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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AI! 나는 너를 못 믿겠다

'AI로 신문 기사를 수집해서, 과거 주가 변동 추세를 딥러닝으로 분석해서, 주가를 정확히 예측해서, 기계적으로 매매해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라는 소문이 시장에 떠돈다. 펀드매니저보다 똑똑하고 횡령·조작도 못할 테니 인간보다 믿을 만하단다. 나는 그러나, AI가 하는 매매에 내 자산을 맡기고 싶지 않다. AI는 매매 판단의 근거를 설명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 AI 개발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가 튜링 테스트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Alan Mathison Turing, 1912~1954)이 고안한 인공지능 평가 방법이다. 1950년 철학 저널 '마인드'에 게재한 '기계가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논문이 시초다. 테스트의 개념은 간단하다. 채팅으로 알 수 없는 상대방과 말을 주고받는데, 상대방이 인간인지 기계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기계인 상대방은 '인간과 같은 지능이 있다'라고 평가한다. 고릿적 인공지능 능력 평가 기준이지만 고전이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한 알고리듬을 작성해 보면,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봐야 한다. 인간은 질문이나 대답에 얼마나 빠르게 혹은 느리게 반응하는지, 얼마나 감정적인지 논리적인지, 얼마나 지식의 폭이 넓은지 좁은지 등등을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 심지어 인간이 어떤 말에 신경질을 내는지, 어떤 타이밍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등을 먼저 예상해 봐야 한다. 알고리듬을 짜다 보면 '인간은 왜 이 모양으로 불완전한가?'하는, 우리 종에 대한 회의마저 느껴진다. 물론 현재 인류를 휩쓸고 있는 AI 기술 수준을 보면, 튜링 테스트(1단계)쯤은 쉽게 통과한다. 최근까지 알려진 기술력으로 보면, 2단계 시청각(이미지나 음성 처리)도 통과한다. 갈겨쓴 손 글씨를 인식하거나 박보검 같은 연예인의 목소리를 합성해 내는 게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에까지 영상통화가 사용되는 걸 보면 2단계는 이미 통과된 거다. 3단계는 화상전화를 통한 실시간 상호작용이라고 보면 된다. 학습 연산 속도에 달린 일이라, 통과가 멀지 않았다. 그래서 AI는 불안하다. AI의 시작점은 '뛰어난 지능'이 아니라 '인간 같은 지능'이라서다. 눈치 빠른 사용자는 AI 서비스를 사용하다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뭔가 잘하는 거 같은데, 한두 가지 꼭 빠뜨린다. 더욱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또다시 내 생각을 입력해야 한다. 그걸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데, 결과물이 개선되는 것 같긴 한데 또 한두 가지 부족하다. 나는 분명히 기계에게 일을 시키는데, 결국 내가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바이트를 소진하다 보면 어느새 페이월이 뜬다. 기계의 '의도된 실수'인데, AI가 인간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로직 중 하나다. 튜링 테스트가 AI 설계 철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기계처럼 완벽한 결과물을 내는 게 아니라 인간처럼 불완전한 결과물을 제출해야, 지능으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사실 '완벽한 결과물'이란 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AI 개발자들은 생성형 AI의 설계 철학을 두고 '아직도' 싸운다. AI를 인간처럼 만들었으니. 돈도 인간처럼 버는 거다. 불완전한 AI가 판타지로 활용된다. 기계에 자산을 맡겨두면 24시간 돈을 불려줄 것만 같다. 또 그럴 것처럼 광고한다. 그러나 모두 헛소리다. AI는 학습 구조상 어떤 판단 근거로 매매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손실을 낸 기계는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기계를 만든 사람도 책임지지 않는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데스크칼럼] 관세협상 후폭풍 대책 마련 나서야

이재명 정부가 미국 트럼프 정부와 관세협상을 마쳤다. 상호관세는 일본, 유럽연합과 같은 15%에 3500억달러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의 미국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했다. 한미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란 점에 비하면 불리하게 체결됐다는 평도 있지만, 주요 동맹국들과 같은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번 협상에서 우려되는 점이 있다. 트럼프 정부의 남은 임기인 향후 4년간 1000억달러의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기로 한 점이다. 연간 250억달러 규모다. 2024년 우리나라의 대미 에너지 수입액이 232억달러이므로 이보다 18억달러(약 2조5000억원)가량 더 늘어나는 셈이다. 우리나라가 추가 수입하기로 한 대부분은 LNG로 알려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수입품목 가운데 LNG만 공기업 분야이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 분야이다. 정부가 민간에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라고 강요할 순 없으므로,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를 통해 LNG 수입을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LNG 약 564만톤을 수입했다. 수입단가는 톤당 548.6달러이다. 이를 기준으로 늘어나는 수입액 18억달러를 LNG로 환산하면 약 328만톤이 된다. 즉, 미국산 LNG 수입량은 거의 900만톤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이 협상의 후폭풍을 감당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제 LNG 소비 감소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올해 상반기 LNG 총 수입량은 약 2306만톤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2345만톤 대비 39만톤(1.7%) 줄었다. 정부가 올해 3월 확정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LNG 소비량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LNG발전량은 2023년 157.7TWh에서 2035년 101.1TWh, 2038년 74.3TWh로 대폭 감소하는 것으로 전망됐다. 앞으로 LNG 소비량은 계속 감소하는데, 정부는 LNG 수입을 늘리는 협상을 했으므로, 정부와 국민은 남는 LNG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우선 가스공사가 다른 나라의 수입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이는 경제성 수입 원칙에 어긋난다. 가스공사가 반강제적으로 미국산을 더 수입하는 만큼 경제성이 더 좋은 물량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 부담은 가스공사가 자체 부담하던가 요금 인상으로 보전받아야 하는데 자칫 경영진의 배임혐의가 될 수 있어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가스공사가 늘어난 수입물량을 제 3국으로 트레이딩하거나 국내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은 게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 대만,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국가 대부분이 관세협상을 위해 미국산 LNG 수입을 늘리기로 했고, 심지어 중국도 늘릴 예정이다. 우리가 판매할 곳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가스공사는 국내 다른 기업에 판매하기도 힘들다. 공공과 민간 간 거래가 규제에 막혀 있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정부가 가스 소비를 늘리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에너지 전문가들이 가장 현실적으로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11차 전기본 등 국내 에너지정책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전제로 짜여졌는데,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많다. 경제발전은 곧 탄소 배출인데, 탄소 배출량을 제로로 하자는 것은 경제발전을 포기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관세협상은 타결됐지만 만만치 않은 후폭풍이 오고 있다. 후폭풍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데스크칼럼] 의료용대마는 마약, 합성니코틴은 공산품?

지난달 대법원은 대마초에서 추출한 의료용 성분 '칸나비디올(CBD)'도 마약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내 화장품 원료 수입업자가 환각작용이 없는 성분인 CBD를 수입하려다가 통관이 거부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한 것이다. 대법원은 현행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상 대마초가 마약류로 분류돼 있는 만큼 대마초에서 추출한 성분은 환각성분 유무와 관계없이 마약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현행 국내법이 모든 대마초 품종을 마약류로 분류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다. 유엔과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주요국은 뇌전증 등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천연성분인 CBD를 다량 함유하면서 환각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은 거의 없는(THC 건조중량 0.3% 이하) 새로운 대마 개량품종 '헴프' 종을 기존 마약 제조에 사용하는 '마리화나' 종과 별개의 품종으로 구분해 마약류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법적으로 헴프종도 마약류로 남아있다. 이 때문에 헴프 종에 미량 남아있는 THC를 100% 제거해 순수한 CBD만 생산해도 국내 상용화는 물론 해외수출 길도 사실상 막혀있다. 이 때문에 국내 CBD 생산기업은 제조공장을 해외로 옮기기도 한다. 65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CBD 시장에서 우리나라보다 CBD 추출 기술이 뒤쳐졌던 일본이 우리를 추월하고 있다는 것도 업계의 한탄이다. 마약 규제를 엄격히 하려는 입법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성분이나 효과'가 아니라 대마 식물이라는 '출처'만을 기준으로 규제하는 현행법의 경직성은 품종 개량 등 기술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규제의 경직성은 담배 산업계의 '합성니코틴' 논란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현행 담배사업법 및 국민건강증진법상 '담배'는 '연초(담뱃잎)'를 원료로 한 제품에 한해 규제대상으로 삼는다. 합성니코틴은 담뱃잎에서 추출되는 천연니코틴과 화학적으로 동일하지만 인공적으로 제조된 화합물로, 천연니코틴보다 순도가 높아 중독성이 더 높다고 할 수 있지만 담배 식물에서 추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담배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합성니코틴으로 만드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청소년 판매 금지나 경고문 부착 등 담배에 적용되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으며, 청소년은 무인판매기나 온라인 등에서 합성니코틴으로 만든 액상전자담배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액상형 전자담배에 코카인 등 마약 성분을 섞어 국내에 들여오려던 해외 일당이 검거되는 등 액상형 전자담배가 새로운 마약 전달 장치로 악용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합성니코틴 액상담배를 담배로 정의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돼도 일부 국회의원과 합성니코틴 수입업자의 반대에 막혀 국회 통과가 계속 불발되고 있다. 반면 미국은 2022년부터 합성니코틴 제품도 미국식품의약국(FDA) 규제 대상으로 포함시켰고 일본, 영국 등도 합성니코틴 제품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두고 있다. 품종 개량, 화합물 합성 등 기술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국내 마약 및 중독성 기호품에 대한 입법체계의 경직성은 국민보건증진과 신흥산업육성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김철훈 기자 kch0054@ekn.kr

[데스크칼럼] 21세기 AI 전성시대 ‘AI맹’ 없어야

지난해 미국 오픈AI의 생성형 챗GPT가 한창 국내외 이슈를 몰고 왔던 시기에 한 모임에서 인공지능(AI)을 재판 과정에 도입하는 문제가 안주거리로 올랐다. 당시 필자를 포함해 참석자 전원이 'AI 재판관' 도입에 찬성했다.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인간 재판관'보다 AI 재판관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함으로써 사법 서비스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만, AI 재판관의 업무 영역을 놓고는 의견이 갈렸다. 판사와 변호사 역할까지 AI에 맡겨 개인의 감정과 가치관이 개입되는 '인간적 오류'를 차단해야 한다는 실용주의 견해와 법리 해석의 '기계적 한계'를 지적하며 판결만은 마지노선으로 지켜야한다는 인본주의 견해로 팽팽히 맞섰던 것이다. 오픈AI의 챗GPT가 지난 2022년 11월 첫 공개된 이후 전세계는 그야말로 'AI 블랙홀'이라 불릴 만큼 AI 전성시대로 빠르게 빨려들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국내 AI 기술 수준은 최근 몇 년 새 가장 빠르게 성장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의 AI 기술 수준을 100으로 친다면 한국은 88.9%로 1.3년의 기술격차를 보이고 있다. 중국 92.5%(0.9년), 유럽 92.4%(약 1년)보다는 뒤지지만 일본 86.2%(1.7년)에는 앞서고 있다. AI기본법도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또한, 지난 5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AI 3대 강국'을 국가산업 아젠다로 정하고, 100조원 규모의 AI 투자, 전국 AI데이터센터 중심의 AI 고속도로 구축, 독자적 AI 주권 확보를 위한 '소버린 AI' 정립 등을 적극 추진한다. 이렇듯 대한민국 AI산업을 위한 법적, 제도적 지원 체계는 완비된 셈이다. '빨리빨리 문화'의 장점과 '탁월한 응용력'의 강점만 제대로 발휘한다면 한국이 글로벌 AI산업을 선도할 것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이 있다. AI산업의 육성과 발달이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점이다. 초기 발전단계에선 연구개발과 투자를 국가와 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성과물에 따른 이익 역시 국가와 기업에 우선권이 주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이전의 단순 기계적 발달이 가져온 민간의 수용성 속도와 달리 21세기의 인공지능 전환(AX), 디지털 전환(DX)의 급속한 발달은 수용성의 진입장벽을 높이 쌓아 그 과정에서 분배와 포용의 불균형(소외) 문제를 심각하게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말 AI기본법과 함께 제정된 '디지털포용법'이 주목받는 점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루가 멀다않고 급변하는 AI 및 디지털 시대에 사회적 약자의 기술 소외(불평등)를 해소하는 문제는 AI산업 발전 못지 않게 사회통합과 AI 대중화 차원에서 필수다. 마침 이재명 정부가 표방한 'AI 3대 강국' 아젠다에 전국민 대상 AI 무료 서비스를 표방한 '모두의 AI 프로젝트'가 포함돼 있어 다행이다. 20세기에 '컴맹(컴퓨터를 모르는 문맹자)'이란 신조어가 있었지만, 21세기에는 'AI맹'이 사회문제로 등장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김병헌 칼럼]혁신 없는 보수, 국민은 이미 버렸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먼저 자신을 변화시켜라"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말처럼 스스로의 변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정말 끝이다. 길 잃은 배가 암초를 향해 돌진하듯, 국민의힘은 총선·대선 패배의 교훈도 잊고 여전히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하다. 여론은 벌써 등을 돌렸고 TK조차 더 이상 보수의 성지가 아니다. 정당 지지율은 더불어민주당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지난10일 한 기관에서는 10%대가 나왔다. 안철수 의원의 사퇴이후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이 지난 9일 혁신위원장으로 등장했다. 네 번째 혁신위원장이다. 윤 위원장은 “당원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겠다"고 했다. 공천권을 쥐고 흔들던 중앙의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의미지만 여론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안철수 의원이 인적 청산을 요구하며 물러난 지 이틀 만이다. 윤 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도 권력에 줄 선 정치의 폐해를 지적하며 사과한 바 있다. 10일 혁신위원회 첫회의를 연뒤 '국민과 당원에게 드리는 사죄문'을 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저지른 과오와 단절하는 것을 당헌·당규에 명시하는 방안을 전 당원 투표를 거쳐 추진하겠다고도 했다. 사죄문에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 계엄과 탄핵 △특정 계파 중심의 당 운영 △대선후보 강제 단일화 △이준석 전 대표 강제 퇴출 등 당 안팎에서 제기된 문제들도 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비슷한 말은 많았지만 실행은 없었다.이번에도 과오에 대한 당사자 사과와 관련자 인적청산에 대한 애기마저 없다보니 여론은 '양치기 소년' 취급이다. 중앙당의 권력구조, 공천 장사, 지역 기득권 보호, 이런 것들이 남아 있는 한 보수의 쇄신은 없다. 미국 공화당, 영국 보수당, 일본 자민당이 몰락의 위기에서 살아난 것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국민과 당원의 선택에 맡겼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은 지역구별 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를 뽑는다. 영국 보수당은 당원과 지역 조직이 후보를 추천한다. 일본 자민당도 2009년 대패 후 젊은 리더십을 키우고 지역 기반을 재건해 다시 집권했다. 이들은 중앙 권력을 축소하고, 지역과 국민에게 권한을 이양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해보인다. 먼저 중앙당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 중앙에서 후보를 낙점하고, 공천 장사하던 구조를 끝내야 한다. 정당은 지역과 유권자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공천도 프라이머리로 바꿔야 한다. 지역 당원, 국민이 직접 후보를 고르게 해야 한다. 이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정치 개혁이다. 다선 의원의 엄격한 공천 제한도 실행되야 한다. 정치인은 영원히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미국·영국·일본도 대부분 3선 이상은 예외적이다. 국민이 원하지 않으면 그만두는 것이 정치인의 본분이다. TK 지역의 '공천=당선' 구조는 국민의힘의 가장 큰 독소다. 이를 깨지 못하면 TK는 보수의 근거지가 아니라 보수의 무덤이 될 수있다. 실질적 세대 교체가 필요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6070 중심에서 3040이 중심이 되도록 세력 교체를 단행해야 한다. 수도권과 청년층이 외면하는 정당은 더 이상 전국 정당이 아니다. 국민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수도권 민심을 되찾을 수 없다. 법과 질서, 공정과 상식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정책으로 복원해야 한다.윤 위원장의 말처럼 “당원이 혁신의 주체"여야 한다.권력자에 줄 서는 당원이 아니라, 지역에서 민심을 듣고 목소리를 내는 진짜 당원이어야 한다. 그들의 참뜻을 따르는 게 혁신이다. 이 과정은 물론 쉽지 않다. 정치적으로 자살행위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 전환기는 늘 그런 결단에서 시작됐다. 1990년 3당 합당이 그랬다. 5공 세력을 청산하고 보수 외연을 넓혔다. 당시의 결단이 없었다면 보수는 오래전에 몰락했을 것이다.보수의 위기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시작됐다. 무능한 지도부, 탐욕스러운 지역 정치인들, 국민보다 권력을 더 사랑하는 정치공학이 보수를 죽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체와 재건이다. 진보가 존재하는 한 보수는 필요하다. 좋아서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보수의 회생도 보수 자신만을 위한 일이 아니고 국민을 위한 일이다. 지금은 시간이 없다. 보수로서는 내년 지방선거, 2년 뒤 총선이 마지막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면 우리나라에 보수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국민은 더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보수는 버려진다. 구호만 외치고 권력만 탐하고 내분만 일삼은 정당에 국민은 두 번 다시 손을 내밀지 않는다. 김병헌 기자 bienns@ekn.kr

[데스크 칼럼]‘사자’가 된 이재명에게 거는 기대

2016년 6월, 이른 더위가 아스팔트를 달구던 광화문광장에서 농성 중이던 이재명 성남시장을 인터뷰했었다. 처음에는 연설 잘하는 시민운동 출신으로 유명했다. 성남시장이 된 후에는 “행정도 좀 하네“라고 알려졌었다. 별 기대없이 천막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받았던 첫 느낌은 재주는 있지만 깊이나 덕이 부족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인상으로 치면 원숭이나 여우 쯤 된다고나 할까? 이후 그는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권 주자로 성장했다. 2017년 대선 경선 실패, 2022년 대선 본선 패배 등 연이은 좌절을 딛고 지난달 3일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잇딴 패배나 지난해 1월 부산 피습사건과 같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성숙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이 대통령의 인상에선 한결 편안함과 당당함이 느껴진다. 담백하고 수수하지만 꺾을 수 없을 것 같은 자신감도 베어있다. 풍진 세월을 겪은 사자나 우두머리 고릴라 같은 느낌이다. 그동안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지난 3일 취임 한 달 기자회견에서 그 변화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전략가'의 역량을 갖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들은 한계가 많았다. 다방면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말 그대로 '크게 통치하는 우두머리(大統領)'가 될만한 능력을 가진 이는 거의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평생 정치만 하던 사람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은 박학다식한 개혁가였지만 행정 경험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변호사 출신 혁신가였지만 실무·경제엔 약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도 경영처럼 한 기업가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내내 '박정희의 큰 딸'일 뿐이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인격자였지만 결단력과 내공이 약했다. 쿠데타를 일으켜 3년 만에 쫓겨난 윤석열 대통령은 그냥 술꾼 검사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국 사회와 경제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지속가능성과 성장을 어떻게 동시에 확보할 것인가에 대해 식견을 갖춘 답을 내놓았다. 정치지도자인 동시에 경제적 지식을 갖춘 행정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줬다, 대표적인 게 부동산 관련 대책이다. 단편적 처방에서 벗어나 서울에 '돈과 사람'이 몰리는 것을 막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종합 전략'을 제시했다. 과거처럼 '부동산' 측면만 본 단선적인 접근이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 하에 복합적으로 접근해 해법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전략가' 대통령의 시작은 좋다. 해박한 지식과 행정 경험이 토대가 된 안정감, 특유의 소통 능력, 좌우를 막론한 탕평인사가 지지율을 탄탄하게 뒷받치고 있다. 취임 후 지지율이 4주 연속 상승 추세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한국 사회의 룰을 다시 셋팅하고 시스템을 혁신해 지속가능한 경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당장 내수 부진을 회복해야 하며, 멈췄던 과학기술투자를 되살려 내 미래 먹거리를 창조해야 한다. 시장 실패, 정부 실패를 모두 극복해 한국 경제의 심장에 엔트로피가 없는 영구기관을 장착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띄고 있다. 기후 위기, 에너지 고갈 시대에다 미국발 관세 전쟁 등 대외적인 변수도 심상잖다. 어느 대통령 때나 다 마찬가지지만, 이 대통령의 성공이 곧 대한민국 생존의 길이라는 게 더욱 절실한 시기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달려가면 된다. 본인의 말마따나 '크게 하나로 묶어내는 우두머리'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김봉수 기자 bskim2019@ekn.kr

[데스크 칼럼] 감독 독립성 없이 금융소비자 보호는 허상이다

“이원화된 감독체계 아래서는 감독 정책과 집행 간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 결과적으로 사후 개선이 잘 안 되고, 금융감독의 비효율과 소비자 피해로 이어진다." 윤석헌 전 금융감독원장이 2020년 12월 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남긴 말이다. 당시 그는 라임·옵티머스 사태 등 대형 금융범죄로 휘청이는 시장 한가운데 있었다. 수많은 금융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었고, 감독 시스템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윤 전 원장은 재임 기간 내내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주장했지만 정부와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추진 동력을 얻지 못했다. 논의는 금감원과 금융위 간 기싸움으로 번지며 개편은 흐지부지됐다.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의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체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도입돼 17년 넘게 유지되고 있다. 그 사이 금융환경은 급변했고,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저축은행 부실, DLF·라임·옵티머스 사태, 사모펀드 환매 중단 등 사건이 반복됐지만 감독 시스템은 번번이 뒷북을 쳤다. 그럼에도 체제 개편은 정권 초의 구호에 머무르기 일쑤였고, 시간이 흐르며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곤 했다.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이재명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핵심 의제로 꺼냈고, 새 정부의 금융당국 수장 후보로 거론되는 김은경 한국외대 교수가 구체적인 개편 방향을 공개적으로 제시하면서 논의가 현실성을 띠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현 금융감독체계는 기형적이며 반드시 개편돼야 한다"며 금융위원회의 해체와 금감원•금융소비자보호원의 기능 재편을 주장했다. 특히 그는 “금융위가 산업정책과 감독을 동시에 수행한 구조 탓에 사모펀드, 동양사태 같은 대형 금융사고가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은 단순한 이론적 비판이 아니다. 김 교수는 금감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으로 재직하며 감독권한이 없는 상황에서도 헤리티지펀드 사태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섰다. 당시 헤리티지펀드가 독일 펀드인 점을 고려해 해외 관련 기관의 자료를 직접 확인하는 등 문제 해결에 힘썼다. 그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과 압박도 겪었으며, 금융위원회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음에도 실질적인 조치를 이끌어내는 데 한계를 절감했다고 토로했다. 금융위 출신 인사들의 민간 금융사 이직을 제한해야 한다는 그의 지적 역시, 산업정책 기능과 감독 기능이 한 조직에 섞여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정확히 짚은 것이다. 현재 논의 중인 개편안은 금융위원회의 금융산업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넘기고, 금감원 내부 조직인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독립시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는 방안이 중심이다.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감독과 정책 기능을 명확히 분리하고 기관별 역할과 권한을 재정립하려는 구상이다. 지금처럼 금융위가 금감원에 대한 지휘권을 쥔 상태에서는 누구도 실질적인 감독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 결과, 감독은 무뎌졌고 금융의 공공성은 약해졌다. 감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권한 부여뿐 아니라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와 신속한 대응 체계 마련도 필수적이다. 금융시장이 급변하고 복잡해지는 현실에서, 모호한 책임구조와 권한 집중은 또 다른 금융 사고의 씨앗이 될 뿐이다. 금융산업의 건전한 성장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는 신뢰받는 감독기구가 필요하며, 이는 제도적 틀부터 바로 세우는 데서 출발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과 함께 경제 운영의 큰 방향을 설정하고, 전방위적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금융감독체계 개편 역시 이 흐름 속에서 강한 실행력으로 추진돼야 한다. 기능은 나누고, 권한은 조정하며, 책임은 분명히 하는 것. 그럴 때에야 비로소 금융감독은 작동하고 신뢰는 돌아온다. 송재석 기자 mediasong@ekn.kr

[데스크 칼럼] ‘코스피 5000’ 말하지 말라

코스피 지수가 3000을 넘겼다. 종목창은 연일 붉게 반짝였다. 시장은 흥분했다. 언론은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했다고 분석했다. 애널리스트는 정책수혜주라며 목표 주가를 한 뼘씩 높여 잡았다. 증권가가 즐비한 동여의도는 지금 잔칫집 분위기다. 시가총액은 물처럼 불어났다. 여러 주가가 신고점을 경신했다. 기업이 커지고 경제가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게 코스피 3000이라는 숫자가 보여준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코스피 5000을 약속했다. 경제가 좋아진다, 기업이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여의도 전역에 만연하다. 서학개미들은 쟁여놓은 테슬라도 팔고, 앤비디아도 팔았다. 대신 국장이 불붙었다. 마치 코로나19 이후 동학 개미 운동이 재현되는 것만 같다. 코스피 지수 역대 최고는 2021년 7월 6일의 3305.21이었다. 이 숫자를 믿고 동학 개미는 2022년까지 3000선을 밀어 올리며 버텼다. 당시 증시 활황은 유동성 덕이었다. 침체된 경기를 우려한 각국 정부가 돈을 풀었다. 한국 정부도 국채를 찍어 돈을 마구 풀었다. 한국의 광의통화(M2)는 2500조 원에서 3900조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낮췄고, 정부는 대규모 재정을 투입했다. 코스피가 오르니 시장은 환호했다. 주가는 올랐다. 왜 오르는 지 알 필요도 없었다. 오르면 좋았다. 빚을 내서 좋다는 주식을 사들였다. 기업에 돈이 흘러 들어갈텐데, 기업은 증자나 재투자를 꺼렸다. 활황에도 공장을 더 짓지 않았다. 일자리도 늘리지 않았다. 기업도 돈놀이에 빠져있었다. 코스피는 올랐으나 시장은 썩고 있었다. 지수 3000은 모든 상장사 시가총액 합이 2500조 원을 넘었다는 뜻이다. 지수가 5000이 되려면 4166조 원은 되어야 한다. 누군가 1666조 정도 자금을 들여 코스피 상장사 주식을 사줘야 목표 지수에 닿을 수 있다. 1666조라는 '추가 자금'은 어디에 있나? 정부는 자금을 '유동성 공급'으로 해결할 모양이다. 소비 진작으로 경제 선순환 고리로 잇는 거다. 전국민 지원금으로 소비에 직결되는 자금을 공급, 돈이 회전하고 일자리가 많아지고 이익이 증가하면서 증시 투자로 돈이 흘러가고, 기업이 재투자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유동성을 공급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국채를 발행하면 채권금리가 상승하고 그에 따라 회사채 금리도 오른다. 직접 금융이 어려워지면 기업은 증시에서 자금을 구해야 한다. 증자를 하면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섣부른 방법 중에 하나가 가상자산현물ETF다. 거대한 가상자산 시장의 자금이 증시로 유입될 수 있다. 그러나 이 ETF 자금은 코스피 숫자만 밀어올릴 뿐이다. 이 자금은 어느 기업의 투자에도 전달되지 않는다. 버블의 기반이 된다. 코스피 5000은 바라마지 않는 숫자다. 숫자만 보고 있으면 조바심이 나고, 뭔가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 정부는 유동성 확대 카드부터 꺼내기 마련이다. 과거가 결과를 알려준다. 일본의 1980년대 말, 그리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시기와 똑같다. 결과는 자산 폭락, 금융위기, 구조조정, 그리고 장기침체였다. 선거에 쓰던 '코스피 5000 달성'같은 비전은 안 써도 된다. 기업의 생산성 개선과 기술 혁신에 방해되는 규제만 치워주고 조용히 펀더멘탈만 강화시켜 주면 된다. 코스피 1만이면 뭐하나. 펀더멘탈이 부실하면 경제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박상주 기자 redphoto@ekn.kr

[데스크칼럼] 이재명의 탈석탄 vs 트럼프의 아름다운 석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대표적 실책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다. 그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다른 선진국들보다 저렴하게 요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원자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4월 기준 원전의 발전 단가는 kWh당 80원인 반면, 가스발전 단가는 159원이다. 탈원전은 현실을 외면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라서 환영받을 수 없었다. 이재명 정부는 탈원전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대선 전 “민주당이 더 이상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우파 에너지, 좌파 에너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전 세계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SMR(소형모듈원전)이라든지 MMR(10메가와트 이하 원자로), 더 나아가서 핵융합 에너지 등 미래 전략산업의 육성을 위해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원전 실책으로 잃었던 민심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어쩌면 이 대통령도 탈원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 탈석탄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10대 공약 중 기후 분야에서 '2040년까지 석탄화력발전 폐쇄'를 약속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총 61기에 약 40GW 용량에 달하는 석탄발전이 있다. 2040년까지면 15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단순 계산하면 1년에 4기씩 석탄발전을 없애야 한다. 1기당 650MW 규모이므로 1년에 2600MW의 발전용량을 석탄에서 다른 에너지원으로 전환해야 한다. 불가능에 가깝다. 이 대통령이 석탄발전을 없애겠다고 약속한 이유는 석탄의 환경오염 때문일 것이다. 석탄은 연소 과정에서 많은 배출물질을 발생시킨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천연가스의 3배이고, 미세먼지를 일으키는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그리고 먼지도 많이 발생시킨다. 우리나라 봄철마다 극심한 미세먼지가 생기는 것도 중국의 석탄발전에서 나오는 물질이 한반도로 유입되는 것이 주요 요인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석탄의 다른 면도 봐야 한다. 석탄은 에너지원으로서 아주 훌륭한 물질이다. 석탄의 열량은 석유, 천연가스보다 약간 떨어지지만 가공이 거의 필요없고, 유일한 고체물질이라서 운송도 매우 쉽고 저장도 쉽다. 무엇보다 매장량이 전 세계에 골고루 분포돼 있어 고갈 걱정도 없다. 심지어 우리나라에도 전국에 걸쳐 매장지가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8일 미국 내 석탄산업을 활성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석탄은 가장 신뢰할 수 있고, 내구성이 뛰어나며, 안전하고 강력한 에너지이다. 저렴하고 효율성이 뛰어나고 거의 파괴되지 않는다"며 “아름답고 깨끗한 석탄을 저렴한 미국 에너지로 계속 활용할 것"이라고 석탄을 치켜세웠다. 트럼프는 환경 파괴론자가 아니다. 현실주의자다. 앞으로 국가간 패권싸움은 얼마나 우수한 AI(인공지능)를 확보했느냐에서 나온다. AI는 데이터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데이터센터 확보가 경쟁의 핵심이다. 데이터센터는 에너지 먹는 하마로 불릴 정도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 에너지 소비량을 감당하려면 충분한 석탄 공급이 필요하다는 게 트럼프의 의도인 것이다. 우리나라도 AI 전쟁에 뛰어들었다. 앞으로 막대한 에너지 소모가 예상된다. 그런 와중에 석탄발전을 폐쇄한다면 도대체 어떤 에너지로 그것을 대체할 수 있을까? 전국 모든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모든 산간과 해안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하며, 재생에너지 간헐성을 해결하기 위해 화재 위험성이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전국에 구축해 놓으면, 과연 그것이 석탄발전을 대체한 깨끗한 에너지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신규 원전 수십 기를 추가 설치해야 하는데, 과연 어느 지역에 할 수 있을까? 현대 사회에서 에너지는 국가의 근간이다. 얼마나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 가능한 에너지원을 확보하느냐가 국가간 경쟁의 핵심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석탄발전 패쇄 정책을 반드시 재고해야 한다.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데스크 칼럼] 새정부 기업·노동 정책, 명분보다 실리로

이재명 대통령의 '국민주권정부'가 지난 4일 출범했다. 보궐선거인 탓에 당선과 함께 곧바로 국정 업무에 돌입한 국민주권정부는 임기 중 경제정책 방향으로 '대한민국의 경제강국 실현'을 제시했다. 경제강국 실현을 위한 △국익 중심 통상 △실용적 외교 △남북관계 회복 등 외교·통상 정책과 △인공지능(AI) 기반 전략산업 육성 △재생에너지 확대 △주식시장 활성화 등 산업·금융 정책이 핵심이다.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국정 과제들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제시된 이들 정책은 이해관계에서 무엇보다 정부가 얼마나 주도적으로 강한 협상력과 지원, 정책 의지를 발휘하느냐가 성패의 열쇠이다. 이와 달리, 국민주권정부가 표방하는 기업환경과 노동 관련 정책은 정부의 관철 의지 못지 않게 기업과 근로자라는 이해당사자간 사회적 합의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에서 원만한 정책 실현에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를 전망이다. 역대 정부에서 기업환경과 노동 정책은 집권세력이 진보냐 보수이냐 성격에 따라 기업이나 근로자에 힘이 더 실리면서 친기업, 친노동으로 규정지워지는 반복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친기업, 친노동의 교체를 되풀이하면서도 큰 흐름에서는 국제적 보편성을 충족시키는 정반합(正反合) 프로세스를 가동시켜 온 게 대한민국의 기업환경과 노동정책의 발전 여정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 기간 중 더불어민주당을 중도보수 정당으로 선전했음에도 정치학자와 일반국민들은 국민주권정부를 '진보 정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업환경과 노동 정책이 진보 개혁 기조로 진행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약속했던 통합과 실용의 국정 철학이 진보주의의 가치와 토대를 손상하지 않고 어떻게 기업과 노동의 상반된 계급적 이해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 가령, 이 대통령의 공약 중 이른바 '온라인플랫폼법', '노란봉투법' 등의 입법화는 상대적 약자인 소상공인,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기업에 과도한 규제나 경영권 보호수단 상실이라는 우려와 반발 때문에 이해당사자간 첨예한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플랫폼법의 경우, 독과점 플랫폼 사전규제와 대형 플랫폼 사업자의 중소 입점업체를 대상 불공정행위 규제(갑을관계 규제)를 포함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와 의회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독과점 규제를 반대하고 있다. 자칫 갑을관계 규제만 적용하는 반쪽자리 입법이 될 경우 국내 플랫폼 기업의 역차별, 국내 유통혁신의 퇴행 등 역효과만 낳을 것이라는 비판이 많다. 노란봉투법 역시 찬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법안은 근로계약관계에서 사용자의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고,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제한하는게 골자이다. 노조는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가 헌법이 보장하는 파업권 및 노조활동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입법 정당성을, 반대로 기업은 불법파업 조장, 기업 재산권 침해 등을 들어 부당성을 서로 주장하고 있다. 민주공화정의 국체를 다시 정립한 국민주권정부는 좌고우면할 겨를 없이 '경제강국 실현'의 명분을 내걸고 매진할 것이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다양한 계층과 계급간 이해충돌의 국정과제는 정권 명분론보다 국가와 국민의 이익 우선이라는 실리주의에 충실해야 한다. 내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국민주권정부의 대통합 추구에 부합하고, 원활한 국정수행의 지름길이다. 이진우 기자 jinulee6464@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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