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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
국회가 지난달 25일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미래의 ‘무탄소 전원’으로 알려진 소형모듈원자로(SMR)에 군침을 흘리고 있는 여당이 태양광·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요구하는 야당과 모처럼 뜻을 모든 결과다. 특별법은 기존의 중앙집중형 발전소 건설과 장거리 송전망 구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다. 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지역별 전기요금제도 가능해진다.
인류가 전기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한 세기가 조금 넘었다. 그런데 벌써 전기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영국이 어디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는 석탄을 활용해서 산업혁명을 일으키기까지 500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더욱이 전기는 초지능·초연결의 미래 사회를 실현하고,전 지구적 과제로 자리 잡은 기후 위기 극복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에너지다.
그런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사회적으로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혐오시설이다. 환경을 오염시키고 사고의 위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력·화력·원자력이 모두 그렇다. 그렇다고 전기를 포기할 수도 없는 인류가 선택한 해결책이 바로 중앙집중형 전원이다. 발전소의 규모를 키워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지역에 대규모 발전소를 세우면 오염 해소와 사고 대응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도 줄어든다.
그런데 인구가 늘어나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전력의 생산과 소비를 분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규모 송전탑의 구축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2005년에 시작된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이 대표적인 예다. 겉으로는 송전선로에 흐르는 초고압 전류에 의한 위해성을 걱정하지만, 사실은 일방적으로 전기의 혜택을 독점하는 대도시에 대한 거부감이 표출된 것이다. 그런 거부감을 무작정 지역이기주의라고 탓 할 수만도 없다. 결국 이제는 발전소를 짓는 일보다 발전소에 생산한 전기를 소비자에게 공급해주는 ‘계통연결’이 훨씬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분산형 전원은 이런 난제를 말끔하게 해결할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대규모 중앙집중형 전원을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동안 전력수급기본계획 수립에 참여해왔던 에너지정책 전문가들이 애써 숨겨왔던 분산형 전원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최근 산업부가 확정한 제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한국전력이 2036년까지 무려 56조5000억 원의 시설투자를 해야 한다. 맹목적인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지난 정부가 2021년에 밝혔던 제9차 계획(29조3000억 원)의 2배에 가까운 엄청난 규모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데이터센터와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 수요를 무시해버린 결과다. 올해 초에 산업부가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4년의 최대전력수요는 116.2GW가 아니라 126GW로 늘어난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 10년 동안 원전 10기에 해당하는 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물론 그에 따른 송·변전 설비도 추가로 갖춰야 한다.
설비를 갖추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구축해놓은 송·변전 설비의 운용에 소요되는 비용 문제도 심각하다. 한전이 감당해야 하는 운용비용은 설비의 사용효율에 반비례한다. 효율이 떨어지면 설비운용비용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분산형 전원인 태양광·풍력의 하루 가동시간은 연평균 3시간을 넘지 못한다. 그마저도 계절과 날씨에 따라 널 뛰듯 출렁거린다. 제주와 호남에서 태양광·풍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공급해주는 해저 초고압직류송전선로(HVDC)의 경우에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제정신을 가진 민간 사업자라면 절대 투자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아직도 망국적인 탈 원전의 망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산업통상자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분산에너지 특별법 제정으로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가질 대규모 투자자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도 온전한 착각이다. 산업부가 계통의 안정성을 핑계로 아무 보상도 없이 무작정 밀어붙인 ‘출력제한 제도’는 힘없는 영세 사업자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분산형 전원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한전의 관리 능력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최첨단 송배전 관리도 최소한의 전문성이나 사회적 책무성조차 기대할 수 없는 수많은 영세 사업자로 구성되는 분산형 시스템에서는 기술적으로도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다. 간헐성·변동성 극복을 위한 현실적 대안을 찾지 못한 재생에너지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분산형은 아직도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미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