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너지경제신문 안효건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 공세 전환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공격 고삐를 죄는 가운데 최근 ‘정의로운 평화’는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우 사이를 중재하는 이웃 국가 대통령들과도 연쇄 통화에 나섰다. 미국도 장기화 된 경제 제재로 러시아 군수 물자가 바닥나고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 등 제재 효과를 자신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CNN 방송,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을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지난 주말 이틀간 러시아 점령지 군사시설에 집중 공격을 가해 상당한 피해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 지역은 루한스크·도네츠크·자포리자 등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합병한 점령지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 등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의 세르히 하이다이 주지사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전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와그너그룹의 본부가 위치한 카디우카 마을의 호텔을 공격, 이로 인해 다수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또 다른 점령지인 동남부 자포리자주의 도시 멜리토폴을 겨냥해서도 다수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도네츠크도 시내 중심부 등지도 우크라이나 포격을 입어 민간인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했다. 지난 10일에는 ‘푸틴의 성지’로 불리는 크림반도의 두 번째로 큰 도시 심페로폴에서 여러 차례 폭발이 관측됐다. 러시아 흑해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세바스토폴항을 비롯한 크림반도의 여러 군사시설에서도 폭발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크림반도 폭발과 관련해서는 설명이 엇갈렸다. 러시아가 임명한 미하일 라즈보자예프 세바스토폴 시장은 이번 사고가 사격훈련으로 인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한 현지 언론사는 "폭발이 막사에서 일어났고, 여럿이 숨지거나 다쳤다"고 전했다. 러시아도 이란제 자폭 드론(무인기)을 이용한 공습을 재개해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일대가 한때 정전되는 등 피해를 봤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공격으로 약 150만 명에 대한 전기 공급이 끊겼고 일부 복구됐다고 전했다. 이런 치열한 공방 가운데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연쇄 통화를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들과 단 하루에 연쇄 통화를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밤 전국에 중계된 영상 연설에서 "파트너들과 쉬지 않고 협력하고 있다"며 다음 주에 "중요한 결과들"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젤렌스키 대통령 릴레이 인터뷰를 두고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질질 끌면서 10개월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외교 활동이 증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가 마크롱·에르도안 대통령과 가진 연쇄 통화는 프랑스와 튀르키예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를 중재하려 시도해 왔기에 주목된다. 전쟁을 외교로 풀어야 한다는 ‘협상론’을 주장한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에도 안보 보장을 해 줘야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튀르키예의 경우 7월 유엔과 함께 우크라이나 항구를 통한 곡물 수출이 반년 만에 재개되는 데 기여한 바 있다. 또 에르도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친분이 있다. 미국 백악관이 공개한 두 대통령 통화 내용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헌장에 담겨 있는 근본 원리들에 기반한 정의로운 평화는 수용할 수도 있다’는 젤렌스키 대통령 발언을 환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종전 협상론이 대두하자 △우크라이나의 영토 완전성 회복(국제법에 따른 점령지 완전 반환) △러시아의 전쟁 배상금 지급 △러시아에 대한 전쟁범죄 책임 추궁과 사법처리 등을 그 조건으로 제시해왔다. 이는 다소 형식적으로 열어둔 협상 가능성으로 러시아가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는 관측이 일단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은 동시에 러시아가 전쟁을 계속할 여력을 제한하는 조치들에 자신감을 보였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이날 공개된 CNN 인터뷰에서 러시아에 대한 각종 경제 제재와 관련 "러시아의 군사장비 공급 역량이 제재와 수출 규제로 상당히 약화했다"고 했다.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도 "러시아의 탱크 생산자들은 필요한 장비를 구하지 못해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만 했고, 이를 공식화했다"고 부연했다. 마이크로칩부터 볼베어링까지 무기 제작에 필요한 부품들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하는 미국의 대대적인 제재가 실효를 거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옐런 장관은 특히 유럽연합과 미국 등 주요 7개국(G7) 국가가 동참하는 러시아산 원유 가격 상한제 시행에 따른 효과에도 기대를 보였다. 그는 가격상한제에 "러시아의 수익을 억제해 그들의 전쟁 수행을 어렵게 만들고, 세계 석유가격이 급상승 없이 안정적인 범위 내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종전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나‘라는 물음에는 "우리는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옐런 장관은 그러면서도 "우리는 군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정부 예산 지원에도 "필요한 만큼 계속될 것"이라며 지속적 지원 의사가 확고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hg3to8@ekn.krUKRAINE-CRISIS/ZELENSKIY-BIDEN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