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성우창 기자]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 악화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인수합병(M&A)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이에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합병가액 산정을 자율화하는 등 M&A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기업가치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만큼 투자자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작년 국내 M&A 시장 규모는 약 78조원으로, 전년(134조원) 대비 58.2% 가량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 해 동안 계속된 글로벌 금리 상승, 하반기 채권 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카카오, 오스템임플란트 등의 공개매수를 중심으로 한 대형 M&A 딜이 눈에 띄었지만,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며 대부분의 기업 및 사모펀드가 M&A에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이에 금투업계 안팎에서 M&A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고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라도 관련 규제를 적극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금융당국도 M&A 제도 개선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M&A 지원 세미나’에서 "기업 M&A 규제를 대폭 개선하고, M&A를 통한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강화하겠다"며 "산업재편 수요에 대응한 전략적 M&A를 적극 지원하고, 글로벌 정합성을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에 참가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법제화된 M&A 제도를 미국·일본 등 주요국처럼 자율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대표적으로 공개매수 및 주식매수청구권 관련 기업들의 부담 완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대출여력 확대, 기업들의 소규모 분할 및 자진상장폐지 요건 완화 등이 거론됐다.특히 세미나 참석자들은 기업 간 합병 사례가 인수에 비해 적었던 만큼, 합병제도 개선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 제도는 기업의 실제 가치가 정확히 측정되지 않고, 국제적 기준에도 맞지 않아 합병 과정에서 소모적인 분쟁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세계적 기준에 맞게 자율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합병가액 산정 방식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구체적으로 규정됐다. 상장법인의 경우 기준시점의 시가를 기준으로 상장법인은 ±10~30% 할인, 할증한다. 비상장법인은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1 대 1.5로 가중평균해 정한다.그러나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법제화하지 않고 기업 간 자율에 맡기고 있는 만큼 국내 제도 역시 국제적 기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제화된 방식은 예측 가능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진정한 기업가치를 반영하기 어렵고 시장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합병 가액이라는 건 결국 가격의 문제"라며 "상거래에서 얼마에 사고 얼마에 팔 것인가 하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당사자 자율에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개선방안으로는 계열사 간 합병, 비계열사 간 합병이라는 이원화된 대안이 제시됐다.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기본 원칙을 유지하되,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평가 기준일 변경을 허용하는 방안이다. 비계열사 간 합병은 대등한 당사자 간 거래인만큼 합병가액 산정 방법을 자율화하고,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제3자 외부평가를 의무화하는 방안이다.합병가액 산정 자율화만큼 투자자 보호 필요성도 함께 강조됐다. 현재 공시되고 있는 합병 관련 사항의 경우 기본사항만 간략히 기재된 채 투자자들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향후 재무제표 중심의 기업 평가보다 미래 성장성을 중심으로 평가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기도 하다.따라서 합병 진행 과정 및 이사회 검토내용이 더 투명하게 되도록 주요사항보고서와 증권신고서 공시항목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 개선방안으로 제기됐다. 또한 상장법인-비상장법인 간 합병에 대해서도 제3자 외부평가를 의무화하고, 구체적인 행위규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이부연 한국거래소 상무는 "향후 좀 더 유연하게 시장 가치를 기준으로 합병하는 경우에도 비상장법인과 상장법인 간 시장 가치 규모에 따라 우회상장에 대한 심사를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거래소의 우회상장 심사가 신설될 경우 비상장기업의 가치 과대평가도 상당히 억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김유성 연세대 교수 ▲김진욱 건국대 경영학 교수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 ▲이수원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 ▲원종우 프랙시스캐피탈파트너스 전무 ▲이승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이부연 한국거래소 상무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김광일 금융위원회 공정시장 과장 등 재계, 학계, 법조계 인사들이 두루 참여해 의견을 개진했다. suc@ekn.kr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 홀에서 열린 ‘기업 M&A 지원 세미나’에서 패널들이 발표에 나서고 있다. 사진=성우창 기자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기업 M&A 지원 세미나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