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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주 칼럼]산업정책의 역할과 기대

산업정책은 국가 안보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루스벨트 연구소의 토드 터커는 산업정책을 '투입 비용이나 산출물 가격의 변화 또는 다른 규제적 수단을 통해 유한한 자원을 하나의 섹터나 산업으로부터 다른 쪽으로 넘기는 모든 정부 정책'으로 정의했다. 이처럼 산업정책은 국가 발전을 위해 정부가 차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책이 바람직한가? 답하기 어렵다. 특정 산업에 혜택을 준다는 것은 그 범위밖의 다른 산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과 같다. 게임의 룰을 어기는 행위인 것이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산업정책은 기존 거래의 판을 깨는 행위에 해당한다. 특정국이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켜서 교역조건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므로 내가 가지는 만큼 남의 것이 줄어드는 Zero Sum적인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는 교육, 연구개발, 사회문제 해결의 범위를 넘어서는 각국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WTO, TRIPs 등 각종 국제 조약을 얼개로 각국의 차별적, 개입적 산업정책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래서 지난 수십여년간 산업정책은 다들 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안한 척 하는 것이었고, 상대국이 알게 되면 박 터지는 무역분쟁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산업정책을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의도적 개입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그 대표적 성공 사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 정부의 집요한 산업정책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산업정책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보통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출발점으로 본다. 그러나 산업정책의 주체를 '정부'에서 '공동체'로 완화해 준다면 조금 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21년 9월 일제 총독부가 조선산업조사위원회를 열었다. 당시 우리 기업인들은 조선인을 위한 산업정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정부는 제국 방침에 맞추어 한반도에서는 산미 증식과 철도 건설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 동아일보가 이 조치를 '조선 경제를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키려는 것'이라고 직격하면서 1920년대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물산장려운동이라는 공동체 차원의 경제자립운동이 벌어진다. 이 운동은 당시 한국인들을 대표할 정부가 없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산업정책의 본질을 그대로 담았다. 조선인의 산업적 지능을 계발, 단련하고, 조선인이 만든 상품을 애용해서 시장을 창출하며, 조선인의 경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사, 연구, 지도활동을 수행한다는 내용은 기술개발, 인력양성, 시장창출, 조사연구, 현장 애로지원 등 지금 우리의 정책과 흡사하다. 21세기 이후 세상의 물길이 바뀌고 있다. 과거 자유무역을 선도했던 미국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를 필두로 지금의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미국 우선의 산업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철강, 알미늄, 세탁기, 태양광 패널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기업 인수합병 규제 등을 통해 중국의 기술 경쟁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반도체법, IRA 등 공세적인 보조금으로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등 외국의 첨단 산업을 미국으로 가져가고 있다.이전의 반칙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다. 일본도 다를 바 없다. 2017년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에서 보이듯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기술 분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EU 등 세계 각국들도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전 세계가 산업정책의 본격적 재림을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 종식선언 이후 지금까지 고금리,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사태, 공급망 애로, 무역규제, 내수 위축 등 무수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당장 미국 대선의 향배만으로도 환율과 이자율이 출렁거리고 있다. 각국의 거세진 압박으로 우리 아이들의 일터가 되어야 할 공장들이 남의 나라에 지어지고 있다. 과거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주적인 산업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언가 준비되고 있지 않다면 100년전의 선배들 볼 낯이 없다. 물론 지금의 복합 위기는 과거 고도성장 초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젊고 근면하며 우수한 노동력, 효율적인 의사결정시스템, 기술을 공여하고 시장을 열어주던 우방국들... 모두 지나간 이야기다. 사회시스템은 경직되고, 노동시장은 갈등과 대치를 못 벗어나고 있으며, 국민들은 늙어가는 나라. 새로운 산업정책의 처방 또한 극히 복합적이어야 할 것이다. 외교, 국방, 재정, 금융, 노동, 복지, 세제, 중소기업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메타플랜이 아니라면 답도 없을 것 같다. “수출도 잘 되고, 부동산 경기도 회복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보다는, 피부로 체감하는 위협과 다가올 시련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뼈를 깍는 대안과 비전을 내놓을 수 있는, 우리 정부의 통찰력과 진지함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박원주

[기자의 눈] 전삼노와 APU의 우려스러운 언론관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비위에 따라서 사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 1일 오전 10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자택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으레 그렇듯, 현장에 찾아온 기자들은 워딩을 듣고 받아치거나 녹취한다. 그날도 그 자리에 온 기자들은 전삼노가 홈페이지에 공지한 내용을 보고 한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에 올라와 취재하기 바빴다. 그러나 기자회견 내용은 더운 날씨만큼이나 실망스러웠다. 이날 전삼노 관계자는 “사측이 2023·2024 임금 교섭을 병합하며 휴가 제도 개선을 약속했지만 일방적으로 반려해 철회됐다"며 “성과급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투명화 요구"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패밀리넷 포인트 200만원을 요구했다며 되팔이범으로 호도한 서울경제 기자님 오셨느냐, 이렇게 중요한 기자회견 자리에 오지도 않고 기사를 썼느냐"며 “언론사가 2년치 임금 교섭 요구를 철저하게 짓밟았다"고 주장했다. 또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놔 의사 표현을 하러 온 것인지, 특정 언론인을 상대로 조리돌림하며 겁박하러 온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필자는 질의응답 시간에 “기자회견의 취지와 목적이 임금 협상을 포함한 근로 조건 개선에 있는 건지, 무노조 경영 폐기에 방점이 찍힌 건지 궁금하다"고 했고, 이어 “전삼노를 제외한 나머지 4개 노조들과 계열사 노조들도 사측이 탄압을 하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에 유튜브 스트리밍을 담당하던 전삼노 관계자는 댓글창에 공식 계정으로 “제가 현장에서 법규(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든 욕설)를 날렸어야 하는데 아쉽네요"라고 적었다. 또 뉴시스 기자가 “패밀리 포인트와 관련해 사측은 50만원, 노조는 당초 250만원을 요구했다는데 그 시점이 언제인가"라고 묻자 전삼노 측은 “그런 걸 왜 물어보느냐"며 핀잔을 주는 모습도 포착됐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기자들을 땡볕에 불러세워놓고 다소 민감하게 느껴질 수 있는 질문을 받으니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철저히 언론을 자신들의 나팔수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면 오산이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APU)도 마찬가지다. APU는 벨기에 브뤼셀 소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찾아가 에어인천의 아시아나항공 화물본부 인수 적합성을 철저히 조사해달라며 당국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이들은 EC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과 직원 사이의 고용 관계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고, 필자는 업계 의견을 취합해 “EC가 의견 제시를 거절했다"는 내용을 기사에 반영했다. 그럼에도 APU 관계자는 “EC가 고용 관계는 자기들의 권한 밖임을 설명한 것"이라며 “우리가 제출할 추가 자료를 EC가 환영한다는 내용은 눈에 안 들어오느냐, 편향적으로 그 따위 기사를 쓰느냐"고 따졌다. 또 “당신 같은 사람은 기자로 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측)자료 공유를 하지 않을테니 능력껏 구해보라"며 당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선 “박규빈 기자는 대한항공으로부터 무얼 받아먹었길래 이런 기사를 쓰느냐"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다. APU는 그 말에 책임 질 수 있나? 필자는 취재를 통해 사건을 심층적으로 설명하거나 배경을 알려주는 '해설 기사'를 썼을 따름인데, 이 정도면 가히 언론에 대한 폭거라고 할만하다. 언론이 언더 도그마에 빠져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언제나 모든 매체가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오만한 발상이다. 거친 언사로는 가장 먼저 만나는 시민인 기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노조 관계자 제위의 성숙한 대 언론 자세를 촉구한다. 박규빈 기자 kevinpark@ekn.kr

[신율의 정치 칼럼]이재명 전 대표가 한동훈 대표에게 줄 시사점

정책위 의장의 사임 문제로 국민의힘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결국 비교적 계파색이 옅은 김상훈 의원이 신임 정책위 의장으로 결정됐는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런 측면은 한동훈 대표의 당내 입지가 아직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황이 이렇다면,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전 대표가 민주당을 어떻게 장악했는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재명 전 대표는 과거 민주당의 철저한 비주류였다. 지금이야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와 매우 가까운 관계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치적 '필요' 때문이지, 두 사람이 원래부터 가까운 사이였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조국 대표는 친문의 적자이지만, 이재명 전 대표는 친문의 적자이기는커녕 오히려 '박해'를 받았을 정도의, 완전한 비주류였기 때문이다. 박해받는 비주류 인사가 민주당을 장악할 수 있었던 힘은, 바로 당 외부의 강성 친명 지지층으로부터 나왔다. 즉, 당의 주류였던 친문 세력이 힘을 잃게 된 이유는 바로 강성 친명들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만일 이재명 전 대표가 '전통적 방식'으로 당을 장악하려 했다면, 실패했을 확률이 90% 이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비주류가 당내에 확고히 뿌리를 내린 주류를 '전통적 방식'으로 공격한다고 해서, 주류가 흔들리기는 만무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통적 방식이란, 당내 의원들을 차곡차곡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세를 확장하고, 끝에 가서는 당을 장악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런 방식은 주류에 대항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 이미 어느 정도 형성됐을 때나 가능하다. 이재명 전 대표는 당 내에서의 자신의 처지를 잘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당 외부로부터 내부에 진입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이재명 대표의 정치력과 정치 감각이 매우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측면을 한동훈 대표는 참고할 만하다. 그런데 한 대표가 지금 처한 상황은, 과거 이재명 전 대표가 당을 장악했던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과거 친문이 주류를 이루었던 민주당보다는, 주류인 친윤 세력의 당 장악력이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재명 전 대표의 방식, 즉 당 외곽으로부터 내부로의 진입이 훨씬 용이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한동훈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경우처럼, 매우 충성도 강한 팬덤을 가지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 팬덤을 가진 정치인은, 한동훈 대표와 박근혜 전 대통령 정도다. 팬덤이 없는 정치인은 당 외곽에서 내부에 확고한 뿌리를 내리기는 힘들지만, 한 대표의 경우처럼, 팬덤을 가지면, 외곽에서 당 내부로 장악력을 확장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이미 당 지도부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친윤들이 한 대표를 어떤 식으로든 흔들 가능성은 상존하기 때문에, 한 대표가 당을 장악했다고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 대표가 이재명 전 대표와 같이 당을 '1극 체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떨어지는 대통령실과는 달리, 여론에 적극 호응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런 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목 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당에 대한 장악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한국 정치 전체를 놓고 볼 때, 팬덤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정치는 현실이기 때문에 팬덤이라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언급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한 대표는 팬덤을 이용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위론적 주장일 뿐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한동훈 체제가 어떻게 당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릴지 지켜볼 일이다. 신율

[EE칼럼] 헤어질 결심이 필요할 때다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건 쉽지 않다. 헤어진 후 새로운 것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면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 꼭 헤어져 할 때가 있다. 지난 7월 29일 한국원자력학회가 '한국형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 솔루션'을 발표했다. 골자는 “외국 사례는 참고하되 우리 기술을 활용해 우리 환경에 맞는 처분장을 2050년대 초까지 확보하자"이다. 학회의 발표는 그간 업계에서 당연히 여긴 몇 가지 관습과 과감히 헤어져야 함을 시사한다. 첫째, '외국 맹신주의'다. 과거 우리 원자력계는 처음 접하는 일을 만날 때마다 가장 먼저 외국 사례를 찾았다. 안전 규제도 마찬가지였다. 외국 사례가 있으면, 그것을 기준 삼아 일을 해결했다. 그간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외국과 우리나라의 지질 환경과 사회 분위기가 다르다. 문제가 다른데, 남의 답을 그대로 가져와 우리 답으로 삼을 수는 없다. 남의 답은 참고는 하되, 우리 문제에 맞는 답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둘째, '연구 지상주의'다. 자연 현상 규명이나 사회 문제 해결 등을 위해 연구개발은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연구를 위한 연구'는 더 이상 안 된다. 사용후핵연료는 지하 500m 이상 깊은 곳에 처분한다. 그곳의 환경을 잘 알아야 처분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할 수 있다. 그래서 지하 환경 규명을 위한 연구는 꼭 필요하다. 예를 들어, 처분장에서 방사성 핵종의 매년 이동 거리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이동 거리를 소수점 이하 몇째 자리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다. 처분 시스템을 구축할 때 충분한 안전마진을 두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사용후핵연료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한 해법 지향적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 셋째, '나만 아니면 돼 주의'다. 그동안 사용후핵연료는 뜨거운 감자였다. 누구든 자기가 책임 있는 자리에 있을 때 불똥이 튀는 걸 꺼렸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미뤘다. 그러다 보니, 원전이 도입된 지 5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계획도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언제까지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인 연도를 밝히고 있지 않다. 처분장 부지 선정 절차 착수 후 37년 안에 확보한다고 돼 있다. 착수 시점이 불확실하니 확보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 이래서는 안 된다. 원전의 혜택을 누린 우리 세대가 확실한 목표 시한을 정하고 적극 추진해야 한다. 지금 우리 역량이라면 충분하다. 2050년을 처분장 확보 목표 시점으로 잡은 이유다. 넷째, '규제강화 = 최적이라는 오산'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적 여파가 큰 사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의 실제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를 심사숙고하지 않은 채 규제를 강화했다. 그것이 국민감정을 달래고 행정적으로 가장 편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강화가 우리 사회 안전의 실질적 향상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강화된 규제가 사회 재원의 분배를 왜곡시키거나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경우 등이라면, 애초의 규제 목적과 거리가 먼 상황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진이 날 때마다 우리 언론은 원전 안전을 걱정하는 기사를 쏟아낸다. 그러다 보니 규제가 날로 강화된다. 그런데 원전은 지구상에서 지진에 가장 잘 대비된 구조물이다. 반면 국내 건축물이 내진성능이 기준을 만족하는 비율은 2021년 8월 기준 13.2%였다. 뒤집어 보면, 나머지 건축물은 지진에 취약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非내진 설계 건물 대신 원전의 내진 보강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실질적 안전 대신 심정적 위로를 위해 재원의 왜곡된 투자를 부추기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를 심층 처분하면, 방사성 핵종이 생태계로 빠져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온다 쳐도 현행 안전기준의 1/1000 수준에 불과하다. 심층 처분의 안전성은 충분하다. 그런데 현행 요건은 처분장 폐쇄 후 10000년간의 방사선영향 평가를 요구한다. 이 '10000년'이라는 기간 때문에, 사람들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이 매우 어렵고 처분장이 장기간 위험한 곳인 양 오해하기 십상이다. 이런 오해 확산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처분 안전성을 보여 문제 해결을 촉진하려 한 애초 의도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문주현

[기자의 눈] 언제까지 석유시대에 살 것인가

올해 상반기 국내 석유제품 소비량은 4억7819만배럴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상반기보다 5.5% 늘어났으며, 기존 최대인 2022년 상반기보다 2%(943만배럴) 더 많은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제로화하는 탄소중립을 전 세계에 선언했다. 하지만 선언과는 전혀 딴판으로 석유 사용량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제품별 소비 증가율을 보면 전년 동기대비 휘발유 8.1% 증가, 납사 4.2% 증가, 항공유 17.5% 증가, LPG 16.7% 증가, 기타제품 14.1% 증가했다. 제품의 용도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동차 운행을 더 많이 했고, 석유화학산업의 가동률은 더욱 높아졌으며, 코로나19로 자제했던 해외여행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역대 최대 수준의 석유 소비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2년 9개월간 계속되고 있는 유류세 인하도 소비 증가에 한 몫 한 것으로 보여진다. 계속 감소하던 경유 소비량이 7월 유류세 일부 환원을 앞두고 6월에 소비가 증가세로 돌아선 것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석유 소비 추세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상반된 평가가 나온다. 한 교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봤다. 그는 “석유 소비는 경제성장과 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에 올해 석유 소비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가 나아졌다는 뜻"이라며 “마땅한 친환경 대체재가 없는 상황에서 석유 소비를 줄이기 위해 경제성장을 의도적으로 낮출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교수는 “정부의 탄소중립 달성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석유의 친환경 대체재는 석유보다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탄소세 도입 등을 통해 친환경 대체재 시장을 육성해야 다시 가격이 안정화된다"며 “하지만 현 정부는 아무런 대책없이 오로지 물가안정을 이유로 기름값을 낮게 유지해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고 있는 제품이다. 그러므로 가격도 전 세계 어딜가나 대동소이하다. 기본적으로 기름값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유럽의 기름값은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비싸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휘발유를 기준으로 올해 2분기 한국의 리터당 평균가격은 1680원이다. 이에 비해 오스트리아는 2417원, 영국은 2547원, 아일랜드는 2651원, 덴마크는 3028원, 네덜란드는 3004원이다. 이처럼 유럽 기름값이 비싼 이유는 세금이 많아서다. 리터당 휘발유에 부과되는 세금은 한국 712원일 때 오스트리아 1276원, 영국 1339원, 아일랜드 1463원, 덴마크 1614원, 네덜란드 1696원이다. 유럽은 석유에 악감정이 있어서 기름값에 그렇게 많은 세금을 매기는 걸까? 분명 아닐 것이다. 석유의 친환경 대체제 시장이 경제성을 가질 수 있도록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즉, 현재 유럽은 과도기에 있다. 석유 시대에서 친환경 연료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결국에는 친환경 연료가 주류로 자리잡고 가격까지 안정화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한국은 언제까지 석유시대에 살 것인가. 윤병효 기자 chyybh@ekn.kr

[이슈&인사이트] ‘티몬·위메프 사태...전자금융업에 대한 규제 강화 필요’

최근 우리 경제는 여전히 내수시장이 부진하다. 올해 2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 대비 0.2% 감소했는데, 주요 이유는 고물가에 따른 가계의 소비 억제와 관련 있다. 민간소비는 우리 경제성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주요 부문이다. 그런데, 최근 민간소비를 더욱 위축시킬 만한 사건이 우리 경제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티몬·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그것이다. 해당 업체는 전자상거래 업체로서 영세한 온라인 가맹점의 판매대금 수령을 위해 정산결제 업무를 지원하는 전자지급결제대행업체(이하 결제대행업체, PG: Payment Gateway)이다. 결제대행업체는 전자금융거래법에서 전자금융업자로 규정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지급결제 시장은 중·저신용자의 신용거래를 가능케 한다는 명분으로 결제대행업체의 시장진입 문턱을 낮춰왔다. 혁신금융이라는 취지하에 금융규제 샌드박스의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은 결제대행업체는 선불전자지급수단인 상품권 발행에 규제를 받지 않았으며, 이를 자본조달의 수단으로 악용해왔다. 이른바 상품권 할인발행을 통한 자금횡령 사태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머지포인트 사태의 재판이 이번 티몬·위메프의 사태에서 벌어졌다. 비록, 결제대행업체에 대한 규제를 담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이 이미 마련되기는 했지만, 현재 시행이 되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지급결제시장은 신용에 기반한 질서 유지가 필요한데, 티몬·위메프와 같은 부실한 업체가 사업을 영위해왔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혁신금융 지원정책에 큰 허점을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로 인해 소비자와 소규모 영세상공인의 피해는 상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제품판매대금을 수취하지 못한 영세상공인에 대한 정부의 긴급경영안정자금만 대략 수천억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더욱이, 여름 휴가시즌을 맞아 예약한 항공권이나 숙박이 취소되는 등 소비자 피해가 급증하면서, 자칫 결제대금을 환불받지 못할 경우, 가계의 재무적 부담으로 이어져 소비지출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이번 사태는 사실 티몬·위메프와 같은 업체가 너무 쉽게 지급결제시장에서 결제대행업체로 영업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위메프는 2020년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놓여있었고, 2022년 티몬의 현금 등 유동성 확보수준은 대략 80억원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과연 이렇게 부실한 업체가 어떻게 국내 지급결제시장의 한축을 담당하는 결제대행업체로 영업을 할 수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국내 온라인 결제시장은 소비자의 신용카드를 이용한 상품 구입·결제가 이루어지면, VAN(부가가치통신망, Value Added Network) 사업자를 거쳐 티몬·위메프에게 자금이 수취되고, 해당 자금은 쇼핑몰 입점업체에게 전달된다. 결제대행업체는 물건을 판매한 영세상공인의 판매대금을 수취하고, 지급해야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금융사업자임에도 부채비율 200% 이내란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면 시장진입이 가능하다. 즉, 인허가제보다 진입이 쉬운 등록제를 통해 결제대행업 영위가 가능하다. 더욱이, 등록된 결제대행업체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경우에도 등록증 반납을 요구할 제도적 여건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전자금융감독규정의 전자금융업자 경영지도기준 제63조에는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차감한 자기자본이 0을 초과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지만, 사실상 최근 자본잠식으로 등록이 취소된 업체는 찾아보기 어렵다. 위와 같이 전자금융업자의 진입단계 및 진입후 영업단계에서 규제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더욱이, 대규모유통업법(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의 제8조에서는 상품판매대금의 지급기간을 40일 이내로 명기하고 있다. 하지만, 결제대행업체의 정산주기는 최대 60일이 넘는 데에도 이러한 정산주기를 규제할 규정을 찾기 어렵다. 또한, 해당 자금을 오랜 기간 보유하고, 관리의 방법도 불투명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도 찾기 어렵다. 결국,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는 민간소비 위축을 가져와 우리 경제성장의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 우려된다. 더욱이, 자영업 비중이 높은 국내 경제구조에서 영세소상공인에 대한 실적악화가 예상되고, 이를 위한 정책자금의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필자는 향후 티몬·위메프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몇가지 대책을 제언하고자 한다. 첫째, 결제대행업체가 발행하는 상품권 발행을 제한하는 제도마련이 필요하다. 결제대행업체가 소비자 대상으로 발행하는 상품권이 자금조달 수단으로 악용되었음에도 제재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점은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둘째, 정산대금에 대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서는 선불업자로 분류되는 결제대행업체가 해당 대금의 50%를 금융기관에 예치 또는 지급보증보험방식으로 관리토록 되어 있다. 가급적 50%가 아닌 전액을 금융기관에 예치하도록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결제대행업체의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 현재 최소한의 부채비율을 통해 등록제로 사업진입이 가능한 점을 개선하여, 일정수준 이상의 자기자본·부채·유동성·건전성 비율 등의 충족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진입규제가 강화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티몬·위메프 사태를 계기로 검증되지 않은 전자금융업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 정책은 재고되어야 한다. 또한, 금융당국은 재무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전자금융업자를 혁신금융사업자로 지정할 경우 자칫 초래될 국민경제적 부담은 상상 이상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서지용

[EE칼럼] 탄소중립시대에도 천연가스전 개발이 중요한 이유는?

파리 올림픽으로 지구촌 전체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과 폭우로 인류의 터전인 지구도 몸살을 앓고 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이다. 그 주된 원인은 지나친 화석연료 사용에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에너지전환과 탄소감축 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탄소중립 정책으로는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의 전력화, 탄소포집 및 저장 활용(CCUS), 수소에너지 등이 있다.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의 핵심도 2050년까지 에너지의 전력화 비율을 현재의 2배 이상인 45%로 늘리고 에너지원의 7% 수준인 재생에너지 비율을 36%로 확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실천하려는 의지뿐만 아니라 대규모 자금 투입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2050년까지 남은 30년간 어떻게 탄소중립 목표와 에너지 전환을 계획대로 추진하고 달성할 수 있을까? 화석연료가 전체 에너지원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의 에너지원 공급 현실을 고려하면 특단의 조치 없이는 목표 달성이 어려워 보인다. 미래 탄소중립의 한 축인 수소에너지도 현재는 94% 이상의 대부분을 천연가스를 비롯한 화석연료에 기반하여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가 탄소중립 완성시기로 선언한 2050년의 전 세계 수소 생산의 50% 정도는 그린수소로, 50%는 천연가스 주축의 화석연료 기반의 블루수소로 생산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천연가스가 LNG 형태로 100% 해외에 의존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수소 생산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즉, 미국은 가스 가격이 MMBTU 당 3불에 불과한데 한국은 10불이 넘고 있으니 천연가스 기반의 수소의 생산 단가도 비쌀 수밖에 없다. 설령 탄소중립 정책이 계획대로 완벽히 실행되어 수소 사회가 되더라도 한국의 수소 공급은 대부분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며 수소의 도입 및 저장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탄소중립시대가 되더라도 에너지로 인한 국가의 어려움은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해외에서는 다양한 이산화탄소 저감 정책들이 실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탄소중립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제도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하여 지하 대수층이나 생산이 종료된 폐가스전에 저장하는 경우, 톤당 85달러의 세제 혜택을 주는 법안도 실행 중이다. 그리고 이산화탄소를 석유회수증진을 위해 활용하여 유가스전에 주입하여 격리시키는 경우에도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여전히 산유국이 탄소중립 시대에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에너지 생산 회사들이 현실적인 탄소중립 기술로 눈여겨보고 있는 것이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과 수소생산 기술인 것 같다. 그리고 그 핵심을 탄화수소 기반의 수소생산과 CCS를 연계하는 청정수소생산기술로 판단하고 있고 그 중심에 있는 에너지원이 천연가스이다. 국제협력이 필수적인 탄소중립 목표달성이 늦어지거나 중국과 인도, 미국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인구가 많고 국가 경제가 확장기에 있는 중국과 인도의 탄소 방출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에서는 한국은 좀 더 현실성 있는 국가 에너지안보를 고려한 탄소중립 정책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전 세계 75억 인구 중 80%를 차지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일 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북미의 1/4 수준에 해당된다는 사실이 미래의 세계 에너지 수요 예측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석탄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이 60% 수준인 천연가스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히, 가스전은 개발 생산시 최종 회수율이 높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저장소로 활용하기 용이하다. 그것이 가스생산을 끝낸 한국의 동해가스전도 이산화탄소 저장지로 활용하려고 추진중에 있는 이유이다. 탄소중립 정책이 시간표대로 제대로 수행되더라도 석유가스이 역할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며 특히, 천연가스의 역할은 수소에너지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CCS 기술과 연계되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만약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이 우리의 청사진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늦어진다면 천연가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불확실한 탄소중립과 에너지전환 시대에서도 핵심 역할을 수행 할 천연가스, 수소, CCS 분야를 연계한 적극적인 정책이 장기적으로 추진되면 에너지 신산업화 뿐만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내 대륙붕의 지속적인 탐사와 개발은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으로 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신현돈

[기자의 눈] 더본코리아, 갈등 봉합으로 ‘상생 본질’ 되찾기를

“가맹사업의 핵심이 '상생경영'인데 점주와 척을 지면 회사 이미지에 좋을 게 없겠죠. 백종원 대표가 직접 사태수습에 나설 정도로 내부에서 느끼는 위기감도 큰 거 같고요." 올해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더본코리아와 '연돈볼카츠' 가맹점주 간 갈등을 바라보는 외식업계 관계자의 평가이다. 가맹사업을 주요 사업모델로 둔 외식기업 특성상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 간 상생관계가 필수임에도 내홍 장기화로 기업의 사회 평판에 흠집이 날 가능성을 꼬집은 것이다. 연돈볼카츠는 제주도의 인기 돈가스 전문점 '연돈'에서 시작된 돈가스 테이크아웃 전문점으로 2018년 백종원 대표가 자체 '골목식당 프로그램'으로 출연한 더본코리아 산하 브랜드이다. 연돈볼카츠 사태는 지난 6월 일부 연돈볼카츠 가맹점주들이 더본코리아를 가맹사업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면서 불씨가 붙었다. 가맹점주들은 더본코리아 직원이 구두로 제공한 매출·수익률 등을 허위로 과장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더본코리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이 번갈아 녹취록을 공개하는 등 진흙탕 싸움까지 번진 상황에서 더본코리아는 백종원 대표가 직접 나서 방송·유튜브 채널을 통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앞서 더본코리아는 지난 5월 29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 신청서를 제출했다. 상장 첫 단추인 상장예비심사는 규정상 심사 기한인 45영업일 내 심사 위원회가 열려야 하지만 현재까지 승인 여부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거래소 측에서 뚜렷한 상장 심사 연기 사유를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한편, 최근 불거진 연돈볼카츠 갈등이 발목을 잡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동안 다수의 국내 프랜차이즈 업체가 상장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시장 규모가 한정된 내수시장에서 집중하는 업종 특성상 성장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사업 구조상 가맹본부와 가맹점주의 이해관계가 상이해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이같은 시장 핸디캡에 가맹점 리스크까지 더해진 더본코리아가 연볼돈카츠 리스크를 헤쳐 나갈 길도 녹록치 않아 보인다. 본사와 가맹점 간 '2인3각 경영'이 프랜차이즈 사업의 본질이라는 점에서 더본코리아와 연돈볼카츠의 갈등은 소비자들에게 자칫 상생(相生)을 저버린 독생(獨生)의 이권다툼으로 보이지 않을까 안타깝다. 조하니 기자 inahohc@ekn.kr

[신연수 칼럼] 한동훈, 반윤(反尹)만으로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큰 기여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검사가 대통령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뚜렷이 각인시켰다는 점이란다. 우리 국민은 군부 독재와 싸워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군인이 정치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불문율을 갖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정부를 겪으며 검찰 정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강해졌다는 점에서 반어(反語)적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못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국민의 한숨은 늘 30% 안팎을 벗어나지 못하는 국정 지지도에서도 드러난다. 윤석열 정부가 2년여 동안 보여준 좌충우돌 식 국정운영과 고집불통, 남에게는 정의와 공정을 들이댔던 대통령이 자기 식구는 한없이 싸고도는 상황이 낮은 지지도의 주요 원인이다. 여당에서 제1의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한동훈 대표도 검사 출신이다. 더구나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가장 아꼈던 측근이고,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함께 영광과 고난을 나누었던 동지다. 타협하지 않고 '법대로' 밀고 나가는 검찰 정권의 문제, 검사 경력이 거의 전부인 개인적인 한계를 한 대표 역시 고스란히 가질 수밖에 없다. ◇ 한동훈 앞에 놓인 딜레마 그런 한 대표가 보름 전 전당대회에서 '변화'를 외치며 당선됐다. 4명의 후보들 가운데 윤 대통령과 제일 잘 아는 사이면서도, 당정(黨政) 일치를 주장하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비윤(非尹), 때로는 반윤(反尹) 노선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리고 당심(黨心)과 민심에서 모두 62% 넘는 지지를 받으며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정부·여당이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국힘 지지자들과 국민 여론이 그만큼 강하다는 증거다. 이번 선거기간에 불거진 두 가지 큰 사건, 김건희 여사의 문자에 답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읽씹'과 나경원 의원의 '패스트트랙 공소 취소 부탁' 논란은 국힘의 강성 당원들과 친윤(親尹) 의원들을 경악하게 했다. 두 사건은 한 대표가 처한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아무리 친해도, 설사 '우리 편'이어도 공(公)과 사(私), 불법과 합법은 구별하는 태도를 보여줬다는 칭찬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여야 모두 자기 진영만 챙기며 '내로남불' 하는 정치권에 질린 국민에게는 오히려 신선하게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대표는 대표 수락 연설에서 변화의 방향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민심과 국민의 눈높이에 반응하는 것, 둘째 미래를 위해 더 유능해지는 것, 셋째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그동안 지지층만 바라보던 정부 여당의 실점(失點)을 만회하고, 중도층을 끌어안기 위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선언을 한 셈이다. 다가올 지방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 국힘이 이기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 민심이 움직이면 당심도 따라 방향은 잡았으나 내용을 채우는 것은 이제 시작이다. 우선 그 스스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고 지적한 김건희 여사에 대한 수사와 채 해병 특검에 대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는 대표가 된 후 부쩍 '민생'을 강조하고 있다. 말로만 민생을 찾을게 아니라 실제로 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의정(醫政) 충돌로 나날이 추락하고 있는 한국 의료 시스템과 위메프 사태, 전세사기 피해 등 많은 민생 과제가 쌓여 있다. 혹여 윤석열 정부의 정책 방향은 옳으나 국민과 소통을 잘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미온적인 대책만 내놨다가는 국민의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한 대표가 차기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려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오세훈의 '약자와의 동행', 이재명의 '기본 사회'처럼, 당장 실현 가능성이 있건 없건 한동훈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정책 브랜드가 필요하다. 많은 정치 평론가들이 한 대표의 과제로 당내 통합과 당내 지지기반 구축을 꼽는 다. 당 대표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정점식 정책위의장 사퇴 논란에서 보듯이 여전히 저항 세력이 많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일이다. 국회의원도 아닌 원외 당 대표로서 그가 의지할 곳은 국민 여론 밖에 없다. 이번 당 대표 선거가 보여줬듯이 민심이 움직이면 당심도 따라올 것이다. 신연수 기자 ysshin@ekn.kr

[EE칼럼] 우라늄 공급망 확보 나서야 한다

지난달 17일 우리나라가 체코 역사상 최대 투자 프로젝트로 알려진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원자력발전소는 우라늄235 원자핵이 핵 분열을 일으킬 때 방출되는 에너지를 이용하여 발전기를 돌려 전력을 생산하는 시설을 갖춘 곳이다. 원전 연료의 핵심은 우라늄이다. 우라늄은 한동안 공급자보다 수요자 우위였으나 2020년부터 공급자 우위로 재편되고 있다. 더구나 서방세계의 러시아 제재 움직임과 맞물려 최대 우라늄 공급선인 러시아를 대체할 방안을 찾고 있다. 세계 우라늄 시장은 서방권과 중국, 러시아의 공급망이 장기적인 분절화로 나아가는 길 목에 진입했다. 문제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서방세계가 우라늄 시장의 큰 손인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금세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와같은 상황이 지속적으로 유지된다면 우라늄 정광부터 변환-농축 등 시장 전반에 걸쳐 공급 부족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우라나라도 우라늄 연료와 농축시설을 확보한 국가들과 더욱 더 협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우선 거론 되는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은 러시아산 우라늄 제재를 주도하고 있어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미국 정책은 자국내 기업이 농축시설을 구축할 때 외국 기업이 적극 투자하면 공급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최근 원전 산업 활성화에 원자력 수요 증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서방국의 대러시아 제재 강화 등이 맞물려 우라늄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한국광해광업공단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2년 우라늄 수입량은 575tu 이고, 동 기간 세계 우라늄 생산량은 51,753tu이다. 런던금속거래소(LME)의 7월 30일 기준 우라늄 정광 가격은 파운드당 86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37달러)보다 크게 상승했다. 이런 가격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원전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 및 전력 공급 확충 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선호하는에너지원이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 주길 못하고 있다. 특히 우라늄 공급이 단기간에 확충되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 과거엔 우라늄 광산개발에 대한 투자가 소극적이였고 우라늄 광산업자들도 미래 수입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지 못해 신규 투자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우라늄 정광 수요는 2035년 2억9000만 파운드이며 공급은 1억1400만 파운드에 그 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좀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보면 우라늄 정광, 변환-농축 시장은 우라늄 광산과는 다른 현상을 보이고 있다. 즉 우라늄 광산은 전 세계 곳곳에 있지만 실제 중요한 농축시설을 갖고 있는 국가는 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 입장에선 우라늄의 안정적 확보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세계 우라늄 시장에서 러시아는 매우 큰 손이다. IEA에 따르면 러시아는 세계 우랴늄 정광 시장 17%, 변환시장 29%, 농축시장 41%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우라늄 시장에서 러시아의 공백을 단기간 메꾸긴 어렵다.우리나라는 러시아를 대체할 공급망을 확보하는게 중요하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과 아프리카 48개국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등 경제 및 에너지 자원외교를 펼친 것은 상당히 의미있는 모습이다. 여기에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속으로 카자흐스탄과 아프리카지역의 우라늄 확보 전략을 강화하는 조치를 펼치고 있다. 카지흐스탄은 세계 1위 우라늄 보유국이며 생산국이다. 우리나라는 카자흐스탄과 보다 긴밀한 협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카자흐스탄 정부는 광업세 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 1월1일부터 광업 세율을 6%에서 9%로 인상키로 했다. 2026년에는 생산량에 따른 차등적 세율을 적용해 4천톤 이상의 우라늄 정광을 생산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18%의 높은 세율을 적용하고 500톤 미만을 생산하는 업체에는 4%의 세율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또한 우라늄 가격 구간별 세율을 도입해 우라늄 가격이 파운드당 70달러 이상 상승 시 0.5%의 추가 세율을, 110달러 이상일때는 2.5%의 추가 세율을 적용키로 했다. 우리나라가 안정적으로 원전을 가동하고 세계 수주에 나서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2015년 개정된 한-미 양국간 우라늄 공급 관련 협약을 보면 미국은 우리나라에 저농축 우라늄의 안정 공급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따라서 이제는 한걸음 더 나가 저농축 우라늄 공급 보장에 관한 협상을 해야 한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으로 한수원이 미국 핵연료 기업인 센트러스에너지와 파트너십을 갖고 우라늄 공급 협력 가능성을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점은 의미있다. 우선 우리나라와 교류 협력이 좋은 국가와 먼저 자원외교를 통해 우라늄 공급망 확보에 나서주길 당부한다. 강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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