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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사이트] 겉멋만 부리는 산업안전, 안전 걸림돌돼서야

“산업재해 예방은 과학이자 예술이다." 산업재해 예방의 아버지가 불리는 하인리히가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이라는 책(1931년)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말이 무색하게 우리나라에서 안전은 '누구나 하는 것이다', '이론은 필요치 않고 경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정부와 학계의 안전에 대한 몰인식이 이러한 잘못된 생각을 조장하고 있다. 하인리히가 살아나 우리의 현실을 본다면 적잖이 실망할 것 같다. 고용부부터 안전 비전문가 일색이다. 직렬, 채용경로에 관계없이 안전을 체계적으로 학습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관리직을 중심으로 전문성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이 태부족하여 이를 높이기 위한 조직 차원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문성이 등한시되는 분위기이다 보니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 위반 적발을 많이 하는 자가 전문가로 평가받는 분위기마저 존재한다. 전문성이 없다 보니 매질로 존재감을 보이려 하는 것이다. 비전문성의 폐해는 진정성의 결여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문성이 없다 보니 꼼수 부리기와 치장하기로 일관한다. 법정책을 개악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이유이다. 고위정책담당자가 안전문화는 캠페인이라는 저급한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가 하면, 위험성평가 제도를 더 이상 위험성평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형해화시키고,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한답시고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공동안전관리자 정책을 펼치는 것이 대표적이다. 법정책에 대충주의와 보여주기가 난무하는 건 겉모습만 다를 뿐 정권을 불문한다. 20세기 유명한 과학철학자 포퍼는 “진짜 무지는 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학습의 거부이다."라고 일갈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둘러싼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 경구이다. 학습하지 않는 건 정부만이 아니다. 안전이론을 선도하고 견인할 학계가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학계가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이론적 전문성도 떨어지는 웃픈 현실이 계속되고 있고 최근 더 심해지고 있다. 특히 안전학회는 학문적 업적이나 학술활동이라고 내세울 만한 게 없어 친목단체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엔 패거리 카르텔로 멍들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자성하는 모습은 통 보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전문성 부족을 넘어 학자적 양심에 대해서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오죽하면 안전의 적폐라는 비판까지 나오겠는가. 학계의 전문성 부족은 학생들이 안전에 대해 잘못 배우는 심각한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 교수들부터가 안전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다른 학과나 학원에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나 가르치고 이론서 없이 알량한 ppt로만 강의하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상당수의 안전 종사자들이 책을 읽지 않고 이론적 학습을 게을리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안전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의 수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데도 전체적으로 학문적 역량과 자질이 형편없는 것에 대해 학계는 학생들과 사회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컨설팅기관 또한 이름값 못하는 건 도긴개긴이다. 안전의 기초이론조차 제대로 학습하지 않은 사람이 어설픈 경험만으로 컨설팅을 하는 난센스가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공포분위기에 기대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안전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현상에 편승해 어쭙잖은 자격증과 같은 무늬만으로도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염불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컨설팅기관이 수준 이하인데도, 많은 기업들이 처벌을 회피하는 데 급급하고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이들 기관에 농락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컨설팅기관 입장에서는 전문성이 없어도 기업에 쉽게 먹혀들어 가는 걸 보면서 굳이 학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안전을 올바른 방향으로 향도해야 할 정부와 학계, 컨설팅기관이 겉멋 부리는 데 혈안일진대, 이들이 변하지 않으면 비용만 많이 들 뿐 우리 사회의 안전 발전은 기대난망이다. 안전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차라리 없느니보다 못하다. “전문성과 열정이 없는 자들은 현재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베버가 1917년 독일 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유명한 강연에서 힘주어 한 말이다. 우리 사회의 안전에 더 이상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명심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다. 정진우

[EE칼럼] 재생에너지 꼴찌와 기후공시

지난 3월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기후공시를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3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기준으로 불리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IFRS(지속가능성공시), 유럽연합(EU)의 ESRS(기업지속가능성보고표준) 그리고 미국 SEC의 기후공시 규칙이 모두 확정됐다. 미국, EU 등 선진국과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기후공시가 의무화되면서 기업의 ESG 공시 의무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 RE100(사용전력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 IRA(인플레이션감축법), REPowerEU(유럽연합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계획), CBAM(EU 탄소국경조정제), SBTi(과학기반 탄소 감축 이니셔티브),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등도 함께 대응해야 한다. 지난해 전 세계는 심각한 기후변화를 경험했다. 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2023년 지구 평균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48℃가 상승했다. 국제사회가 목표로 한 1.5℃에 바짝 다가섰다. 365일 모두 산업화 이전 대비 1℃ 이상 상승했고, 해양 표층수 온도 역시 2023년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양은 지구시스템 초과 열의 약 90% 저장하는데 2023년 세계해양에 저장된 열이 역대 최대폭으로 증가했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420ppm을 넘어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23년 CO2 배출량(CO2 Emissions in 2023)」을 보면 2023년 전 세계 에너지 관련 CO2 배출량은 2022년 대비 1.1%인 4억 1000만 톤이 증가하여 사상 최고치인 374억 톤에 달했다. 2022년에는 전년 대비 1.3%인 4억 9000만 톤이 증가한 데 비해 증가율이나 증가량이 다소 줄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9년과 2023년 사이에 에너지 관련 총배출량이 약 9억 톤 증가했는데 2019년 이후 태양광, 풍력, 원자력, 히트 펌프, 전기 자동차 등 5가지 주요 청정에너지 기술의 보급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배출량 증가 폭이 3배 더 커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IEA는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에 포함했고 원자력 발전량이 늘어나서 배출량 증가 폭을 줄인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전 세계 가동 원전 용량은 그 기간 오히려 줄어들었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재생에너지(태양광과 풍력)와 히트 펌프, 전기자동차가 에너지 관련 CO2 배출량 증가를 그나마 둔화시키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글로벌 모니터링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대기 중 세 가지 가장 중요한 온실가스인 메탄,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의 수준이 2023년 역대 최고 기록에 도달했고, 2024년 수치 역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기후변화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 할수록, 기후공시 및 기후 관련 규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선진국은 이미 기후변화로 모든 것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 재생에너지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총력 대응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은 이제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되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2024년 재생에너지 용량통계'를 보면 2023년 전 세계적으로 473기가와트(GW)의 재생에너지가 설치되어 전년 대비 무려 54%가 증가했고 신규 발전용량의 86%를 점유했으며 누적용량은 3870GW가 되었다.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3배 즉 향후 7년 이내에 7200GW 설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2022년 중국은 전 세계 나머지 국가를 합친 것(113GW)과 거의 같은 양(86GW)의 태양광을 신규 설치했고, 2023년에는 2022년 대비 두 배(217GW) 이상으로 늘려 전 세계 설치량 346GW의 63%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한편 IEA의 월간전력통계를 보면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이스라엘 제외)의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점유율을 산술평균하면 53.6%인데 우리나라는 9.3%로 평균에도 크게 못 미치는 꼴찌인 것은 물론이고 대상 국가 중 10%를 넘지 못하고 한 자릿수에 머무는 유일한 나라다. 제조업 경쟁국인 독일 55.0%, 중국은 31.9%, 인도 21.8%에도 크게 뒤진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기후공시와 탄소 관세 등 무역장벽, 재생에너지 부족에 따른 불이익 등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재앙적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3월 발표된 'RE100 연례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를 재생에너지 조달이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라고 지목하면서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만 삼성전자가 반도체에 59.6조, 현대차 13조, LG에너지솔루션 7.2조, SK온 7.5조, 삼성SDI 3.3조원 등의 투자를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확보 능력이 자국 기업의 잔류와 해외 기업 유치를 결정짓는 핵심요소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최근 발표되는 IEA,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영국 싱크텡크 엠버(EMBER), 국제재생에너지정책네트워크(REN21) 등의 에너지 통계는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하여 얼마나 위험한 수준인지 알려주는 지표이자,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기후리스크에 적극 대응하라는 준엄한 경고일지 모른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김상호 칼럼] 하남시 4.10총선이 남긴 숙제

하남시 22대 총선 결과는 전국적 결과와 큰 차이 없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김용만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승리한 두 분에게는 진정을 다해 축하를, 함께 경쟁한 후보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22대 하남시 총선 과정에서 의미 있던 점은 '기후 선거'가 정착한 것입니다. 하남시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기후위기 의제, '지속가능한 미사섬 개발'에 대한 후보들 입장과 정책이 공개됐습니다. 하남시 기후유권자들이 노력한 덕분입니다. 하남시 갑-을 지역구 5명 후보 모두가 '하남시기후위기비상행동'이 건넨 기후정책 질의서에 답변을 제출했습니다. 특히 TV 토론에서 다뤄진 '미사섬 개발'에 대한 후보들 견해에 대해 유권자들이 판단했으니, 향후 당선자들이 약속한 대로 미사섬을 시민과 함께 숙의하며, 친환경적으로 개발하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하남시 총선을 돌아보며 안타까운 점은 관권선거와 불법선거 논란, 일부 아파트입주자 대표단 초청 토론회의 공정성 문제입니다. 첫째, 하남시 선거 개입 논란은 향후 선거를 위해서도 자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투표해 주세요– 하남시", “시민 여러분의 한 표가 도약하는 하남을 만듭니다- 하남시장 이○○". 두 종류의 투표 독려 현수막은 특정 정당 상징색으로, 특정 후보들 현수막 아래 동시에 게첩됐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지도로 '하남시장 이○○'로 게시된 현수막은 철거됐습니다. 하남시 유권자들도 의심스런 하남시 투표 독려 방식을 부끄러워했습니다. 선관위 협의 여부 및 비용 지출 등 제기된 의혹은 하남시의회에서 투명하게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또한 공무원을 남위례-북위례-감일 아파트입주자대표단 토론회에 참석하게 하는 것, 후보자 발언을 모니터링하는 것, 하남시가 직접 선거기간 중 민주당 후보 발언과 관련해 보도자료를 내는 것은 선거개입 행정으로 비쳐질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합니다. 둘째, 부정선거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덕풍동 한 경로당에서 발견된 한 정당의 지역구와 비례대표 지지를 표시하는 종이가 발견됐습니다. 하남(을) 민주당 후보를 비방하는 현수막이 투표 며칠을 앞두고 선거구에 게시됐습니다. 선관위도 두 사안을 불법으로 인정한 만큼 향후 철저한 조사를 통해 다시는 이런 불법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일부 아파트입주자 대표단 초청 토론이 공정한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특정 지역 토론회를 주관한 대표는 후보자 토론 후 자리에 남은 주민들 스티커 투표를 근거로 특정 당 후보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그분은 며칠 후 지지를 선언한 당의 당직에 임명됐습니다. 향후 아파트 입주자 대표단이 주민을 공정하게 대표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네거티브 선거가 도를 넘은 것을 비롯해 발생한 여러 논란은 하남시 정치문화 혁신을 위한 과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제 총선은 끝났고 하남시민을 위한 일꾼 두 분이 선택됐습니다. 하남시 정치문화를 바꾸기 위해 과감하게 혁신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신뢰 정치를 해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김상호 전 하남시장 kkjoo0912@ekn.kr

[기자의 눈] ‘대파 총선’이 남긴 물가잡기 과제

지난주 4·10총선 기간 '대파 논란'이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좌파·우파도 아닌 대파가 대세'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돌 정도였다. 민생과 직결된 먹거리 물가 인상은 선거철 단골소재지만 이만큼 표심을 흔드는 키워드로 주목받은 적이 있나 싶다. 지난달 18일 물가 점검을 위해 하나로마트 양재점에 들른 윤석열 대통령 발언이 대파 논쟁의 불씨를 당겼다. 대파 한 단(1㎏) 가격을 보고 “875원이면 합리적 가격 같다."고 말해 논란이 됐는데, 당시 정부 지원금과 유통업체 자체 할인이 더해진 일시적 가격으로 밝혀져 비판이 뒤따른 것이었다. 되짚어 보면 대파 하나에 나라가 뒤흔들린 것은 그만큼 고물가 속 민생고가 심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농산물 수급을 책임지는 산지 농가도 속이 상하긴 마찬가지다. 정부는 대파 가격 안정을 이유로 신선대파 무관세 수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올 1~2월 신선대파 총 3000톤을 무관세 수입한 데 이어, 4월 한 달 간 신선대파 3000톤에 0% 할당 관세를 적용한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 1~2 월 국내 반입된 수입산 대파 물량은 7030톤으로 전년 동기 물량(630톤) 대비 11배 이상 급증했다. 추가 반입량까지 반영되면 수입 폭증이 예상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파는 관세가 27%로 관세가 낮은 편에 속한다. 농민들은 무관세 수입확대에 따른 대파 가격 폭락, 판매 활로 축소 등을 우려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은 지난달 27일 성명문을 통해 “(올 1~3월) 평년 대비 50% 이상 많은 양이 수입됐으나 대파가격은 잡히지 않고 있다"면서 “저가에 수입농산물을 확보한 대형마트 등 유통자본만이 막대한 이윤으로 배를 불렸고, 윤석열 정권의 수입개방농정만 더욱 공고해졌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수입 중심의 물가잡기는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과 농가 고령화로 가격이 치솟은 과일 관련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격이 폭등한 사과 등을 대체하고자 정부는 수입과일 반입량 증량 외에도 수입 금지 품목인 사과를 들여오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농가 반발로 무산됐다. 정부는 근시안적 접근이 아닌 현실적인 시각으로 먹거리 물가를 다스려야 한다. 먹거리 물가에 따른 민생난은 생산·공급 기반 안정을 포함한 종합대책 없이 가격 통제와 수입에 기댄 정부의 농정실패에서 비롯됐다. 기후변화에 따른 작황 부진이 상수가 된 상황에서 산지 농가가 제대로 대응하는지 살펴보고, 중간유통단계에서 가격 거품 없이 생산자와 소비자 간 거리를 좁혀 제값에 팔고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EE칼럼]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에 거는 기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가 1960년에 쓴 '사회적 비용의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은 시장을 활용하여 환경문제를 해결한다는 아이디어의 기반을 제공했다. 이 논문은 경제학 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이다. 코스는 정부의 직접적인 간섭과 통제보다는 시장과 가격체계가 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코스는 배출권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환경 문제에 적용했다. 미국에서 산성비를 줄이기 위해 실시한 배출권거래제는 규제로는 어림도 없었을 만큼 훨씬 적은 비용과 빠른 속도로 이산화황 배출량을 크게 줄였다. 오염을 배출하는 권리를 시장에서 사고 파는 것은 도덕적 결함에 면죄부를 주는 폐해를 낳는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국제 기후협상에서도 비용효과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탄소시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제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열린 교토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실행하는 방법에 대해 충돌했다. 유럽연합(EU)은 강제적이고 직접적인 개입을 주장했다. 미국은 산성비 정책의 성공으로 생긴 자신감으로 거래제를 주장했다. 마감을 이미 넘긴 상태에서 의장은 미국과 EU 대표를 가까운 휴게실로 데려가 교토의정서를 타결시켰다. 이렇게 해서 시장은 기후변화에 개입하게 되었다. 개도국 입장에서도 선진국이 개도국의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청정개발체제(CDM)와 같은 시장 메커니즘은 받아들일 수 있는 사안이었다. 교토의정서 하에서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 기술과 자금을 투자하여 줄인 온실가스를 자국의 감축 의무 달성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개도국들은 친환경 기술에 대한 해외 투자를 받게 되어 자국의 개발을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추진할 수 있고, 선진국들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 달성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2015년 파리협정 체결로 탄소시장이 재편되었다. 파리협정 6조에 협력적 접근법(6.2조)과 지속가능발전체제(6.4조)라는 국제감축사업을 도입하였다. 이 조항은 각 국가가 국가감축목표(NDC)에서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한다. 협력적 접근법은 국가들의 합의로 정한 자체 규칙에 따라 감축 실적을 나누어 갖는 방식이다. 지속가능발전체제는 교토의정서의 CDM과 유사하게 국제연합(UN)의 감독기구가 관장하는 시장이다. 작년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당사국 총회에서 6조에 대한 추가지침을 개발하기 위해 협상을 벌였다. EU는 환경적 건전성을 위해 강한 규제를 주장하였다. 미국은 민간의 참여 확대를 위해 자발적 형태를 지지하였다. 양 진영의 입장 차이와 일부 개도국의 국제 탄소시장 개설에 대한 신중한 입장 표명으로 합의가 무산되었다. 파리협정은 교토의정서와 다르게 개도국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국가 감축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개도국이 온실가스 감축량을 선진국에 이전하면 그 만큼을 자국의 배출량에 더해야 한다. 이를 상응조정이라고 한다. 상응조정이 되지 않은 배출권은 중복산정 문제로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으로 지적받고 국가 감축목표에 사용할 수 없다. 파리협정 6조 메커니즘에서는 모든 면에서 개도국(사업 유치국)의 권한이 강력해졌고 선진국(투자국)의 권한은 약해졌다. 국제감축사업을 통해 배출권을 확보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도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141개의 국제감축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스위스와 태국이 협력적 접근법에 따른 거래를 최초로 완료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스위스는 태국 방콕에서 내연기관 버스를 전기 버스로 교체하면서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 발생한 온실가스 감축량(1916톤)을 구매하였다. 우리나라는 스위스, 일본, 싱가포르와 더불어 국제감축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제감축사업을 통해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13%에 해당하는 3750만톤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아직 UN에서 추가지침이 타결되지 않았으나, 선제적으로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몽골, 가봉과 협정을 체결하였고, 가나, 페루 등 6개국과는 가 서명을 하였다. 2023년 한국에너지공단은 베트남 3개 사업, 우즈베키스탄 1개 사업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다. 올해도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전 지구적으로 온실가스를 규제하려는 노력은 에너지 정책과 시장의 구조를 근본부터 바꾸고 있다. 저탄소 에너지원에 대한 기술개발을 촉진하고, 자금의 흐름도 저탄소 기술로 향하고 있다. 국가 간의 협력 필요성도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파리협정 6조와 같은 탄소시장이 국제적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새로운 힘이 되기를 기대한다. 박성우

[이슈&인사이트] 생성형 AI 활용, 비즈니스 혁신에 필수

김한성 굿프롬프트 대표 생성형 AI(GenAI)의 급속한 발전은 기업의 업무 효율성 향상과 비용 절감 가능성을 제시하며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나아가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실질금리 상승 압력으로 나타날 경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기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여전히 이 혁신적인 기술의 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의 최근 기사 “Why Adopting GenAI Is So Difficult"(생성형 AI 도입이 어려운 이유)에서는 ChatGPT(오픈AI가 개발한 인공지능 언어모델) 출시 1년이 넘도록 기업들은 이 기술을 처음 접했을 때와 동일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GenAI 도입의 어려움이 다양한 측면에서 나타나는데, 우선 많은 기업들이 전통적인 AI 기술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새로운 GenAI의 도입을 더욱 어럽게 만들고 있다. 또한 GenAI는 방대한 텍스트 생성 등 특정 분야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지만 정형화된 데이터 입력 등 전통적 AI가 쉽게 처리할 수있는 간단한 작업에는 오히려 취약한 가운데 특정 목적에 적합한 GenAI 활용 비즈니스 사례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GenAI의 장기적 비용과 이용 측면에서의 규제 환경도 불확실하기 때문에 본격적인 도입을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Gen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GenAI의 현재 역량과 미래 발전방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복잡한 경영 과제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GenAI를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업에게는 상당한 보상이 기다릴 것이다. HBR 기사의 저자들은 “GenAI 도입은 단순히 기술 투자가 아니라 근본적인 비즈니스 과제"라고 강조하며, “장기적 목표와 지속가능한 통합 전략에 초점을 맞춘 전략적 사고로 GenAI에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기업이 GenAI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GenAI 도입을 위한 명확한 목표 설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단순히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니라, GenAI가 해결할 수 있는 비즈니스 문제를 정의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술 도입에 따른 기대 효과와 잠재적 리스크를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GenAI의 핵심 요소인 모델, 데이터, 프롬프트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이들 세 요소는 상호의존적으로, 자동차로 비유하면 엔진, 연료 그리고 운전자라 할 수 있다. 고성능 언어모델 확보를 위해 내부 개발과 외부 솔루션 도입을 적절히 조합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아울러 대량의 고품질 데이터를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주력해야 한다. 특히 사용자의 요구사항을 명확히 이해하고 이를 모델이 처리하기 좋은 형태로 최적화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역량 강화를 위해 전담 인력 육성과 모범경영방식(best practice) 공유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셋째, GenAI 활용을 위한 조직문화 혁신과 거버넌스 체계 정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GenAI가 기존 업무 프로세스와 유기적으로 연계되려면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수용과 활용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전사적 교육과 변화관리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GenAI 활용에 따른 윤리적, 법적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가이드라인과 관리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넷째,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GenAI 생태계 조성에 힘써야 한다. GenAI는 기업 단독으로 완결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다양한 파트너사, 스타트업, 학계와의 협업을 통해 기술과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해야 한다. 산업 내 GenAI 활용 사례를 공유하고 공통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컨소시엄 구성도 고려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GenAI 도입을 통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 GenAI는 단순히 기존 업무를 자동화하는 수준을 넘어, 전혀 새로운 가치 창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GenAI 기반 콘텐츠 생성, 맞춤형 고객 경험 제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혁신적 서비스 개발이 가능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GenAI가 자사의 비즈니스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GenAI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다각도의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기술, 데이터, 조직, 파트너십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비즈니스 모델 혁신을 추구할 때, 기업은 GenAI가 열어줄 새로운 성장의 지평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GenAI 도입은 단순한 기술 도입 이상의 변화를 요구한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대한민국 기업들이 글로벌 GenAI 리더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김한성

[기자의눈] 소액주주 지분이 두 배더라도 이길 수 없는 K-주총

주주총회는 지분이 많으면 이긴다. 하지만 K-주총에서는 절대적이지 않다. 지분 위에 '의장의 권한과 대표이사 인감'이 있을 수 있다. 지난 달 셀리버리 주주총회는 K-주총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주주 연대는 오너 지분보다 2배가량 지분을 더 보유했으나 주총에서 패배했다. 그것도 한 차례가 아니라 임시주총과 정기주총 두 번 모두 패배했다. 첫 번째 주총에서는 물리적 시간이 이유였다. 의결권 위임 서류 확인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대관 시간이 모두 지나갔다는 것이다. 의장은 임시주총의 안건을 모두 부결시켰다. 두 번째 주총에서는 의결권 위임 서류가 문제가 있거나 적법한 위임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든 의결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사측의 안건은 통과되고 주주연대의 주주제안 안건은 부결됐다. 두 번의 주총 모두 '선명한' 문제가 있다. 우선 대관 시간이 지나면 상법 372조에 의거해 총회를 연기해야지, 안건을 부결시켜서는 안된다. 다음으로 의결권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를 통한 소액주주 지분 위임은 30곳 이상의 다른 종목 주주총회에서는 대부분 인정됐는데 셀리버리는 의결권을 '완전'히 부정했다. 이 같은 사례는 아미코젠과 셀리버리가 유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대웅 대표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가만히 있었다가는 회사를 눈 앞에서 빼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를 막론하고, 눈 앞에서 당장 본인의 경영권이 빼았기는 일은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조대웅 사태'를 사전적으로 막을 국내 주총의 관행과 구체적인 법이 미비하다는 점이다. 주주들은 두 차례 주주총회가 부당하다고, 법원에 주총 결의 취소·무효·부존재와 같은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사후적 해결책이지, 사전적 예방책은 아니다. 그간 국내 주총은 주요 이해관계자가 제한적이었기에 비상식적인 일이 발생하더라도 공론화되지 않았다. 위임장이 경우,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면'이라는 상법 문구를 바탕으로 나머지를 판례로 해결하더라도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젠 달라졌다. 소액주주는 500만명에서 1400만명까지 훌쩍 늘어났다. 다양한 개인들이 주주연대를 결성해, 다양한 종목에서 다양한 형태로 의견을 내고 있다. 당연히 논쟁의 양태도 다양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정한 주총을 위해서는 주총 절차와 관련한 강행규정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프로야구에서 로봇심판이 도입된 이후 스트라이크-볼 판정의 시비가 없어진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그간 학계와 정치권에서는 이사회 관련 논의가 활발했다. LG화학과 LG엔솔의 물적 분할 이후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관련 공략을 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젠 주주총회에 주목할 때다. 정치권과 학계의 관심을 촉구한다. 박기범 기자 partner@ekn.kr

[이슈&인사이트] 인플레이션의 까꿍 놀이

아기와 놀아줄 때 흔히 까꿍 놀이를 한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까꿍' 소리와 함께 얼굴을 보여주면 아기는 즐거워하며 환하게 웃는다. 까꿍 놀이는 아기에게 보이지 않는다하여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대상영속성을 가르쳐주는 놀이로 알려져있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사라지는 듯 하더니 다시 나타나는 까꿍 놀이를 하고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반갑다거나 인플레이션 까꿍 놀이가 즐겁지만은 않다. 인플레이션은 국내총생산(GDP), 실업률과 함께 3대 거시경제지표이다.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며 이를 역으로 이해하자면 실물로 측정한 통화의 가치가 하락한다는 것이다. 지낸 해에 비해 올해 통화의 가치가 비슷하다면 우리들은 통화를 사용하는데 불편함이 없을 것이나 해마다 그 가치가 10%씩 떨어진다면 1년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을 보유하는 것이 편치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수중에 돈이 들어온다면 이를 실물로 바꾸려는 수요가 증가한다.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 통화의 가치는 더욱 하락할 수 있으며, 어느 시점에는 누구도 통화를 보유하지 않으려는 혼란이 발생한다. 이러한 급격한 화폐가치 하락을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자국의 화폐를 발행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 정책목표인 중앙은행이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을 2% 내외 수준에서 지속되기 원하는 이유도 이러한 맥락이다. 인플레이션이 통제범위를 벗어난다면 걷잡을 수 없는 '통화이탈' 현상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의 1면을 장식하는 인플레이션은 국가경제활동의 성적표인 GDP, 생계와 직결된 노동시장의 지표인 실업률과 달리, 수년 전만 해도 일반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 중반이후 주요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한 놈만 패' 전략을 택한 이후 최근까지 2% 내외에서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무역관계의 변화, 전쟁 등에 의한 원자재 수급차질과 공급망 단절, 기후변화에 의한 농산물 생산 변화 등 공급요인들에 의해 인플레이셔이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금리를 높여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이 3% 전후로 하락하며 예전의 안정된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자연히 금융시장의 관심은 미연준의 금리인하가 언제 시작될 것이며 올해 몇 번 인하할 것인가에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인플레이션은 쉽게 하락하지 않는 끈적한 특성이 있다고는 하지만 유래없는 빅스텝과 자이언트스텝으로 이제는 물가목표인 2% 수준으로 돌아가야할 때도 되었다. 이는 현재 진행중인 인플레이션이 과거 30년간 보여준 것과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통해 억제하는 인플레이션은 주로 수요측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경기가 좋아 수요가 증가한데 주로 원인이 있었다. 이러한 인플레이션은 금리를 올려 수요를 감소시킴으로써 그 원인이 사라지고 인플레이션은 다시 하락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진행되는 인플레이션은 전쟁, 기후, 글로벌 무역관계 변화 등 공급측면에서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으로 중앙은행이 수요를 억제한다고 하여 근본적인 원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빅스텝, 자이언트스텝으로 인플레이션을 억제한다고 한들 지정학적 요인 등 공급측 요인에 변화에 의해 언제든지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구조적인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으로 향후 상당기간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인플레이션을 목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잠시 눈 앞에서 사라진듯한 인플레이션이 우리에게 '영속성'을 가르쳐주듯 까꿍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김수현

[EE칼럼] 광물안보 위해 리튬 확보 나서야 한다

한국에 있어 리튬 확보는 절실하다. 현존하는 금속 중 가장 가벼운 리튬은 휴대폰과 노트북 등의 전지에도 쓰인다. 한국의 미래 첨단산업은 반도체과 배터리이다. 특히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은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을 확보하지 못하면 주도권을 놓치고 만다. 따라서 탄산리튬 매장량 세계 전체 약 65%를 갖고 있는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3개국에서 리튬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 국가 중 볼리비아가 제일 많은 량을 갖고 있어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이 집중 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다. 볼리비아는 세계 제일의 탄산리튬 부존국이지만 리튬 생산국과는 다른 문제가 있다. 볼리비아 우유니 염수는 마그네슘 성분이 리튬 함량 대비 약 18~24배 수준으로 인근의 칠레, 아르헨티나에 비해 고농도로 존재한다. 또 우유니 지역은 연간 증발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자연 증발의 적용도 쉽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볼리비아는 다른 국가들의 리튬 정제 과정을 같은 방식으로 적용할 수 없는 난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국가에 기술개발 협력이 필요하다. 2009년~2012년 우리나라가 볼리비아 리튬에 관심을 갖게된 이유는 이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염수에 존재하는 리튬의 특성, 현존하는 자연건조 기술 그리고 농축된 염수로부터 불순물을 제거해 고순도 염화리튬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 등으로 계획을 준비했다. 볼리비아의 염수가 한국의 기술과 합쳐진다면 이 보다 더 강력한 결합은 없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토착민, 유럽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들이 모두 포함하는 다민족 국가로 유명한 볼리비아는 세계에서 28번째로 넓은 나라다. 콜롬버스 이전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였던 잉카제국의 일부였던 이곳은 아마존 지역과 안데스 분지를 아우르고 있다. 그 중 알티플라노 고원지대의 티티카카호와 세계에서 가장 넓은 우유니 소금사막이 가장 유명하다. 한국은 2010년 8월 한국광물자원공사(현, 한국광해광업공단, 이하 광물공사)와 볼리비아 과학기술위원회 간 리튬 개발 및 산업화 연구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시 볼리비아에서는 자체적으로 탄산리튬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었다. 다른 국가의 리튬 공정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볼리비아 염수만의 특수성이 존재했다. 칠레, 아르헨티나의 경우 염수를 빛에 자연 건조시키면 리트당 60g의 리튬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볼리비아 염수는 다량의 복합 염으로 인해 타 국가처럼 리튬을 농축하는 데 무리가 있다. 볼리비아 우유니는 지각 변동으로 안데스 산맥이 융기하면서 바닷물이 갇혀 호수가 됐고 그 호수는 오랜 시간 햇빛을 받아 증발되면서 소금만 남아 오늘의 소금 사막이 됐다. 당시 볼리비아 리튬을 둘러싼 한국·일본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었고 일본은 대표단 40여명을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 보내 현지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볼리비아의 리튬 확보를 위해서 전 세계 8개국이 경합중이였지만 당시는 한국과 일본의 2파전으로 압축되고 있었고 여기서 최종적으로 한국이 승리했다. 2011년 7월 29일 볼리비아 광업부 회의실에서 한국과 볼리비아 간 리튬사업 공동 추진 MOU 체결이 있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염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체결한 MOU는 세계 최초였다. 볼리비아에서 백색황금 '리튬'을 얻기 위해, 한국의 노력은 이렇게 진행됐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렸다. 최근 유럽 국가들이 중국 등 특정 국가나 지역에 대한 공급망 의존도를 낮추고 광물 안보 확보를 위해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인센티브까지 도입하고 있다. 독일 리튬 공급업체인 발칸에너지는 처음으로 염화리튬 생산을 시작했다. 유럽연합(EU)회원국이 자체 리튬 채굴에 속도를 내는 건 핵심 광물의 일정 비율을 자체 조달하도록 의무화 했기 때문이다. EU는 2035년부터 합성연료를 제외한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금지하면서 배터리 공급망이 더 중요해 졌지만, 리튬 등 핵심 광물은 여전히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글로벌 리튬 배터리 수요는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3년 11월 기준 글로벌 리튬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중국 CATL 34%, LG엔솔 14%, BYD 12%, 파나소닉 10%, SK온 7%, 삼성SDI 5% 순으로, 2030년 리튬 배터리 수요는 3,360GWh에 달해 2023년 이후 연평균 22%의 고성장 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2022년 탄산리튬 및 수산화리튬 수입액은 각각 8억9000만 달러(약 1조1906억원), 20억 달러(약 2조7690억원)로 전년동기 대비 각각 256%, 426% 증가했다. 주요 수입 대상국은 칠레(6억6000만 달러), 중국(1억6000만 달러)으로 전체 탄산리튬 수입액의 92%를 차지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첨단산업의 핵심인 배터리산업을 육성.발전 시키기 위해서는 리튬 배터리의 주원료인 리튬 확보는 필수이다. 정부의 자원외교를 통해 리튬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강천구

[EE칼럼] 에너지산업, 지난 15년을 반추해 본다

조성봉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은 곧바로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이어졌고 일본 정부는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일본은 원전 가동 중단에 따라 모자라는 전력을 LNG 발전소의 풀가동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국제 LNG 현물가격은 폭등했고, 그 바람에 우리 전력시장에서 SMP(전력도매가격)가 급등하며 한국의 구입전력비용은 치솟았다.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로 접어든 세계 경제에서 국제유가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금융위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 경제에 대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전기요금을 묶어버렸다. 기름값과 가스값이 모두 올랐는데도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자, 모든 부문에서 전력으로의 대체수요가 급증하게 되면서 잠재되었던 문제는 결국 동일본 대지진이 있던 2011년 9월 15일 수도권의 순환정전으로 터져버리게 됐다. 이때부터 2013년까지 절대적으로 전력이 모자라서 정부는 겨울철과 여름철의 피크시즌에 절전규제를 시행하게 된다. 정부는 모자라는 전력공급을 증가시키기 위해 제5차· 제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민간 석탄발전을 비롯한 발전설비의 건설을 독려했다. 2015년 이후 세계 에너지산업을 뒤흔든 것은 미국의 셰일혁명이다. 엄청난 천연가스와 석유가 셰일층에 있는지는 알았지만 이를 경제적으로 포집할 방법이 없어 무시되었던 셰일의 분포지역에서 천연가스와 석유가 쏟아져 나왔다. 국제유가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하루 아침에 석유와 천연가스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그 위상이 바뀌었으며 중동의 석유패권은 크게 약화됐다. 한편, 2015년을 뒤흔든 또 다른 사건은 그해 12월에 체결된 COP21(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파리협정이다. 이 협정에서 각국은 5년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시하는 NDC와 2050년까지의 장기목표를 제시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문제에 도화선이 된 사건은 2018년에 발간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에 따라 각국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를 감축해야 하고, 2050년까지는 순 탄소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017년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이끄는 한편 온실가스를 큰 폭으로 줄이기 위해 임기말인 2021년에 COP26 글래스고우에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을 2018년 대비 40% 줄이고,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뤄낸다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0년 전 세계를 뒤흔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수송용 에너지 수요가 줄어들자 국제유가는 급락했으니 2021년부터 국제 에너지 가격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2022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 정세는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러시아로부터의 천연가스와 석유의 공급을 차단한 유럽은 미국과 중동으로부터 이를 보충했고, 이 와중에 전 세계의 에너지 가격이 폭등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이 소비하는 LNG를 유럽으로 돌리는 바람에 국제 LNG 가격이 급등해 한국과 일본의 에너지 수입액은 급증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에너지 가격의 급등은 다소 완화되었지만 온실가스 감축 중심으로 흘러가던 에너지 이슈에 더하여 에너지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에너지 안보의 문제가 에너지 부문의 논의를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 여파와 온실가스 이슈로 주가가 급락하고 27조1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엑슨모빌은 다우지수에서 퇴출됐으나 2022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순이익 68조8000억원을 기록하고 주가가 80% 급등하는 반전을 보이며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제 또 어떤 변화가 에너지산업에 몰아닥칠까? 또 어떤 새로운 이슈와 논의가 에너지산업을 주도할까? 또 어떤 지정학적, 국제정치적 사건이 에너지산업에 영향을 미칠까? 4·10총선 이후 또 어떤 정치적 이슈가 에너지 분야를 뒤덮을까? 빨리 움직일 때와 느리게 움직일 때를 분별하는 지혜가 중요하다. 참으로 어려운 시대다.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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