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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디지털’ 선도하는 에스토니아 vs. 한국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Jean Monnet EU센터 공동소장 1990년대 들어 우루과이라운드(UR)와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으로 국제사회의 경제와 산업 분야는 밀접하게 연결됐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새로운 생산기지를 만들고 분업식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한국도 이러한 도전의 중심에서 더 이상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하는 생산방식은 적합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돋보이던 생산시설은 저렴한 노동력과 적은 규제를 찾아 다른 국가로 이전했고 결국 금융위기로 최악의 상황을 맞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비슷한 시기에 구소련의 붕괴로 발트해 연안의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가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곧바로 EU와 NATO에 가입하며 탈러시아화와 친유럽화를 진행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치적 노력이 이 작은 국가의 독립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아시아의 한국과 유럽의 에스토니아가 선택한 방법은 과감하게 경제와 산업의 국제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양국은 이 전략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주목했다. 그것은 바로 '디지털 경제'다. 양국은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를 빠르게 준비했고, 그것이 소프트웨어와 컨텐츠 중심의 산업성장의 바탕이 됐다. 이웃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국토와 적은 인구를 가진 아시아와 유럽의 이 두 국가는, 국내시장의 한계를 파악하고 국제시장을 향한 디지털 산업 지원 정책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한국은 1999년 IMF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융자금을 빠르게 상환하고 국민소득을 2만 달러 이상으로 성장시켰다. 에스토니아도 비슷한 시기에 6000달러에서 10년 만에 2만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에스토니아는 EU 회원국으로서 여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정부 스스로 혁신적이며 적극적인 디지털화 노력을 수행했다.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국가화 프로젝트는 전자주민증과 전자영주권 제도, 전자투표 시스템, 빅데이터의 공유화 등으로 구현됐다. 에스토니아가 유럽 내 최고 수준의 1인당 창업 수를 자랑하는 것은, 정부 스스로 디지털화를 실행하고 관련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에스토니아는 창업기업의 성장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자금지원과 교육, 컨설팅 지원 등 연계 프로그램을 꾸준히 보강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으로 해외자금으로 에스토니아에서 창업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에스토니아 출신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2003년 인터넷 통한 무료 음성통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Skype라는 기업을 설립했는 데 이 서비스의 2010년 가입자 수가 6억6300만 명을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러한 기업 모델은 에스토니아 경제의 활성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의 '디지털화'는 2007년에는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으로 취약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국가 전체의 마비를 경험한 에스토니아 정부는 사이버 보안 전문가를 양성하고 교육을 강화하며, 기관 사이의 사이버 보안에 관한 협력을 추진했다. 한편으로 에스토니아는 NATO의 사이버 방어 훈련과 안보 프로그램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NATO의 사이버안보센터(CCDCOE)를 유치하기도 했다. 한국이 아시아에서 디지털 산업을 바탕으로 하는 한국 문화산업의 '디지털 경제의 성공'을 거두는 동안, 에스토니아도 '디지털 유럽'을 주도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며, 정부와 사회의 관련 노력이 경제 활성화와 사회적 발전으로 이어지며 유럽 내에서도 모범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EU가 회원국의 디지털 정책을 강화하며 유럽의 디지털화를 꿈꾸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스토니아는 여러 면에서 EU 디지털 정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에스토니아의 이러한 노력이 오랫동안 그들을 괴롭힌 침략에 대한 불안감을 스스로 극복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이 한국과는 닮은 꼴이다. 김봉철

[기자의 눈] 미분양 해소에 세금 투입은 ‘고육지책’

'악성' 준공 후 미분양이 급증하자 정부가 결국 '세금'을 투입하겠다고 나섰다. 개인이 소유한 민간 기업의 부채를 세금을 들여 해결한다는 점에서 형평성·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할 경우 줄도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 주택 공급 부족 등 사회적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역경매 방식 토지 매입과 기업구조조정리츠(CR리츠)를 통한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게 뼈대다. 토지는 LH가 최저가로 매입한다거나 안 팔리면 LH가 사준다는 매입확약 등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구제한다. 이미 지어진 주택의 미분양 해소는 민간자금을 모으는 CR리츠에게 맡겨 해결토록 했다. CR리츠는 민간이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고, 이를 임대로 사업을 유지하면서 시장이 좋아지면 분양이나 매각을 통해 수익을 내는 구조로 운영된다. 2009년 당시 약 3000여가구를 매입한 9개 리츠사가 LH의 매입확약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일반에 매입해 큰 수익을 낸 바 있다. 집값이 우상향이라는 기본 전제 하에 취득세와 종부세, 양도세를 확 줄여주면 안 팔리는 주택도 팔릴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다가 건설사들도 30%는 손실 볼 것을 10% 안쪽으로 손해봤으니 가히 기업을 살리기 위한 적절한 상품이었다는 평가다. 다만 LH는 국민을 위한 공공기관이며, CR리츠는 취득세 및 종합부동산세 등 세제를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또 '세금'으로 해결한다는 질타를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같은 대책을 내놓은 것은 그만큼 건설업 부문의 상황이 심각하며, 그대로 방치해다가는 국민 경제 전체에 줄 수 있는 타격이 더 커질 수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실제 이대로 사태를 방관했다가 하도급사의 대금 미지불과 근로자의 임금체불 등이 본격화되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될 수 있다. 주택 공급·사회 인프라 구축을 담당한 건설업계가 위축되면 국민들에 대한 안정적 주거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하고 사회 발전의 토대가 무너질 수 있다. CR리츠의 임대주택은 세입자에게 저렴한 월세를 제공할 수 있고, 향후 이 임대주택이 분양에도 성공하면 부족했던 세수를 취득세 등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업계 주장도 일리는 있다. 국토부는 또 PF사업장 정상화를 위한 리츠 방식 활용 방안도 곧 내놓을 예정이다. 정부는 건설업계 활성화에 세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LH가 건설사의 토지를 매입하거나 건설사와 매입확약을 체결하는 방식이 주택공급 지연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CR리츠로 더 많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물론이다. 김준현 기자 kjh123@ekn.kr

[EE칼럼] 재생에너지 경매제도, 요술방망이 아니다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일정규모 이상의 발전설비를 보유한 사업자에게 총 전기 발전량의 일정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토록 의무화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이하 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는 2012년부터 보조금 위주의 기존 제도를 대신해 도입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핵심 국정 기조였던 녹색성장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고, 이후정부에서도 재생에너지 공급에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물론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잠재력이란 것이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국제사회에 공표된 온실가스 감축목표 등을 감안해 재생에너지의 공급 기조는 우여곡절을 겪어 왔다. 하지만 최근 RPS제도 폐지가 기정 사실화되면서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 이유는 재생에너지 구매 단가를 낮추자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구매 단가는 한국전력의 판매금액에 포함되어 4인 가족 기준 한달에 2000~3000원 정도 부과된다. 여기에다 사실상 정부의 관리하에 있어 비용이 많이 수반되고 경쟁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도 발전사업자 간 자유 가격 경쟁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제기되어 온 것이 재생에너지에 대한 경매제도이다. 문제는 경매제도가 기존의 RPS 제도 아래서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마법의 요술방망이가 절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RPS 제도의 미시적인 속성 자체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량이기 때문이다. 근본 원인을 두고 제도만 바꿔봐야 내용물은 여전히 그대로인 포장갈이에 불과하다. 또 다른 오해는 경매제도를 통한 낙찰가는 현행 재생에너지 구매 정산단가보다 낮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다. 경매제도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어떠한 관변 연구원 혹은 학자들도 통합 경매제도가 어떻게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이란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산단가를 못 낮추는 제도변화의 득은 무엇인가? 사실 실질적인 경매는 이미 이뤄지고 있다. 개별 발전사별, 혹은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에너지공단의 입찰은 RPS 제도 내에서 이미 수년간 이뤄져 왔다. 그동안 '입찰'이란 단어를 무수히 써 왔음에도, 갑자기 '경매제도'가 마치 새로운 것인 양 소개되는데 정말 의아할 뿐이다. 필자의 생각으론 RPS 폐지의 목적은 재생에너지 실적을 거래하는 현물시장을 걷어내는 것이라 본다. 그동안 가격 상승에 베팅해온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의 영향력 억제가 타깃이다. 하지만 어차피 국가 차원에서의 재생에너지 전환 목표량이란 게 존재하면, 즉 양적 목표가 존재한다면 신규진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경매시장에서도 똑같은 상방으로의 가격 배팅현상이 없을 리 없다. 물론 현행 에너지공단에서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자 대상 입찰제처럼, 가격상한제 같은 가격부문에 칼날을 댈 수는 있다. 그렇다면 더욱이나 현행 RPS와 또 비슷해져 제도 변화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 하나의 경매제 도입 명분은 태양광,해상풍력 등등 발전원별 사업자 간 자유 가격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매제라고 해서 이들의 자유가격 경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당초에 이미 엄청난 사업비 차이가 나는데 이들이 모두 동일 선상에서 경쟁가능할까? 가능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상풍력 등을 분리해서 별도 경매시장을 제공하는 등 어드밴티지를 주면, RPS의 가중치 제도를 통해 간접적인 원별 경쟁을 허용하는 현 체제보다 오히려 명분에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RPS 제도 폐지만으로는 이미 제기된 재생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즉, 어떤 구매방식을 선택하든지 이는 재생에너지 구매비용 증가 부담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국면전환도 안되면서 희생양도 되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현 상황을 도망치듯 혹은 은폐하듯 관뚜껑을 닫는다면,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수년안에 새로운 관짝이 필요할 것이다. 유종민

[이슈&인사이트] 불황의 시대 ‘소비자 창조’가 관건이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산업학과 교수 소비자들의 니즈나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기업, 생산자, 마케팅 종사자들은 물론 소비자 자신, 소비자단체, 정부 등 경제 주체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다. 공급 경쟁의 시장 환경에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잠재적 니즈를 발견하는 것은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마케팅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Phillip Kotler)는 “소비자 니즈의 이해는 마케팅의 출발점으로, 경영에서 이것이 없으면 마치 장님과 같다"고 설파했다. 그런데 소비자들의 의식, 가치관, 취향, 개성, 생활양식이 변화하면서 소비자 니즈도 변화하고 변덕스러워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소자들의 심리나 니즈를 파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실제로 말로 표현 되는 니즈는 실제의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심리를 알아내야 한다. 그렇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속내를 잘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고, 속내를 드러내더라도 그게 진심이라고 단언하기 어렵다. 이에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소비자들의 니즈나 행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최근 소비자들의 선택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보다는 정서적 동기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즐거움, 환타지와 같은 쾌락적, 경험적 느낌을 찾고자 한다. 소비자들이 제품의 물리적 속성이나 성능보다 제품이 주는 긍지, 지위, 기쁨 등을 사기 위해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은 샤넬 No.5 가 아름다운 향 때문이 아니라 자아 이미지 강화 때문에 구매하는 것이다. 표면에 들어나는 것 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무의식적 니즈와 인지된 니즈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억양, 눈맞춤, 몸짓, 주시 동작 등의 준언어적 측면도 포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소비자들이 윤리적 측면, 사회적 인식 등을 감안해서 자신의 니즈나 욕구에 대해 의식·무의식적으로 거짓 대답할 가능성이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비즈니스는 소비자들과의 심리전이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먼저 알아내고, 그 것을 먼저 제공하는 기업이 승리한다. '소비가 너무 안 되서 큰 일이다. 소비자가 점점 까다로워진다'는 얘기가 많다. 그러나 불황에도 히트 상품은 있게 마련이고, 성장하는 기업들도 있다. 성공한 기업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경쟁사에 비해 더 빠르고 능동적으로 소비자들의 니즈 변화에 대응했기에 불황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보통의 경우 자신의 니즈가 무엇인지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스스로 알지 못 했던 욕구(니즈)가 마케팅 자극 또는 기업에 의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소비자 니즈 추종 전략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비자 니즈 선도가 필요한 이유다. 요즘 휴대폰의 카메라가 큰 인기지만, 휴대폰이 개발되기 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니즈를 표현한 소비자는 거의 없었다.'아는 것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지 못한 소비자들은 현재 제품에 대해 점진적 개선사항 위주로 자신의 니즈를 표현한다. 그러나 완전히 차원이 다른,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측면의 소비자 니즈를 발굴하는 '소비자 창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일본의 소니가 워크맨을 개발할 당시 움직이면서 음악을 듣는 문화가 생소해 소비자, 판매망, 사내 임직원 모두가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CEO가 의지를 갖고 상품화를 강행해 결국 성공신화를 썼다. 소비자 니즈 파악은 일상 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항이다. 부부관계 개선, 부모자녀관계 개선 등 일상생활에도 상대방의 니즈 파악은 기본적인 사항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청소년 아들에게'너는 요즘 불만이 무엇이니?,'뭐가 문제인 거니?, 도체 불만이 무엇이니?'같은 질문을 한다면 아들의 니즈를 파악 할 수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아들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밖으로 표현하지 못 한다. 혹은 아들 자신도 자신의 생각이나 니즈를 잘 알지 못하기도 한다. 청소년 아들의 니즈를 알아내기 위해선 아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세심한 관찰을 통해 통찰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통찰을 통해 공감과 동감을 얻어야 한다. '음, 그래 그럴 수도 있어!''아니! 저거는 내 어릴적 얘기를 하는 것 아니야?' 과거 인기 폭발이던 광고 카피를 생각해 보자. '선영아 사랑해!', '김대리님! 부자되세요!','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라는 광고가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소비자들의 공감과 동감을 얻은 결과이다. 부자가 되기 위해, 창업을 하기 위해, 자녀나 배우자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정책을 잘 펼치기 위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상대방의 숨겨진 니즈, 드러내기 싫은 니즈, 복잡하고 논리적이지 못한 심지어는 수시로 변화하는 변덕스런 니즈를 어떻게 알아 낼 것인지 고민해 볼 때이다. 허경옥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한창훈 병원장 취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한창훈 9대 병원장이 지난 28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 임기를 시작했다. 한 병원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어떠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산병원을 만들겠다"면서, △경기 서북부 1위의 기능적 (상급) 종합병원 △보험자병원으로서 공공의료의 성공모델 등 크게 2가지를 제시했다. 특히, 한 병원장은 “권역응급의료센터, 심뇌혈관센터 등 특정 질환을 중심으로 최고 수준의 최신 치료를 제공하는 기능적 (상급) 종합병원을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일산병원이 정교한 실행 전략을 마련하고 신속한 실행과 평가를 반복하며 문제와 현안을 해결하는 체계적 시스템을 구축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완성된 수준 높은 완결형 필수의료를 제공해 지역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일산병원이 되겠다고 한 병원장은 약속했다. 박효순 기자 anytoc@ekn.kr

[데스크 칼럼] 소액주주의 힘: 한미그룹 경영권의 캐스팅보트

3월은 주주총회의 계절이다. 올해는 '총선 회오리'에 이슈에서 다소 밀리긴 했지만, 매년 봄 주주총회는 '기업의 청문회'가 열리는 핫한 현장이다. 격한 몸싸움에서 회사의 주인이 바뀌는 극적 드라마까지 펼쳐진다. 특히 올해는 소액주주의 연대가 주총의 주요 변수로 떠오른 한 해이다. 경영권과 주주환원을 놓고 벌어지는 '진검승부'에서 소액주주들은 여전히 고배를 받아드는 약자지만, 올해만큼은 변화의 움직임이 확연했다.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SNS를 기반으로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의결권 위임'으로 단합되며 그 어느 해보다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일례로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를 통해 모여든 주주들은 20개 종목에서 주주제안(3% 이상 주식 확보)을 완료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이같은 움직임이 '찻잔 속 태풍'만은 아니다. 영국의 글로벌 기업거버넌스 리서치업체인 딜리전트 마켓 인텔리전스는 “한국에서 지난해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연대 등 주주권 행사의 타깃이 된 기업 수는 73곳으로, 전 세계에서 4번째로 많아 기록적인 해"라고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 활발한 소액주주 연대 움직임에 내심 불편해 할 기업들이 많지만, 소액주주 연대는 갑작스러운 딴지나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엉뚱한 시도는 전혀 아니다. 최근 정부가 내세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이 같은 소액주주 연대의 요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주주가치 재고에 대한 주주연대의 열망이나 주주환원을 확대하는 밸류업의 노력은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주식 밸류를 끌어올린다. 이는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큰 바다로 흘러들어가 만나데 되는 출발이 다른 지류라고 볼 수 있다. 올해 주총에서는 굵직한 이슈들도 많았다. '조카의 난'을 겪은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분쟁의 고려아연과 영풍, KT&G 차기 사장 선임, 한미그룹과 OCI 공동경영권, 이화전기 자진상폐 이슈 등이 격돌혔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수십만원에서 수억원까지' 회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주인 대접을 못 받아온 소액주주들이 있었다. 기업의 쩌렁쩌렁한 '스피커' 앞에 이들 소액주주의 목소리는 대다수 묻혔지만, 그렇다고 성과를 낸 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미그룹의 경영권이 뒤바뀐 한미사이언스 주총이 대표적이다. 지난 3월 28일 열린 제 51회 한미사이언스 정기주주총회 이야기이다. 이날 주총에서 임종윤·종훈 형제 측은 총 5명의 이사 후보 선임 안건을 가결시키며 모녀측(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을 누르고 이사회를 장악했다. 이번 표결에서 모녀 측은 출석 의결권 수의 48%를, 형제 측은 52% 내외의 찬성표를 받아 4%의 승부로 경영권이 좌우됐다. 여기에는 약 3%의 지분을 보유한 오너일가 사촌들이 역할도 있었다. 하지만 최후의 '캐스팅보트'는 소액주주였다. 주주총회 개최 전까지만해도 어느 쪽이 이길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양측이 확보한 우호 지분은 각각 모녀 측 42.67%, 형제 측 40.57%로 오히려 형제 측의 지분이 열세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이를 매조지은 것은 소액주주의 의지였다. 소액주주들은 지난 3일 주주연대를 결성, 소액주주연대 플랫폼 '액트'를 통해 2.09%의 지분을 모아 '형제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화답하듯 임종윤 한미그룹 이사는 주총이 끝난 뒤 밝힌 소감에서 “주주는 주인이다. 주주가 이겼기에 주주들이 원하는 회사로 갈 것"이라며 “(주주가) 이 일의 절대적인 키맨이며, 주주환원 정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그룹은 뒤집힌 드라마에서 배운 교훈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모래알 같은 2%의 힘을. 올드보이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명심해요, 모래알이든 바윗돌인든 물에 가라앉기는 마찬가지에요." 김현우 기자 kimhw@ekn.kr

[기자의 눈] ‘사고뭉치’ 티빙을 응원하는 이유

최근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이 한국야구위원회(KBO) 리그 유무선 중계권을 확보한 뒤 기대에 못미치는 서비스로 야구팬들과 시청자들에게 질타를 받고 있다. 급기야 경쟁사인 쿠팡플레이 인기 오리지널 예능 SNL코리아에서 “이게 왜 유료품질? 엉망진창 티빙 야구 중계 뭇매"라는 저격을 당하기도 했다. 스포츠 중계에 특화된 콘텐츠로 이용자를 끌어모아 토종 OTT 1위까지 오른 쿠팡플레이가 티빙의 무서운 추격에 견제구를 던진 모양새다. 실제 티빙은 야구 중계권을 따낸 뒤 모든 지표가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1인당 평균 시청 시간이 넷플릭스를 앞지른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성과다. 국내 OTT 시장에서 넷플릭스를 넘어선 플랫폼은 국내외 사업자를 통틀어 티빙이 최초다. 티빙의 지난달 월간활성이용자(MAU)는 661만명으로 역대 최대 수준이다. 일일활성이용자(DAU)수도 최대 기록을 연이어 경신하고 있다. KBO 독점 중계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넷플릭스 MAU는 지난해 12월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넷플릭스를 뛰어넘는 토종 OTT 탄생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티빙은 그간 tvN 드라마와 예능 독점 콘텐츠 등을 강점으로 성장해 왔다. 콘텐츠 제작 비용 등 투자 확대로 적자는 지속하고 있지만 꾸준한 지표 성장은 티빙의 반등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앞서 티빙은 '술꾼도시여자들', '환승연애' 등 흥행작을 쏟아내며 지식재산권(IP) 발굴과 콘텐츠 제작 능력을 입증했다. 올해도 웹툰 원작의 '피라미드 게임'이 BBC 등 외신의 호평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도 영향력을 키우는 중이다. 광고 요금제 출시 등 요금제 개편으로 수익성 개선도 꾀하고 있다. 최주희 티빙 대표는 지난 12일 열린 KBO 중계 관련 미디어 간담회에서 거듭 고개를 숙이며 빠른 서비스 개선과 다양한 편의 기능 제공, 지속적인 투자를 약속했다. 최 대표는 실적 발표에서 올해 유료 구독자 500만명 진입과 하반기 손익분기점(BEP) 달성을 전망하기도 했다. 현재 티빙은 KBO 중계를 4월 30일까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후에는 최소 5500원의 광고형 스탠다드 요금제를 구독해야 한다. 물론 KBO 시범 경기부터 개막 이후까지 이어진 중계 실수는 분명히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며, 유료 시청 전까지 서비스 품질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다만, 티빙으로 인해 넷플릭스가 장기간 점령해 온 국내 OTT 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티빙이 토종 OTT MAU 1000만 시대를 열 길 응원한다. 윤소진 기자 sojin@ekn.kr

[EE칼럼] 22대 국회에 바란다

허은녕 서울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위원회 위원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5월 30일이 되면 새로 선발된 국민의 대표들이 2028년 5월 말까지 4년 동안의 임기를 시작한다. 이번 제22대 국회의 임기에에서는 특히 활발하고 적극적인 입법 활동이 요구될 전망이다. 21세기 들어 가장 불확실성이 커져 있는 국제정세와 무역환경이 그 첫 번째, 또한 시급히 구조조정이 필요한 국내 에너지 공기업과 이미 늦어버린 국내 에너지 인프라 확장이 그 두 번째 이유다. 국제 무역환경의 변화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 자원 부국과 주요 무역 협력 국가들이 지난 30여년 동안 지속되어 온 자유무역 기조에서 벗어나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하는 보호무역 기조로 선회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며, 이러한 추세는 다음 4년 동안 더욱 더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IRA법(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대표되는 선진국의 자국산업 육성 전략의 확대는 기존에 범 지구적인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시작된 기후변화협약이나 탄소중립선언의 본질을 무역규제와 자국산업 보호정책으로 변질시키고 있으며 EU 역시 핵심원자재법(CRMA)으로 맞불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수출이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들에게 이러한 보호무역으로의 국제무역 기조 변화는 전혀 달갑지 않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기조 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즉 국내 산업의 보호와 신산업의 육성을 위한 적극적인 입법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법과 규정에 넘쳐흐르는 규제와 제약을 벗겨내고 산업의 육성과 새로운 성장동력 산업에의 지원을 크게 강화할 수 있는 입법활동이 필수적이다. 올해 초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자원안보특별법을 비롯한 공급망 3법은 매우 좋은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5조원 가량의 기금을 조성하고, 6월부터 경제부총리 산하에 위원회를 꾸려 세부적으로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한다고 한다고 하니 이 활동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겠다. 또 양자, 다자협력을 포함하여 연구개발과 공동산업개발, 공동구매/비축 등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위해 국회 차원에서의 외교활동을 강화하기를 기대한다. 편가르기가 심화되고 있는 국제정세 역시 이번 22대 국회가 외교능력과 국제적 의정활동을 펼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정부를 초월하여 중국, 러시아, 몽골 등 아시아 북부 국가들과의 교역 및 교류 확대를 위한 정책을 진행하여 왔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행정부 차원에서의 중국과 러시아와의 교역 확대를 이야기하기는 힘든 상황이 앞에 놓여 있다. 입법부인 국회가 바로 이럴 때 꾸준하고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벌여 준다면 주변국과의 마찰을 줄이고 또한 중장기적인 협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부문의 산적한 문제들 중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에너지 공기업 문제의 해결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대형 적자에 빠져 있는 에너지 공기업은 AI, 빅데이터 등 새로운 첨단 기술의 시대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20세기의 낡은 인프라를 계속 사용하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현재 공기업들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자산을 매각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공기업이 할 일이 크게 줄어들고 있는데 재직 중인 공기업 인원은 줄일 수 없으니 에너지 공기업마다 수백명씩 고급 인력이 남아돌고 있다. 또한 돈이 없으니 국내에 새로이 건설되는 정보통신, 전자, 이차전지, 반도체 등 산업시설의 운전에 필요한 에너지 공급 인프라 건설 역시 불가능한 상태다. 22대 국회는 행정부가 공기업 구조조정을 과감하게 시행하도록 주문하되 남아도는 고급인력의 활용이 가능하도록 방안을 논의하고 필요한 입법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에너지 시장의 회복 역시 22대 국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원가에 못 미치는, 엄청나게 싼 전기요금 덕분에 외국 주요 회사들이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짓겠다고 몰려든다. 국민의 세금을 외국에 그대로 가져다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를 막기 위한 국회 차원의 논의가 시급히 요구된다. 에너지 인프라 건설을 위해 통과해야 하는 또 하나의 필수적인 관문은 바로 지역 NIMBY(님비) 문제의 해결이다. 이제는 어느 지역구에도 비어 있는 땅이 없는 시대이다. 화력발전소는 물론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조차도 지역의 반대에 막혀 진척이 지지부진하다. 이러한 NIMBY는 지역구의 대표가 모인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새로 출범하는 제22대 국회의 선전을 기원한다. 허은녕

[기자의 눈] 한미약품 분쟁, ‘상속세 개선’ 계기 삼아야

올해 1분기 제약업계 최대 이슈는 단연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이었다. 지난 1월 한미약품그룹이 OCI그룹과 통합 발표 이후 이달 28일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까지 통합을 추진하는 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 모녀와 통합을 반대하는 임종윤·임종훈 사장 형제 간 치열한 싸움은 제약업계를 뜨겁게 달궜다. 28일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장에는 이례적으로 200여 명의 많은 취재진이 몰렸고, 주주들의 고성도 오갈 정도로 경영권 분쟁은 절정을 이뤘다. 그동안 한미약품은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와 신약개발 성과로 제약업계의 모범기업으로 꼽혀왔다. 특히, 한미약품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제도인 '개량신약 허가제도'를 적극 활용해 국내 제약업계를 제네릭(복제약) 중심 구조에서 혁신신약 중심의 체질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량신약 제도는 오리지널 신약의 제형·약효를 개선하면 이를 신약으로 인정해 약가우대 등을 제공하는 제도로, 중소 제약사가 다수를 차지하는 국내 제약업계가 신약개발 노하우를 축적해 혁신신약 개발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해 왔다. 한미약품도 2008년 개량신약 허가제도 도입 초기부터 고지혈증 치료제 '로수젯' 등 개량신약 개발을 견인했고, 이를 기반으로 2015년 국내 제약업계 최대 기술수출, 지난해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의 미국 출시로 국내 제약업계에서 모범적인 성장 롤모델로 불려 왔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불거진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불화 모습은 당사자는 물론 제약업계로서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경영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오너가 경영권 다툼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이번 분쟁은 내부 요인보다 외부 요인인 상속세가 직접 원인이었다. 상속세는 모범적으로 성장한 기업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미사이언스 주총이 있던 28일 대한상공회의소는 상속세제 개편 등 조세제도 개선과제 152건을 담은 건의서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30년간 상속세를 점진적으로 낮춘 선진7개국(G7)과 같이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 상속세율을 점진적으로 낮추고, 유산 전체에 대한 연대책임 과세 대신 개별 상속인에 대한 과세 등 유가족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상속세를 개편해야 한다는 기업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다. 한미약품그룹 분쟁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든 상속세 문제로 기업 성장에 발목이 잡히거나 경영권 다툼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 않는 않기를 바란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이슈&인사이트] 철도 지하화 ‘한국판 허드슨 야드’로 만들자

필자가 국토연구원에 근무하던 2017년 7월 국토교통부는 가칭 '도로공간의 입체적 활용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표하고 도로공간의 입체적 활용에 대한 정책 확대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법률은 통과되지 않고 도시개발법의 개정으로 도로공간의 입체적 활용을 추진하도록 하였고 기반시설의 고도화 및 입체화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최근 철도공간을 중심으로 기반시설의 입체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입체적 공간에 대한 이용에 따라 도시민의 접근성 향상 등 도시공간의 이용 변화와 지하공간의 개발 등 입체적 도시조성방안에 대한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철도 및 도로 등 기반시설의 지하화 수요는 지역주민의 중요한 요구사항으로 전문적 차원에서 지속적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특히 지상 철도로 인한 도시 기능 및 생활권의 단절, 도심 토지 이용의 효율 저하, 철도 주변 지역의 쇠퇴와 노후화 등 다양한 도시문제를 야기해 왔기 때문이다. 철도 지하화 사업을 뒷받침할 법률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국회는 지난 1월 9일 '철도 지하화 및 철도 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켜 철도 지하화에 대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철도 지하화는 노선을 신설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 구간을 지하로 옮기는 사업이기 때문에 추가적 교통 편익이 적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쉽지 않았다. 재정사업, 임대형민자사업(BTL) 등 기존의 사업방식으로는 대규모 민간 자본을 유치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법률의 제정은 철도뿐만 아니라 도로 등 기반시설의 전반적인 지하화와 고도화된 이용에 관한 논의를 한층 더 활발하게 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기반시설의 지하화는 단순히 기존 철도노선을 지하로 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철도, 도로 등 교통시설을 포함한 공원, 광장 등의 공간시설, 공공·문화체육시설, 유통·공급시설 등 다양한 도시계획시설을 바탕으로 한 입체적이고 복합적 개발로 추진된다. 기반시설 중 철도 공간의 입체적 이용사례는 다양하게 거론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서울 용산과 마포 사이에 조성된 6.3km의 경의선 숲길이 대표적인 철도 지하화 사례로 꼽힌다. 옛 경의선 철길을 지하화하고 지상 공간을 공원으로 탈바꿈시켜 연간 885만 명이 찾는 도심 명소가 됐다. 청년층 등 유동인구가 늘면서 주변 상권도 활성화되는 등 도시 재생의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해외에서도 도시계획 차원에서 철도 지하화를 활용하는 다양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19년 1단계 개발을 마친 미국 뉴욕의 허드슨야드가 대표적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육교와 철도 부분을 덮고 공원, 산책로, 맨해튼 스카이라인 같은 것이 생긴다고 생각해 보라"라고 예를 든 그 사업이다. 기존 철도 기능을 유지하면서 지상을 인공대지로 덮었다. 차량기지의 상부는 금융특별지구로 조성하고, 폐선 철도 부지는 하이라인파크로 만들어 빌딩숲과 결합된 도심명소로 탈바꿈했다. 1991년부터 추진해 2028년 완공 예정인 프랑스 파리의 리브고슈 프로젝트도 모범사례로 꼽힌다. 리브고슈는 센강 주변으로 철로를 따라 창고와 공장 등이 산재한 낙후지역이었다. 파리시는 기존의 철도용지 위에 인공지반을 만들고 그 위에 업무와 상업시설, 주거지, 교육시설 등 자족 기능을 갖춘 공간을 계획하는 한편 아래로는 기존 기차가 통과하는 대규모 재개발을 계획했다. 이를 통해 6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육성하고, 철도부지가 갈라 놓았던 센강과 13구역 거리를 연결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언택트·온라인문화의 확산은 사회 시스템 전 분야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촉진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지속적인 인구감소와 Z세대(Creative Class· 창조계급)의 등장으로 인한 노동 형태의 변화 또한 주요 현상으로 나타났다. 2020년 기준 노동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Z세대는 일과 놀이 사이의 경계(Live-Work-Play) 가 불분명하며 멀티테스킹이 가능한 그들은 도시 분위기를 개방적, 전문적으로 만들고 이러한 환경을 선호하는 또래 인재를 끌어들이면서 자본과 비즈니스도 함께 유입되는 현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로와 철도 등 기반시설의 이용에 있어서도 새로운 트렌드가 필요한 시기다. 미래 도시계획은 철도뿐만 아니라 도로 공간 등 기반시설의 입체화로 인해 발생이 예상되는 주변공간의 변화에 대응하는 계획이 되어야 한다. 공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동서간 단절된 도시공간을 이어주고 쇠퇴한 지역이 사람들이 찾아오는 공간으로 탈바꿈 할 수 있는 계획으로 공간변화에 대응해야한다. 보행환경개선, 경관개선전략, 스마트도시계획 등 공공부문이 주로 지원할 수 있는 분야와 주민에게 혜택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핵심과제를 도출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자체 등 공공부문은 미래수요에 대비한 도시 마스터플랜 마련히 스마트시티, 기후변화 대응, 일자리 창출 등 미래공간개선에 대한 지속적 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다양한 계획기준 및 도시관리체계에 맞춘 새로운 형태의 기반시설 입체화에 따른 주변지역 가이드라인을 개발해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고려도 필요하다. 입체화로 인해 발생되는 편익을 공공기여로 마련해 재원을 확보하고 사업타당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입체도시는 미래지향적인 도시시설을 도입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반영하는 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이다. 이범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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