논에서 지상군 작전을 투입하여 진지를 파괴하면서, 헤브불라 괴멸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유엔평화유지군에서 부상자가 나왔다. 이스라엘은 유엔이 설정한 완충지대인 '블루라인'에서 유엔평화유지군이 철수하거나 최장 5㎞까지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중동전쟁이 확전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 우리가 주목할 점이 하나 있다. 지하벙커도 헤즈불라 수장의 목숨을 구해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이스라엘이 나스랄라 제거를 위해 사용한 군사 장비와 정보 기술의 대부분을 한국도 보유·운용하고 있고, 공군은 JDAM 키트를 장착한 BLU-109 벙커버스터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국군의날 행사에는 '세계 최강 벙커 버스터'로 평가되는 천무-5 실물이 처음 공개되어 위용을 과시하였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는 가장 큰 목적은 김정은 김씨 왕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김정은을 제거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을 가지고 있다면 핵이 없더라도 대처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핵개발이 어려운 한국으로서는 북한체제 붕괴를 위한 저강도 전략을 구사하면서 김정은을 정밀하게 타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여 대북한 레버리지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이강국

[EE칼럼] 자동차 연비 단위, “km/L”와 “L/100km”를 병행 표시하자

북미대륙에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영어 사용국인 미국과 캐나다는 자동차를 운전해 톨게이트형 국경검문소에서 간단한 통관절차만 거치면, 양국 간 무비자 여행이 가능해, 묶음 관광으로 함께 여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어느 방향이든지 국경을 통과하여 상대편 국가 도로로 진입하면 속도제한 표시판에 속도 단위가 “mph"(miles per hour, 미국)와 “km/h"(캐나다)로 다르다는 점을 쉽게 알아차린다. 문제는 우리 같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단위 전환계산이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는 점. 특히 단위 전환계산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고속도로라면 더욱 곤혹스러울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계산적 어려움이 자동차 표시연비에도 존재한다. 자동차 표시연비 제도는 소비자가 고효율, 저탄소 차량을 선택하도록 돕기 위해 연비 정보를 라벨이나 광고를 통해 제공하는 정책이다. 이 제도의 실효성은 그만큼 연비 정보의 정확성과 함께 소비자의 정확한 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물론 “연료 1L당 주행 가능한 거리(km)"라는 표시연비 정보의 단순성을 고려한다면, 표시연비 자체를 소비자가 인식하기 어렵거나 오해할 소지는 극히 낮다. 다만, 표시연비 정보를 아는 것 자체 보다, 해당 정보를 잘 해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소비자는 차량을 구매할 때 연료비를 고려하기 위해 표시연비 정보를 참조한다. 이때 연료비를 대충이라도 어림잡아 추정하기 위해서는 연비와 연료비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행 제도에서는 소비자가 알 수 있는 표시연비 단위가 단지 “단위 연료 소비량당 주행거리(km/L)"로만 표시된다는 점이다. 가령 100km 주행에 드는 연료비를 계산하려면 이를 다시 “단위 거리당 연료 소비량(L/km)"으로 전환, 다시 말해 역수(逆數)로 만든 후 연료 가격과 100km를 곱해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연료비 계산에는 연비에 대한 분수 계산, 즉 비선형 함수 계산이 요구된다. 사실 간단하더라도 덧셈, 뺄셈, 곱셈과 달리, 나눗셈은 계산이 그리 쉽지 않다. 가령 보통 사람은 “53/2 =?"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나눗셈 문제라도 “53+2 =?"같은 덧셈 문제만큼 힘들이지 않고 자동적․즉각적으로 풀기 힘들다. 상대적인 계산의 시간적·인지적 부담 때문에 보통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쉽게 표현하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생각의 게으름'이 일반적이다. 대신 지금 당장 눈앞의 명시적인 정보 자체에만 집중하여 연비와 연료비의 상관관계를 대충 어림잡아 짐작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인간의 의사결정의 인지적 한계를 다루는 행동경제학 연구들은 이와 관련해 실제 소비자들이 연비 정보를 선형적 관계로 오해하는 경향, 쉽게 말해 표시된 연비가 두 배로 증가하면 연료비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를 “연비 단위(MPG)로 인해 유발된 착오", 즉 “MPG Illusion" 현상이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계산해보면 그렇지 않다. 가령 복합연비가 6km/L인 고급 세단과 15km/L인 소형차에 대해 각각을 4km/L 정도 연비가 향상된 차로 교체하면, 저연비 고급 세단이 고연비 소형차에 비해 실제 연료비가 절감되는 효과는 약 5배 정도 크다. 얼핏 같은 연비개선 효과라면 같은 연료비 절감효과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 소비자의 경우, 대략 연비 10km/L 언저리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왜곡도 심해지며, 특히 고연비 차량에서의 연비개선보다 저연비 차량에서의 연비개선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 같은 착각의 정도는 더 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연비 단위만 유럽이나 캐나다 등이 쓰고 있는 L/100km로 바꾸어주면 된다. 물론 현시점에 이미 관행화·습관화된 표시행태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큰 사회적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대신 현행 연비표시 라벨상 표시연비 정보에 두 가지 표시단위 km/L와 L/100km를 병행 표시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행 연비표시 라벨 상 표시연비 정보에는 도심 연비, 고속도로 연비 및 복합연비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데, 세 가지 연비 정보 모두 두 가지 표시단위로 나타낼 경우의 번잡함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강조된 복합연비만 두 가지 표시방식으로 기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김재경

[기자의 눈] 국내 증시를 믿고 싶다

“이러니 다들 미국 주식만 하죠. 코스피에 투자해봐야 오르질 않는데." 개인 투자자들의 푸념이 아니다. 이 발언은 국내 한 증권사 관계자의 입에서 나왔다. 그만큼 최근 국내 증시 상황이 암담하다는 것에 대한 방증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연초 정부가 내세운 '밸류업 프로그램'은 시행 초기에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으나, 연말이 다가오는 지금까지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손꼽아 기다렸던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도 코스피는 2600선을 지키기도 버겁다. 당장 본인부터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년간 보유하던 국내 주식을 7월경 모두 정리했는데, 8~9월을 거치며 투자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 주식을 보유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2020~2021년에 급증한 개인 투자자들이 인내심을 잃고 국내 증시를 떠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정부가 장기투자와 퇴직연금 투자를 강조하지만, 이는 증시가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내 주식 시장은 여전히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 증시는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기침체, 인공지능(AI) 거품론과 같은 악재에도 증시는 꾸준히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 투자자가 국내 주식에 손을 뻗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밸류업'만 외치면서도 투자자들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정부의 대응은 의문스럽다. 부동산에 쏠려있는 자금의 자본시장 이동이 절실한 상황에서 정부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국내 증시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만 봐도 그렇다. 뉴욕 증시가 장기간 우상향하는데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강력한 세제 혜택이 꼽힌다. 특히 개인 투자자가 주식을 장기 보유할 때 얻는 소득세 감면, 재투자 및 배당소득세율 우대가 눈에 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논란 장기화로 증시에 불안을 일으키는 우리 상황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러한 세제 혜택은 단순히 투자 수익을 높여줄 뿐 아니라, 신뢰 강화로 자금이 증시에 머물러 상승 요인이 된다는 점을 정치권이 강력히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우창 기자 suc@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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