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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거시경제학으로 본 의료개혁

우리나라 통화정책의 심장부인 한국은행 조사국에는 J.M. 케인즈의 어록이 걸려 있다. 케인즈는 순수한 시장경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경제 개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거시경제학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이 분야는 정부 정책의 효과를 깊이 있게 탐구하는 경제학 분야이다. 필자는 거시경제학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의료개혁과 같은, 겉보기에 경제학과 관련 없어 보이는 사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국민건강보험부터 의료개혁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정부가 의료시장에 개입하는 경제학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을 짚어보자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필수의료 서비스의 부족 문제는 공급 부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실패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다시 추가적인 규제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건강보험 시스템은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지 못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 주저한다. 현재의 의료공백 문제는 근본적으로 경제적인 문제다. 경제원론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떠올려 보자. 수요가 증가하면 일반적으로 가격도 상승한다.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은 더욱 올라간다. 반면,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량은 증가하고 공급량은 줄어든다. 우리나라 의료시장에서는 필수의료(급여) 서비스의 가격이 포괄수가제 등을 통해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이로 인해 수요량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공급량은 감소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가격통제에 의해 수요량에 비해 공급량이 부족할 경우 암시장이 형성돼 수요공급의 균형을 이루지만, 의료서비스라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는 암시장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시장은 지속적인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의료 서비스 가격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해졌다. 이론상으로 필수의료는 더욱 수요량과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진료비가 저렴한데 건강보험은 중복지급되니 의료서비스 수요자들은 같은 상병으로 여러 병원을 방문해 중복진료를 받는다. 이런 중복지급은 건강보험 재정에 치명적일 것이지만, 급여진료에 대해 병원에 지급되는 수가는 원가 이하 수준으로 책정돼 재정 고갈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필수 의료를 제공하는 병원의 상황은 어떠할까? 회사든, 정부든, 개인이든, 적자는 결국 파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병원도 필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비급여 진료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현재 의료개혁 방안은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고 의사 수를 매년 2000명씩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단순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비급여 진료를 제한하고 매년 2000명의 새로운 의사들을 의료서비스에 추가 투입한다고 해도, 과연 필수진료과목인 소아과, 외과, 산부인과의 수가 증가할까? 이 정책은 마치 실패가 예상되는 사업에 창업을 권하는 것과 같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개인의 직업을 통해 생활의 안정을 찾고, 사회적 지위와 부를 쌓는 것이 일반적인 목표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시스템 속에서 특정 산업에만 적자가 불가피한 직업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만약 이 정책이 의료분야로의 과도한 진입을 억제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공하기는커녕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것이다. 대학입시의 경쟁을 줄이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전체 의료분야를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 이 정책이 의료분야를 더 이상 선호되는 직업경로로 만들지 못한다면, 정부가 추가로 확대하려는 2000명의 의대 정원은 과연 누가 채우려 할까? 이는 단순히 대학 입시 문제를 넘어서 의료 분야 전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재평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김수현

[EE칼럼] 트럼프 대선공약으로 본 미국 에너지 정책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력해지고 있다. 사법 리스크 등 여러 난관이 적지 않게 남아 있지만 민주당의 바이든 현 대통령보다는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와는 관계없이 현 시점에서 트럼프 대선공약을 통해 미국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가늠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공약은 지난해 4월 헤리티지재단이 중심이 돼 작성한 900쪽의 정책과제 보고서인 '리더십을 위한 지킴―보수의 약속(Mandate for Leadership 2025: The Conservative Promise)'에 잘 나타나 있다. 총 30장에 걸쳐 작성된 이 보고서는 분야별로 정책과제를 정리했는데 에너지 부문은 과거 미국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에서 에너지 정책을 담당했고 트럼프 행정부 때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deral Energy Regulatory Commission· FERC) 위원장을 역임한 버나드 맥나미(Bernard McNamee)가 여러 에너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작성했다. 공화당의 가장 큰 지지세력은 남부지역과 중부 및 중서부 지역이다. 즉, 대도시보다는 농촌과 한물간 공업지대로 흔히 '러스트벨트'라 불리는 지역 그리고 미국에서 가장 에너지를 왕성하게 생산하고 수출하는 텍사스 일대로 주요 에너지 기업의 영향력이 큰 곳이다. 반면, 민주당 지지세력은 보스톤, 뉴욕, 필라델피아 등의 동부 대도시와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 등 첨단 ICT 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이런 지역별 분포에서 짐작되듯이 공화당의 에너지 정책은 민주당이 강조하는 온실가스 감축, 재생에너지 확산, 탄소중립 등과는 분명한 차이를 드러낸다. 특히 민주당의 환경친화적 에너지 정책이 에너지 가격의 인상을 불러온 것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본 공약집에서 강조하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 정책 방향은 에너지 안보를 확립하고 국민에게 값싼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도 에너지가 미국의 국익을 위해 활용되고 나아가서 우방국에 대한 에너지 수출을 통해 동맹을 지원하며 미국 에너지 산업의 이해를 증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아무래도 값비싼 재생에너지보다 화석에너지와 원전의 활용을 더 강조하게 된다. 특히 텍사스 휴스턴을 허브로 한 미국 석유메이저의 생산과 수출 증대를 미 에너지부의 중요한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재생에너지와 무탄소 및 탄소저감 기술에 대해 정부가 큰 돈을 들여 지원하는 것도 중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CCUS, 에너지 저장장치 등과 같은 탄소저감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에는 부정적 입장이다. 특정 기술에 대한 정부 지원은 특정 산업과 이익집단을 위한 것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가격시그널을 왜곡하고 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방해한다고 보고 있다. 본 공약집에 나타난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FERC의 규제원칙이다. FERC는 전력이나 천연가스의 주간(州間) 거래를 규제하는 연방규제기관으로서 주간 거래를 담당하는 전력 송전망과 천연가스 배관망의 사용요금과 거래조건을 규제한다. 그런데 본 공약집은 FERC가 특정 에너지를 지원하지 않는 이른바 '자원 중립성(resource neutrality)'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재생에너지 때문에 보강해야 하는 송전망 투자의 경우 이를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사회적 비용의 분담이라는 모호한 말로 일반 소비자에게 떠넘기지 말고 해당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직접 비용을 부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대선공약은 송전망 건설계획 및 접속절차에 있어서도 풍력 및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자원에 편의를 봐주는 것은 자원중립성을 해친다고 비판한다. 트럼프가 미 대통령에 복귀한다면 미국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현 바이든 대통령과는 크게 다를 것으로 판단된다. 온실가스 감축과 탄소중립보다는 값싸고 안정적인 화석에너지의 생산이 강조될 것이며 적극적인 수출확대로 미국산 LNG의 시장점유율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더 높아질 것이다. 조성봉

[EE칼럼] 배출권거래제의 屋上屋 ‘탄소차액계약제’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최근 탄소차액계약제도(Carbon Contract for Difference·CCfD)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탄소저감 프로젝트에 안정적인 수익원을 제공함으로써 불확실한 탄소 가격과 관련된 재정적 위험을 줄여 저탄소 기술로의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 수단이다. 배출권 이월제한 폐지와 같은 정작 중요한 근본적인 개선방안은 그대로 두고, CCfD를 덧입히려 하니 자못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예산까지 본격적으로 확보한 것을 보면 더이상 늦기전에 진지하게 제도도입의 그 이면도 들여봐야 한다. 전문가 외엔 아무 관심이 없지만, 잠재적·부정적인 파괴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CCfD는 기본적으로 탄소 배출권 가격이 낮을땐 정부가 보조금을 제공하고, 높을 땐 투자한 기업이 정부에 추가적인 납세를 하는 형식이다. 개념적으로 배출권 가격이란 정부가 제시한 기준가격보다 높을 수도 혹은 낮을 수도 있으니, 얼핏 보기에는 공정해보인다. 하지만 굳이 이 제도를 배출권거래제 위에 옥상옥(屋上屋)의 형태로 두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정부가 돈을 주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주체인 기업이 배출권거래제 하의 인센티브 체계로는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이런 동기를 틀리다고 할 수 없지만, 언제나 정책은 일단 도입되면 효과여부를 떠나 자생력을 발휘하며 세금먹는 하마가 되기 쉽상이기에, 적어도 당국자와 국민들도 이를 알고는 있어야 한다. 첫째, 기술선택과 관련된 시장 왜곡, 즉 투자 대상인 기술을 신중하게 설계하지 않으면 특정 기술이나 분야를 다른 분야보다 선호함으로써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일단 CCfD의 수혜대상에서 벗어나면 잠재적으로 혁신과 비용 효율적 감축사업이 저해된다. 더 새롭고 효율적인 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더 이상 사용되지 않거나 최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특정 기술에 종속될 위험이 있다. 둘째, CCfD를 구현하고 관리하려면 별도 행정시스템이 필요하므로 정부 및 기관의 행정 부담이 증가한다. 관료주의적 비효율과 지연으로 인해 저탄소 기술의 적시 도입이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이나 네덜란드 같은 EU-ETS 속에 일부 멤버가 CCfD를 채택하는 것은 ETS 제도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지만, Korea-ETS 전체에서 CCfD 를 택하는것은 더이상 ETS 가 아닌 보조금제도로 변형될 위험이 있다. 전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다. 현재 ETS 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배출권 가격보다는, 정부의 CCfD 기준가격 설정이 훨씬 중요해진다. 여기에 가격결정의 자의성과 규제의 복잡성이 폭증한다. 셋째, 과잉 보상 및 횡재 이익의 위험이 있다. 현재처럼 탄소 가격이 이월제한 등으로 비정상적으로 하회하면, 프로젝트 개발자가 과도한 보상을 받아 공공이나 환경을 희생시키면서 횡재 이익을 얻을 위험이 있다. 계약 조건을 조정하거나 초과 지급금을 환수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며, 이는 행정적으로 까다롭고 정치적으로 민감할 수 있다. 넷째, 선정 및 자격 기준. 어떤 프로젝트나 기술이 CCfD에 적합한지 결정하는 것은 잘 연결된 산업이나 기업의 로비 및 영향력의 위험으로 인해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선정 기준과 의사 결정 과정은 공공 자원의 가장 효과적인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 투명하고 공평해야 하는데, 정부가 이 책임을 모두 질 것인가? 다섯째, CCfD에 필수적인 장기 계약으로 인한 경직성. 장기 계약은 수혜 기업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게 만들어 새로운 기술, 시장 발전 또는 국제 기후 정책의 변화에 대한 정책 대응의 유연성을 제한한다. 향후 정책 방향이나 환경 목표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는 특정 프로젝트나 기술에 자원을 낭비할 위험이 있다. 여섯째, 불평등의 가능성. CCfD의 혜택은 제한된 수의 프로젝트 또는 기업에게만 돌아갈 수 있으며, 이는 저탄소 전환에 대한 공공 지원의 분배에 불평등을 초래한다. 한국과 같은 문화에서 이로 인한 각종 잡음과 책임소재는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시장 지배력을 가진 대형 배출업체는 CCfD를 통해 부당한 이득을 얻고 시장 지배적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다. 인센티브가 대기업에 편중되고 잠재적으로 더 혁신적인 소규모 기업에는 돌아가지 않아 탄소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수혜를 받는 기업은 CCfD의 로비를 통해 설계와 이행에 영향을 미쳐 자신들의 운영에 유리하도록 할 수 있으며, 이는 배출권시장 전체의 경쟁구도를 무너뜨린다. 일곱째, 고탄소 인프라에 대한 고착화 위험. 예컨데 대형발전사 혹은 일부 제철사와 같은 대규모 탄소 배출 기업은 본질적으로 탄소 집약적인 중공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으로 혁신적인 저탄소 기술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 CCfD 사업은 의도치 않게 기존의 고탄소 인프라에 보조금 지급 메커니즘으로 고착화할 수 있다. 물론 정부가 돈준다는데 싫어할 기업은 없기에 그동안 CCfD를 다룬 여러 관변 연구와 논평을 보면 환영 일색이었다. 보도자료 받아쓰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제도의 도입에 대한 비용효과성, 즉 좀 더 적은 비용으로 같은 효과를 누릴 다른 대책은 없는가도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시장에 돈다발이 투입되면 나를 포함한 업계 관계자들은 뜨순 밥을 먹겠지만, 호주머니를 털어 세금으로 이를 충당해야 하는 국민들의 입장에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자문할 수 밖에 없다. 유종민

[이슈&인사이트] 국가주도 양육·보육 대전환 안되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부터 태어나는 아이 1명당 0세부터 7세까지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첫만남이용권 등을 합쳐 총 2960만원의 현금성 지원 혜택을 받는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의 보육기관을 이용할 때 보육료나 가정에서 보육할 때의 양육수당 등도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출산을 하면 따라오는 금전적 보상과 지원은 우리나라 출산율의 변동 추이를 볼때 예비 부모들의 출산 의사 결정에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에따라 저출산의 사회구조적 요인들을 통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사교육비가 저출산에 미치는 영향」보고서를 통해 월평균 실질 사교육비가 1만원 증가하면 합계출산율이 0.012명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하였으며, 합계출산율 하락의 약 26.0%가 사교육비 증가에 기인한다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주택 가격과 자녀 교육비 관련 요인들은 저출산 현상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이 아주 흥미롭다. 그 중에서도 교육비와 출산 간 연계성을 고찰해 본 결과, 고학력화로 인해 결혼이나 출산이 지연 되는 문제나 과중한 양육과 교육비 부담이 저출산을 유발하는 연계성을 찾아낸 것이다. 2000년 이후로 특히 우리나라의 10대, 20대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입시를 치르고, 또다시 취업 준비를 위한 무한 경쟁을 해왔다. 성공과 출세에 대한 부모님의 교육비 지원에 부응하기에 오랜 기간 학업을 통해 고학력을 갖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서른 살이 다 되어서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이 비일비재하다. 결혼의 기반을 갖추기 위한 초혼 연령도 늦어진 상황에 우리나라 '일자리 상황'과 결혼 자금의 크기를 고려했을때 실제로 결혼 자체를 결정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한편, 여성의 경우에도 고학력은 노동시장에서는 유리한 입지를 담보해 줄 수 있지만 결혼시장에서는 배우자 선택의 범위와 기회를 좁히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신부보다 더 고학력의 신랑감을 찾는 기존 한국의 사회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렵게 배우자를 찾아 결혼을 하더라도 본인이 성장하면서 부모로부터 지원받은 교육비를 계산해보면 이미 결혼 연령이 늦은 상황에서 아이를 갖는 것을 포기하거나 한 자녀만 출산한 이후에 추가적인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녀의 성공과 출세'를 실현시켜 주고자 하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성취 욕구가 교육과열과 늦은 결혼 즉, 만혼을 야기하고, 부모가 가진 경제 소득이 본인에게 전폭적으로 투자되었던 경험은 합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초과하는 자녀 사교육비 부담으로 다시 작용하게 된다. 본인이 퇴직이나 은퇴할 때까지 아이를 제대로 키워 대학에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한국 사회의 부모로서 공통적으로 갖는 출산과 양육의 큰 경제심리적 부담이다. 이제 한국은 투자된 사교육비를 회수하기에 힘든 저성장기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노동시장에서 명문대 졸업장과 박사 학위의 사회적 가치도 크게 떨어졌다. 고학력이 아니더라도 사회진출과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데 어려움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아이들은 국가가 알아서 행복하게 키운다"는 기조를 바탕으로 정책입안자들이 출산 장려금이나 보육비 뿐만 아니라 부모들이 사회구조적으로 최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양육 및 교육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신이 한국이 다시 태어나고 싶을 만큼 즐겁고 행복한 성장과정을 누렸다면 아이를 더 낳어서 내 아이들에게 그 무형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을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 없이도 좋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교육적 성취와 사회적 역량을 충분히 키워줄 수 있는 양육과 교육 환경이 절실하다.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사회경제적 원인을 해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세대가 결혼과 출산이 줄 엄청난 행복과 풍요로움을 기대하게 만들어 보자. 사교육비 부담, 세계 1위의 한국이 아닌,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하기 가장 좋은 한국이 되었으면 한다. 박세원

[데스크칼럼] 중처법, 노사 모두 ‘사고의 전환’ 필요하다

지난 1월 27일부터 상시근로자 수 5인 이상 모든 기업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제정돼 이듬해인 2022년 1월 27일 50인 이상, 공사비 50억원 이상 기업부터 우선 시행됐고, 적용기준 미만 기업은 2년간 유예기간을 거쳐 올들어 확대 시행된 것이다. 중처법의 핵심은 중대(산업)재해를 이르게 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중대재해란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한 산업재해 중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재해자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고 책임은 경영책임자의 경우 사망자 발생 시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 그 외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의 부과를 의미한다. 사업주(법인)에는 양벌규정으로 사망 발생 시 50억원 이하 벌금, 그 외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규정돼 있다. 중처법 확대시행으로 상시근로자 5명이 넘는 개인사업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음식점·숙박업소·주유소·제과점·커피점 등도 적용되며, 상시근로자에는 기간제·시간제(아르바이트)·배달라이더(근로계약 체결자)까지 포함된다. 중처법은 2008∼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2014년 세월호 참사, 2022년 이태원 참사 등 사회성 대형재해와 2018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의 작업중 사망사고 등 산업현장 재해가 끊이질 않는 우리 사회의 안전 불감증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도입 과정에서 노사의 극명한 찬반 대립을 겪었고, 2차례로 나눠 시행되는 과정에서도 노사갈등은 되풀이되고 있다. 기업주들은 중처법의 법적 미비성과 현장수용 애로를 주장하며 추가유예 법 개정을 계속 요구하고 있다. 기업주들은 여러 사정을 들어 중처법을 반대하고 있지만 핵심은 '징역형'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인다. 더욱이 사망사고에서 근로자의 과실 부분이 많더라도 사업주의 책임도 자유롭지 못하는 측면에서 신체형 형벌을 우려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간다. 그러나, 이같은 기업주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길은 사실 간단명료하다. 자신의 사업장 안전 문제를 해결해 '범법자 소지'를 없애는 것이다. 안전관리 준수와 징역형 피하기 중 어느 쪽의 효용성을 선택하느냐는 사업주의 몫이다. 반면에 노동계는 첫 시행 이후 중대재해 발생이 높음에도 실질적 법 적용(검찰의 사건 기소)이 낮은 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강력한 법 적용 의지를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산업재해의 원인을 모두 기업쪽으로 몰아부치는 노동계의 접근방식도 대응전술로는 유용할지 몰라도 근본해결책은 아니다. 산업현장에서 안전관리 행동과 시스템이 잘 갖춰지더라도 결국 일하는 근로자가 주의깊게 수행하지 않으면 산업재해는 언제든 '나의 일'로 닥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사업주나 근로자 모두 '산업안전 불감증'에 근본적 사고의 전환 없이는 중대재해를 줄일 수 없다. 중처법 확대시행으로 산업현장에서 재해나 사망자 발생이 1~2년 새 크게 줄지 않을 것으로 본다. 우리의 중처법에 해당하는 '기업과실치사법(CMCHAct)'을 시행한 영국도 중대재해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데 12년이나 걸렸다고 하지 않은가. 지금도 전국 어느 산업현장에선 재해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으며, 실제로 최근에 인천 제철공장, 울산 조선소, 안산 고등학교, 포천 금속공장 등에서 안타까운 근로자 사망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기업주는 중처법이 두렵다면 사업장 산업안전을 우선 챙기는 노력을, 근로자도 산업재해가 걱정된다면 '나는 숙련자이니까', '이런 일까지 귀찮게'라는 관행을 버리고 산업안전 규칙을 엄수하는 협조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기자의 눈] 쿠팡 블랙리스트의 양면성

“블랙리스트 명단을 의도적으로 조작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폭언이나 도난 등 문제 사유가 있는 직원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린 것은 잘못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나요?" 최근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이 논란되자 유통업계 한 관계자가 보인 반응이다. 기피직원의 채용을 막기 위한 기업의 블랙리스트가 '일자리 얻을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선 잘못된 행위로 볼수 있지만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유를 보면 쿠팡의 블랙리스트가 충분히 공감이 간다는 견해로 풀이됐다. 쿠팡의 블랙리스트는 물류센터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명단이다. 쿠팡이 블랙리스트로 추정되는 'PNG 리스트' 엑셀 문서 파일을 내부자료로 작성해 왔다는 언론 보도로 드러났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엑셀 파일에 담긴 명단은 등록일자와 근무지, 요청자와 작성자에 이어 이름과 생년월일, '원바코드'로 불리는 로그인 아이디, 연락처 순으로 기재돼 있다는 것이다. 등록 사유로는 '폭언, 욕설 및 모욕', '도난사건', '허위사실 유포' 등 총 48개 유형으로 분류돼 있다고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비밀기호 또는 명부를 작성·사용하거나 통신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물류센터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는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고, 심지어 지금껏 별다른 제재도 받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이 줄곧 제기돼 왔다. 실제로 쿠팡에 앞서 2022년 새벽배송 플랫폼 마켓컬리는 일용직 근로자 대상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가 결국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2019년 CJ대한통운의 유사 사건도 같은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이같은 전례에 비춰봤을 때 쿠팡 역시 무혐의 처분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쿠팡 블랙리스트 논란이 커진 이유에는 명단 대상이 단순히 물류센터 근로자들로 국한되지만 않았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쿠팡 블랙리스트에는 물류센터 취재를 진행한 기자를 포함해 경찰청 출입기자들 정보까지 올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개인의견을 밝힌 유통 관계자가 주장한 기업의 블랙리스크 작성 의도를 벗어난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직장에서 결격 사유가 있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기업의 정당한 자기방어권이라는 주장을 십분 인정하더라도 소속 근로자가 아닌 다른 대상자를 임의로 정해 블랙리스트로 확대 작성할 수 있다는 합법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건 기업의 월권행위이자 개인의 정보보호 및 인권을 침해하는 탈법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서예온 기자 pr9028@ekn.kr

[EE칼럼] 너나 잘하세요

공자(孔子) 말씀 가운데 '후생가외(後生可畏)'라는 글귀가 요즈음 새삼스럽다. 논어(論語) '자한편(子罕篇)'에 나오는 '젊은 후학(後學)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라는 뜻이다. 후학들이 선배들보다 젊고 기력(氣力)이 좋아, 학문을 닦음에 따라 더 큰 인물이 될 수 있어 선배들은 두렵게 여겨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주 어느 학회 모임에서 에너지 문제는 과학-기술의 영역을 벗어나 경제-사회적 영역을 지나 정치이념문제로 승화되고 있다는 여러 고견에 접하였다. 녹색 에너지전환과 순환경제와 디지털 경제 상관성, 산업혁명 이후 ESG 개념의 진화, 신에너지 전환시대의 물 관리, 글로벌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 등 다양한 내용이었다. 발표자들도 관련 전문가보다 다방면의 사회 저명인사들이 초청되었다. '공학'이나 과학 영역을 벗어나 학제(Multi-Disciplinary)적 성찰에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좋은 비전 달성을 위한 기반 논리 제시가 부족한 것 같아 좀 허전했다. 화려한 비전 뒤에 숨은 힘든 기초연구에 대한 성찰이 아쉬웠다. 에너지·환경문제는 생성·생산과 추출-활용-환경계 환류라는 에너지 주기 전체에 대한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이 필요하다. 그것도 열역학적 논리에서 출발한 과학적 연구방법론이라야 한다. 과학적 연구방법론이란 가설을 설정하고 관찰이나 실험을 계획해 실시한 결과로 얻어진 자료를 처리·발표·검토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는 체계적 이해를 통한 '인과관계의 규명'과 반복적 실험과 검증을 통한 '일반화' 그리고 정립된 이론을 통한 '미래예측 능력의 통제'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눈앞의 단기적 부가가치 창출과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에 반해 정부나 기업과 직접 관련된 현업과제에 대한 외부지원이 많고 그만큼 실용화가 쉽다. 정치경제학이나 전략적 선택이론에 경도되는 '비 과학적' 연구방법론 적용이 많다. 이런 여건에서 학계마저도 기초이론보다는 실용적 사례연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당연히 실용 영역의 논문과 연구결과들이 좋은 평가를 받도록 검증과 평가체계를 변경하게 마련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현상 분석 연구는 많으나 과학적 인과관계 추출과 이를 통한 미래예측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우리 에너지·환경정책의 시장실패와 정부 실패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계를 선도한다던 지난 정부가 시작한 녹색 경제정책의 효율성 저하,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 국가목표 달성의 혼란에다 경제선진국 중 최하 수준의 신재생에너지 공급역량 등이 모두 여기에서 연유된 것일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우리 에너지·환경정책은 과학적 추진 체계라기보다 이념추구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우려에 대한 해외의 유수 전문가들이나 관련 전문지 검증발표 역시 최근 부쩍 많아지고 있다. 인류 공동의 해결과제라는 지구온난화 문제검증이 대표적 사례다. 2015년 UN 기후변화 당사국 회의(IPCC)는 '파리협정'을 체결했다.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온도를 섭씨 2도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가능하면' 1.5도 이하 유지에 노력한다는 조항이 부가됐다. 협정은 더 많은 참여 유도와 급변하는 기후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각 국가가 자발적으로 정하는 '자발적 기여결정(NDC)' 제출로 가름한다. 2030년까지 미국과 유럽연합은 각각 절대량을 26~28%, 40%감축, 중국은 GDP 대비 배출량 기준 60~65% 감축, 한국은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BAU) 37% 감축을 목표로 제출했다. 그러나 NDC 추진상황을 보면 파리협정 목표(2도/1.5도 이하 )달성은 물건너 갔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금 지구는 IPCC 기준인 산업화 이전(1850~1900년)의 평균 기온보다 이미 약 1.2도 더워졌다. 지구온난화 시계를 약 10년 앞당겨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계가 인류공영의 공동선으로 합의한IPCC 추진가치의 변화-훼손은 심각한 문명사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IPCC가 추구해온 과학 기술적 문제진단과 해결 노력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그 대신 국제 정치질서 변화를 우선해 큰 그림을 그리려는 시도가 관심을 끌고 있다. 국제질서 개편을 통한 에너지·환경문제 해결 노력은 석유기반국가와 전력중심국가의 비교 우위 논쟁으로 번지고 있ㄷ. 미국 중심 서방의 기존 세계질서 유지-발전론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개도국의 새로운 질서 창출 기대론이 대결하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서방의 소극적 대응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 BP등 서방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석유수요 정점을 대비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2035년부터 가솔린-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기존 석유 중심국가 행태를 청정연료 중심체제로 바꾸려는 초기 시도수준이다. 반면 세계 탄소배출의 1/4을 담당하는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배출을 아예 하지 않는 '탄소중립' 달성을 공언했다. 태양전지 등 세계 1위 신재생설비생산국 지위를 활용해 화석연료 중심 국가운영체제를 신재생발전으로 대체하는 전력 중심 국가 건설과 이를 통한 탄소 중립달성 의지를 보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미래 정보화 사회는 전력시스템에 기반을 두고 정보전달 융합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산업혁명 이래 혁신요소 누적에 의한 현행 인류문명체계 지속가능성은 뿌리부터 변화될 시기에 접어들었다. 산업혁명 이래 두 세기에 걸쳐 축적된 기술혁신요소들의 누적과 이에 연유한 지속성장을 보장하는 'S 커브' 형태 성장모형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혁신이 아니라 세계질서 개편 등 정치 경제적 요인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 모든 에너지·환경부문 논리가 본격적인 후생가외 체제로 개편되고 있다. 점진적 개혁, 연구개발의 혁신성과 파급효과, 가치관 변화의 가교 시대 논리는 구닥다리가 되고 있다. 요소혁신을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패러다임'이 불가능한 시대에 접어든 지금 세계질서 주도권은 새로운 혁신 주체, 즉 정치경제 논리로 무장한 후생들이 결정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필자는 현행 주축학자들의 숨은 노력으로 새로운 에너지-환경혁신체계 기반조성이 늦지만 꾸준히 진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후생이 잘 할 것으로 믿는다. 필자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씨의 명대사인 '너나 잘하세요'를 되새기면서 하릴없던 지난 과오를 반성한다. 최기련

[기자의 눈] 쇄신 속도 내는 카카오…봄날은 온다

'전면 쇄신'을 선언한 카카오가 인적 쇄신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음 달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정신아 카카오 대표 내정자의 취임과 함께 핵심 계열사 대표들이 대거 교체될 전망이다. 이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김성수·이진수 공동대표 체제에서 권기수·장윤중 공동대표 체제로 전환하기로 했고, 카카오게임즈는 조계현 대표에서 한상우 최고전략책임자(CSO)로 대표이사를 교체하기로 했다. 그밖에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페이, 카카오브레인,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카카오 VX 등도 대표이사 교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카카오는 인적 쇄신과는 별개로 그룹 전반의 컨트롤타워도 정비하고 있다. 최근 카카오는 그룹 컨트롤 타워인 CA협의체 산하에 세부 위원회를 만들고, 위원회 별 역할을 부여했다. 세부 위원회는 △경영쇄신위원회 △전략위원회를 비롯해 △브랜드커뮤니케이션위원회 △ESG위원회 △책임경영위원회 등이다. 경영쇄신위원회는 김범수 창업주가 위원장을 맡아 그룹 전체의 쇄신을 주도하고, 전략위원회는 정신아 대표 내정자가 이끈다. 브랜드커뮤니케이션위원회 위원장으로는 '컬리' 출신 이나리 전 총괄 부사장이 영입됐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위원회는 권대열 위원장이 맡기로 했다. 권 위원장은 당분간 책임경영위원회 위원장직도 겸임한다. 카카오의 쇄신 작업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건 창업주 김범수 창업주가 지난해 12월 낸 메시지다. 당시 김 창업주는 쇄신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하며 “카카오의 위상에 걸맞은 체계를 갖추고, 사회의 신뢰에 부합하는 방향성을 찾는데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선 쇄신 작업이 다소 더딘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지만, 카카오의 '최악'은 지났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실적 측면에서도 개선세가 뚜렷하다. 카카오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전년대비 11% 감소했지만, 4분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동기대비 109% 증가했다. 업계에선 카카오가 꾸릴 '새 판'은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적 쇄신이 마무리되는 데다 '쇄신'의 키를 쥔 정신아 대표 체제가 본격적인 닻을 올리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혹독한 겨울을 지낸 카카오가 올봄에는 다시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비상하길 기대한다. 정희순 기자 hsjung@ekn.kr

[기고] 신뢰성 높은 기후정보 통해 겨울철 이례적 호우 대비해야

2024년 1월 소양강 댐 상류 빙어호에서 열릴 빙어축제가 2023년 12월 27일에 갑자기 취소됐다. 예년에 비해 많은 겨울철 강수량으로 댐의 수위가 올라 183미터(m)의 수위 이하일 때만 가능한 축제장 조성이 어려워졌다. 2023년 11월과 12월 말 사이 댐 유역의 강수량이 2022년 대비 약 3배 증가해 댐 수위가 빙어 축제 허용치보다 3m 이상 상승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2023년 12월 기온 변동폭이 5.9도로 1973년 이래 가장 컸다. 12월 전국 강수량은 100밀리미터(mm)를 넘어서 평년보다 최대 5배 이상 많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평소보다 눈이 내리는 날도 많았다. 특히 2023년 12월 11일과 15일 전국 일 강수량은 각각 31.5mm, 30.9mm이었다. 두 날 모두 하루 만에 평년 12월 강수량(28.0mm)보다 많은 비가 내렸다. 2020년 1월 27일에 울산에서는 1932년 관측 이래 1월의 일 강수량으로는 최고치인 113.6mm, 부산에서는 73.3mm의 호우로 도로 침수가 발생하여 차량통행이 제한되기도 했다. 이러한 겨울철 극한기후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24년 1월에는 미국 중서부 대부분 지역에서 폭우와 영하의 날씨가 오락가락하면서 도로가 얼음으로 뒤덮이고, 한때 영하 10도 이하의 기온을 기록했던 텍사스에서는 혹한이 풀리면서 폭우에 의한 홍수 대피령이 내려졌다. 지구온난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우리나라도 향후 동절기 강수량 증가로 인한 각종 사회·경제적 피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도심지 및 하천 인근 유역에 대한 통합적인 도로·방재시설 점검·확충과 같은 장기적인 도심지 및 하천 시설 관리 강화 방안에 대해 새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2023년 11월 역대급 홍수를 겪은 프랑스 북부 지방에 2024년 1월 초에 다시 홍수 적색경보가 발령됐다. 기존에 이 지역 사람들은 홍수를 자연재해로만 여겼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늘어난 현재의 빗물을 지탱하지 못하는 1000년 묵은 지역 배수 시스템의 처리용량과 반복되는 물난리를 사람들이 인식하면서 이에 대한 새로운 점검·관리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기상청과 APEC기후센터의 하천유역별 극한 강수량의 미래변화 분석 결과도 부산 수영강과 울산 회야강 권역에서 현재처럼 탄소배출이 계속 늘면 100년에 한 번 나타날 일(누적) 극한 강수량이 21세기 전반기(2021~2040년)에는 11%, 중반기(2041~2060년)에는 34%, 후반기(2081~2100)에는 무려 57%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탄소배출이 늘지 않으면 일(누적) 극한 강수량이 21세기 전반기에 29%, 중반기에 22%, 후반기에는 단지 18%만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발표한 기상청의 지역 기후변화 전망보고서에서도 탄소배출이 현재처럼 지속되면 우리나라 광역지자체에서 연평균 기온, 강수량, 1일 최대 강수량 및 호우 일수도 늘 것으로 예측했다. 즉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는다면 극한 강수량이 장기적으로 증가해 한꺼번에 집중하는 강수와 강설로 인한 침수·교통사고 등과 같은 인적·물적 피해가 심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2021년의 세계기상기구(WMO) 조사 결과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9년까지 50년간 자연재해가 5배 증가했으나 반대로 사망자 수는 약 3배 줄었다. 이는 그동안 지구온난화로 극단적 극한기후의 발생이 잦아지고 강도가 세어졌지만, 기상·기후에 대한 예측력을 높여 극한기후에 대한 조기경보·대응 역량을 키워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도로관리 및 방재와 관련된 사회기반시설의 구축·관리에 기후의 변화·변동 사항을 예측·반영하는 등 사람들이 인적·물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이다. APEC기후센터도 기후예측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기후예측정보의 신뢰성을 한층 더 높이는 역할과 소명을 다할 계획이다. 집중호우, 이상고온 등 그동안 특정 계절에 집중해 발생하던 극한기후가 연중 사시사철 발생하며 인명과 재산상 피해는 물론 지역 내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지속해서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하는 노력과 동시에 신뢰성 높은 기후예측정보의 활용을 통해 갑작스럽게 언제든지 찾아오는 극한기후에 잘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원희 기자 wonhee4544@ekn.kr

[EE칼럼] 소형모듈원자로 개발의 시대적 과제

욕래조 선수목(慾來鳥 先樹木). 새를 오게 하고 싶으면, 먼저 나무를 심으라는 한자 성어다.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원자력이 바로 그 생생한 예다. 우리 원자력 역사의 출발점은 7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6년 미국의 전기기술자 시슬러 박사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원자력은 사람의 머리에서 캐내는 에너지"라고 소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물었다. “그거 지금 시작하면 몇 년 뒤에 써먹을 수 있는 거요?" 시슬러 박사가 답했다. “한 20년쯤 걸립니다." 원자력의 잠재력에 주목한 81세의 이 대통령은 즉시 원자력에 대한 투자를 시작했다. 우수한 과학 인재를 모아서 1인당 6000달러라는 거금을 들여 유학을 보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60달러 남짓이었다. 4년간 8차례에 걸쳐 150여 명을 보냈다. 1958년 원자력법을 제정‧공포하고, 이듬해원자력 인력 양성과 기술개발 기반인 연구용원자로 도입을 결정했다. 이 연구용 원자로 건설을 위해,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인 35만 달러를 투자했다. 1978년 고리 1호기 상업 운전이 시작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시슬러 박사를 만난 지 22년이고, 이 대통령의 서거 13년이 지난 때였다. 그 이후 31년이 지난 2009년 우리나라는 UAE에 원전을 수출했다. 혜안을 가진 선각자가 한 세대 앞을 보고 투자하고, 후임자가 계승하면서 지금의 우리나라 원자력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또다시 그러한 문제에 맞닥뜨리고 있다. 기후위기다. 지금부터 서둘러야 20~30년 후에나 결실을 볼 수 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에 따르면 2023년이 1850년 이후 가장 더운 해라고 한다. 2023년 지구 평균 기온은 14.98도로, 과거 가장 더웠던 2016년보다 0.17도높고, 1850~1900년 평균보다 1.48도 높다고 한다. 각국이 기후위기 원인으로 지목된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는 당국의 통제가 비교적 쉬운 전력 부문 탄소배출 저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산업과 운송 부문에서 사용하는 화석연료의 양이 여전히 많고, 이것을 줄이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가에너지통계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석유제품 도입량(100만 배럴)이 2017년 314, 2018년 341, 2019년, 352, 2020년 347로 줄어들 기세가 통 보이질 않는다. 석유는 차량 연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생활용품 생산에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석유 사용량 줄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경제‧사회 대전환이 가능한 현실적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한때 재생에너지가 그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간헐성이라는 치명적 약점에 발목이 잡혀 있다. 재생에너지가 기후위기의 진정한 솔루션이 되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언제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원자력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원자력은 전력 생산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과 운송 부문에서 필요한 열과 물질을 생산하는 데 화석연료 대신 원자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가 이러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원자로를 개발 중이다. 대표적인 것이 소형모듈원자로(SMR)다. 기후변화 극복과 에너지 문제 해결의 게임 체인저로서 SMR이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이유다. 그렇지만 이 SMR 개발이 완료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것이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안전하게, 그리고 핵확산 위험 없이 사용될 수 있는 기반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의 핵심이 SMR 안전성과 핵비확산성을 기술적으로 담보하기 위한 원자력 안전규제와 통제체계다. 그런데 아직 우리 원자력안전법은 SMR 안전규제와 통제 기준을 담고 있지 못하다. 대형 원전 위주의 안전기준 그대로다. 이대로라면 SMR을 SMR답게 활용할 수 없다. 원자력 통제 기준에는 설계단계부터 핵비확산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 SMR 특성을 반영한 안전 원칙을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안전규제 및 통제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후세를 위한 시대적 과제다. 문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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