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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정치놀음’에 휘둘리는 증권가

[에너지경제신문 성우창 기자]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정무위원회 증인 의결 논의가 장기화하고 있다. 현재 여야가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안건은 라임사태에 연루됐던 증권사의 최고경영자(CEO) 소환 여부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특혜성 환매 의혹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가운데, 여권에서는 미래에셋 등 증권사를 불러 라임 사태의 전면 재조사를 따지겠다며 벼르는 중이다. 그 이면에는 전 정권에서 일단락됐던 라임 사태를 다시 한번 들춰내 현 정권의 존재감을 부각하겠다는 심리도 엿보인다.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치적 만들기’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 원장 스스로는 늘 내년 총선 출마 여부를 부정해 왔지만, 대부분 사람은 사실상 출마가 확실하다고 보는 분위기다.금투업계 일각에서는 라임 사태 재점화 이슈의 경우 이 원장조차 스스로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감독기관으로서의 사명보다는 정치 논리에 의한 전략적 의혹 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이 원장의 ‘쇼맨십’은 올 상반기부터 조짐이 엿보였다. 올해 5월 이 원장이 이례적으로 증권사 수장들과 함께 해외 순방을 떠났을 당시에도 업계에서는 ‘금융감독 기관의 장이 왜 국내 금투업계의 영업사원 역할을 하는가’라는 의문이 다수 제기됐다. 최근에도 이 원장은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을 포함한 금융업계 수장과 함께 유럽 등지로 해외 출장을 다녀온 바 있다. 이외에도 이런저런 이슈 등을 통해 매스컴에 금감원장의 얼굴이 비치는 일이 잦으며, 그 결과 역대 금감원장 중 이 원장에 대한 주목도와 지명도는 가히 역대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하지만 이 시점에서 금감원이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부 개선되긴 했지만 여전히 국내 증시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하고 있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지속되고 있고, 새로운 디지털 질서에 대한 규제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타 선진국에 비해 기를 펴지 못했던 코스피 지수는 다시금 고유가, 고물가, 고금리라는 악재에 직면하며 가파르게 하락세를 타고 있다.국민의 불만을 돌리기 위해 금융권을 향한 채찍질만 거듭하는 금감원이지만, 정작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움직임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금감원장이라는 무거운 직책을 정치권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만 쓴, ‘빈 수레만 요란’했던 역대 최악의 금감원장으로 남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할 시점으로 생각된다.suc@ekn.kr

[이슈&인사이트] 중국의 아이폰15 금지령과 한국의 선택

최근 출시된 아이폰15가 미·중 무역 및 기술 분쟁의 또 다른 상징이 됐다. 미국이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중국이 지난달 중국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 미국 최대 IT기업인 애플의 아이폰 사용 금지령으로 맞대응하면서다. 금지령 직후 이틀동안 애플 시가총액이 6% 이상(2000억달러) 가까이 추락했다. 이는 더 광범위하고 복잡한 관계가 지속되는 양국 무역분쟁 영향의 신랄한 예이다. 미국이 2018년 중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한 관세를 도입한 지 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는 데도 서로 감정적인 보복 조치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미·중 무역분쟁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더욱 고조되는 양상이다. 이번 아이폰 금지령은 여러 분쟁 중에 일반 소비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양국 무역 전쟁의 국지전으로 볼 수 있다. 이 국지전은 당사자인 애플사는 물론이고 그 제조 파트너사 등 업계 전반, 더 나아가 그 공급망에 속해 있는 제3국 기업들도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LG이노텍과 LG디스플레이 주가도 9월 첫째주에 연중 최고가 대비 20% 하락하는 직격탄을 맞았다. 이처럼 중국과 미국 간의 경제 분쟁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을 변동성을 초래하고, 외환 시장, 금융 시장을 포함한 전체 자본 시장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국과 미국은 우리나라의 1·2위 수출시장이다. 따라서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해 양국의 수입품 가격 상승이나 관세 부담 등이 발생하면 이는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 또 미·중의 공급망 붕괴로 인해 원자재 및 부품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 이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생산활동에 큰 지장을 준다. 특히 중국에서 제조된 부품을 많이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산업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크다. 한국경제가 지속되는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함께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가장 먼저 내수시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내수시장 활성화는 외부 충격에서 견딜 수 있는 기반이다. 소비자 심리개선, 창작산업 육성 등 내수시장의 활력 제고를 위한 정책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수에 기반을 두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경영환경 개선에 필요한 지원 정책을 통한 경제 구조의 변화와 기술 혁신은 내수 산업 경쟁력 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에 대한 새로운 기술 개발 지원으로 그 층이 두터워지면 창조경제 발전에 큰 기반이 될 것이다. 둘째, 신시장 개척과 대체시장 발굴을 통해 수출시장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을 점차 줄이고, 제3의 국가와의 무역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은 이미 다양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는 만큼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정부의 전략적 외교 노력은 필수적이다. 미·중분쟁으로 영향을 받는 국가들끼리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우리나라는 아세안+3 및 RCEP 등과 같은 지역 협력체에 참여해 협력관계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실제로 동남아, 인도와 같은 신흥 시장 탐색 및 다변화를 추진하는 등 대응 방안 모색에 주력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인도는 물론이고, 유럽, 중남미 등의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한다면 민간 주도의 수출 다각화와 경제성장 또한 이뤄낼 수 있다. 미국, 중국과의 양자간 혹은 다자간 회담 등을 통해 교각 역할을 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긴장 완화와 상호 이익에도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박세원 S&P글로벌l 상무/거시경제·국가리스크 한국 총괄

[기자의 눈] 부동산 맹탕 공급대책이 주는 메시지

정부가 추석 전 발표한 ‘주택공급 활성화 방안’이 시장 영향에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 대책에 담긴 공공주택 공급물량 확대 및 공공택지 전매제한 완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보증 규모 확대 등은 ‘공급 대책’보다는 막힌 혈을 뚫어주는 ‘수습 대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먼저 매각되지 않는 용지나 진행되지 않은 민간 추진 공공택지를 공공주택사업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조삼모사’라는 지적이다. 공급을 추가한다는 의미가 아닌, 사업성이 좋지 않은 곳을 공공이 대신 책임진다는 수준으로 해석해서다. 또 기존 공공택지 중 사업성이 안 좋아서 팔리지 않은 것을 전매제한 완화한다고 해서 팔릴 지도 의문이다. 신규 공공택지 후보지 발표를 앞당기는 것도 체감이 어렵다. 이미 발표된 신규택지들의 토지보상마저도 헤매는 실정이기에 후보지 발표 조기화가 공급 안정화 시그널을 줄 수 있을지 실효성이 의심된다.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주체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인데, 현재 국토교통부가 전면에 서서 철근누락을 조장한 ‘LH 때리기’를 하고 있는 마당이라 추진력이 얼마나 붙을지도 알 수 없다. PF대출 보증규모 확대 등은 건설업계에서 반길 일이다. 다만 이는 기존에 멈춰있던 공급을 풀어주는 정도의 수준일 뿐 신규 공급을 활성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업계 평가다. 본래 처음부터 정부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국토부에서도 ‘법 개정 없이 추진 가능한 과제 중심’이라고 할 정도로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 여전히 대책 발표 말미에는 재건축 초과이익 산정체계 완화, 1기 신도시 지원 등 노후계획도시특별법 제정, 실거주 의무 폐지 관련 주택법 개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에 호소하는 내용을 담는다. 결국 정부의 맹탕 공급정책은 정치적 메시지로 연결된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기대를 품게 하면서도 시장에 자극을 주지 않고 평탄하게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 또 공은 국회에 있다고 넌지시 던지는 마음이 내년 총선을 위한 행보로 느껴지고 있다. 시장 반응은 허탈하다. 정부가 "추석 전 공급대책이 나온다"고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며 수요자들의 기대를 한껏 끌어 올렸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요자는 총선 전까지 보수적으로 시장을 관망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김준현 ㅇㅇ

[EE칼럼] 영화로 본 에너지 이야기

타노스(Thanos)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미국 영화 시리즈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인물로 마법의 돌 여섯 개를 구해 손가락을 튕겨서 전 세계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버린 악당이다. 타노스에 맞서는 어벤져스는 타노스가 마법의 돌들을 모으지 못하게하려고 힘을 합친다. 이를 위해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하고 자신의 희생도 불사한다. 타노스 같은 악당들은 여러 영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해괴한 과학기술을 사용해 수많은 사람을 희생으로 몰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악당들이다. 007시리즈나 미션 임파서블, 킹스맨 시리즈의 악당들도 이런 부류다. 그런데 문제는 타노스가 왜 이렇게 무자비하게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려고 하였는가이다. 그 원인은 타노스가 살던 고향별이 다름이 아닌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로 인해 망했기 때문이다. 타노스가 그 해결책, 그러니까 동족의 절반을 없애자는 방안을 제시하였으나 고향별의 지도자들이 듣지 않아 결국 별이 망하게 되자, 이제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세상이 망하는 것을 막아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어벤져스의 원작이 1950~1960년대에 제작된 마블(Marvel)사가 제작한 만화인 점을 고려하면 그 시절에도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이슈가 주요 이슈였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롭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타노스가 자기가 찾은 여섯 개의 스톤을 사용해 인류의 절반을 죽이는 짓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자원고갈과 환경파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섯 개의 마법의 돌 중 하나인 테서랙트(스페이스 스톤)는 아예 청정한 에너지를 무한에 가깝게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영화에 나온다. 다른 스톤들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마법의 돌들을 잘 사용했다면 얼마든지 모든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대를 옮겨 한국 영화 ‘설국열차’로 가보자. 영화의 배경은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사람들이 살 수 없게 된 지구에서 단 하나의 열차만 생태계가 살아있고 그 열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줄거리다. 그런데 왜 지구가 그렇게 추워졌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 재미있다.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방법이 지나쳐 지구의 온도를 너무 낮춰 버렸다는 설정이다. 인공적인 방법으로 너무나 차가워진 지구는 영화의 막바지에 가서야 스스로 생태계가 작동해 생명체가 살 수 있을 정도로 따스해진다. 일본의 대표 만화영화 작가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초기 히트작인 ‘미래소년 코난’은 태양광에너지를 사용해 만든 초자력 무기로 지구가 파괴된 상황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 속에 인공위성을 통해 태양 빛을 반사해 높은 밀도의 에너지를 무한정 생산하는 시설인 삼각탑은 현대의 기술로 태양열발전소다. 007 영화의 고전 ‘황금 총을 가진 사나이’에도 악당이 비슷한 시설을 사용해 막대한 자본을 축적한다. 그런데 만화영화에서 이 삼각탑을 움직이는 비밀을 알고 있는 라오 박사는 코난 등 주인공들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찬양하지 않고 오히려 그 무서움을 일깨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삼각탑은 악당과의 전투와 지진으로 결국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주인공들은 새로운 마을을 찾아 떠난다. 위의 영화들을 물론 여러 다른 영화들에서도 영화인들은 강력하고 무한한 에너지원은 전쟁과 파괴의 원인으로, 여럿이 협력해 얻을 수 있는 작은 에너지원은 좋게 그리고 있다. 아무리 청정해도 에너지원의 힘이 무한대가 되면 결국 지구를 멸망시키는 동력원이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앞으로도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에너지 생산 및 사용 방식만으로는 영화에 나타난 문제들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세상이 모두 영화 같지는 않지만, 인류가 함께 노력해 그 해결책을 찾고 오랫동안 같이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이슈&인사이트] 섬의 가치 재조명 할때

섬은 일반적으로 자연의 영역에서 지리적인 모습을 떠올리지만 경제와 문화 측면에서도 다양한 가치를 지닌다. 한국은 반도국가지만 북으로 휴전선이 가로막혀 사실상 섬이나 다름없다. 한반도에 부속된 섬들도 오래전부터 나라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고려의 항몽전쟁과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데 섬을 이용하고 유배지이기도 한 어느 섬은 지금은 역사적 의미를 바탕으로 이야기가 있는 주요 관광지가 됐다. ‘독도 역시 우리땅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한국 사회가 섬의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섬들이 현대 사회에서의 무슨 가치를 가지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 지에 대해 더 많은 이해와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섬은 자원의 부족으로 다양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연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 새로운 가치를 찾는 답을 만들어야 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국제사회의 다른 지역이나 국가가 어떻게 노력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대항해시대와 식민제국주의 이후까지 연결된 역사에서 지중해와 대양의 섬들은 유럽인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섬을 차지하고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과 갈등은 현재까지도 수많은 서사로 전해지고 있다. 그만큼 섬은 전근대 유럽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유럽 국가들은 섬의 지리적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는 어업이나 해양 정책 뿐 아니라 산업, 통상, 교통, 문화 분야 등도 아우른다. 최근에는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에 따라 섬의 가치를 새로 조명하려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섬에 관한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통계자료를 정리하는 것에서 시작해 효과적인 정책 관리를 위해 섬과 해양 문제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한 협력에 나서고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스마트 아일랜드’(Smart Island)와 청정에너지 정책 등을 섬에 적용하면서, 회원국과 지방정부 또는 민간이 협력하고 섬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전에는 이런 프로젝트가 주로 지중해 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됐지만 최근에는 북극 지역의 지정학적 중요성과 정치·경제적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북유럽의 섬들로 확산되고 있다. 지중해의 섬 프로젝트는 환경 문제나 생물다양성의 보존, 그리고 관광산업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비해 북유럽의 섬 프로젝트는 주로 교통물류, 지역 자급화를 위한 산업·기업 투자 활성화에 집중됐다는 게 특징이다. 특히 북극 지역은 최근 국제협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프로젝트에서 도출된 결과를 공유하고 다른 프로젝트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섬에 대한 유럽의 이해와 인식, 그리고 정책과 제도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섬의 가치를 제대로 발견하기 위해서는 섬에 관련된 조사 및 세밀한 통계화가 필요하고 도출된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이해관계자가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EU는 이미 이러한 섬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이해당사자들이 협력하기 위한 플랫폼을 구축했다. 여기에는 회원국 및 지역의 정부, 기업, 민간단체 등이 주요 행위자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이해관계자들(중앙, 지방정부, 시민, 언론, 기업, 민간단체, 전문가 집단)이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와 전담 창구를 만들어야 한다. 도서지역의 권한 강화와 충분한 예산 확보도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섬과 인근 지역이 가지는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는 사회적 비전 연구와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단편적인 경제개발이나 지역경제 활성화보다는 섬이 가지는 가치와 비전을 마련, 사회구성원과 함께 공유함으로써 지역∼국가∼국제사회로 이어지는 이익의 공유체계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유럽의 선례를 통해 우리도 지역민과 시민들이 자신들의 눈으로 섬을 관찰하고 가치를 생각하도록 하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김봉철 외국어대 국제학부 교수/ EU연구소 소장

[EE칼럼] 멀고도 험난한 원전 정상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신한울 2호기가 드디어 내년 4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끊임없이 어깃장을 놓던 원자력안전위원회가 결국 마음을 바꿔 지난 7일 신한울 2호기의 운영 허가를 승인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운영 허가를 신청한 지 무려 10년 만이다. 2018년 4월부터 가동을 시작하려던 당초 계획에서 6년이나 미뤄지면서 한수원은 엄청난 손실을 떠안았다. 신한울 1·2호기의 가동 지연으로 발생한 직접적인 손실만 9조2000억원에 달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4500만톤에 달하는 온실가스 저감 효과도 날아갔다. 문재인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인 망국적인 ‘탈원전’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신한울 1호기와 2호기의 가동이 예정보다 각각 68개월과 72개월이나 지연됐고,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3·4호기의 공사도 늦어지고 있다. 원전 건설·가동의 지연은 파국적인 한전 적자의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다.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한전이 kWh당 평균 정산 단가가 무려 76.9원이나 더 비싸고, 구입가격도 불안정한 LNG를 더 많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탈원전을 정당화하려고 의도적으로 축소한 전력 수요 예측도 정상으로 돌려놔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작업’을 기반으로 올해 1월에 확정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6년까지 필요한 전력 설비용량을 143.9GW로 전망했다. 그런데 정부가 기술 패권 시대에 우리의 생존을 걸기 위한 먹거리로 적극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반도체·이차전지 등의 첨단산업은 막대한 전력 수요를 전제로 한다. 삼성전자 등이 용인에 조성할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에만 최대 10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욱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데이터센터의 전력수요도 만만치 않다. 결국 윤석열 정부가 마련 중인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전력수요의 전망을 획기적으로 현실화하고,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신규 원전의 추가 건설은 불가피하다. 원전 추가건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국제 사회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 주민 거부감이 심한 원전 부지를 확보하는 일부터 간단치가 않다. 문재인 정부에서 부지 후보지를 해지한 대진·천지 원전 부지를 다시 확보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다. 주민 설득에 필요한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부지만 확보한다고 곧바로 원전을 건설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형 원전 APR-1400의 경우 원전 1기를 짓는 데 5조원이 넘게 든다. 건설에 소요되는 기간도 10년이 훌쩍 넘는다.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한 시점부터 따지면 원전의 기획·건설 기간은 20년이 넘는다. 2008년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처음 담겼던 신한울 3·4호기는 2032년에야 준공 예정이다. 그동안의 물가상승률도 고려해야 한다. 심각한 자본 잠식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악화된 한전의 입장을 고려하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노후 원전의 계속 가동 문제도 발등의 불이다. 고리 2호기를 비롯해 2030년까지 10기의 설계수명이 종료된다. 한수원이 설비 안전성을 평가하고, 원안위의 심사를 끝내는 데만 2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주민 의견을 수렵해서 운영변경 허가를 받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탈원전을 앞세워 백지화한 연장 가동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원전을 완공해도 곧바로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발전소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송전망을 깔아야 하지만 주민수용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현재 동해안 지역의 발전 용량은 이미 송전 선로의 용량인 11.4GW를 훌쩍 넘어선 15.5GW에 달한다. 여기에다 신한울 2호기의 가동이 본격화되면 상황은 더욱 절박해진다. 동해안과 신가평을 잇는 송전선로는 2025년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주민 반대와 인허가 지연으로 15년째 답보상태다. 6년이나 걸린 밀양 송전탑 건설 때와는 비교하기 어려운 정도다. 방사성 폐기물 영구처분시설의 건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안이다. 현재의 습식 저장시설은 2028년부터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해진다. 월성 원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건식 저장시설이라도 서둘러 확대해야 하는 형편이다. 전력 다소비 업종인 제조업이 국가 중추산업인 데다 반도체,바이오,AI 등 첨단산업을 장착해야 하는 한국의 경제 현실에서 전력은 단순한 에너지를 넘어 경제혈류이며 국가안보다. 그 핵심이 바로 원전이다. 원전 확충은 정부와 한전만의 일이 아니다. 원전 생태계 회복과 시설의 적기 확충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이덕환 서강대학교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로톡 vs 변협, 혁신 편에 선 법무부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법무부가 기술 혁신에서 큰 공을 세웠다. 법을 다루는 법무부와 혁신이 무슨 상관? 상관이 있다. 법무부 변호사징계위원회는 9월26일 대한변호사협회가 로톡에 가입한 변호사 123명에게 내린 징계 결정을 취소했다. 로앤컴퍼니가 운영하는 ‘로톡’은 법률서비스 플랫폼이다. 소비자(의뢰인)는 로톡에서 자기가 원하는 법률 서비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종래 어떤 변호사를 찾아가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소비자의 눈에 로톡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혁신적이다. 앞서 변협은 2021년 5월 변호사 광고에 관한 규정을 개정한 뒤 2022년 10월부터 일부 변호사들에게 징계(견책 또는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징계를 받은 변호사 123명 전원이 이의신청을 냈고, 법무부는 첫 이의신청을 받은 때로부터 9개월만에 징계를 취소했다. 징계위는 로톡이 변호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장을 제공할 뿐 둘을 직접 연결하는 서비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징계위 결정이 나온 뒤 로앤컴퍼니는 입장문을 내고 "대한민국 리걸테크는 비로소 제대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또 국내 최대 스타트업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 포럼은 "법률시장은 이제 IT 첨단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시대로 도약해 나갈 것"이라며 법무부의 결정을 반겼다. 이번 결정이 "기득권 세력과 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스타트업에게도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다"는 것이다. 로톡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회원 변호사는 2000명이며, 누적 법률 상담 건수는 84만건에 이른다. ‘법조 3륜’이란 말이 있다. 법원, 검찰, 변호사 직역에 종사하는 법조인을 통칭한다. 이들이 사법시험 선후배 사이로 한식구처럼 지낸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도 풍긴다. 사실 장관, 차관을 비롯해 법무부 상층부도 다 법조인이다. 그럼에도 법무부는 변협과 싸우는 로톡의 손을 들었다. 이렇게 보면 법무부의 이번 결정은 그 자체로 혁신적이다. 혁신은 늘 마찰을 부른다. 혁신이 있는 곳에 이미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모빌리티 혁신을 추구하던 ‘타다’의 꿈이 좌절됐다. 국회는 2020년 3월 법(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바꿔 타다의 발을 묶었다. 4·15 총선 직전의 일이다. 주무부서인 국토교통부는 혁신에 제동을 거는 데 동조했다. 혁신과 기득권의 마찰은 현재진행형이다. 의약(강남언니, 닥터나우), 세무(삼쩜삼), 공인중개업(직방) 등이 대표적이다. 변양균은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슘페터 식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 등을 역임한 경제관료다. 조지프 슘페터가 누구인가? ‘창조적 파괴’로 이름을 알린 20세기 경제학자다. 변양균은 말한다. "슘페터식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기업가가 부단히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방식이다. 즉 기업가가 창조적 파괴를 활발히 할 수 있는 토대, 기업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어 "경제철학을 슘페터주의로 전환할 필요성은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혁신을 수용할지 말지 그 열쇠는 소비자가 쥐고 있다. 길게 보면 기득권은 소비자 편익을 높이는 혁신을 이기지 못한다. 18세기 산업혁명 태동기에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이 직물기를 부수었다. 독일 뱃사공들은 증기선에 난입해 모래를 뿌렸다. 그러나 가내 수공업이 직물기를, 나룻배가 증기선을 당할 수는 없다. 다만 로톡 등 혁신을 이끄는 스타트업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기득권의 저항은 인지상정이다. 누군들 ‘내 것’을 건드리면 좋아하겠는가. 기득권도 시대의 산물이다. 이들을 무조건 혁신의 장애물로 몰아붙이는 태도는 옳지 않다. 가능한 한 공존을 모색하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타다 사례를 보면 택시업계와 갈등은 끝내 정치 이슈로 비화됐다. 선거를 치르는 정치인에겐 택시 기사가 가진 확실한 한 표가 더 중요하다. 혁신이 뿌리내리려면 먼저 정부와 국회를 설득하고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기고] "포천시 안보희생 70년 기회발전특구로 보상을"

백영현 포천시장 오는 10월1일은 제75주년 국군의 날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밤 낮 없이 헌신하는 모든 국군장병 여러분에게 깊은 존경의 뜻을 전합니다. 수도권 동북부에 자리잡은 포천시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지난 70여 년간 국가안보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전국에서 유일하게 2개 군단(5·6군단)이 주둔했으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승진과학화훈련장과 국내 최대 규모 미군 영평사격장, 다락대사격장 등 주요 사격장 면적만 1530만평(50.5㎢)에 달합니다..전국에서 가장 많은 4곳의 군 항공작전기지도 있습니다. 포천시는 군부대가 밀집한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군이 핵심적으로 활용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사격장이 모여있는 특수성으로 인해 지금도 포천시민들은 소음을 비롯한 다양한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해외 방산 수출 증가율 1위라는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며 전 세계에 K-방산의 우수함을 알렸습니다. 그 배경에는 포천시의 숨은 역할이 지대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지난 9월1일 윤석열 대통령 지시로 창설된 드론작전사령부가 포천시에 둥지를 틀게 되자 많은 우려도 있었지만 우리 시는 이를 계기로 국방혁신 4.0의 성공적 추진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했습니다. 저출생 문제로 사회 각 분야에서 우려 목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국방 분야도 피할 수 없으며 병력감소 문제를 무인체계 전력화로 대체하는 방안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드론을 포함한 UAM이 그 중 하나입니다. 국가안보 핵심적인 요충지인 포천시는 국방혁신 4.0의 드론 및 UAM의 선도적인 메카로 도약할 최적의 장소입니다. 포천시는 경기도 유일의 드론특별자유화구역(전국 최다 5개소)이며, 소형 군용드론의 실 운용 부대가 밀집해 있는 경기북부의 지리적 장점과 군용드론의 시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승진과학화훈련장과 국방과학연구소 다락대시험장이 소재해 타 도시와는 다르게 인증·시험·훈련을 동시에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지역으로 국방혁신 4.0 계획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거점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항공안전기술원이 상용 드론의 인증센터 역할을 한다면 포천시에 군용 드론의 인증·표준화 센터를 건립해 첨단 드론 방위산업 거점으로 육성하는 방안에 대해 국방부의 적극적인 검토를 요청합니다. 우리 포천시는 전국에 산재해 있는 드론 교육훈련시설의 앵커 역할을 할 수 있는 IT와 연계한 첨단 민관군 드론종합교육센터를 조성해 전국 교육시설 교관부터 민관군 드론전문인력 양성의 요람으로 육성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포천시는 각종 군사시설과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중첩규제로 경쟁력 있는 산업기반이 부재하고, 낙후된 군사도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안보를 위해 적극 협조한 결과가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며 지역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그동안 민군은 서로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는 갈등을 겪어왔으나 이제는 군 정책과 연계한 민관군 상생의 지역특화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포천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자 하는 첨단 드론 방위산업이야말로 전국 최초의 민군상생사업의 모범적인 모델이 될 것입니다. 정부는 지난 14일 지방시대 선포식을 시작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천명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포천시는 기회발전특구와 연계해 대한민국의 눈부신 미래를 위한 성공 투자 모델을 만들고자 합니다. 우리 포천시는 대한민국의 신성장 엔진이 돼 국가발전에 기여할 것을 약속드리며 포천을 기회발전특구로 지정해 줄 것을 중앙정부에 요청드립니다. kkjoo0912@ekn.kr백영현 포천시장 백영현 포천시장

[기자의 눈] ‘오락가락’ 유니티…아무리 급해도 초심은 지키자

[에너지경제신문 윤소진 기자] 언리얼엔진과 함께 글로벌 게임 엔진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유니티가 지난 12일 새 가격정책을 내놓으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게임 설치 횟수에 따라 요금을 청구하는 ‘런타임 수수료’ 정책이 공분을 샀다. 비용 확대를 감당하기 어려운 소규모 인디 개발사들은 엔진 수수료가 매출을 넘어서는 수준이라며 반발했다. 그들은 게임의 비즈니스모델(BM) 특성에 따라 설치 횟수가 곧 매출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토로한다. 업계 안팎에선 연이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유니티가 수익성 개선의 돌파구로 핵심 비즈니스인 엔진 구독료를 손보게 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료 패키지 게임보단 무료 다운로드로 배포 후 부분 유료화 비즈니스모델(BM)을 도입해 막대한 수익을 내는 게임이 많아지면서 설치 횟수 기반 가격정책이 더 힘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새로운 가격정책에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설치 횟수를 정확히 집계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 제기됐다. 악성 어뷰징 유저들의 반복적인 설치와 삭제를 해결할 방안도 공유되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살해협박까지 벌어지고, 유니티 내부에서도 반발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유니티는 한발 물러섰다. 개인이나 소기업 개발자를 위한 플랜인 퍼스널 이용 고객에 한해서 설치에 따른 런타임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또 프로와 엔터프라이즈 대상 고객에겐 런타임 수수료 정책을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개발자들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개발 엔진 교체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개발자도 다수다. 유니티는 무료로 에셋을 다운받을 수 있는 에셋스토어, 저렴한 이용료 등이 개발자들의 환영을 받으며 엔진 생태계를 확장했다. 이에 유니티는 대규모 행사 때마다 생태계 구축과 크리에이터와의 상생에 대해 강조했다. 기업이 수익성을 위해 BM을 고도화하는 것을 비난할 순 없지만, 유니티의 이번 통보식 가격정책 변경 행위는 개발자들의 신뢰감을 땅에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1인 개발자, 소규모 인디 개발사와 함께 성장해 온 유니티가 초심을 잃지 않길 바란다. sojin@ekn.kr반명함 윤소진 산업부 기자.

[이슈&인사이트] 공급망 실사 법제화, 서두를 일 아니다

기업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환경 보호와 인권존중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의 ESG 경영에 반대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제대로 된 ESG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취할지가 중요하다. 모든 제도의 설계는 비용과 편익의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매우 정교한 작업이다. 즉 환경과 인권의 보호라는 목적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제도의 설계가 중요하다. 최근 국회에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보호에 관한 법률안’,이른바 ‘공급망 실사법안’이 제출됐다. 공급망 실사는 쉽게 말해 하청기업이 인권, 환경 관련 법규 등을 잘 지키는지를 원청기업이 감시하라는 것이다. 의무를 위반한 원청기업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까지 부과할 수 있는 강력한 기업규제 법안이다. 국제적으로 공급망 실사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아동노동이었다. 나이키의 파키스탄 하청기업이 상품생산을 위해 아동을 고용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필자가 1998년 프랑스 유학 당시 유명 프랑스 TV에서 나이키의 파키스탄 하청업체가 아동을 동원해 가혹한 노동환경에서 상품을 만드는 자극적인 고발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방송 이후 나이키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거세지자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생산기지를 방글라데시로 옮겼다. 이후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돈을 벌던 아이들이 일자리를 잃으면서 가족 전체가 생존의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후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기업의 서플라이 체인내 에서 발생하는 인권,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UN, OECD 등에서 가이드라인, 권고 등이 나왔고 프랑스,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공급망 실사 법안을 제정했다. EU 차원에서도 지침(directive) 제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나라도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먼저, 공급망 실사를 법률로 제정한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유럽국가 중에 프랑스, 독일 등이 있고 일본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미국은 지난해 6월 위구르강제노동방지법(UFLPA)을 제정해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 강제노동(노동착취)으로 만든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데 이 것은 일견 공급망 실사와 유사한 성격이지만 실제로는 중국 상품의 미국 수입을 막기 위한 ‘중국견제’ 법률의 성격이 짙다. 둘째, 공급망 실사법을 도입한 나라에서는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2017년 ‘기업경계법’이라는 공급망 실사 법률을 제정한 프랑스는 당시 의회 논의 과정에서 경제계의 반대로 법안이 수차례 부결됐고 결국 상징적인 내용만 남아 사실상 사문화돼 있다. EU 내에서도 공급망실사 지침 제정에 대해 경제계에서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을 우려해 공급망실사 지침의 도입에 지속 반대하는 등 이해관계자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셋째, 법률의 실효성 문제다. 나이키 하청공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빈곤과 인권의 문제는 기업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나이키 하청공장이 아동을 고용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빈곤을 해결할 수 없는 국가의 역량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기업에게만 빈곤과 인권에 대해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산업구조를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제조업 강국이다.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6%로,세계에서 중국(28%) 다음으로 높다. 공급망실사 법률이 시행되면 제조업 생태계 전반에 큰 혼란이 빚어진다. ‘인권과 환경의 보호’라는 전 인류가 공감하는 원칙이라도 법률로 강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국내 산업의 특성과 경제현실을 고려하고 외국의 시행사례를 면밀히 따져보고 우리 현실에 맞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유정주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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