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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제언] "JY,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세요"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기업,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기업, 세상에 없는 기술로 인류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기업,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하나된 비전, 미래의 삼성으로 생각합니다."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화려한 취임식을 열지 않고 대신에 사내 게시판에 올린 취임 일성이다. 이 회장은 ‘미래의 삼성’을 구현하기 위해서 △기술력과 인재의 중요성 △도전과 열정이 넘치는 창의적인 조직 문화 △고객과 주주·협력회사·지역사회 등과 함께하는 동반성장 △인류 난제 해결에 기여 등을 강조했다.이 부회장이 진단했듯이 국내외 경영환경과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국제 정치가 그리 녹록지 않다. 삼성이 미래 먹거리로 꼽은 △반도체 △바이오 △배터리 등의 사업영역에서는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 경쟁사들과의 치열한 싸움이 쉴새없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이 회장은 취임 첫 일정으로 광주광역시에 있는 협력회사 ‘디케이’를 찾았다. 디케이는 1994년부터 삼성전자와 거래를 시작해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등 철판 가공품 등을 공급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와 거래하면서 작년 기준으로 매출과 직원수가 2152억원, 773명으로 27년에 비해 각각 287배, 77배 늘었다.‘미래동행’ ‘상생협력’ 등 삼성이 추구하는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삼성은 작은 기업이 아니다.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그룹 16개 상장 계열사 소액주주수(중복)는 작년 기준으로 729만9526명, 올해 10월까지 803만명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1차협력사만 700여곳, 직원수 37만명, 연간 거래규모는 31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수십개의 계열사와 해외 네트워크망을 총괄하는 기능을 가진 핵심 조직이 없다. 고 이건희 회장 시절에는 ‘미래전략실’이 있었고, 이 곳에서 삼성의 글로벌 전략을 만들었다. 이재용 회장 시대가 개막됐지만 ‘컨트롤 타워’ 없이 출발하게 된 것이다.지금이 어떤 상황인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급속도록 위축되고, 삼성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마저 실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글로벌 경제 위기를 돌파하고 ‘뉴 삼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특히 이 회장이 그토록 갈망하는 ‘진정한 초일류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현재의 ‘컨트롤 타워’ 부재 상황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지적은 빈말이 아니다. 글로벌 경영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활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이 부회장이 말 한마디로 해체시킨 ‘미래전략실’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회장 시절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국회 청문회에서 스스로 ‘미전실’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에 다시 만들어야 하는 대의명분을 찾기가 힘들 수 있다. 이럴 때 가장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은 바로 ‘솔직함’ ‘정면돌파’다. "지금의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 3각 축으로 운용하는 느슨한 테스크포스(TF)로는 엄혹한 글로벌 경영환경을 헤쳐 나가기에 역부족이다." "개인의 미래가 아니라 삼성의 미래 전략을 짜는 조직이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런 말을 이 회장이 직접 한다면 많은 국민들이 호응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 정치권도 수긍할 것이다. 국가차원의 안보, 재난, 경제 등의 분야에서 커다란 문제가 터지면 ‘컨트롤 타워’ 부재에 대해 항상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이재용 회장은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릴 줄 아는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뗏목은 강을 건너는 도구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언제까지 뗏목을 어깨에 메고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하나. 삼성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 성장 전략실(Sustainable Growth Strategy Office)’ 류의 ‘컨트롤 타워’가 반드시 필요하다.송영택 산업부장/부국장

[데스크 칼럼] 취약해진 자본시장 센티멘털, 정부 부담 막중하다

채권시장 경색을 일으킨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에 기업의 자금 조달이 난항을 겪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채에도 투자자들의 수요가 미달되면서 ‘3고 1저’(고금리·고환율·고물가·저성장)에 가뜩이나 긴축경영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은 일말의 희망마저 잃은 듯하다. 금융시장 불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레고랜드 사태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이하기만 하다. 레고랜드 사태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회생 신청 발언에서 시작됐다. 김 지사는 지난달 28일 레고랜드 테마파크 기반조성사업을 했던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원에 회생 신청을 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GJC가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할 당시 강원도가 채무보증을 섰는데 이에 대한 보증채무를 갚지 않겠다고 김 지사가 돌연 뒤집은 것이다. 김 지사는 이미 최문순 전 지사가 벌인 사업에 대규모 칼날을 들이대겠다고 예고해왔다. 김 지사는 2018년에도 레고랜드가 도민 혈세 1200억원을 쏟아부었는데도 불구하고 7년 동안 진척된 일이 없고, 앞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2050억원 규모의 ABCP는 결국 이달 4일 최종 부도처리됐고 파장은 상당했다. 우선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유동화증권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는 단번에 무너졌다. 신용평가사들은 지자체의 신용도가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다는 이유로 GJC가 대출을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인 아이원제일차에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했는데 이러한 신뢰가 크게 흔들린 것이다. 레고랜드 사태는 신용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경제시스템을 정치 논리로 접근했을 때 일으킬 수 있는 부작용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레고랜드가 아니더라도 가뜩이나 시장은 돈맥경화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금리상승으로 각 경제주체들의 자금조달비용은 급증했고 금융권이 부동산PF 대출에 대한 빗장까지 걸어잠그면서 건설사들은 삼중고를 겪고 있다. 발행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장기화될 경우 건설사, 금융권의 신용위험으로 전이될 수 있다. 국내외 금융시장에 때아닌 부도설이 도는 것은 작금의 위기가 더욱 심상치않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곳이 스위스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CS)다. 이 회사는 지난해 파산한 영국 그린실 캐피털과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 캐피털에 대한 투자 실패로 인해 지난 7월까지 3분기 연속 손실을 기록했다. 무디스는 크레디트스위스가 올해 3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가파른 물가상승,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등 외부적인 상황이 계속되는 한 이 위기 역시 어디가 끝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당장 다음달 미국은 또 한 번의 기준금리 인상을 앞두고 있다. 살얼음판인 자본시장이 연일 정부의 입만 쳐다보는 이유다. 그러나 이 모든 시장 상황의 원인이 정부에 있느냐고 묻기에도 어폐가 있다. 지금의 자본시장 경색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기준금리 인상에서 촉발된 부작용들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이다. 강원도의 어설픈 발언이 시장에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맞지만 이 역시도 정부 입장에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가 최근 들어 하루가 다르게 긴급 시장 안정 대책을 내놓음에 따라 단기간 금융시장은 진정세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둔촌주공아파트의 PF가 만기를 하루 앞두고 차환 발행에 성공한 것이 시장 안정의 물꼬를 트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런 때일수록 정부는 더욱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된다. 자금시장 경색을 막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계획은 이미 실기했다는 비판론이 적지 않다. 작금의 자금시장 경색을 안일하게 바라봤다는 지적 역시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정부의 과감한 행동과 정책 방향타 설정이 중요한 상황에서 정부가 오히려 금융사에 SOS를 치는 듯한 행보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모두가 ‘최악은 끝났다’고 안도할 때에, 정부는 소방수 역할을 잠시도 놓아서는 안 된다. 경제위기는 하나의 실수도 결코 너그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mediasong@ekn.kr

[기자의 눈] 외양간 못 고치는 정치·금융계, 등터지는 국민

"좀 미안하죠"지난 27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베트남 출장에서 조기 귀국한 직후 나온, ‘채무 이행을 거부한다’는 말로 레고랜드 발 어음 부도 사태를 초래한 데 대한 공식 입장 표명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사태가 불거진 이후 김 지사는 줄곧 ‘자신은 할 일을 했을 뿐이며,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전임 지사와 채권단의 과민반응’ 때문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이번 사태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점이라면 강원도와 정부의 신속한 ‘뒷수습’이다. 강원도는 지난 21일 문제가 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2050억원에 대해 내년 1월 전액 상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27일에는 상환 시기를 올해 12월 15일로 앞당겼다. 중앙 정부에서도 50조 규모 유동성 공급 대책으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그러나 전망은 아직 비관적이다. 여전히 채권 시장은 경직됐고, 채권시장 현업의 반응도 향후 닥쳐올 유동성 경색 국면을 피할 수 없다고 보는 편이다. 안 그래도 어려웠던 올해 금융시장에 굳이 닥쳐오지 않았어도 될 위기가 ‘비전문가’인 어느 한 정치인의 실언으로 초래된 것이다.증권사를 비롯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권자들도 피해자인 양 한발 뒤로 물러나 있으나, 결국 사태의 근간을 따져보자면 이들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제대로 된 사업성·재무건전성 평가를 거치지 않고, PF 호황기에 거둔 성과에 눈이 멀어 부실한 운용을 한 결과다. 그간 성과급 잔치를 벌일 정도로 거뒀던 막대한 PF 수익은 리스크 관리에 쓰이지 않고 어디를 갔나 의구심이 든다.정작 피해자는 따로 있다. 강원도 재정 2050억원으로 끝났을 이 사태가 ‘50조원+@’라는 국세가 투입된다는 점에서, 결국 피해자는 전 국민이다. 한 지방자치단체의 이슈가 초거대 규모의 국민 혈세로 막아야 할 담론까지 번진 대참사다. 논란을 일으킨 당사자는 과연 ‘좀 미안’이라는, 사과의 객체마저 불분명한 발언으로 책임이 가벼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다시 한번 물어보고 싶다.그간 수많은 금융위기를 겪었음에도 정부와 금융계는 교훈을 얻지 못하고 ‘뒷걸음질’ 치고 있다. 1997년 IMF 사태부터 2020년 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 사태까지, 책임 있는 당사자는 피해자로 돌변하고 정부가 매번 국세로 밑 빠진 독을 막아야 하는 굴레를 벗어난 적이 없다. 언젠가 또다시 나타날 시스템 위기 앞에서,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칠 날은 올 것인가.suc@ekn.kr

[김성우 칼럼]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에 범정부적 역량 결집을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총 2억9100만톤이다. 그 중 11.5%인 3350만톤은 국제감축목표로, 국내 산업 혹은 수송 부문의 감축목표와 유사한 큰 규모다. 국제감축사업이란 파리협정 제6조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얻기 위해 행하는 기술지원, 투자 및 구매 등의 사업으로, 지난 3월부터 시행된 탄소중립기본법 및 동법 시행령에서 추진 근거와 절차 등을 규정하고 있다. 국내기업이나 정부기관이 해외에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추진하고 감축실적을 국내로 이전받는 메커니즘을 예로 들 수 있다. 국제감축목표의 큰 규모를 고려해서인지 정부가 기반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먼저 지난 8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제1회 국제감축심의회를 개최했다. 국제감축사업의 국내 추진체계 정비 및 활성화를 위해 추진전략 등을 논의하고 국제감축심의회 운영규정도 의결했다. 국제감축심의회는 국제감축사업에 관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탄소중립 기본법 시행령에 따라 설치된 기구로, 국제감축사업의 사전 승인, 국제감축실적의 등록 및 국내 이전 검토, 외국 정부와의 국제감축협의체 구성·운영, 국제감축사업 추진전략 및 계획 마련 등의 기능을 담당한다. 국제감축사업 추진전략은 3350만톤 감축목표 달성을 비용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고 우수한 감축기술을 보유한 기업의 신규 시장 참여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세부전략을 담고 있다. 국제감축사업 및 실적을 전자적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국제감축등록부 등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속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2030년까지의 국제감축 경로와 중장기 사업수요를 고려해 연차별 정부 지원계획을 수립하며, 다양한 금융지원을 설계하면서 그린수소,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 등 유망 분야의 방법론을 개발해 사업기획을 지원하는 등 민관협력 구상도 밝혔다. 또한 국제감축사업을 양자 ODA(공적개발원조) 등 개발협력사업과 연계하고,양자협정 체결국과 함께 사업을 발굴하면서 현지 정부, 개발회사, EPC 및 컨설팅 업체 등 현지 사업주체와 컨소시엄도 구성한다는 전략이다.지난 9월에도 산업통상자원부 주재로, 민관 합동으로 해외투자를 통한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구성된 ‘산업·에너지 부문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 협의체’가 개최되었다. 2023년 시범사업 예산과 지원절차, 우선협력 대상국가와의 양자협정, 전담기관(한국에너지공단, KOTRA)의 지원방안 등 국제감축 추진전략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양자협정에 기반한 기업들의 투자비의 일부를 지원하는 투자 시범사업뿐만 아니라, 정부가 경쟁입찰이나 구매계약을 통해 감축실적을 구매해 주는 구매 시범사업지원안도 공개했다.같은 달 환경부도 온실가스 국제감축 프로젝트 컨퍼런스에서 폐기물·물관리 등 환경분야 국제감축사업 추진방안을 밝혔다. 공모를 통해 국내기업을 모집해, 정부가 타당성조사 및 감축설비설치 비용의 최대 80%까지 지원하고 이에 상응하는 감축실적을 확보하는 시범사업이 주요 골자다.지난 5일에는 탄소중립기본법 제35조에 근거한 ‘국제감축사업 사전승인 및 국제감축실적의 취득 등에 관한 지침’ 제정(안)이 행정예고 되었다. 주요 내용은 국제감축사업의 사전 승인 기준, 방법 및 절차, 국제감축실적의 보고, 취득및 거래·소멸의 신고, 국제감축실적 이전의 사전승인 기준 및 절차, 상대국과의 국제감축협의체 등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어, 민간기업의 국제감축사업추진 불확실성도 부분적으로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최근 일련의 온실가스 국제감축 기반구축은 정부의 준비 의지가 드러났다고 판단된다. 달성해야 하는 목표의 규모가 크고 다양한 기술과 기능이 필요한 만큼 향후 범부처 역량을 결집하여 국제감축사업을 실행 및 지원해야 한다. 온실가스 국제감축목표를 차질없이 달성해 나가면서도 기술 수출 등 신산업 육성과 연계하기 위해서는 기업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다. 정부가 앞장서서 국가간 협정과 정책수단을 마련하고 있는 만큼, 사업의 실질적 주체인 기업들도 적극적인 사업 발굴 및 정부 활용을 고려할 시점이다.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기자의 눈] 청년 공공분양이 로또분양이 되지 않기를

윤석열 정부의 청년원가주택 및 역세권 첫 집을 통합한 ‘청년·서민을 위한 공공주택 50만가구 공급계획’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2030세대에 5년간 공공주택 34만가구가 공급된다. 사실상 청년을 위한 공공분양임이 명확해졌다. 문재인 정부의 청년을 위한 임대주택 지원과는 확실히 상반된 정책이다. 이번 대책은 청년층의 소득수준을 고려한 3가지 모델을 제시한 것이 특징이다. 앞으로 정부는 △나눔형 25만가구(시세 70% 이하 분양·청년비중 80%) △선택형 10만가구(6년 임대 후 분양여부 선택·청년비중 60%) △일반형 15만가구(시세 80% 이하 분양·청년비중 40%)를 공급할 예정이다. 최근 금리인상 및 집값 고점인식으로 인해 거래절벽과 미분양이 급증하며 부동산 시장이 침체일로를 걷는 가운데, 낮은 분양가와 장기 저리 모기지 등으로 접근할 수 있는 정책이 발표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게다가 이제는 내 집 마련 인식이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시그널을 주기에 충분하다. 본래 과거의 내 집 마련은 집안 가장 역할의 상징이었다. 이젠 내 집 마련이란 최소한의 생애설계 기반이자 삶의 의욕 고취를 위한 핵심 요인이고, 주거상향이전의 초기단계 역할로 활용할 수 있다. 공공분양은 그런 면에서 내 집 마련 욕구를 가지면서도 큰 시세차익을 보지 않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확실한 주거사다리 역할이 될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다만 사회 취약계층과 중·장년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어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민간분양 중소형 평형(85㎡ 이하)에도 추첨제를 도입해 청년층의 당첨 확률을 높이도록 했는데 청약의 본질인 사회적 약자에 집중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일반분양 20% 청년층 추첨제는 로또분양을 키울 우려가 있다는 것. 욕망을 금지하는 것은 전체주의이고, 제 멋대로 날뛰게 하는 것은 방임이라는 영화 대사가 떠오른다. 정부는 이번 공공분양 공급정책이 청년의 욕망을 인정하면서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시세차익을 볼 수 있도록 조절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당첨 후 제3자 전매 가능성 차단과 부모-자녀간 분양권 편법증여가 일어나지 않도록 부모의 자산규모 소득증빙을 면밀히 살펴 한탕주의를 심화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김준현

[EE칼럼]사용후핵연료 처분장 추진시 우선 검토해야할 일

최근 스위스가 14년간의 부지선정 과정을 거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분장 최종 후보지를 선정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도 ‘제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 수립에 이어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이 발의된 상태이다. 시기적으로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부지선정을 위한 전문가들의 지질학적, 지구화학적 요소와 수리지질학적, 암반공학적 특성에 대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장 부시선정을 위한 지하연구시설(URL, Under Ground Research Lab)은 필수사항이다. 그 목적은 지하 500m가 넘는 깊은 땅속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고준위 방폐물 처분에 대한 학문적 기술적 자료와 이해가 거의 없기 때문에 깊은 땅속 데이터를 얻는데 있다. 고준위 방폐물 처분과 관련하여 국내 지질분야 전문가 토론회 개최를 통해 의견이 수렴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URL과 영구처분시설의 지질학적 수문학적 등의 모든 조건이 동일해야 영구처분장의 설계와 건설이 가능하다는 일부 학자나 기술자들의 주장과 믿음을 공학적 방법론을 통해 검증해 보고자 한다. 먼저 URL에서 직선거리 5Km 떨어진 곳에 영구처분장을 건설한다고 가정할 때 지질학적 수문학적 등의 조건이 똑같은 곳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고리, 영광, 월성, 울진원전의 경우 건설과정을 통해 모든 호기의 부지조건이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러면 URL과 영구처분장 후보지의 데이터가 상이할 경우 어떻게 설계하고 안전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 전혀 새로운 개념으로 시설을 설계할 경우 데이터의 부족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대체로 다음의 다섯가지 방법을 사용한다.첫째, 다른 나라의 선행사례를 벤치마킹 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의 사용후핵연료 연구처분 시설을 짓고 있는 핀란드의 성공과 실패 경험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겠다. 결국 독자적 기술자립과 기술확보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연구개발(R&D) 비용을 부풀려 보겠다는 말과 똑같은 것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둘째, 설계의 보수성(conservatism)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다. 해당 부지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면 최대한 보수적으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조사된 태풍보다 수십배 강한 태풍과 강도 7이상의 지진이 지하 500m 영구처분장 바로 밑에서 발생한다고 가정하고 계산한다.셋째, 자연 또는 인공현상에 관한 유사한 연구조사결과를 인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가봉에서 수억 년 전에 자연적으로 발생했던 ‘오클로(Oklo) 현상’을 생각해 보면 된다. 특별한 안전방벽이 없었어도 수억 년 전에 생성된 핵분열 생성물이 원래 위치에서 1~2km 이동 한 정도다. 이 같은 사실은 우리가 고준위 방폐물 영구처분에 적용하려는 여러 겹의 안전방벽이 ‘과잉설계’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게 한다.넷째, 기본 데이터의 변화 즉 설계조건을 다양한 방법으로 바꿔가면서 영구처분장 안전성 여부를 다양한 시뮬레이션(Tens of thousands of simulations)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다양한 설계변수의 임의 조합을 통해 영구처분장 개념설계를 반복적으로 시도해 보고 물리, 화학, 지진, 열수력 등 잠정적인 설계 데이터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그런 이후에 안전성, 건설용이성, 운영용이성, 규제요건의 만족 여부 등을 따져 보기 시작한다.다섯째, 최적화 설계를 시행한다. 반복적인 설계 엔지니어링으로부터 규제기준을 충분히 만족하는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를 만든다. 이를 바탕으로 주민과 국민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런 과정은 리스크가 큰 설비나 시설의 설계와 건설 그리고 운영과정에서 항상 반복된다.우리는 원자력기술을 맨 밑바닥 기초부터 배운 것이 아니라 설계가 거의 완성된 원전을 도입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자립을 이루었다. 그런 이유로 ‘어떻게(How)’ 는 알지만 ‘왜(Why)’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 그래서 지금도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미국과 프랑스 등 원자력 선진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사실이다.최근 공개된 ‘고준위 방폐물 연구개발 로드맵’에 따르면 향후 연구개발에 9002억 원, 연구용 지하연구시설 구축에 4936억 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방폐물 기금의 관리효율성 검증차원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고준위 연구개발 예산 중 인건비 비중과 적정성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다. 고준위 방폐물과 같은 조 단위 장기 국책연구과제의 경우 대통령실과 산업부 담당자들이 먼저 연구과제의 불편한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비효율적 예산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것이다. 끝으로 필자는 허술한 연구에 의존해 만들어진 정책과 규제가 국가경쟁력 퇴보의 주범임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실 주도의 ‘제3자 정책 검증제’ 도입을 제안한다. 각종 연구과제결과물로 만들어진 비과학적 정책과 규제, 상식 밖의 예산낭비에 대한 검증과 개선이 윤석열 정부의 상징인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위한 혁신의 시작이라고 본다.강기성 (사)전력경제연구회 회장

[이슈&인사이트] 기술혁신의 원천 ‘오픈 이노베이션’

최근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 활발해지고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스타트업에게는 자금 및 판로의 가능성을, 대기업에게는 혁신창출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 올해 정부가 민간 주도 창업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계획한 만큼 앞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은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이 연구개발 및 상업화 과정에서 대학이나 다른 기업의 기술을 도입하는 전략으로 근래 대표적인 오픈 이노베이션은 바이오엔텍과 화이자의 코로나 백신개발 사례를 들 수 있다. 바이오엔텍은 2008년 터키 출신 독일 이민자인 사힌과 그의 아내 튀레지가 독일에서 설립한 바이오 벤처이다. 2020년 코로나 사태가 팬데믹으로 확산하는 조짐을 보이자 화이자는 바이오엔텍과 협력하여 1년도 안 돼 COVID-19 mRNA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2021년 바이오엔텍과 화이자는 3억 도즈 분량의 백신을 생산했으며, 43조3600억원 규모의 코로나 백신 매출액을 달성했다. 바이오엔텍과 화이자는 절반씩 나눠 가진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조달하는 한편 내부 자원을 외부와 공유하면서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기업 내부의연구개발( R&D) 활동을 중시하는 것이 ‘폐쇄형 혁신’이라면, 오픈 이노베이션은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기업 내외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업의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개방형 기술혁신’인 것이다. 지식재산권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핵심이다. AT&T가 해체된 후 루슨트(Lucent)는 벨 연구소의 가장 큰 지분을 상속받았다. 20세기초에 에디슨이 세운 벨 연구소는 세계 최고의 연구소였으며, 따라서 루슨트는 통신장비 시장을 장악해야 했으나 일이 그렇게 풀리지 않았다. 반면 벨 연구소 정도의 내부 R&D 기능이 없는 시스코는 루슨트를 제쳤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루슨트는 최첨단 부품과 시스템을 개발하는 내부 R&D에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고, 미래 세대를 선도할 발견을 추구했다. 반면, 시스코는 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이 무엇이든 간에 외부에서 인수했다. 일례로 전직 루슨트 전문가들이 설립한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파트너 관계를 맺음으로써 기술을 도입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시스코는 자체적인 연구를 많이 수행하지 않고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개발 조직의 산출물을 따라 잡았다. 2000년대 들어서 미국에서는 폐쇄적 혁신이 더 이상 대세가 되지 않게 되었다. 지식 노동자의 수와 이동성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기업들이 지식노동자들의 아이디어와 전문성을 통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또 다른 요인은 민간 벤처 캐피털이 증가함에 따라 스타트업에 자금을 지원하거나, 폐쇄적인 기업 연구소 외부로 빠져나온 아이디어를 상업화하려는 노력에 대한 투자가 증가한 데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채택한 기업은 더 이상 자신의 지적재산권을 묶어 두지 않고, 대신 라이선스 계약, 조인트 벤처 및 기타 약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그 기술을 사용하여 이익을 얻는 방법을 찾는다. 현재 전 세계는 폐쇄형에서 개방형 혁신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첨단 기술을 뛰어넘어 자동차, 의료, 은행, 보험 및 소비자 패키지 상품과 같은 많은 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통 제약업체인 유한양행이 추진한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롤 모델로 떠올랐다. 식품회사인 오뚜기 역시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와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발굴에 나서고 있다. 이런 오픈 이노베이션의 불꽃은 갈수록 활활 타오를 것으로 기대된다.박주영 숭실대학교 경영대학장

[이슈&인사이트] 자립준비청년들, 당당히 설 수 있게

자립준비청년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도 생활고로 고통받던 자립준비청년 두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졌다. 최근 3년간 최소 20명의 자립준비청년이 사망했다. 지난 5년간 보호종료된 자립준비청년 가운데 2900여명은 연락이 두절되었다. ‘자립준비청년’이란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다가 만 18세가 돼 퇴소한 청년들이다. 자립준비청년은 나이가 차면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찬바람 몰아치는 사회로 내던져진다. 자립준비청년은 생계유지와 진로, 취업이라는 세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여기에 외로움과 막막함은 상수로 존재한다. 인간에게 일차적 안정감을 주는 것이 ‘가정’이라는 울타리일진대 그나마 가정의 역할을 대신했던 보호시설을 떠나 홀로 지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막막해진다. 물론 정부의 지원이 없지는 않다. 자립준비청년은 자립정착금(지자체에 따라 500만~2500만원)을 받고 5년 동안 매달 35만원의 수당을 받는다. LH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도 있다. 이자를 내야 하는 부담은 있지만 입주 후 20년간 지원이 유지된다. 그러나 과연 이것으로 충분할까.정부에서 정한 자립준비청년 기준은 만 18세부터 만 24세까지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부모의 따뜻한 관심을 받고 자라나 대학을 졸업해도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데 이들이 안정된 자립을 할 수 있을까.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졸업 후 취업 경험이 있는 15∼29세 청년 가운데 첫 취업에 3년 이상이 걸린 사람은 2022년 5월 기준 35만8천명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고졸 이상 미취업자는 133만명이고 2년 넘게 구직에 실패한 취준생도 35만명이다. 이런 현실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것은 모든 청년 세대의 공통된 고민이겠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는 자립준비청년에게는 더욱 고독하고 막막한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당장 발등의 불인 생계유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은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여유조차 없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한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돈 벌려고 대학 진학 안한다"는 응답이 52%로 진학 대신 구직을 택하는 경우가 절반을 넘었다. 고려하는 직업군도 ‘뷰티·미용·애완’이 20.3%로 적성이나 하고 싶은 일보다는 당장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선호했다.자립준비청년들에게 부여된 ‘홀로서기’ 준비기간 5년은 사회에서 온전히 자립하기엔 턱없이 짧다. 7년도 마찬가지다. 대학진학을 한 자립준비청년의 경우는 대학졸업 후 취업전까지로 자립기준을 더 연장해야 한다. 대학진학 대신 바로 사회로 나간 청년들에게도 추후 진로탐색을 위한 교육비를 지원해줘야 한다. 사회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금융·경제교육과 근로능력을 키울 수 있는 직업훈련도 강화해야 한다. 사회 첫걸음을 어떻게 내딛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궁박함에 떠밀려 제대로 진로탐색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안정감을 가지면서 다양한 진로 멘토링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자립준비청년 사후관리 대상인원이 1만 2000명이 넘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자립준비청년들의 현재 상황에 대해 정확한 실태 파악부터 하고 부족한 자립지원 전담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나라 곳간이 화수분도 아니고 국가가 돈 쓸 일이 어디 한두 곳 뿐이겠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청년은 우리나라의 미래다. 가족이나 부모로부터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한 아이들이 찬바람 부는 황량한 사회 속에서 혼자 감당해야 할 몫이 너무 무겁다. 이들이 실수로 넘어질 때 기댈 수 있는 등을 내주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줄 부모나 가족이 없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밥만 먹는다고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정서적 배고픔은 오직 따스한 관심과 사랑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답했다. 힘든 청년들에게 조그만 울타리도 되어주지 못하면서 말로만 요란하게 떠드는 저출산(저출생) 대책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2006년 이후 2021년까지 역대정부가 출생률을 높인다면서 퍼부은 돈이 380조 2000억원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은 출생률 0.81로 인구총감소 쇼크상태에 빠져 있다. 더 이상 혈세 낭비하지 말고 이미 태어나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리 잡으려 노력하는 청년들을 제도적으로 더 지원해야 한다. 자립준비청년 외에도 학교밖, 가정밖, 이주배경 청소년 등 국가와 사회가 관심 갖고 돌봐야 할 아이들도 많다. 정부 지원책이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고 오롯이 정부의 몫으로만 남겨둘 수도 없다. 사회라는 든든한 공동체의 울타리가 필요하다.출산을 기피하는 세태를 한탄하기 전에 태어난 아이부터 잘 돌보는 게 순서다.송문희 정치평론가/한양대 겸임교수

[EE칼럼]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공급의 안정성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듯이, 천천히 달릴 때는 균형을 잡기가 어렵다. 그러다 속도를 높이면 자전거가 안정화된다. 17세기에 뉴턴이 발견한 관성이라는 물리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학교에서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고 하고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한다는 관성의 법칙을 배웠다.전력시스템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전력시스템의 관성은 회전하는 대형 발전기에 저장된 에너지를 말하는데, 이로 인해 발전기는 계속 회전하려는 경향을 갖게 된다. 이 저장된 에너지는 발전기가 고장 났을 때 발생하는 전력 손실을 일시적으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몇 초 동안만 활용할 수 있는 이러한 반응으로 인해, 발전소를 제어하는 기계적 시스템이 고장을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관성은 전력시스템의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기존의 석탄, 가스 발전기들은 우리나라의 계통 주파수인 60Hz(±0.2)에 맞춰서 운전한다. 대부분의 태양광, 풍력, 에너지저장장치는 인버터를 통해 전력계통에 연결되므로 관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인버터 기반 자원의 비중이 매우 높은 전력계통에서는 송전선로 고장, 발전기의 갑작스런 정지와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대응책을 미리 준비해 놓지 않은 경우에는 계통관성 저하로 주파수가 급하게 떨어질 수 있다. 주파수가 일정한 값 이상으로 벗어나면 발전기들이 설비보호를 위해 전력계통에서 스스로 이탈하고, 변전소들도 미리 정해진 순서대로 전력공급을 중단한다.국제에너지기구(IEA)는 변동성이 있는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4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별로 전력계통에 미치는 영향과 대응방안을 제시하였다. 1단계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3% 이내이며, 전력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단계이다. 2단계는 비중이 3~15%이며, 전력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조금씩 나타나는데, 전력계통 운영방식을 개선하면 쉽게 해소할 수 있다. 우리나라 육지계통이 현재 2단계라고 할 수 있다. 비중이 15~25%에 이르면 3단계로 분류하는데, 전력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불확실성이 나타나므로 시스템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출력예측 시스템을 갖추고, 유연성 자원을 확대해야 한다. 제주도가 여기에 해당한다. 4단계는 비중이 25% 이상인 경우인데, 재생에너지가 전력수요의 100%를 담당하는 시간이 발생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계통관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며, 최종 소비부문의 전기화, 전력 변환 및 저장 기술이 필요하다.이처럼 계통관성은 재생에너지의 초기 보급 단계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25% 이상이 되면 전력계통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NREL)에 의하면, 기존 발전기를 풍력,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 등의 인버터 기반 자원으로 교체하면 활용가능한 관성의 양이 줄지만, 이로 인해 실제로 필요한 관성의 양이 줄어 첫 번째 효과를 상쇄할 수 있기도 하다. 즉, 주파수응답 제공에 대한 우리의 기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인버터 기반 자원의 증가로 인해 계통관성의 양이 감소되더라도 전력시스템의 신뢰성을 유지하거나 개선하기 위한 여러 해결책이 있으므로, 관성의 감소는 풍력, 태양광, 에너지저장장치를 크게 증가시키는데 심각한 기술적, 경제적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미리 준비만 한다면 충분히 대처가 가능한 영역인 것이다.재생에너지의 확대와 전력수급의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면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면서 전력계통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미리미리 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를 장려하려면 자전거도로와 같은 기반시설을 잘 갖추어야 하고, 안전사고에 대비하여 헬멧, 보호대와 같은 안전장구를 착용해야 하듯이 말이다. 우리에게도 관성이 작용한다. 과거의 생각과 행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자전거에 올라타서 멈춰 있거나, 느린 속도로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기만 한다. 자전거의 속도가 빨라지면 중심잡기가 쉬워진다. 자전거를 배우려면 빠른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재생에너지가 주력전원이 될 때를 대비하여 전력계통 운영의 커다란 변화가 요구되는 때이다. 우리에게는 빠른 변화 속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변화에 신속히 적응하는 것이 필요한 때이다.박성우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정책실장

[기자의 눈]K-방산, 글로벌 러브콜…정부 지원 강화는 필수

K-방산의 위상이 하늘로 비상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 70억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더니 올해는 수출액 200억달러 달성이라는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계 각국의 치열한 군비 경쟁이 K-방산의 도약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어서다.현재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 등의 요인으로 군비 경쟁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자주국방’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세계 국방비는 최초로 2조달러를 돌파했다. 불과 10여 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로 국방비 지출액을 점차 줄이던 상황과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그간 세계 방산시장은 미국·러시아·프랑스·중국·독일 등 무기 수출 강국이 선점해 왔다. 한국은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2020년 기준 5대 방산 수출국의 비중은 78.1%에 육박한데, 한국의 점유율은 2.8%에 불과했다.그런데 최근 K-방산이 가성비·철저한 A/S·적기 납품 역량을 인정받으며 세계인의 마음을 잡고 있다. 이를테면 한화디펜스의 ‘K-9 자주포’는 독일의 ‘PzH-2000 자주포’와 비교해 성능은 비슷하지만 가격은 3분의 1 수준이다. 또한 한화디펜스와 현대로템의 ‘K-9 자주포’와 ‘K-2 전차’는 폴란드 정부와 계약 시행 2달 만인 이달 19일 출고식을 가지고 첫 납품을 완료했다.결과적으로 한국의 무기체계 수출 규모는 지난 2017년 이후 5년간 177%나 늘었다. 70여 년 전 전쟁을 치르며 지원을 받았던 한국이 오히려 세계 4대 방산 수출국 지위를 넘보는 국가로 성장한 것이다.‘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란 말이 있다. 우리 방산의 성장에 가속을 붙이기 위해선 국가적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수출 진행 시 각국 맞춤형 제품 개발에만 수십억 규모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전 세계 대부분 무기 거래는 기술이전과 현지생산 등 조건이 포함된 절충교역 형태인 만큼, 앞으로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정부의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민간 기업은 정부의 지원없이 독자적으로 계약 조건을 감당할 수 없다. 지난 7월 폴란드와 무기 수출 계약도 정부의 ‘세일즈외교’가 한 몫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K-방산에 물은 들어왔다. 이젠 정부가 노를 저어줄 차례다.이승주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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